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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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수필을 만났을 때 (서영빈)
2008년 06월 20일 20시 56분  조회:889  추천:53  작성자: 남영도
  


                         클래식이 수필을 만났을 때

                            ―-남영도의 수필읽기

                                                              
                                                                      서영빈


 
                                              1


남영도라는 이름을 대할 때 먼저 그녀의 노래를 떠올리게 되는것은 나 혼자만의 경우는 아닐것이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하나의 문학동호회에서 활동하는 관계로 우리는 심심찮게 그녀의 노래실력을 테스트할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선구자>나 <그리운 금강산>과 같은 민족가곡에서부터 <나의 중국>과 같은 중국가곡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소프라노 톤이다. 물론 노래실력은 프로급이다. 그녀의 노래만 들은 사람은 평소 그녀의 소탈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고 평소 그녀의 소탈한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은 그녀의 노래실력에 대뜸 놀라기 일수다.

나는 그녀의 수필을 읽을 때마다 그녀의 음악을 상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수필은 롱담 잘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익살스러운 평소 모습보다는 가곡을 열창할 때의 진지한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녀의 수필에는 진지함과 예술적미감이 배어있다. 그녀의 수필중에 음악과 관련된 수필이 유난히 많은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것이다. 또한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고백이 결코 과장이나 포장이 아니라는것은 그녀의 글을 통해서 증명된다. 그녀는 글을 통해 분명히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있다. 부언하자면 고전적이라는것과 귀족적이라는것은 엄연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글의 제목을 <클래식이 수필을 만났을 때>로 정했다. <김치와 물만두가 만났을 때>라는 제목의 수필이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를 패러디한것처럼 말이다. 발랄하고 귀여운 맥 라이언 주연의 진지한 사랑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는 이미 로맨틱코미디의 고전이 된 작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촌스러운 감도 없지 않지만 은은한 아취(雅趣)만은 여전하다. 엄숙함과 경건함, 거기에 조금은 감상적인 랑만이 함께 어우러진 클래식, 그녀의 수필은 바로 이러한 클래식을 꿈꾸는 집이다.


2


한 작가의 작품을 내용별로 분류하여 그 류형을 나누는것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작가의 작품전체를 관통하는 몇가지 수필시학적 특징을 귀납해보는것이 훨씬 의미있는 작업이 될것이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보면 음악이야기, 아들이야기, 남편이야기, 기행이야기가 주를 이루고있지만 남영도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인것은 그녀가 어떤 소재를 다루든 그 기조에는 서정성을 깔고있다는점이다. 흔히 그녀의 수필을 서정수필로 분류하는 리유도 여기에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수필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서사가 생략된 순수 서정수필은 몇편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의 서정은 서사와 어우러져 공존하거나 아니면 배경음악처럼 서사의 주변을 잔잔히 감돌고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남영도수필의 이러한 서정성을 높이 사고싶다. 이야기성이 철저히 배제된, 서정에서 서정으로 흐르는 수필의 경우 읽을 때는 아름답게 느껴지다가도 읽고나면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자칫 실체가 안겨오지 않는 안개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뭅? 이러한 서정수필은 수필문학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수필독자층의 저변확대라는 과제가 부과되여있음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남영도수필의 다른 한가지 특징은 그녀의 독특한 의미화기법이라고 생각된다. 일부에서는 수필에서도 형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필자는 단연 의미화라는 표현에 무게를 둔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 현상에 자기만의 독특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으로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수필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의미화기법이란 표현이 어울릴것이다. 의미화의 기법은 작가마다 같지 않을수 있는데 남영도의 경우는 클래식으로 대표될수 있는 음악과 대상을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는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창에 카텐을 내리우고>이다.

창에 카텐을 내리고나서 그녀는 혼자가 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생각에 잠긴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 네가지 일은 동격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외로움, 독서, 음악감상, 사색은 따로따로 동떨어진 네개의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4위일체가 되여 그녀를 클래식하게 만드는것이다. 그녀는 카텐을 내리는 행위로 자신과 바깥세상을 잠간 차단시킴으로써 이러한 클래식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것이다. 일반일들에게 있어서 고독과 독서, 사색은 흔히 하나로 통일될수 있는 사안이지만 음악만은 그렇지가 않다. 여기에서 음악에 대한 남영도의 독특한 리해가 드러난다. 그녀에게 있어서 음악은 휴식이나 오락과 이어져있는것이 아니라 내면세계의 가장 치렬한 고민과 맞물려있는것이다. 음악을 듣는 행위가 그녀에게는 이처럼 신성한것이다. 독서나 고독, 사색과 동격을 부여받을수 있는 음악, 가장 외롭고 고민스럽고 괴로울때 만나는 음악, 필자가 그냥 음악이 아니라 굳이 클래식이라고 표현한것은 남영도 특유의 이러한 고전적인 취미를 지칭하기 위한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클래식은 또 언제나 수필과 함께 한다. 수필에 림하는 그녀의 자세가 얼마나 엄숙하고 경건하고 또한 로맨틱한가를 알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수 없다.

문학의 곁에 음악이 흐를때 자칫 소녀적인 감상주의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다행스러운것은 그녀의 이러한 고전적인 취미가 귀족적으로 비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카텐으로 자신과 바깥세상을 철저히 차단시키지 않고 소통의 통로를 마련해놓고있다. 그녀는 방안에서 카텐을 들치고 바깥세상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녀는 내실보다는 포장에 치중하는 가짜의 세계, 탐욕의 세계와 <안>을 지키는 <나>의 세계를 대립시키면서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이러한 시선의 연장선에 서있는 글들이 바로 <잔인한 계절이 남기고 간 자리>와 같은, 이른바 사회수필이라 칭할수 있는 글들이라 하겠다.

남영도수필의 다른 한가지 특징은 글의 흐름이 음악처럼, 물처럼 자연스럽다는데 있다. 그녀의 수필에는 기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파격적인 비유나 론리적인 비약에 편승하지 않고도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있다.  <김치와 물만두가 만났을 때>가 좋은 보기로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김치와 중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물만두, 이 두 음식의 만남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것일가? 작가는 20년 경력의 주부답게 중한 두나라의 대표적인 음식문화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하고있다. 한국에 가서야 본인이 중국음식에 많이 길들여져있었음을 느끼게 되고 또 연변에 가서 중국인들이 한국음식을 잘 먹고 연변말을 잘 하는것을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그냥 음식이야기로 일관하고있다. 그러면서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만두에 김치를 곁들이면 그 맛이 더 잘 어우러짐은 먹어본 사람이라야 안다"고 담담하게 마무리하고있다. 대체적으로 흔히 우리가 주부수필이라고 이름하는 형식의 틀에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단정할수 있을 법한 글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글에서 많은 련상을 하게 된다. 이 수필이 과연 음식이야기일뿐일가? 만두와 김치가 만나서 잘 어울린다면 한국과 중국이 만나면 어떨가? 혹 김치만두 같은것은 없을지? 우리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일환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면 조선족은 혹 김치만두 같은 존재는 아닐지? 이런 시각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저자의 마지막 한마디는 평범한 감회가 아닐수도 있다. 조선족보다 조선족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저자는 굳이 작품속에 어떤 메시지를 강조하려고 애쓴 흔적없이 자연스럽게 글을 마무리하고있지만 독자들에게 남겨주는 여운은 다양하고 강렬하다. 교훈적이지도 않고 설교적이지도 않은 이 평범한 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는것이다.


3


남영도만큼 수필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나는 아직 국내 조선족문단에서 보지 못했다. 흔히 우리 수필작품만을 읽고 수필을 쓰는 대부분의 수필작가들과는 달리 남영도는 한국의 수필작품을 정기적으로 대량 열독하였을뿐 아니라 수필리론서적도 누구보다 많이 읽었다. 수필에 대한 그녀의 리해와 안목은 수필이라는 장르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진지한 수학과정을 거쳐 형성된것으로서 안정적인 기반우에 세워진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의 수필창작은 량적으로 다산은 아니지만 태작이 거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의 수필작품들을 살펴보면 한국수필의 영향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에 대한 의미부여, 이미지와 정서를 강조하는 작품 분위기, 잘 다듬어진 문장, 이런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오늘날 한국수필의 특징들이라 하겠다. 

하지만 남영도수필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다. 수필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수필관이 그만큼 안정적으로 형성되었다는것을 뜻하며 그것은 또한 그녀의 창작이 기성수필리론의 틀우에서 이루어졌다는것을 말한다. 그녀가 <나의 고백>에서 밝히고 있는것처럼 한국수필과의 만남에서 그녀는 거의 첫눈에 반할 정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다. 이것은 그녀가 한국수필의 한계까지도 그대로 답습할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있다.

오늘날의 한국수필계는 스스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한국 서정수필의 아버지라고 할수 있는 피천득선생의 타계를 계기로 한국수필계에 끼친 선생의 영향을 놓고 최근 많은 설전이 벌어지고있다. 전범은 필요하지만 우상이 되고나면 자유를 구속하는 있는 틀로 기능할수도 있다는것을 보여준 사건이라 하겠다.

틀이라는것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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