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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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이기(수필)
2008년 07월 01일 21시 33분  조회:746  추천:51  작성자: 남영도
 


귀기울이기



남 영 도


어느날 퇴근길에 CD가게앞을 지나다가 "어?" 싶어지는 음악에 걸음을 멈추고 저도모르게 귀를 강구었다. 다름아닌 아들녀석이 좋아하는 유명가수 우․천(羽․泉)의 《심호흡》이라는 노래였다. 녀석이 매번 머리를 저어가며 들을때는 저다지도 신날가싶고 대체로 수긍이 안가는 그런 선률이였는데 오늘 밖에서 우연히 들으니 그렇게 정답고 그렇게 감미로울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무료로 얻어들은 그닥잖은(?) 음악이 어느새 나를 매료시킨것이였다.

이 아빠트로 이사오기전인 지난해까지만 해도 집이 좁은 관계로 녀석과 나는 대체로 한방에서 지냈다. 내가 한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면 녀석은 컴퓨터게임을 놀지 않으면 CD를 틀고 음악을 듣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그 음악이라는것이 도대체 내가 즐기는 클래식과 영 딴판으로 선률이 빠르지 않으면 소음처럼 조잡한 시원치않은것이여서 거부감이 든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그래서 가끔 볼륨을 낮추라고 호통을 치기라도 하면 녀석은 무슨 못할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것처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분고분 내말에 순응해주었다.

새 아빠트로 이사오자 녀석에게도 방 한칸이 차례졌다. 자기만의 자유공간이 생겼다고 기뻐날뛰던 녀석은 이제 누구 눈치 볼것 있느냐는듯 볼륨을 한껏 높이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끽한다는데 더는 엄마의 권리로 왈가왈부하면서 간섭한다는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원치않는 음악을 무료로 듣기를 밥먹듯, 그런데 그렇게 흘려들은 음악에 내가 어느새 정이 들어 이렇게 감동까지 하다니?!

이제 고?1학년, 16살이라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벌써 185센치메터의 신장을 자랑하는 녀석에게 엄마인 내가 말이라도 걸려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쳐다보아야 한다. 아들의 눈에 비친 나는 이제 더는 위엄있는 가장이 아니라는것은 아들의 말투에서도 얼마든지 느낄수 있다. 하지만 때로

“엄만 너무 보수적이야!”

“또 그 얘기!”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정말이지 그냥 넘어갈수가 없다. 스스로를 애들의 심리를 잘 아는, 아직까지는 녀석의 구미를 맞출수 있는 괜찮은 엄마로 자부해왔는데… 그때마다 어쩔수 없이 자신의 나이를 실감하게 되고 세월의 무쌍함을 느끼게 된다.

말끝마다 “정말 쿨해!”,“이젠 N번도 더 말했는데…”라는 말로 나를 말문막히게 하는 녀석앞에서 자존심따위로 버티겠다는것은 이제 무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인정하기는 싫지만 세대차이는 어쩔수 없는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들녀석의 어릴적에 녀석에게 피아노공부 시키면서 모자간이 클래식음악에 공감하고 동요도 같이 불렀던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밀려든다.… 그런데 엄마따라 동요를 부르던 그 홍안의 소년은 어디로 가고 랩과 힙합풍의 음악에 열광하는 구척장신의 청년이 내 눈앞에 서있는것인가?! 녀석이 좋아하는 음악에 별로 공감할수 없듯이 모자간의 생각도 서서히 엇갈리면서 갈등이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그런 녀석과 나사이에 요지음 음악을 두고 공감대가 생기는 일이 더러 생겼으니 과시 나쁜 일은 아니렷다.

요지음 TV를 통해 젊은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아리랑그룹의 노래가 바로 그러하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전통과 현대를 아주 잘 결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원래의 기본선률을 보유하면서도 현대적음감에 맞게 편곡을 하였는데 녀석과 내가 흥미있게 감상하는 음악중의 하나이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음악이기도 한 《아리랑》은 많은 편곡이 있고 여러가지 창법이 있지만 아리랑그룹의 경우 랩과 힙합풍의 댄스곡을 곁들이고 미묘한 화음으로 새로운 앙상블을 만든 시도가 무척 돋보인다. 거기다가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화려한 춤까지 동반하여 그 인기는 말그대로 하늘을 치솟는다.

한국에서의 공연실황을 보아도 관객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조선족 하면 한복을 곱게 입고 전통민요나 부르는것쯤으로 알고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멤버중의 김진우가 한 말처럼 “새시대의 청년”답게 신선하면서도 돋보이는 가창력으로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통념을 깼다는 점에서도 높이 사줄만한 공연이 아니였나싶다. 게시판에 쏟아져나온 네티즌들의 한결같은 찬사, 열광, 환호를 보면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은 이렇게 각이한 취향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신비를 갖고있는가부다. 전통적인것은 고루하다고 왼고개를 꼬는 요지음 신세대들이 수용할수 있도록 현대적인것을 곁들임으로써 신세대들이 즐기는 형식속에 전통적인것을 심어주는 노력을 시도해봄도 좋으리라.

여기서 잠간 귀기울인다는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적성에 맞고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에만 귀기울이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원치않는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으며 많은 경우 주관적인 가치판단으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소리, 좋은 음악을 들을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만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원치않는 음악에 귀기울인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전통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는 더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음악은 오직 듣는 자만을 위해서 존재할뿐이다.” 드보르작의 이 말은 음악감상에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귀기울여 듣는것이 중요하다는 말로도 되겠다. 다시 말하면 수용의 자세를 가지고 귀기울이다보면 부동한 곳에서 들려오는 부동한 소리를 들을수 있고 그렇게 듣다보면 예상외로 기상천외하고 신선하고 이색적것인들을 발견할수 있으며 따라서 음악이외의 많은것들을 수확할수 있게 된다.

요지음을 일컬어 퓨전시대라고도 한다. 음악뿐아닌 모든 분야에서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의 어울림이 서서히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양상을 낳고 있는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진선미를 향한 인간의 다양한 시도와 추구는 계속될것이고 그런 시도와 추구가 있음으로 하여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현란해지고 아름다워지는게 아닐가는 생각을 해본다.

자의든 타의든 녀석과 다양한 음악을 공유하였던 나날들이 결코 무의미한 나날이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녀석이 좋아하는 음악에서는 클래식에서는 느낄수 없었던 신선하고 발랄한 미를 발견할수 있어 좋았고 더불어 전통과 현대의 중간쯤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서있는 자기를 발견할수 있어 좋았다. 그보다도 녀석과 마음?터놓고 음악이며 인생이며 미래며를 담론할수 있었다는것이 더 좋았던것같다.  

《엽기적인 그녀》의 주제가며 god의 노래가 슬슬 좋아지기 시작하는 요지음이다. 그런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신기하다는듯 머리를 갸웃하고 바라보는 녀석의 눈이 반가움으로 반짝 빛난다. 이러다가 정말 쿨한 엄마로 돼가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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