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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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진혼곡(해후)1
2010년 07월 19일 09시 27분  조회:1263  추천:67  작성자: 허룡석

중편소설

진혼곡(해후)

허룡석



                                                1

떨거덕

료리를 집어 한입 맛을 보던 홍순이는 저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꼿꼿한 눈길로 남편 순철이를 쳐다보았다.

병원식당 밥과 채는 입에 안맞아 하는줄 알면서 이렇게 사왔어요?”

오늘점심에는 이곳 반찬이 괜찮다구 해서 사온건데입에 맞소?”

홍순이가 짜증을 부린다. 순철이는 부랴부랴 홍순이가 밀어낸 침대머리 궤상우의 음식들을 거두었다.

좀만 기다리오. 집에 입에 맞는걸로 해올테니.”

그만 두세요. 먹고싶지 않아요..”

홍순이는 뿌루퉁해서 자리에 드어누우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잘못이라도 저지른 어린애마냥 순철이는 미안스레 홍순이를 바라보며 급급히 병실을 나갔다.

맞은켠 침대에서 누룽지를 더운 물에 퍼지워 시쿤내가 물씬 풍기는 김치쪼각을 찢어 반찬으로 점심 먹고있던 60대의 아낙네가 그러는 그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키는 작지 않으나 몸은 바싹 말라있었다. 보기 싫을 정도로 관골이 튀여나왔다. 역시 60 남짓해보이는 얼굴에 가래톳마냥 굵직한 주름들이 얼기설기 깊이 패인 그녀의 남편인듯한 나그네가 눈치가 보이는지 이쪽에 눈을 파는 그녀를 자꾸 잡아당긴다.

그녀는 어제 오후 늦으막해 병원에 입원해 들어온 농촌녀인이였다. 의사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녀도 엄중한 자궁병으로 들어온곳 같았다.

순철이가 나가자 맞은켠의 녀인은 침대에서 내려 홍순이의 침대로 살금살금 다가가 침대머리에 써붙인 환자의 이름을 들여다본다. 그는 한자로 씌여진 이름을 알아볼수 없었던지 저쪽에 수더분해 보이는 남편을 끌고와서 이름을 가리켜 보였다. 그리고는 도로 자기침대로 끌고가 소곤거렸다.

여자 이름이 뭐라구 썼습던두?”

김홍순이라 쓴것 같던데…”

? 김홍순이 맞습지?... 김홍순이…”

건데 자꾸 쓸데없는 일에 삐치구 그래?”

별랗게 얼굴이나 말소리 익다 했지…”

침대에 누워있는 녀인은 김홍순이 옳았다. 지구산아제한판공실주임으로 있다가 두해전에 자리를 홍순이다. 자궁암말기로 병원에 입원한지 보름이 되였다. 원래는 병원 서쪽켠의 아늑한 정원에 자리잡은 고급간부병실에 입원해야 했으나 그곳을 새롭게 장식하는 바람에 림시로 일반환자들이 입원하는 보통병실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독방을 차지하고 있다가 급히 입원할 환자가 들어왔으나 자리가 없어 병원측에서 홍순이네 동의를 거치고 농촌에서 왔다는 녀인을 병실에 입원시킨것이였다.

자궁암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에 깜짝 놀란 순철이는 일루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수술해보자고  간청했지만 의사들은 수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도리질했다. 북경이나 상해 병원에 가면 어떻겠는가 해도 필요없다고 했다. 기껏해야 두석달을 넘기지 못할거란다. 락담할 충격이지만 순철이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별수없이 홍순이는 지금 그저 통증을 줄이는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홍순이는 그저 자궁염치료를 받고있는줄로 알고있었다. 그런데 여러날 지나도 효험은커녕  고통스럽기만 한지 괜한 일에도 공연히 짜증을 부리며 화를 내군 했다.

남편 순철이는 지구공업국 국장으로 있다가 지난해에 퇴직했다. 넓적한 얼굴에 입이며 코며 눈이 큼직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어 순철이는 사람들에게 수양있는 간부다운 묵직한 인상을 주었다.

안해가 입원한후 순철이는 하루 세끼 집에서 밥과 반찬을 해서 날라왔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3년전에 카나다로 공부하러 간후부터 집에는 그들 부부만 남게 되였다. 안해가 병원에 입원한 뒤로 그는 안해의 곁에 붙어있다싶이 살틀히 시중을 들었다. 자주 짜증을 부리는 안해를 그는 웃는 얼굴로 위안하군 했다. 평생을 제몸도 집도 돌보지 않고 혼신을 다해 사업하느라 고생해온 안해를 마지막에나마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

오늘점심은 병원식당에서 여러가지 맛좋은 료리들을 한다기에 호기심에 끌려 맛갈스러운것으로 골라 사왔는데도 사정없이 퉁을 맞은것이였다.

한시간남짓 지났을가. 순철이가 집에서 따로 밥과 반찬을 해가지고 땀벌창이 되여 병실에 들어섰다. 그는 웃옷을 벗기 바쁘게 침대머리로 다가와 홍순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여보, 당신이 좋아하는 밥과 채를 해왔소.. 얼른 일어나오..”

홍순이는 토라졌는지 뒤돌아눕는다.

순철이는 이불을 살며시 끌어내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지 말구 일어나오. 이후엔 병원식당에서 아무리 맛있는 제비둥지를 한대두 사오지 않을테니까. , 일어나 앉소.”

남편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키자 홍순이는 못이기는척 일어나 앉았다. 순철이는 갖고온 밥과 반찬을 궤상우에 차려놓았다.

, 당신이 좋아하는 고사리볶음. 신선한 오이무침. 기장밥, 오다가 사온 순대…”

홍순이는 순철이를 할기죽 흘겨보며 쥐여주는 수저를 받아들었다. 그는 밥과 반찬과 순대를 고루 맛보더니 입맛이 당기는지 맛갈스레 먹기 시작했다. 순철이는 곁에서 물을 부어주고 집기 편하게 반찬을 엇바꾸어 앞에 놓아주기도 했다. 홍순이가 식사를 마치자 순철이는  더운물에 수건을 적셔 홍순이의 손과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맞은켠 침대에서 퍼지운 누룽지에 김치로 점심식사를 에때운 빼빼 마른 녀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홍순이네를 탐문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순철이가 그릇들을 챙겨들고 세면실로 나갔다. 녀인도 슬그머니 따라 나섰다.

어딜 가려구 그래?” 그녀 남편이 물었다.

변소 갔다올려구.”

그럼 부축할게…”

관둡소. 내절루 갈만 하꾸마.”

순철이가 세면실로 들어가자 녀인도 따라 들어갔다. 녀인은 순철이가 그릇을 부시는 곁에 다가가 손을 씻는척하며 말을 걸었다.

에구, 수고하십꾸마.”

안해와 병실에 입원한 환자임을 알고 순철이는 웃음을 지었다.

, …”

집에 안사람이 입원한지 오래됐습두?>”

, 보름 됐습니다.”

무슨 병으루 입원했습지?”

, 자궁병이라 하던데…”

병이 중하담두?”

, 그리 중한건 아니구요…”

김홍순이라 하는것 같던데.”

, 맞습니다.”

혹시 전에 광명현 대전공사에서 부련회 주임 하지 않았댔습두?”

옳습니다. 그걸 어떻게…”

전에는 평안촌이라는 마을에 집체호루 내려왔댔습지?”

순철이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녀인을 쳐다보았다.

, 맞습니다. 어떻게 그리 아십니까?…”

후에는 광명현에서 계획생육판공실주임 했습지?”

맞습니다. 후에는 지구산아제한판공실에서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혹시 전부터 아시는 분입니까?”

압꾸마.”

처음에는 피기없는 얼굴에 웃음을 담고 사글사글 말을 걸어오던 녀인이 생각밖으로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고는 자리를 떴다.

물기있는 손을 훽훽 털고는 휑하니 자리를 뜨는 녀인을 뒤돌아보며 이상한 녀인이라는듯 순철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계속 그릇을 씻었다.

병실로 급급히 들어온 그녀는 곧추 홍순이 침대머리로 다가갔다.

이봅소, 이봅소…”

그녀 남편이 다가와 그녀를 잡아끌었다.

이래? 면목두 모루는 사람과…”

녀인은 남편의 손을 뿌리치며 이불을 걷어젖혔다.

이보, 당신 김홍순 맞지?...”

금방 식사를 끝내고 조용히 누워 휴식하던 홍순이는 시끄럽다는듯 아니꼽게 응대했다.

그런데는요? 누군데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건가요?”

전에 대전공사에서 부련회 주임 했지?”

두눈에 독을 쓰고 반말까지 해가며 자기를 노려보는 그녀를 홍순이는 의아쩍게 쳐다보았다.

그런데는요?...”

맞구나. 그년이 맞구나. 아이 낳을만한 안깐덜이문 돌아가며 잡아들여 도투새끼 불알까듯하던 마귀년이 맞구나. 이년…”

날이 그녀의 두눈은 먹이를 노리는 매마냥 시퍼런 불빛이 번뜩이였다. 그녀는 대번에 홍순이의 머리채를 거머쥐여 홍순이를 잡아일으켰다.

이년, 귀신이 돼서라두 년을 찾아가자 했는데 오늘 여기서 만났구나…”

당신 미쳤어? 이래…”

그녀 남편이 달려들어 그녀의 두손을 떼내려했다. 허나 집게처럼 집혀진 그녀의 우악진 손을 풀어낼수 없었다. 평소에는 곁사람이 재채기를 해도 날려갈듯 비칠거리던 마누라한테 어디서 이런 힘이 뻗쳐왔는지 알수 없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벼라별 상봉이 있다지만 깊은 악연을 맺었다가 어느 날엔가 문득 이렇게 만나게 상봉이란 시퍼렇게 살아있던 분노가 분출구를 찾아 화산처럼 폭발한것이다.

이게 무슨 돼먹지 못한 짓거리야? 이손 떼지 못해?...”

홍순이는 머리채를 거머쥐운채 버둥거리며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좌우로 비틀었다.

이년, 나를 모르겠느냐? 내가 평안촌에 있던 양채옥이다. 30년전에 네년이 사람들을 데리구 청수동림장 양봉장에 숨어있는 나를 기어이 잡아다 여섯달이 다된 아이를 류산시켰지. 그뒤부터 내가 얻어 얼매나 고생하며 살아왔는지 아냐?...이년…”

그릇을 씻어들고 들어오던 순철이가 뜻밖의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 침대우에 그릇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짓입니까? 말이 있으면 놓구 말씀하시오. 죽어가는 사람한테 이게 무슨 행패질입니까?”

순철이가 달려들어 그녀의 손을 풀어내려고 했으나 모지름을 썼다. 그녀 남편이 녀인의 허리를 끌어안아 뒤로 잡아당겼다. 홍순이 죽는다고 고아친다. 바람에 의사와 호사들이 달려들어왔다.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어서 손을 떼시오..”

의사가 엄한 소리로 꾸짖어서야 양채옥이라 자칭하던 그녀는 비로서 손을 뗐다. 하지만 어느새 가래짝같은 손이 올라가며 부석부석한 홍순이의 귀썀을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이년아. 눈깔을 똑바루 뜨구 봐라. 내가 누군가. 애를 류산시켰으면 됐지 후에는 신체검사한답시구 몰래 피임환을 넣어 사람을 이렇게 말라죽게 만들었냐?...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냐? 같은 년은 열번 죽어도 겪지 못할 아픔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검질기게 살아온 목숨이다이년…”

홍순이는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화가 치밀어 그녀에게 맞욕을 퍼부으려다가 갑자기 두눈이 휘둥그래지더니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이 멎었다.

그래, 눈깔을 똑바루 뜨구 봐라. 이년, 나를 알만하지? 그때두 정책에 아이 둘은 나을수 있다던데 네년은 그렇게 눈깔에 쌍불을 켜구 두번째 임신한 동네 안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돼지잡듯 엎어놓았냐. 그따위 선진이 그렇게 좋더냐? 그따위 모범이 그렇게 좋더냐?”

그녀는 분을 못이겨서인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속에 피임환이 든줄두 모르구 시간이 갈수록 아래배 아프구 하혈이 심하니까 흑흑흑그저 병이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야 알구보니글쎄 피임환이 30년이나 배속에서 살을 파고들어 이꼴이 됐지 뭐야흑흑흑병치료하느라구 집까지 팔아먹구 숱한 빚을 걸머져 하나밖에 없는 딸애가 대학입학통지서를 받구서두 대학에두 못갔다아이구 원통해라…”

그녀는 자기침대에 쓰러지더니 엉엉 소리치며 통곡했다.

급작스레 벌어진 돌발사태에 그녀의 남편도 순철이도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평소에는 비실비실하던 자기 마누라가 갑자기 살을 맞은 암펌마냥 펄펄 날뛰며 녀자에게 행패를 부렸는지. 녀자 정말 그때 부련회 주임이란 말인가? 그릇 씻으러 사이 무슨 맞갖잖은 일이 벌어졌길래 면목도 모르는 촌녀인이  가만히 누워있는 자기 안해에게 행패를 부렸는지.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이면 초면이라도 서로 동정하고 위안하는것이 상례인데 환자들끼리 이렇게 치고 박고 날뛰며 싸우기는 보기 드문 일이였다.

의사는 침대에 엎드려 흐느끼는 녀인을 쏘아보며 엄포를 놓았다.

여기는 병실입니다. 절대 환자들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어린애두 아닌 분이 이게 무슨짓입니까?”

  그리고는 간호사들을 휘동하여 자리를 떴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간후에도 그녀는 슬피 흐느끼며 넉두리를 했다.

“…우리 동네 금자 에미구 생금 에미두 몇십년 동안 배속에 피임환이 들어있는줄 모르구 크구작은 병원 돌아다니며 숱한 돈을 팔다 비달비달 앓다죽었지불쌍한 애들은 얼매나 많이 잡아치우구그렇게 배속에서 애덜두 죄다 잡아뺐으니 어떻게 종재(종자) 늘어나겠냐애들이 없으니 동네핵교두 문닫구나두 그때 류산한후부터 얼매나 고생하며 살아왔는지 아냐그래두 네년은 벼슬만 잘하구, 펀히 살아 호강하구? 병원식당밥이 맛이 없어 못먹는다구?... 년아우린 그런 밥두 사먹을 돈이 아까와 입원할라 오며 집에서 가마치(누룽지) 주먼지 메구 왔다아이고 팔자야…”

보아하니 그녀의 아픔은 가죽밖에 드러난 아픔이 아니라 모질게 뼈짬을 에이며 골수에 뿌리깊이 박힌 아픔같았다.

   여지껏 이름난 녀성간부로 상급의 중용을 받으며 고개를  떳떳이 쳐들고 살아온 홍순이였다. 하찮는 농촌아낙네한테서 그처럼 창피를 당했으니 그녀로 말하면 하늘이 낮다고 펄펄 일이였다. 하건만 오늘은 웬인인지 말살에 쇠살에 악담하며 펄펄 뛰는 그녀인을 그저 쳐다만 보고는 언제나 도고하던 간부답지 않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우는지 떠는지 그가 들쓴 이불이 그의 몸체를 따라 오르내리고있었다.

일이 안될라니 림시로 보통병실로 옮겨왔더니 재수없이 무지막지한 농촌아낙네를 만나 이런 봉변을 당한것이 아닌가.

연고없이 촌녀인에게 행패를 당한 안해를 대신하여 순철이는 건너쪽 침대에 노기찬 눈길을 보냈다. 그쪽 녀인의 남편은 송구스러운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순철이의 사나운 눈길과 마주치자 황급히 눈길을 곳으로 돌렸다.

남편은 각각 자기 안해 침대머리에 앉아 안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를 몰라 절절맸다. 저쪽 남편은 이쪽의 눈치를 보며 엎드려 흐느끼며 넉두리를 하는 마누라를 그만하라는듯 흔들어대고 있었다. 순철이는 홍순이의 이불을 이쪽저쪽 꼭꼭 여며주면서 귀속말로 홍순이를 위안해주었다

갑자기 그쪽 침대의 농촌아낙네가 벌떡 일어나 뱀처럼 도사리고 앉아서 독기어린 눈으로 이쪽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독기어린 눈빛과 심상치 않은 자세가 금시 먹이를 덮쳐물려고 목을 뽑아드는 뱀과 같아 언제 또다시 덮쳐올지 몰랐다. (계속)

연변문학 2010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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