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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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엔 돼지
2017년 09월 21일 10시 45분  조회:782  추천:2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점심엔 돼지
김영분
 
회사 출근하면서 점심이면 자주 단골 맛집을 찾아가군 한다. 간단히 점심을 먹을 수 있고 분위기도 아늑하고 음식도 빨리 나와서 오후 일하는데 지장이 없는 그런 식당을 자주 간다.

식당을 자주 가다보면 메뉴를 일컫는 말들때문에 웃을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루는 전통 칼국수집을 갔다. 손님들과 함께 여럿이 가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켰다. 그런데 예전에 연필로 꽁꽁 박아쓰면서 주문을 받던 종업원이 쉬는지 다른 아주머니가 재빠른 솜씨로 밑반찬을 내오면서 주문을 받는 것이였다. 주문이 끝나고 주방에다 메뉴를 알리느라 목소리 높게 소리치는데 예전의 종업원이랑은 다른 말을 해서 일행이 모두 갸우뚱해졌다.
“왕 하나, 칼 두개, 콩 하나요.”

각자 시킨 음식을 생각하면서 짜맞추기를 해보니 실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사후에 재미가 있는 거 같아서 위챗모멘트에 글을 올렸었다.
“나 오늘 점심 메뉴가 왕 하나 칼 두개 콩 하나인데 맞출 수 있는 사람”
그랬더니 별의별 추측이 다 나왔다. 콩나물무침, 감자볶음은 물론 거부기탕까지 수두룩 쏟아나왔다. 물론 수수께기 답안은 내가 내놓을수밖에.
“왕만두 하나, 칼국수 두개, 콩국수 하나”
즐거운 하하소리가 모멘트를 꽉 채웠다. 메뉴 하나에도 이렇게 큰 즐거움이 있을 줄 몰랐다.

또 한번은 겨울인데 국밥집을 찾아갔다. 그 국밥집 주인은 더 기발하게 물어보았다.
“손님은 돼지죠. 그리고 이분은 순대하고 고등어죠.”
우리는 고스란히 “네”하고 대답을 했다. 주문 받은 분은 바빠서 알았습니다를 칼날같이 내뱉고는 부지런히 주방과 홀사이를 드나들었다. 전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너무 자연스레 행동을 했다. 덕분에 우리도 아주 자연스레 “욕”을 먹은 셈이다.
내가 무슨  돼지야 라는 생각을 잠간 하면서 익살스런 웃음이 또 튀여나왔다.

그후부터는 의례 주문을 할 때 스스로 “나는 돼지요.”하면서 소리치는 센스까지 생겼다.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점심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할 때는 “점심엔 돼지지”하는 제의까지 들어왔다.

그러다가 글 한편을 봤는데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글이였다.
정치인들 몇이서 보신탕집을 갔는데 주문받는 주인이 글쎄 “손님들 다섯명 모두 개지요.”하고 물었더니 도도한 정치인 다섯이 모두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며 흔쾌히 “네.그렇습니다.”라고 답을 하더라는 것이였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너무 웃겨서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내가 주문할 때 처했던 상황이랑 너무 비슷해서였다. 괜스레 보신탕집 가면 정말 주문 조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위인도 정치가도 아니고 풍자당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네”하고 다소곳이 대답하는 정경이 계속 떠올라서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욕같은 말도 잘 들으면 찰떡처럼 들린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일가. 평소에는 욕처럼 들렸을 말들이 아마도 허기질 때 고소한 음식을 줄 사람한테서 들으니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가도 좋게 전환이 된 것일가. 배를 채울 본능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이쁘게 보이는 것일가.

또 아니면 밥 주는 사람이 힘이 있어 고분고분 말을 듣는 식객들을 좌우지하는 것일가. 특정된 환경에서 어떤 말들은 뒤집혀서 들린다는 것도 무척 신기했다. 그 어떤 말들이 욕이라도 말이다.
느닷없이 요즘 시중을 시끄럽게 하는 “갑질’이란 말이 떠오른다. 이 세상은 밥줄 쥔 놈이 힘이 있으니 말이다. 빵과 케익을 준다면야 선의적인 욕이 대수겠는가. 인간세상도 일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어쩌면 그저 한번 웃고 지나칠 일도 아닌상 싶다.

한편 초로인생에 대박 즐거움이 별도로 있겠냐만은 언제나 기쁜 마음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도 “갑질”의 억압에서 이겨나가는 지혜일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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