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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물만두가 만났을 때(남영도)
2007년 12월 19일 12시 43분  조회:905  추천:46  작성자: 남영도
김치와 물만두가 만났을 때



남영도




몇해전 한국에 문화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함께 있는 한국분들이 중국에서 온 나와 선배언니를 보고 오늘은 물만두를 빚어먹는것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중국에서 간 우리들 덕분에 오랜만에 중국음식을 먹어보자는것이다. 물론 우리는 쾌히 찬성했고 곧 준비물을 구입하러 시장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숙주나물, 계란 등으로 만두소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중국에서의 습관대로 배추가 좋겠다고 하여 배추 파는데로 갔다. 

한국에서 《배추》하면 당연히 김치재료로 첫손에 꼽히기에 배추값이 폭등할 때에는 김치가 아니라 《금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더니 과연 그 말이 맞는것 같았다. 배추 파는 아줌마가 당연히 김치를 담그려고 배추를 사려는줄 알고 통이 잘 앉은걸로 골라주는데 우리가 물만두를 빚으려 한다고 하자 홀연 쳐다보던 그 의아해하던 눈빛, 《물만두를 빚는데 그 비싼 배추를 써요?》 아마 그런 뜻이였을것이다. 그런 눈빛을 북경에서도 본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가을철이 되면 제일 싼것이 배추다. 한키로에 이십전좌우인데 겨우내내 먹을 과동용인지라 뜨락에, 복도에 가득 쌓여있어 누가 그중 한포기를 슬쩍 채가도 별로 큰 일이 아니다.  8, 9년전의 일인데 어느날 김치를 담글 생각으로 배추 사러 시장에 갔는데 한족아저씨가 물만두를 빚으려고 그러는가고 하며 배추를 골라주기에 김치를 담그려고 그런다고 하자 쳐다보던 그 눈빛, 바로 지금 한국아줌마의 그것과 비슷한 표정이였다.

그 표정을 떠올리자 묘한 감정이 일면서 만두 빚는 일에 어떤 사명감 같은것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날, 물만두는 오전부터 시작하여 장장 6시간만에 다 빚어졌다.
먼저 배추와 고기를 잘게 탕쳐서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밀어서 만두를  빚어냈다. 만두피는 얇게 빨리 미는것이 재간인데 선배언니가 한꺼번에 두장씩 밀면서 잽싸게 해제끼는 놀라운 솜씨에 곁에서 구경하던 한국분들이 혀를 내두르며 찬탄해마지 않았다. 나는 미는데는 재간이 없어 싸는걸 맡았는데 솔직히 수준급이 못되는데도 모두들 곱게 잘 싼다고 칭찬이였다.

우리는 마치 요술사가 요술을 부리듯(?)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익숙한 솜씨로 만두를 빚고 또 빚었다. 어릴 때 고향에서 오붓이 모여앉아 만두 빚을 때에 하던 그대로 재미나는 유머에 노래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만두는 중국어에서 《교자》라고 하는데 묵은 해에서 새 해로 넘어가는 날 자정(交子)에 먹는 음식이라고 해서 그 음을 본따《교자(餃子)》라고 했다는것, 중국에서는《물만두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다(好吃不過餃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만두를 중국의 대표적음식으로 꼽는다는것 등, 여하튼 물만두에 관해 아는것은 전부 털어놓았다. 그러는 자신이 마치 중국의 사절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물만두는 만드는 품에 비해 먹는데 드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게눈감추듯》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정도로 식사가  빠른 음식이다. 

저녁식사때 물론 만두맛이 일품이라는 탄성이 터져나왔음은 더 말할것 없다. 기름끼를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식성을 감안하여 기름을 적게 넣었음에도 느끼하다면서 만두를 김치에 말아서 드시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 민족이 어떠한 음식재료로도 김치를 만들수 있는것처럼 한족들은 어떠한 음식재료로도 다 물만두를 만들수 있다. 만두전문집에 가보면 몇십종의 재료로 된 물만두 메뉴를 보게 되는데 너무도 많아서 일시 어느것을 택했으면 좋을지 몰라 어리벙벙해지기가 일쑤이다.
흔히 부추로 된 물만두를 즐겨먹지만 그것도 이제는 너무 먹어 식상하고 어쩌다가 줄당콩으로 만든 물만두를 먹어보았는데 생각외로 맛있었다. 그리고 회향(茴香)이라는 야채로 만든 물만두는 그 강한 향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일단 맛을 들이면 마약과 같아 그 맛이 자꾸자꾸 생각나기도 한다. 10여년전 우리 집 맞은켠에 북경본토박이 할머니가 살았는데 늘 회향소를 둔 만두를 몇가마씩 쪄놓고 우리더러 맛보라고 하여 더러 맛보기도 했는데 그때는 무슨 맛으로 그런 이상한 향의 야채를 먹을가고 의심이 들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던 음식이였다. 

물만두말이 나오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지인들끼리 북경시 교외에 소풍을 자주 다니는데 그때마다 미나리뜯기는 우리 랑자군들의 일과로 되였다. 미나리를 뜯으면 동북삼성이 고향인 조선족들은 의례히 고추장으로 무침을 만들어먹는줄로 아는데 대도시에서 자란 어느 한 친구는 조선말만 서툰가 했더니 미나리 또한 분별할줄 몰라 미나리와 비슷한 풀을 한아름 뜯어안고 돌아와 우리를 경악케 하더니 다음번에 제대로 뜯어온 미나리를 집에 가져가서는 글쎄 물만두를 빚어먹었다는것이 아닌가. 못말리는 음식습관이였다.

오래동안 북경에서 살면서 김치와 된장을 즐겨 먹는 자신은 늘 한국적이라고 생각해왔다. 20여년전, 임신중에 된장국이 먹고싶었지만 북경에서는 구할수 없어 한밤중에 펑펑 울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디 그뿐인가, 북경아세안게임때 미디어센터에 한 40일간 자원봉사를 나간적이 있는데 식사시간이면 꼭꼭 고추장을 챙겨가지고 식당에 나타나군 하는 나에게 숱한 한족친구들이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내오던 일은 아직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먹었던 중국음식들이 한국에 가서 석달을 지내는 동안에 가끔씩 생각나 나를 괴롭히는데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으며 또 중국음식에 대해 아는것이 그토록 많은 자신을 발견하고서도 적잖이 놀랐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그런 중국음식을 찾을수도, 먹을수도 없다는 현실에 실망하여 민망스러울 정도로 안절부절 못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에서 돌아오던 날, 란주라면이 먹고싶어 짐을 내려놓자바람으로 란주라면집으로 달려갔던 기억, 《아, 이 맛!》하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련발하며 단숨에 라면 한사발을 게눈감추듯 먹어버리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리고 향채(香菜)가 곁들여진 건두부무침은 왜 또 그렇게도 맛있던지.

해마다 구정이 되면 북경 지단공원에서 한 열흘간 묘회(廟會―장터)라는것이 서는데 그때가 되면 중국 동서남북의 특색있는 음식들이 다 등장한다. 지단공원근처에서 살던 10여년간 거의 해마다 가족들과 함께 묘회에 가는것이 구정때 년례행사로 되군 했는데 그때면 의례히 음식거리에서 중국 남북방의 여러가지 음식들을 맛보는것을 잊지 않는다. 

겨울이라 가끔 먼지바람이 불면 음식거리 주위가 지저분하기도 하지만 사람들로 붐비는속에서 이리 밀리우고 저리 밀리우면서 선채로 먹는 그 맛이란 말그대로 별미다. 련자(蓮子)죽, 단단면(덫덫面), 대나무밥, 양고기산적… 그렇게 여러가지 음식을 골고루 맛보다보면 자연히 그런 음식에 길들여지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식성이 좋은 나에게 세상 맛없는 음식이란 별로 없었고 또 그런 음식을 좋아하다가 자연스럽게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좋아하게 되는것은 인지상정이리라.

얼마전 연변에 갔다가 우리 민족의 된장국이며 김치를 스스럼없이 잘 먹으면서 우리 말을 투박한 연변사투리 그대로 잘하는 한족들을 더러 보았는데 그 감회란 한두마디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달랐다… 

오늘도 물만두생각이 간절하다. 오늘은 맛도 맛이지만 독특한 향이 일품인 그 회향만두를 사다 먹을가보다. 거기에 김치까지 곁들여 먹는 그 맛이란…

물만두에 김치를 곁들이면 그 맛이 잘 어우러짐은 먹어본 사람이라야 안다.


2007년 9월



<<연변문학>>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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