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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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의가게(허룡석)
2017년 09월 18일 15시 09분  조회:5606  추천:0  작성자: 허룡석

단편소설

수의가게

허룡석


 
  1
 
여기가 어디지? 무슨 수의가게들이 이렇게 촘촘이 들어앉아있지? 큰 병원 주위여서 그런가? 주위를 둘러보니 울긋불긋 화려한 간판을 건 수의가게가 적어도 스무나무집 되였다. “조선족수의가게”라고 쓴 간판이 다수였다. 아무리 화려한 간판을 걸어도 사람들은 평소에 그런 간판을 보면 귀신사촌을 본듯 몸이 오싹해하며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려버린다. 하지만 가정에 상사가 나지면 또 어쩔수없이 발길을 들이미는 곳이기도 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앙골라머리 덕철이는 가운데쯤 자리잡은 한 “조선족수의가게”에 취직하여 날마다 마당발이 되여 뛰여다니고있었다. 성실하고 온후한 인상이 참빗마냥 까다로운 주인의 눈에 들었나부다.

덕철이는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아침일찍 가게에 출근하여 이곳저곳 쓸고 닦고 털어낸다. 이때 손님 한분이 인기척을 내며 가게에 들어섰다. 이른 아침부터 쉬가 붙으려나. 남은 슬퍼서 찾아오겠지만 장사군은 웃음주머니 흔들거린다.

“어서 오십쇼ㅡ.”

습관적으로 앙골라머리를 쓸어넘기며 들어선 손님을 반갑게 쳐다보니 아니, 형님이 아닌가.

“어? 헝님이 어떻게 이렇게 일찌기?...”

“응. 병원에 오던 걸음에 너 가게 문이 열렸길래 들렸다. 그런데 넌 뭐냐? 계속 이런데서 일할거냐?”

형님은 마차를 타고 사흘은 들어갈듯 우묵하게 패인 눈으로 덕철이를 언잖게 쳐다보았다.

“헝님은 그저 볼 때마다 그 소리오? 여기서 일하는데는 어쨌다구 그러오?”

한두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하는 형님의 꾸중질이다. 좋은 소리도 세번 하면 듣기 싫다는데. 덕철이는 저으기 불쾌해났다.

“그래두 넌 허나사나 촌간부 출신인데 일할데 없어 남들이 다 꺼리는 이런데서 일하냐말이다. 다른 일자리두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게 아니냐?”

“당안에두 못들어가는 촌간부두 뭐 간부요? 다른 일자리들두 두루 알아봤는데 어디 먹구 살게 월급을 주오? 그래두 여기서 일하니 로임에 장려까지 한달에 몇천원씩은 벌지 않소. 이것두 그냥 하자는게 아니라 한국비자가 나올 때까지만  하자는건데. 지금 대학졸업생들두 화장터일이랑 사우나 때밀이랑 하지 못해 헤맨다는데 아무데서나 돈을 벌문 안되우?”

덕철이는 지난세기 90년대초에 대학입시에서 몇점 모자라 미역국 먹은후 줄곧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그러다 남들보다 썩 뒤늦게 지난해에야 외국에 나갈려고 한 려행사를 통해 출국수속을 넣었다. 그때로부터 덕철이는 시내에 들어와 이 수의가게에서 심부름군으로 일하며 비자나오기를 기다리고있는터였다.

형님은 어쩔수 없다는듯 가게문을 나서며 말했다.

“그래두 이따위 일은 그만두는게 좋겠다. 네 안깐과 애들이 네가 전문 주검 주무르는 일 하는줄 알문 기절초풍할게다. 그래두 좀 체면이 서는 일을 찾아봐라.”

덕철이는 도회지의 어느 큰 외국회사에서 일한다며 농촌에 있는 식구들을 속이고 남들이 모두 꺼리는 “귀신의 사촌집”에서 일하고있었다.

“지금 세월에 체면이 한근에 얼마라구. 손바닥만한 겉에 낯짝보다 속에서 순대를 불쭉히 만드는게 장땅이지. 내 걱정말구 헝님이나 병치료 잘하우.”

덕철이의 형님도 외국에 나가 8년철이나 뼈를 간다는 건설공지를 돌아다니며 돈을 벌고 귀국한후 이 도시에 덩실한 아빠트를 사 살고있었다. 그런데 그 8년동안 힘든 막벌이하며 진이 다 빠졌는지 고혈압이며 당뇨병이며 신염으로 저 큰 병원의 인기모델이 되였는지 하루건너 병원출입이였다. “병 한가지에 약은 천가지”라는데 저렇게 다병하니 약은 몇천가지겠는가. 외국에 가 번 돈도 이젠 그 약에 야금야금 다 비벼먹는것 같았다.

덕철이의 형수는 한국에 나간지 10년나마 되지만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있다. 그래도 처음에는 몇년에 한번씩 다녀가는것 같더니 한 5년째는 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여 형님은 초중에 다니는 딸애와 함께 외톨이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늘 밤늦게까지 공부하는지라 지난 봄부터는 애를 아예 학교기숙사에 들여보냈다. 한번은 애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건달놈한테 정신없이 쫓긴 후에는 시름이 놓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날도 신세타령하는 “다리 부러진 노루”들이 모인 술자리에 나갔다가 늦게 오다보니 애 마중을 가지 못했었다.

    형님이나 누나나 모두 외국에 가 돈을 벌어 도회지에 아빠트를 사놓고 사는데 자기만 두더지처럼 시골에서 땅을 뚜지며 사는것이 늘 어깨가 처지던 덕철이였다.

모두가 땅에 코를 박고 “변소”를 하늘로 쳐들고 농사지을 때에는 형제들 가운데서 덕철이네 형편이 기중 나았었는데 외국문이 열리면서부터 자기집 신세가 제일 따라지로 되였다. 덕철이보다 일솜씨가 못하던 형님, 누나가 외국나가 돈을 벌더니 모두 그보다 더 잘사는것이 아닌가.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생각할수록 불편했고 은근히 시기가 났다. 게다가 변통성이 없고 돈벌줄 모른다고 늘 바가지를 긁어대는 안해의 잔소리에 귀가 다 먹먹했다. 사실 애들 공부 뒤바라지도 걱정이였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촌의 회계며 부촌장이라는 “멋진”감투를 다 벗어 팽개치고 집에서 부치던 밭도 몽땅 안해한테 밀어맡기고는 승벽심에 외국에 나갈 차비를 했는데 그것도 어쩐지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남들은 수속을 넣으면 두석달만에 비자가 나온다는데 나는 이게 뭔가? 덕철이의 출국수속은 반년이 지나도록 꿩 구워먹은 자리이다. 원래는 여기서 눈을 질끈 감고 두석달 일하며 외국갈 로자나 벌려했는데 반년이나 눌러 있으니 형님의 꾸중이 잦아지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씨팔껏, 빨리 비자가 나와야겠는데…


 
2
 
 해가 둥실 떠올라서야 손님 한분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어서 오십쇼ㅡ.”

덕철이는 언제 불쾌한 일이 있었더냐는듯 검실검실한 얼굴에 금방 웃음을 띄우며 열정적으로 맞았다.

“저, 우리 형님이 돌아갔는데 지금 가봐줄수 있겠습둥?”

40여세 돼보이는 오동통하고 작달막한 손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가보겝소. 집은 어딥둥?”

“원림사택쪽인데 차를 갖구 왔으니 같이 앉아 가문 됩꾸마. 가만, 수의를 사야겠는데, 저 수의는 얼매씩 함둥?”

덕철이는 비단으로 만든 고급수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2000원이구 이건 1800원이구 이건…”

“모두 그렇게 비쌉둥?”

“이쪽에 눅은것두 있습꾸마. 이건 800원이구 이건 600원이구…”

손님은 잠간 주춤하더니 말했다.

“그래두 젤 비싼걸루 줍소.”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심리다. 마지막 길을 가는 사람한테 눅거리수의를 입혀 보내려는 사람은 별반 없었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는것도 있겠지만 죽은 사람을 각박하게 굴었다가 산사람한테 무슨 화가 미칠가봐 더 걱정하는듯 했다. 덕철이는 2천원짜리 수의를 꺼내 비닐주머니에 정히 넣었다.

“저, 여기서 사진두 해줌둥?”

“예. 합꾸마.”

“얼맵둥”

“50원짜리두 있구 100원짜리두 있습꾸마.”

“예? 그것두 그리 비쌉둥?”

“어디나 다 그 값이꾸마. 사진을 잘해 고급가꾸에 넣어 줍꾸마.”

“그럼 100원짜리 사진꺼지 마즈 하겝소.”

손님은 이촌짜리 낡은 사진 한장을 내놓았다.

오래전에 찍은 증명사진같았다. 덕철이는 사진을 들고 보며 말했다.

“사진이 낡아 썩 빤하게 나올것 같지 못합꾸마. 그런줄 압소.”

“그저 사람이 알리문 됩꾸마. 빨리 가겝소.”

“값을 톱지 않는걸 보니 통쾌한분 같습꾸마. 수의는 1900원에 드리구 사진은 80원에 해드리겠습꾸마.”

“감사합꾸마. 면바루 마음좋은 분 만났구만. 빨리 가깁소.”

손님은 수의값과 사진값을 내놓으며 재촉했다.

“사진은 저녁때쯤 와서 찾아갑소. 가깁소.”

덕철이는 렴습에 필요한 도구들을 갖춰가지고 문을 나서 차에 올랐다.

“관을 파는 사람은 사람죽기만 기다린다”더니 수의가게를 꾸리는 사람도 사람이 죽었다고 찾아오는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었다. 남들이 들으면 매정한 놈들이라고 욕하겠지만 그것이 밥통과 이어진 명줄이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원림사택쪽 한 아빠트단지 5층집에 들어가보니 집안에 남녀 몇사람이 앉아 있다가 우르르 일어났다.
“저 방에 있습꾸마.”

덕철이를 데리고 온 손님이 북쪽 방문을 가리켰다.

덕철이가 문을 떼고 들어가보니 지독한 구린내와 시신이 부패되는 내가 코를 찔렀다. 집안식구들이 눈물을 머금은채 코를 싸쥐고 방안을 기웃기웃 들여다 보았다. 이젠 이런 일이 몸에 밴지라 덕철이는 아무렇지 않은듯 시신으로 다가갔다. 시신은 홀딱 벗은채로였는데 온 몸에 인분이 게발린채 말라붙어있었다. 죽을 때 이렇게 옷을 벗어내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아마 죽을 때 뒤가 나오고 어딘가 불편해서 손발을 내저으며  뒤채다 온 몸을 매질한것 같았다. 곁에 사람이 없이 홀로 저세상에 간것이 분명했다.

애기가 세상에 태여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누는 똥을 배내똥이라 한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누는 똥도 배내똥이라 한다는 사실이다. 용어가 같을뿐만아니라 그것의 성분도 비슷하다고 하니 세상만사가 시작과 끝,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과연 옳은가보다. 망인의 눈은 흡뜬채로였고 입도 일그러져 있었다. 늘 보아오는 일인듯 이 망인의 머리맡에도 빈 술병이 나뒹굴어있었다.

덕철이는 시신을 살펴보고 나와 나무람조로 말했다.

“상세난지 여러날 되는것 같은데 어쩨 인제야 알았습둥?”

“…그냥 앓던 형님이 여러날째 련락이 없구 핸드폰두 안받길래 미심해서 오늘 문을 떼구 들어와보니 이렇게…”

알고보니 망인이 외국에 돈벌이 간 안해한테 리혼당하고 고독하게 여러해째 혼자 되는대로 살다가 극락세계로 간것이였다. 전에는 큰 국유기업에서 중층간부로 있으며 집안에서도 어험어험 어깨살구며 살다가 기업이 문을 닫으며 로임이 고양이밥이나 사먹을 가련한 신세로 추락되면서 체면이 발바닥이 되였단다. 자기의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여 죽으면서도 눈을 감지 못한건가.

“연세두 많은것 같지 않은데…”

“쉰두 되나마나 합꾸마.”

“정말 안됐습꾸마. 어찌겠습둥? 집안에서 나서 몸을 닦구 수의를 입히겠습둥? 아니문 내가 하랍둥?”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경험이 없어 주인집과 묻지도 않고 손을 걷어 붙이고 시신을 깨끗이 렴습해주었더니 주인집에서 우리가 자체로 할걸 누가 하라 했느냐며 눈을 부라리는통에 시비만 캐다 돈 한푼 못받고 빈손에 돌아온적도 있었다. 그후부터는 덕철이는 뻔한 일도 사사건건 어찌하랴를 반드시 주인과 물었다.

친척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동생이란 사람이 주저주저하다 마지 못해 나섰다.

“그럼 어찌겠습둥. 내가 합지…”

이때 한쪽눈은 작고 한쪽눈은 큰 한 녀인이 자웅눈을 할기며 막아나섰다.

“그만두시오. 아무리 형제간이라두 저 어지러운걸 어떻게 손을 댄다구 그랩미까? 그냥 이분이 하게 하시오…”

“그래두 내가 동생인데 마지막 길이사 어떻게…”

수의가게에 가서 덕철이를 청해 올 때는 자기가 손댈 생각을 안하고 청했겠는데 여러 집안사람들 앞에서는 아닌 보살을 한다. 덕철이는 이런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아무리 동생이래두 좀 산사람의 살펴두 봐야재이캤습미까? 저걸 손질하구 그 냄새 달구 당신 집에 들어올것 같습미까?”

동생은 주저하다 덕철이한테 물었다.

“거기서 하문 얼마를 받습둥?”

“경우에 따라 값이 다른데 저 정도문 4백원은 받아야 합꾸마.”

“예? 그렇게 비쌉둥?”

“보시다싶이 상세난지 여러날 되는데다 저렇게 많이 어지럽지 않습둥. 그리구 몸을 닦구 세 구멍을 막구 굳어진 손발을 주무르구 수의를 입히구 하자문 그만한 값두 눅은게꾸마. 다른데서는 5,6백원두 달라할겝꾸마.”

동생이 주저하는데 안해인듯한 자웅눈녀인이 손을 저었다.

“그냥 그 값대루 하시오”

지금은 이전과 달리 많은 남편들이 안해들 손에 쥐여 불에 탄 개가죽처럼 오그라들어 산다더니 이 집에서도 결정권은 안해한테 있는것 같았다. 덕철이가 녀인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고복은 자체루 하겠습둥 아니문 내가 다 하랍둥?”

“고복이라니? 그건 또 뭘 하는겝니까?”

“혼을 부르는걸 말합꾸마.”

“혼을 부르는것두 따루 돈 받습미까?”

“다른 집에서는 값을 따로 받지만 난 값은 따루 받지 않겠습꾸마.”

“그럼 거기서 부르시오.”

지금 사람들은 거의 다 이렇다. 가는 사람이 편안히 가라고 비통한 마음담아 망인의 가족에서 나서 고복을 하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또 할줄 아는 사람도 별반  없다. 그렇다고 안해도 되겠느냐 하면 또 모두 해달란다. 그것도 죽은 사람을 생각해 서라기보다는 산사람한테 화가 미칠가봐서였다. 보아하니 이 집에서도 돈을 따로 받는다해도 덕철이더러 하라 했을것이였다.

“렴습이 끝나면 시신을 저레 화장텀에 보내겠습둥 아니면 집에 두겠습둥?”

손님은 아무 고려도 없이 손을 내저었다.

“끝나는대루 화장텀에 보내겠습꾸마.”

지금은 어느 집이나 거의 다 이렇다. 례일(礼日)을 받아 3일장을 하는 집은 거의 없다. 그저 사진을 갖춰놓고 제상을 차례두면 그만이였다. 예전처럼 장사를 지내기 전에 친지들이 망인의 시신옆에서 밤을 새우는 경야(经夜)라는 례의도 없다. 곡을 하는것도 제멋대로다. 상례대로라면 조문객이 찾아오면 상주는 “애고. 애고.”하고 조문객은 “어이. 어이.”하고 곡을 해야 하나 뒤바꿔 곡을 해도 틀리는줄마저 모른다. 많은 집들에서는 상주가 아예 곡도 하지 않고 지어 웃는 얼굴로 조문객을 맞는다. 조문객들도 망인의 제상에만 례를 행하고 상주에게는 례를 행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에는 복인(服人)(상복을 입은 사람)이 아닌 친족, 친지, 마을좌상중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있으며 초종범절을(初终凡节)(초상을 치르는데 관한 모든 처리) 맡아서 진행하는 호상(护喪)을 내세웠으나 지금은 그런 례의를 갖추는 집도 없다.

덕철이는 화장터에 령구차를 한시간후에 도착하도록 련락하고는 제꺽 일에 달라붙었다. 그는 먼저 망인의 나이와 이름, 직위를 묻고는 속옷을 달라해서는 북쪽창문을 열어제끼고 옷을 내저으며 혼을 불러주었다. 혼도 되는대로 대충대충 불러주는것과 전통적인 상례방식대로 정성다해 부르는 두 가지가 있다. 농촌에서는 지붕우에 올라가 부르나 도시에서는 북쪽창문을 열고 부른다. 창턱에 올라서서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안섶을 잡고 크고 긴 목소리로 웨치는데 망인이 남자라면 성명과 년령, 직함을 웨치고 여자라면 주소, 본관, 성씨를 웨친후에 “복!복!복!”하고 세번 웨친다.  제대로 하자면 시끄럽기도 하지만  덕철이는 언제나 듣는 상주들이 편하고 마음에 닿도록 정성을 다해 불렀다. 수의가게에서 일하다보면 감장강아지로 돼지를 만드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덕철이는 그렇게 한적이 없었다. 돈을 벌어도 량심적으로 벌어야 한다는것이 순후한 덕철이의 신조였다.

옛날에는 처녀총각이 죽었거나 결혼은 했으나 제명에 죽지 못한 젊은 사람은 한이 맺혀 아귀신이 되여 집사람들을 불러간다고 귀신이 되지 못하게 사람들이 많이 밟고다니는 길 한가운데 묻기도 했으나 지금은 모두 화장하니 그런 일도 없었다.

혼을 부르고나서 덕철이는 렴습을 시작했다. 렴습에도 소렴과 대렴이 있는데 소렴은 사망된지 이틀째되는 날 아침에 수의를 입히는것을 말하고 대렴은 소렴을 끝낸 이튿날 즉 사망한지 3일 새벽에 입관하는 의식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이런 절차도 다 사라졌다. 그저 할수 있는것만큼 한꺼번에 해버리면 그만이다.

덕철이는 대야에 물을 떠다 시신을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 먼저 눈을 내리쓸어 감게 하고 일그러진 입을 바로잡아 놓았다. 시신은 오물이 말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으나 그래도 깨끗해질 때까지 닦고 또 닦았다. 피와 오물이 나오지 않도록 탈지면으로 망인의 코와 귀, 항문을 틀어막았다. 수의만 입혀놓으면 이런 일은 했는지 안했는지 상주들이 알바 없지만 그래도 덕철이는 언제 빼먹은적이 없었다. 이 망인은 죽은지도 여러날 지나 이미 오물이 나올대로 다 나왔지만 제명에 죽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라 여겨서인지 그래도 절차를 빼먹지 않고 막을 곳은 다 막았다. 몸을 깨끗이 닦은후 먼저 새 속옷을 아래도리로부터 입히고 그우에 수의를 입힌후 양말을 신기고 장갑을 끼워주고 몸을 반듯하게 바로잡아놓았다. 손과 팔다리를 바르게 뻗도록 한참 주무른 다음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발끝이 위로 향하게 하고 두 팔을 몸통에 나란히 붙여 평온한 모습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는 렴포로 어깨, 허리, 발목쪽 세곳을 묶어놓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시신의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도록 눕히고 흰베로 얼굴을 가리운후에 홑이불을 달라해서는 머리까지 덮어주었다.

덕철이는 일을 마치고 나와 상주들과 물었다.

“이제 령구차가 오문 시신을 내려가야 하는데 재비루 내려가겠습둥 아니문 우리 내려 가람둥?”

동생이란 사람이 인제야 주인인듯 도끼눈을 했다.

“4백원안에 그 값까지 다 들어있는게 아임둥?”

“시신을 내려가는 값은 따로 내야 합꾸마. 미덥재이문 딴데 가 물어봅소.”

자체로 내려가자면 또 자기남편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던지 자웅눈녀인이 앞질러 말했다.

“거기서 내려갑소. 얼마를 받습미까?”

“내 혼자는 안되니까 사람 하나 더 불러와야 합꾸마. 5층이니까 한사람한테 적어두 백원씩은 줘야 합꾸마.”

5층에서 내려가자면 더 불러도 되였으나 덕철이는 받을만치 불렀다.

자웅눈녀인은 시끄럽다는듯 손을 내저으며 그대로 하라고 했다. 친척들이나 형제들이라 해도 시신을 들어나르는 일은 모두 꺼려했다. 더우기 시신을 나르다가 혹 허리나 발목을 다치거나 이튿날 갑자기 앓아눕기라도 하면 아무리 치료해도 낫질 않아 평생 고생한다는 미신을 믿어서인지 이런 일은 되도록 피하려 했다. 이젠 모두 호주머니가 딱하게 곯지 않은이상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니 이런 일은 자연히 덕철이네가 해야 할 몫이였다. 그렇다고 물어보지 않고 먼저 들어내려가면 돈을 더 내라느니 안주겠다느니 시비가 생기게 된다. 하기에 이런 일도 사전에 똑똑히 말해두어야 했다. 덕철이네가 하는 일은 일마다 돈과 관계되여 모두 맺고 끊어야 했다.

덕철이는 이웃 수의가게에서 일을 보는 성국이한테 핸드폰을 쳤다. 수의 가게들에서는 심부름군을 보통 한 사람씩밖에 안쓰는지라 그들은 일손이 필요할 때면 서로 불러다 손을 맞추며 함께 돈을 벌기도 했다. 얼마후 성국이가 왔다. 령구차도 도착했다. 그들 둘은 령구차의 담가에 시신을 들어올려 층계를 굽이굽이 조심스레 돌며 내려다 령구차에 실었다.

상주가 결산하고 차에 오르며 날돈을 떼운듯 덕철이한테 투박하게 말했다.

“래일 일찍 화장하겠으니 사진을 꼭 오늘내로 해야 합꾸마예?”

“근심맙소. 꼭 오늘내루 됩꾸마.”

령구차가 떠났다. 상주들이 탄 승용차가 그뒤를 따랐다. 수십년 함께 살아온 사람이 죽은 후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길을 보낸다고 상주들이 더러 령구차에 함께 앉아가야 하는데 많은 집들에서는 꺼려서인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집에서도 령구차는 따로 가고 상주들은 승용차에 앉아 뒤를 따른다. 저승길과 인생길은 저렇게 융합되지 않는건가? 덕철이는 떠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농촌이나 도시에서나 이전처럼 7일장이나 5일장 같은건 자취감춘지 오래고 3일장을 하는 집조차 거의 없다. 어른이나 젊은이나 모두 죽은 이튿날로 급급히 화장해버린다. 이것도 시대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관념이 진보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인정이 매말라서인지 모를 일이였다. 그런데 다른 민족들은 이튿날로  화장해버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덕철이네는 택시에 앉아 가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도시 서쪽다리를 건너며 보니 다리아래 잔디밭에서 숱한 남녀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트럼프치기 아니면 화토치기를 하고있었다. 다리남쪽 강뚝에서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장기를 두기도 하고 한담하기도 했다. 시신을 렴습하러 이젠 이 다리를 수없이  지나다니며 보아도 저렇게 날마다 한가하게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줄어들줄 몰랐다. 그런 사람들이 또한 거의 다 우리 민족들이였다. 아마 모두 외국가 돈은 벌고 와서 할 일은 없고 하니 신선세월을 보내는것 같았다. 아니, 할 일이 없는것이 아니였다. 힘들고 어지럽고 낯이 깎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공무원직마저 버리고 나가 돈을 벌고 돌아온 사람들도 원직은 다시 회복할수 없고 눈에 안차는 일은 하기 싫고하니 자연히 저 대오에 발을 들여놓는다. 밤이면 무도장, 안마방, 술집, 커피숍에서 “인생”을 만끽한다. 날마다 빈둥거리며 신선세월을 보내다 벌어온 돈을 다 비벼쓰면 울며 겨자먹기로 또 외국에 나가 뼈갈이를 해야 할것이다. 그러다보면 너남이 내 형님처럼 고질병이 들어 제명이나 살겠는가.

덕철이는 계속 이 일을 하느라면 이제 언젠가 저기서 빈둥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손이 가야 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다. 죽는 사람이 많을수록 수의가게를  꾸리는 사람들한테는 돈 벌 기회가 차례지겠지만 제명에 죽지 못하는 우리 민족들이 많아지는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3
 
어느듯 추분이 다가왔다. 그래도 비자는 강에 돌 던진 격이였다. 나는 외국에 가지 말라는 팔자인가? 왜 남들처럼 일이 술술 풀리지 않지? 그렇다고 어디가 해볼 곳도 없었다. 수속을 넣은 려행사에 물어보면 그저 기다리라고만 한다. 덕철이는 공연히 홰가 치밀었다.

오늘도 덕철이가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있는데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키가 훤칠한 손님 한분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쇼ㅡ.”

덕철이는 제꺽 일어나 앙골라머리를 쓸어넘기며 반갑게 맞았다.

“내 동생이 갑자기 죽었는데 당신 지금 나하구 같이 가기오.”

첫마디부터 일군을 부려먹는 명령조다. 말하는 투를 보니 큰 간부 아니면 큰 부자 같았다. 덕철이도 이젠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다보니 찾아오는 사람들 신분을 열에 아홉은 알아맞출수 있었다.

“지금 당장 가시겠습둥?”

“다시 물어봐야 알겠소?”

손님이 거적눈을 흘겼다.

“그런데 저, 수의나 사진이나 무슨 상사에 수요되는것은 없으신지…”

수의가게에 찾아오면 모두 수의부터 찾고 사진을 맡기는데 이 손님은 까먹었는지 그런데는 한마디 말도 없다. 슬프고 급한 마음에 잊고 있다면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건 다 필요없소. 사람만 가면 되오.”

덕철이는 모를 일이라는듯 고개를 걔웃하며 필요한 도구들을 갖춰들고 손님을 따라 나섰다. 손님이 몰고 온 차는 대단히 고급승용차였다. 이런 차를 “뻔츠”라 하는지 “뽀마”라 하는지 하여간 전에는 자주 타보지 못한 차였다. 그것이 공가차인지 개인차인지 덕철이가 상관할바가 아니였다.

그들은 강남 한 아파트단지에 이르러 차에서 내렸다. 밖에서 기다리던 귀부인 차림을 한 녀인이 다가왔다. 목에서, 귀에서, 손가락에서 모두 황금빛이 번쩍인다.

“어째 밖에서 기다리는거요?”

양복손님의 말에 귀부인이 눈을 할기죽했다.

“그래 죽은 사람과 혼자 집안에 같이 있으라고요?”

양복손님은 더 말이 없었다. 덕철이는 그들을 따라 1단원 3층으로 올라갔다. 손님이 열쇠를 꺼내들고 동쪽집 문을 열었다. 집안에서는 술내가 진동했다. 널직한 객실에 술상이 그대로 놓여져있는데 먹다남은 명태와 낙지 기타 마른 안주감들이 지저분히 널려있었다. 굽높은 유리고뿌 두개에 돈많은 사람들이 잘 마신다는 서양술인지 아니면 맥주인지 누끄무레한것이 밑굽에 조금씩 남아있었다.

“저 방이오.”

양복손님이 동쪽방을 가리켰다.

덕철이가 들어가보니 침대에 누워있는 시신에 이불이 폭 씌여져있었다. 덕철이가 다가가 이불을 살며시 당겨보았다. 삼검불 같은 머리칼이 드러났다.

“이크, 여자네…”

덕철이는 시신얼굴을 얼핏 보고는 바삐 그대로 돌아나왔다.

“상세난 분이 젊은 여자분 같구만요…”

“내 동생인데 불세루 저렇게 됐소. 당신넨 여자시신은 처리안하오?”

덕철이를 데리고 왔던 양복손님이 퉁명스레 물었다.

“안 하는건 아니지만 젊은 여자분이여서 손을 대기가…”

덕철이도 적지 않은 녀인시신을 렴습해 보았지만 할 때마다 어쩐지 손이 떨렸다. 제명에 돌아간 나많은 녀인들 시신을 다룰 때는 그래도 괜찮았으나 제명에 가지 못한 젊은 녀인들 시신을 다루자면 어쩐지 가슴이 떨렸다. 만일 양복손님이 죽은 동생이 젊은 녀자라는걸 똑똑히 말했더면 올지말지를 고려했을것이였다.

“마지막 길인데 여자시신은 그래두  여자분이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하는 말씀입꾸만은…”

전통적으로 망인이 남자면 남자가 수의를 입히고 녀자면 녀자가 수의를 입히게 되여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그런것도 별로 따지지 않는다. 제 명에 죽은 녀인은 상주들이 덕철이가 손을 댈것을 요구하면 덕철이도 군소리없이 렴습하군 했었다. 그런데 제 명에 죽지 못한 젊은 녀자들 시신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 오늘도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말은 제대로 해야 했다. 덕철이가 양복손님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자 양복손님은 곁에 선 귀부인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마주치자 귀부인이  발끈했다.
“나는 왜 보는가요? 그래 내가 손을 대라는건가요?”

“그래두 나젊은 여동생몸인데 마지막가는 길에 낯선 남자한테 맡긴다는것두 그렇긴 하구…”

“저 시누이 몸을 본 스나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저런 주물럭 몸을 남자가 한번 더 본들 큰 일 나는가요?”

양복손님이 도끼눈을 하며 버럭 화를 냈다.

“불쌍히 죽은 사람을 놓구 무슨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하는거요?”

귀부인이 양복손님 턱밑에 달라붙으며 잇새로 말을 내뱉았다.

“어디 죽은담에만 말하는가요? 살아있을 때에두 내나 당신이나 얼매나 일깨워 줬어요? 돈벌라 간 남편이 곁에 없다구 그렇게 스나들과 분별없이 섭쓸려 다니지 말라구. 그래두 어디 말을 듣습데까. 당신두 알잖아요. 이 몇년간 저 시누이와 놀아난 스나들걸 다 떼내문 한 빼크는 될거라는걸…”

“그 주디를 다물지 못하겠소?...”

남을 앞에 세워놓고 악담을 퍼붓는 안해가 민망스러운지 양복손님은 덕철이를 흘끔 바라보며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귀부인은 “주디”를 다물다 덕철이를 보며 말했다.

“돈을 곱절 줄테니 그냥 손을 대세요.”

덕철이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양복손님을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오빠가 직접 나서 손을 댈수도 없다고 여겼던지 양복손님은 주저하다 그대로 하라고 턱질했다.

“그럼 내 손을 대겠습꾸마예?... 곱절이면 적어두 6백원은…”

덕철이가 송구스럽게 말하며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귀부인이 그대로 하라는듯 꽈배기같은 금가락지 두개를 낀 하얀손을 내저었다.

“…저 수의같은건?...”

“평소에 즐겨입던 옷을 입히면 돼요. 저기 옷가지들이 있잖아요.”

귀부인은 쏘파를 가리키며 눈굽을 찍었다. 말은 말투레질처럼 하다도 속은 쓰린건가. 덕철이가 다가가 쏘파에 놓여있는 옷들을 그러안았다. 속옷부터 겉  옷까지 말짱 새것이였다. 또한 모두 고급이였다. 자기네가 파는 제일 비싼 수의보다도  열배는 더 비쌀것 같았다. 그래서 수의를 안산건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어볼 엄두조차 못낼 이 비싼 옷들을 다 태운다는것이 여간 아까운 일이 아니였다. 순간 덕철이 눈에는 토스레옷을 입고 사래긴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일하는 안해가 보였다. 덕철이는 웬지 울컥해나며 눈굽이 젖어들었다.

 덕철이는 그 옷들을 걷어안고 다시 방문을 떼고 들어갔다.

죽은 녀인을 보니 얼굴이 밀랍같았다. 꽤나 반주그레하게 생겼는데 40도 되나마나해 보였다. 옷을 벗기며 보니 이상하게도 온몸 여기저기에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브래지어가 벗겨져있는 풍년두부모같은 하얀 젖에는 험하게 할킨 자리가 나있었다. 아래도리도 마찬가지였다. 목에도 눌리운 자리가 검붉게 나있었다. 다시 살펴보니 혀도 빠금히 가로 나와 있지 않는가. 덕철이는 화뜰 놀랐다. 이는 병들어 급사한게 아니라 남의 손에 죽은것이 분명했다. 무슨 원한이 있는지 두눈도 펀히 뜬채 천정을 퀭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살아있을 때에는 그 눈이 애교스럽고 아름다워 숱한 남정들을 홀렸겠지만 지금은 어딘가 날이 선듯한 그 눈을 바라보는 덕철이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그는 황급히 방을 나섰다.

“저기…저기요…그저 일이 아닙꾸마…”

양복손님과 귀부인은 황황히 허둥대는 덕철이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거요?”

“…저분이 병으로 급사한게 아니라 남에게…남에게…”

“뭐라구?”

“온몸 여기저기 퍼렇게 멍이 들구 목에 눌리운 자리두 있구 혀까지…”

“그럼 내 동생이 억울하게 어느 놈한테 죽었단 말인가?”

양복손님의 거적눈이 단통 왕개구리눈이 되였다.

“그런것 같습꾸마…들어가 보십소…”

양복손님이 안방에 달려들어가 녀동생의 시신을 여겨보더니 고개를 하늘로 돌렸다.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쭈루룩 흘러내렸다. 양복손님이 돌아져 나왔다. 그는 주먹으로 자기 손바닥을 탕탕 쳐댔다.
“이게…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그러잖아두 불쎄루 죽으니 이상하다 했더니…”

“그러게 내가 뭐라 했습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놀아대단 언젠가는 어느 스나들 손에 죽을지 모를거라구.”

“또 그 주디를 너펄거리겠소?”

화난 귀부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귀에서 쇠굴레같은 귀걸이가 용을 쓰며 번쩍거렸다.

“…보셨습지?...이건 내가 처리할게 아니라 공안국에 알려야 할것 같습꾸마…”

덕철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간 덕철이가 많은 시신을 다루다보면 종종 의심스러운 시신들이 있어 중도에서 일손을 거두군 했다. 헛탕을 치더라도 말밥에 오를 짓은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 날은 아주 재수에 옴이 붙은 날이였다. 오늘도 께름한 젊은 여자시신을 보고도 6백원을 날리게 됐다.   

“살았을 때 숱한 스나들과 붙어다녔으니 어느 스나 손에 죽은줄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 그냥 처리하게 하세요…”

양복손님이 귀부인을 흘겨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것두 말이라구 하오? 혼자 오죽 고독하면 그렇게 했겠소? 쟤가 정말 남의 손에 죽었으면 천당에 가서두 눈을 감겠소? 억울해서인지 지금두 눈을 펀히 뜨구 있지 않소?”

“그럼 어쩌겠어요? 공안국에 알리문 이걸 조사한다 저걸 조사한다 하며 우리를 적게 들볶겠어요? 그 성화를 누기 받아내겠어요? “

양복손님이 눈을 부라리며 침방울을 튕겼다.

“당신 동생이문 그런 말이 나오겠소? 강아지새끼 죽어두 영문을 캐는데 펀펀하던 사람이 남의 손에 죽었다는데 그만 두라니…아까부터 보자보자하니…”

“동생이 그렇게 불쌍할게면 왜 살아 생전에 온 시내 돌개바람 다 피우지 못하게 잘 교육 못했어요?”

“당신… 당신…”

양복손님은 귀부인을 손가락질하며 화가 나 뒤말을 잇지 못했다.

앙칼스러운 말은 의사도 치료하기 어려운 상처를 낸다는데 덕철이 듣기에도 귀부인이 너무 했다. 생전에야 어떠했든 죽은 사람 들어도 이를 갈며 돌아누울 저런 말을 어떻게 함부로…관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 말라했는데…

화사하게 화장한 얼굴에 열기오른 귀부인이 덕철이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천원 줄테니 그냥 처리하세요.”

천원? 와, 천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였다. 덕철이는 여태까지 숱한 시신을 렴습해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보지 못했다. 돈만 생각하면 눈을 질끈 감고 주인들이 하라는대로 할수도 있었겠으나 그래도 덕철이는 시비경우가 발랐다. 저 시신은 분명 자기가 다룰 시신이 아니였다.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저 시신은 제가 다룰게 아닙꾸마. 아마두 경찰들이 와서 봐야 할것 갔습꾸마…그럼 난 가보겠습꾸마…”

덕철이는 이렇게 떠듬거리며 도구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려 했다.

“아이, 이봅소. 돈을 싫어하는 사람 다 있습미까?...돈이 적으면 오백원 더 줄게요…”

덕철이는 잠간 걸음을 멈칫했으나 못들은척 그냥 문을 나섰다. 뒤에서 양복손님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기오. 공안국에 가 신고하기오…”

“신고할테면 당신 혼자 가세요…”

“당신 그냥 이렇게 나올거요?...”

덕철이는 그네들의 다툼소리를 뒤에 남기며 급급히 층계를 내려섰다.

저녁에 덕철이는 다른 가게에서 일하는 성국이를 불러 함께 한잔 했다. 재수에 옴이 붙은 날에는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그대로는 잘수 없었다.

“동생두 오늘 나갔더랬수?”

덕철이가 술을 따르며 덤덤히 물었다. 성국이가 덕철이보다 두살 아래라고  호형호제하는 처지다.

“말두 마우. 오늘 나두 재수에 옴이 붙었다니까. 썩은 여자시신 주물렀다니까.”

성국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덕철이가 성국이를 쳐다보았다.

“젊은 여자가 죽어 엎어져있는걸 번져보았더니 한쪽 얼굴이 다 썩어 구데기 와글와글 하는게 아니겠소…온 몸두 물렁물렁하구…에익, 지금 생각해도 속이…’”

“그럼 죽은지 적어두 반달이상 되겠구만.”

일하다보면 덕철이도 더러 부패해진 시신을 주물러보았다.

“후. 모두 돈은 벌었다만 왜 사는게 이꼴인지 모르겠다니.”

덕철이는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냈다.

“동생은 지난달에 몇번 나갔소?”

“아마 한 40번쯤은 나갔을거요. 헝님은?”

“한 쉰번쯤 나갔을거요.”

“제명에 못죽은 사람 여나문 되지?”

“그렇채이쿠. 달마다 비슷하단데.”

“그런데 다른 민족들은 제명에 죽는데 우리 민족은 왜 제명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소?”

“40, 50대에 죽는 사람들이 푸술하지 않소. 외국에 나가 을병이 들어 돌아와 앓다 죽는 사람, 가정이라는게 없이 술이나 퍼먹으메 되는대로 살다 죽는 사람, 과부, 뽀톨이 제멋대루 붙어 놀아나다 남의 손에 죽는 사람, 그런데 우리 그런 사람들 돈을 번다는게 께름하기두 하오.”

다른 가게들에서도 달마다 적지 않은 시신을 다룰것이였다. 어디 이뿐인가. 이젠 교를 믿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져 그런 사람들은 죽어도 우리 민족 전통 상례대로 하지 않는다. 생전에 자기들이 믿던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의 상례절차로 의식을 행하게 한다. 그렇게 종교의식대로 상례가 행해진 사람들까지 망라하면 제 명에 죽지 못한 사람들 수가 훨씬 더 많을것이였다.

“생각하문 사람사는게 다 개××같소. 동생두 봤겠지만 새 아파트마다 밖에 위성접수기가 다닥다닥 나붙은걸 보문 집 산 사람들이 거의 다 우리 민족들인데 그런 집안에 온전한 가정이 몇이나 있습데?...그런 집들에 이제 우리 손이 가야 할  후보 귀신들이 한둘이 아닐게우…”

 “그런데 외국나가 돈을 그렇게 벌었다는 사람들이 왜 돈벌이에는 투자를 안한다오? 헝님두 알다싶이 조선족수의점이라는 간판은 버젓이 내걸어두 로반은 열에  아홉이 다른 민족들이 아니우. 헝님네 로반두 그렇구 우리 로반두 그렇구…”

“만만디 다른 민족들이 쾌쾌디 우리 민족을 찜쪄먹는다니까.”

“이 일두 께름해 그렇지 돈벌이는 어느 벌이보다 더 잘되지 않소. 로반은 그저 척 꾸려만 놓구 결국은 우리가 돈을 벌어주는게지. 우리두 돈을 벌지만 큰돈은  로반이 챙기지 않소. 체면이구 뭐구 난 돈이 있으문 이런데 투자하겠소.”

“후, 우리 민족은 체면을 중히 여겨 굶어죽어두 겨떡은 안먹구 얼어죽어두 겨불은 안쬔다는 심사지.”
“그래두 외국가서는 처녀불알 파는 일두 다 한다지 않소.”

“여기서두 그렇게 내번지구 하문사 제 가정두 지키구 제 입살이두 얼마든지 할만 하지. 지금 다른 민족들이 여기서 벽바르기와 벽돌쌓는 미쟁이일을 하면서 하루에 5,6백원씩은 번다지 않소. 농촌에서는 밭이나 과수원이 거의 다 남의 손에 들어가구. 하여간 보이지 않는 안에 돈은 다른 민족들이 다 벌어간다니까…

“앉은 자리에서 그렇게 벌문사 외국가기보다 못하지 않지무.”

그들 둘은 서로 권커니작커니 하며 부지런히 잔을 냈다. 제집 일도 아닌데 왜 자기들 속이 이처럼 와자자해나는지 자기들도 딱히 뭐라고 말할수 없었다.

성국이가 한잔 비우며 물었다.

“헝님 외국비자는 어째 지금두 감감 무소식이오?”

“어느눔이 쌤싸먹었는지 종무소식이오. 이젠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지지두 않소.”

굶은 아이 굿하러 간 엄마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지친듯 시간이 오래니 덕철이는 언제부턴지 거기에 별로 신경이 씌여지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던 출국열이 왜 비맞은 불처럼 이렇게 사글어지는지 자기도 딱히 모를 일이였다.

그들 둘은 간단한 안주에 술 한병 비우고는 자리를 떴다. 래일 일에 지장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길할, 오늘 6백원을 허망 떼웠다니까…아니 천소시돈을…그 돈이면 아 학비를…”

덕철이는 돌아오면서도 놓쳐버린 큼직한 인민페 여나무장이 머리속에서 그믈그믈 날아다녔다. 그는 화가 나는지 앙골라머리를 빡빡 쓸어넘겼다.


 
4
점잖아 보이는 손님 한분이 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쇼ㅡ.”

덕철이가 앙골라머리를 쓸어넘기며 반갑게 맞았다.

들어온 손님은 아무말도 없이 가게안을 휘 둘러보기만 했다.

“뭐가 수요되시는지…”

손님은 덕철이쪽으로 몸을 돌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뭘 당장 살려는건 아니구… 좀 물어볼게 있어서…”

덕철이는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로 열정적으로 말했다.

“물어볼게 있으문 물어보십소. 내 아는게라문사…”

아무것도 사지 않으며 이렇게 들어와 그저 이것저것 묻기만 하다 가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덕철이는 언제나 깍듯히 대했다. 그런 손님들 가운데 큰 일거리가 숨어있을 수도 있었다. 일없이야 백화상점도 아닌 이런 가게에 누가 발을 들여놓겠는가.

“여기서 멜레하구 골회 처리하는 일두 하는지 해서…”

“예ㅡ.그런것두 다 합꾸마. 무슨 처리할 일이 있습둥?”

큰 벌이가 생길듯 했다. 덕철이는 대뜸 화색을 띄우며 걸상을 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마주 앉으며 천천히 이야기하라고 권했다.

손님이 미안스레 그 걸상에 앉으며 말꾸러미를 풀었다. 들어보니 돌아간지 30여년되는 부모들 산소를 파내고 골회를 처리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문의였다. 집에서 형제들이 모여앉아 토론도 해보았으나 나이 들어도 구체적인 상례를 몰라 체면을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단다. 왜 부모들 묘지를 파헤치느냐는 덕철이가 물을 일이 아니였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오래니 효성을 다했다고 여겨서 그럴수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점을 쳐보고 가정화를 막으려고 파헤치는 경우도 있었다. 더우기 지금은 어지간한 산더기도 개발하고 별장을 짓는다고 거기에 있던 오랜 묘지들을 정부의 명의로 기한내로 옮겨가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부모들 합장한겝둥 아니문 따로 매장한겝둥…”

“전에 다 따로 매장했습지. 후에 한다한다하메 결국 합장은 못했습꾸마. 멜레하는데두 무슨 규칙이 있습니까?”

“있습지. 제대루 하자문 꽤나 품이 들어야 합꾸마.”

세간에서는 묘를 파내 옮기는것을 “멜레”라고 하는데 표준적으로는 파묘(破墓)라 한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전통적인 의식대로 하자면 파묘하기전에 먼저 토지신에게 술을 붓고 신고제를 지내면서 그간 별고없이 조상님을 지켜주신 토지신의 로고에 감사를 드리고 파묘할데 대한 신고를 올린다. 그리고는 파묘할 묘에 제를 지내면서 “모년 모월 모일에 모손 모는 존령께 고하나이다. 이곳에 장사지낸지 너무 오래 되여서 체백(体魄)이 편안치 못할까 렴려되여 다른 장소로 옮기고자 하오니 존령께옵서 놀라지 마시옵소서.” 하는 식의 축문을 올려야 한다. 연후에 삽으로 묘의 서쪽부터 한번 찍고 “파묘!”하고 웨치면서 사방을 찍은후에 흙을 파낸다. 관이 드러낼 때에는 조심하여 헤쳐야 한다. 관을 열어 혹 시신의 살이 잘 썩지 않은 곳이 있으면 대나무칼로 긁고 털어낸후에 뼈를 하나하나 조심스레 빠짐없이 주어 미리 준비해놓은 칠성판에 원모양대로 올려놓는다. 그래야 뼈를 빠짐없이 다 주어냈는지 쉽게 알수 있다. 뼈가 다 놓여지면 긴 삼베로 칠성판과 함께 머리쪽에서부터 감는다. 만일 다른 곳에 옮겨 묻지 않고 화장하려면 칠성판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뼈만 주어 깨끗한 보에 싸서 화장터에 보내 화장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상례(丧礼)를 따르는 집이 거의 없다. 혹 파묘한다 해도 그저 후레자식 이붓아비 뫼를 벌초하듯 되는대로 파내서는 굵은 뼈만 대수대수 주어 비닐주머니에 넣어 옮기거나 화장해 버린다. 그래도 아무런 불효감도 느끼지 못한다.

손님은 들을수록 귀가 열리는지 아니면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제절로 하자면 꽤나 복잡하구만. 저, 여기서 해주면 값은 어떻게 받습니까?”

“집(묘지) 한채 파고 처리하는데 보통 천원씩 받는데 거리와 현지정황을 보아 좀씩 오르내립꾸마”
“그럼 두채에 2천원좌우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뿐이 아닙지. 다른 곳에 집을 새롭게 쓰려면 품도 많이 들고 돈도 적지 않게 들어야 합지. 뼈를 파내 화장해도 화장비두 들어야 하구 골회함값두 써야 할게꾸마.”

“골회를 처리하는데두 골회함을 써야 합니까?”

“그럼 그저 써료주머니에 넣어 처리하겠습둥? 그러문사 자식된 도리 아입지.”

손님은 뭔가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화장한 골회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습니까?”

골회를 잘 처리하는것도 조상에 대한 후손의 효심과 공경심을 표달하는것이다, 골회처리에도 몇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보통 두가지 방법을 쓴다. 한가지 방법은 산에 들어가 여러해 자란 큰 소나무를 찾아 그 나무밑에 묻는다. 뜻인즉 “나를 이 세상에 태여나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덕은 송죽처럼 사철 푸르고 이 세상에 오래오래 전해가시라.”는 뜻이다. 두번째 방법은 두 강물이 합치는 어느 합수목을 찾아 물에 띄워 보낸다. 뜻인즉 “인간세상을 뜨신 후에라도 태여나신 고향에도 가보시고 생전에 못하신 세계유람두 해보시며 극락세계에서 쾌락히 보내시옵소.” 하는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 책이나 문건의 정의가 아니라 그저 산사람들의 소박하고 공경스러운 마음일 뿐이다.

“골회를 저레 화장텀에서 화장하는대로 날려보내문 어떻습니까? 우리 집 사람은 남들도 그렇게 하더라며 그게 편할거라 하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돈도 적게 들고 번거롭지 않을뿐만 아니라 고인이 하늘로 편히 올라간다고 여기는 원인에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천진하고 고지식하다. 지금 어느 구석인들 량심을 팔아먹지 않은 곳이 있는가. 화장터에서 돈은 돈대로 받고 그 골회들을 어떻게 처리한다는 내막을 알면 사람들은 기절초풍할것이다. 그런 내막들을 잘알고 있는 덕철이는 손님들이 그럴 생각이 있어 하는것 같으면 “남한테 맡겨 시름이 놓이느냐, 그래도 자기들 눈으로 보면서 처리하는게 좋을게꾸마,”고 권고한다. 돈은 좀 들더라도 마지막 불효는 저지르지 말라는 충고에서였다. 그렇다고 남들이 모르는 화장터의 “잠재규칙”을 사람들에게 곧이곧대로 터놓을수는 없었다. 그러면 자기 머리에 언제 무슨 봉변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였다. 이 일을 하면서 화장터와 련계할 일들이 많은데 관계가 버성겨지면 자연 돈벌이에 영향을 주지 않을수 없는 노릇이였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감출것은 감추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내 딴말은 하지 않겠습꾸만은 그래도 청명이나 추석, 중양절같은 날을 받아 제 눈으로 보며 처리하는게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하는 효도일게꾸마.”

손님은 손바닥을 비비며 덕철이를 한참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들었습니다. 제대로 하자면 생각보다 많이 까다롭군요. 내 집에 가서 잘 의논해보구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덕철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바래며 시원스레 말했다.

“그렇게 하십소. 구체방법은 다 말씀드렸으니 재비루 하시든지 아니문 우리 손이 필요하문 다시 찾아오십소.”

“정말 감사합니다.”

손님도 덕철이의 진정을 알았는지 깊숙히 허리굽혀 인사하며 나갔다.

지금 세상에 어디에나 “잠재규칙”이 있듯 돈벌이를 위해 자기들이 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손님들에게 털어놓지 않는것이 수의가게의 “원칙”이다. 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덕철이는 자기가 아는대로 다 말해준다. 그래서 손님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자체로 해도 무방했고 자기네를 다시 찾아오면 고마왔다. 그렇게 다 말해줘도 왔다간 손님들은 열에 아홉은 다시 와서 덕철이네 손을 빌군 했다. 부모께 마지막으로 효도하고저 상례를 아는 사람을 청해 순서있고 절차있게 행하자는 이도 있고  자기들이 하자니 번거롭고 시끄러워 돈으로 편하게 하자는 이도 있었다. 덕철이가 수의가게의 “잠재규칙”을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다 말해주어 다른 수의가게들의 눈총을 받고 말밥에 오르기도 했으나 덕철이는 그저 못들은척 했다. 이는 화장터의 관계처리와 성격이 다르므로 감출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며 보느라면 눈꼴 사나운 일들도 비일비재다. 어떤 자식들은 합수목에 가서도 부모들 골회를 부모가 준 손으로 뿌리려 하지 않는다. 한줌한줌 정성들여 쥐여 뿌리는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듯 강변에 왈칵 엎어놓기도 하고 왕자갈을 던지듯 한꺼번에 강에 와락 뿌려던지기도 한다. 골회함도 깨끗이 태워서 재를 강에 띄워보내는것이 아니라 돌로 망탕 쪼개서는 그 쪼각들을 그대로 강에 훌훌  던져버리기도 한다. 아니면 아예 덕철이네한테 맡겨놓고 자기들은 들놀이를 나온듯 강변에서 웃고  떠들며 술이나 퍼마시다 얼근해 비틀거리며 간다.

천당에 간 부모들이 자식들의 그런 불효를 안다면  얼마나 괴로와하고 분통이 터져하겠는가. 그런 자식들이 부모 생전에도 제대로  효도를 했을가고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귀신도 빌면 은혜를 베풀고 마음가짐 잘 먹으면 북두칠성도 굽어본다는데 그런 몰상식한 행실을 볼 때마다 덕철이는 속으로  “호로자식들! 저래구두 일이 잘못되문 조상탓이라 하겠지. 집안귀신이 사람 잡아간다는 소릴 못들어본 모양이구나.” 하고 욕설을 퍼붓군 했다. 집안에 모기가 들어오면 부모는 자식들을 걱정하여 자기를 뜯어먹으라고 옷을 벗고 잔다는데 그런 자식들은 모기가 들어오면 부모들 옷을 벗겨 재울것 같았다. 시대는 몰라보게 발전하고 생활은 해마다  좋아지는데 어쩐지 사람들의 례의와 도덕은 세대세대 땅에 떨어지는듯 했다.

전에는 우리 민족 상례의식이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 형식에 치우친 점도 없진 않았고 어려운 살림형편에 상례를 치르기 위한 비용도 많이 들어 이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낡은것을 모조리 때려부신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농촌에서는 황두막도 없어지고 황두도 사라졌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지고 일상생활 절주도 빨라진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대도시로 갔기에 굳히 낡은 전통방식을 고집할 필요도 없게 되였다. 상례의 의식절차도 오늘날의 현실에 맞도록 행해지는것도 당연지사라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반드시 알고 행해야 할 최저한도의 절차와 의식마저 감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대발전을 따른 좋은 일인지 아니면 민족전통을 잃은 슬픈 일인지?

덕철이도 이 일을 하기전에는 상례에 대해 깜깜부지였다. 오죽하면 20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형들 뒤를 따라 상주로 나섰다가 마을로인들한테서 “후레자식!”이란 욕까지 먹었겠는가.

장기간 병환에 계시던 아버지가 세상뜨시자 마을사람들이 모두 조문을 왔었다. 마을로인들이 찾아와 조문하면서 상주들께 허리를 굽히며 차례로 례를 행했다. 덕철이 차례에 이르자 나젊은 상주라도 깍듯히 대했다. 앞에 선 마을좌상로인이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조상했다.

“부친님 병환이 위중하시더니 상사까지 당하셔서 얼마나 비감하시옵니까.”

덕철이도 황공하게 제꺽 허리를 굽히며 고맙게 례를 받았다.

“무슨, 괜채이꾸마.”

좌상로인의 두눈이 단통 작두눈이 되여 덕철이를 썰어보더니 휙 돌아서 가벼렸다. 그후 마을에서는 “아버지 세상떠 얼마나 비감하겠느냐.” 했더니 아무 꺼리낌없이 “괜챕꾸마.”하는 후레자식이 다 있더라며 덕철이를 욕했다. 그저 별 생각없이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대꾸했는데 그것이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줄은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람들 욕이 옳았다. 아버지가 세상떴는데 괜찮다고 했으니 욕을 먹어 싸지 않은가. 덕철이는 자책감에 한동안 마을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수 없었다. 상사에는 평소의 습관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금물이였다.

덕철이는 비자나오기를 기다리며 시내에 올라와 어쩔수 없이 이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걸음마다 코밥을 먹었다. 숱한 상례의식을 행할줄 몰랐고 사람들이 묻는 상례상식도 대답해 줄수 없었다. 상례란 망인의 령혼을 위로하고 명복을 비는 의식과 절차인데 수의가게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늘 도끼들고 나물캐러 가듯 해서야 어디 될 말인가.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는데 아마도 이 일로 밥을 먹자면 필요한 상례상식을 갖춰야 했다. 관상쟁이 제 관상 못보고 점쟁이 제 점 못친다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후부터 덕철이는 전에 이 일을 하던 분들을 찾아다니며 상례지식을 배웠고 여기저기서 상례문화에 관한 책들도 얻어다 고중생 대학입시 준비하듯 머리를 동이고 탐독하군 했다. 그저 밥벌이나 하자는 심사로 대충대충 응부하기와 알고 하자는 마음가짐이 천양지차였다. 글속에 글이 있고 말속에 말이 있다더니 상례문화도 파고 드니 그 깊이가 한정없었다. 이 일도 배우고 실천하니 점차 소경이 눈을 뜨는듯 했다. 이젠 부근 수의가게에서 덕철이가 한다하는 “상례박사”로 받들렸다. 다른 수의 가게에서 모를것이 있으면  덕철이를 찾아와 묻거나 청해가군 했다. 그저 밥벌이를 위해 되는대로 이 일을 오래한 사람들보다 시간은 길지 않으나 파고들며 알고 일하는 덕철이의 “권위”가 점차 수립되였다. 체면이 깍이는 일이라도 알고 일하니 일하기 편했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모두 만족해했다. 덕철이도 자연 이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되였다. 그저 밥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붙이고 열성스레 일하니 우리 민족이고 타민족이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다른 수의가게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러니 돈벌이도 날따라 잘 되였다. 하지만 남의 밑에서 일하는 처지라 건데기는 물론 주인의것이였다. 상례문화를 캐고들며 갖은 고생을 다하는 덕철이는 국물에 고기부스레기를 얻어먹을 뿐이였다.


 
5

어느듯 이듬해 봄이 되였다. 산과 들은 겨우내 소리없이 자던 잠을 깨고 연한 초록색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며 생장을 서두르는 봄이면 인간은 어쩐지 비달비달하던 몸들이 갑자기 꺼져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 외국비자가 내려온지 퍼그나 되였으나 덕철이는 어쩐지 외국나갈 궁리를 하지 않고 자기하는 일에만 바삐 돌아쳤다. 봄철이면 수의가게 일들이 어느 계절보다도 좀 바삐돌아쳐야 했다. 안해가 “빨리 외국에 나가지 않고 시내서 뭘 꾸물거리느냐?”고 시골에서 독촉이 성화같았으나 덕철이는 마이동풍이다.

어느날 오후, 오전에 렴습을 나갔다가 점심을 대충 먹고 가게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또 일거리가 생기려는건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저쪽에서는 애어린 녀자의 울음소리만 와 하고 들려왔다. 이게 무슨 전환가. 덕철이는 핸드폰에 대고 다시 소리쳤다.

“여보시오. 누구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삼촌…내 미홥다…미화…흑흑…”

“뭐뭐? 미화? 너 그런데 무슨 일이냐? 울긴 왜 우냐?”

덕철이는 졸지에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미화라면 병원갈 때면 종종 이 가 게에 들려 자기를 꾸중하던 형님네 딸애였다.

“…삼촌…흑흑흑…아부지…아부지 상세났습다…와…”

“뭐뭐? 뭐라구?...아부지 상세나다니…”

덕철이는 화뜰 놀라 두눈이 부엉이눈이 되였다.

“…이재…이재 학교에서 집에 와보니 글쎄 아부지 상세난채 침대에 누워있었슴다 …난 이제 어찌랍니까…엉엉엉…”

덕철이는 그만 참나무방망이에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핸드폰을 든채 멍해졌다. 형님이 갑자기 세상 뜨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래서 며칠째 형님이 안보인건가? 나도 일이 바빠 련락을 못했더니.

“…삼촌...삼촌…”

핸드폰에서 울음에 젖은 미화의 애절한 목소리가 련속 울려나왔다. 덕철이는 앙골라머리를 털며 정신을 차렸다.

“어…알았다. 놀라지 말아라. 내 인차 가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는가. 외국가 돈벌고 여러가지 병을 달고 돌아온 형님이 오래 살지 못할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히 돌아갈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제명을 살지 못하고 아까운 나이에 죽는 사람들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더니 우리 가문에도 그런 액운이 뛰쳐나지 않았는가.

덕철이는 서둘러 수의며 렴습에 필요한 도구들을 갖춰들고 문밖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개발구쪽 풍미아파트앞에서 내리니 밖에 나와 기다리던 미화가 달려나와 덕철이품에 안기며 와 울음을 터뜨렸다.
“…삼촌…난 이제 누구와 살랍미까…”

덕철이도 눈물을 쭈루룩 흘리며 미화를 다독였다.

“울지 마라. 이 삼촌이 있지 않냐…그만해라… 어서 들어가 보자…”

덕철이는 미화를 달래며 집안에 들어섰다. 죽은 형님을 살펴보니 몸이 언녕 굳어져있었다. 죽은지 여러날 되였다. 오늘 금요일이여서 미화가 학교 기숙사에서 집에 오니 형님이 사망한걸 발견했지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모를번 하지 않았는가. 자기가 그 숱한 시신들을 렴습하며 왜 사람들이 자기 지기들이 죽은줄 제때에 몰랐는가고 속으로 욕해 보기도 했지만 오늘 자기가 당하고보니 그들을 리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형님의 머리맡에도 술병이 나뒹굴었다. 아마 오래동안 술로 육신의 아픔을 달래온것 같았다. 앓는 몸에 술을 입에 대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전에는 집안에 림종이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집식구들이 깨끗한 옷을 갖춰놓고 림종을 지키거나 유언을 들어주며 단정한 모습으로 존엄있게 세상을 하직하도록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집들에서 사람이 죽을 림박이 되여도 곁에 식구들 그림자조차 볼수 없이 홀로 쓸쓸히 저 세상으로 간다. 그러니 단정한 모습이고 존엄이고 운운할수조차 없는 현실이다. 유언을 남길 사람은커녕 제똥에 매질당하지 않게 곁에서 보살펴줄 사람도 없고 남의 손에 죽어도 곁에서 지켜줄 사람이 없다. 숱한 시신을 렴습하면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동정하고 그런 집 식구들을 속으로 욕했는데 결국 자기 형님도 지금 그꼴이 되지 않았는가.

덕철이는 눈물을 흘리며 제명을 살지 못한 형님의 혼을 불러드렸다. 천당에 가서라도 웃음을 안고 건강하게 즐겁게 살라고 목이 메게 기원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렴습을 했다. 몸을 깨끗이 닦고 구멍을 막고 수의를 입혔다. 손발을 주물러 평온한 모습을 갖추어놓았다. 빼빼마른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바로눕혀 놓고보니 헝겊막대기에 보자기를 씌운듯 했다. 외국가 일하며 뼈와 살을 다 버리고 병과 아픔만 주어가지고 왔다. 겨릅대같은 형님의 시신을 바라보며 덕철이는 저도모르게 또 눈물이 쏟아졌다. 내 손으로 형님의 마지막 길을 보내자고 형님이 그처럼 반대하는 이 일을 계속 한건가. 내 손으로 형님을 보내자고 비자가 내려와도 출국하지 않고 이렇게 눌러앉아있은건가. 그것이 하늘의 뜻이였는가. 자기마저 출국했더면 정말 어떻게 되였겠는가. 아아. 크면서 사람사는 꼴이 왜 이 모양이란 말인가…살아서도 존엄없이 산 사람들이 죽을 때라고 존엄있게 죽겠는가.
덕철이는 얼결에 책상우에서 형님의 유서를 발견했다. 안해에게도 딸애에게도 아니고 덕철이에게 쓴것이였다.

“…동생아…내 아마두 며칠 살것 같지 못하다…아무리 약을 먹어두 고름이 살이 되지 않는구나…외국나가 돈은 좀 벌었다만 사는게 사람같지 않았다. 죽을 병이 드니 세상이 다 귀찮다. 사실 우린 리혼한지 오랬다. 그저 사람들 말밥에 오르는게 싫어 체면에 덮어감추고 아닌 보살했을뿐이다…사랑의 기쁨은 순간으로 지나가지만 사랑의  고통은 평생 들어붙어 떨어지지 않는구나. 넌 외국가지 말라. 돈이 사람 잡는다…돈이 사랑 죽인다…돈은 벌어 집은 샀다만 가정은 살수 없구나. 외국의 돈은 왔다만 집안의 웃음은 다 갔다…외국가 힘들게 일하는 누나두 내 길을 걸을가 걱정된다…남두 믿지  말구 돈두 믿지 말라. 네 가정은 네가 지켜라…애비에미없이 공부할 미화가  불쌍하다 …불쌍한 미화를 부탁한다…대학 갈 때까지만 좀 보살펴 주라…돈도 몇푼 안남았다 …미안하다…”

유서를 읽는 덕철이 눈에서는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형님은 자기 죽을줄 알고 곁에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유서까지 써놓았다. 형님은 가정을 박살내며 돈번것을 후회했다, 자기 몸을 망가뜨리며 돈번것을 후회했다. 사람이 백년을 살아도 3만 6천일밖에 안된다는데 형님은 그 절반도 못살고 이렇게 가다니. 개도 안먹는다는 돈이 대체 뭐길래 사람들은 거기에 엎어져 일어날줄  모르게 하는건가. 밥사발은 눈물이요 죽사발은 웃음이라더니 왜 사람이 밥을 먹을만하니 죽 먹을 때의 웃음은 다 걷어가는것일가.

“사람이 50전에는 목숨으로 돈을 벌고 60후에는 돈으로 목숨을 산다는데 헝님은 40전에 목숨으로 번돈을 다 밀어넣으면서두 어찌 50이 되기전에도 목숨을 사지 못한단 말이오…”
유서를 보고나니 형님은 그간 술로 육신의 아픔보다도 마음의 아픔을, 사랑의 고통을 더 달랜것 같았다.

(불쌍한 헝님, 선량한 사람 단명하고 악한 사람 빨리 늙는다했는데 차라리 악하기라도 했더면 늙더라도 죽지는 않았을게 아니오…)

덕철이는 인제야 제명에 죽지 못한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늘 술병이 나뒹굴던 리유를 제대로 알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 인생에 대한 실망과 타락과 저주가 아니라 가정을 잃고 사랑을 잃은 불쌍한 외기러기들의 진정제였고 마취제였다. 내가 왜 형님의 그런 아픔을 제대로 몰랐던가. 왜 생전에 더 걱정해 주지 못했던가. 되려 꾸중한다고 고깝게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덕철이는 쓰다듬기만 하던 자기의 앙골라 머리를 두 손으로 거죽이 일 지경으로 으스러지게 거머쥐였다.

(사랑은 살그머니 왔다가 떠들썩하며 간다는데 헝님네 사랑은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슬그머니 가버린건가. 돈만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체면도 사람을 죽이는구나.)

덕철이는 미화한테서 아주머니 외국 전화번호를 알아가지고 전화를 했다. 리혼한줄 모르는척 하고 전화를 했다. 남편이 아니, 전 남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아주머니 아니, 전 아주머니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일이 바빠 갈것 같지 못하단다. 돈을 보낼테니 덕철이가 나서 후사처리를 해달란다. 그리고 다달이 소비돈을 보낼테니 미화도 잘 돌봐달란다. 울뚝밸이 치솟은 덕철이는 순진한 강아지같던 시동생답지 않게 전화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즈마이는 언제부터 그렇게 인정머리 없어졌소? 동네집 나그내 죽었소? 아즈마이는 배꿉에서 이깔이 자랄 때까지 거기서 돈이나 콱 벌어 혼자 잘사오…”

덕철이는 외국에 나가있는 누나한테도 전화를 했다. 누나는 큰 동생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단통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이 어떻게 그렇게 죽을수 있느냐며 통탄했다. 돈이 동생을 죽였다고 한탄했다. 자기는 일이고뭐고 다 팽개치고 래일에라도 당장 들어가고 싶지만 비행기표를 끊느라면 며칠 걸릴지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먼저 돈을 부칠테니 후사에 아끼지 말고 쓰란다.

그래도 한 배속을 나온 형제가 달랐다. 남이 된 아주머니와는 판판 달랐다. 남이라는 남자에 점이 하나 떨어져 님이 되여 죽자살자하다가 언젠가 떨어졌던 그 점이 심술스레 되올라붙어 또 남이 되여 아귀다툼한다더니 그 말 그른데 없었다. 그런데 어느 고약한 놈이 천금같은 그 점을 제멋대로 롱락하면서 때로는 떼버렸다가 언젠가는 또 올려붙이기도 하면서 사람을 희노애락에 빠져들게 하는건가. 그 요사한 놈이 돈이란 말인가? 방 중에는 남편이 제일이요 집 중에는 안해가 제일이라는데 그 요사한 돈놈때문에 방에는 남편이 없고 집에는 안해가 없게 만드는건가.

“누얘두 이번에 아예 다시 안나갈 작정하구 들어오우. 누얘두 지금 약을 달구 식당에서 날마다 열댓시간씩 일하며 몸을 다 망가먹구 있지 않소. 누얘두 리혼하구 애두 돌보지 못하메 돈을 벌어 뭘하오? 어째 헝님길을 걷구 싶소? 집이 박살나구 애들을 다 버린담에 돈으루 요를 만들어 깐들 잠이 잘 올것같소? 빈대 죽이는 멋에 초가삼간 다 태우지 말구 날래 들어오우.”

“너는 비자가 나왔느냐, 한국에 나올거냐?” 

누나의 말에 덕철이는 음성을 버럭 높였다.

“비자는 나왔지만 난 안나갈거요. 여기서 벌며 내 안깐 내 지키구 내 새끼 내 지킬거우. 난 형님이나 누얘 길을 걷지 않을거요.”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고 가정을 지킨다는 전통적 관념이 아니, 영원히 지켜가야 할 인간의 미덕이 고무풍선마냥 하나하나 팡팡 터져가고있다. 모두 말로는 그 미덕을 지키기 위해 돈벌라 간다지만 왜 덕철이가 보아온것은 모두가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온 가정들인가.

사람은 젊거나 건강할 때는 배로 숨쉬고 나이가 들어 허약해지거나 병이 골수에 미치면 그 숨이 점차 가슴으로 올라오고 나중에는 목에까지 차오르면 생의 종말을 맞는다고 한다. 사람의 숨이 목에서 끊어진다고 생명을 목숨이라 한다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배에서 목에까지 올라오는 숨결이 장강을 지나듯 하고 형님같이 불쌍한 사람들은 개울물 건너듯 하단 말인가. 이것도 하늘이 내려준 운명인가 아니면 그  어떤 유혹에 빠져들어 자초한 운명인가.

조문하러 올 손님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칠성판에 눕혀놓은 형님시신을 흰보로 막아놓고 그앞에 제상을 차려놓았다. 안해와 고향마을에 있는 친척로인 몇분은 래일 오후에나 들어설것이였다. 저녁에 덕철이가 형님시신과 마주 앉아 눈물을 훔치며 홀로 술잔을 들었다. 곁에서 눈이 퉁퉁 부어오른 미화가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며 숨이 넘어갈듯 흐느낀다. 그것이 더더욱 덕철이 가슴을 미여지게 했다.

(내 가슴도 이렇게 미여지는데 넌 오죽하겠느냐. 울고싶으면 실컷 울어라…)

그러는데 가게의 로반과 성국이 등 가게일을 하며 면목익힌 친구들 몇이 조문하러 왔다. 성국이가 부탁했던 형님유상을 만들어 들고왔다. 이웃 사촌이라더니 덕철이는 형제들이 찾아온듯 반가와하며 벌떡 일어나 그네들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이 밤에 찾아올 일가친척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오니 마음 한구석이 열리는듯 했다. 덕철이는 형님유상을 제상 웃머리에 세워놓았다. 손님들이 친인인양 무릎꿇고 엎드려 유상에 절을 했다. 조상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좀 앉았다 위로의 말을 남기고 떠나가고 성국이만 남아 덕철이를 동무했다.

둘은 초촐한 술상에 마주  앉았다.

“난 외국에 안나갈라우.”

덕철이는 술을 따르며 뜬금없이 왕청같은 소리를 했다.

“양? 그렇게 눈이 헐게 비자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성국이가 술을 받으며 두눈이 휘둥그래 했다.

“난 돈을 꿔서라두 여기서 진짜 우리 민족 수의댄을 꾸릴가 하오. 난 헝님의 길을 걷지 않구 여기서 일하메 내 안깐과 내 새끼는 내가 지키겠소. 모두 그 빌어먹을 돈때문에  제 명을 살지 못하구 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내손으로 깨끗히 씻어보내겠소. 힘두 없구 지식두 없지만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 장례문화두 내가 지킬만큼 지켜보겠소.”

성국이가 놀랍게 덕철이를 쳐다보다가 반색했다.

“헝님이 잘 생각했소. 헝님은 이젠 이런 일에 박사니까 헝님이 진짜 우리 민족 수의댄을 꾸리면 터밭에서 물먹은 염지자라듯 할게우.”

“거렁뱅이두 밤이문 부마노릇하는 꿈을 꾼다는데 사람이 손이 마르구 대학 못갔다구 어찌 꿈꺼지 없겠수. 내 이 일을 생각한지 꽤나 됐소.”

“이매를 맞대구 일하면서두 헝님이 그런 룡꿈을 꾸는줄 몰랐구만. 그래서 헝님이 비자 내려와두 출국을 그냥 미룬게로군. 헝님이 진짜 우리 민족 수의댄 꾸리문 나두 거기서 일하구 싶은데 받아주겠수?”

“동생이 오겠다문 내사 환영이지. 그리구 외국가 여러해째 몸을 다 망가뜨리며 돈을 버는 누나두 내 회사에 불러올거우. 여기서 전화받으메 집만 지켜줘두 밥벌이는 할거요.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헝님길을 걷게 내버려두지 못하겠소. 본인이 하자구 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덕철이는 앞에 있는 잔을 들어 단모금에 냈다.

“헝님, 감사하오. 그리구 잘 생각했소. 누나걱정꺼지 하니 내 다 코마루 찡해나우. 내 누나두 외국나가 개고생하오만…그럼 이제부턴 헝님을 로반으루 모시겠소. 자, 한잔 받소.”

성국이가 제꺽 술병을 찾아쥐고 술 한잔 따랐다.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릴듯 하니 지금은 아무 내색 내지마우. 칠칠하구 미끈한 나무는 모두 재목으로 잘려나가니 뒤탈리고  허리굽은 키작은 나무라도 이 선산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덕철이는 성국이가 부어준 술을 또 단모금에 굽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자기를 보며 인자하게 웃음짓는 형님유상을 이윽토록 바라보다 떨리는 입을 열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울메 왔다가 웃으메 가야 한다는데 헝님이 제 명을 살지 못한것만두 원통한데 어째 속으로 피눈물을 떨구메 갔소…이제 날보구 웃으문 뭣하우…날더러 어쩌라구…헝…님…”

덕철이는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더니 꺼이꺼이 간이 찢어지게 울었다. 쉴새없이 쿨적이던 미화도 울음을 터뜨렸다. 성국이는 이쪽저쪽 그들을 말리다 자기도 손바닥으로 눈물을 이쪽저쪽 훔쳤다.

그래도 형님유상은 건강하고 즐거울 때처럼 시름없이 그냥 웃기만 한다.


2013년 <연변문학> 제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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