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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시대 간판아리아
◎박문희
(전호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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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잉래잉영”?
이런 간판어도 있나? 그밑에“好孕来孕婴”이란 한자가 병기돼있으니 망정이지 조선어글씨만 보고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수 없다. 이처럼 연변의 간판은 조선어표기야 틀리든 말든 병기된 한자표기덕에 그 가게가 무슨 가겐지 알아보지 못해 안달 떨어야 하는 고충은 없다.
언론에서 시때없이 암만 떠들어도 흐르는 강물에 칼질하는 격이 되고마는것도 아마 이런 상황때문이리라. 어디선가“한어가 다 알아서 해줄테니까 조선어는 저리 가라”는 괴음이 지동치듯 울려오는것 같다. 소름이 끼친다.
조선어와 한어를 반드시 병용하게 돼있는 연변의 간판문화. 있는듯 없는듯 몽롱한“대등번역론리”......
간판번역은 소설번역과 달라서 쉽다면 너무 쉽고 어렵다면 번역이 불가능할 정도다. 간판번역에서“대등번역론리”가 법적으로 채택된 일은 없다.“好孕来孕婴”은 그 업소의 뜻을 고객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어의 특수한 표달방식에 구애를 받음이 없이 순 조선말로 된 자체의 표달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 한어 몇글자에서 탈피하지 못한 결과 “호잉래잉영”이란 같잖은 직역으로 얼렁뚱땅 뭉때버린것이다.
이와 같은 례가 한두가지도 아니고 기수부지다. 때문에 이른바의“대등번역론리”를 깨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현재 한어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고객을 사로잡을수있는 그런 조선말간판어를 창출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와있다.
“好孕来孕婴”을 그냥 물고늘어지자. “호잉래잉영”이란 직역이 별로라면 대관절 뭐라면 좋을가? “好孕来”는 “孕婴”의 수식어에 불과하니 내버려두고 “孕婴”은 임부와 영아를 뜻하니 간판명을 “xxx 임부와 영아”로 해볼가? 아니 잠간! 연길시내에 걸린 孕婴 관련 간판은 한두개가 아니라 십수개도 넘는다. 그런것을 모조리 “xxx임부영아”라고 해달수는 없다. 그럼“마미와 베이비”? 아니면 "임신부와 영아" 혹은“엄마와 아기”? 어느것을 취하든 “호잉래잉영”에 뒤질일은 없어보인다.
연변은 민족자치주지만 필경은 중국의 한 개 지역이므로 정식 간판등록은 한어로 하게 돼있다. 조선말로 가게이름을 지었다 해도 한역을 해서 신청해야 등록이 가능하다. “덕분”에 민족특색이 자못 짙은 간판어가 한무더기 생겨났다.
“놀러와bar/闹乐哇吧”•“나들이김밥집/拿得利紫菜饭”•“마시자/玛喜扎”•“푸름이독서사/璞润读书社”•“하나로마트/哈那露玛特”•“피자나라/比萨拿啦”•“데이트맥주옥/贴伊特啤酒屋”•“부뚜막/富多满”......
모두가 조선말을 한어로 번역해서 간판에 병기한 것, 그런 번역어가 연변 간판문화의 일대경관을 이루고있다. “누나국밥집”의 경우 “姐姐汤饭屋”이라 해도 안될것 없다. 그럼에도 기어이“努拿汤饭屋”라 음역해 올린것은 특정의 민족지역에서“努拿”란 언어 자체가 가지는 특수한 매력때문일 것이다.
“努拿汤饭屋”처럼 조선어를 한어로 음역하는 일은 허다한데 반해 한어에 대한 조선말음역의 활용이 실제수요를 따르지 못하고있다는 사실은 심사숙고해야 할바다. 한어로 된 간판어에서“鑫(흠)”자는“鑫欣•鑫鑫•鑫丰•鑫红•宏鑫”등으로 아주 흔하게 쓰이는 글이고 그 발음도 쉽고 편하다. 그런데“한자어음독법”에 의한 조선어발음은 “흠흔•흠흠•흠풍•흠홍•굉흠”등으로 굉장히 힘들고 말째다. 간판에 “흠홍신발/鑫红鞋店” 이라고 씌여있지만 “흠홍”두 글자는 극상해야 눈요기나 하는데 그칠뿐 입에 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눙신발”이라고 발음되는대로 적으면 입에 담을 것이다.
이런 일을 가지고 조선족의 번역수준을 론하는건 무리다.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해 올리는 이가 누군가? 대부분 한족이 아닌 조선족이 아닌가. 조, 한 “쌍어”에 막힘이 없는 조선족은 실상 두가지 번역의 대부분작업을 다 떠메고있다.
때문에 새로 등록하는 타민족가게들에서는 조선족 하면 모두가 번역의 달인인줄 알고 후한 번역료를 내걸고 점포의 작명에 이름번역까지 아무에게나 청탁을 해오는데 청을 받은 사람은 호기있게“즉시번역”을 해 주지만 가끔 본의 아니게 번역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때는 시중에 새로 개발돼나왔다는 이른바의 “번역어플(软件)”을 맹신한 나머지 조선어를 모르는 일부에서 그런 “어플”로 번역한 점포이름을 간판에 새겨올리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져 사람들을 웃긴 일도 생겼었다. 그런데 근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준것 같다. 봄에 피는 꽃도 한철이라더니 “‘어플’맹신”풍조 역시 “한철”을 넘기기 어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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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이름을 잘 달면 수익성을 높일수 있다고들 한다. 그래선지 연길의 거리에 나서서 일부의 잘된 간판들을 보면 어쩐지 좋아지는 게 나의 기분이다.
“진달래마을아파트분양센터/金达莱小区售楼处”•“아기사랑/爱婴宝孕婴”•“뉴타운포장마차/新城布帐马车” • “사랑의 카페/爱心咖啡/Coffee in love” • “별이 빛나는 밤/星夜” • “양춘가절/艶阳天”...이런 간판들은 그속에서 좋은 어감이나 말맛을 느낄수 있어 좋다.
간판이라면 어감이 좋아야 한다. 연변의 간판에는 “鸭脖”이 “오리목” 지어는 “압발”로 올려지기 일쑤인데 어감상 별로 신통치가 않다. “압발”은 “앞발”과 발음이 같아 거부감부터 앞서고 “오리목”은 “가늘고 길게 켠 목재”의 의미라서 싫다. 그렇다고 “오리모가지”는 더욱 아니다. “猪头”를 “돼지머리”라 높여 쓰면서 오리한테는 “모가지”라고 낮추어야 할 하등의 리유가 없기때문이다. “오리목살전문”이라고 하든지 “오리목뼈구이” 혹은 “오리목덜미료리”로 하든지 하면 어감도 개선되고 말맛도 좀 살아나지 않을가?
다른 점포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해 “나만의 간판”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연길에 죽가게가 자그만치 수십집이 있다. 그런데 가게이름들이 별로 신통치 않다. “죽집”이나 “팥죽” 또 간혹 “죽이야기”와 같은 색다른 이름도 있긴 하지만 어감상 따분해보이고 말맛같은걸 느낄수 없는 경우가 많다.
“죽락떡집/粥乐馅饼”이란 간판을 봐도 그렇다. 한어쪽은 그런대로 말맛이 있어보이지만 조선어쪽은 말맛의 냄새조차 없다. 한어를 보면 죽과 떡이 두루 다 주인공인줄 알겠는데 조선어를 보면 떡만 주인공이다. 이름을 “맛죽과호떡전문”이라 달았어도 “죽락떡집” 처럼은 싱겁지 않았을 것이다.
기실 경우에 따라 죽가게 이름은 훨씬 더 다양할수 있다. “죽마을/맛죽고을/맛갈죽/ 맛갈참죽/미음전문/새우죽/소고기죽/죽전문점/죽배달전문점” 등등...
언젠가 한국의 어느 미식거리에서 “맛이 죽여줍니다”라는 명칭의 죽가게를 본적이 있다. 일곱글자에서 “죽 ”자 하나만 크고 유표하게 쓰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글씨로 썼는데 발상이 기발한 그 간판이 나한테는 식상한 내용의 간판과 차별화된 신선함을 안겨주는 충격적인 것이여서 지금까지 잊지를 못하고있다. 듣자니 “뒤죽박죽”이란 죽가게도 있다고 한다.
연길시 서시장 근처의 한 침실용품가게에 “따스안/达丝安”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따스한 느낌”이 든건 나만의 감각이였을가? “따스안”의 “모본”이 “따스한”임은 회의의 여지도 없고 “达丝安” 또한 당연히 “따스안”의 음역이다. “따스안”명칭 작명자의 고명한 점은 “한”을 “안”으로 바꾼데 있다. 별 볼일 없던 일개 규정어를 고유명사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따스안”이란 품위있고 근사한 침실용품 가게이름을 탄생시켰으니 말이다. 이와 비슷한 간판작명의 례로 “조은맥주옥/卓恩啤酒屋”, “몬니저맥주옥/勿忘啤酒屋” 등을 더 들수 있다.
이런 조선말간판의 이름이 좋다 함은 읽기에 편하고 거부감이 안들고 그속에 점포의 목표를 겨냥한 묘한 뉘앙스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 속에 깔린 티끌같은 묘한 뉘앙스와 지극히 미세한 어감의 차별이 아주 다정다감하게 안겨오는 좋은 간판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조금 잘됐다는 느낌이 드는 간판 몇가지만 더 들어보자.
“삼일에 살 까기/伊姿美体瘦身”--이 간판을 보면 조, 한 두가지 문자의 글자 수는 같으나 내용은 판이하다. 사흘에 효과를 본다니 살까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심히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구들박사/电热板”--“전열판”이 아닌 “구들박사”!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박사의 매력, 얼마나 좋은가.
“웰빙!멸치국수/大家快餐”--역시 제마끔인 조,한 명칭. 만약 “1 대 1의 대등번역”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가? “대가속성음식점”? “따쟈스낵”? 그래도 “웰빙!멸치국수”가 월등히 우수해보인다. 연변이란 특정된 민족지역에서 “대가속성음식점/大家快餐” 하면 따분한 “동어반복”에 불과하겠지만 “웰빙!멸치국수/大家快餐” 하면 적어도 정보량이 배이상 증대(웰빙•멸치•국수)되는데다 생동성에 차별화된 독특미가 있다.
상기 실례는 “별도명명법”의 가능성 지어 필요성을 보여주고있다. 말하자면 공상부문에 등록된 “한어간판어”에 구애됨이 없이 점포의 자체수요에 따라 조선어간판명을 별도로 만들어올림을 허용하자는 것, 아니 허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대대적으로 제창하자는 것이다.
이를 관념적, 실천적으로 끈질기고 확실하게 밀어부친다면 연변 간판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유발할수도 있겠다는것, 그러면 종당에 조선말같지 않은 조선어간판어를 모든 간판에서 몰아낼수도 있겠다는것이다.
[끝]
《문화시대》2014년 제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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