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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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고대문명중심지-중동(1)(허룡석)
2008년 01월 05일 15시 33분  조회:1112  추천:65  작성자: 허룡석
세계고대문명중심지-중동(1)


허룡석



구라파, 아세아, 아프리카지역이 서로 다정하게 포옹하고 키스하려는 곳에 심술궂게 끼여들어 그 포옹을 영원히 저애하는 땅덩어리가 하나 있으니 세상사람들은 이곳을 일컬어 중동이라 부른다.

중동이란 예로부터 세계문명을 뽐내며 뭐나 다 아는척하던 구라파사람들이 지어낸 지명이다. 당년에 구라파사람들은 동아세아에서도 제일 동쪽끝에 거대한 륙지항공모함마냥 자리를 틀고앉은 중국을 일컬어 원동이라 불렀었다. 자기네 구라파와 원동이란 중국사이에 이름없이 똬리를 틀고앉아있는 이 땅덩어리를 중동이라 이름지었다. 세상사람들은 당시 세계문명을 주도해나가던 구라파사람들을 본따서 습관적으로 이곳을 중동이라 부르게 되였다.

중동지구에 자리잡고있는 아랍세계는 서쪽의 대서양으로부터 동쪽의 아랍해에 이르기까지 북쪽의 지중해로부터 아프리카의 중부가 망라되는데 애급, 이스라엘, 요르단, 수리아 등 22개 나라가 서로 이웃해있다. 중동지역의 면적은 1420km2로서 중국땅의 약 1.5배 남짓하다. 인구는 3억으로서 중국인구의 4분의 1도 안된다. 중동지역은 우리에게 있어 퍼그나 생소하고 신비로운 땅으로 알려져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지중해 해안이 있고 아랍세계의 생명의 강 닐강이 있으며 달나라경색을 방불케 하는 망망한 고비사막이 있는가 하면 그속에는 늘 푸른 오아시스도 있다. 또한 천태만상의 암석동굴이 사처에 널려있으며 헤아릴수 없이 많은 옛성터의 유적과 고풍스러운 예술적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이 땅덩어리는 일찍 세계인류문명의 활무대로서 다른 대륙의 인류들이 나무를 비벼 불씨를 얻고 수렵으로 생계를 이어갈 때에 이곳에서는 벌써 무수한 인류문명의 기적을 창조하였었다. 내노라고 바람결마냥 오고가던 여러 대제국들이 이곳에서 하나하나 건립되고 또 이곳에서 하나하나 멸망되였으며 종종별별 대대소소의 종교들이 이곳에서 아귀다툼하고 생사판가리 하였었다. 이러한 대제국들이 창조한 인류문명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면서 본의아닌 공동으로 중동지역의 인류문명의 년륜을 새록새록 새겨왔으며 중동지역의 력사적 재부를 창조해왔다. 이곳에는 아직도 채 발굴해내지 못한 력사적 문화유산이 무진장하다.

세상사람들은 중동지역을 만화통이라 일컫는다. 이곳은 지리적변화가 다단하고 인종이 혼잡하고 건축풍격이 각이하다. 종교성지인 이곳에는 너속에 나 있고 나속에 너 있으며 너와 나가 서로 얼기설기 엉켜져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서로 뒤질세라 강대함과 문명함을 뽐내던 여러 제국들이 횡행하던 곳이라 애급인, 파스인, 그리스인, 로마인, 유태인, 토이기인, 아랍인들이 이곳에서 서로 한치의 땅이라도 다투며 자기들의 존재를 과시했었다. 중동지역의 많은 곳에서 제멋대로 나뒹구는 돌덩이 하나를 주어들어도 그것은 수천년의 력사가 담겨져있다고 한다. 서양사람들이 세계의 인류문명을 주도해나가기전에는 사실상 이곳이 세계 인류문명의 중심지였다.

비단의 길도 이곳을 통해 중국과 구라파로 이어졌으며 아세아, 아프리카, 구라파의 문화와 물자교류의 뉴대로 교량으로 되였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적중동은 이미 지난날의 빛나는 력사적문명이 퇴화되고 색바래져 더는 인류문명의 중심지였던 흔적과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 지구적 비약적인 발전과 변혁속에서도 어쩌면 색바라지 않는 화강석마냥 보수적전통을 가장 많이 보류하고있으며 세상과는 퍼그나 동떨어진 락후의 땅으로 되여있었다. 이곳의 청진사와 전통적바자(집시), 그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의연히 《천하루밤 이야기》에 나오는 묘사마냥 이색적이고 신비로운 색채를 띠고있다. 중동지역에 가보면 현대적문명의 향수보다는 마치 거대한 로천세계 력사박물관에 들어선듯한 기분이며 세계고대사사이를 누비며 인류의 가장 보귀한 력사발전사를 감수받는듯하다.

얼마전에 나는 중국작가협회에서 중동지역 일부 나라 작가협회의 초청으로 조직된 중국작가대표단 부단장의 신분으로 (단장은 내몽골자치구작가협회 주석 아얼타이임) 신비한 베일에 가려있는 중동지역의 요르단, 시리아 등 아랍나라를 방문하면서 아랍문화의 한귀퉁이나마 엿볼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였다.


1. 세계최호화호텔앞에서


6월 27일 오후 5시 30분, 우리 대표단 일행 5명은 중국국제항공공사 보잉기를 타고 아랍에미리트련방의 국제공항인 두바이시로 향했다. 두바이시는 아랍에미리트련방의 해변도시로서 중동지역으로 가는 려객들이 거개 두바이시를 거쳐 여러 아랍나라로 간다. 북경으로 오가는 아랍나라 항공공사의 려객기도 수두룩하지만 우리 대표단이 중국 려객기에 탑승한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우리 나라의 내부규정에 따르면 출국방문하는 국가대표단은 반드시 국내항공공사의 려객기를 타야지 외국려객기에 앉아서는 안된단다. 국내항공공사의 비행기표값이 외국항공공사 비행기표값보다 엄청 비싸지만 국내항공공사의 리익을 챙겨주다보니 시장경제규률을 어기고 《계획경제》모식을 택한 모양이다.

우리가 탄 보잉기의 수백명 려객들은 거개가 중국인들이였다. 이들 모두가 중동지역 여러 나라들에 가서 장사하거나 로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였다. 그들중에서도 중동 여러 나라 석유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그곳에 가 석유를 채굴한다는 중국석유공사의 로동자들이 다수였다. 우리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이나 일본, 미국 등 나라에 숱한 사람이 나가 돈벌이한다는것은 알아도 중동지역에 나가 장사하고 일하는 중국사람들이 이처럼 많을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게다가 놀라운것은 북방사람보다도 남방사람들이 다수라는 점이였다. 대체로 절강, 강소, 안휘, 광동사람들이였다. 아마도 계획경제시기에 중공업의 혜택을 적게 받아온 남방사람들이 그 혜택을 많이 받아온 북방사람들보다 시장경제의식이 훨씬 앞선것 같았다. 려객기안은 빈자리 하나 없이 중국사람들로 꽉 찼다. 그탓이였던지 출국한다는 느낌보다도 국내려객기에 오르지 않았나 하는 착각까지 가지게 되였다.
려객기가 리륙한지 몇시간이 지나자 기창밑으로 주마등마냥 흐르는것은 일망무제한 고비사막이였다. 폭격이라도 맞은듯 질서없이 울퉁불퉁 벌거벗은 돌산들도 끝간데없이 펼쳐졌다. 간혹 가다 푸른 점들이 쌀의 뉘처럼 보이는데 마치 고비사막에 부추단 하나를 박아놓은듯 왜소하고 가냘파보였다. 불그스레하고 희뿌연 그 고비사막속에도 토굴집 같은 인가들이 종종 나타나기도 했다. 저렇게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사람이 산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저곳에 비하면 산 좋고 물 맑은 연변땅에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려객기는 어느덧 중동지역에 들어섰던것이다.
근 8시간을 날아 려객기는 두바이시에 착륙했다. 공항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텔레비죤에서나 보아오던 신비의 땅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드넓은 공항홀에는 피부색과 옷차림이 서로 다른 인종들로 붐볐다. 서양인들도 아니고 동양인과도 구별되는 아랍인들이 다수였고 그들의 차림새에 우리의 눈길이 빨려갔다. 공항일군들의 옷차림은 하나같이 아랍인들의 특유의 전통의상이였다. 남성들은 머리에 새하얀 천수건을 치고 검은 띠를 두르고 희고 긴 가운을 입었고 녀인들은 검은 수건을 치고 검은 가운을 입고 근무하고있었다. 홀에서도 많은 아랍인들이 이런 옷차림을 하고 분주히 오갔다. 일부 나많은 녀인들은 아랍인의 전통대로 검은색 가운에 검은 수건으로 얼굴을 빈틈없이 가리고 다니는데 마치 검은 숯덩이가 그대로 움직이는듯했다. 아랍남성들의 호방적인 구레나룻과 코수염도 아주 인상적이였다.
여러 아랍나라로 가는 려객기에 탑승하려고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줄을 지어 서있는데 그속에는 중국인들이 수두룩했고 키가 작달막한 타이, 월남, 캄보디아 나라 모습의 남녀들도 적지 않았다. 거의 모두가 로무일군들 같았다.

입국검색을 마치고 나오니 중국국제항공공사 두바이지사의 한 일군이 우리 대표단일행을 기다리고있었다.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밖으로 나왔다. 공항홀에 있을 때에는 에어콘덕분에 더운줄 몰랐는데 밖에 나오니 뜨거운 열기가 대번에 확확 엄습해와 금시 사우나의 찜질방에 들어선듯했다. 지금은 중동지역에서도 가장 무더운 때라는데 날마다 평균 기온이 45도좌우라니 이후 이런 날씨에 어떻게 견딜가싶었다.

우리는 더위에 숨막히는 소형뻐스에 앉아 두바이시교에 있는 지정된 호텔로 안내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루밤 묵고 래일오후 2시 30분에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가는 려객기를 갈아타게 되여있었다. 단장을 제외하고 우리는 한방에 두사람씩 배치되였다. 방은 꽤나 널직하고 깨끗했다. 이곳 시간은 중국보다 4시간이나 늦은지라 우리가 자리에 들 때에는 중국의 아침 6시경이였다.

이튿날아침 9시에(북경시간 오후 1시) 일어나 아랍식으로 간단히 식사하면서 오전나절을 어떻게 보내랴를 의논했다. 모두들 귀한 시간을 호텔에서 랑비하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아랍에미리트련방을 수박겉핥기나마 돌아보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이곳에서 수도가 그리 멀지 않으면 수도부터 가보자고 했다.

북경외국어대학에서 아랍어연구생으로 공부하며 우리 대표단 번역으로 초청된 쇼후가 우리의 의사를 호텔려행사일군에게 전했다. 려행사일군은 수도 아부자비는 이곳에서 200km남짓이 떨어져있어 갔다 제 시간에 돌아오기 어렵다며 가까운 해변을 돌며 청진사와 세계에서 숙박료가 제일 비싸다는 아라비아호텔구경을 하면 어떻겠느냐 했다. 우리는 아쉬운대로 그의 의사를 따르기로 했다. 차비, 관광비로 사람당 17딸라씩 내란다. 우리는 그들이 그어놓은 코스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사이자 가이드인 모함메드가 연도에서 자기 나라를 소개했다.

아랍에미리트련방은 바다를 끼고있는 해안국가로서 면적은 8만여km2이며 인구는 400여만이다. 면적이나 인구나 우리 연변보다 곱절 크고 많을뿐이였다. 이 나라 인구중 아랍인들이 3분의 1뿐이고 나머지는 외국이민들이란다. 관방언어는 아랍어와 영어를 통용하고있었다. 이 나라는 력사적으로 보루뚜갈, 네덜란드, 불란서, 영국 등 서방렬강들의 침략을 장기간 받아오다 1971년 3월에야 독립을 선포했다. 그 이듬해초에 7개 추장국들이 련합하고 나라이름을 아랍에미리트련방이라 하였다. 아랍에미리트련방은 기타 아랍나라들보다 썩 뒤늦게 1984년 11월에야 우리 나라와 외교관계를 건립하였다.

아랍에미리트련방은 세계 세번째로 가는 석유대국으로서 석유매장량은 978억통이며 세계석유매장량의 근 10%를 차지한다. 천연가스 저장량은 5.8억m3로서 역시 세계에서 세번째로 가는 천연가스대국이다. 이 나라 석유수입은 정부재정수입의 85%를 넘어서고있다. 메마른 고비사막에서 가난에 허덕이던 나라가 석유가 나면서부터 일약 부유한 나라로 탈바꿈하여 많은 국민들이 돈을 물쓰듯한단다. 딸라주머니를 어깨에 걸치고 이딸리아 명표안경을 걸고 나귀나 락타의 등에 앉아 일본제 록음기의 건들어진 노래를 들으며 자유로이 사막지대를 오고가는 이 나라 백성들을 도처에서 볼수 있단다.

관광뻐스는 별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한 청진사에 잠간 들렸다가 해변가의 고속도로로 질주했다. 시름없이 넘실대는 바다는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수영장마냥 그 어느 나라의 바다물보다도 푸르러보였다. 해변은 거의 모두가 부드럽고 폭신한 백사장으로서 우리 중국이라면 더없이 훌륭한 해수욕장으로 되련만 이곳에서는 그대로 방치해두고있는듯 아무런 시설도 없었다. 그 넓고 긴 백사장에는 모래를 쌓으며 장난치는 몇몇 개구쟁이들과 비키니차림을 한 남녀 한쌍이 손을 잡고 거닐뿐 백사장은 한적하기만 했다. 푸르른 바다물은 스스로도 흥미가 없는듯 백사장기슭을 덤덤히 핥고있었다.

문득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옥수수를 쪼개 세운듯한 흰건물이 신기루마냥 우리 시야에 안겨왔다.

《저기 저 곳이 보이지요? 저기가 바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7성급호텔로 불리우는 아라비아호텔입니다.》

운전수가 갑자기 앞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쇼후가 번역해주었다. 세계에서 높이가 가장 높고 가격이 가장 비싼 호텔이 바로 저것이란다. 호텔이 어찌나 호화롭고 휘황한지 그 급수를 밝히기 어려워 그저 세계최고급이라는 의미에서 7성급이라 한단다.

호텔은 바다를 메운 인공섬에 돛배모양으로 지어졌는데 높이는 321m로서 56층에 달한다. 이 호텔은 한 영국의 저명한 설계사가 세계 이름난 여러 호텔의 장점을 따다 설계했는데 그 조형이 현대적이고 독특하고 아름답기로 세계 유명한 호텔경영가들이 한결같이 부러워 침을 흘린단다. 세상의 부호들은 물론 부유한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들도 이곳에 와 한번 자보는것이 소원이란다. 호텔에는 방마다 설계가 다른 침실이 202개 있다. 200m 높이에 있는 관람대에 나서면 두바이시와 그 주위의 전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사람들은 이 호텔에 와 보아야 금빛찬란하다는 단어의 참뜻을 실감하게 된단다. 가장 호화로운 782m2의 대통령방은 금으로 도금하였는데 하루밤 숙박료가 3만딸라란다. 하인들이나 든다는 구석쪽에 있는 제일 값싼 방이라야 하루밤 숙박료가 1500딸라란다. 이 호텔에 든 손님은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승용차를 타고 공항에 드나들수 있으며 호텔 28층에 있는 헬기장에서 현대화헬기를 타고 15분간 공중선회하면서 도시와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수 있다. 주숙한 손님이 만일 바다밑에 있는 해족관에 가 바다고기를 맛보려 한다면 호텔에서 잠수정에 모시고 바다로 들어가는데 바다밑 세상을 맘껏 구경할수 있다.

엎딘바에 절이라고 왔던바에 이렇듯 호화롭고 설비구전한 세계최호화호텔을 눈요기라도 하고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려고 하니 NO, 호텔경비원들이 막아나섰다. 호텔안을 구경하는 관광비가 인당 100딸라란다. 우리는 초풍할 지경으로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서로 한참 쳐다보았다. 세상 어디에 가도 눈요기하는데만도 100딸라씩 내라는 곳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살아 평생 언제 다시 와볼지도 모를 곳이라지만 사람마다 100딸라씩 선뜻 내놓기는 주저가 들었다. 더우기 자기 돈을 내놓으라면 살점을 떼내는듯한 아픔을 느끼는 중국사람들이라 100딸라라는 소리에 손부터 홰홰 내저었다. 우리 《가난뱅이》대표단 일행은 고기맛을 보려는 흥분에 들떠 닭 쫓던 무엇이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한참이나 호텔을 쳐다보며 겉모양이나마 눈자리나게 요기했다. 우리는 잔뜩 흥분에 들떴던 기분이 와르르 무너져내린 마음을 달래려는듯 호텔경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호텔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애꿎은 사진기샤타만 눌러댔다. 연길공원에서도 자그마한 조형을 배경으로 사진찍으려 해도 사진사들이 달려나와 돈을 내라는데 그 유명한 세계최호화호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맘껏 찍는데도 너그러이 돈을 내라지 않는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우리는 그 유명한 호텔부근에 우리의 발자국이라도 남겼다는데 만족해야 했다.



2. 두바이―암만공항에서


오후 1시에 중국국제항공공사 두바이지사에서 보낸 소형뻐스가 약속대로 호텔앞에 와 멎었다. 방값은 항공공사에서 책임진다기에 우리는 그대로 뻐스에 올랐다. 북경에서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곧바로 짐을 부쳤기에 중도에서 짐을 끌고다니는 고역은 덜었다. 뻐스안은 숨쉬기가 어렵게 열기가 확확했다. 바깥날씨가 45도라니 에어콘이 없는 뻐스안이 시원할리가 없었다. 아랍사람들은 사막의 고온에 습관되여 에어콘이 없어도 탓하지 않는단다. 그러나 온대지역에서 온 우리는 열대기온에 견디기 어려웠다. 우리가 더위에 시들어진탓인지 바깥의 건물도 나무도 모두다 무더위에 녹아내릴듯 후줄근해보였다. 다만 사람들만이 이런 고온에 습관되였는지 씩씩하게 오가며 생기를 피웠다. 우리는 두바이국제공항에 이르자 서둘러 탑승수속을 했다. 쇼후가 자진해서 수속하는 줄에 가 섰다. 앞에 사람이 여나문명밖에 없었으나 발목 부러진 당나귀가 사막에서 수레를 끌듯 도무지 축이 나지 않았다. 반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다리를 자주 엇바꾸어 디디는 쇼후가 지쳐보여 내가 가서 바꿔주려 하니 순진한 쇼후는 그예 나를 밀막았다. 나는 앉아있지 않는 성미라 해산을 앞둔 임신부마냥 대청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또 반시간가량 지나서 쇼후가 허구픈 웃음을 지으며 맥없이 걸어나왔다.

《수속은 한거여?》

《시간이 연착되여 4시에 떠난답니다.》

《뭐여? 헛고생했잖아?》

《그럼 언제부터 수속한대?》

《두시후부터 한답니다.》

《이젠 두시가 다됐잖아?》

《다시 줄을 서랍니다.》

알고보니  어처구니  없었다. 사전에 통보하지도 않고 한시간가량 줄을 서서 겨우 제 차례가 오니 암만으로 가는 비행시간이 연착되였으니 비껴서란다. 우리 중국에서도 비행시간이 자주 연착되기는 매일반이지만 그래도 사전에 통보라도 하지 않는가. 여기 사람들은 이런 일에 습관되였는지 군소리없이 물러서는데 중국사람들은 두덜거리기를 좋아하는지 누가 듣건 말건 한참 두덜거리다 꼬인 속이 풀렸는지 그제야 이 시간을 어찌 보낼고 했다. 누군가 쇼핑이나 하자고 했다. 그제야 공항홀을 여겨보니 면세점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매대마다 오색령롱한 각가지 세계명품들이 구전한것 같았다. 쇼후가 우리를 이끌고 쇼핑에 나섰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거의 모든 매대마다에 중국인 판매원이 한둘씩 있는것이였다. 이것은 이곳에 드나드는 중국인이 얼마나 많느냐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하기에 값을 묻고 흥정함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아랍에미리트련방 화페 디얼한은 1딸라 대 3.7원으로서 인민페보다 가격이 곱절 더되게 높았다. 그러다보니 물가도 자연 높아 중국보다 두세배 비쌌다. 중국보다 물가가 싼가 하던 일행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설수도 없었다. 우리 일행은 그들과 기막혀할 정도로 값을 톱으며 기념으로 남길만한 자그마한 물건들을 한두개씩 챙겼다. 우리가 시간맞춰 돌아와보니 비행시간이 또 연착되여 저녁 6시가 되여야 떠난단다. 일행은 그만 물먹은 사막의 모래더미마냥 걸상에 무너져내렸다. 그래도 저녁은 공항측에서 준다기에 우리는 지정된 식당에 가서 간단한 저녁을 챙겨먹었다.

우리는 저녁 6시에 탑승했다. 비행기에 올라보니 중국에서 두바이로 올 때와는 완연 다른 풍경이였다. 려객기안은 거의 다 아랍인들이였는데 아이들을 두셋씩, 대여섯씩 가진 가족들이 수두룩했다. 마치 우리 이곳에서 뻐스를 타는듯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는것이 예상사인것 같았다. 그만큼 그들의 돈주머니가 불룩하다는걸 말해주는게 아닐가.

비행기가 요르단수도 암만에 착륙할 때는 저녁 9시경이였다. 한 나라의 수도공항이라 하지만 시야에 안겨오는 모든것이 너무나 수수하고 초라하다는 느낌이였다. 중국의 자그마한 변강도시 연길공항보다도 작고 낡아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세시간 반이나 연착되다보니 여러 나라에서 오는 비행기가 한데 들이닥쳐 여기저기에서 몰려든 려객들로 낡고 초라한 공항이 금시 터질듯했다. 전쟁피난을 떠난 난민떼와 다를바 없었다. 우리도 사람들한테 떠밀려 려권검색대앞에 가 줄을 섰다. 우리가 늦게 도착하는통에 사전에 약속되였던 저녁환영행사와 만찬회가 제대로 열릴지 걱정이였다. 우리는 저으기 조바심이 나서 입국수속을 빨리 해줬으면 했으나 검사일군들은 조금도 서두르는양이 없었다. 그들은 여유작작하게 려객들마다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그 무슨 한가한 사람이 유희를 놀고있는듯했다. 거의 반시간 걸려 우리앞에 대여섯밖에 남지 않았다 했더니 웬걸, 한사람이 한가정을 대표하다보니 수속할 때면 소리 한마디에 구석쪽에서 안해와 애들이 한무리씩 쓸어나와 검사관들에게 려권을 건네주고 얼굴을 보여주는것이였다. 옷차림은 수수해도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다니는걸 보니 새삼스레 아랍인들의 돈주머니가 우리보다 훨씬 두둑함을 실감했다. 중국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나들이 한다는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였다.

우리가 이제나저제나 차례를 기다리는데 안쪽으로부터 키가 작달막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한 동방처녀가 나타나더니 검사관과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는것이였다. 혹시 우리 마중을 나온 대사관일군이 아닐가? 처녀는 목을 빼들고 이줄 저 줄 살펴보더니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중국에서 오시는 작가대표단이 아닌가요?》
처녀는 앞에 선 나보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혹시…》

《맞네요. 반가와요. 저는 요르단주재 중국대사관 문화처의 쇼쉬입니다. 단장님이신가요?》

서가라는 처녀는 맑게 웃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분은 부단장이시구 단장은 저분이십니다.》

곁에 섰던 호남작가협회에서 온 왕약문이 아얼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쇼쉬는 자기네 문화참잔과 요르단작가협회 주석이 비행기 시간이 연착된줄을 모르고 제 시간에 나왔다가 돌아갔단다. 이제 두번째로 마중을 나왔다면서 아래서 기다리다 시간이 너무 오래서 웬 영문인가 하여 올라왔단다.

쇼쉬는 검사관한테 다가가 아랍어로 뭐라고 말하니 검사관이 손을 내젓는것이 뭔가 안된다는것 같았다. 쇼쉬가 우리한테 돌아와 애티나게 웃으며 말했다.

《국가대표단이니 록색통로로 나가게 해달라고 했더니 마구 안된다네요. 요사이 아랍나라에서 테러활동이 잦아 검사가 엄한가봐요.》

우리 차례가 오니 검사관은 려권을 받아 일일이 확인하면서 자그마한 케스안에 손을 들이밀어 지문을 찍게 하고 외눈박이 렌즈에 한쪽눈씩 들이대고 크게 뜨란다. 여태껏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도 입국시에 이렇게 지문과 눈알을 검사하는 나라는 없었다. 테러활동이 창궐한 중동지역이라 테러분자들을 검색하기 위한 조치거니 생각하고 하라는대로 할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생각밖으로 그곳은 온통 아수라장이였다. 여러 나라 려객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다보니 사람들이 밀고당기며 복새판을 이루었고 여기저기에 짐짝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짐을 찾은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겠다고 내밀고 짐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들이밀었다. 우리가 온 곳이 어느 나라 수도 공항이 아니라 마치 살길을 찾아 떠난 피난민들이 몰려든 질서없는 부두에 오지 않았나 착각할 지경이였다.

우리의 입국수속이 늦어지다보니 임자 없는 우리의 짐들이 짐수송대에서 몇고패나 돌았는지 알수 없었다. 우리는 붐비는 사람들속에 끼여들어 자기의 짐들을 챙겼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기념품을 넣은 작가협회의 짐짝과 쇼후의 짐이 보이지 않았다. 또 반시간가량 기다려 이젠 짐들의 꼬리가 끊겼으나 우리의 두 짐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별수없이 쇼후더러 공항사업일군을 찾아 반영하라 했더니 수염이 더부룩한 배뚱뚱이 공항사업일군은 심드렁하게 한쪽구석에 잔뜩 쌓아놓은 짐짝무지를 가리키며 저기에 가 찾아보라고 했다. 그것이 임자 있는 남의 짐들인가 했더니 짐수송대에서 몇고패씩 돌아도 찾아가지 않는 짐들을 내리워 구석에 처박아놓았던것이였다. 과연 그 짐짝무지에서 우리의 짐 두개를 찾아내였다. 그제야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랍사람들도 수송대에서 자기의 짐을 찾지 못하니 저절로 그 짐무지에 와 자기 짐을 찾고있었다. 아마 이런 경우가 많아 아랍사람들은 그렇게 찾는데 습관된것 같았다.
우리는 밀차 세개에 짐을 나누어 싣고 안전검사하는 곳으로 비비고 나갔다. 그런데 그곳의 질서도 엉망이였다. 관리일군이 없다보니 수십개의 짐 실은 밀차가 제가끔 틈사리에 들이미느라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수 없었다. 아랍사람들은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은지 밀차마다 마대짝 같은 짐이 산더미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 란장판에도 얼굴을 붉히며 다투거나 싱갱이질하는 사람이 없이 그저 자기 밀차만 들이밀뿐이였다. 밀차로 다른 사람을 쳐놓았거나 남의 짐을 번져놓으면 손을 쳐들어 미안함을 표시하면 그만이였다. 당한 사람도 손을 쳐들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만이였다. 당할것이 당했다는듯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듯했다. 우리는 이리저리 밀리다가 겨우 빠져나와 안전검사기에 짐들을 내려놓을수 있었다. 안전검사를 마친 짐들을 다시 밀차에 싣고 나오는데 우리 중국과는 달리 자기 짐이 맞냐고 짐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마다 밀차를 밀고 나가면 그뿐이였다. 어느 못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짐짝 수십개씩은 훔쳐갈수 있을것 같았다.

저마다 땀에 흠뻑 젖어 바깥홀에 나오니 요르단주재 중국대사관 문화참잔과 요르단작가협회 주석, 부주석이 기다리고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사관 문화참잔 래민주입니다.》
키가 작달만한 남방인 모습의 50대 사나이가 나서며 우리와 일일이 악수하며 환영을 표했다. 이어 요르단작가협회 주석, 부주석을 소개했다.

우리는 그들이 갖고나온 소형뻐스에 올랐다. 공항에서 암만시가지까지 50km 남짓했다. 이 차에도 에어콘이 없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이 다시 시루안에 들어온 느낌이였다. 

내가 암만공항의 혼잡스러운 정경을 떠올렸더니 래참잔은 례사롭게 말했다.

《아랍사람들이 인품이 후하고 솔직한건 좋은데 조직성이나 규률성이 우리처럼 째이지 못했지요. 제 하고싶은대로 하는것이 이곳 사람들의 습성이지요. 하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신도들이라 나쁜 일은 절대 하지 않지요.》

그래서 공항안이 그렇게 혼잡해도 짐이 잃어지는 일이 종래로 없었다고 한다. 아랍사람들은 자기 물건이 아닌것은 억지로 밀어줘도 절대 가져가지 않는단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든가 빼앗는 등 나쁜 일을 하면 죽어서도 지옥에 가 알라의 천벌을 받는다는걸 굳게 믿기에 모두가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쓸뿐 나쁜 궁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제야 짐표검사를 하지 않는 리유를 알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뢰봉》나라도 있단 말인가?

시내에 들어서니 밤 11시가 다되였다. 북경시간으로는 새벽 4시다. 이곳은 아랍에미리트련방보다도 한시간 더 늦어 북경시간과의 차이가 5시간이나 되였다. 작가협회 주석은 너무 늦어서 환영식은 못하겠으나 저녁식사는 꼭 해야 한다며 우리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피곤하다는 리유로 굳이 사절하고는 차를 곧장 우리가 투숙할 호텔로 몰게 했다.

투숙할 예루살렘호텔이 4성급이라고는 하나 방꾸밈새나 시설이 중국의 초대소수준이나 될가 했다. 방이 비좁은데다 끌신도 세면도구도 없었다. 방에 놓인 텔레비죤은 중국에서 80년대초에나 볼수 있었던 큰 목침만한 12촌짜리였다. 손바닥만한 형광막이나마 쉴새없이 네 눈이 펀들 내 눈이 펀들 하는통에 화면내용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샤와하는 곳도 겨우 한사람이 설만한 자리밖에 없었다. 몸을 움직이며 돌아설 때에는 앞뒤가 어디엔가 긁일가봐 걱정이였다. 기대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짐을 풀고 샤와를 하고나니 새벽 1시가 되였다. 피곤이 몰려와 서로 문안할 사이도 없이 저마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호에 이음)



<<연변문학>>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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