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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진혼곡(해후)
허룡석
5
순철이는 홍순이 뜻대로 그네들과 가까이 지내려 애썼다. 그들이 누룽지를 퍼지워 나눠먹을 때면 사두었던 순대며 물만두를 슬그머니 갖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번에 그것들을 도로 홍순이 침대에 던져버렸다.
“흥, 고양이 쥐 생각는군, 우리두 날 살려줄 사람이 있다. 굶어죽어두 네년건 안먹는다. 퉤.”
그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순철이가 몇번이나 과일이며 음식들을 갖다줘도 그것들이 번번히 날아건너왔다. 어떤 때는 남의 성의를 너무 무시하는것 같아 그의 남편이 송구스러워하며 받아둘려해도 그녀가 막무가내였다. 곰팡이 낀 내 누룽지를 먹어도 네년이 주는 그따위 고기는 안 먹는다는 배심이였다. 기나긴 세월의 쉼없는 흐름은 선혈이 랑자하게 배여있던 그녀의 상처에 진을 바르고 두툼한 돌이끼를 씌여놓아 굳은 옹이로 만들어놓은탓인지 그러한 동정에도 그녀의 그 옹이는 풀어지지 않았다.
어느날 순철이는 밖에 물건사러 나갔다가 입원재무과에 들려 채옥이네 치료비 정황을 알아보려 했다. 뜻밖에도 거기서 채옥이 남편을 만나게 되였다. 아마 그는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거액을 넣어준 고마운 사람 차문하러 다시 온것 같았다. 그런데 곱살하게 생긴 40대의 녀회계가 순철이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바로 저분이예요. 전번에 그 집 치료비에 쓰라구 돈 만원을 넣어준 분이 바로 저분입니다.”
그 소리에 채옥이 남편은 순철이를 돌아보더니 화뜰 놀라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우리 치료비를 댔다는 분이 이, 이분이라구?...”
“틀림없어요. 저분이 맞습니다. 전번에는 부부 함께 오셨댔는데. 어떻게 되는 분인지 그렇게 제 집일처럼 생각합니까. 정말 조련채입니다.”
“부부간이 함께 왔댔다구유? 그, 그럼 이 분이…”
“아, 예…”
더는 숨길수 없는지라 순철이는 그를 보며 인사했다.
“예, 박순철이라구 합니다. 우리 집사람 뜻이래서…”
“이거, 이거…강철산이라 합꾸마…”
철산이는 꺽꺽거리며 뒤말을 있지 못하더니 바삐 되돌아서 나갔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청천벽력같이 느껴지는 일이였다. 자기 마누라한테 정신없이 머리를 끄댕기우고 하루건너 욕을 퍼먹는 건너편 녀인과 그 남편이 자기 안해 치료비로 이런 거금을 넣어주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채옥이네 치료비가 얼마 남지 않은것을 보고 순철이는 카드를 꺼내 만원을 긁어 채옥이 이름으로 더 넣어주었다. 재무과에서 일을 마치고 병실에 들어서니 채옥이 부부가 침대에 나란히 앉아 그를 낯선 손님 쳐다보듯 놀라웁게 이윽토록 바라보는것이였다. 아마 남편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은 모양이였다. 그러던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 종이 한장을 홍순이침대에 활 던졌다.
“그집 돈인줄 알았더면 아예 쓰지두 않았을건데 모르구 다 써버렸으니 어쩔수 없구만. 내가 여기 돈을 꿔썼다는 쪽지를 썼으니 이후 어떻게 해서라두 갚아주겠소.”
순철이가 웃으며 그 쪽지를 그녀한테 도로 갖다주었으나 받지 않으니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녀가 또 그 쪽지를 가지고 와 홍순이침대에 던져버렸다. 순철이는 어쩔수 없이 그것을 받아 홍순이 손에 쥐여주었다.
이튿날 밖에 나갔다 들어오던 철산이가 급급히 채옥이한테로 다가가더니 그녀의 귀에 대고 뭔가 소곤거렸다. 그러더니 그녀가 화들짝 놀라는듯 하더니 두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벌어진채 이쪽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남편의 입이 귀가에서 떨어졌지만 벌려진 그녀의 입은 닫혀질줄 몰랐다. 한참이나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던 그녀는 스르르 자리에 들어눕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위까지 올리썼다.
잠시후 그녀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또 이쪽을 바라보는것이였다. 하지만 전처럼 먹이를 노리는듯하던 뱀의 독살스러운 눈길이 아니였다. 그녀는 끌신을 발에 꿰고 이쪽으로 건너왔다.
“또 돈 만원을 넣어줘 고맙기는 하오만 이 돈은 못쓰겠소. 쓰기전에 찾아내다 돌려줄테니 그런줄 아우.”
하지만 말투는 전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가시도 많이 빠져있었다. 아마 홍순이네가 자기를 진심으로 도우려하는 진정을 안것 같았다.
채옥이가 비칠거리며 돈 찾으러 나가려 하는것을 철산이가 그녀를 붙잡아다 침대에 눌러앉혀 놓고는 귀에 대고 뭔가 한참이나 소곤거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설복되였는지 아니면 자기가 너무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이슬이 반짝이는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고는 침대에 또다시 드러눕는것이였다.
점심에 순철이는 가까운 닭곰집에 전화로 닭곰을 예약하였다. 닭곰이 오는 그대로 몽땅 맞은켠 침대로 들고갔다.
채옥이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는것을 철산이가 그것을 받아 자기들 침대머리 궤상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순철이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는 안해의 귀에 대고 또 한참이나 뭔가를 속삭이였다. 그녀가 더는 별소리없자 철산이는 비닐주머니를 풀어헤쳤다. 그는 아직 뜨끈뜨끈한 곰한 닭의 각을 뜯기 시작했다. 구수한 닭고기 냄새가 병실에서 감돌았다. 남편이 새하얀 살코기를 찢어 안해의 입가에 가져갔으나 그녀는 이리저리 입을 돌리며 받아먹으려 하지 않았다. 남편이 하도 지꿎게 밀어넣어서였는지. 구수한 닭고기 냄새가 누룽지에 절은 위를 자극해서였는지 아니면 홍순이네 성의가 가슴에 맞혀갔는지 결국은 닭고기를 받아물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끝내 뜨거운 눈물이 쭈르륵 흘러내렸다. 모진 세월의 재를 한벌 뒤집어 쓴 그녀는 끝내 그 싸늘한 재무지를 헤집고 감격의 불씨가 움트며 고개를 쳐든것인가. 그녀는 눈물을 이쪽에 보이지 않으려는듯 고개를 저쪽으로 돌렸다.
그후에도 순철이는 홍순의 분부대로 자주 맛있는 음식을 사다주며 그들이 되도록 누룽지를 먹지 않게 했다. 그들도 더는 거절하지 않고 그런대로 받아주었다.
이튿날 아침 맞은켠 침대의 채옥이가 아침술을 놓기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채옥이가 화장실로 갔는가 하여 한참이나 기다려도 종무소식이다. 점적주사를 놓으러 들어왔던 간호사도 기다리다가 투덜거리며 나가버렸다. 철산이는 말도 없이 나간 안해가 걱정되여 애궂은 두손만 마주 부비며 공연히 들락날락 했다. 점심때가 다 되여서야 채옥이는 땀벌창이 되여 병실에 들어섰다.
“당신 아픈 몸으루 어데 갔다 인제 오는거야? 말두 없이…호사가 다 홰를 쓰며 나갔잖어…”
“그럴 일이 좀 있어서…”
후들후들 떨려나는 다리를 한손으로 두드리며 채옥이는 고뿌를 찾아 물부터 벌컥벌컥 들이켰다.
순철이가 홍순이 식사한 그릇을 들고 세면실로 나가기를 기다려 채옥이는 남편을 끌어당겼다.
“이봅소. 이걸 저 김주임 베개밑에 살그머니 갖다 넣읍소…”
그것은 빨간 천쪼박과 뭐라고 글씨를 쓴 종이쪼박이였다.
“이게 뭔데?...”
“내 아까 시내에 있는 유명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방토를 해왔습꾸마 … 아무리 미워하던 사람두 저렇게 죽는다니…사람이사 살아얍지…우리사 맘뿐이지 어쩌겠습두…그릇 씻을라 간 분이 들어오기전에 날래 갖다 넣읍소…”
그게 무슨 소용있는 짓이냐는듯 남편이 머뭇거리자 채옥이는 어서 갖다 넣으라고 손을 홰홰 저어댔다.
철산이는 딴 사람으로 변한듯한 안해를 물끄럼히 바라보더니 어쩔수 없다는듯 그것들을 쥐여들고는 슬그머니 홍순이 침대로 다가갔다.
돌아누운 홍순이는 이불속에서 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다 들었으나 모르는척 시치미를 뗐다. 벼개 귀퉁이가 슬쩍 들리는듯 하더니 그녀 남편이 자취없이 물러갔다. 잠시후 홍순이가 덮은 이불이 잔잔히 떨리고있었다.
끈질기게 잡아당기던 삶의 욕망이란 끈을 활 놓아버려서인지 홍순이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못해갔다. 며칠후 홍순이는 혼미상태에 빠져들어갔다. 의사들이 달려왔다. 의사들은 자세히 진찰해보더니 순철에게 이젠 후사를 준비해야 할것 같다고 귀뜸하고는 돌아져 나갔다.
올것이 오리라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순철이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 그는 침대머리에 다가앉으며 퉁퉁 부어있는 홍순이의 얼굴을 어루쓸었다.
의사들이 고개를 저으며 그저 돌아서 나가는것을 보더니 뭔가 짚히는것이 있어서인지 맞은켠 침대에서 점적주사를 맞고있던 채옥이가 주사바늘을 잡아빼며 와들짝 뛰여내렸다. 그녀는 홍순이의 침대머리에 앉아있는 순철이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째 의사들이 그저 나감두?”
순철이는 맥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예? 그럼 희마이 없다는 얘깁두? 우구 이걸 어째…”
그녀는 홍순이 머리맡에 다가가더니 눈물젖은 목소리로 홍순이를 불렀다.
“이봅소,,,홍순이 아니…김주임…김주임…내 양채옥이꾸마. 날 좀 봅소… 눈뜨구 날 좀 봅소…”
홍순이는 가까스로 눈을 뜨더니 채옥이를 쳐다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입새에서 가냘픈 소리가 새여나왔다.
“미…안…해…요…”
채옥이는 홍순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이구…김주임…이게 어찌된 일이우…내 방토까지 했는데두…”
홍순이의 눈귀에서는 맑은것이 흘러내렸다.
홍순이는 정기없는 눈으로 순철이를 쳐다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트렁크안에…상장과…메달들이…제가…갖구…가겠어요…”
홍순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트렁크안에 자기가 산아제한사업을 하면서 받았던 크고작은 상장, 증서, 메달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줄 순철이도 잘알고 있었다. 홍순이는 그것들을 일생동안 몸과 마음 다 바쳐 사업한 영광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징표로 간주하며 이사할 때마다 하나라도 빠뜨릴세라 알심들여 챙겼왔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가겠다니.
순철이는 잘못 듣지나 않았나 하여 자기귀를 의심했다.
“여보…그건 당신이 딸애한테 물려줄거라 하지 않았소?...”
“이젠…필요없어요…다…태워주세요…추도회도…하지…마세요… ”
순철이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가벼히 끄덕이였다.
“…이분 치료비를…”
순철이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게 눈을 감은 홍순이는 더는 혼수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한채 이튿날 오전 열시경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현, 지구, 성과 전국의 산아제한사업모범이 변강민족지구의 한 병원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평생 선진과 모범의 월계관을 떠이고 꽃다발속에서 가슴뿌듯이 살아왔던 홍순이는 60이 청춘이라 하는 글로벌시대에 60도 채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곁에서 채옥이가 륜기인양 넉두리를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운명할 때 그의 곁에는 그의 뒤시중을 평생 들어줬던 남편 순철이와 그한테 끌려가 류산당했던 채옥이밖에 없었다. 채옥이곁에는 류산후유증과 몰래 넣은 피임환때문에 하루도 번한 날이 없이 30년간 병마에 시달려온 안해를 보살펴온 허리 구부정한 남편 철산이가 서있었다. 장백산기슭 해란강반에 그처럼 널리 울려퍼졌던 이름난 모범이라 해도 그의 죽음은 보통사람과 다름없이 쓸쓸하고 적막했다. 그제날의 영광과 칭송은 해란강 물결따라 동해로 흘러간지 오랬다.
순철이가 종이끝이 보이는 꼭 쥐여진 홍순이의 오른손을 펼치니 찢겨진 종이쪼각들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채옥이가 돈을 꿔썼다는 증거로 던져준 종이였다.
떨리는 손으로 눈에 익은 종이쪼박들을 주어들고 보던 채옥이는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김주임…이것두 갖구 갈라구 그랬수?...말은 텁게해두 속으론 아슴채서 쓴건데…내 미쳤지…지난 일을 두구…다 죽는 사람과 앙갚음은 무슨 앙갚음이였겠수…죄는 미워해두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는데…”
채옥이는 친동기를 잃은듯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마구 쳐댔다.
나많은 간호사가 들어와 순철이네를 도와 홍순이의 유체를 렴습하였다.
“떠나보내기전에 혼을 불러야 한다는데 어떻게 부르는지…”
그 말에 호사가 제꺽 동을 달았다.
“병원안에 돈을 내면 대리로 불러주는 사람 있어요…”
이때 어깨를 들먹이며 렴습을 거들어주던 채옥이가 막아나섰다.
“…흑…흑…혼을 어떻게 싻을 내 부르게 함두?... 마지막 가는 길이사 기래두 가까운 사람들이 불러얍지.”
채옥이는 남편을 돌아보았다.
“이봅소…영자아부지…당신 혼을 부를줄 알재임두…당신 좀 부릅지비…”
눈물을 머금고 서있던 철산이는 아무말없이 홍순이의 옷을 찾아들고 창문턱에 올라섰다. 그는 창문을 활 열어제꼈다. 그리고는 창문밖으로 홍순이의 옷가지를 휘여휘여 내저었다. 그는 홍순이의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소리높이 웨쳤다.
“김ㅡ홍ㅡ순ㅡ”
“여호ㅡ여호ㅡ여호ㅡ”
“복, 복, 복”
그는 친인의 혼을 부르듯 목이 메여했다.
열려진 창문으로 갑자기 이름모를 새 한 마리가 포르릉 날아 들어왔다. 새는 날개를 파득거리며 병실을 한고패 돌고는 도로 창문으로 포르릉 빠져나갔다. 그것이 홍순이의 혼인가. 그녀의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지 땅으로 들어가는지 알수 없었다.
연변문학 2010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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