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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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클래식
2008년 12월 11일 22시 27분  조회:1011  추천:35  작성자: 남영도
 

겨울밤의 클래식

남영도



     겨울밤, 밖에서는 눈이 내립니다. 회색빛의 콩크리트숲을 하얗게 덮으며 소복소복 내려쌓입니다.

방안에는 클래식이 흐릅니다. 겨울밤의 고요와 정적을 더해주며 조용히 흐릅니다…

밖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피아노며 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클래식음악의 향연에 기대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설경을 흔상할수 있는 눈과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수 있는 귀를 가지고있다는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따름입니다.

문득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집니다. 이 세상에 온지 마흔해도 넘었는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도 경이롭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건 뭘가고 생각해봅니다. 저기 내리는 눈우에 당당하게 발자국을 남길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살아오기나 한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어봅니다. 이제 받기만 했던 사랑을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때가 된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건 아직도 사랑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때문이 아닐가는 생각을 합니다.

눈이 내리는 밤은 사람을 침잠하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듯합니다. 눈이 내려서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밤, 눈이 내려서 풍요로운 세계,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어 가끔씩 산다는것에 회의를 느끼며 가슴 시려하다가도 눈이 내리는 날만큼은 순수해지고싶고 겸허해지고싶고 너그러워지고싶은게 요지음의 심경이 아닌가싶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였느냐?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시의 한구절입니다.

저도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게 하는 이 시구, 처음 대했을 때는 크게 전률하기도 했습니다만 요지음과 같이 삭막한 날에는 다시금 생각나는 시구입니다.  

눈감으면 미워했던 사람, 원망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용서할수 없는 이를 용서하는것이 진정한 용서라고 했던가요?! 그 사람들 어쩌다가 첫단추를 잘못 끼워 여기까지 온건 아닌지, 혹시 나와 달리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건 아닌지?!…

한번 생각을 바꾸어보기도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했던가요?! 그러고보니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의 처지가 이해되기도 하고 좀 더 인간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고픈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모든걸 다 놓아주고 모든걸 다 벗어놓고 내내 사랑하면서 살고싶습니다.

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주위의 얼굴들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이 세상에 온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버릴수가 없습니다. 매번 내 사랑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의 미소를 짓는 그들을 볼 때면 내가 이 세상에 온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지 않을수 없습니다.

요지음과 같이 삭막해보이는 세상에도 자원봉사로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는 이들이 늘어나고있다는건 좋은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한국의 연예인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둘째아이를 입양하였다는 기사가 추운 겨울날 훈훈한 감동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어찌구러 부모들의 버림을 받은 작은 생명, 그 작은 생명에게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부여해준 그 아량이 참으로 멋있고 아름답습니다. 말은 쉬워도 정작 실천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선행을 저지른(?) 그들이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훨씬 돋보이기도 합니다. “큰 애는 배 아파서 난 자식이고 둘째 애는 가슴이 아파서 난 자식”이라는 말이 너무나 인상 깊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사랑의 실천을 해가는 사람들로 하여 더 살맛나지 않을가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행복이란 무엇일가고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당신은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쉽게 예쓰라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기의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때문일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기때문이라고 합니다. 눈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사실 열손가락으로도 헤아릴수 없는 행복속에 쌓여있으면서도 행복을 못 느끼면서 살아가고있는건 아닌지요? 불행을 헤아리는데만 손가락을 사용하다보니 그 많은 행복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요? 끊임없는 소유욕으로 가진다는것에 집착하기때문에 늘 욕구불만으로 불행하다고 느껴지는건 아닌지요?

한해전 음력설즈음의 어느 겨울날, 몇년간 학비지원을 하던 창평의 고중생을 집으로 데려온적이 있습니다. 요지음 대도시의 사내애들한테는 전혀 낯설은 솜바지를 입고있었는데 혼솔기사이로 솜이 밀밀 나오고 여기저기 깁고  또 기운 그 솜바지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역시 그런 장면은 처음인지라 눈이 휘둥그래진 아들애와 함께  당장 그애를 데리고 나가서 속내의며 스웨터며를 사주었을 때 그 순박한 얼굴에 피여나던 송구스러움과 감사의 눈빛, 그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그리고 우리 가정의 조그마한 경제적도움으로 그 아이가 고중단계의 공부를 원만히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나도록 기뻤습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무언가로 늘 고민을 하고 안달을 하는 요지음의 나에게 그 애의 눈빛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이미 가진것에 만족해하면서 작은것일지라도 주고 베푸는 일에 마음을 쓴다면 늘 욕구불만으로 심기불편해있기보다 훨씬 더 행복하지 않을가고 생각해봅니다.

주는만큼 늘어나는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작은 사랑, 작은 실천으로 자기보다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하나, 둘 베풀어가느라면 이 세상은 사람, 사람들의 사랑으로 둥글어지고 행복으로 차고 넘치지 않을가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그만 산길에 흰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고싶소

       …

    

령혼을 순수에로 부르는 소프라노의 깊고 웅글진 소리가 조용히 방안에 울립니다. 그 음악소리속에서 겨울밤은 조용히 깊어갑니다…


(2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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