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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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초여드레날
2023년 01월 29일 11시 49분  조회:171  추천:0  작성자: 남춘애
                      
      초여드레날입니다. 은행에 가서 처리할 일이 생겨서 시내로 나갔습니다. 설 연휴를 마치고 공식적 출근날이 정월 초이레날인 곳도 많아 오늘은 설전의 원상이 복귀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길거리에는 예나 다름없이 오가는 차량들이 답답할 정도로 도로의 곳곳을 누비질하고 있었고 눈에 익숙한 울긋불긋한 인파들 또한 밀려가고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붉은 중국색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붉은 색으로 만들어 놓은 놀이터나 길 양옆나무들에 대롱대롱 빨강초롱, 그리고 중국결(中国结)이 길거리에 서 있는 모든 것들에 매달려서 한창 아침의 바람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관공서들의 정문에도 도로변의 전선대에도 달리는 차량들에도......  행인들의 시야를 단번에 붉은 색으로 길들여 놓기엔 참으로 충분한 중국홍 붉은색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이같은 새해 분위기는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것이 우리 고장의 인지상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들은 우리 삶의 여유로움에 대한 어울리는 자랑같기도 하고 또 그 여유로움을 자랑하는데만 취한 귀여운 망발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랑이든 망발이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행복한 생활의 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두를때는 좀 귀찮았는데 은행에 도착하고 보니 너무도 편했습니다. 은행 로비에는 대기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대 여섯 명의 은행 종업원이 일을 보고 있어 입장하자마자 하고자 하는 일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번 대기표를 뽑아 들고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사이에 인정사정 모르고 쉬임없이 달려가는 아까운 시간에 아무리 바빠도 애간장을 태우면서 숨을 안으로 모으고 체하고 앉아 차분히 기다려야 했던 때를 생각하면 기분은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 하나를 주면 두개를 바란다고 나는 은행 서비스가 내내 이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이 생겼습니다. 최소한 손님을 창구앞에 모셔 놓고 자기네끼리 한담을 주고 받는 일들이 보이지 않아서 살맛이 납니다. 
 
     나는 은행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월급쟁이입니다. 샐러리맨은 정해진 운명의 관계로 세상이 조금만 얼굴색을 달리 해도 조건없이 따라하게 되어 있는 세상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요즘 들어 몇 번씩으나 껑충껑충 뛰어오른 대출금리가 또다 시 인상된다는 소식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걱정담긴 마음을 체면으로 꽉 눌러놓고 은행원이 출력해 주는 확실한 명세표를 받아서 보니 이번 한 해에도 허리띠 또한 졸라매지 않고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홍치마를 입은것처럼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생명으로 지구에서 숨쉬는 이를 무작정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좋은 일이 이렇게 줄을 서기 시작한듯합니다.
 
     나는 날듯한 기분으로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도로에 차량이 많긴 해도 그나마 밀리지 않아 불편없이 주행하는데 갑자기 차체가 진동하는것 같더니 연이어 터지는 ‘대포폭죽소리’가 주위만방을 흔들었습니다. 폭죽의 굉음과 함께 세상에 뛰쳐나온 연기의 뭉치는 뭉게뭉게 하늘을 진회색으로 뒤덮기 시작했고 주행 중인 모든 차량이 겹겹으로 휘싸여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대포를 닮은 폭죽의 터침 소리는 쉬임이 없었습니다.  길바닥은 터지는 아픔으로 순식간에 온 몸이 산산 쪼각으로 찢어진 대형 폭죽들의 시체나부랭이들이 금방 두툼하니 덮혔버렸습니다.
 
     그 폭죽의 ‘연회석’을 뛰쳐나와 매캐한 연기를 헤가르고 간신히 신호등 가까이에까지 달렸습니다. 차 안에는 이미 폭죽 특유의 내음이 진동을 하였습니다. 신호등을 지나 거의 50미터쯤 갔을 때 전방에선 또 열배 백배 더한 ‘대포폭죽’의 ‘쿵, 후훙웅 따당’ 하는 소리가 귀청을 찢었습니다. 주위는 삽시에 다시 연무의 왕국 속으로 승승장구해 들어갔습니다. 폭죽의 잔치에 제물이 된 차량들이 비상등을 깜빡깜빡하며  엉금엉금 간신히 서행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거나 짙은 안개가 뭉쳐내리거나 솜덩이 눈이 펑펑 내릴때에 차량들이 굼뱅이 걸음을 해도 청정한 공기가 있어서 느림이 주는 지겨움을 참아낼 수 있지만, 일월창천 대낮에 겪는 폭죽의 소리고문과 연무 세례 앞에서는 참을성이 무너져내려 할말마저 잊어버렸습니다.  
 
     빨간 폭죽의 함성이 부동산 업체나 은행이나 백화점들에는 새해의 복을 청해오는 소리로만 듣겼으면 좋겠는데 느낌의 진실은 그것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꼬맹이초처럼 생긴 작은 폭죽을 흙속에 세워 놓고 심지에 불을 달아놓고 즐겁게 멀리로 뛰어 도망하다 나면 ‘꽁’하고 터지는 그 꼬맹이 폭죽이 원조였다면, 현재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 원조가 유전자대변형을 이루어서 독을 품은 새 모습으로 태어난 듯합니다. 어렸을때 스릴 넘치는 재미로 ‘꽁’ 호하하 하며 재미로 즐기던 폭죽의 심장은 조금도 닮지 않았습니다. 폭죽소리가 단순하여 따뜻한 자극에 담긴 축복소리로만 알려졌던 그때는 폭죽 터치는데 대해 별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 터치는 폭죽은 둔갑과 만갑을 한번에 하여 폼을 내는 대용물의 하나로 전락이 된듯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믐의 밤에 터치는 폭죽소리는 축복이나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돈태우기의 내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계를 깡그리 허물어버리려 작심을 하고 덮쳐든 악마들의 연회인것 같기도 합니다.
 
     폭죽과 축복은 원래 한식구였지만 축복의 원초적 의미는 이제 폭죽의 집에서 분가를 한듯합니다. 그야말로 새 기분을 만들어 새 한해를 만들어보겠다는 본연의 의미가 억만배 과장이 되어 폭죽소리따라 날아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 한것은 집집마다 폭죽 터치기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일과 소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다가 폭죽의 세례가 끝난 다음 매캐한 냄새와 세상 천지에 나 뒹구는 폭죽의 배설물 또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오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점점 더 극성을 떨고 있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폭죽의 전쟁 마당을 겨우 뚫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집안에도 주변 폭죽들의 침습을 당해 후각이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느낌을 기록하고자 지금 나는 컴앞에 앉았습니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시간이 오전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먼 거리에서 폭죽터지는 소리가 의연히 은은하게 들려옵니다.
 
     폭죽은 경사와 축복과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들의 베일에 쌓여서 천대 만대를 누려갈 기세로 아직도 우리들 삶의 곁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그의 소리와 냄새는 이제 우리 삶에다 우리가 바라지 않는 딴 의미를 남기고 있는듯합니다. 물론 인간이 폭죽을 만들때의 초심은 복을 바라고 평안을 바라고 행운을 기원하는 것이였겠지만 지금은 독을 품은 요사한 물건의 모습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福는 얼핏보기에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실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자신이 령혼세계가 있을겁니다. 그 역시 심장이 있고 예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하는 정도여부를 봐서 축복을 주거나 화를 주거나를 정하는 이성적 존재라 하겠습니다. 연기로 숨을 못 쉬게 하고 소리로 우주를 뒤집는 안하무인의 주인들에게 과연 복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릴수 있을까가 우려됩니다. 우리는 청산과 록수야말로 금산이고 은산임을 잘 압니다. 생태계의 자제력을 파괴되는 일에 기대는 것은 삶의 땅에 하자를 만들어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그의 소리와 연기와 배설물들을 다 쓸어 담아놓고 차분히 개량하여 새 문화의 새날개를 고양해야 할 세월이 문앞까지 도래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운에 달아주는 꼬리표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2023년 1월 29일 (정월 초여드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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