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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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그날 나는 깜짝 놀랐다
2023년 11월 16일 10시 35분  조회:962  추천:0  작성자: 오기활
필자는 연변농학원 김수철교수님의 1970년대의 제자로서 필자로 말하면 김수철(99)교수님의 가슴 뛰는 사업과 값진 삶은 필자의 모델로 거룩한 우상이시다.
2020년 12월 29일, 우리 일행이 연길시 조양천진 삼성촌 5소조에 삶터를 잡고 홀로 자취하면서 《길림성 식물지》(총4권)의 출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수철교수(95세)을 방문 갔을 때이다.  
서로 간의 수인사를 나눈 후 필자가 “지금 연변미술관에서 연변 제1회 예술작품박람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고 말했더니 김교수님이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묵직한 사진기를 챙겨 들고 “우리 지금 당장 가서 보고 옵시다”며 우리를 재촉했다.
연길로 가는 길에서 김교수가 하는 말씀이다.
ㅡ 그림은 번역이 필요 없는 세계 공통어입니다, 화가는 독자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면서 옛날을 재생기키고 래일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나는 좋은 그림을 볼때마다 행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내다 봅니다...
전시장에 도착하자 김교수님은 전시장을 돌아보고나서 1, 2번 전시장의 작품 거의 모두를 렌즈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에서 교수님이 하는 말씀이다.
ㅡ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의 말씀인데 스승님은 우리 더러 평범한 생활속에서 기적을 발견하면서 매일매일 놀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ㅡ나는 오늘 석희만화백의 명작을 보면서 행복했고 놀랐습니다. 우리가 오늘 끝도 시작도 없는 대우주의 수십억의 인구들 속에서 우리 넷이 한자리에 앉았으니 얼마나 기적입니까! 나는 오늘 놀랐습니다!”
필자는 그 후부터 평범한 매일에서 놀람을 만들고 놀람을 찾기에 노력하였다.
일은 생각한 대로 된다더니 최근에 나는 두 번 크게 놀랐다.
한번은 도문시 석현진 송림촌에서 사는 소학교 친구 리봉근이 몇년전에 부인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혼자서 지낸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바로 이틑날에 위문차로 봉근네집에 갔다
십 여년 만에 만난 우리는 기쁨의 술잔을 부딪치고 또 부딪치면서 60년전 옛일을 회포 하면서 서로가 권커니 작커니 하는데 봉근씨가 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한 것 처럼 정서를 살려가며 “정삼이 동생 멋있다…”를 읊고나서 “이는 소학교 2,3학년때 네가 지은 시다. 네가 지금도 이 시를 기억하나?”고 니에게 물었다.
이에 나는 한참이나 놀라 했다. 이는 내가 소학교때 지은 것인데 그네들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수남소학교 학생들이 교가인냥 “정삼이 동생 멋있다” 를 읖조리며 다녔다...


나는 또 지난 7월에 한번 놀랐다..
어느 날, 왕청현 석현진 수남소학교 동창인 최금선씨가 내가 뇌출혈을 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며 병문안을 하려고 우리 집에 왔다.
역시 십 여년 만의 만남이라 늘 웃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반나절이나 동년의 옛말들로 웃음꽃을 피우는데 금선씨가 불시에 “이돌이 죽었다…”를 읊더니 “이는 오동무가 소학교때 지은 시인데 지금 기억하고 있소?”, “그때 수남학교에서 기활이를 옛말쟁이라고 불렀지무”하면서 나를 잔뜩 춰올렸다.
 
나는 이렇게 두 소학생 친구의 기억력에 실로 놀랐다.
필자는 그후부터 “정삼이 동생 멋있다”와 “이돌이 죽었다”에 슴배여 있는 눈물겨운 력사를 회포하게 되였다.
  그때 왕청현 석현진 수남소학교의 학구는 7개 자연툰(수남, 송림, 토성, 고려, 남양, 달라자, 하가툰)으로
  인구가 많고 학생수도 많았다. 그때 우리 반의 학생은 52명으로   송림마을의 남자들만해도 8명이였다.


그때는 생활이 매우 가난하였는데 나는 소학교에 다닐 때 속옷은 물론 팬티마저 입어본적이 없다. 
어느 한번 여름철 체육시간에 두 팔을 펴고 높이 쳐들었다가 다시 두 팔을 편 대로 허리를 굽히는 체조를 하는데 그만 내가 입은 검은색 낡은 바지의 엉덩이 천이 째져 엉덩이가 그대로 로출되였다. 나는 너무나도 황당해 별수 없이 슬그머니 힉생줄에서 나와 학교 주변의 산기슭에 있는 비술나무를 찾아가 나뭇가지를 꺽어 껍질을 버껴서 째진 바지를 졸라매고 돌아와서 계속하여 체육시간을 보는데 그만 나의 뒤줄에 선 리춘애가 이를 발견하고 “기활이 바지엉치를 나무껍질로 동여맸다.”고 소리를 질러  많은 애들이 나의 뒤를 따라다니며 골려주기에 나는 리춘희가 얼마나 밉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난다. 또 한 번은 학교에서 집체로 도문영화관의 영화구경을 조직했는데 나는 영화표 값을 낼 돈이 없어서 반주임선생(허은금)님에게 생닭알 한개를 바치고 영화구경을 따라 갔다.
그때는 모든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책보는 스산하기로 말이 아니였다. 거의 모든 책보가 여러가지 낡은 천쪼각을 무어서 만들었는데 송림마을의 한정삼은 천쪼각끈으로 책을 묶어서 들고 다녔고 나는 마르지도 않은 젖은 세수수건에 책을 싸서 들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에 송림서 가난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든 한정삼의 녀동생이 검은색 새책보를 허리에 띠고 학교에 와 닭무리 속의 공작새마냥 돋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정삼의 동생이 너무나도 멋스러워  <<정삼이 동생 멋있다>>를 지은 것 같다.
  지난 50년대는 “배고픈’년대”였다.
3학년때 늦의 봄의 어느날 오후에 우리반에서 집체로 산나물을 캐려 송림마을 뒤산에 갔는데 고려툰(지금의 흥진툰)의 박영일이 배고픈김에 우둥치뿌리라고 파서 먹은 것이 우둥치가 아닌 독활(毒活)뿌리여서 영일이가 배가 아파서 끌어안고 죽는다며 나뒹굴었다. 하여 급해 난 허은금선생은 남자애들을 조직하여 서로 업어서 마을의 중심에 있는 촌위생소에 가서 제때에 구급치료를 받고  구급하였다.
또 어느 날 오후에 수남마을에서 “이돌이네 형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썽했다. 우리 아래 학년을 다니던 수남마을의 박이돌이 남동생과 함께 집에서 불시에 죽었다는 것이다.
박이돌네 가정은 수남에서 특별히 가난하기로 우리들의 기억에 이돌이네 4형제(2넘2녀)가 여름에 신을 신고 학교에 다니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학교측의 조사에 따르면 그날 오전에 박이돌과 그의 남동생이  수남농업중학교를 다니는 학생을 따라 산에 가서 개살구씨를 주어서 먹었는데 이돌네 형제는 집에 돌아와서 또 생파를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살꾸씨를 함께 먹은 농중학생은 별탈이 없었는데 식욕이 좋은 이돌네 형제만 죽었으니 그들이 죽은 원인이 개살구씨를 먹고 또 생파를 먹은 것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죽음을 사람들게 교훈으로 남기고저 “이돌이 죽었다”를 지어서 거기에 강약을 달아서 외우며 다닌 것이 전교 학생들의 구전으로 전 학구에 보급 되였던 것이다.
그때 내가 이런 문답형식으로 구전말을 만든 것은 조선어문 과문에서 배운 <<종달이>>이라는 제목의 시를 본땃기 때문이다.
 “종달이” 전문이다
  
종달이
종달아 종달아
어디에 갔더랬니
수풀에 갔더랬다
뭘하려 갔더랬니
새끼치려 갔더랬다
몇마리 쳤니
다섯마리 쳤다
나 하나 주렴
널 왜 주겠니
고운 것도 내 새끼
미운 것도 내 새끼
쫑 쫑 쪼로롱

그때 나는 이 과문에 마음이 빠졌다. 왜냐면 엄마종달이는 다섯마리 새끼를 까고 남들이 한마리릘 달라는 것도 “고운것도 내새끼 미운것도 내새끼”라며 주지 않았는데 우리의 부모들은 왜서 자식 5형제를 낳아놓고 자기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갔는가 며 원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가 너무나 천진해서 랭웃음이 따른다.
나는 누님들 앞에서 “종달이”를 시도 때도 없이 외우고 또 외웠다.
그때 나는 구전말을 “종달이”를 본 따서 문답형식으로 지은 것 같다.
나는 60년 전의 나의 “작품”이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정말 기쁘고 다행스럽다. 왜냐면 두 친구들의 기억력 때문에 오늘에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이 글이  말로만 구전되던 구설사가 문자기록으로 력사에 남겠으니 말이다.
이밖에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시에는 령점이다.
단 몇년전에 <사람은 흥에 살아야 한다>는 공자의 글을 읽고 “말(言)이 시(詩) 가 되고 시가 노래로 되고 노래가 춤으로 되였다. 사람은 시, 노래, 춤이라는 흥으로 살아야 한다”는 공자의 말을 기억에 남겼을 뿐이다.
공자는 “시(詩)는 절 사(寺)와 말씀 언(言)의 합자(合字)로서 절(寺)에서 들리는 스님들의 말(言)이 곧 시(詩)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의 저명한 시인 김학송선생은 최근의 글에서 박하 시인의 <행복>이라는 한줄 시(아차하면 깨여지는 비여있는 유리잔!)를 곁들면서 “이 주지시는 감각적인 언어로, 단 한마디의 말로 행복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녹여낸 재밋는 시다.”고 평하였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내가  만든 구전말을 시로 지어도 되겠다는 신심을 얻게 되였다. 하여 60여년을 구전해온 무제(無題)”시”를 유제(有題)시로 제목을 달아서 력사에 남긴다.


검은 책보
정삼이 동생 멋있다
어째서 멋있나
검은 책보 띠고서
멋있다 멋있다

 어째서 죽었나
이돌형제 죽었다
어째서 죽었나
살구씨 먹고
생파를 먹고
죽었다 죽었다
오기활                  길림신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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