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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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2)
2010년 08월 10일 16시 12분  조회:1623  추천:40  작성자: 허룡석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2

   성철형은 그해 나이 스물다섯이다. 성철형은 원래 우리 마을에서 백여리 떨어진 홍성공사 용성대대 태생이다. 성철형도 아홉살 전까지는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유나 행실이 다를바 없었다.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귀염을 등에 지고 다녔다. 그런데 아홉살후부터 그의 인생에는 먹장구름이 드리웠다. 소학교 2학년때였다고 한다. 어느날 하학하여 마을애들과 함께 우르르 쓸어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버들방천속에 우뚝 선 비술나무 꼭대기에 까마귀둥지가 있는걸 보고 누군가 저걸 들춰볼가고 하였다. 약삭바른 애들 몇이 자기가 나무에 바라오른다고 손바닥에 침을 퉥퉥 뱉고는 신을 벗어던지고 나무에 매달렸다. 그러나 맥이 모자라 모두 중도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저리 비껴. 내가 올라 갈게.>
    같은 또래지만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성철형이 책가방을 벗어던지고 손바닥에 침을 퉥퉥 밷고는 신을 신은채로 나무에 바라오르기 시작하였다. 시골애들의 놀음이란 나무에 바라오르는것이 보통이라 마을애들 모두가 령리한 다람쥐마냥 나무에 바라오를줄 알았다. 다만 힘에 따라 바라오르는 높낮음차이가 있을 뿐이였다. 

    다른 애들보다 뚝심있는 성철형이 씩씩거리며 다른 애들이 오른 곳보다 더 높이 바라오르는데 보기에는 팔뚝같이 실해해보이던 발밑의 마른 나무가지가 갑자기 툭 하고 끊어지면서 성철형은 어쩔사이 없이 <앗.> 소리지르더니 총에 맞은 까마귀마냥 아래로 내리꼰졌다.

<성철아. 성철아.>
깜짝 놀란 애들이 소리지르며 달려갔다. 성철형은 벌써 인사불성이였다. 왼쪽머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왼쪽 팔이 너덜거렸다. 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성철형을 엇갈아 업고 받들며 마을로 돌아왔다. 피범벅이 된 아들의 <죽은>꼴을 보고 혼비백산한 성철형의 어머니 (나의 고모)와 아버지 (나의 고모부)는 소수레에 아들을 싣고 용하다는 이웃마을 퉁사발이란 별호를 가진 의원한테로 찾아가 사정사정했다. 퉁사발의원은 피못이 된 성철형을 대충 보더니 자기로서는 어쩔수 없으니 어서 현립병원으로 가보라 하여 그날밤으로 30리 떨어진 현립병원으로 소수레를 몰았다.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를 상하고 팔이 부러진 성철형은 현립병원에 석달이나 입원해있었다. 석달후 퇴원해 집에 돌아온 성철형은 볼라보게 이상해졌다. 지난날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어디로 사라지고 초점없이 사람쳐다 보기가 일쑤였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 대뇌에서 무슨 나사못이라도 빠져나갔는지 하는 말도 두서가 없어 앞뒤가 맞지 않았고 어떤 때에는 하던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하여 사람들을 놀래우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신신펀펀하던 애가 나무에서 떨어진후 멍청해졌다고 탄식했다.  병원에서 돌아왔다고 성철형을 보러 몰려왔던 개구쟁이 친구들도 이젠 더는 성철형과 재미나게 놀수 없음을 알고는 락심하며 돌아갔다. 그래도 가까왔던 이웃집애들이 성철형이 심심해 한다고 하학후면 몇번 찾아왔다가 그가 번마다 이상하게 노는 짓거리를 보고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고모와 고모부는 멍청해진 성철형을 바라보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우로 딸 셋을 낳고 아래로 요행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하늘도 무심키로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보로 만들다니. 고모와 고모부는 돈을 꾸어가며 잘한다는 큰 병원과 밀방을 안다는 용한 의사를 다 찾아다니다싶이 했으나 조금 차도가 보일듯 하나 원상회복은 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바보라고 애들한테 몰리워만 댔다. 그대로 놔두면 애가 더 멍청해질것 같아 고모부는 성철형을 더는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누나들이  아는대로 글공부를 가르치게 하였다.

고모부는 워낙 린근에 소문난 민간예인이였다. 목청이 어찌나 청청하고 우렁찬지 그가 노래를 부를라치면 남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군하였다. 선률이 애잔하고 간간한 민요가락이나 타령을 넘길 때에는 아낙네들의 마음을 뒤설레이게 하였고 선률이 굵직하고 활기띤 혁명가요를 부를 때에는 남정네들이 또다시 총을 들고 해방전쟁터나 조선전쟁터에 나선듯 온몸에 힘이 솟구쳐 하였다. 적어도 근방 50리 안팍에서 결혼식이나 환갑을 치를 때면 의례 고모부를 청해다 흥을 돋구군 하였다. 마을의 오락판과 생산대년말결산 때에도 고모부가 없어서는 안되였다. 간혹 고모부가 친척나들이라도 가게 되면 생산대에서는 하루이틀 미루었다가 고모부가 돌아온후에 년말결산을 짓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철형이 멍청이로 되면서부터 더는 고모부의 구성진 노래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마을사람들도 간혹 오락판이 생겨도 속을 썩이는 고모부의 심정을 리해하여 억지로 고모부에게 노래를 요청하지 않았다.

아들을 바보로 만든 그 마을에서 더 살 재미가 없었다. 나무는 옮기면 죽지만 사람은 옮겨야 산다는데 이사하면 낫겠는가.  성철형이 열두살나던 해에 고모부는 성철의 외삼촌 (나의 아버지)의 소개로 우리 마을로 이사오게 되였다. 속담에 외삼촌이 사는 골에는 가지도 말랬지만 이곳밖에 올데가 없었나 보다. 나의 아버지 장달수는 원래 향중학교에서 어문교원으로 있다가 반우파운동때에 누군가 아버지가 농업합작사의 암퇘지가 개체때의 암퇘지보다 새끼를  적게 낳는다는 말을 했다고 고자질하여 하마트면 우파에 걸려들번 하였다. 그래도 교장이 나서서 <우파로 되겠냐 돌아가 농사짓겠냐>하며 너절로 선택하라 하여 아버지는 화김에 교원일을 때려치우고 결연히 마을에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우리 마을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여 마을 사람들도 보기에는 멀쑥하게 생긴 성철형이 좀 모자라는 아이라는걸 다 알게 되였다. 고모부와 누나들이 새 고장에 와서도 사람들한테 잘못보일가봐 성철형에게 아무리 례절을 가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처럼 처사하라고 그렇게 알려줬건만 두마디 안짝에 본바탕이 드러나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군 하였다. 그래서인지 성철형은 사람만나기를 꺼려하면서 집구석에 박혀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성철형은 글공부대신 일에 재미를 붙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의 일이고 남의 일이고 못하는것이 없었다. 하루는 생산대장이 마당을 깨끗이 쓸고있는 나이보다 우둑진 성철형을 보더니 애가 일은 할것같으니 그냥 집에 둬두기보다 나와 생산대일을 시키며 사람들과 접촉하게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고모부에게 말했다. 계속 집에 둬봐야 나아질것은 없을것 같아 고모부는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하여 성철형은 열여섯살부터 생산대 일을 하게 되였다. 이렇게 팔부형은 마을에서 제일 나젊은 인민공사 사원이 되였다. 인민공사 사원은 나라의 말단 <직원>으로서 신청도 비준도 필요없었다. 이튿날부터 일하러 나가면 되였다.

성철형은 원래 뚝심이 있어 힘든일도 남못지 않게 하였다. 눈썰미도 좋아 남이 하는 일을 눈여겨 보았다가 가래질이나 밭갈이하는 등 요령있는 일도 곧잘 흉내내군 하였다. 문화대혁명기간 <농업에서는 대채를 따라 배워야 한다>는 모주석의 위대한 호소에 따라 전국이 대채를 따라 배우며 대채에서 하는 일이면 뭐나 따라배웠다. 평공하는것마저도 대채에서 하는대로 따라 했다.

우리 마을 생산대들에서도 하루일이 끝난 뒤끝이면 밭머리에 모여 앉아 대채평공을 하였다. 대장이 먼저 그날 일의 강약에 따라 최고공수를 정해놓으면 사원마다 자기가 일한 로동량에 가늠하여 공수를 자보하고 군중이 평의하여 장부에 기입하군 하였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게 자기 일한것보다 낮게 자보하여 군중이 토론하여 올려주었고 욕심스러운 어떤 사람은 자기 일한것보다 높이 자보하여 군중들이 내리 깍기도 하였다. 성철형은 나이 어리고 일이 서툴다고 누구의 건의였든지 처음에 팔부를 주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20세전까지 3년남짓 팔부를 받으니 성철형은 그것이 자기가 받아야 할 고정 공수인가 하여 날마다 자기차례가 돌아오면 우쭐해서 팔부를 자보하였다. 하여 알게 모르게 바보와 팔부가 맞아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아예 성철형을 팔부라 불렀다. 그래도 성철형은 헤헤 웃으며 달갑게 받아들이군 하였다 하지만 성철형의 부모와 누나들은 아니였다. 어수룩한 사람을 업신본다고 성철형을 팔부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대판으로 시비를 따지군 했는데 성철형이 되려 마을사람들 편이 되여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과 눈을 부라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성철형이 스무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일도 미립이 터 상로력과 거의 맞먹기에 생산대에서는 그가 팔부를 자보해도 공수를 기입하는 사람이 알아서 10부를 적어넣기도 하고 11부, 12부를 기입해주기도 하였다.
성철형은 고모부를 닮았는지 목청이 좋아 밭머리 휴식때면 누나들이 배워준 노래를 곧잘 부르군 하였다. 무는 말이 있으면 차는 말이 있다더니 재주도 각각인가. 공부는 그렇게 배워줘도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는데 음악세포는 남달리 티였는지 노래만은 몇번 따라 부르면 곧잘 배워냈다. 한번 배운 노래는 입력이 된듯 오래도록 잊을줄 몰랐다. 후에야 안것이지만 어떤 정신지체자들에게는 이러한 특수공능이 있다고 했다. 아마 성철형도 어딘가 그런 특수공능이 있는듯 했다. 사원들이 장난삼아 성철형의 노래를 요청하면 성철형은 유치원애들처럼 좋아라고 궁둥이를 털고일어나 노래가락을  넘기군 하였다. 그것도 사원들이 재청을 요구할 사이도 없이 노래를 한다하면 련이어 서너컬레씩 부르고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원들의 박수소리가 그에게는 최고의 영예였다. 그렇게 며칠을 부르고 나면 밑천이 드러나 그냥 하던 노래를 반복하는지라 사원들도 점차 재미가 떨어져 휴식시간에도 드러누워 휴식하거나 제잡담을 하며 노래를 요청해 오지 않았다. 그러면 되려 성철형이 조급증이 나서 <어째 어전 내 노래를 아이 듣겠습둥?> 하며 일어서서는 남이야 듣건말건 제흥에 겨워 손벽을 짝짝치며 노래 서너컬레를 부르군 하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성철형과 별로 만날 일이 없어 잘 몰랐는데 지난해 가을철에 초중을 졸업하고 마을에 돌아와 거의 날마다 성철형과 같이 일하게 되면서부터 성철형의 어수룩한 행실을 보고 기가 질렸다. 형제도 잘 두면 보배이고 못두면 원쑤라더니 나에게 이런 팔부형이 있다는게 창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듬해 봄에 생각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생산대에서 논밭 드럼감기를 끝내고 밭머리에서 대채평공을 할 때였다. 성철형의 공수토론차례가 되여 성철형이 여느때와 같이 흙물이 튕긴 손을 높이 쳐들며 <팔부>하고 소리치자 기공원도 그 소리를 받아 <팔부>하고 소리치고는 장부에 2등로력공인 12부를 기입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내막을 모르는 팔간집 새각시가 손을 들며 <전 의견이 있어요.> 라고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사원들의 시선이 모두 새각시쪽으로 쏠렸다. 그녀는 20리 떨어진 용평마을에서 지난 설에 우리 마을에 갓 시집온 새각시였다. 듣자니 원래있던 생산대에서 몇년간 부녀대장으로 있으며 입당까지 하고 시집왔다는데 인물도 환하고 일도 걸싸게 하거니와 바른소리도 잘했다.

<전 의견이 있어요. 저 동무가 일하는걸 보면 상로력 못지 않은데 어찌 본인이 팔부를 자보한다하여 팔부만 주겠습니까. 제 생각엔 오늘은 12부는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니까 저 동무한테 언제나 팔부만 주는것 같던데 이건 당에서 제창하는 안로분배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새각시의 똑부러진 의견이였다. 남정네들은 담배를 피우며 시무룩히 웃기만 했다. 곁의 아낙네들은 새각시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소곤소곤 말해주고 있었다.

이때 성철형의 곁에 있아 담배를 피우던 문백이란 나그네가 시물시물 웃으며 성철형을  시까슬렀다. 나이 서른을 넘긴 그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으며 콩나물악보책을 볼줄 아는 <예술가>였다. 그는 하품도 예술적으로 한다며 남들처럼 <하>하지 않고 하품이 끝날 때면 입을 오무리며 <오>자를 붙여 <하ㅡ오>했고 트림할 때에도 그저 껄 하지 않고 예술적으로 한다며 <꺼ㅡ얼>했다. 예술에는 절벽이라고 농민들을 깔보며 벼라별 <예술>을 자랑하는 그가 아니꼬와 마을사람들은  이름대신 풍각쟁이라는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그는 현성에서 공부하다가 어렸을 때 농촌으로 하방한 부모를 따라 우리 마을로 왔다는데 남다른 재간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일에는 베돌이였다. 또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구경거리를 만들지 못해 안달을 떠는 사람이였다.

<야, 니 팔부를 달라는데 저 안까이 네 달라는 팔부 안주구 왕청같은 공수를 주겠단다. 그런데두 니 가만있니?>
그러잖아도 전에는 팔부를 자보하면 아무런 시비없이 무사통과되여 시비많은 사람들과 비해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는데 오늘은 어째 별랗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능구렁이 문백이가 곁에서 이렇게 꼬드기자 성철형은 그제야 웬 영문인줄 알았는지 밸이 왈칵 치밀어했다. 새로온 새각시가 자기가 달라는 공수를 안주겠다는건 자기를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병신이나 좀 모자라는 사람들은 누가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여길 때면 불물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체면과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반항적 역심리가 있다고 한다. 저 새각시가 자기를 업신여겨 달라는 팔부를  안주겠다는데 팔부형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성철형은 땅에서 솟아나는 손오공마냥 벌떡 일어서며 꽥 소리를 질렀다.

< 씨불란 싸, 쌍간나새끼, 니 뭐이라니? 파,팔부를 아이 주겠다구? 니, 니 오널 죽어봐라.>
성철형은 자기가 깔고앉았던 소대가리만큼한 돌을 안느라고 낑낑거렸다. 그 돌을 들어 괘씸한 저년의 대가리를 까부실 잡도리였다. 그걸보고 저쪽켠에 앉아있던 아낙네들이 깜짝놀라 고아댔다.

<우구, 저걸 어째?>
<이봅소, 나그내들이 곁에서 말리재이쿠 뭘함두?>
<저 도깨비 저걸루 사람치자구 저래재이요?>
<각시 빨리 뛰오, 펄쩍이 앉아 뭘하오? 날래 뛰란데..>
새각시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아낙네들이 고아치며 등을 밀어내는 통에 얼뻥뻥해서 슬렁슬렁 내뛰기 시작하였다.

그사이 끝내 소대가리만큼한 돌을 끌어안고 일어선 성철형이 그녀뒤를 쫓아가며 소리질렀다.
<저 씨불란 가, 간나새끼, 니 달캤니? 서, 서라.>
새각시는 돌덩이를 안고 눈에서 불찌를 떨구며 천방지축 쫓아오는 성철형을 뒤돌아보고서야 사태가 상서롭지 못함을 알아챘는지 얌전한 새각시답지 않게 자개바람을 일구며 뻔질나게 마을로 내뛰였다.

아무리 힘이 솟구치는 젊은이라 해도 소대가리만큼한 돌덩이를 안은 성철형이 바람결처럼 사라지는 새각시를 따라 잡을리 없었다. 그것나마 마음은 급한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였던지 성철형은 그만 뭣엔가 걸려 땅에 메친 청개구리마냥 앞으로 펄쩍 꼬꾸라졌다. 뒤쫓아 달려간 나와 영호며 인섭이 등 젊은또래들이 성철형을 일쿼세우고 어깨넘어로 그냥 <씨불란 쌍간나새끼, 니 어디 죽어봐라.>며 욕설을 퍼부어대는 성철형을 얼리고 닥치며 밭머리로 끌고왔다. 나는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뜨거워났다. 남은 생각해서 공수를 더 주겠다는데 팔부형이 그것이 된장인지 똥인지도 가리지 못하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다니. 씨, 창피스러워서.

사원들의 욕총은 부실한 사람을 꼬드겨 일을 저지르게 한 문백에게로 넘어갔다. 그러잖아도 나살이나 먹고 회의에서는 바른 소리 한마디 안하다도 드문드문 엉뚱하게 생쥐처럼 끼여들어 일을 비틀어놓는 통에 종종 사람들의 미움을 받던터였다. 문백이는 사람들의 욕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실 문백이도 평소에 싸움질이란 하지 않고 사람좋게 헤헤 웃기만 하는 성철형을 그저 롱담으로 고드겼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까지 번져질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것이였다. 벼짚에도 속이 있다고 모자라는 사람한테 숨은 똥밸이 있다는것을 문백이도 오늘에야 그걸 실감했을것이다. 오늘 정말 인명사고라도 났더면 어쩔번 했는가. 문백이는 자기 잘못으로 큰 일을 저지를번 했다고 생각하는지 도적놈 개에게 물린듯 누가 뭐라고 꾸짖든 고개를 숙이고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였다. 미운놈은 주던 떡도 한입 뚝 떼여먹고 준다더니 그통에 문백이는 그날 받아야 할 공수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그날 일은 그날에 끝나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였다. 부실한데는 정말 약이 없나보다. 이튿날에도 성철형은 어디에서 찾아냈는지 굵다란 괭이자루를 메고 팔간집새각시네 집에 찾아가 <씨불란 쌍간나새끼 나오라>고 야단쳤다. 자기를 업신보는 사람과는 영원히 전쟁뿐이라는 태세였다. 그래도 성철형은 마당에 서서 소리만 꽥꽥 지를뿐 다른 과격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 새각시는 멋도 모르고 성철형을 두둔하여 바른 소리를 한마디 했다가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고사하고 괭이자루를 메고와 골통을 박살내겠다는 성철형의 발광질에  혼겁이 나 그날 일하러도 나가지 못하였다. 모자라는 사람한테는 시비고 도리고 없었다. 그저 무조건 달래야 했다. 생산대회계인 새각시 남편 인국이가 평소에 자기도 사 피우지 못하는 악수표 담배 두갑을 성철형에게 찔러주고 이제 고구마 한 광주리 삶아주마고 구슬려서야 이 일을 겨우 마무리 지었다. 성철형은 개선장군마냥 괭이자루를 척 둘러메고는 휘바람을 휙휙 불며 집으로 돌아갔다. 모자라는 사람한테도 강호의 의리라는것이 있는가. 이튿날부터 성철형은 과연 팔간집새각시를 보고도 모르는척 하였다. 하지만 새각시는 성철형만 보면 호랑이를 피하는 순한 양마냥 할끔할끔 눈치를 보며 멀리찍이 피해다녔다. 지난날 사나이들을 찜쪄먹을만큼 활달하고 혁명적이던 부녀대장의 패기가 불물을 가리지 않는 성철형앞에서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후부터 사원들은 성철형이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잘한다고 엄지를 내들고 춰줄뿐 성철형이 하는 일을 두고 시야비야하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잔잔한 부실이로만 보아왔던 성철형에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울뚝밸이 숨어있는줄 안후부터는 긁어 부스럼만들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것이리라.

장백산 2009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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