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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픔이 진주를 낳는다
2019년 07월 15일 11시 18분  조회:117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아픔이 진주를 낳는다

허룡석

 

 

 

시대가 미증유의 발전을 가져오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전에없이 향상됨에 따라 생활필수품에 대한 요구가 날따라 높아가고 있다. 삶이 다채롭고 여유로울수록 가지가지 장식품에도 각별한 호기심과 점유욕을 갖고 있다. 백세시대에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을 보다 우아하고 품위있고 아름답게 단장하려는 것이 문명시대 문명한 생활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 선호도가 가장 높은 장식품 중의 하나가 바로 진주이다. 진주는 다만 상품가치가 높은 진귀한 보석이라 하여 우러르는 것만이 아니다. 그 내면에는 훨씬 더 미묘하고 경탄스러운 삶의 철리가 내포되여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시집 가는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진주를 선물하는 것이 오랜 풍습으로 되여있다고 한다. 많고 많은 값지고 귀중한 보석 중 왜 하필이면 진주를 선물하는 걸가? 진주가 함유하고 있는 고유의 값진 가격보다도 생명체가 오랜 시간 아픔과 고통을 견뎌낸 유일한 인내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란다. 결혼 후 삶에 상상 밖의 그 어떤 아픔과 고통이 닥치더라도 조개마냥 끈질긴 인내력으로 그 아픔과 고통을 이겨가며 사랑과 행복의‘진주’를 꾸준히 다듬어가라는 뜻깊은 의미에서였다.

‘대양의 녀왕’이라 불리는 진주는 수많은 광물성 보석과는 달리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낸 진귀한 보석이다. 천연적 진주는 바다 밑에 사는 특정한 종류의 조개에서 나온다고 한다.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뭔가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조개가 먹이를 먹으려고 입(껍데기)을 벌릴 때에 간혹 부주의로 미세한 모래알까지 흡수하게 된다. 영원히 멀리했어야 할 불청객 이물질은 그로부터 부드럽고 안온하던 조개속을 파고들며 조개를 점차 괴롭히기 시작한다. 조개에 ‘병’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조개한테는 모래알을 끄집어낼 수 있는 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래를 털어낼 방법도 없다. 생명을 해치는 이‘암세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력을 다하여 막아낼 방도를 대야 했다. 

조개껍질의 바로 밑에는 외투막이라는 막이 오투마냥 온몸을 둘러싸고 있다. 특이한 이 외투막은 조개가 흡수한 음식물의 미네랄을 리용하여 조개의 껍질을 만드는 물질을 배출한다. 조개는 자신의‘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이 귀중한 외투막을 일부 투입시켜 차츰 모래알을 층층이 감싸게 된다. 모래가 완전히 외투막에 싸여 더 이상 조개를 괴롭히지 않게 되기까지는 인간의 열달 잉태도 아닌 장장 7년이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니 가냘픈 조개가 기나긴 7년간이나 모래란‘암세포’의 시달림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바로 조개가 장기간의 아픔을 감내하며 만들어낸 귀중한 진주이다. 병든 개한테서 값진 구황이 나오고 병든 소한테서 귀중한 우황이 나오듯 병든 조개한테서 진귀한 진주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병들었다 하여 모든 ‘환자’가 진품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속에 진주가 들어있는 병적 조개의 모양은 다른 정상 조개와 완연히 다르다고 한다. 진주조개는 모양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아래우 껍데기도 잘 맞물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못생기고 꼴불견이라 한다. 부단히 두터운 껍질을 만들어야 할 외투막을 갈라내여 ‘암세포’를 막아내야 했으니 어떻게 다른 조개들처럼 단단하고 미끈한 정상적 껍데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못생긴 조개일수록 최상급의 진주가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바다의 해류도 ‘재간둥이 잘생긴 놈 없다’는 인간세상의 섭리와 조화를 이루는 것인가? 천연적으로는 조개 3만개당 오직 20개 좌우의 조개만이 진주를 품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상품가치가 있는 진주는 3분의 1도 안된다고 한다.

은은하고 우아한 광채로 사람들의 환심을 끄는 진주는 많고 많은 해류들 속에서도 보잘 것 없는 조개가 만들어낸 분비물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고통을 참아가며 저항과 고뇌의 과정을 견디여낸 조개의 끈질긴 인내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고통으로 만들어낸 분비물이 이토록 아름답기는 해도 조개는 애초부터 그 고통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을 안지 않으면 안되였다. 인간도 복잡다단한 인생길에서 이런저런 삶의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본의 아니게 그런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경우에 봉착할 때도 있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삶 가운데도 생각 밖의 ‘모래알’, ‘이물질’이 침투하여 가끔씩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때론 그 아픔과 고통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인간세상이 저주스럽도록 심신을 괴롭일 때도 없지 않다. 이런 불행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 인생의 진주를 상생하느냐 아니면 그 고통과 아픔에 숙어들어 파멸의 길을 걷느냐는 각자의 의지와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육체나 마음의 아픔 속에서 진주가 탄생하듯 육체나 마음의 상처는 때로 새로운 나를 찾아 자아를 확립하는 소중한 자극이 되여 탈태환골시킬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아픈 상처와 모진 고통이 없이, 시련과 불행이 상존하지 않은 성공이란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위인들이 바로 그런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며 성공의 봉우리에 올라 인생의 ‘진주’로 세상에 빛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픔과 고통을 안고 있다 하여 모두가 ‘진주’로 태여나는 것은 아니다.  ‘최상급의 진주’로 되기는 더욱 어렵다. 왜냐 하면 약자는 역경의 소용돌이에 쉽게 매몰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조개가 진주를 생성하지 못하듯 인간도 남달리 뛰여나게 성공한 사례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는 그만두고라도 우리 민족의 불굴의 항일투사이며 조선족문학의 대부일 뿐만 아니라 중국소수민족문학 거장으로도 받들리는 김학철선생도 그런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인생의 진주, 문학의 진주를 탄생시킨 전형적 대표의 한분이 아닐가 싶다. 

가렬처절했던 항일전쟁 시기 최후의 분대장으로 일제침략자들과 영용히 싸우다 부상을 입고 어쩔 수 없이 포로가 되였다. 일본에 압송되여가서는 한쪽 다리까지 잘리며 감옥에서 갖은 시달림을 받았다. 일본 나가사끼감옥에서 4년 남짓한 감옥살이,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고 총상 입은 다리를 치료해주지 않아 저가락으로 상처에 생긴 구데기를 집어내면서 그 아픔을 잊기 위해 줄기차게 독서를 했었다.

공화국 창립 후에는 남다른 명석한 두뇌로 사회발전과 사회현상에서 나타나는 부정과 비리들을 독립적인 사고방식으로 투시하고 질호한 탓으로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등 련속부절한 정치운동을 거치면서 그 분이 겪은 고통과 아픔이 누구보다도 훨씬 많고 컸음을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문화대혁명’ 중 현행 반혁명으로 판결받고 연길구치소와 추리구감옥에서 장장 10년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기구한 인생, 평범한 사람들은 그 시련과 고통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한생을 살다 보면 불행이 행복보다 두배는 더 많다고 하지만 김학철선생이 겪은 불행은 아마 열배도 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선생은 ‘크고 작은 모래알’, ‘가지각색 이물질’이 평온하던 삶에 침투되여 인간으로서 참기 어려울 지경으로 괴롭히고 파먹어도 그 아픔과 고통에 비굴하게 숙어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만의 ‘외투막’으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완강하게 끝까지 견뎌내였다. 추리구감옥의 경관마저도 “다른 령감들은 그 나이에 퍽퍽 죽어나가는데 그 령감은 외다리로 끄떡없이 살아있다. 왠지 아는가? 그 추운 겨울날씨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랭수마찰을 하기 때문이다. 쯧쯧, 무슨 놈의 의지가 그리도 강할가!”고 감탄해마지 않았다지 않는가. 파란만장한 인생로정과 극한적인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간승리의 신화를 창출한 그의 신념과 의지는 세인들의 감탄과 존경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개혁개방을 맞아 가지가지 훼멸적 ‘정치감투’를 벗어버리고 또다시 인생의 새 삶을 찾았을 때에는 그 고통과 아픔을 자양분으로 만년에 창작의 필을 들고 문학의 수많은 반짝이는 ‘진주’를 탄생시켜 우리 민족 문학의 은하계를 보다 아름답게 수놓아갔으며 중국 여러 민족 문학의 보물고에도 핍진한 한페지를 수록하였다. 

중앙정부의 대폭적 지원으로 내몽골사범대학 성락교구 안에 세워진 전국의 유일한 중국소수민족문학관 앞광장에는 중국 전근대적 여러 소수민족문학의 대표적 거장들의 동상이 숙연히 세워져있다. 그 가운데는 조선족문학의 유일한 대표적 거장으로 김학철선생의 동상도 세워져있다. 쌍지팽이를 짚고 한쪽 다리로 서서 저 멀리 앞을 응시하는 김학철선생의 강인한 모습은 죽어도 굴하지 않는 항일투사의 기백을 그대로 구현하였으며 우리 민족 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난관도 박차고 나아가라고 후배들을 고무격려하는듯하다. 김학철선생은 그야말로 문학의 진주, 인생의 진주로 중국소수민족문학의 광야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불에 달군 쇠가 더욱 강해지고 끊겼다 다시 잇긴 뼈가 더욱 굳고 탄탄하듯 인생의 굴곡에 시달리고 마음의 상처로 시련을 겪은 사람이 평온하게 살아온 사람들보다 훨씬 크고 장려한 성공을 약속받는다는 것이 세상리치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문학분야에서 ‘분노가 시인을 낳고 불행이 작가를 낳는다’는 격언도 나온 것일가. 

김학철선생이 만일 그런 아픔과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혹은 겪기만 하고 완강한 의력으로, 삶의 도전으로 그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지 않았더면 그 후에 그처럼 훌륭한 문학의 ‘진주’들을 산생시킬 수 있었을가? 자신도 인생의 진주로 태여날 수 있었을가? 한국에서도 25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력사적인 대하소설 《토지》를 써낸 박경리를 불행이 낳은 최고의 작가로 평하고 있다. 중국문단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과시한 장현량이나 진충실 같은 이름난 작가들도 모두 나름 대로 크나큰 아픔과 고통과 불행을 겪은 작가들이다. 그들은 이미 고인이 되였지만 그들이 남긴 문학진주는 후세에도 그 빛을 길이 뿌리게 될 것이다. 

평범하고 안온하게 살아가는 조개한테서는 진주란 ‘아픔의 결정체’가 상생하지 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시련과 고통은 그 사람을 파멸시키는 독약이 아니라 보다 튼튼히 성장시켜 장차 보다 큰 성과를 따낼 수 있는 성공한 인재가 될 수 있는 자양분으로 곰삭이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인간도 삶의 상처받은 사람의 자생력이 보다 강해져 인간진주로 태여날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그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의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종당에는 흑진주와도 같은 ‘최상급’ 인생의 진주로 태여날 확률도 훨씬 높은 것이다. “산은 기복이 심할수로 절승경개를 이루고 물은 락차가 클수록 만년경관을 이룬다.”는 도리이리라. 

사람마다 끈질긴 인내로 피할 수 없는 삶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여 천연적으로 산생된 진귀한 ‘흑진주’는 되지 못하더라도 명색이라도 가질 수 있는 ‘양식진주’ 로라도 태여나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산한다면 이 세상은 보다 밝아지고 인류사회는 더욱 문명해질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하지만 값지다는 진주들 속에서 모조진주를 식별할 줄 알아야 속히우지 않듯이 울긋불긋 화려한 가면구로 장식한 ‘인간진주’들 속에서 ‘모조진주’를 감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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