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http://www.zoglo.net/blog/xulongxi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나의카테고리 : 기본카테고리

[수필] 류삼저 <고손녀>와 <결혼>하다
2011년 05월 07일 14시 13분  조회:2771  추천:116  작성자: 허룡석

류삼저 <고손녀>와 <결혼>하다


허룡석



2003년 11월초에 중국소수민족지구신문연구회 제6기전체회의가 광서쫭족자치구 류주(柳州)시에서 열렸다. 소수민족일보사들중 <로따거>(老大哥)로 불리는 연변 일보사도 이 연구회 창시단위의 하나였지만 그후 여러가지 원인으로 다년간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하여 이번 회의에는 꼭 참석해주십사 하는 요청도 간곡했지만 나는 개혁개방시대 다른 소수민족지구 일보사들에서는 어떤 지방재정의 혜택을 받고 있을가 하는 조사의도를 갖고 처음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연변일보사의 참석으로 하여 형제민족일보사 사장과 주필들은 대단히 기뻐 하였으며 나를 이 연구회의 상무부주석으로 추대하였다. 또한 다음 7기 회의는 연변일보사에서 주최할것을 요구하였다.

회의후 우리는 광서쫭족자치구는 물론 전국에 이름을 떨친 문화관광지인 류삼저 (刘三姐) 고향으로 참관을 떠났다.

류삼저는 남송때부터 전해내려온 광서쫭족민간전설중의 뛰여난 대표적 인물이였다. 그녀는 총명하고 령리하며 아름답고 호방적이여서 대대로 내려오며 사람들한테 <선녀>로 불렸다. 게다가 노래를 부를라치면 산가가 샘솟듯 하고 그 목소리 또한 청아하여 <가선>(歌仙)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녀는 쫭족인민들의 자랑이였으며 광서쫭족자치구의 명물이기도 했다. 2006년 류삼저의 고향으로 불리는 광서쫭족자치구 하지(河池)지구 의주(宜州)시에서 신청한 <류삼저산가(山歌)>는 첫번째로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명록에 수록되였다.

우리는 12일 오전 8시에 대회측에서 준비한 뻐스를 타고 류주에서 떠나 9시 반경에 의주시에 도착했다. 일행은 의주시선전부의 안내로 사전에 예약된 1호유람선에 앉아 룡강을 따라  류삼저고향으로 향했다. 량안의 풍경은 아주 아름다왔다. 남방특색을 띤 지평선에서 불쑥불쑥 솟은 석회석 산들이 줄줄이 뒤로 미끄러졌고 사탕수수, 바나나, 파이내플 등 북방에서는 볼수 없는 특이한 풍경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배안에서 가이드는 류삼저고향의 유래를 소개하고 나서 우리에게 <류삼저> 영화에서 부르던 산가 몇곡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류삼저 고향 대문어구에 가면 숱한 처녀총각들이 <류삼저> 영화에서 나오던대로 <산가>로 대창을 해올것이니 우리도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즉 그 대문을 지날 때면 <모나으리>(莫老爷)패와 <류삼저>패로 나뉘여 산가대창으로 우렬을 가린다는것이였다. 우리는 <모나으리>패로 되여 <류삼저>패의 대창에 응부해야 한다는것이였다.

가이드는 누가 전에 <류삼저>영화에서 나오는 산가를 부를줄 아는가  하여 신강 <창길일보>의 사부총편집이 <모나으리>로 뽑히고 귀주 <동인일보> 주사장이 <수재>로 뽑혔다. 나는 산가를 부를줄 모른다는데도 여러 민족이 함께 나서면 보기 좋다며 기어코 <수재>로 <발탁>시켰다. 우리는 배에서 미리 준비해둔 <모나으리>와 <수재>의 옷을 껴입고 배머리에 떠밀려나섰다. 동행자들은 그 꼴을 보며 우스워 죽겠다며 연신 사진기샤타를 눌러댔다. 나도 난생처음 <류삼저>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수재>의 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보니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우리가 배우에서 가이드의 지휘에 따라 한참 산가를 련습하노라니 배는 어느듯 류삼저고향의 대문어귀에 이르게 되였다. 멀리에서도 대문 량쪽 벼랑우에 수십명의 처녀총각들이 줄지어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 환히 보였다. 그 기세를 보고 우리는 저으기 긴장해났다.

배가 대문앞에 이르자 가이드는 <모나으리>패가 먼저 <선불>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과 발을 내저으며 동작이 거칠면 거칠수록 좋다고 하였다. 통치계급의 추악상과 랑패상을 여실히 보여주란다. 우리는 배에서 련습한 서투른 그대로 먼저 <선불>을 걸었다.

털보송이 참새새끼 둥지에서 갓 나왔거늘
네 산가 잘한다한들 어찌 내 노래보다 많을소냐
믿어지지 않으면 어디 이 배를 좀 보아라
배머리에서 배꼬리까지 산가로 가득 찼노라

그러자 대문량견의 <류삼저>패들이 당장 대응해왔다.

노래할줄 모르면 오지나 마세요
둔재의 노래 어찌 나보담 많으리오
산가는 마음으로 부르는 선률이거늘
어찌 물처럼 배에 싣고 다니리오

우리가 한단락 공격하면 그쪽에서 한단락 대응해왔다. 처음에는 재미로 하던것이 점차 경쟁으로 번져져 신강 <모나으리>는 <화>가 나서인지 가이드가 배워주지 않은 노래로 공격하고 우리는 배워준대로 공격하다보니 서로가 음정이 맞지 않아 함께 배를 탄 일행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우리는 웃어번져졌다도 웃음이 멎으면 또 뭐라도 공격하는데 마지막에는 서로 손과 발을 내저으며 제좋은 소리를 치다보니 배에 앉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류삼저>네 패들도 웃느라 노래를 미처 이어대지 못했다. 제가끔 고아대던 <모나으리>패들은 자기네가 이겼다고 “와야” 환성을 올렸다. 가이드처녀도 눈물을 찔끔찔끔 짜며 이렇게 재미나는 대창은 처음 본다며 웃느라 몸을 가누지 못했다. 림시로 주어맞춘 아마추어패가 어찌 날마다 노래하는 프로패를 이길수 있으랴만 어떻든 그들이 노래를 이어대지 못하게 웃겼으니 이기긴 이긴것이 아니겠는가.

대창이 끝나자 우리는 껴입었던 옷을 벗고 배에서 내려 대문을 지나게 되였다. 가이드는 대문을 지날 때 처녀들이 술을 한잔씩 권하니 돈 1원씩 준비하라고 했다. 내가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1원짜리는 없고 2원짜리만 있었다. 내가 그대로 내놓으니 처녀는 고맙다며 한잔 더 마셔야 한다고 하여 다른 사람보다 한잔 더 마셨다. 처녀들은 우리와 대창을 하던 장면을 떠올려서인지 술을 권하면서도 우리를 쳐다보며 웃음을 참지 못해하였다.

우리는 대문을 지나 류삼저의 고향집을 참관하였다. 제때에 수건을 하지 못해서인지 목조건물과 창고들은 많이 낡아있었다. 우리는 민족복장을 하고 건물앞에 서있는 쫭족처녀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고향집참관을 끝내고 우리는 널다란 공연장에 왔다. 공연장은 기암절벽과 나무숲이 둘러싸인이 천연적인 뜨락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선경속에 들어선듯 했다.

우리 일행이 자리잡고 앉으니 문예공연이 시작되였다. 아마 오늘은 우리 일행이 중심인것 같았다. 쫭족처녀총각들이 짝을 지어 나무판대기를 신고 절주있게 춤을 추다가 우리더러 그걸 신고 걸어보라 하였다. 우리가 중간중간 끼여들어 처녀들의 어깨를 짚고 그들의 률동에 따라 움직이니 그런대로 걸을만 했다. 하지만 참대사이로 뛰는 뜀질은 잘 안되였다. 어떤 이는 절주를 맞추지 못해 참대목에 발목이 집혀 그 자리에 꼬꾸라지기도 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채로운 문예공연이 끝나자 이번에는 혼례식을 거행한단다. 관람자들속에서 자기들 마음에 드는 신랑감을 골라 류삼저의 <고손녀>들과 결혼시킨단다.  처녀 둘이 각각 한손에 붉은 꽃이 달린 붉은 띠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붉은천을 들고 수백명이 앉은 관람석을 훑으며 신랑감을 물색하였다.

그런데 나는 한 처녀가 사람들을 비집고 곧추 나한테로 오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설마 하면서도 긴장했다. 아니나다를가 처녀는 나한테 와 허리를 굽혀 인사하더니 붉은띠를 내 어깨에 걸쳐주고 붉은천을 내손에 쥐여주었다. 젊은이들도 수두룩한데 이 나이에 내가 신랑으로 선정되다니.

“와, 허사장이 신랑에 뽑혔군그래.”

“좋겠다, 난 몇번 와도 한번도 걸리지 못했는데…”

일행들은 환성을 지르며 축하해 주었다. 처녀는 새물새물 웃으며 어쩔바를 몰라 극구 사양하는 나를 끌고 공연장 한복판으로 나왔다. 뒤이어 사천 <량산일보>의 이족 과부총편집도 다른 한 처녀에게 끌려나왔다. 그러자 당지 신문사인 <하지일보> 진사장이 공연장으로 나와 주동적으로 <새 신랑>들을 소개했다.

“이 분은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란 유명한 노래의 고향에서 오신 연변일보사 사장으로서 조선족입니다.”

관람객들은 “와야”하며 환성을 올렸다. 관람객들은 아마 <문화대혁명>시기 전국에 널리 울려퍼졌던 노래와 문화수준이 높은 조선족이라는데 큰 흥취를 가진것 같았다.
나는 한발 나서며 허리를 굽혀 관람객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한번도 결혼해보지 못한 로총각입니다. 많이 보살펴주십시요.”

그러자 관중석에서는 더 큰 환호성이 울리고 폭소가 터져나왔다. 어떤 이는 좋다고 일어서서 마구 박수를 쳐댔다. 시치미를 떼고 정색해서 말하는것이 더 우스웠던 모양이다. 진사장이 공연히 조선족이라고 밝히는 바람에 나는 전국의 방방곳곳에서 온  관람객들 앞에서 조선족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신랑>역을 잘해야 겠다는 민족적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자면 사장이라는 우사모를 벗어던져야 했다.

화려한 민족옷차림을 한 처녀 10여명이 줄지어나와 우리 앞에 늘여섰다. 마이크를 든 <중매군>이 말했다.

“앞에 늘여선 류삼저 <고손녀>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신부 한명씩 고르세요. 마음곱고 인물곱고 신체좋고 손부부리 여문 신부를 고르면 평생 복을 누릴것이요, 악한 신부, 병다리 신부 고르면 평생 개고생해야 해요. 자, 지금부터 마음드는 처녀를 골라 보세요.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잘 골라야 합니다. 마음드는 처녀면 머리에 붉은 천을 씌워주세요.”

아무리 오락이라도 숱한 사람들 앞에서 <어른>이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며 <신부>를 고른다는것도 품위가 떨어지는  일인것 같아 나는 마주 서있는 처녀한테 붉은 천을 씌워주었다.

“고마워요.”

처녀는 허리굽혀 인사했다.

관중석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그런데 나보다 일여덟살은 젊은 이족 과부총편집은 이쪽 저쪽 다니며 <신부>를 골라 관중들의 폭소와 함께 선의적인 <욕소리>가 터져나왔다.

<신부>가 정해지자 다른 처녀들은 모두 물러가고 공연장복판에는 <신랑> <신부> 두쌍이 남게 되였다. 우리는 <중매군>의 안내대로 각각 <신부>의 손을 잡고 <신부>를 <신방>에 데려다주고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부터 신방에 있는 신부를 자기집에 데려가려면 몇가지 고비를 무사히 넘겨야 합니다. 처남, 처제들과 이모들이 <신부>를 순순히 보내지 않을거니깐요. 제가 하라는대로 하면 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중매군> 둘이 두 <신랑>을 따라 다녔다. 촬영기와 사진기들을 메고 든 기자들과 관람객들이 <신랑>을 따라 다니며 촬영했다.

총각 넷이 나오더니 내 앞에 둘씩 짝을 지어 참대를 어깨에 가로 메였다.

“우선 저 처남들이 가로 멘 참대를 넘어야 해요.”

쳐다보니 아득했다. 고도선수가 아닌이상 저 높은것을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처남, 둘째처남, 사정 좀 봐주세요> 하면 돼요.”

내가 다가가 그대로 말했더니 <처남>들이 시뚝한다.

“사정은 봐주겠지만 말로만 해서야 되겠어요?”
“그럼 어쩌면 될가요?”

“술이라도 대접해야죠.”

“중매군. 술”

내가 <중매군>을 돌아보며 얼결에 이렇게 소리치자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중매군>도 웃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다.

“새신랑이 감히 저하고 술을 달래요. 이렇게 간 큰 신랑 처음 보네요…”

<중매군>이 웃다말고 손짓하자 쟁반에 술주전자를 받쳐든 처녀가 달려왔다. 내가 <처남>들께 술을 따라주자 그들은 단모금에 잔을 내더니 가름대를 가슴까지 내려왔다. 그것도 너무 높았다. 내가 또 한잔씩 따라 공손히 올렸다.

“자, 한잔 더 마시고 사정 봐주던바 하고는 더 봐주세요”
<처남>들이 술을 받아마시고는 술잔을 나한테 내밀었다.

“그럼 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중매군>의 눈치를 보니 마셔야 한단다. 나는 그 잔을 받아마셨다. 그러니 다른 <처남>이 또 한잔 부어준다.

“형님것만 마시고 제걸 안마시면 안되지요. 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또 어쩔수 없이 그 잔도 마셨다.

두 <처남>은 그제야 가름대를 무릎까지 내려왔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가름대를 손쉽게 건너갔다.

두번째 가름대에 가서는 내가 주동적으로 술잔을 따르며 사정했다

“셋째 처남, 넷째 처남. 먼 길을 왔는데 사정 좀 봐 주세요.”

두 <처남>은 술을 받아 마시더니 가름대가 대번에 무릎아래로 내려왔다. 내가 이게 웬 떡이냐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건너는데 가름대가 갑자기 다리사이로 쑥 올라오는 통에 하마트면 걸려 넘어질번 했다. 관중석에서 와 웃음이 터졌다.

“흥, 큰 형님네는 술 두 잔씩 주구 우리는 한잔밖에 안주구 무사히 지날줄 알았어요?”

아하, 이 자식들 술 한잔 적게 주었다구 <심술>을 부리는구나. 나는 가름대를 가로탄채 처녀를 불러 또 술 한잔 마저 부어 주고서여 그 가름대도 무사히 넘을수 있었다. 작은 <처남>들이 <누이>를 부탁하며 부어주는 술 두잔도 어쩔수 없이 마셔야 했다. 대낮에 대문에서부터 여기까지 여섯잔을 받아마시고 나니 정신이 알딸딸해났다. 이거 <신부>를 데려오기전에 <신랑>이 먼저 취해 번져지겠네.

이번에는 이모들 고비를 넘어야 한단다. 키가 크고 작은 <이모> 둘이 좁은 널판자를 한자 높이로 고여놓은 <외나무 다리> 가운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데 저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야 한단다.

나는 첫번째 <이모>한테 다가가 시켜준대로 사정했다.
“큰 이모님 조카를 신부로 맞게 이 다리를 무사히 건너가게 해주세요.”

<큰이모>는 별소리없이 해쭉 웃으며 몸을 한켠으로 비끼기에 마음좋은 <큰이모>의 어깨를 살짝 짚으며 건너려는 순간 <큰이모>가 엉덩이를 삐쭉 내미는통에 나는 안떨어지겠다고 두팔을 허우적거리다 끝내 널판자에서 밀려 떨어졌다. 관중석에서 또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리>를 <지혜롭게> 건너지 못해 벌주란다. 나는 사양하다 못해 또 한잔 받아마셨다. <둘째이모>한테 다가가 사정하니 <둘째이모>는 못들은척 널판자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있었다. 어쩌면 좋냐고 <중매군>을 쳐다보니 술 한잔 권하란다. 나는 공손히 술 한잔 따라 <둘째이모>에게 드렸다. 그런데 <둘째이모>는 손을 내밀지 않고 입만 짝 벌렸다.

“둘째이모는 성격이 사나와서 먹여줘야 할것 같아요.”
<중매군>이 실까스른다. 내가 술을 그녀의 입에 쏟아넣으려 하자 그녀는 발꿈치를 높이 쳐들고 입도 뿌죽히 내밀었다. 키가 나보다 더 큰 그녀가 발꿈치까지 쳐들자 나도 발꿈치를 쳐들고 술잔을 높이 쳐들어야 했다. 내가 <둘째이모>의 입에 술을 부어넣을 때 더러 코구멍으로 들어갔는지 <둘째이모>가 캑캑 거리며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관중석에서 또다시 폭소가 터져나왔다. 나는 <고의적으로> <둘째이모>를 노엽혔다는 <죄명>으로 또 벌주를 마셨다.

이젠 고비를 다 넘었는가 했더니 마지막으로 처제들 고비를 넘어야 한단다. 후유, 아직도 안 끝났나. 보는 사람들은 재미있어 죽겠다지만 <신랑>질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줄은 몰랐다.

<큰처제>앞에 가서는 큰소리로 “처제, 아저씨가 왔소.”하란다. 그리고는 “처제, 약혼했소?”라고 물으란다. 약혼했다고 하면 “이 아저씨가 대도시에 사는 더 좋은 대상을 소개해줄테니 그 대상자와 갈라지오.”하란다. 그랬더니 <큰처제>는 엎디여 절을 하며 또 <감사술>을 권했다. <작은 처제>앞에 가서는 “내가 작은 처제를  대도시에 데려다 공부시킬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하라기에 그대로 했더니 <작은 처제>가 고맙다며 또 술을 따라준다. 보아하니 술고비를 넘겨야 <신부>를 데려갈수 있게 만든 오락인것 같았다. 워낙 주량이 많지 않은 나는 <신부데리러 가는 길에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나니 알딸딸해 오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애써 일거일동을 자제했다.

모든 고비를 순조롭게 지났으니 이젠 신방에 들어가 신부를 데려내와야 했다. <중매군>이 시켜주는대로 <신방>문어구에 가 “여보, 당신이 사랑하는 신랑이 간난신고를 겪고 인제야 왔으니 어서 문을 열어주오.” 라고 해도 안에서는 묵묵 부답이였다. 방문은 안으로 걸려있었다. <취한 신랑>이 재차 큰소리를 치니 그제야 안에서 <신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아무 례단도 없이 어찌 그렇게 쉽게 데려갈수 있겠어요.”

<중매군>이 나서 <신부>를 데려가자면 <례단>으로 적어도20원은 내놓아야 한단다. 나는 먼곳에 와 전설속 명인의 <고손녀>와 <결혼>하려면 요까짓 돈이야 팔아야겠지 하면서 돈을 꺼내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는데 <하지일보> 진사장이 달려왔다.

“허사장, 잔돈이 있습니가? 여기 잔돈이 있습니다. 큰 돈을 내밀면 거스름돈을 안줍니다.”

그는 이 고장사람이라 오락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돈을 꿔서 귀한 신부를 데려가겠습니까?”

내가 휘청거리는척 하며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마침 잔돈이 있었다. 돈 20원을 뙤창문으로 들이미니 그제야 “고마워요.”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머리에 붉은천을 쓴 <신부>가 사뿐 걸어나왔다. 내가 신부의 손을 잡고 땅을 내디디려 할 때 <중매군>이 달려와 <신부>를 업고 <신부>의 두 무릎을 두손으로 받쳐들어여 한단다. 나는 시키는대로 신부를 업고 취한척 이리비틀 저리비틀 하며 공연장으로 걸어갔다. <신부>는 떨어질가바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관람객들은 나의 걸음걸이와 <신부>의 모양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환성을 내질렀다. 나는 공연장 한복판에 와서 <신부>를 사뿐 내려놓았다. 그런데 와보니 <신랑신부>는 우리 한쌍뿐이였다. 후에야 알고보니 저쪽 <신랑>은 고비를 넘을 때마다 주는 술을 받아마시기 어려워 중도에서 기권하고 <도망>쳐 자취를 감추었던것이였다. 그러다보니 관중들의 시선이 <결혼식>과정 내내 모두 나한테 집중되였던것이였다. 나는 맡은바 <신랑>역만 열심히 하다보니 그런줄을 감감 모르고있었다.

우리는 <중매군>이 시키는대로 돌아서서 먼저 <처가집>식구들에게 허리굽혀 세번 인사하고 다시 돌아서서 관람객들에게도 허리굽혀 세번 인사했다. 이번에는 <신랑 신부>를 마주 세워 인사하게 하는데 내가 허리를 굽힐 때 <중매군>이 나를 슬쩍 밀쳐 <신부>와 머리를 맞쫏게 했다. 머리에 붉은 천을 쓴 <신부>가 뒤로 휘청거리며 넘어지려는것을 내가 제껙 잡아주었다. 관중석에서는 또다시 즐거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신부>는 자그마한 가방에서 <결혼기념>으로 알락달락한 수놓이 공을 기념으로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진땀을 빼게 하는 <결혼식>을 끝내고 내가 제자리로 돌아오니 우리 일행은 열렬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와, 오늘 허사장이 신랑역을 잘하셔 참 재미있었습니다.”

“웃지두 않으시구 어찌나 웃기는지 참 많이 웃었습니다.”

그날저녁 의주시선전부에서 저녁초대를 하였다. 술좌석에서 주인과 손님들은  낮에 있은 <결혼식>을 떠올리며 또다시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술이 몇순배 돌자 지방주인인 진사장이 건너와 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저쪽상에 앉은 이모들과 처제들이 신랑이 결혼하자마자 처가집식구들을 잊고 술도 안붓느냐고 노염을 냅니다. 빨리 가보셔야겠습니다.”

그쪽상에는 우리 회의를 위해 봉사하는 당지 여러 부문 녀성간부들과 녀성 일군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진사장의 안내하에 그쪽상으로 건너갔다.

“자, 큰 이모, 작은 이모, 그리고 처제들, 오늘 결혼한 조선족 새 신랑이 처가집 여러분들께 술을 부어 올리겠답니다. 박수ㅡ”

진사장이 이렇게 소개하자 그 상의 녀성들이 모두 일어서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힘껏 박수를 쳤다. 내가 일일이 술을 따르고나서 정색해서 한마디 했다.

“큰 이모, 작은 이모, 그리고 이쁜 처제들. 오늘 다망중에 저의 결혼식에 참석해주셔 고맙고 치매증이 와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하는 로신랑의 사정을 여러모로 보아주셔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후 장백산기슭 해란강반에 오시면 제가 잘 초대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정말 처가집 식구가 된듯 좋아야단이다.

“조선족신랑이 부어주는 술이야 다 마셔야지요.”

“장백산기슭에서 행복하게 잘 사세요.”

“해란강반에서 흰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다정히 사세요.”

그녀들은 저저마다 잔을 굽냈다. 여지껏 흰술을 한잔도 못마신다던 녀성들도 모두 잔을 냈단다.

 
저녁식사가 끝난후 우리는 뻐스에 않아 류주로 돌아가게 되였다.

“혹 두고 온 물건은 없는지 잘 살펴보십시요.”

진사장이 뻐스에 오른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며 주의를 주었다.

내가 제꺽 손을 들었다.

“아차, 제가 큰 물건을 잊었네요.”

“네? 가방을 두고 오셨어요?”

“아니, 술 먹고 취하다보니 오늘 결혼한 신부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뻐스안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그 신부는 하루신부니까 생각도 마세요.”

“그 신부는 날마다 결혼하다보니 신랑이 얼만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예 포기하세요.”

나는 혼자 중얼거리는척 했다.

“이거 금방 결혼했다는 신랑이 신부 이름두 나이두 어데 사는지도 모르니 얼빤한 결혼이긴 하군그래.”

뻐스는 웃음과 즐거움을 담뿍 싣고 남방의 밤길을 줄기차게 달렸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전체 [ 1 ]

Total : 24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4 회중시계로 일어난 풍파 2011-06-15 47 1734
23 작가는 갔으나 덕성은 남아 2011-06-08 45 1792
22 [수필] 류삼저 <고손녀>와 <결혼>하다 2011-05-07 116 2771
21 [수필] 부주장을 <비판>하다 2011-05-03 92 1916
20 [수필] 그때 나는 9원에 울었다 2011-04-30 72 1594
19 [수필] 우정의 내음은 짙다 2011-04-27 85 3267
18 [창작후기]인생이 다시 태여나도록 2011-02-08 190 2374
17 [잡문] 아첨쟁이의 속마음(허룡석) 2011-02-08 78 1464
16 [잡문] 낯가죽은 엷으면 좋느니라 (허룡석) 2011-02-08 77 1523
15 [수필]인생3부곡 (허룡석) 2011-02-08 99 2298
14 [수필]<공사당원>에서 벗어나다 2011-01-26 70 1794
13 [수필] 범의 똥을 사러가다 (허룡석) 2011-01-20 127 2158
12 송아지가죽으로 설을 쇠다 2010-12-28 105 2472
11 《중국말이사 마다매 쥑여줬지》 2010-12-27 135 2310
10 그녀는 시대의 영웅이였다 2010-12-24 131 3845
9 [칼럼] 능력과 덕성이 구비돼야 (허룡석) 2010-11-29 65 1320
8 \"문화가 노래하는\"시기 도래해야 (허룡석) 2010-11-23 56 1208
7 욕심을 버리면 마음 편해진다 (허룡석) 2010-11-05 57 1482
6 조선족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허룡석) 2010-11-01 58 1303
5 화분가꾸기와 민족문화키우기 (허룡석) 2010-10-25 60 2989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