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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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고대문명중심지-중동(5)(허룡석)
2008년 04월 20일 10시 39분  조회:2222  추천:76  작성자: 허룡석

세계고대문명중심지-중동(5)

8. 아랍사람들의 “대범한” 일본새


허룡석


이튿날아침 9시경에 우리는 력사고적을 참관하고저 수도 디마스크에서 220㎞ 떨어져있는 타이드무얼로 떠났다. 타이드무얼로 가는 길 량켠도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고비사막뿐이였다. 사막이라 하여 건축에 쓸수 있는 보드라운 모래가 아니라 썩박돌이 부서진듯한 크고작은 알갱이들이였다. 거기에다 소머리, 양머리만큼한 돌뎅이들이 사처에 널려있었다. 그것도 땅이라고 목숨 질긴 이름 모를 풀들이 가끔씩 빠득빠득 뿌리를 내리고 자라긴 했으나 날마다 이글거리는 폭양을 이겨내지 못해서인지 삶의 푸른색을 띠지 못하고 누르무레한 병색을 띠고있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간혹 수십 수백마리씩 무리지은 양떼들이 나타나서 그런 풀마저도 갉아먹으니 사막이 번대머리가 되지 않을리 있을가싶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녀인의 가리마마냥 아득히 쭉 뻗은 아스팔트길로는 석유를 만재한 길다란 송유차들이 쉼없이 우리가 탄 차곁으로 쉭쉭 지나갔다. 해가 점점 높이 떠오르자 차안도 점차 더워나기 시작하였다. 자기네 작가협회의 차가 낡았다 하여 상급의 당기관에 가 빌려왔다는 차도 새것이긴 하나 역시 에어컨장치가 없었다. 차창을 열면 시원하겠는가 하여 열었더니 대번에 차안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쓸어들어오는통에 차창을 제꺽 도로 닫을수밖에 없었다. 

줄기차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칙하고 멈춰섰다. 운전수가 내려서 일을 보니 우리도 일을 보라고 멈춰선줄로 알고 분분히 차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다시 차에 오르니 차는 푸드득푸드득 선자리에서 방귀만 뀔뿐 더는 움직여주지 않는다. 운전수가 뭐라고 중얼중얼하기에 설사에 지쳐 졸고있는 쇼후한테 물었더니 휘발유가 떨어졌단다. 저런, 주유소는커녕 인가조차도 보이지 않는 이 고비사막에서 휘발유가 떨어지면 야단이 아닌가. 어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국가대표단인데 휘발유가 떨어져 중도에서 멈춰서다니. 무엇이나 사전에 꼼꼼히 준비하는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무엇 하느라고 사전에 요만한 준비사업도 안해놓았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아직 갈길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이제 겨우 절반을 왔단다. 아직도 100여㎞ 가야 하는데 지금 이곳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였다. 우리는 다시 차에서 내렸다. 이곳 사람들의 일본새가 왜 이 모양이냐며 우리가 원망하고 안달아하는데도 운전수는 시물시물 사람좋게 웃으며 별로 조급해하는것 같지 않았다. 섭참찬도 사람좋게 그저 허허 웃으며 자기는 아랍사람들의 이런 일본새에 습관되여 놀랄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잖아도 자기가 어제저녁에 우리를 안내하는 작가협회일군을 보고 래일 먼길을 가게 되니 여러가지로 준비사업을 잘하라고 특히 귀띔했는데도 이 모양이라며 차뒤에서 운전수와 뭐라고 옥신각신하는 작가협회일군을 불러왔다. 섭참찬은 작가협회일군하고 한참 뭐라고 말하더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작가협회일군이 어제 운전수더러 준비사업을 잘하라고 하니 운전수가 눈을 부라리며 자기 일에 간섭말라 하더란다. 상급당기관에서 차와 함께 내려보낸 운전수라 자기네도 어쩔수 없다는것이였다. 당기관에서 온 운전수라도 아래에 내려오면 상급지도자행세를 하기에 오히려 자기들이 운전수의 눈치를 보아가며 비위를 맞춰줘야 한단다. 그러면서 섭참찬더러 자기가 이미 운전수와 말했으니 오늘의 불찰로 운전수를 너무 꾸지람하지 말아달란다. 그 화풀이가 자기들한테 돌아오면 난처해진단다. 실로 어처구니없었다. 당기관에서 차를 모는 사람이 뭐가 대단해서 쩔쩔매는지 모를 일이였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던지 운전수는 무턱대고 길 한가운데 나서 두손을 쳐들고 마구 휘저어대며 지나가고 오는 차량과 송유차들을 막아나섰다. 그들한테서 휘발유를 해결받으려 하는것 같았으나 오가는 차들은 누구 하나 알은체하지 않고 더운 바람을 덮씌우며 휙휙 지나갔다.

운전수는 별수 없던지 길가에 물러서서 여기저기에 핸드폰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잃은 당나귀를 찾는 게으른 농부마냥 이마에 손을 얹고 동서남북을 한참 살펴보더니 홀연 사막 한가운데로 터벅터벅 걸어가는것이였다. 그가 왜 사막으로 들어가는지 의아쩍어 우리의 눈길은 일제히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는 어느 사이 자그마한 모래언덕뒤로 사라졌다. 그가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더욱 불안했다. 이 허허고비사막에 휘발유가 떨어져 길가에 멈춰서있는 차는 우리 차밖에 없었다. 이젠 영그러진 태양도 불비를 퍼붓기 시작하는지라 어떻게 하면 더위를 피해볼가 하여 어떤이는 차에 오르내려보았으나 차안팎이 무덥기는 매일반이였다. 더위를 먹고 고생하는이들은 개미가 채바퀴 돌듯 안절부절했다. 물이라도 마시면 좀 낫겠나 하여 모두들 생수병 하나씩 찾아들고 애꿎은 물만 마셔댔으나 물도 뜨거워 온몸에 소금물만 내돋게 했다. 섭참찬이 불안해하는 우리를 보고 그래도 방법이 나지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안했으나 일행의 불안한 마음들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휘발유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까지든지 여기를 떠나기 어려울것 같았다.

이때 홀연 등골을 써늘하게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오기에 소리 나는쪽을 바라보니 아까 모래언덕뒤로 사라졌던 운전수가 무엇에 쫓기듯 황급한 소리를 지르며 천방지축 달려오고있었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모양을 보아서는 무슨 짐승한테 쫓기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고비사막에 무슨 놈의 짐승이 있단 말인가. 있다면 생명력이 강한 표범이나 사자 같은 흉악한 맹수뿐일텐데. 우리는 긴장해났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운전수의 뒤를 쫓아오는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까이로 달려오자 우리는 욱― 모여들며 웬 일이냐고 긴장하게 물었으나 그는 흥분되여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차에 뛰여올라 큼직한 비닐통을 들고 내리더니 또다시 오던 방향으로 뛰여가는것이였다.

“휘발유가 있답니다. 휘발유를 찾았대요!”

운전수의 말을 알아들은 쇼후가 환성을 질렀다.

“뭐? 휘발유를 찾았다구?”

우리는 얼떨떨해졌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 고비사막에서 휘발유를 찾았다니 웬 소리인가. 아무리 석유가 많이 나는 아랍땅이라지만 샘물처럼 허망에 풍풍 솟는 휘발유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무슨 영문임을 알아차렸는지 작가협회일군이 운전수의 뒤를 따라 뛰여갔다. 금방까지만 해도 불안과 더위로 맥꼴을 못추던 우리도 휘발유를 찾았다는 소리에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작가협회일군의 뒤를 따라 뛰였다. 

모래언덕을 넘어서 우묵스레한 곳에 이르러보니 누가 언제 내던진것인지 도람통 여라문개 나딩굴고있었다. 먼저 뛰여간 운전수가 뒤따라온 작가협회일군과 함께 도람통을 하나하나 흔들어보고있었다. 모두가 빈통이였다. 우리는 저으기 실망했다. 그래도 운전수는 밑굽에나마 휘발유가 있음직한 도람통을 다른 도람통우에 올려놓고 가지고 온 비닐통안에 열심히 찌워넣고있었다. 그렇게 도람통들의 밑굽 휘발유를 다 찌워넣으니 큼직한 비닐통에 거의다 찼다. 하지만 고까짓걸 가지고는 아직도 태반 부족이였다. 이때 운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운전수의 얼굴에는 송골송골 돋은 땀방울과 함께 웃음꽃이 피여났다. 자기가 아까 전화를 했더니 제일 가까운 곳의 주유소에서 휘발유 두통을 모터찌클에 싣고 왔다는것이였다. 우리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운전수들이 장거리를 자주 뛰다보니 부근 주유소정황들을 잘 알고있는것 같았다.

모래언덕을 넘어서 바라보니 아니나다를가 저 멀리 우리 차곁에 모터찌클 한대 서있었다. 우리는 환성을 지르며 달려내려갔다. 운전수와 작가협회일군은 서둘러 비닐통을 하나하나 들어 차의 기름탕크에 쏟아넣었다. 그들이 수고하는것이 미안해 엄지를 내들고 너희들이 방법이 있다고 춰줬더니 운전수는 팔소매로 땀을 훔치며 헤헤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일본새가 바르지 못해 고생을 공연히 사서 하는 그가 천진스럽고도 가긍하게 느껴졌다.

휘발유를 다 넣자 우리는 서둘러 차에 올라 갈길을 재촉했다. 운전수도 한시름 놓였는지 차를 몰면서 가끔 우리를 돌아보며 말을 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섭참찬은 시무룩이 웃으며 고개만 저을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인가가 없는 이 고비사막에서 휘발유가 떨어지니 모두들 깜짝 놀랐잖아요. 어쩌면 이 사람들의 일본새가 이럴수 있습니까?”

“아랍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여서 놀랄것도 없지요. 국가적으로 외국수반들을 접대할 때도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들이 수두룩하지요.” 
섭참찬은 여러 아랍나라들을 돌면서 직접 겪은 재미나면서도 입이 딱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우리의 사유와 관념으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한번은 우리 나라 총리가 한 아랍나라를 방문하게 되였다. 중국대사관에서는 몇달전부터 총리영접사업에 관한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해왔으며 해당국 주관부문과도 수시로 련계를 달며 준비사업을 검토했다. 총리가 도착하는 날 이 나라에 와서 부임된지 얼마 안되는 중국대사관의 대사는 영접책임이 중대하기에 세시간전부터 공항에 나가 영접준비사업을 일일이 체크하였다. 그런데 사전에 다 약속되였던 비행장에 펴놓아야 할 붉은 주단을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국제관례에 따라 국가수반을 영접할 때는 비행장에 붉은 주단을 펴놓는것이 상례였다. 대사가 해당국 책임일군을 찾아 물으니 벌써 다 준비되였으니 걱정말란다. 그런데 한시간이 지나도 붉은 주단을 펴놓을 기미라곤 보이지 읺았다. 대사가 다시 그 책임일군을 찾아 물으니 자기가 이미 다 포치해놓았다는데 왜 믿질 않느냐며 오히려 자기쪽에서 불쾌해하더란다. 또 한시간이 지났지만 붉은 주단은 의연히 보이지 않았다. 아랍사람들의 일본새를 잘 모르는 대사는 안달아나기 시작했다. 총리도착시간이 당금인데 붉은 주단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이게 어디 될 말인가. 중국같으면 벌써 몇시간전에 다 펴놓았을것이 아닌가. 대사가 재차 그 책임일군을 찾았으나 이젠 아예 련락도 되지 않고 사람도 찾을수 없었다. 속이 후끈 달대로 단 대사가 급급히 그의 아래사람들한테 물으니 모두들 아랍식으로 두손을 펴들고 어깨를 으쓱하며 도리머리질만 할뿐이였다. 비행기가 착륙할 시간이 점점 박근해오는데도 붉은 주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당금 대사를 그르칠것만 같아 대사는 단가마우의 개미마냥 쩔쩔매며 돌아쳤다. 이 사람들이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홀연 저 멀리 하늘가에서 우르릉하는 보잉기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대사는 온몸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인젠 보잉기가 까만 점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대사는 그만 하늘땅이 맞붙으며 까무라칠 지경이였다. 이때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오는지 붉은 주단을 멘 사람들이 줄줄이 달려나오더니 붉은 주단을 펴야 할 자리에 쫘르륵, 쭉쭉 순식간에 다 펴놓고는 개선장군인양 소리를 지르며  되돌아 달려들어오는것이였다. 혼비백산했던 대사는 그만 입을 딱 벌린채 유령같이 나타난 그들을 초점없는 눈길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간 어디에 가 뭘 하다 나오는지 아무리 찾아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그 책임일군이 대사곁에 불쑥 나타나며 “보셨지요? 비행기가 내리기전에 다 펴놓지 않았습니까?” 하며 되려 제쪽에서 기분좋게 자랑하더란다. 너무 놀라 얼이 쑥 빠졌던 대사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속타고 놀란걸 생각하면 귀뺨이라도 갈겨놓고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은 해놓지 않고 그간 어디에 갔댔느냐고 대사가 격하게 힐문했더니 별로 할 일이 없어 홍차 마시러 갔댔단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를 찾았댔느냐고 정색해서 반문하더란다. 대사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도 하면 한바탕 화라도 내련만 그렇게 진지하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뭐라 하겠는가. 그저 이 놈, 갓 부임한 내가 너때문에 십년 감수한줄 아느냐고 속으로 욕할수밖에 없었다.

아랍사람들과 익숙해지고 아랍사람들의 성격과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나면 그들의 일본새를 리해할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단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나라 인대회에서 앞서렬을 차지하는 한 자력 깊은 부위원장이 우호적인 어느 아랍나라를 방문하게 되였다. 하루는 방문일정에 따라 한 환영행사에 참석하게 되여 관례대로 국가에서 파견한 의장대 모터찌클 석대가 앞에서 길안내를 하게 되였다. 그런데 한 네거리에서 모터찌클 석대가 지나가고 뒤의 차는 붉은 등을 만나 멈춰서게 되였다. 푸른 등이 켜질 때를 기다려 네거리를 지나고 보니 길안내와 보위임무를 맡았다는 모터찌클차대가 간데온데 없어졌다. 아무리 련락해도 련락도 되지 않는지라 별수없이 자체로 길을 물으며 행사장을 찾아가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였다. 부위원장을 배동했던 중국대사가 화가 치밀어 행사장에 혼자 먼저 도착해 빈들거리는 모터찌클차대책임자를 찾아 우리 위원장 차를 기다리지도 않고 무슨 길안내를 이렇게 하느냐고 꾸짖었더니 그 책임자가 한다는 소리가 더 가관이더란다. 앞만 보며 가는 우리가 뒤에 떨어진 당신네를 어떻게 알겠는가. 당신네가 도정신해 앞을 잘 보며 우리를 따라와야 할게 아닌가. 이제부터는 뒤떨어지지 말고 자기네를 잘 따르라고 오히려 열심히 충고까지 하더란다. 세상에, 이렇게 길안내하는 국가의장대도 있단 말인가. 대사는 숫구멍에 망치 한대 얻어맞은듯 입을 하― 벌린채 할 말을 찾지 못했단다. 후에 그들의 무책임한 행실을 그 나라 해당 부문에 반영해도 몇달이 지나도 가타부타 아무런 답복도 없더란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적수반을 안내하는 중요한 행사에서 나타난 이들의 무책임한 행위는 엄중한 실직으로 처리되겠으나 아랍나라에서는 이런 일로 본인이 검토하거나 해당 부문에서 처분하는 일은 거의 없단다.

이는 규률이 엄한 우리 동양사람들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것 같았다. 섭참찬은 또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 나라 외교부에서 부부장으로 있던분이 어느 대국주재 중국대사로 부임되여갔다. 그가 간지 얼마 안되여 우리 나라의 중요지도자 한분이 그 나라를 방문하게 되였다. 새로 부임되여간 중국대사가 영접사업을 빈틈없이 하느라 했으나 실제영접과정에서 비교적 큰 생각밖의 차실이 빚어지게 되였다. 원래 중앙기관에서만 돌던 인테리출신이라 실제적인 기층조직관리경험이 없는데다 국가적수반을 맞이하는 중대한 영접사업을 처음 한탓에 아마 차실이 빚어졌던가본다. 본인도 자기의 착오를 뼈저리게 느끼고 여러차례 심각한 검토서를 썼으며 조직에서도 그에게 해당한 처분을 주었다. 하지만 대사는 이 일로 하여 안팎으로 크나큰 정신적압력을 느끼며 너무 고민하여 나중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선택하여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단다. 우리는 이 대조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우리와 아랍사람들간의 사이에 이데올로기면에서 빚어지는 차질뿐만이 아니였다. 장기적으로 형성된 아랍사람들과 동방사람들의 사유와 관념상의 차이로 우리 나라와 아랍나라에서 공동주최하는 여러가지 행사때에도 많은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우리 나라 경제, 문화분야에서 종종 아랍나라들과 여러가지 박람회나 비엔날레(展銷會)를 가지는데 이곳 사람들이 무슨 일이나 질질 끌어 다른 지역 나라들과 합작할 때보다 훨씬 애를 먹는단다. 무슨 일이나 시작은 해놓고 질질 끌다가 바쁜 대목에 가서야 와닥닥 달구쳐 주최측의 애간장을 말린단다. 이를테면 상품을 전시해야 할 매장을 어느날까지 다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계약까지 명확히 체결하였는데도 평소에는 가시아비 제사날 미루듯 미루다가도 테프를 끊어야 할 전날에야 모여들어 밤을 새워가며 미친년 국거리 썰듯 복새통을 놓으며 이튿날 손님이 다 모여 행사를 시작하기 직전에야 겨우 일을 마무리한단다. 일을 지체시키지 않았다 쳐도 주최측으로 놓고보면 얼마나 사람을 간 떨어지게 하는 일본새인지 모른다. 그래서 아랍나라들과 한번 이런 행사를 치르고나면 우리측 관리일군들은 염병을 앓고난 사람처럼 오래동안 그 스트레스를 풀지 못한단다.

우리도 요르단에서 겪었던 해프닝들을 이야기했다. 요르단에서 우리는 일정에 따라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인 야커바를 참관하고 곧바로 200여㎞ 떨어진 옛 도시 페트라에 가 하루밤을 묵고 이튿날 페트라옛성을 참관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를 안내하는 작가협회일군들도 우리가 주숙할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것 같지 않았다. 저녁어둠이 깃들어 페트라에 도착했으나 우리가 들려고 하는 호텔을 찾지 못하여 차를 여기저기에 세워놓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었다. 이 사람이 저쪽일거라고 하면 차를 그쪽으로 몰고 가 알아보았고 저 사람이 이쪽일거라고 하면 또 이쪽으로 차를 몰고 와 물어보다나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였다. 작가협회일군도 호텔찾기에 지쳤는지 인젠 늦었으니 먼저 시내에서 저녁이나 먹고 다시 찾아보자고 하는것을 래참찬이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 아무리 늦어도 주숙할 호텔을 찾아야지 국가대표단을 길바닥에서 헤매게 해놓고 어떻게 식사부터 하겠느냐고 질책했다. 작가협회일군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마지못해 계속 호텔찾기에 나섰다. 우리도 별수없이 그들이 차를 모는대로 끌려다녔다. 인구가 2만여명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도시에 호텔이 모두해야 몇곳 안되는데 한시간 남짓 돌아도 우리가 들어야 할 호텔을 찾지 못한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작가협회일군이 호텔마다 들어가 알아보더니 나중에 우리 차를 오던 길로 돌려세우는것이였다. 워낙 우리가 주숙해야 할 호텔은 시내안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던 길가에 있었다. 우리는 오던 길로 20여㎞가량 되돌아가서야 주숙하기로 예정한 고전성보식호텔을 찾을수 있었다. 알고보니 한심한것은 사전에 미리 해당호텔에 련락도 없이 자기나름대로 페트라에 가면 어느 호텔에 들어야겠다고 앉아서 생각했을뿐이였다. 그러다보니 그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 일행이 주숙할 방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뛰여든것이였다. 그러다 방이 없으면 또 다른 호텔을 찾아헤매야 했다. 아랍사람들의 이런 주먹구구 일본새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래참찬도 화가 치밀어 이러길래 아랍사람들이 그 자그마한 이스라엘과 몇차례 싸워도 한번도 이기지 못한다고 뒤욕을 했다. 무슨 일을 하나 사전에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 유태인종인 이스라엘사람들은 싸울 때도 면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싸우나 아랍사람들은 싸울 때에도 평소의 주먹구구식으로 싸우다보니 아랍사람들이 번번이 랑패를 본단다. 이를테면 대포는 대포대로 끌고 가고 포탄은 포탄대로 운수하다보니 이스라엘군이 진공을 발동해 포를 쏘아야겠는데 포탄을 찾지 못해 허둥대다 대포고 사람이고 몽땅 이스라엘군의 전리품으로 되고만다는것이였다. 

아랍사람들은 미리 준비한다는 관념이 없이 일에 부딪쳐야 다음 일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생각한단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루에 몇백킬로씩 뛸 때에도 차안에 물이나 음료를 갖춰놓는 법이 없다. 가다가 슈퍼를 만나야 물을 사서 올려온다. 어떤 날에는 수백킬로를 달려도 슈퍼를 만나지 못할 때에는 그 더위에도 갈증을 참아야 했다. 이런 경우를 감안해 오히려 대사관측에서 물을 몇상자씩 사서 올려놓았기에 미지근한 물이나마 수시로 마실수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오다보니 우리는 피곤도 무더위도 잊은채 타이드무얼에 무사히 도착할수 있었다. 우리는 타이드무얼에서 력사고적을 흥미진진하게 참관한후 이튿날부터 여러 성에 내려가 지방작가협회들과도 좌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것은 우리가 지방에 대한 참관방문을 마치고 수도 디마스크로 돌아올 때에도 중도에서 또 휘발유가 떨어져 시간을 퍼그나 지체했다는것이다. 올 때에 휘발유가 떨어져 고생하던 교훈을 섭취해서라도 다시는 그와 류사한 일이 발생되지 말아야 했었으나 그것이 아니였다. 휘발유가 떨어졌다고 할 때에는 오후 세시경이라 바깥날씨가 차안보다 더 무더워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고 땀을 좔좔 흘리며 차안에서 꼬빡 한시간가량 기다렸다. 운전수도 더운게 싫은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이번에는 앉은자리에서 핸드폰만 쳐댔다. 두번이나 휘발유가 떨어지고보니 저로서도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우리보고 조금만 기다리라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우리를 단가마안에서 한시간나마 기다리게 했다. 알고보니 운전수의 동생이 근처 어느 시골에 살고있는데 동생더러 휘발유를 얼마 가지고 어디까지 오라고 핸드폰을 쳐대는것이였다. 동생은 하던 일을 제쳐놓고 집에 있던 휘발유를 트럭에 싣고 급급히 20리길을 달려와서야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날수 있었다.  

려행길에서 내가 가만히 살펴볼라니 보편적으로 체대가 우람진 아랍사람치고는 키가 작달막하고 왜소하게 생긴 쉰을 넘긴 운전수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운전수의 직책이라면 시간에 맞춰 대표단일행을 안전하게 실어가고 실어오면 그만이련만 그것이 아니였다. 우리가 크고작은 좌담회를 할 때마다 운전수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꼭꼭 참여하는데 그것도 뒤좌석이나 구석쪽을 차지하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앞자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전업성을 띤 작가들지간의 좌담회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련만 그가 무슨 흥취로 참가하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자리에 앉아서는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슬리퍼를 끌고 다니던 터덜터덜한 맨발을 걸상우에 올려놓고 발가락사이를 뚜지기도 하고 또 한참후에는 코구멍을 후비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보도매체의 카메라렌즈가 쭉 돌아갈 때면 언제 그랬냐싶게 점잖게 앉아 발언하는 사람을 쳐다보기도 했다. 좌담회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 모두들 웃을 때면 자기도 그 분위기에 매료된듯 덩달아 같이 하하 웃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 자기와는 무관한 좌담회에 참가하여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것 아니냐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것만 같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식사할 때도 그는 맨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래도 누가 나서서 “당신이 왜 여기에 앉았소? 저쪽에 가 앉으면 안되오?”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맛있는 료리가 오르면 남들이 맛볼 사이도 없이 그 접시를 들어다 자기앞의 작은 접시에 쭉 갈라놓고는 볼이 미여지게 맛갈스레 먹었다. 운전수의 주책없는 그러한 행실이 우리로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너무 눈꼴이 사나울 때면 종종 운전수가 너무한다고 의론하였다. 하지만 주인들이 상관하지 않는데 손님의 신분인 우리가 뭐라고 할수 없었다. 어떤 날에는 오후 몇시에 어디로 떠난다고 약속하고 모두들 제시간에 호텔홀에 모였지만 운전수가 보이지 않을 때가 푸술했다. 작가협회일군이 조급해 찾아보면 운전수는 그때까지 호텔방에서 코를 골며 시름없이 자고있었다. 우리가 좌담회를 할 때 운전수가 자기와는 상관없는 좌담회에 참가하느라 말고 방에 올라가 일찌감치 휴식했더면 그렇게는 피곤하지 않았을것이다. 이렇게 번마다 불리워 내려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우리 보고 이젠 떠나자고 손을 앞으로 휙 내젓는다. 운전수가 자면 우리는 기다리고 운전수가 손을 저으면 우리가 “전진”하는것이 마치 상급당기관에서 왔다는 운전수가 우리를 지휘하는것 같았다. 운전수가 하고싶은대로 해도 우리를 배동하는 작가협회 부주석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것 같았다. 우리가 간혹 섭참찬하고 운전수의 무책임하고 주책머리없는 일들을 말하면 섭참찬도 도리머리질 했다. 섭참찬도 알아보았는데 당기관에서 내려온 운전수여서 작가협회에서 관할하기 어려울뿐만아니라 날마다 저녁이면 인사까지 내며 달래야 한다는것이였다. 자본주의제도를 실시하는 요르단에서는 운전수의 그 어떤 특권행위도 느끼지 못했는데 사회주의제도를 실시한다는 시리아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되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인지? 생활을 책임진 부단장이라 내가 간혹 반의로 네가 잘한다고 엄지를 내들거나 번역을 시켜 우리를 위해 차를 모느라고 수고 많다고 칭찬하며 갖고 갔던 중국록차를 선물하기도 하면 그도 같이 엄지를 내들며 내 허리를 안아주기도 하는것이였다. 그후부터 그는 누구보다도 나와 가까이 지냈다. 어떤 때에 차안에 물이 두세병밖에 남지 않으면 나한테 차례지지 않을가봐 슬그머니 먼저 물병을 쥐여주기도 하고 고적을 참관할 때도 전문 내뒤를 따르며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어떤 고적에 가 간혹 사진찍을 생각이 없어 남이 찍는것을 보기만 하면 내곁에 와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너는 왜 사진을 안찍는가고 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달라 해서는 제일 적합한 위치를 찾아주며 나를 위해 샤타를 누르기도 했다. 그의 열성에 못이겨 나는 찍지 않으려던 사진도 여러장이나 더 찍었다. 한번은 쑤워이다시에 갔다가 그곳의 부흥당조직에서 전문 우리를 위해 마련한 문예공연을 보게 되였다. 공연뒤끝에 우리는 또  미술써클실, 음악써클실, 컴퓨터실 등 이곳저곳 참관하다가 차에 오를 때에야 나는 려권이며를 넣은 멜가방을 두고 온줄 알게 되였다. 아마 공연을 볼 때 옆에 놓아두었던 멜가방을 잊고 그대로 일어서 나온것이 분명했다. 내가 정신이 펄쩍 들어 홱 돌아서 멜가방 찾으러 가려는데 운전수가 시물시물 웃으며 내 멜가방을 눈앞에 높이 쳐드는것이였다. 내가 멜가방을 잊고 두고 온것을 보고 그가 주어들고 우리의 참관이 끝날 때까지 말없이 들고 다녔던것이였다. 나는 몹시 감격되여 멜가방보다 먼저 그를 와락 끌어안으며 감사의 뜻으로 그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도 시무룩이 웃으며 나의 등을 다독여주는것이였다. 그후 우리의 관계는 더 돈독해져 좋은 배경을 만나면 서로 청하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시리아를 떠날 때도 그는 우리를 공항까지 실어다주면 되지만 기어이 공항홀까지 따라들어와 짐을 만재한 밀차를 열심히 밀어주었다. 려권과 티켓검사를 마치고 탑승휴계실로 들어가기전에 우리는 며칠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안내하느라 수고한 작가협회일군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운전수와도 작별하려 하니 뜻밖에도 운전수는 티켓이 없어도 자기도 탑승휴계실로 들어갈수 있다며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것이였다. 뿐만아니라 자기가 나서서 탑승귀빈실에 모시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별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협회일군은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으나 그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안으로 들어왔을뿐만아니라 말 그대로 우리를 탑승귀빈실에 들게 하였다. 작가협회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낱 운전수에 불과한 그가 해낸것이다. 우리는 너무 뜻밖이였다. 외교관신분증으로 우리와 함께 귀빈실에 들어온 섭참찬내외도 운전수의 능력에 혀를 두르는것이였다. 아무리 당기관 운전수라 해도 일반 운전수는 이렇게 못한다는것이였다. 이 운전수는 빽이 어지간한 운전수가 아니라고 했다. 혹시 뒤심이 든든한 빽이라도 있어 국가적인 작가협회에 내려와서도 안하무인격이였는지 모를 일이였다. 작별할 때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악수했으나 나와는 열렬히 포옹했다. 사람이 겉보기에는 거칠고 맺히지 못한것 같지만 성실하고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였다. 어찌 보면 운전수가 격식을 따지지 않고 터프하면서도 진실하고 열정적이고 마음 뜨거운 아랍사람들의 전형적인 대표가 아닌가싶기도 했다.


<<연변문학>> 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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