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
중편소설
진혼곡(해후)
허룡석
4
채옥이의 행악질을 당한후부터 홍순이는 몰라보게 유순해졌다. 입에도 빗장을 지르고 있었다. 전처럼 트집도 부리지 않았고 짜증도 내지 않았다. 음식도 좋다궂다 타발이 없었다. 전에는 심심하면 책이나 잡지를 들고 들여다보기도 했으나 이젠 점적주사를 맞으나 안맞으나 두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기만 하였다.
사실 홍순이는 요사히 많은것을 사색하고 있었다. 평온하기만 하던 홍순이 가슴에서는 지금 오그랑팥죽이 벌렁벌렁 끓고있었다.
웬지 눈만 감으면 수없이 날려오던 지난날의 꽃다발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전에없이 만사람의 눈길이 창끝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히고 만사람의 주먹이 우박처럼 날아와 제 몸을 진창으로 만들군 했다. 꿈속에서도 숱한 아기원혼들이 달려들어 자기의 가죽을 발라내고 자기의 뼈를 갉아먹군 하였다. 그는 몇번이나 꿈속에서 소스라쳐 놀라 깨여났다. 그때마다 온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따져보니 이러한 원혼들이 이 민족지구에서 이미 몇차례 떠돈것 같았다. 반우파 투쟁때에는 숱한 민족인테리들의 원혼이 떠돌았고 3년재해시기에는 헤아릴수 없는 남녀로소의 원혼들이 떠돌았었다. “문화대혁명”때에는 수많은 민족간부들의 원혼이 떠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빗나간 산아제한으로 하여 숱한 민족아기들의 원혼이 떠도는것이 아닌가.
사실 홍순이도 우리 민족 인구가 마이너스성장을 가져오고 많은 민족학교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부터 자기가 지난날 그처럼 빈틈없이 산아제한사업을 해온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를 되새겨보기도 했었다. 그러다도 이는 자기와 무관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채옥이를 만나고 채옥에게 행악질을 당한후부터 스스로 자기를 위안해왔던 마음의 방선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던것이다. 자기때문에 채옥이처럼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 녀성들이 어찌 그 한사람뿐이랴. 그처럼 선량하고 순진하며 성실하던 평안촌의 금자엄마, 생금엄마도 부인병으로 숱한 고통을 겪다가 벌써 저세상사람이 되였다지 않는가.
지난날 자기 한사람 손에서 죽어간 우리 민족 애들만도 수천수만에 달하는데 변강민족지구에서 자기와 같이 맹종했던 “모범”이 열명, 백명, 천명이였다면 그런 “모범”들 손에서 죽고 사라진 우리 민족 애들은 그 얼마였을가. 그때 정책 허용범위내의 그 애들이 모두 태여났더라도 우리 민족은 지금처럼 인구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오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숱한 학교들이 문을 닫고 돼지치기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출국바람이 불고 민족적 대이동이 생겨도 총체적 민족인구는 줄어들지 않았을것이다.
태여날수 있는 아이들도 태여나지 못하게 하여 나라에 좋은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민족에게는 영원히 용서못할 천고의 죄를 지은것이였다. 산은 금을 냄으로써 파헤쳐지게 되고 나무는 벌레를 끼게 하여 파먹히게 된다더니 한 민족도 자기가 저지른 죄가로 자신이 크게 다치게 되지 않았는가.
당원으로서, 간부로서 그때는 아이를 적게 낳게 할수록 당의 말을 잘 듣는줄로 알았고 나라의 기본국책을 잘 따르는줄로 알았다. 그런데 나보다 정책을 더 잘 알수 있은 상급간부들은 왜 그렇게 하라고만 등을 밀어댔지?
남에게 던진 욕이 자기 명예를 치고 남에게 던진 돌이 자기 숫구멍을 친다고 할 제 숱한 녀인들과 어린애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기같은 살인녀는 무슨 징벌을 받아야 할가. 죄를 지어 30년이면 그 보응이 따른다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이미 소금에 절인 부추가 되여 밭에 다시 돌아갈수 없을바에는 일찌감치 땅속깊이 묻혀 좋은 비료가 되여 새로운 부추의 성장을 돕게 하는것이 하느님의 명지한 징벌이겠지.
눈속에 파묻힌 시체는 눈이 녹으면 자연히 드러나는 법이라더니 시간이란 녹딱지가 자기몸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가니 험상궂은 자신의 몰골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듯 했다. 뼈아픈 경험은 훌륭한 스승이라지만 치른 학비는 너무도 엄청났다. 자기가 치른 학비보다도 민족이 낸 대가가 되돌릴수없이 처참했다. 인생이 갑자기 흐릿해 보일 때가 있다더니 자기가 이젠 어디로 가야하나 하고 묻는 순간을 맞게 되지 않았는가. 삶이 돌연 중단되는 순간 지금까지 자기가 가고있다고 생각했던 곳이 하나의 아물아물한 신기루로 되여버리지 않는가.
반우파투쟁때와 대약진, 인민공사화 운동, “문화혁명”때에 우에서 하라는대로 했다가, 아니 그보다 더 창발적으로 더 열광적으로 했다가 많은 잘못을 저질러 나중에 후회로 가슴을 쥐여뜯던 우리 민족 간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몇십년후에 내가 그들의 전철을 밟아 이처럼 후회하고 통탄하는 일을 또다시 저지르게 될줄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그는 문득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산아제한사업에서 돌출한 성과를 따낸 그는 80년대초에 성과 지구를 대표하여 전국산아제한사업경험교류회에 참석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성을 대표하여 대회에서 격정드높이 경험소개를 하였었다. 전국 5개 민족자치구, 30개 민족자치주에서 그는 유일하게 대회에서 경험소개를 한 소수민족지구의 소수민족간부였다. 그의 경험소개는 많은 간부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그런데 오후에 있은 토론회에서 중앙 어느 과학원의 인구학을 전문 연구한다는 로학자 한분이 반기를 들고 나설줄이야.
“우리 나라는 다민족국가입니다. 전국에 55개 소수민족이 있는데 소수민족 지구마다 상황이 부동합니다. 소수민족지구의 인구수, 인구분포정황, 자연생존조건, 사회경제발전정황 등 구체실정에 따라 산아제한정책을 령활성있게 집행할수 있지요.
당에서 제창하는 산아제한은 주체민족인 한족을 위주로 하는것이지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을 상대하는게 아닙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당의 산아제한정책은 인구 천만명이하되는 소수민족은 아이 둘을 낳을수 있으며 인구가 더 적은 민족은 셋도 낳을수 있고 넷까지도 낳을수 있습니다.
조선족인구는 지금190만 정도이니 우리 나라 소수민족중 인구수가 중등수준에 속하는 민족이지요. 그러니 조선족은 정책에 따라 도시에서는 아이 둘씩 낳을수 있고 농촌에서는 아이 셋도 낳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구가 많지 않은 조선족도 10억이 되는 한족과 마찬가지로 꼭 아이 하나씩만 낳게 한다면 인구가 급속도로 줄게 되여 장차 20년후에는 인구가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인구가 적은 민족일수록 마이너스성장이 가속화됩니다. 한 민족의 인구증장률이 한번 마이너스선에 이르게 되면 그 회복기가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리게 됩니다. 이는 당과 정부에서도 제창하는것이 아닙니다. 변강민족지구에서 이런 엄중한 후과를 고려해 보신적이 있는지요.?”
그 로학자는 홍순이가 소개한 경험가운데의 일부 관점과 작법들을 사정없이 비판하였다.
“산아제한정책을 실시함에 있어 소수민족들에게는 먼저 당의 민족정책을 구체적으로 잘 설명해준 토대우에서 자원의 원칙에 따라 소수민족 스스로 선택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를테면 소수민족은 아이 둘씩 낳을수 있을 뿐만아니라 특수 정황하에서는 셋도, 넷까지 낳을수 있다는 정책을 말입니다. 이래야만 당과 정부의 따사로움이 제대로 소수민족들에게 전해질수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만일 당의 민족정책을 덮어감추고 아이 하나씩만 낳게 하는것이 당의 산아제한정책이라고 한다면 이는 당의 산아제한정책을 외곡하는것으로 됩니다. 아까 김주임의 경험소개를 들을라니 산속에 숨어들어간 소수민족부녀까지 찾아내여 류산시켰다고 들었는데 이는 아주 타당하지 못한 작법이라 생각됩니다. 지어 아주 착오적인 작법입니다. 소수민족 지구에서 그렇게 강제로 류산당했거나 인공류산당한 사람들 또 그 가속과 친척들이 당과 정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당의 각급 간부들에 대한 믿음이 갈수 있겠습니까? 이는 선전사업을 위주로 하고 경상적 사업을 위주로 하며 피임을 위주로 하여야 한다는 중앙의 “3위주”정신과도 어긋나는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지방당위위신을 수호하고 자기사업성과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때 홍순이는 이렇게 당돌히 대답했었다.
“학자님의 조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당과 정부에서 소수민족을 관심하고 배려할수록 우리 소수민족들은 자태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민족인 한족이 아이 하나씩 낳는데 같은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 우리 소수민족이라고 왜 아이 둘씩 낳겠습니까? 그것도 문화가 가장 발달한 민족이라는 조선족말입니다.
우리 조선족은 당과 정부의 지시라면 무조건 발벗고 나서는 우량한 전통이 있습니다. 항일전쟁때도 그랬고 해방전쟁때도, 항미원조때도 그랬습니다. 하기에 우리 변강민족지구 조선족들이 살고있는 마을이면 촌마다에 렬사비가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항일을 위하여, 공화국창립을 위하여, 보가위국을 위하여 희생된 수천수만 우리 민족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고히 누워있습니다. 이는 전국의 소수민족지구에서 우리 변강민족지구에서만 볼수 있는 혁명적 경관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 민족의 대대손손 전해내려오는 크나큰 자랑이기도 합니다.
력사적으로도 이처럼 훌륭한 혁명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이 나라의 기본국책으로 되여있는 산아제한사업에서라고 뒤져서야 되겠습니까. 학자님의 관심과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우리 민족의 공산주의적사상각오와 나라에 충성하는 드높은 민족적 책임감을 깊이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조선족은 산아제한사업에서도 나라의 큰 국면을 돌보면서 견결히 대정방침을 집행해 나갈것입니다. 우리는 소수민족이라 하여 나라의 혜택만 받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부담을 함께 떠메고나가는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것입니다.“
홍순이는 지금 그때가 어이없었다. 그때 한참이나 자기를 물끄럼히 바라보던 그 로학자의 웅숭깊은 속뜻을 인제야 알것 같았다. 정책이 뭔지도 모르고 열광에 들떠 덤벼치는 자기가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왔으면 그런 눈길로 자기를 그렇게 바라보았겠는가. 원인은 숨겨져 있었지만 결과는 그때 이미 알려져 있은것이였다. 그 로학자는 그때 벌써 20년후의 우리 민족의 비참한 운명을 내다보고 있었던것이였다.
돌이켜보니 그때 당보에 실렸던 그 보도기사가 옳았단 말인가? 당시 지구내 많은 지방에서 덮어놓고 어린애 하나씩만 낳도록 강요하는 바람이 불어 기자가 예민하게 문제점을 보아내고 그런 기사를 발표한것이였는가? 그 보도기사가 옳았다면 왜 그대로 집행하지 않고 후에도 계속 아이 하나씩만 낳도록 관철하게 했겠는가. 과연 아름드리 버드나무 가지를 치라는건데 도끼를 잘못 휘둘러 곁에 있던 팔뚝사리 뽕나무가 중대가리 된 꼴이 되였단 말인가?
그때 토론회를 사회하던 조장이 홍순이 답변을 듣고 좌우를 둘러보며 이렇게 엄숙하게 말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라면 누구든지 나라의 기본국책을 관철집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변강민족지구에서 온 김주임의 말씀은 원칙성과 당성이 아주 강한 훌륭한 답변입니다. 저 분은 전국산아제한사업에서 소수민족간부의 우수한 전형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조선민족의 우수한 사상성과 변강소수민족지구 간부들의 드높은 당성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전국의 산아제한사업을 틀어쥐는 간부들이 모두 김주임처럼 국가와 민족간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면서 원대한 리상을 안고 책임성있게 사업을 밀고 나간다면 우리 나라의 산아제한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것입니다”.
그 회의에서 돌아온후 얼마 안되여 홍순이는 지구산아제한판공실주임으로 전격 발탁되였다. 조직의 관심과 배려에 홍순이는 가슴이 후더워났다. 그는 공사와 현에서 하던 경험을 부단히 총화하며 변강민족지구 산아제한사업을 줄기차게 밀고나갔다.
믿음은 사람들이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게 할수있는 촉매제라 했던가. 믿음은 용감한 행동과 영웅적 행위를 창조해 낸다고 했던가. 믿음은 상상력을 풍부히 하고 비상한 지혜를 발휘하게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믿음자체가 삐뚤어진 믿음일 경우 그 믿음으로 하여 발휘된 열성과 행위와 지혜가 당과 정부의 형상에 먹칠하고 자기 민족에게 끼친 악과는 무엇으로 미봉할수 있단말인가. 썩 후에야 정책적으로 삐뚤어진줄 알고 시정을 했으나 그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아이를 낳으려 할 때에는 기를 쓰고 못낳게 막았다가 이젠 두번째 아이를 낳으십사해도 거의 낳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때로는 가장 나쁘던것이 가장 좋은것일수도 있고 가장 좋던것이 가장 나쁜것 일수도 있다더니 그제날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던것이 력사의 고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나쁜것으로 돼버리지 않았는가. 처지의 조화란 때때로 한번씩 방향을 돌려놓아 인간의 운명을 또 하나의 숙제로 바꾸어놓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구나. 호ㅡ, 버둥거릴 때는 사납기가 이를데 없다도 또 꺾이려고 들면 한정없이 약해지는것이 녀자의 마음일가.
그때 자기와 함께 이름을 날렸던 녀모범들을 하나하나 손꼽아보니 가정적으로 행복했던 사람들은 별반 없었던것 같았다. 옳든그르든 잘한다고 춰주는 통에 하늘 절반이 아니라 옹군 하늘을 떠멜듯이 날뛸수록 가정은 불행해졌고 남편도 자식도 행복하지 못했던것이였다. 거의 모두가 나처럼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지 못했고 살뜰한 안해가 되지 못했다. 이제와서 보니 그때 그 모범들이 애뜻한 가정의 재미를 잃어갈수록 모든 정력을 혁명에 몰붓는것으로 정신적 위안을 찾으려한것 같았다. 또 그럴수록 선진과 모범이란 월계관도 더 많이 날아든게 아니였겠는가. 그때는 그래도 혁명하느라고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자신을 위안했는데 이제와서 알고보니 결국은 제민족에게 죄를 짓는 짓거리로 가정도 자식도 돌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그만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쾌락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방문객이지만 고통은 잔인하게 나한테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구나…
생각이 많아질수록 홍순이는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치료에 대한 욕심도 사라져갔고 삶의 의욕도 멀어져갔다. 그러니 자연 도고하던 자태도 밥물 잦아들듯 했고 해해년년 찧고쫏으며 멋들어지게 장식해왔던 화려한 모범적 틀도 망가져 내려앉았다. 그래서인지 해당 지도간부들이나 단위직원들 그리고 친척, 친우들이 병문안을 와도 홍순이의 정서가 전과 같지 않았다. 동서들과 시누이들이 순철이를 대신해 륜번으로 시중을 들려해도 모두 밀어보냈다. 홍순이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그의 그러한 정서가 문안오는 사람들에게 근심과 걱정을 더해주었다.
맞은켠 녀인의 행악질을 당한후부터 꿈결에서도 화뜰화뜰 놀라 깨여나고 갑자기 이상하게 유순해지는 홍순이가 순철이는 저으기 걱정되였다. 밥 먹을 때에도 료리가 입에 맞느냐고 우정 말을 걸어보아도 묵묵부답이다. 식사가 끝난후에는 조심스레 그의 손에 책이나 잡지를 쥐여줘도 말없이 도로 내려놓군 하였다.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로 흥을 돋구어도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간호사가 좀 늦게 와 주사를 놓아도 더는 닦아세우는 일이 없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일가? 자존심이 크게 손상받아서일가? 아니면 자기 병정황을 알아서일가? 아무튼 홍순이는 많이 달라져갔다.
이쪽에서는 그러든말든 저쪽침대의 녀인은 수시로 시퍼렇게 날이 선 눈길을 날려왔다. 순철이는 그러는 그녀와 시비라도 한바탕 캐고싶도록 아니꼬왔지만 그래도 세상물정을 좀 안다는 도시신사가 높고 낮음을 모르고 제멋대로 날뛰는 농촌아낙네를 사정없이 쪼아놓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는 간호사가 들어와 고급간부병실의 수리가 끝났으니 홍순이네가 그쪽으로 옮겨갈수 있다고 전해왔다. 그 말을 들은 순철이는 큰 짐이라도 부리운듯 숨이 활 나왔다. 오늘에라도 당장 그쪽에 옮겨가 날마다 병아리 채가려고 노리고 앉아있는 독수리같은 맞은켠 녀인을 보지 않아도 홍순이 정서가 많이 나아질것 같았다.
오후 느지막해 홍순이가 맞던 점적주사를 떼내자 순철이는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홍순이가 순철이 손을 조용히 잡았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소리를 뽑아냈다.
“옮기지 말자요.”
“뭐요? 옮기지 말자니?...”
“그냥 여기 있자요.”
“여기 어떻게 그냥 있는다구 그래오. 한시라두 빨리 옮겨가야지.”
순철이는 건너 침대를 흘끔 바라보며 볼부은 소리를 했다.
“전…여기가 좋아요.”
홍순이는 오래간만에 가벼운 미소를 띠였다.
“뭐요? 여기가 좋다구?”
순철이는 의아한 눈길로 홍순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행악질당하고 날마다 살기띤 눈총을 받으면서도 여기가 좋다구? 이 사람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순철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되지 않았지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람과 언성을 높일수도 없었다. 별수없이 꿍지려던 짐들을 헤쳐 도로 제자리들에 가져다 놓았다.
이튿날저녁녘에 간호사가 들어와 맞은켠 침대에 입원한 녀인을 보고 말했다.
“재무과에서 전화왔는데 이제 이틀후면 입원비가 다 떨어진다고 합니다. 빨리 집에 련락하여 래일로 입원비를 보충하도록 하세요.”
“뭐유? 들어올 때 5천원 넣었는데 그 돈이 벌써 다 떨어진담두?”
“지금은 초시작이여서 그렇지 다음부터는 하루에 천원두 넘어들어갈거예요.”
“뭐, 할날에 천원씩이나? 그럼 쌀을 몇마대 팔아야 하는건데?”
간호사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듯 들은척도 안하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들 내외는 억이 막히는지 두눈이 데꾼해서 서로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걸 어쩜두? 어디 가서 그 많은 돈을 꿔옴두?”
“글쎄…”
“이젠 이만 치료했으문 됐습지 우리 내일 나가겝소..”
“치료가 이제 시작이라는데 나가문 어쩌자구. 내 나가 친척들한테 전화를 쳐볼게.”
“친척들두 다 구차한게 뉘네 그렇게 큰돈 뀌여주겠슴두.”
그녀 남편은 전화치러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흐릿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문밖의 몇십년 묵은 버드나무우에서 까마귀가 아침부터 청승맞게 까욱까욱 울어댔다.
이윽하여 그녀의 남편이 들어왔다.
“어찌 됐슴두?” 녀인이 다급히 물었다.”
“딸애한테 내 동생한테서껀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는데 모두 좀 바빠하는것 같은데…아무래두 래일 당장은 될것 같지 않구먼…”
“청도에 가 일하는 딸애한테는 왜 전화했슴두. 이젠 걔들 돈 얼마를 썼는데. 걔들두 빚꾸레 나앉게 만들겠슴두?”
“래일 큰 조카한테서껀 당신 사춘언니한테서껀 다시 전화를 걸어볼게.”
“친척이라는게 다 구차한 촌사람들인게 누군들 돈이 있어 생각처럼 훌훌 내놓겠슴두. 한국 나가 돈 벌었다는 집들두 시내에 집들을 사놔서 남아도는 돈이 있겠슴두. 그만둡소. 낼 우리 나가겝소.
“나가긴 어딜 나간다구 그래. 의사가 지금 치료할 때 바싹 잡줴야 한다구 하잖았소.”
“그럼 어쩝두? 내땜에 애들 거지 만들겠슴두?”
“정 안되문 또 남은 쌀이라두 팔아야지.”
“쌀을 얼매나 팔문 치료비 되겠슴두…”
그녀남편도 다른 방도가 나지 않는지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만 내쉬였다.
자그마한 병실안이라 그들이 하는 의논을 이쪽에서 듣지 않을수가 없었다. 홍순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끄당겨놓은 후부터 그들을 늘 아니꼽게만 보아오던 순철이였지만 그들이 하는 의논소리를 듣고는 그들의 가긍한 처지에 저으기 동정이 갔다. 치료비를 이어대지 못하면 래일에라도 당금 나가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면 생사가 어찌될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의료보험카드를 내들고 치료받는 국가간부들보다 아직도 농촌 농민들의 처지가 많이 어려운것 같았다.
그들은 이쪽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이마를 맞대고 뭔가 수군수군하더니 함께 어디론가 나갔다. 그러자 자는것 같이 두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던 홍순이가 슬그머니 상반신을 일으켜 그들 침대쪽을 바라보더니 순철이를 쳐다보았다.
“동무도 저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당신 안 자구있었던거요?”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가요? 우리가 좀 도와주면 안될가요?”
“뭐요? 당신이 그렇게 괄세를 당하구두 저들을 도와주자구?”
“그럴 리유가 있었어요. 사실 잘아는 사람들이였는데…후에 말씀드릴게요.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돈 나올데가 없는것 같지 않아요. 살점이라곤 없는 분이 매일 가마치를 물에 퍼지워 자시는걸 보세요. 우리 치료비 한 만원쯤 대주면 안될가요?”
“뭐요? 만원이나?”
“저는 의료보험카드로 치료받으니 괜찮아요. 저 아주머니네는 현금이 없이는 안되잖아요. 저들을 좀 살려줍시다.’
순철이는 애원에 가까운 홍순이 눈길을 바라보고는 더 뭐라고 할수 없었다. 보아하니 그들사이에는 뭔가 확실히 말못할 사연이 있는것 같았다. 그렇찮으면 단순한 동정에서 자기에게 행패질해대던 사람한테 단번에 그런 거금으로 도와나서려 할수 있겠는가. 남편이라고 믿고 하는 소리일테니 앞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다. 순철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마워요, 카드를 갖고 있지요? 지금 저와 함께 재회과로 가자요…”
‘아니, 내 가서 넣어주지. 당신 그 몸으루 어떻게…”
“아니예요. 제손으로 넣어드리고 싶어요.”
홍순이는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고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순철이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서 내렸다. 그들 둘은 함께 재무과로 갔다. 홍순이는 순철이가 넘겨주는 카드를 받아들고 자기손으로 만원을 긁어 채옥이의 이름으로 치료비를 넣어주었다.
“이 돈이 다 떨어지면 동무가 더 넣어주세요…”
순철이는 홍순이를 물끄럼히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튿날 이른아침에도 잠을 설쳤는지 날샌 올빼미마냥 거부시시한 맞은켠 부부는 어두운 얼굴로 뭐라고 수군거리더니 남편이 또다시 밖으로 나갔다. 치료비문제가 그냥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였다. 아마 또 친척들한테 전화치러 나간것 같았다.
근심에 쌓여 침대에 앉아있는 녀인은 안절부절 못하며 공연히 이것저것 쥐였다 놓군 하였다. 홍순이는 자는척하며 그녀의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한참후 채옥의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굳어진 표정으로 안해를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화 칠만한 곳에는 돌아가며 다 쳤는데 잘 안되는구먼.”
“이젠 더 전화치느라구두 말구 아예 나가겝소. 집에 가서 약이나 사먹습지 어쩌겠슴두.”
“그저 약방약이나 사먹어 될 병이문 당장 입원하라 했겠소. 정 안되문 오후에 나가더라두 방법을 좀 더 곰곰히 생각해 보기오.”
8시쯤 되자 간호사가 점적주사병이 담긴 손잡이밀차를 밀고 들어와 홍순이의 팔에 주사침을 꽂았다. 날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는 홍순이와 그녀에게 함께 점적주사를 놓군 하였는데 오늘은 홍순에게만 놓고 간호사는 돌아나갔다. 아마 치료비때문에 그녀에게는 놓아주지 않는것 같았다. 자기에게는 주사를 놓기는커녕 문안 한마디 없이 나가는 매정한 간호사를 물끄럼히 바라보던 그녀는 깊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리고는 부러운듯 평온히 누워 점적주사를 맞는 홍순이쪽을 바라보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런 기분에 더 앉아있을수 없었던지 침대머리에 앉아 턱을 고이고있던 그녀의 남편이 벌떡 일어서더니 또 휑하니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나가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아 뭔가 궁리하는것 같더니 갑자기 물건들을 주어모아 꿍지기 시작했다.
한참후 그녀의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짐을 꿍지는 안해를 멍하니 바라볼뿐 말리지 않았다. 그도 치료비를 이어댈 상황이 못됨을 알고 실망한것 같았다. 녀인은 흐느끼며 침대우에 낡은 보를 펴놓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걷어쌌다.
“지금은 돈이 없으면 죽었지 별쉬 있슴두. 아매두 죽기는 매일반인데 애한테 빚더미는 남기지 말아얍지…”
“후…별쉬없구만, 내 가서 결산하구 올게.”
그녀의 남편은 안해를 측은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뚝 떨구며 밖으로 나갔다. 그의 허리도 들어올 때보다 훨씬 더 휜것 같았다.
입원비를 이어대지 못해 출원하자고 보니 자기를 이 꼴로 만들어놓은 홍순이가 저쪽에 태평스레 누워 점적주사를 맞는것이 볼수록 원통하고 괘씸했다. 또다시 분통이 발칵 터진 그녀는 벌떡 일어나 건너침대로 다가갔다.
“야, 이년아. 숱한 안까이들 초를 해놓구 네년은 이렇게 호강하느냐? 오냐…그래 콱 맞아봐라…네년이 제명에 죽는가 어디 보자…귀신두 자불구만 있지 않을게다…”
곁에 앉아 잡지를 번지작거리던 순철이가 벌떡 일어서며 또다시 전쟁의 불길을 몰아오려는 그녀를 말려냈다.
“왜 또 이러십니까?...”
홍순이는 말없이 주사침을 잡아뽑더니 이불을 머리위까지 끄당겨 올렸다.
이때 주눅이 들어 나갔던 그녀의 남편이 문을 벌컥 열고 젊은이들마냥 날파람일구며 달려들어왔다. 그는 순철이한테 밀리우면서도 가만히 누워있는 홍순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어대는 마누라를 보더니 화뜰 놀랐다.
“당신 미쳤어? 정말 왜 이래?”
남편은 고개를 뒤로 돌려 계속 욕설을 퍼부어대는 안해의 손목을 잡아끌고 복도로 나갔다. 그는 소리를 죽려가며 말했다.
“당신 다 죽어가는 사람과 왜 또 그래? 이제 한두달 살지두 모를 사람과…”
“뭐...뭐이람두?...”
“그 사람 자궁암 말기래서 수술두 못하구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래…”
“예?...” 채옥이는 그만 석고상마냥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리구 우린 가지 안아두 되겠소. 치료비 들어왔다는구만.”
“뭐이람두?...”
우묵하게 꺼져들어간 채옥이의 두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이재 결산할러 재회에 갔더니 어제저녁에 누군가 돈 만원을 넣구 갔다오.”
“예, 그것두 만원이나? 에구, 고맙기두 해라.”
“그저 도와주구 싶은 사람이라면서…그 돈이 다 떨어지면 또 돈을 넣어주겠다며 치료비 근심은 하지 말구 치료 잘하라며 가더라우.”
“에구 고맙기두 해라. 세상에 이런 고마운 사람 다 있담두?”
“그것보우, 세상에는 그래두 맘좋은 사람 많단데. 당신두 그맘 비우라구. 지나간 일을 너무 속에 넣어두구 그래지 말구…저 사람두 그때 책임이 아니문 무슨 그렇게 했겠소…”
절망의 눈물을 훔치며 데친 시래기꼴이 되여있던 그녀는 금시 기분이 돌아서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돈이 만능인가. 잠시후에는 간호사가 들어와 웃음띤 얼굴로 그녀에게 점적주사를 놓아주었다. 방금전까지만도 인정머리 없어보이던 간호사를 아니꼽게 쳐다보며 앙상한 팔을 불쑥 내미는 그녀는 여느때보다 당당했다. 그녀의 갸냘픈 얼굴에는 홍조가 어렸다. 아니. 삶의 생기가 넘쳤다.
그러는 그들을 훔쳐보다가 홍순이는 슬그머니 돌아누웠다.(계속)
연변문학 2010년 제4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