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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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못난귤(丑橘)
2023년 01월 20일 20시 25분  조회:190  추천:0  작성자: 남춘애
      집들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음식은 그럭저럭 준비해두었지. 그래서 3월의 꽃샘추위를 무릅쓰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과일가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본적이 없는 이상한 과일 한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귤의 족속이긴 한것 같은데 면상이 두꺼비 껍질을 뒤집어쓴 곰보딱지이고 모양새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서있는것이 도무지 꼴불견이었습니다. 그 크기로 보면 감귤보다 조금 더 크고 색상은 죽은 오렌지색이였습니다.
 
    내가 호기심이 터져 점원게게 다가가 무슨 과일니냐고 물었더니 못난귤(丑橘)이라고 짤막하게 이름자를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그 이름자에 좀 소름이 끼쳐서 맛은 어떠냐고 덧물었더니 가게주인이 답하기도 전에 한창 과일을 비닐주머니에 골라 담고있던 손님이 잠간 눈길을 나에게로 주며 “진짜 먹을만한 과일”이라고 강력 추천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엔 분명 한라산 봉우리를 닮은 한라봉인데 한라봉이라고 부르지 않고 못난귤이라고 부르니 부쩍 더 구미가 동했습니다. 아무리 사는 지방이 달라서 생긴 호칭이라 할지라도 극에서 극에 해당되는 차이를 가진 이름이였습니다. 나는 큼직한 놈 두개를 골라 들었습니다. 8원50전입니다. 수입에 비하면 비싼 가격대였지만 신기한 마음에 넙죽 샀습니다.
  
     과일주머니를 들고 찬 기운에 기죽은 손을 불며 집에 오니 오전 내내 이사짐 정리에 고생한 남편과 집들이 도우미로 오신 오빠가 쏘파에 앉아 브레이크타임을 보내고있었습니다. 나는 못난귤을 칼로 예쁘게 잘라서 과일판에 담아 방안에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랍니까! 그것의 맛은 이름과 생김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습니다. 오빠는 참 맛있다고 하시며 몇조각을 금방 드셨습니다. 남편은 미식 연구나 하듯 천천히 음미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눈을 우로 올리더니 “오렌지보다 신맛이 좀 강하긴 해도 먹을만하다”고 평판내렸습니다. 이어 내가 맛볼 차례입니다. 한족각을 먹어보는데 그만 그 맛에 경탄을 금할길 없어 젊은 처녀애들처럼 호들갑을 떨며 “와”하고 환성을 올리고말았습니다. 과즙이 담뿍한데다가 신맛과 단맛이 최선의 조화가 이루어져있는 환상의 맛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듯하던 과일 알갱이들이 탱글탱글 구강안을 뛰여다니며 혀끝의 식세포를 자극하는 그 기분 좋은 식감 또한 못난 외모를 쥐꼬리만큼도 닮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나는 과일에도 나름의 심장이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못난귤의 호칭을 위해 잠시 정의의 사자가 되여 불평들을 토해냈습니다. 남편은 그러는 나를 보더니 “또 우리집 상림아주머니가 시작하셨구먼”하는 기색을 “피씩”하며 일어서더니 다시 짐꾸러미의 정리에 달라붙었습니다. 저 역시 인내심 말라붙은 멋대가리 없는 남편들의 태도에 익숙해진 녀자중 한 사람이라 남편의 그러한 태도에 개의치 않고 못난귤의 이름으로 하여 늘어나는 생각을 따라갔습니다.
 
      누가 왜 그런 이름을 달아주었을가가 우선 궁금해졌습니다. 먼저그 과일의 맛을 몰라서 그랬을수도 있겠다고 너그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것도 같았습니다. 그 과일이 과일세계의 식구가 된후 평생 달고있을 이름을 정해주는 사람이 그 맛을 보지도 않고 왈가왈부하다니 어디 될법한 말입니까! 그가 삿갓을 쓴 과농이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농학이든 맛을 보지 않은채 나무에 열려있는 겉모습만 보고 이름을 달았을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일맛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호칭을 더럽게 붙임으로써 팔이 긴자가 살짝 하나씩 따먹고싶어도 못난 이름을 알고는 재수없을가봐 따먹지 못하게 하기 위한 지혜의 예술품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의 사이즈에 맞춰서 생각을 입히다보니 못난귤이 아니라 감귤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상싶은 맛때문에 그 외모에 대한 언짢음을 일시에 물러갔습니다.
 
      이름이 맛과 걸맞게 하는 법은 이 과일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겨울철을 잘 대비하느라 온몸으로 항거하다보니 맛은 안으로 모이고 겉은 험상궂게 일그러진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흉한 몰골은 결과적으로 속맛과 향을 지켜내는데 둘도 없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한셈이 되였지 뭡니까! 못난귤은 12월에서 3월에 이르는 제철 과일이기에 그가 겪어야 하는것은 겉모습이 아름다운 과일들이 죽었다 깨여나도 상상 못할 지옥의 고통이었을겁니다. 그가 몰인정한 동장군앞에 꿇어앉지 않고 영양소 그득한 고유의 제  맛을 지켜내는데 성공했으니 이 또한 천하 가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과일사회에도 계급이 있다면 어떤한 지역에서든 이 못난귤은 분명 현명한 정치를 하는 멋진 통령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겁니다. 자기가 상대한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무서워도 쩔쩔 매지도 않고 추호의 변심도 없이 만분의 의지력으로 차례진 삶을 기껍게 가꾸어가고 있으니 그 성품 또한 일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명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리치도 이에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세상이든 동물천국이든 과일세계든 사는 법도는 다 거기서 거기이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못난귤의 무언에도 사람의 냄새가 물씸 풍깁니다. 그것은 자기를 지키고 자리를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 삶의 지존위치에 있는바 지키는 일이 힘들 때 지켜내는자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발표내역:  <장백산> 2016년 제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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