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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전"(련재 11)
2020년 04월 13일 09시 02분  조회:3709  추천:0  작성자: 오기활
                     11. 송림 속에서 무명렬사를 만나다
나는 만년에 식물채집을 하면서 또 한번 잊을 수 없는 고행을 겪었다.
2006년 9월 10일, 나는 식물조사의 지점을 또 지신으로 정하였다. 그 때 나의 나이는 81세였다.
룡정에서 지신 성남까지는 그래도 택시를 불러서 멋지게 갔다. 다음부터는 도보였다. 식물조사라는 이 일은 자기의 ‘11호차’를 리용하지 않으면 안될때가 많았다.
떠날 때는 다소 걱정되기도 했지만 일단 현지에 도착하면 보고픈 초목들로 하여 흥에 겨웠고 종일 다녀도 피로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
지신의 산은 온통 송림으로 덮였는데 이 때면 송이채집군들이 산을 메주밟듯 돌아다녀 수림 속 풀밭에 남은 그들의 발자국으로 하여 나는 외롭다는 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한창 식물채집에 도취되여 여념이 없는데 뜻밖에도 송림 속에서 ‘동북해방무명렬사비’를 발견하게 되였다. 주변에 잔디풀이 깔리고 우거진 나무숲 속에 가리워져있었기에 발견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다. 순간 마음이 퍼그나 아프고 괴로웠으며 그 정신적 위압에 눌려 불시에 내 몸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따라서 혁명사업에 보귀한 생명을 바치고 고이 잠든 그들에 비하면 지금 나의 고생이 얼마나 보잘것없음을 느끼게 되였다.
나는 렬사비 앞에서 렬사들에게 묵묵히 머리 숙여 경의를 표했다. 연변은로혁명근거지로서 수많은 무명렬사들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갑자기 젊었을 때 불렀던 <추도가>가 떠올랐다.


가슴 우에 손을 얹고 쓰러진다 혁명군
가슴에서 흐르는 피 푸른 풀에 질벅해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울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눈굽이 젖어들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신 죽는 법이 있다면 늦었지만 렬사들 대신 내가 죽고 렬사들이 나 대신 살아나 오늘의 행복을 누려보았으면…’
혁명렬사들의 바람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남부럽잖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였을가?
이날 나의 머리 속에서는 혁명렬사비가 사라질 줄 몰랐고 “우리 나라 오성붉은기에 조선민족의 붉은 피가 슴배여있다.”고 한 모택동 주석의 말씀이 떠날 줄 몰랐다.
큰 쓰레산에 이르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나는 준비한 비닐박막으로 큰 바위에 의지해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지금은 맹수들도 거의 없게 되였고 또 이 나이를 먹으니 귀신도 두렵지 않았다. 단지 비바람의 습격만 두려울 뿐이였다. 9월의 밤인데도 다행히 밤날씨가 좋았기에 혼자몸이였지만 심산 속에서 안전하게 야영을 할 수 있었다.
날이 희붐히 밝아오자 나는 또 수림 속을 향해 걸어갔다. 남쪽 벼랑에 이르니 2~3m 높이의 기둥모양으로 된 석림(石林)이 한눈에 안겨왔다. 순간 천불지산(千佛指山)이 머리에 떠올랐다.
1985년 ≪룡정현지명지≫에 “하늘의 법사가 옥황상제의 성지를 받고 이곳으로 내려왔으므로 ‘천불지산(天佛指山)’이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였다.
천불지산 정상에 오르면 오봉산, 큰쓰레 노름바위 등 두만강의 이북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길림신문≫에서 본 룡정시 오정묵중의의 천불지산 관련 이야기이다.

천불지산은 룡정시 백금향, 삼합진, 지신진을 망라하여 총면적이 7만여헥타르에 달하는데 야생산삼과 송이버섯 등 진귀한 식물들이 많이 난다.
내가 부처님이 하사했다고 ‘천불지산’이라 불렸다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 그저 항간에서 구전되는 속명인 줄로만 알았는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명명된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90년대 초반의 어느 날, 등산길에서 약재 캐는 로인을 만나 이 말 저 말을 나누던 끝에 산이름을 물었더니 천불지산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로인의 이야기를 허망한 전설로 마이동풍으로 흘러보냈는데 후날에 자료들을 찾아보니 그 전설 속의 인물이 실존인물(룡성스님)로서 그가 유명한 반일지사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천불지산에 비춰 “절승경개가 여기에 있으니…”란 시구가 떠올랐다.
나는 천불지산의 경관을 연길 모아산에 옮겨다 심는다면 얼마나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아쉽도다! 지금은 관광객이 나 혼자뿐이니 천불지산이 독수공방 신세로구나!’
이런 아쉬운 심정으로 천불지산을 등지고 한참을 걸으니 발목까지 빠지는 습지가 나타났는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순군락(纯群落)을 이루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지신에서 삼합으로 넘어가는 접경지에 이르니 지신림장 일군들이 한창 북적이며 멋스러운 집을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서 오십니까?”
“지신에서 오긴 했는데…”
“무얼 하려고 오셨습니까?”
“식물채집이지요.”
“할아버지, 이곳은 식물채집이 금지된 구역이니 다시는 오지 마세요. 한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오리다. 그런데 여기서 대명동(지금의 부유촌)까지 가려면 몇리를 더 걸어야 하오?”
“70리를 더 가셔야 합니다.”
70리라는 말에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다른 한 젊은이가 나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였다.
“사실은 대명동까지 70리가 안됩니다. 대략 17리 좌우 되는데 날이 저물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십시오.”
참 사람냄새가 나는 젊은이였다.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니 정말 고맙구려…”
나는 젊은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는 동남쪽으로 열린 골짜기를 향해 걸어갔다.
사실 내가 건설장의 일군들에게 “지신림장에서 한동안 일을 본 적이 있는 김상래를 아시오? 내가 바로 상래 아버지요…”라는 말 한마디만 했더라도 그네들이 이 주책없는 늙은이에게 잠자리도 마련해주고 때시걱도 반반히 차려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페를 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숲속에서 나 홀로 야영을 하는 것이 더 편안할 것 같아 갈길을 재촉했다.
나는 남들에게 페를 끼치는 것을 참 싫어한다. 지금도 남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려 심지어 로친까지도 딸집에 보내고 혼자몸으로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
계속 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엄청나게 큰 독활(独活)을 만나니 여기는 확실히 심산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산곡간을 걸으면서 곡간을 건너갔다가는 다시 건너오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짐작으로 25리는 잘되게 걸었는데도 17리 좌우 된다던 대명동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럴 즈음에 변덕스럽게도 “꽈르릉…” 하고 귀청을 때리는 듯한 우뢰소리가 울려 이 늙은이를 경악케 했다. 게다가 급하게 내물을 건느는 바람에 어지럼증으로 돌에 걸려 넘어져 온몸이 물참봉이 되였다. 더는 갈 수 없게 되였다. 사위가 어둑컴컴하여 좀처럼 방향을 분간할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낙비까지 억수로 퍼붓기 시작하여 나는 물가에서 꽤나 굵직한 버드나무를 꺾어 두 버드나무 사이에 걸쳐놓고 거기에 비닐박막으로 주머니모양의 하우스를 만든 후 그 속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하지만 말이 하우스지 앉지도 서지도 못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순간 숲속에서 만났던 혁명렬사들이 떠오르면서 이까짓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으며 보낸 이번 2박3일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야영이였다.
날이 밝자 바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산골을 따라 내려가니 하마양식장의 사나운 개가 길을 막아나섰다. 이 때 집주인이 나와서 돌아가는 길문을 열어주었다. 순간 넓은 시야에 삼합청천저수지가 안겨왔다.
다행히도 대명동(부유촌)에서 삼합진으로 가는 빈 택시를 만나 잡아타고 룡정에 있는 집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만년에 호기심에 의해 떠난 2박3일간의 식물조사에서 나는 찬비를 맞으면서 온갖 고생을 다 겪었지만 하느님의 덕분이였던지 감기에도 안 걸리고 성공적으로 조사를 끝마칠 수 있어 나에게는 대단한 축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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