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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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이 엉킨 로인세계
2015년 03월 10일 13시 37분  조회:5606  추천:3  작성자: 박문희

 

 

희로애락이 엉킨 로인세계 

 

 

사회의 중심에서 사업과 삶의 주력으로 살고있는 청장년들의 세계도 다양하고 다채롭지만 사회의 변두리에 밀려나 비주력의 삶을 살고있는 로인세계 역시 다양하고 다채롭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인 그들의 삶이 사회의 보다 깊은 주의와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희로애락이 엉켜있는 로인세계를 초보적이나마 들여다보기로 한다.

                                                                    ---편집자

 

리영(60세):

 

지금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해서 다섯 식솔이 어울려 살아갑니다. 나이 이젠 예순이라 로년기에 들어섰어요. 젊을 적 시집가서 6~7년을 재미있게 살아봤어요. 그러나 자식을 낳고나니 살림살이도 복잡해지더군요. 출근을 해야지, 아이를 키워야지. 그래도 덩덩 철이 없이 그게 재민가구 살아왔어요.

 

철을 알고 나니 남편이 시름시름 앓다가 86년도에 세상 떴습니다. 중년에 탑이 무너지니 앞이 캄캄해납디다. 자식 다섯을 두고 떠나간 남편이 야속하구 살길도 막막해 몇 번 통곡도 쳐보고 했어요. 안도 송강서 살다가 밥벌이 하려고 딸 둘 데리고 명월진으루 나왔지요. 제집도 없이 8년이나 떠돌이 셋집살이를 하면서 헤맸어요.

 

이루다 말 못할 고충을 겪으며 아이들을 성가시키고, 맏딸도 날 따라다니며 고생 많이 했지요. 나그네 없이 혼자 살자니 별 생각 다 듭디다. 물가가 자꾸 올리뛰는  통에 어디 셋집살이를 할수 있어야죠? 하는 수없이 아들 집에 들어갔지요. 그러니 다른 방향으루 심리고통이 생겨납디다. 신경이 약해 잠두 잘 안와요.

 

가운데 풍 하나 치고 사는 쬐꼬만 살림이라 한숨을 지어도 기침이 나와도, 오줌이 마려워도 밤 잘 때 조심성 없을 수 있나요? 시집살이죠. 아들도 맘 고와 역시 시집살이고, 애 에미의 눈치를 봐야 하니깐. 젊은 세월 꿈 같이 지나가고 남들 부부간이 몹시 부러워요.

 

옛날에는 부모자식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기에 로인들은 밥 안 짓고 빨래 안하고도 호령 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지금 젊은이들은 부모공대사상이 아주 적어졌거든요. 그래 로인들은 하루도 맘 편히 살려고 로인활동실을 찾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지는 석양 늘그막에 맘편히 살 살아보자 마음 먹구 곁 동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활동실로 춤 추러도 다니면서 하루하루 지우고 있어요. 밤 열시까지 춤추고 돌아오면 배가 고프지만 아들집이니 떨거덕거리며 맘대로 들춰먹고 끓여먹을 수도 없고, 시걱 때도 음식 습관들이 서로 다르니 입에 잘 맞지 않지만 어디 타발하게 됐나요?

 

원숙자(61세):

 

그러길래 난 자식과 갈라져 사는 게 좋다는 주장입니다. 왜? 서로 자유롭기 위해서죠. 자식들은 명일이면 부모생각 하지만 그저 그때뿐이죠. 평소에는 다 자기 일에 바삐 보내다 보니 부모들이란 건 있으나 마나한 존재죠.

 

옛날에는 부모자식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기에 로인들은 밥 안 짓고 빨래 안하고도 호령 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지금 젊은이들은 부모공대사상이 아주 적어졌거든요. 그래 노인들은 하루도 맘 편히 살려고 노인활동실을 찾습니다. 내나 령감이나 아이 적부터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어요. 내 21살에 시집가서 30여년 서로 아끼고 고생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인젠 살만하니까 5년 전 령감이 병으루 돌아갔어요.

 

령감 항미원조 나가 고생하구 돌아와 공안사업을 37년 하면서 내내 바삐 보냈어요. 교통대 일을 보면서 한밤중에 술 마시고 돌아오면 나하구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지만 난 공장일 보구 피곤해서 돌아눕기 마련이였습니다. 우리 령감 한뉠 복 못 누려 보셨지요.

 

아이 넷을 나아 중도에 하나 죽이고 둘이서 아끼고 모아 아이들을 출세시켰는데 그러고 나니 령감이 병 걸려 세상 떴지 뭡니까. 령감은 세상 뜰 때 병원에서 내손을 잡고 “노친과 같이 유람 한번 못 다닌 게 죄송하고 원통하고 유감스럽다”고 울면서 말합디다. 리직휴양해서 반년도 안 돼 사망한 게 아깝기 그지없어요.

 

지금 월급만 받아서는 살기가 안돼요. 후에 장사를 좀해서 늘그막에 쓸 돈을 벌어놓으니 등아바이 노선이 정말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내같은 신세도 몇 만원 저금해 놓구 살 수 있으니, 자다가도 내 신세 좋게 된게 감개무량해서 잠 못들 때 많아요. 그래도 그냥 사회무도 활동엔 참가 안했어요

 

옛날 생각 오늘 생각 끝없이 하면서 집에서 홀로 울 때가 많았지만 사회활동생각 못했어요. 그러다가 재작년 아들집에 바람쐬러 갔다가 산에 올라가보니 농민들이 농사짓는 게 보입디다. 그때 무슨 생각 했겟어요? 애초에 농민령감을  얻었더면 매일매일 함께 농사를 짓구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나는 사회사업에 바삐 보내는 시내간부를 얻어 함께 있는 시간도 없이 일생을 외롭게 보냈지 뭡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에서 혼자 실컷 울었어요. 이런 걸 누구와 말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혼자 살다보니 록음기나 방송이나 텔레비가 동무 됩데다. 그러다가 어느 동무가 꼬시는 바람에 예라 무도장에나 다녀보자. 이런 생각을 갖게 됐어요.

 

원래는 무도장 다니는 사람 은 다 작풍이 나쁜가 했어요. 한번은 동무와 함께 무도장엘 가보니 이상하게도 그 무도곡에 심정이 유쾌해지더군요. 60살 먹도록 무도장 못 와봤는데 듣기와는 달리 무도 추는 사람들이 다 작풍이 나쁜 게 아닙디다. 처음 아바이들 손을 쥐니 막 몸이 떨리지 않겠어요? 

 

원래는 무도장 다니는 사람은 다 작풍이 나쁜가 했어요. 한번은 동무와 함께 무도장엘 가보니 이상하게도 그 무도곡에 심정이 유쾌해지더군요. 60살 먹도록 무도장 못 와봤는데 듣기와는 달리 무도 추는 사람들이 다 작풍이 나쁜 게 아닙디다. 처음 아바이들 손을 쥐니 막 몸이 떨리지 않겠어요?

 

그 아바이 하는 말이“아, 이 동무 떨긴 왜 이리 떠우?”그래 내 “처음 손을 쥐여보니 그런가 봅꾸마, 많이 량해합소.”했습니다. 춤을 자주 추니 지금은 안 떨립니다. 작년부터 이런 활동에 참가하니 자연 몸을 거두게 되고 옷도 사 입고 싶어요. 누가“어째 아매는 점점 젊어짐둥?”하길래 “무도장에 댕겨 그렇다이”하구 대답했지요.

 

그전엔 “로년에 내 팔자 기구하다. 자식들두 등한하다”는 생각에 옛날 생각 자꾸 떠올리며 밤잠 설치는 일이 많았는데 집울타리 떠나 무도장 다니면서부터 잠 잘 자고 마음 상 해방 받은 느낌이예요. 매일 안 빼 놓구 다니는데 하루라도 안가면 허전감이 들 정도죠. 내 기분이 늘 좋아있으니 며느리도 좋아하는 눈칩디다.

 

“어머니 어떻게 무도장 선택하셨습니까?”하길래 “친구들이 가자구 해서”했더니 “참 잘 선택하셨습니다. 늘 아바이 생각에 울고 하시더니 정말 잘 선택하셨어요.”하더군요. 령감이 무도장 하번 못 다니고 돌아간 게 불쌍하기 짝이 없어요. 지금 노인들의 생활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는게 재미있으니 죽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저 오래 살구 싶어요.

 

오정옥(62세):

 

사회가 아무리 좋아도 내 좋아야 좋겠는데 사는게 어려우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들때 있습니다. 자식 손구들을 키우느라니 우리 좋은 세월 다 갔어요. 늦은 거죠.

 

허금선(59세):

 

나는 농촌처녀로 신봉쟁이 남편한테 시집갔는데 그땐 그게 어찌도 자랑스럽던지 남편을 도끼 한번 안 들리고 몸 보양도 열심히 시켰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몸도 나고 젖통도 여자 것 만큼이나 컸지요. 그렇게 생때같던 남편이 남매 셋을 남겨놓고 갑자기 급병으로 사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스물일곱에 남편 여의니 남편생각보다도 4남매 키울 걱정 더 커 그 부담에 눈물도 안 나데요. 너와 나 만들어놓은 새끼를 다 내버려두고 왜 혼자 갔어? 고생이 막심하니 설음만 북받치겠지요. 내가 울면 아이들이 따라 울가 봐 내놓고 울지도 못하구. 아무커나 그러다가 도시에 들어왔구 쏘련 가 1년 벌어 집도 한 채 사놨구요. 아이들두 성가시켜놨어요.

 

지금은 자식들 덕에 사는데 늘 아이들한테서 받아쓰는 게 그냥 안쓰러워요. 내가 자식들에게 줄때면 통쾌하지만 자식들이 생활이 어려우면서도 나를 섬기니 고맙긴 해도 마음이 내내 무겁습니다. 한국 가서 내 힘으로 벌어다가라도 썼으면 유쾌하겠는데 지금 그게 안 돼요.

 

난 소갈비 먹길 좋아하는데 아들은 직방 녀편네하고 어머니한테 소갈비 사다 대접하라고는 못하고 “오늘 구추한데 소갈비나 사다 끓이오.”그럽니다..... 우에 셋은 제 에미 고생을 아는데 아래 셋은 뭐라는지 압니까? “엄마, 그런 말 맙소, 누가 그렇게 많이 낳으랍데?”

 

아들며느린 “어마이, 우릴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슴둥. 그렇게 생각 맙소!”하구 날 위안하지만 어려운데서 갖다 쓰니 내 심정 가벼울 리 있나요? 자식들 일을 힘자라는 대루 해주어야 시름도 좀 놓이죠. 그래서 지금 셋집 맡고 따로 나가  살면서도 아침이면 아들집에 가서 서둘러 손자 애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구 낮엔 친구들과 놀다가도 저녁때만 되면 허둥대며 또 손자 데리러 가요.

 

리옥금(62세):

 

자식들두 답답할 때가 많아요. 저녁이면 짜개바지손자를 이 늙은것한테 확 밀어 맡기고는 아무 관계도 안 해요. 그리고는 늘 한밤중까지 놀다 오는데 이 에민 아주 종노릇이나 하는 셈이죠.

 

오영금(66세):

 

49년도에 결혼을 해서 6남매를 낳고 64년도 큰 것이 열여섯 살, 막내 놈이 세 살 먹었을 때 남편을 여의고 “파밭”을 매며 이악스레 살아왔어요. 오죽하면 동네사람들이 날 보구 꽁지 없는 소라 했겠습니까. 고생 끝에 락이라구 몹시 어려웠지만 아이들을 다 공부시키고 큰 아들은 출세를 해서 지금 자치주무역공사에서 일보고 있어요.

 

나는 농민이기에 퇴직금 같은 건 없어도 별로 속태우는 일은 없어요. 오늘 행복하니 죽은 남편 더 생각나요. 연길에 와서 오리알 장사를 3년 해서 돈 좀 벌었어요. 좀 살만하게 되니 동무들과 같이 춤 추러도 다니고 싶어집디다만 아이들이 성가를 해서 손자를 보니 그것들을 봐줘야지요. 손자가 유치원에 가니 친구들이 무도장에 다니자고 해서 춤을 배웠지요.

 

배우고 나서 한 5년 안다니다가 재작년 5월부터 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아글타글 벌어 재산 늘구자 들었는데 집금은 사상이 변해서 곱게 입고 바르고, 사상 점점 틀려가요, 호호...3년 춤추러 다니면서 집에 령감 없다는 소리 안했어요. 령감이 없다면 아바이들이 막 끌어안고 손도 더 꽉 잡고 하니까 그냥 집에 령감이 계신다고 하는 거죠. 그래야 그 아바이들이 마음대로 못하니까요.

 

설이랑 되면 손주 놈들한테 돈을 10원씩 5원씩 쥐어주는데 그럼 할머니 제일이라고 찧고 까불고 좋아해요. 할머니도 돈이 있어야 값이 있는가 봐요.

 

전영실:

 

남편 집은 8남매로 살림이 구차했습니다. 난 어려 공불 잘했는데 일본 류학도 희망있었지요. 그런데 19살 시집을 와서 식솔 많은 가문에서 남편 공부시키고 난 시형네와 같이 농사질 했지요. 남편은 고중마치고 현총사에 배치 받아 일을 보았습니다. 아이 4남매를 낳아 셋을 대학 보내고 졸업까지 시켜놨어요.

 

그 돈 대느라 10년 동안 여자 몸으로 동불사역에서 석탄목도, 벽돌공장일, 막노동, 페물수매......못해 본 일 없어요. 령감노임으로 턱도 없어요. 령감은 병퇴를 해서 딸을 대신 직장에 들여보내고, 지금 자식들 다 제절루 나가살아요.

 

맏아들은 대학 마치구 대경유전에서 간부노릇 하고 있고 막내아들놈은 장춘설계학원 공부를 하다 병으루 중퇴했습니다. 맏이, 둘째네는 다 잘 사는데 막내아들이 제 노릇을 못해 잘못 사니 노상 가슴 아픕디다. 막내 놈 때문에 애도 많이 태웠어요.

 

다른 놈들은 다 일하러들 다니는데 막내 놈은 타락해서 집에서 술 먹구 주정하구. 그러니 머릿속에 그냥 그놈밖에 없구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그러다 한국 가서 1년 연수받고 돌아와 지금 대련의 한국회사에서 엘리베이터가설수리를 하는데 처자까지 다 데려다 살구 있어요. 인젠 만 시름 다 놨어요.

 

조순애(63세):

 

스무살에 시집와서 아들 둘, 딸 셋을 두었는데 딸들이 지금 내 생활비를 대요. 아들은 장사를 한답시고 돈 꾸고 집 2만 여원짜리 까지 다 말아먹고 피신을 하니 빚군들이 막 쓸어들지 뭡니까. 세집 맡고나오니 집세 잇기 힘들어요. 며느리가 아이 열 살 먹도록 일할 생각 안하니 답답해요.

 

 그전에 아글타글 벌어 재산 늘구자 들었는데 집금은 사상이 변해서 곱게 입고 바르고, 사상 점점 틀려가요, 호호...3년 춤추러 다니면서 집에 령감 없다는 소리 안했어요. 령감이 없다면 아바이들이 막 끌어안고 손도 더 꽉 잡고 하니까 그냥 집에 령감이 계신다고 하는 거죠. 그래야 그 아바이들이 마음대로 못하니까요.

 

일은 안하고 외지에 갈 소리, 손자 봐달라는 소리밖에 없어요. 딸들이 내 생활비를 대는데 야금야금 그 속에서 아들네를 빼준 돈을 합치면 3000원 잘 될 거래요. 딸에게서 돈을 받아서 아들을 주니 도리 상 안됐지만 어쩌겠습니까. 딸은 내 낳은 새끼니까 내 마음대로 욕해도 일없지만 며느린 안 그래요.

 

난 딸 생일엔 10원도 안내놓다가도 며느리생일엔 차마 10원은 못 내고 100원 내놓는데 내 어망결에 한말에 그게 딸한테 탄로나 딸이 워라겠습니까. 딸 생일엔 10원도 아까워하다 며느리한테는 100원씩 척척 내미니 엄마 돈이 있소 양?

 

아들놈은 돈 꿔 쓰는 주제에 할 말은 그냥 있어요. 엄마, 내 돈 벌면 엄마 집 한채 사 낫을게. 그럼 엄마, 무도장 다니겠으면 무도장 다니구 맘대루 합소. 그 말 한마디에 내 속이 싹 녹아나서 그래 그냥 얼리워 삽니다.

 

리영금:

 

아들며느리 다투면 속이 번져져요. 아이 하나 줴박아도 속이 번져지고 아들도 제 에미와 네편네 사이에서 속 태우고 눈치놀음 놀 때 많아요. 그래서 나도 눈물 흘릴 때가 있어요. 난 소갈비 먹길 좋아하는데 아들은 직방 녀편네하고 어머니한테 소갈비 사다 대접하라고는 못하고 “오늘 구추한데 소갈비나 사다 끓이오.”그럽니다.

 

때론 며느리 모르게 나한테 소비돈도 쥐어주지요. 우에 셋은 제에미 고생을 아는데 아래 셋은 뭐라는지 압니까? “엄마, 그런 말 마오, 누가 그렇게 많이 낳으랍데?”

 

김성혜(62):

 

자식많은 분들이 이것저것 다 생각하자면 끝이 없어요. 로인들은 자기로 자기마음 달랠 줄도 알아야 해요. 령감이 사망한 뒤 의지할 곳 없어 자식들 집을 이집 저집 다니면서 어렵게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렵게 살면서 자기를 달랠 줄 모르면 그 마음고생에 못살아요.

 

젊은이들한테 부모모시는 문제가 있는데 지금 자식들은 옛날 부모공대전통을 거의 잊고 있는 것 같애요. 지금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데 관건은 아마 경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돈이 있으면 서로 모시려 하고 돈이 없으면 천대하지요.

 

자식들의 마음씨 곱고 밉고가  주요한게 아니고 돈 없는 부모를 모시면 제 살림 차리기가 그만큼 힘들 테니까 자식 립장을 생각해서라도 부모들은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요즘 기풍이 이렇게 돼가고 있으니 우리 로인들의 신세가 가긍하고 불쌍해서 섭섭하기를 이를 데 없어요. 사실 돈 없는 부모를 모시려는 자식 극히 드물어요.

 

령감은 번 돈을 아이들한테 나눠주라고 하지만 내 의견은 안 그래요. 나눠줄게 아니라 다짐받고 꾸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랭장고, 텔레비 같은 건 사줄 수 있지만 돈은 나눠주지 말아야 하지요. 돈을 세워놨다가 주기는 쉽지만 거둬들이긴 힘들어요.

 

로인활동도 돈 없인 참가하기 힘들지요. 돈이 없으면 구경만 해야 하니까 멋없는 거죠. 자식들이 부모들의 심정 헤아려 소비돈이라도 드려야 할텐데 그렇지를 못하니 그럴 땐 부모들이 한쪽 날개가 축 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식들이 돈을 많이 벌면 어떻겠는지? 그런데 돈 많이 번다 했자 그것도 소수일 뿐이죠.

 

딱 로임을 가지고 사는 자식들이 소비돈 쑥 쑥 내놓기도 어려울 테죠. 그렇기에 로인들도 자기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합니다. 자식들 돈만 바랄 수 없지요. 명절에 돈이 없어 손자들에게 5원,10원씩밖에 못주면 좋아안하고 100원, 200원씩 쥐여 주면 아들도 며느리도 다 좋아하지요.

 

지금 로인소비도 실은 대단히 많습니다. 퇴직노인들이 활동에 한번 참가하려 해도 수백원씩 써야 하는데 명절에 손주들한테 쑥쑥 내밀 돈이 어디 그렇게 많겠습니까?

 

최송죽(62세):

 

확실히 늙은이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난 로씨야에 가 보짐장사도 하고 상점도 꾸리고 해서 돈 좀 벌었는데 돈이 있으니 속이 든든합니다. 령감은 번 돈을 아이들한테 나눠주라고 하지만 내 의견은 안 그래요. 나눠줄게 아니라 다짐받고 꾸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랭장고, 텔레비 같은 건 사줄 수 있지만 돈은 나눠주지 말아야 하지요.

 

돈을 세워놨다가 주기는 쉽지만 거둬들이긴 힘들어요. 령감이 병 보이러 북경갈 때 돈 1000원,2000원 내미는 자식 없습디다. 자식들 다 잘살지만 말입니다. 주긴 쉽지만 그때 뿐이죠. 버릇도 잘못 궂히구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돈을 꾸어는 주지만 나눠주지는 않아요.

 

고복순(65세):

 

서른 댓에 남편을 잃고 여때껏 과부로 늙어왔어요. 내 37살 먹던 해 시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젊은 나이에 어찌 생과부로 늙겠소. 아직 늦질 않으니 자리를 옮겨 앉게나  하겠지요.

 

그날 저녁 시누이가 한 남자를 데려왔는데 석유등불아래 어슴푸레한데서 서로 똑똑히 보지도 못하고 내 했다는 소리가“전 새끼도 가득하고 시집은 안가겠으니까 다신 찾지 마세요.”지금 보면 그때 머저리짓 했지요. 그 후 길에서 그 사람 똑똑히 봤는데 아주 잘 생겼습디다. 서로 다 후회했지만 후회한들 엎지른 물이지요.

 

59살 때 또 좋은 자리 있었는데 아직 안 늦으니 만나보라는 권고가 들어왔을 때도 늙은게 사람 웃기겠다 두려워 대바람 거절해버렸지요. 그때라도 갔더면 한번 화끈히 살아봤겠는데......지금은 싫어요. 살다가 령감이 풍이라도 맞으면 그 시중 어떻게 합니까. 아무튼 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했어요.

 

지금은 행복합니다. 등소평아바이 덕분에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그저 고독한 게 문제지요. 그전엔 집 없는 게 걱정이였는데 지금 집이 있으니 고독한 게 큰 걱정이이지요. 자식한테 얹혀살면 자유가 없고 혼자 살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끼리 어울려 자유롭게 살고싶어요.

 

김성혜:

 

로인들의 혼인문제도 살펴보면 간단하지는 않습디다. 서로 맞아 잘 사는 분들도 있지만 갈라지는 일도 많아요. 실제 문제는 자식과 관계돼요. 서로 좋다가 자식문제 때문에 갈라지는 거죠. 시초에 자식들이 다 동의해서 결합하구 또 서로 마음 맞아 살지만 살다보면 서로 대방의 자식들을 홀대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왜 제자식만 관심하구 내 자식은 관심 않나? 대방의 손군이 와있으면 이쪽에서 찡내고 하니 모순이 생긴다는 얘깁니다. 서로 대방의 자식, 손군들을 생각 못해주니까 자연 불화가 일어나는 거지요. 재혼해서 살다가 갈라지는 건 대부분 원인이 자손문제와 관계돼요. 이 문제에서 넓게 생각하는 분들이 적어요.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늘그막에 결합하면 마음고생만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남의 살림에 가서 남의 령감 옷 빨아줄게 있느냐고도 말합니다. 옷 빨고 밥 짓는 게 큰 문제 아니라 치고 아무튼 부담이고 자유롭지 못할거라는 겁니다. 지금 어떤 젊은이들은 정부를 두고 있다는데 로인들도 결혼 안하구 사는법이 없을까요?

 

있는 것 같애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춤을 추다가도 맞갖지 않으면 안 추면 되는 거지요. 로인들도 그저 마구 춤추는 게 아니라요. 늘 춤추러 다니는 로인들은 서로를 잘 알고있어요. 서로 거래하면서 고독이나 말리고 말동무가 있고 같이 춤이나 추면 돼요.

 

혼자 살면서 보니 외로움이 너무 어렵습니다. 식솔 여섯이 있다가 왜 이렇게 혼자 있냐? 밥 끓여놓고 혼자 먹자고 보면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막 눈물이 솟구쳐서 밥도 못 먹고...... 늙은이들두 친구가 있어야 해요. 부모들에게나 자식들에게 못할 말도 친구에게는 하지요. 친구에게는 속심 말을 다 할 수 있어요.

 

로인들도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요. 어떤 사람은 혼자 다니기 좋아하고 집에 홀로 조용히 있기를 원하지요.

 

나는 친구 대여섯이 모여 먹고 얘기도 나누고 싶어하는 성민데 제일 유쾌할 때는 무도장에서 춤출 때이고 그 외 마작도 놀구 문구도 칩니다. 마작을 놀면 시간 가는 줄 몰라 좋아요. 마작을 놀면서 롱담도 하고 별 얘기 많아요. 그리고 텔레비를 틀어놓고 가무도 보고 련속드라마도 보고 노래 감상도 즐깁니다.

 

오정옥:

 

5년 혼자 살면서 보니 고독이 너무 어렵습니다. 식솔 여섯이 있다가 왜 이렇게 혼자 있냐? 밥 끓여놓고 혼자 먹자고 보면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막 눈물이 솟구쳐서 밥도 못 먹고......

 

조순애:

 

늙은이들두 친구가 있어야 해요. 부모들에게나 자식들에게 못할 말도 친구에게는 하지요. 친구에게는 속심 말을 다 할 수 있어요. 령감한테도 안할 말이 있어요. 동무도 늘그막 동무가 좋아요. 서로 믿어주고 호흡이 통하고, 친구를 사귀면 진정한 친구를 사귀여야 하지요. 그래야 서로 리해하고 도울수 있거든요.

 

정신적으로 서로 의탁하게도 되는 거죠. 여러 날 못 만나면 만나고 싶고 소식 알고 싶고 서로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겁니다. 마음속 고통도 서로 털어놓고 나누고 위로하고 좋은 일 있어도 기쁨 서로 나누면서 마음이 즐거워지는 거죠. 외로움도 그러는 가운데 풀어지는 거죠.

 

<길림신문> 1997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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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7 백여년만에 돌아온 출해구 2023-05-16 0 827
26 조미 간 극적 사태에서 조선의 변화를 본다 2018-05-27 0 2907
25 곪은 상처는 터뜨려야 아문다 2015-12-31 5 6198
24 길림신문 초창기의 추억 2015-12-31 2 5597
23 희로애락이 엉킨 로인세계 2015-03-10 3 5606
22 중한일《론어비림조성서화대전》한국에서 2014-04-29 4 5404
21 오덕장로주의 전설 리동춘 2014-04-28 4 5617
20 《생명은 타지 않으면 썩는다》 2014-02-08 19 5875
19 조선 양대특구 공동개발의 감동 2011-06-10 40 7080
18 “김정일 중국방문” 소감 2011-05-27 68 9604
17 한국비림박물관, 금석문의 숲을 가다 2010-11-15 47 8136
16 조선 대지에 변혁의 난류 일렁인다 2010-01-15 50 5942
15 중국 “두만강지역개발프로젝트”와 다자간 국제협력 2009-12-30 80 10271
14 고아들의 아버지 ㅡ 리문철 2009-12-24 47 9089
13 리귀남의 유화작품전시회를 가다[박문희] 2008-12-22 58 9120
12 혈혈단신으로 중국 서부에 진출한 한국사나이 2008-12-14 52 5538
11 음지에서 양지로의 첫 관문 통과한 한국의 중의 2008-11-13 69 5008
10 “토지유전개혁”과 조선족농민(박문희) 2008-10-12 125 5584
9 동북아의 개발과 연변조선족의 미래 2008-10-09 137 5706
8 “민족과 혈통”문제에 대한 통신 2008-04-27 178 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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