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초의 녀자이자 마지막 녀자이니
나는 경배받는 녀자이자 멸시받는 녀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안해이자 동정녀이니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니
나는 내 어머니의 팔이니
나는 불임이자 다산이니
나는 유부녀이자 독신녀이니
나는 빛가운데 분만하는 녀자이자 결코 출산해본적이 없는 녀자이니
나는 출산의 고통을 위로하는 녀자이니
나는 안해이자 남편이니
그리고 나를 창조한것이 내 남자라
나는 내 아버지의 어머니이니
나는 내 남편의 누이이니
그리고 그는 버려진 내 자식이니
언제나 날 존중하라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녀자이고 더없이 멋진 녀자이니
-《이시스 찬가》, 기원전 3∼4세기경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는걸 알고 그 동네의 죄지은 한 녀인이 향유 담은 옥합을 들고 왔다. 녀인은 예수의 뒤로 가 그 발치에서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칼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녀인이 어떠한 자, 곧 죄인인줄을 능히 알리라.》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구나.》 그가 말했다. 《선생님, 말씀하소서.》 그러자 예수 가라사대, 《어떤 사람은 오십 데나리은을 빚졌다. 그런데 그 두사람에게 갚을 능력이 없었으므로 그는 두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하여주었구나, 그 두사람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일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판단이 옳도다.》
예수께서 녀인을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녀인이 보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게 발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녀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제 머리칼로 씻었구나.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이 녀인은 이곳에 들어온 이래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는구나.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이 녀인은 향유를 내 발에 부었구나.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녀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녀인의 사랑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장 37∼47절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잠간, 《옛날 옛적에》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줄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반면, 《창녀》는 나이든 자들의 용어다. 어떻게 이러한 명백한 모순을 이제부터 들어갈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수 있는가? 하지만 우린 삶의 매순간 한발은 동화속에, 또 한발은 나락속에 담근채 살아가고있으니 그냥 이렇게 시작하도록 하자.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모든 창녀가 그렇듯, 그녀 역시 순결한 동정녀로 태여났다. 소녀시절, 그녀는 (돈 많고 잘 생기고 머리 좋은)남자를 만나(웨딩드레스를 입고 정식으로)그와 결혼하고, (장차 유명인사가 될)아이를 둘쯤 낳고,(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예쁜 집에서 살기를 꿈꾸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떠돌이 상인이였고 어머니는 양장점 재단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브라질 동북부에 있는 그녀의 고향도시에는 영화관 하나, 나이트클럽 하나, 은행지점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백마 탄 왕자가 어느날 불쑥 나타나 자기 마음을 사로잡을 날만을, 그와 함께 세상을 정복하러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꿈에 젖어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던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것은 열한살 되던 해 등교길에서였다. 개학날, 그녀는 등교길에 자기 혼자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소년이 부지런히 걷고있었다. 그녀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등교하는 이웃 남학생이였다.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마리아에게는 해빛이 쨍쨍 내리쬐고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그 길을 걷는 순간이 하루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였다. 걸음이 빠른 소년을 따라잡기 위해 발을 재게 놀리다보면 갈증이 나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달이 흘러갔다. 공부를 싫어하고 오락거리라고는 텔레비죤밖에 없었던 마리아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래 녀학생들과는 반대로 주말을 아주 지겨워했고 등교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 마련이라. 그녀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소년과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은 하루중 고작 10분에 불과했지만 그를 떠올리며 그와 얘기를 나눌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상상하는 시간은 아주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그날 아침, 소년이 다가와 연필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갑작스런 접근에 화가 난척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그녀는 소년이 다가오는것을 본 순간 겁에 질려 꼼짝도 할수 없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있고 그를 기다리고있고 그와 손을 잡고 학교문을 지나 그 길을 끝까지 가서 사람들 말로는 영화배우와 탈랜트, 자동차, 수많은 영화관, 그외 온갖 신비로운것들이 있다는 대도시로 가기를 꿈꾸고있다는 사실을 그가 눈치챌까봐 두려웠던것이다.
그날 온종일 그녀는 수업에 집중할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보 같았던 자신의 행동에 속이 상하면서도, 소년 역시 그녀의 존재를 념두에 두고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연필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핑게거리에 불과했다. 그가 다가왔을 때 그의 주머니에 꽂혀있는 볼펜을 분명히 보았으니까.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날 등교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며 그날 밤을, 그리고 이어지는 며칠밤을 그가 말을 걸어오면 뭐라 답할가 궁리하며 보냈다. 결코 끝나지 않고 오래 이어질 아름다운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답을 찾으면서.
하지만 소년은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와 함께 등교하면서 어떤 날은 오른손에 연필을 쥔채 몇발자국 앞서 걷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를 바라보기 위해 몇걸음 뒤에서 걷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사랑을 품은채 말없이 괴로워했다.
방학이 도무지 끝나지 않을것처럼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던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여난 그녀는 피로 얼룩진 허벅지를 보고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소년에게 진정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편지를 써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런 다음 오지로 들어갈것이다. 그곳 깊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야만적인 짐승들, 늑대인간이나 머리없는 노새가 그녀를 잡아먹을테니까. 그렇게 되면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은 없을터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에 짓눌릴 때에도 늘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이니까. 그들은 그녀가 자식이 없는 부자집에 랍치되였을거라고, 언젠가 돈과 명예를 얻어 다시 돌아올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할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그녀가 지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할 소년은 그녀를 잊지 못할것이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 않은것을 매일아침 뼈저리게 후회하리라.
하지만 그녀는 편지를 쓰지 못했다. 방으로 들어온 어머니가 피묻은 시트를 보고 웃으며 말했던것이다.
《우리 딸이 이제 녀자가 되였네.》
마리아는 녀자가 되는것과 다리사이에서 피가 흐르는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고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리해할만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다만 그게 정상이고, 앞으로 매달 사나흘은 인형베개같은 천을 다리사이에 차고 다녀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럼 남자들은 피가 바지에 묻지 않도록 파이프 같은것을 차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가 그녀는 그것이 녀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는걸 알았다.
마리아는 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결국 생리라는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소년의 부재, 그를 만나지 못하는것에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갈망하는것을 피해 달아나는 자신의 어리석은 태도를 자책했다. 개학 전날, 그녀는 도시에 하나뿐인 성당에 들어가 성안토니오 성화앞에서 맹세했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소년에게 말을 걸겠다고.
이튿날, 그녀는 정성을 다해 치장하고 어머니가 개학날을 위해 특별히 맞춰준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마침내 방학이 끝난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등교길에 나섰다. 하지만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그렇게 애태우며 일주일을 보내고나서야 마리아는 소년의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 아인 멀리 떠났어.》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갔다는것이다.
그 순간, 마리아는 어떤것을 영원히 잃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멀리》라고 불리는 곳이 존재한다는것, 세상은 넓고 그녀가 사는 도시는 깨알만큼 작다는것, 마음에 드는 존재들은 결국에는 늘 떠나고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녀도 떠나고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녀는 먼지가 폴폴 날리는 길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언젠가는 소년을 찾아 자기도 이곳을 떠나리라고.
그리고 아홉주일이 지나는 동안, 그녀는 관습에 따라 금요일마다 영성체를 받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간구했다. 이 도시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한동안 그녀는 마음을 앓았고 소년의 소식을 묻고다녔다. 하지만 소년이 어디로 이사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마리아는 깨달아갔다. 세상은 너무 넓고, 사랑은 너무 위험하다는것을. 그녀는 생각했다. 성모 마리아가 계시는 하늘나라는 너무나 멀어서 아이들의 소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라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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