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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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3)
2010년 08월 12일 09시 56분  조회:1603  추천:48  작성자: 허룡석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3


   그렇게 몇년세월이 흘렀다. 성철형의 누나 셋은 선후로 모두 시집갔고 웃음을 잊고 마음고생하던 고모부도 시름시름 간경화로 앓다가 지병으로 세상떴다. 벅적거리던 가정에 성철형과 고모만 남게 되였다. 그런데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 난다더니 팔부형이 나이 스물살을 넘어서자 어찌나 서방비위를 하는지 년로한 고모와 제각시를 내놓으라고 못살게 굴었다. 그러면 고모는 친동생인 나의 아버지한테 찾아와서 눈물을 지으며 어디에서 좀 비슷한거 있으면 알아보라고 부탁하군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다리저는 처녀도 만나보게 하고  귀머거리 처녀도 만나보게 하고 팔이 떨어진 처녀도 만나보게 했으나 그때마다 처녀쪽에서는 같은 불구와는 살수 있어도 겉보기에는 훤해도 분촌을 가리지 못하는 바보와 어떻게 사느냐며 모두 앵돌아버리군 했다. 그런데 성철형은 그런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와 사는 녀자는 병신도 안되고 미워도 안된다며 제쪽에서 떵떵 큰소리다. 자기의 색시도 팔간집 새각시처럼 고와야 한단다. 처녀몇을 만나본후부터는 녀자냄새가 좋은줄 알았는지 고모를 더구나 못살게 굴었다. 마치 고모가 자기가 좋아하는 색시를 치마폭에 감춰두고 내놓지 않는듯 일밭에서 돌아와서는 고모 치마폭을 싸고 돌며 제 각시를 찾았는가고 닥달질이였다.

    그러던차 어느날 아버지가 고모를 찾아갔다. 이곳에서 60리 떨어진 해란촌에 인물체격이 나무랄데 없는 스물한살짜리 바보처녀가 있는데 자기가 가서 혼사말을 걸었더니 새기부모들이 성철형의 멀끔한 사진을 보고는 당사자를 만나보자 한다고 알렸다. 고모는 마땅한 자리가 나졌다는 말에 반색을 하다가 처녀도 멍청하다는 소리에는 그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정신이 온천한 팔다리 떨어진 병신이래두 괜찮겠는데 그러루한것들이 마주서서 어떻게 살아간다구 그러우.>
<참 누님두, 병신이래두 정신이 온천한것들은 다 돌아서지 않수? 보리밥에는 고추장이 제격이지. 그러루한게 아니구는 마주 설것 같지 않은데 어떡하겠수. 성철이 그눔 제가 신수 멀쑥하다구 인물은 또 얼마나 밝힌다구 그러오? 내 보기엔 이 자리까지 놓치면 이젠 정말 더 찾아보기 어려울것 같소.>

<에ㅡ구, 하늘두 무심하지, 펀펀하던걸 저렇게 만들구. 그렇찮으문 새기들을 땡땡 튕겨가며 장가보내겠는걸 가지구.>
<이제 그 소리해 뭐하겠수, 죽은 아이 자지 만지기지. 내 래일 성철이 데리구 한번 새기집에 다녀올게, 누님 그런줄 아우.>

고모도 별수없이 좋도록 하라구 했다. 그날저녁 아버지가 성철형에게 처녀사진을 보여주며 래일 새기보러 가자고 했더니 성철형은 너무 좋아 딱정벌레를 잡아문 뚜꺼비마냥 아버지를 안고 펑펑 뛰는것이였다. 고모는 곁에서 분수없이 좋아하는 불쌍한 아들의 꼴을 보더니 돌아앉으며 눈굽을 훔쳤다.

아버지는 뜻밖에도 이튿날 성철형의 선보러 가는데 나보고 함께 가자지  않는가. 나는 펄쩍 뛰였다. 내가 왜 약국 감초처럼 그런데 다 시시하게 끼여들겠느냐며 나누웠다. 아버지는 노여워하며 외사촌도 가까이 지내면 친사촌인데 왜 형의 일에 그처럼 무관심하느냐고 나를 나무랐다. 팔부형을 데리고 말떼러 가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할게 아니냐고 했다. 아버지가 팔부형을 데리고 가는데 정말 아버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랴싶어 나는 별수없이 입을 다물고말았다. 형이 선보러 가는데 동생이 따라가야 한다니. 털도 내리쓸어야 빛이 난다는데 이건 털을 올리쓸게 생겨먹지 않았는가.

못입어 잘란놈 없고 잘입어 못난놈 없다더니 이튿날 겉보기에 의젓한 성철형한테 아래우 골덴 새옷까지 입혀 내놓으니 이목구비가 훤했다. 거기에다 좀 낡기는 했으나 아버지가 신던 까만 구두까지 신겨놓으니 제법 훌륭한 신랑감이였다.

 우리는 뻐스를 타고 공사마을까지 갔다가 또 10리가량 산길을 걸어서 처녀가 있다는 해란 6대에 이르렀다. 길에서 아버지가 새기집에 가서 순서에 따라 하라는대로 여사여사하게 처사하라고 골백번 당부했으나 처녀생각에 마음이 들떴는지 성철형은 처녀사진만 들여다보며 <근심맙소.. 내 다 하꾸마> 하고 건성건성 대답하고는 줄창 앞장서 씨엉씨엉 걸었다.

우리 일행은 새기있는 마을에 이르러 동쪽켠에 자리잡고 있는 하얗게 회칠한 한 륙간 초가집으로 찾아갔다.  우리는 삽작문을 밀고 뜨락에 들어섰다. 그런데 어디에 숨었다 뛰쳐나오는지 갑자기 황둥개 한마리가 달려들며 당장 허벅다리를 물것처럼 왕왕 짖어댔다. 아무 준비없던 성철형은 깜짝놀라 황급히 아버지뒤에 가 숨느라다 구두 한쪽이 벗겨져나갔다. 나는 제꺽 삽작문에서 가름대 한대 뽑아들고 사납게 달려드는 개를 집뒤로 쫓아버렸다.
아버지는 방문께로 다가가 점잔을 빼며 어험어험 하더니 <계심는가.> 하고 주인을 찾았다.

잇달아 <뉘시우?>하며 방문이 빠금이 열렸다.
<예, 지난번에 혼사일루 왔다간 립신촌의 장달수올시다.>
그 소리에 방문이 활짝 열렸다. 오십대로 보이는 작달막하고 빼빼마른  주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 예. 날래 이리 들어오시우.>
우리는 방문으로 들어가 널직한 정주간으로 안내되였다. 정주간에서 몸집이 둥실둥실한 녀인이 가는 웃음을 띠우며 허리굽혀 우리를 맞았다. 아버지는 성철형과 나를 집주인들에게 소개했다.
<그간 무고하셨습능가.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구 오늘 아예 신랑감을 데리구 왔수다.>
새기부모들은 신수가 멀쑥한 성철형을 보더니 대번에 안색이 환해졌다. 성철형은 아버지가 가르치는대로 허리굽혀 점잖게 두분께 인사올렸다.
<안녀하심둥?>

우리는 새기부모들과 일정한 사이를 두고 자리잡고 앉았다. 나는 성철형의 아래켠에 앉았다. 새기부모들을 보니 성철형에게 아주 관심을 두는것 같았다. 아버지와는 전번에 만나 서로 혼사말을 주고받은 구면이여서인지 어른끼리 두루 인사치례를 하다가 새기어머니가 화제를 성철형에게로 돌렸다.

<총각은 올해 나이 얼마요?>
<예, 스,스물서임다.>
<나이는 비슷한것 같구만. 총각이 이렇게 츨츨하게 생긴게 새기들을 많이 만나봤겠소 양?>
<예, 그, 그래두 잔체는 하, 한번두 못해 봤스꾸마.>
<그랬구만. 그래 무슨 병은 없소.>
새기어머니는 마디에 옹이라고 바보한테 다른 몹쓸병까지 있을가봐 걱정해서인지 이렇게 물어왔다.
<이, 있스꾸마.>
<양? 그래 무슨 병이 있소?>
새기어머니의 얼굴이 대뜸 굳어지는 표정이 확연했다.
<아, 아때 낭게서 까, 까꿀루 떨어진게 정시 좀 부, 불정상이랍더꾸마.>
나는 속으로 어처구니없어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남이 알지도 못하는 저따위 바보소리를 할게 뭐람? 바보는 워낙 이렇게 고지식한걸가?
<에구, 저걸 어째?>

새기어머니는 맹랑하다는듯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흙에 묻혀 어지러워진 옥돌을 앞에 놓고 본래의 맑고 투명한 색갈과 광채를 들여다보는 유능한 장인바치마냥 성철형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것이였다.

성철형이 바보스러운 소리를 하여 새기어머니가 실망하여 성철형을 찬찬히 뜯어보는가 하여 아버지가 저으기 안달아했다. 아버지가 새기어머니를 흘깃 쳐다보고는 성철형에게 껌뻑껌뻑 눈짓했으나 성철형은 보았는지 말았는지 새기어머니 묻는 말에만 신경썼다.

<쯧쯧쯧, 펀펀한 아까운 사람 이렇게 만들었구만.>
<나두 아때는 또, 똑똑했답더구마. 지금두 영 또, 똑똑합꾸마. 날마다 일할라두 나가구 공수두 파, 팔부씩 받구 헤헤.>
<쯧쯧쯧, 일은 잘 하는 모양이구만, 그래 곱게 키운 우리 딸을 총각한테 맡겨 놓으문 아끼구 고와하겠소?>
<사진에 있는 따, 딸을 주문사 내 영 고, 고바하겠쓰꾸마.>
이때 안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머리가 더부룩한 처녀 하나가 노래를 부르며 불쑥 뛰쳐나왔다.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네…>

 그 서슬에 우리는 그만 깜짝 놀랐다. 아까는 마당에서 황둥개가 뛰쳐나는 통에 놀랐는데 이번에는 안방에서 처녀가 이렇게 불쑥 뛰쳐나오다니. 뛰쳐나온 처녀가 인사치례도 없이 노래를 부르는 한편 손발을 곱게 놀려가며  정히 춤을 추는데 련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문공단배우 왔다 울고 갈 지경으로 여물어다진 춤이였다. 게다가 갸름한 얼굴, 오목오목 보조개진 포송포송한 얼굴, 젖빛의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처녀는 그야말로 린근마을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였다. 다만 눈길이 초점없어 보이고 그우에 커다란 거마리가 붙어있는것처럼  굵직하게 그려져있는 눈섭이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을 줄뿐이였다. 처녀는 춤을 추다말고 제어머니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엄마, 난 저 동무 좋습다ㅡ>
 처녀가 안방에서 한참이나 문구멍으로 내다보고 훤칠하고 사나이다운 성철형의 의젓함에 홀딱 반해버린것이였다.

성철형의 동공이 갑자기 탁구공만큼 커졌다. 그는 뚫어지게 처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호주머니에서 처녀의 사진을 꺼내들고 뛰쳐나온 처녀와 대조해 보는것이였다. 아마 팔간집 새각시보다도 훨씬 더 곱고 올때 줄창 보며 왔던 사진속의 새기보다도 더 고와보였던 모양이였다. 성철형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처녀는 오래동안 갈라져있던 련인을 만난듯 성철형의 앞에 와 두손을 잡더니 펄쩍펄쩍 노루뜀을 뛰는것이였다. 성철형도 그녀같이 펄쩍펄쩍 수소뜀을 뛰며 손을 잡고 빙빙 돌았다. 처녀는 어느새 성철형의 목을 끌어안더니 입이고 얼굴이고 목이고 침을 찔찔 흘려가며 마구 키스해댔다. 으흐흐., 내가 다 온몸이 오싹해났다. 그 서슬에 성철형도 맞받아 키스하며 처녀의 입이고 코고 마구 빨아넘겼다. 그러던중 어느사이 한쪽손이 인민공사 공공식당의 커다란 죽사발을 엎어놓은듯한 처녀의 풍만한 젖가슴에 올라가 두부 비지 짜듯 마구 주물러댄다. 그랬더니 처녀는 점점 흥분되는지 자기몸을 성철이 몸에 갖다대며 비비꼬기 시작했다.
 저걸어째, 저대로 가만 놔두면 체면이고 부끄러움이고 모르는 인간들이  당금이라도 옷을 벗어내치고 어른들 앞에서 무슨 짓을 해댈지 몰랐다. 새기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함지만한 엉덩이를 추슬더니 황망히 일어섰다.

<야, 곱단아, 이젠 됐다. 그만들 해라.>
새기어머니는 찰거머리마냥마냥 서로 딱 붙어 안떨어지겠다는 곱단이란 처녀를 뜯어내려 애썼다. 나도 벌떡 일어나 방게처럼 처녀를 꽉 집고 놓지 않는 성철형을 뒤로 힘주어 잡아당겼다. 자석마냥 서로 끌어당기는 그들 둘을 겨우 뜯어내자 새기어머니는 처녀를 급급히 안방으로 들이몰았다. 성철형이 발정난 수소마냥 씩씩거리며 따라 들어가겠다는것을 내가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제어머니한테 쫓겨 안방으로 들어가던 처녀가 눈을 흘기죽하며 꼬시랑거렸다.

<이씨, 베ㅡ기ㅡ싫다…>
처녀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더니 다시 문을 벌컥 열고 고아댔다.
<엄마, 저 내 실랑재를 보내문 아이 됨다 예?>
<오냐, 오냐, 알았다. 알았어.>

원래는 사위감과 사돈이 될 분 앞에서 모자라기는 매일반이나 자기딸이 인물이 환하다는것을 턱대고 좀 값지게 놀다 못이기는척 값을 높여 혼사를 정하자 했겠는데 미처 어쩔새 없이 뛰쳐나온 딸의 망칙스러운 꼴을 보이고 나니 새기어머니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턱을 쳐들기는 고사하고 허리를 낮추며 연신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참, 아이 됐습꾸마. 애가 철딱사니 없어서…쟤가 워낙 춤추기 좋아하다 보니…>
<원, 별말씀을, 다 피차일반입지뭐.>
아버지가 신심이 생겼는지 새기부모들 앞에 한걸음 나앉았다. 새기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혼사에는 총각쪽에서 모르는척 주동을 쥐는것이 상례였다.
<쟈들이 서로 좋아하는것 같은데 이 자리에서 말을 떼면 안되겠습능가?>
<글쎄, 쟤들이 보자마자 저렇게 좋아들 하는걸 보니 서로 연분이 있는것 같기두 한데…>
새기아버지도 담배를 뻑뻑 빨며 싫다는 소리는 안했다.
<그럼 그렇게 하겝소. 쟤들이 좋다문 됩지비, 난 동의합꾸마.>
딸애의 흉허물이 다 드러나 되려 속이 조마조마해났는지 새기어머니가 아버지의 장훈에 제꺽 태도표시를 했다.
<쟤들이 좋아하구 당신 좋다문 됐지. 내사 뭐랄게 있소.>
새기아버지가 담배불을 비벼끄며 마누라를 흘끔 쳐다보는것이였다. 반달같은 딸이 있으면 온달같은 사위를 삼는다지만 둘다 보기에는 멀쩡해도 등신에 반편인것들을 어찌하랴.

혼사는 앉은 자리에서 이루어지게 되였다. 성철형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그 자리에서 넙죽 업드려 장인, 장모될 분한테 절을 하였다. 색시 고우면 처가집 말뚝 보고도 절 한다더니 아마 고운 처녀를 보고 나니 절을 많이 하고 싶어졌던지 성철형이 연속 엎드려 절을 하려 하는것을 아버지가 끄당겨 곁에 눌러앉혔다.

일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풀려갔다. 잔치날은 후에 차차 잡기로 하고 우리는 <사위>덕에 점심에 닭까지 잡아먹고 떠날 차비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떠나는 기미를 알아챘는지 처녀가 어느사이 머리까지 말끔히 빗고 꽃부리 옷을 갈아입고 있다가 우리가 집을 나서려 할 때에  뛰쳐나와 따라 오겠다고 봉당에서 허둥지둥 신까지 찾아 신는것이 아닌가. 처녀의 부모들이 분수없이 날뛰는 딸을 말리느라 법석을 놓았다. 이것을 두고 룡이 가는데 구름이 따르고 범이 가는데 바람이 따른다고 했던가. 처녀는 백사불구 멀쑥해보이는 성철형을 따라 오려했다.

고운 옷을 차려입고 따라 나서는 처녀를 보더니 성철형도 떠나기 아쉬워 되돌아 들어가겠다고 버둥버둥하는것을 나와 아버지가 겨우 돌려세워 놓았다. 새기부모들이 처녀를 달래는사이 우리는 성철형을 끌고 그집문을 나섰다. 뒤에서 갖은 좋은 말로 달래는 새기부모들의 애원하는 소리와 신랑을 따라 가지 못하게 한다고 발버둥질하는 처녀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올 때에는 여물을 찾아가는 소마냥 성철형이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왔지만 갈 때에는 절에 꿀단지를 두고 떠나는 중마냥 연신 뒤돌아보며 나한테 끌려오다싶이 했다. 그러다가 자그마한 산등성이를 에돌아 처녀 사는 마을이 보이지 않자 공연히 나와 버럭버럭 홰를 쓰는게 아니겠는가. 그러더니 처녀사진을 꺼내들고 들여다보며 어린애마냥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나는 어처구니없어 두 손을 허리에 지르고 서서 철딱서니없이 노는 성철형의 꼬라지를 아니꼽게 흘겨보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다가와서 차분하게 달랬다. 이제 잔치하면 사진에 있는 이 새기가 네 각시되니 그때면 날마다 같이 있을수 있다며 얼리고 닥치고 구슬려서야 술취한 사람을 끌고오듯 집까지 무사히 데리고 올수 있었다. 내가 따라 가지 않았더면 아버지가 오늘 숱한 고생을 할번했다.

처녀보러 갔다 돌아온 이튿날부터 성철형은 상사병에 걸렸는지 다리 부러진 노루마냥 자리에 누워 끙끙거리며 일하러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고모보고 빨리빨리 잔치하지 않는다고 성화질이였다. 서방비위가 나 마을 청년들 잔치라면 빠짐없이 참석해본 그라 잔치해야 각시가 자기집에 와 있는다는것을 알고 있는것 같았다. 고모는 별수없이 아버지한테 찾아와 저것들을 빨리 잔치시켜야지 자꾸 늦추었다가는 일이 생길것 같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이튿날로 또 새기집에 찾아가서 사돈들과 잔치날을 상론했다. 아버지가 찾아가니 새기어머니는 신을 꺼꾸로 신고 달려나오며  반겨맞더란다. 그 사이 새기집에서도 야단이 났던것이다. 성철형이 갔다온 후부터 처녀는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뛰쳐나가 보이는  마을사람마다 붙잡고 자기가 래일 멀리멀리 시집간다고 자랑하며 골목길에서 춤을 추어대는데 마을사람들 보기 민망해 죽겠다는것이였다. 천상 배필을 만났는가. 봉과 황이 갈라져 있으니 서로가 안달이다. 량쪽 사정이 다 그러하니 갖춰놓은건 없어도 어서 빨리 애들을 결혼시키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두 집에서는 오는 국경절로 잔치날을 잡았다.
잔치날 신랑집에서는 지난날의 낡은것을 타파한다는 신식법에 따라 혁명적으로 함에 모주석저작 네권과 낫 한자루를 넣고 생산대의 손잡이뜨락또르를 빌려 일찌감치 해란촌으로 신부맞으러 갔다. 그때는 손잡이뜨락또르가 농촌 생산대들에 갓 자리잡을 때라 농촌에서는 가장 현대적 농기계이자 운수도구였다. 이러한 신식 운수도구로 신부를 맞아오는것은 수레나 마차를 쓰기보다 훨씬 자랑스러운 일이였다. 나도 신랑집 들러리로 뽑혀 생산대에서 사온지 얼마 안되는 뜨락또르에 앉아 어깨 으쓱히 신부맞으러 함께 갔다. 그사이 마을사람들이 찾아와 부조돈 50전 혹은 30전씩 내놓으며 불쌍한 성철형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잔치집에서 차려준 옥수수국수를 맛보고 근들이 잔치술을 마셔주었다.

점심때가 좀 지나 신부를 실은 뜨락또르가 신랑집에 도착하였다. 새각시가 온다는 조무래기들의 떠드는 소리에  마을 독보조로인들이 자리를 털고나와 신부차를 맞으며 덩싱덩실 춤을 추었다. 남들이 춤추는것을 보더니 조건반사가 일어났는지 너울을 쓴 신부가 뜨락또르에서 펄쩍 뛰여내리더니 로인들과 엉켜 함께 춤을 추어댔다. 시집간다며 그간 그렇게 련습했다는 춤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네…>
초면강산 신부가 차에서 뛰여내려 자기네와 함께 춤을 추자 영문을 모르는 로인들은 더욱 성수나서 손을 머리우로 내저으며 빙빙 돌아갔다. 이쁘고 츨츨한 신부의 춤솜씨가 어찌나 눈부신지 마을사람들은 입을 하 벌렸다
<저 자식 각시복이 터졌네. 어데 가 저렇게 환한 색시를 데려왔지?>.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신부를 칭찬하자 뜨락또르곁에 서서 구경하며 헤벌죽 웃기만 하던 성철형도 흥이 났는지 로인들 춤판에 끼여들어  손벽을 짝짝치며 명가수마냥 구성지게 노래를 불러댔다.
<도라지, 도라지, 도ㅡ라지…>
<좋ㅡ다. 좋지.>
<잘ㅡ한다.>
<얼씨구 ㅡ절씨구.>
마을사람들은 제집 일처럼 기뻐서 환성을 지르며 흥을 돋구었다.

하지만 신부와 함께 온 들러리들과 신랑집에서는 손에 땀을 쥐였다. 저러다 어리숙한것들이 숱한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망신스러운 일을 벌릴지 몰랐다. 도를 넘기전에 마무리 지어야 했다. 우리는 이젠 신부가 큰상을 받아야 한다며 우르르 쓸어나가 계속 춤을 추고 노래부르겠다고 뒤로 나자빠지는 신랑과 신부를 떼여다 큰상에 눌러앉혀놓았다. 그러다보니 그렇다할 망신스러운 일은 없었고 오히려 거기까지는 잔치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을사람들도 잔치가 잘 되였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오후 한나절이 잘 되여서야 새각시구경을 하던 마을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갔다. 신부들러리로 왔던 점잖은 사돈들도 모두 잘 접대하여 돌려보냈다. 손님접대에 팽이처럼 돌아치던 신랑집에서는 그제야 어른아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점심삼아 저녁삼아 잔치음식을 음복하게 되였다. 큰상을 받은 신랑신부는  밥을 좀 더 먹으라 해도 배고프지 않다며 손에 손을 잡고 급급히 안방에 들어가 버렸다.
고모와 아버지, 누님과 매형들 그리고 모처럼 혼사에 참여해준 가까운 친척들과 조카들이 정주간에 차려놓은 밥상 몇개에 모여 앉아 오늘 잔치가 생각보다 잘 되였다고 이야기 꽃을 피우며 잔을 내기도 하고 식사하기도 했다. 나는 매형들과 한상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정주간에서 한창 술잔을 돌리며 식사하는데 갑자기 안방으로부터 <철떡, 철떡> 떡치는듯한 소리와 함께 신부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저게 무슨 소리야?>
<저것들이 지금 무슨짓을 하는거야?>
<아이, 저것들이 대낮에…?>

우리는 술을 마시고 밥을 먹다가 아연하여 입에 밥을 문채 혹은 술잔을 든채 서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짝짝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숨소리가 점점 거세게 들려왔다. 신부는 쌀마대에 깔린듯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질렀고 신랑은 징구량수레를 끌고 령마루에 오르는 황소마냥 씩씩씩 거센 숨을 내뿜었다. 큰 매형이 벌떡 일어섰다.
<내 저것들을 그저…>
건너 어른들상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제꺽 매형을 붙잡았다.
<관 놔두게, 이 세월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구 구속없이 제먹대루 사는것두 어쩌면 편할지두 모르지.>
 첫날 대낮에 청명날 눈을 뜬 청개구리마냥 펄쩍펄쩔 뛰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신랑신부의 말못할 부부교향악소리가 딹살을 돋구며 귀전을 련속 때려댄다. 집안식구들은 저 체신머리없는것들을 저대로 내버려둬도 되느냐는듯 서로 눈치를 보다가 아버지의 말에 모두들 무거운 저가락을 다시 들었다. 그런데 잠시후에는 정주간과 안방을 가로막은 사이문이 쇠돌을 캐내는 남포소리에 울리듯 드렁드렁 절주있게 떨어대여 또다시 정주간사람들을 놀래웠다. 한데 엉킨 <쌀마대>들이  어느새 저도 모르게 사이문까지 굴어온 모양이였다.
<삼춘네 칸에서 어째 저램다?>

옥수수국수를 후룩후룩 먹어주던 일곱살짜리 큰 조카애가 저가락을 든채 두눈이 올롱해서 자기아버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애아버지인 큰 매형이 미처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응, 그 삼춘네 잔치했다구 좋아서 춤을 추느라구 저랜다.>
아버지가 별일 아니라는듯 술 한잔 쪽 비우며 태연스레 대꾸했다.
<야, 그럼 재밋겠다. 우리 볼라가자.>
큰 조카애가 저가락을 든채 발딱 일어서니 작은 조카애들 몇이 <야, 우리두 볼라가자.>하며 우르르 용수철 튕기듯 발딱발딱 일어섰다.
<보긴 뭘봐. 앉아.>
큰 매형이 안방문께로 몰켜가려는 애들을 막아나서며 하나하나 숫구멍을 때려 눌러 앉혔다. 이러다 철모르는 애들까지 망치겠다고 생각했던지 애들을 아예 밖으로 내몰았다.
<너넨 나가 놀다 내래 들어와 밥을 먹어라.>
<아이, 때시걱두 다 지난땐데 걔들을 밥을 먹여야지 어째 밖으루 내쫓습둥? 잔치날에 아이들을 굶기겠습둥?>
애어머니들이 나서 두둔하며 자기애들을 끌어다 곁에 눌러 앉히고 먹던 국수를 계속 먹게 했다.
<엣씨, 저것덜 땜에 술맛이 다 떨어진다.>
매형들이 자리를 털고 훌훌 일어섰다 그러는걸 아버지가  다시 매형들을 꾸짖었다.
<정말 왜들 이래? 자네들이 쟤들과 다를게 뭔가. 다르다면 그저 체면차리구 눈치보기가 다를뿐이지. 쟤들두 사람이 아닌가. 불쌍한 애들이 어쩌다 저렇게 좋다구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자네 눈꼴 사나와 할게 뭔가. 날래 앉게, 우린 못들은척 하구 우리 술이나 마시세.>
아버지는 술 한잔을 쪽 비우고 나서 매형들을 들으라는듯 한마디 했다.

<예로부터 남녀간의 교합이란 마치 천지간에 비가 오는 자연의 리치와 비슷하거든, 비가 오자면 바람이 일고 번개와 우뢰가 곁들이기 마련이지. 그렇게 해야 초목과 곤충과 오곡이 성하는 법이지. 풍운이 일지 않구 번개와 우뢰가 동반하지 않는다면 어찌 비가 올것이며 비가 오지 않는데 어찌 오곡이 풍성하겠는가. 남녀간의 깊은 사랑두 구름과 비를 몰아온다하여 운우지정이라 하지 않나. 저런 격정이 없으면 그걸 어찌 사랑이라 하구 자식들이 어찌 성할수 있겠나.  인간이란 동물두 후대가 번식하지 않으면 대가 끊어질거구 이 세상은 .또 원숭이 천하가 되고 말거야. 자네들두 모두 결혼하여 애까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성한 사람의 사유로만 생각하지 말구 쟤들의 켠에 서서 생각해 보면 안되겠나? 같은 일두 낮과 밤이 다를뿐이구 체면이란 낯가죽이 다를뿐이지, 안 그런가? 그러니 어서들 앉게 >

불행이 눈섭에서 떨어져 바보로 된후 여태껏 지지리 괄시받고 몰리다 어쩌다 저렇게 좋아하는 처남을 우리가 눈꼴사나와 할게 뭔가. 저들은 저들 세상의 즐거움이 따로 있는게 아닌가. 매형들은 이렇게 생각했는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제자리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매형들은 성철형네를 체신머리없는 눔들이라고 괘씸히 생각하던 마음을 버렸는지 편한 마음으로 아까보다 술을 더 줄기차게 마셨다. 나는 말없이 부지런히 술을 따랐다. 매형들은 술을 흠뻑 취토록 마시는것으로 불쌍한 처남의 눈물겨운 결혼을 축하하기로 작정한것 같았다.

정주간의 술상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안방의 운우지정은 계속 몰아쳐 그 대안이 어디까지인지 알수 없었다. 20여년간 억눌려있던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 해란강 보뚝이 떠진듯 걷잡을수 없이 분출하는 모양이였다. 정주간에서는 그러한 번개도 우뢰소리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듯 말없이 저가락질하고 술잔들을 비웠다.  누나들 앉은 상을 흘끔 바라보니 세 누나는 저가락질은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어하였다. 저렇게 부끄러움도 모르게 된 성철형이 불쌍하여 그녀들은 밥을 먹는건지 눈물을 먹는건지 자기로도 분간할수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저가락을 내던지고 서로 부둥겨안고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꼈다. 어머니들이 울자 애들도 덩달아 울었다. 안쪽 로인들상에 앉은 고모도 체면이라는게 뭔지 모르는 아들며느리들의 일이 기가 차서인지 아니면 저렇게 장가를 보내야만 하는 아들이 새삼스레 가슴아파서인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앉은 자리에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약한 다리에 침이 간다고 병신자식 더 귀여워 했건만 쥐구멍에 볕이 들 날이 아득해서였을가. 아버지도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장알박힌 솥뚜껑같은 한손으로 눈굽을 찍으며 다른 한손으로는 연신 술잔을 들어올렸다. 잔치날이 상사날로 된듯  비애에 빠진 분위기에 젖어버렸는지 나도 처음으로 성철형이 불쌍하고 가엾게 느껴져 마음이 울적해졌다. (계속)

장백산 2009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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