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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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생도 사계절 (허룡석)
2017년 09월 22일 16시 52분  조회:1419  추천:0  작성자: 허룡석
수필

인생도 사계절

허룡석


오랜만에 모아산 산정에 올랐다.

비록 립춘이 지난지 이슥하건만 봄기운은 느낄수가 없다. 북방의 집요한 겨울의 랭기는 아직도 가셔지지 않았다. 대신 공기는 아주 청신했다. 북경, 천진 등 대도시들의 스모그현상은 찾아볼수 없는 고향의 청신함이다. 시내안에서 늘 대형 성냥갑같은 콩크리트울안에 갇혀 근시안같던 시야가 졸지에 탁 틔였다. 오랜만에 저 멀리 눈길을 던지며 동서남북을 훤히 바라볼수 있었다. 눈길이 트이니 성냥갑안에 오그라들었던 내 마음도 활짝 펴진다. 나는 몸을 돌렸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북쪽 연길보다도 어쩐지 내가 나서 자란 남쪽 세전이벌에 먼저 몸이 돌아진다.

드넓은 세전이벌은 올해따라 하느님이 손이 크게 하사한 두터운 솜이불을 덮고 시름없이 굳잠에 빠져있는듯 하다. 풀을 먹여 빨아놓은듯한 하얀 솜이불은 이른 봄의 해빛에 반사되여 유난히 눈을 부시게 한다. 세전이벌은 겨울의 강추위에 얼어붙은듯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는다. 하지만 자연의 힘을 누가 모르랴. 이제 봄이 오면 내가 언제 굳잠에 빠졌느냐듯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자기의 직책에 충실할것이다. 이제 그 넓은 가슴에서 오곡백과가 씨붙이고 무르익도록 자기의 몸을 포근히 덮혀오고 기름지게 걸구어갈것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량한 인간들이 자기몸에서 자양분을 량껏 섭취하도록 풍만한 가슴을  풀어헤칠것이다.

나의 청춘의 구슬땀도 슴배여있는 저 세전이벌은 결코 잠자고 있는것이 아니리라. 지난해 인간에게 자양분을 바쳐  야위고 피곤해진 몸에 충전을 하며 서서히 태동을 꿈꾸고 있으리라. 자연은 수천수만년을 살아와도 조금도 바보스럽지 않다. 언제나 제정신에 산다. 100여년전에 선조들의 부지런한 손길에 의해 태고연한 자연의 옷을 벗어버리고 태여난 저 세전이벌도 쉴줄도 알고 일할줄도 안다. 흐트러질 때가 없다. 세전이벌은 총명하다. 자기에게 충성하는 인간과 자기를 속여먹으려는 인간도 어김없이 가려본다. 인간들의 성실함에 따라 베푸는 은혜도 각이하다.

세전이벌은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질서있게 돌아간다. 봄이면 씨뿌리고  여름이면 가꾸고 가을이면 수확하고 겨울이면 저장하는것이 자연의 상징이다. 태양이  서쪽에서  뜨지 않는한 이 법칙은 영원히 뒤바뀌지 않는다

사계절로 게으름없이 꾸준히 살아가는 저 넒은 벌, 지금은 동면을 끝내고 태동을 꿈꾸고 있을 저 세전이벌을 바라보며 문득 사람의 인생도 사계절로 살아가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친다. 울며 이 세상을 찾아와서부터 웃으며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누구나 어김없이 소년, 청년, 장년, 로년기를 거쳐야 한다. 소년시기는 인생의 씨앗을  뿌리는 봄이요 청년시기는 인생을 가꾸는 여름이요 장년시기는 인생의 성과를  수확하는 가을이요 로년시기는 지난날을 총화하며 인생의 경력을 저장하는 겨울이 아닐가.

소년시기는 인생발육단계에서 기초지식을 배우고 세상을 접촉하며 나는 장차 무엇을 할가 하는 인생의 꿈을 심어가는 봄이다. 인생의 비옥한 밭을 갈고 이랑을 짓고 오동통한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다.

청년시기는 오곡백과가 강렬한 해빛을 받아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여름처럼 혈기왕성한 정력기이다. 봄에 세운 꿈을 보다 확실히 검토해보며 확정된 꿈을 실천적으로 가꾸어가는 여름이다. 씨를 뿌린 인생의 목표에 물주고 비료주고 김매고 북을 돋구고 가지자르는 가꿈의 계절이다.

장년시기는 인간적으로 성숙되고 사업적으로 안정되여 봄에 심고 여름에 가꾼 인생의 목표에서 노력의 성과를 거두는 가을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리념이 굳어지고 정력을 쏟아부은 일에서 열매를 따게 되는 계절이다.

로년시기는 일생동안 심고 가꾸고 거둔 성과를 저장하는 계절이다. 또한 육체적으로 기력이 떨어져도 정신을 가다듬으며 래일을 준비하는 겨울이다.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청춘이다.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새겨보며 잘하고 못함을 검토하며 새로운 리념과 실천으로 또다시 돌아올 새봄의 도래를 맞이하는 계절이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자기의 사계절을 맞이하고 철철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되는것 같다. 철을 어기면 농사를 망치듯이 인간도 철을 어기면 인생을 망치게 된다.

곡식농사를 지으나 인생농사를 지으나 철을 세분하면 바로 하루하루의 시간이다. 시간의 가치는 금전의 가치와 같다. 시간과 금전은 가장 유용하게 잘 사용함에 그 가치가 있다. 돈이 많으면 무엇하랴. 다 죽게 되였는데도 돈쓰기 아까와 쓸곳에 쓰지 않으면 실제상 그는 가난뱅이며 그의 돈은 수지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기와 타인의 행복에 유용하게 쓰지 않으면 그의 인생은 가라지 인생일것이다.

인생의 풍요로운 수확을 바라며 시간을 아껴쓰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 그것이 바로 인생을 살아갈수 있는 목표이다. 자기의 제한된 시간을 사회의 도덕적 수요에 부합되며 자기의 능력과 특장에 알맞는 인생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데 유용하게 쓰는 사람이 인생을 살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성과를 낼수 있는 사람이다. 목표가 없으면 눈부신 성과를 거둘수 없다. 하기 싫은 일에서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사람이 숨이 붙어있다하여 사는것이 아니다. 아무런 꿈과 뜻이 없으면 먹고 자고 교배할줄 밖에 모르는 짐승과 다를바 없는것이다.

아무런 목적없이 심심풀이로 책을 펼쳐든다면 얼마나 큰 시간랑비인가. 아무것도 살 생각없이 거리를 돌고 돈다면 심신이 얼마나 피로한가. 목표가 없이 가랑잎처럼 바람에 밀려가고 밀려오며 되는대로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허탈하고 허황한가. 확정된 목표가 있다면 거기에 쓸 시간이 충족하다. 순조롭게 인생의 궤도에 올라설수 있다. 문제에 부딪쳐도 방황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란하고 우월한 목표가 손짓해도 자기의 능력과 흥취, 자기가 세운 목표에 부합되지 않으면 거기에 미혹되지 않고 꾸준히 자기의 목표를 향해 나간다. 수류탄을 만들 능력에 원자탄이 손짓한다 하여 거기에 혼을 빼았겨서야 되겠는가.

할 일이 가장 많은 사람은 시간이 가장 충족한 사람이다. 할 일이 많다는것은 그가 나가야 할 목표가 확실하고 명확하기에 갈림길에 들어선 사람처럼 우유부단하거나 방황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사회환경의 손에 놀아나는 갈대로 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자기의 환경을 만들어가기에 힘쓰며 자기의 인생목표로 환경을 지배하려 한다.

시간을 랑비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자기가 해야 할 인생의 목적을 확정하기는 했으나 그 목표에 충실하지 않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그 목표에 부합되는 일을 하려 하지 않는데 있다. 농사를 지으려 작정했으나 무엇을 심어야 할지 어떻게 가꿔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결국 철을 어기게 되는것과 마찬가지 도리이다.

시간을 아끼라 하여 휴식도 없이 련속부절히 일하라는것이 아니다. 휴식을 잘 하고 공간시간을 충분히 리용하면 자기의 목표를 보다 훌륭히 실현할수 있다. 유익한 오락과 체육단련은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목표있는 일을 하다 쉬는 휴식은 유쾌하고 거뿐하고 엔돌핀을 발산하나 목표없이 놀기만 하는 휴식은 오히려 인생을 갉아먹는 괴수이고 시간을 훔쳐먹는 흉수이다. 우리의 인생은 무한정한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늘이 준 제한된 시간안에 있다.

자연의 사계절과 인생의 사계절은 본질적 구별이 있다. 자연의 사계절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만 인생의 사계절은 한번뿐이다. 가면 그뿐이다. 올해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면 다음해에 경험을 총화하며 다시 잘 지으면 되지만 인생의 농사는 한번 잘못 지으면 그만이다. 그저 다음 세대들에게 인생의 경험과 교훈을 남겨줄뿐이다. 하기에 인생의 사계절은 그만큼 귀중하고 보귀한것이다. 인생에는 실험도 없고 련습도 없다.

지금 잠자는듯한 저 세전이벌의 상태는 로년기에 들어선 인생과 비슷하지 않을가 싶다. 무슨 큰일을 하는것처럼 떠들썩하지도 않고 남의 시선도 끌지 않으며 조용히 묵묵히 자기의 체념에 빠져있다. 그렇다고 잠자는것이 아니다. 죽은것은 더욱 아니다. 새봄을 맞을 차비를 하고있다.

로년기에 들어선 사람도 피곤하고 떠들썩하고 자랑스러웠던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을 회고하며 양파껍질을 벗기듯 허위와 체면, 필요이상의 자존심 등 겉딱지들을 한겹한겹 벗겨버리며 거뜬한 몸으로 재생의 봄을 맞이하고저 만전을 갖추고 있다. 남보기엔 기력이 빠져 조용한것 같아도 인생의 겨울철은 면면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저 세전이벌처럼 이제 새봄이 오면 키지개를 켜고 일어나 보다 장중하고 묵직하게 인생의 새봄을 장식할것이다.

잠자는듯한 세전이벌을 바라보노라니 춘하추동을 쉼없이 멋지게 살아가며 인류에게 끝없는 은혜를 베풀어가는 대자연한테서 삶의 철리를 터득한것 같다.

(이제 봄이 오면 너도 솜이불을 차던지고 잠을 깰테지. 나도 허위딱지들을 털어버리며 잠을 깰거야. 너도 충족한 에네르기로 만전을 갖추고 나올거지. 나도 알찬 청춘의 마음을 안고 씩씩하게 나올거야. 이제 약동하는 새봄이 올때 우리 보람찬 희망을 아고 이 산정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도라지 2013년 제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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