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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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1)
2010년 08월 09일 15시 28분  조회:2086  추천:81  작성자: 허룡석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1

삼라만상이 쥐죽은듯 고요한 야밤삼경이다. 하늘에서는 밤새 또글또글 빛을 뿌리던 별들도 지쳤는지 빛을 잃고 꺼뻑꺼뻑 조을고 있다.

    산기슭을 따라 뉘연히 펼쳐진 사과배과원과 마을을 둘러싼 소소리 솟은 백양나무들도 4월의 거센 봄바람에 지쳤는지 인제는 조용히 잠들었다.

    한입 뚝 떼여먹은 옥수수떡마냥 삼면으로 마을을 둘러싼 대머리산도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마냥 마을을 한품에 안은채 꾸벅꾸벅 졸고있다. 내가 사는100여호되는 립신마을도 그 품속에서 마을채로 굳잠에 빠져버렸다. 조상들이 쪽박차고 두만강을 건너와서부터 세워진 마을, 해방후에도 줄곧 허청리라고 불렸으나 문화대혁명을 맞으면서 낡은것을 타파하고 새것을 수립한다는 뜻으로 립신이라는 입에 잘 오르지도 귀에도 서먹한 이름을 달게 된 마을이였다.

    <고양이 가마목에서 편히 겨울을 나는> 자래의 자산계급 게으름뱅이 사상을 타파한다며 겨울내내 쉬지 못하고 봄철까지 마을앞 논판의 원전화건설에 내몰려 지칠대로 지친 남녀사원들은 나무칼로 귀를 베여가도 모르게 잠에 곯아떨어졌다. 언제 열릴지도 모를 9차전국당대회의 소집을 혁명적 실제행동으로 맞이한단다. 온 마을은 집집마다 전등이 꺼져있다. 고양이의 부스럭 방귀소리에도 놀라 정신없이 짖어대는 귀밝은 개들조차 집지킴에 지쳤는지 마을은 괴괴하기만 하다.

    깊이 잠든 마을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려나. 마을 복판에 덩실하게 들어앉은  대대사무실에 갑자기 전등이 환히 켜졌다. 아니나다를가 잠시후 백양나무에 높이 달아맨 도깨비 주둥이같은 확성기에서 이젠 자면서도 부를수 있는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네> 노래가 고음으로 울려나왔다. 잇달아  무산계급전사의 전투적 패기로 넘치는 우렁찬 목소리가 산간마을의 정적을 깨뜨리며 울러퍼지기 시작했다.

<아, 아, 사원 여러분 듣깁니까? 듣깁니까? 사원 여러분 주의하여 들으십시요. 지금부터 립신대대 빈하중농들에게 한없이 인심을 격동시키는 특대희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오매에도 갈망해오던 9차 전국당대회가 오늘 북경에서 승리적으로 페막되였습니다. 우리 맘속의 붉디붉은 태양이신 모주석께서 재차 주석으로 당선되셨고 모주석의 가장 가장 가장 친밀한 전우이신 림부주석께서 또다시 부주석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이번 당대회에서는 완고하게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던 집권파를 무리로 끌어내리고 태산이 무너져도 견정하게 모주석을 따라 혁명하려는 무산계급혁명파들이 중앙에 대거 진출하였습니다. 이는 모택동사상의 위대한 승리이며 무산계급독재의 위대한 승리이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념원을 충분히 구현한 영명한 결책입니다. 사원 여러분, 지금 남녀로소 모두 일어나 대대사무실앞에 모이십시요. 우리는 전국인민들과 함께 인심을 고무하는 이 특대경사를 경축해야 하겠습니다. 모주석께 충성하는 우리의 붉디붉은 마음을 표달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불타는 충성의 마음으로 이 특대경사를 열렬히 경축해야 합니다. 그러니 모두들 10분내에 준비해둔 초롱불을 들고 나와 각 패별로 대대사무실마당에 모이십시요.>

들어보니 사원들의 귀에 호적을 둔 현공작대 한조장의 목소리다. 지난 가을에 접어들면서 상급의 지시에 쫓아 이 마을에도 모택동사상선전대로 현에서 한명원, 왕염, 김억만 등 세명이 파견되여 내려왔다. 현조직부에서 과장으로 일한다는 한명원이 조장을 맡았다. 사원들은 습관적으로 그를 한조장이라 불렀다.   모주석의 최신지시나 중앙의 특대희소식이 있을 때면 언제나 대대당지부서기 김덕만이 아니라 한조장이 나서 방송하거나 밭머리에서 전달하군 하였다.

<도깨비주둥이>가 울리기 시작하자 마을은 정규훈련을 받은 야전군 병영마냥 집집마다 거의 동시에 불들이 환히 켜졌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후 이젠 3년째.  번개불에 콩을 볶는 이런 혁명적 행동들이 한달에도 몇번씩은 있는지라 사원들도 제법 군사화되여 부대전사들 못지 않게 행동들이 민첩하였다. 한밤중에 도적이 들어와 동네 개들이 무리로 짖어대도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져있던 사원들이 도깨비 주둥이같은 대대확성기가 입을 열었다하면 그것이 전투의 나팔소리인양 모두가 자리를 차고 일어날수 있었다.

성철형은 온하루 아직도 채 녹지 않은 논판을 까내고 흙을 지여나르느라 지칠대로 지쳤다. 그는 초저녁부터 귀찮게 안아달라고 칭얼대는 형수 곱단이를 발길로 찬장밑에 밀어던지고 구석쪽에 피해가 혼곤히 잠들었다. 그러다가 오줌이 마려워 깨난틈에 하는짓밖에 모르는 형수가 또다시 감겨든다. 더 피할수 없어 그녀와 한판 핍진하게 그 일을 치르는데 갑자기 귀청을 째는듯한 확성기소리가 울려왔다. 벼락치듯한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성철형은 그만 형수의 배우에서 굴러떨어졌다. 어, 무슨 9차당대회가 끝났다구? 비록 마을에서 팔부로 불리우는 성철형이지만 그것이 귀에 설지는 않았다. 공작대에서는 벌써 몇달 전부터 9차당대회가 열리고 끝날지 모르니 사원들 모두가 사상적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다가 일단 희소식이 전해오면 즉시 일떠나 성대하고도 장중하게 경축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선전해 왔던것이였다. 팔부생각에도 지금 녀편네를 끼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을 때가 아니였다. 이런 큰 정치행사때에 어물어물하며 늦게 나가거나 나가지 않았다가는 큰 경을 치게 된다는걸 성철형도 잘 알고 있었다. 최신지시가 내려왔다는 그날 밤에도 공작대의 휘동하에 온 마을사람들이 거리에 떨쳐나가 북과 징을 울리며 한바탕 경축행사를 벌릴 때에 영호아버지가 이웃마을 제사집에 갔다가 좀 늦게 나왔다고 빈하중농이 사상각오가 낮다고 회의때마다 비판받군 했었다. 

성철형은 서둘러 옷을 주어입기 시작했다. 온 몸이 달아오른 형수가 두부모같이 하얗고 부푼 알몸으로 성철형의 다리를 부둥켜 안으며 칭얼댔다.

<하던걸 채 하지두 않구 이렇게 감까?>

<야, 이 바보야, 이게 어느 때라구  하, 하던거 계속 하자구 그래, 늦게 가문 비, 비판받는다. 알기나 해? ×보다 주, 중요한게 저, 정치란게다. 정치.>

성철형은 자그마한 찬장우에서 초롱을 찾아내려다 우에 앉은 먼지를 대충 털어버렸다. 뚜껑을 열고 성냥을 그어 안에 고정시켜놓은 초 두대에 불을 붙쳤다. 원래는 한대였는데 어둠을 밝혀주는 모주석과 림부석을 대표한다며 초를 한대 더 넣은것이다. 이 초롱은 마을 부련회 부녀들이 오보호와 성철형처럼 좀 모자라는 사람들한테 통일적으로 만들어준것이였다. 성철형은 한손에 불빛이 환한 초롱을 들고 한손으로 단추를 잠그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씨, 무스게 이것보다 더 맛있는게 있다구 하던것두 채 아이하구 감까? 밖에서 리대장네 암캐가나 콱 하구 이젠 들어오지두 마.>

화가 치민 형수가 탱탱히 살아난 자기 젖무덤을 거머쥔채 등뒤에서 꼬시랑거린다.

성철형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 길로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야, 학수야 자니? 빠, 빨리 일어나라.>

<어째 또 왔소? 나절루 나가재이리라구.>

<야, 임마 느, 늦게 가문 비, 비판받는다…>

성철형은 나와 외사촌간이다. 그는 나보다 5살이나 이상이다. 지난해 가을에 내가 초중을 졸업하고 마을로 돌아와 농사를 짓게 되자 팔부 성철형도 륜기라는것을 아는지 처처에서 나를 자기동생이라 자랑하며 내 역성을 들어주느라 야단이였다. 하지만 나는 팔부형이 나를 동생이라 하는것도 싫었고 역성을 들어주는것은 딱 질색이였다. 어떤 때는 역성을 든다는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웃음거리를 만들군 했다. 그통에 나도 성철형과 함께 쓸데없는 말밥에 씹히기도 했다. 내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되도록 성철형을 멀리하고 피하려 했으나 성철형은 그런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닭이 병아리를 싸고 돌듯 언제나 나를 싸고돌았다. 이런 정치행사나 큰 일이 있을 때면 저지력인 성철형도 사회경력이 짧은 내가 걱정되는지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해도 기어코 찾아와서는 이래라저래라 하며 형의 처사를 하느라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것이였다. 나는 싫은대로 초롱을 찾아들고 성철형을 따라 나섰다. 성철형은 너 간부되고 발전하자면 이런 큰 정치행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둥 자기도 어떻게 하던것도 그만두고 곱단이를 뿌리치고 나왔는지를 자랑삼아 늘여놓는것이였다. 그가 횡설수설하는게 귀찮아 나는 듣는둥마는둥 했다.

대대사무실 마당에 달려가 보니 벌써 세개 생산대 사원들이 거의 다 나와 있었다. 성철형은 늦게 나왔다고 누구한테 욕이라도 먹을가봐 나보다 눈치빠르게 제껙 우리가 속해있는 2패의 줄에 비비고 들어갔다. 쳇, 눈치가 빠르기는 도가집 강아지네. 

민병패장 영호가 나보다도 성철형을 보고 반색하며 다가왔다.

<야, 형님두 다 나왔소?>

늦게 나왔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고 되려 영호가 반겨맞아주니 성철형은 헤헤 하고 웃었다.

<내라구 안 나오문 되니? 하던것두 다 제쳐놓구 나왔다. 헤헤…>

<이 밤중에 자지 않구 하긴 뭘 했단 말이오?>

<헤헤, 너네 듣기 좋아하는 그 맛있는거 있재이야…>

<양? 그럼 아즈마이하구 그 맛있는걸 하다 나왔단 말이우?>

<맞다맞아. 한 절반 하다 방송듣구 놀라서 이렇게 달아 왔재이야. 헤헤…>

<야, 형님이 사상각오 대단하오 양?>

<그렇채이문 비, 비판받는거 어찌니. 저 학수두 내 데리구 나왔다. 헤헤… >

나는 쓰거워서 성철형을 흘겨보았다. 내가 나온것도 제 공로란다. 아마 우리 마을에서 성철형이 가장 솔직하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해야 할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한 일은 곧이곧대로 사람들에게 털어놓군 한다. 부부간의 비밀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팔부취급을 받는지도 몰랐다. 있는대로 한것대로 고스란히 말을 하고도 왜 자기가 남들한테 그냥 몰리워대는지 성철형은 도무지 아는것 같지 않았다. 오늘도 성철형이  곧이곧대로 말했으나 자기마음을 알아주는 패장의 칭찬까지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기분이 좋아서 귀신쫓는 무당마냥 초롱불을 높이 쳐들고 동서남북으로 마구 내저어댔다.

멍청한 성철형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척 나는 목을 빼들고 앞쪽을 내다보았다.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영호아버지가 엄포를 놓았다.

<입들을 다물지 못해, 지금 어느 때라구 그따위 소리를 하구 있는거야, 큰 경을 치지 못해서.>

영호가 아버지한테 혀를 홀랑 내밀며 저쪽으로 대오를 정돈하려 달려갔다. 나는 속으로 깨고소해났다.

공작대 한조장과 대대당지부서기 김덕만이, 민병련장 마만철이가 맨 앞에서 대오를 점검하고 있었다.

<저 씨팔, 뒤에서 초롱을 말좇대가리처럼 내젓는게 누구야?>

두억시니마냥 험상궂게 생긴 만철이가  우리 뒤쪽켠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달막한 키에 딱 바라지게 생긴 한조장이 만철이를 흘겨보며 꾸지람했다. <그따위 싸가지 없는 소리두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라구.>

 만철이는 실수한줄 알고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아, 예..말좇대가리 아니구 개좇대가리..그것두 아니구…저> 

생산대에서는 이름난 말썽꾸러기였고 민병패에서도 락후분자로 정평나 공청단에도 들지 못하던 그가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반란에는 도리가 있다.”는 모주석의 지시를 누구보다도 먼저 터득해서인지 앞장서 대대당지부와 공청단, 민병련 등 조직을 모조리 반란하고  간부들을 죄다 타도하면서부터 일약 반란파맹장으로 린근에 명성을 떨치고 온 마을을 쥐락펴락하는 민병련장이 되였다 한다. 그가 쩍하면 자기가 띠고 다니던 손바닥만큼 넓은 소가죽혁띠를 뽑아들고 <집권파>와 <계급의 적>들을 어떻게나 혹독하게 족쳐대는지 누구든 그의 손에 걸려들기만 하면 보지도 못한 증조할아버지가 첩까지 두었다고 없는 일도 <불지>않고는  견뎌내지 못한단다. 부농성분을 가진 1대의 한 <계급의 적>은 그의 혹독한 매질에 견디다못해 밤중에 갇혀있던 <우사칸>에서 가만히 빠져나와 “헌병대장 마만철이를 타도하자.”를 높이 웨치며 마을 우물에 빠져 자살하기까지 하였다. 범도 사람 셋을 잡아먹으면 귀가 째진다지만 만철이는 그래도 책임추궁을 받기는커녕 <계급의 적>들과의 투쟁에서 과단하고 과감하다고 표양을 받기도 했단다. 그가 손에 사람들의 피비린내나는 혁띠만 들고있는걸 보면 동네의 크고작은 개들도 사나운 늑대를 만난듯 모두 꼬리를 빳빳이 끼고 마을밖으로 피해 달아난단다. 한창 교배하던 개들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붙힌채 서로 제방향으로 뛰려다 길바닥에 나뒬굴기도 했다. 상급에서는 그를 계급각성이 높은 전도유망한 간부라 추어올리고 사원들은 뒤에서 일제시기 <헌병대장>보다 더 악독한 눔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마을아이들은 그를 천하에 둘도 없는 도깨비로 여겼다. 아무리 떼질쓰며 죽어번저지던 애도 “마도깨비 고톨 빼러 온다.”하면 금방 숨이 넘어간듯 울음을 딱 그치고 엄마젖이 산인가 하여 그뒤에 머리를 파묻고 숨소리 하나 없었다. 운동전에는  락후분자로 몰리다보니 나이 30이 되도록 시집오려는 처녀가 없어 로총각으로 묵어빠졌다. 그러다가 반란파두목으로 된후 화선입당이라는것도 하고 우에서 중시하는 <혁명간부> 후계자로 지목된후에는 외지에서 꽃같은 색시를 맞아들이고 달덩이같은 아들까지 보았다. 그후부터 만철이는 우산으로 범잡은 포수마냥 더욱 우쭐렁거렸다.

우리켠으로 달려온 만철이가 게사니마냥 꽥꽥 고아댔다.

<저, 씨팔, 말좇대가리처럼… 아니 초롱을 마구 내저어대는게 누구야? 너 2대의 팔부가 아니야? 넌 또 왜 나왔니?>

<방송에서 안까이 스나덜이  다 나오라해서 나왔는데, 하던것두…>

성철형이 하던것도 제쳐놓고 나왔는데 왜 욕부터 하느냐고 덤벼들려는것을  영호아버지가 제꺽 성철이를 툭 치며 웃음띤 얼굴로 만철에게 말하였다.

<이런 대경사에야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은게 아니우? 저 사람두 모주석께 충성하는 마음으루 달려나온건데 둬마디 칭찬해줘야 할게 아니겠수?>

    그제야 만철이는 평소에 사람을 깔보고 욕하던 습관대로 말이 빗나갔음을 알아챘는지 저으기 누그러들었다. 이런 정치대경사때에는 아무리 팔부라도 자각적으로 나온 사람을 욕하는것이 아니잖는가.

<근데 왜 초롱은 그렇게 질서없이 마구 내젓는거야?>

<야, 기분좋으니까 그렇지. 형님은 기분 아이좋수?>

얼씨구, 팔부형주제에 뭐 정치를 아는가? 기분좋다고 둘러부치는걸 보니. 나는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기분좋더라두 참았다가 내래 행진하면서 호각소리에 맞춰 절주있게 흔들란 말이야. 알겠어?>

<양, 알았다이.>

남들이 모두 무서워하는 도깨비한테도 별 욕을 먹지 않자 성철형은 더욱 기분이 좋아했다. 그는 초롱은 다시 감히 내젓지 못하고 선자리에서 술취한 사람마냥 절루덕절루덕하기도 하고 한손을 쳐들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며 충성무를 춰댔다. 나는 성철형이 주책없이 노는꼴이 창피스러워 그만하라고 그의 엉덩이를 콱 밀쳐놓았다. 그래도 그는 나한테는 언제나 너그러웠다.

경축대오는 민병련장의 구령에 따라 움직였다. 저마다 초롱불은 든 150여명 대오가 늘여서니 대머리산에서 내려온 불룡마냥 구불구불 꿈틀거렸다. 오늘따라 웬지 대오는 10리나 떨어진 공사마을로 향했다.

장강은 동으로 흐르고

해바라기 태양따르네.

우리는 만강의 격정으로

9차당대회 경축하네

우리는 환호하네, 목청껏 노래하네.

밤중에 뭐가 부러진 둥굴소 고함지르는것 같은 만철이의 선창에 사원들은 오래전부터 배워둔 <만강의 격정으로 9차당대회 맞이하네>란 노래를 한어로 부르며 어정어정 걸었다. 사원들이 아직도 잠에서 채 깨여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일에 지쳐서인지 노래소리는 만철이의 기대치만큼 높지 못하였다. 만철이가 앞뒤로 뛰여다니며 더 높이 더 세게 부르라고 닥달을 했으나 중이 소리높이 념불을 외우는 소리에 불과했다. 다들 옆구리를  들이찌르는 싸늘한 밤랭기를 막느라 옷깃을 여미는데 더 신경을 썼다.

그런대로 우리 대오가 천여호가 모여사는 공사마을을 가로질러 공사청사앞에 가 보니 마당에는 폭죽터진 종이들이 바람에 어지러이 나뒹굴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경축행사를 마치고 흩어진지 퍼그나 오랜것 같았다. 이런 큰 정치행사에 공사에까지 와 주공작대와 공사간부들한테 립신대대의 혁명열정을 보여주려 했을텐데 (사실은 자기네 공로를 보여주려했을것이다) 공작대와 공사간부들은 언녕 이불속에 들어갔는지 보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그대로 돌아설 한조장네가 아니였다. 공사에까지 왔다갔다는 표시로 구호라도 높이 웨쳐 주공작대와 공사간부들이 이불속에서라도 그 혁명적 목소리를 듣게 해야 했다. 그래야 인상을 남겨 래일 공사에 와 경축활동정황을 회보할 때에 “어제밤 공사청사앞에서 구호를 소리높이 웨친것이 우리 립신대대였습니다.” 하면 평소보다 더 높은 점수를 딸것이 아니겠는가. 한조장의 지시에 따라 만철이가 선참으로 구호를 웨쳤다.

<립신대대 빈하중농들은 9차당대회 승리적 결속을 열렬히 경축한다.>

<립신대대 혁명적 군중들은 당중앙의 결의를 견결히 옹호한다.>

<위대한 수령이시며 위대한 도사이시며 위대한 키잡이신 모주석 만세. 만세 만만세.>

<모주석의 가장 가장 가장 친근한 전우이시며 우리의 영명한 부통수이신 림부주석 영원히 건강. 영원히 건강. 영원히 건강하시라.>

공사청사마당에서 소재지마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한바탕 구호를 웨치게 한후 한조장은 만철이더러 그 자리에서 경축대오를 해산시키게 했다. 우리들도 여기에서 구호만 웨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것을 알고있기에 시키는대로 목청을 높여 구호를 웨쳤다. 그리고는 해산소리와 함께 와야 소리지르며 굴레벗은 소떼마냥 오던 길에 나서 반달음을 놓았다. 공사마을로 올 때에는 구호를 웨치고 노래부르고 호각소리에 맞추어  절주있게 초롱을 흔들며 양걸춤까지 추며 오다나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였지만 갈 때에는 풀어놓으니 구유에 콩여물을 남겨두고 온 소들마냥  반달음쳤다. 초롱불들도 질서없이 흩어져 마치 공사마을에서 귀신불이 질서없이 사처로 날아나오는듯 했다.

게사니마냥 키가 껑충한 성철형도 우리네 젊은또래 오리무리를 따라 반달음을 놓았다. 그런 와중에도 영호는 성철형을 돌아보며 시까슬렀다.

<형님은 집에서 아즈마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겠는데 가서 맛있는거 마즈해야 하재이캤소?>

<야 임마, 이,이젠 닭덜이 울겠는데 아, 아무리 맛있는게래두 언제  마즈 할새  있니. 낮에는 또 원전화해야지, 우리 안까이새끼두 이, 이젠 드베진지 오래겠다.>

<그래두 누가 아우? 형님의 맛있는거 먹구싶어 그냥 기다리겠는지…>

<하하하.>

젊은또래들의 웃음소리가 조는 별들을 깨우려는듯 하늘공중에 울러퍼졌다. 그들은 어수룩한 성철형을 안주로 질근질근 씹으며 재미나게 웃어주는것이 이젠 습관이 된것 같았다.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이여서인지 나는 그러는 영호네가 아니꼬왔다.

어느듯 마을골목길에 들어섰다. 생산대 리대장네 큼직한 집옆에 붙여지은 창고같은 성철형네 자그마한 집에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저것보우, 아즈마이 불을 켜놓구 형님을 기다리구 있재이오?>

영호가 능글거렸다.

<그, 글쎄, 저 빌어먹을게 어째 불을 아이껐나. 저, 전기세 자꾸 올라가는데…>.>

<형님, 집에 가 하던걸 마즈 하면 래일 우리한테 들려줘야 아오 양?>

<응응, 그래 아, 알았다.>

성철형은 부부간에 밤에 하는 일을 그들에게 회보하는것을 응당한 일로 생각했던지 그 무슨 농쟁기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처럼 정색해서 대꾸했다.

우리는 성철형네 집앞을 지나갔다. 성철형이 집에 들어서니 누워있던 곱단이가 발딱 일어나 앉으며 환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어째 이재 옴까? 온 밤 자재이쿠 기다렸는데…>

<에구, 이 머저리 저, 정말 자재이쿠 있구나? 불은 어째 아이끄구 있냐? 전기세 자꾸 올라가는데.>

<하던거 마즈 해야지 내 혼자 어떻게 잡미까. 아무리 자자해두 아이되는데.>

<에구, 이게 나, 날마다 하던거하던거하메 나, 나그내를 잡는다 잡아. 일은 하재이쿠 날마다 노, 놀구 먹구 자기만 하니까 아, 앙캐궁리뿌이지>

영호네 뒤에서 걷던 나는 호기심에 끌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발뼘발뼘 창문가로 다가갔다.

성철형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소다를 잘먹어 하옇게 부풀대로 부풀어 잘 쪄진 만두같은 형수의 젖무덤을 보더니 인간의 본능이 솟구쳤는지 옷을 활활 벗어내치더니  형수를 끌어안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형수는 너무좋아 성철형의 목을 딱 감아안다가 몸을 흠칫 떨었다.

<아이, 무스거 경축할라 간다던게 어째 몸이 이렇게 얼었슴까. 우, 이것두 싹 얼었네.>

둘은 전등을 끄는것도 잊고 이불속에서 엎치락뒤치락 했다. 확성기소리에 놀라 끊겼던 맛있는 작업을 다시 시작한것이다.

나도 웬지 전에없이 이상해나며 온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부르르 떨려왔다. 갑자기 내 등뒤에서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돌아다보니 어느새 뒤따라 왔는지 영호네들이 내 어깨넘어로 불빛이 환한 집안을 들여다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나는 못할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랐다. 부끄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여 나는 소리를 죽여가며 양떼를 몰듯 그들을 제집으로 쫓았다.(계속)


장백산200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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