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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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 높이 날다
2020년 07월 31일 15시 37분  조회:580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작은 새, 높이 날다
김영분
 
 
올해 설휴가를 리용해 아이들과 함께 일본으로 패키지관광을 갔었다. 팀원들은 여러 가족이 모여 거의 스무명 정도 되였는데 우리 가족만 조선족이고 모두 산동 각 지역 한족들이였다. 중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긴긴 일주일을 한족들과 지척에 두고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기는 처음이였다.

가이드가 공항에서 출발 전에 인원체크를 할 때부터 나는 부자연스러운  묘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려행을 앞두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요란한 중국말로 수다를 떠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식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함구하고 있었다.
어려서 학교를 다닐 때 한족들에게 꼬리빵즈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고 위협당하기도 하면서 자라서 그런지 어른이 되여서도 주위 한족들과 성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성격이 소심한 나는 굳이 그룹 내에서 내가 다름을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민족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간단히 요점을 잡아 알려줄 수는 있었으나 먼저 묻기 전에 적극적으로 홍보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그 바램은 종이에 불을 감싼 것 처럼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 비행기는 한국 부산을 경유해서 일본 오사카로 가는 중이였다. 부산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잠간 대기실을 리용했는데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팀원들이 핫도그를 사기 위해 진땀을 빼는 것을 보고 그만 아주 자연스레 통역을 해줬다.

그 바람에 그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팀원 중에서 제일 첫 사람으로 의문의 눈길을 보내왔다.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아냐면서 물어왔다. 긴 설명을 할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 넘기기 힘든 음식을 입에 물은 듯 애매한 상황이 온 것이다.
침묵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미소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의 의미심장하고 친절한 미소 앞에  그녀도 종당에는 애매모호한 웃음으로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뜻하지 않은 의문의 가족을 만난 그녀는 아리송한 퀴즈를 열심히 푸는 진지한 학생처럼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그녀의 궁금증을 싣고 비행기는 다시 오사카로 붕하니 떴다. 팀원들이 강냉이 알 처럼 고루고루 둘러 앉은 비행기에 착석한 그녀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주위 팀원들에게 우리 가족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라는 신분을 허무하게 들키우고 말았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해서 또한번 자신을 로출하는 사건이 생겼다.

오사카 공항에 내려 호텔로 이동하는 관광뻐스 안에서 가이드가 래일 하루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각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다녀오라고 했다. 공항에 내려서 부터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일본말에 포위된  팀원들은 자신만만하게 열변을 토하던 중국공항에서의 들뜬 모습과는 전혀 달리 비 맞은 장닭처럼 걱정스러운 한숨만 푸푸 내쉬였다. 

엄마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리유로 중학생인 우리 애 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다투어 유니버셜 스튜디오 (环球影城) 로 놀러 가자고 입을 모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를 테마로 한 롤로코스터(过山车)를 포함한 탈 것과 뮤지컬 쇼, 영화 속 유명한 케릭터 매장 등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게 할리우드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테마파크이다. 옆자리에 앉았던 신혼부부는 일본어가 조금 통한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 자기네도 덩달아 같이 가겠다고 합류했다.

이튿날, 아침을 일찍 먹고 로비에서 신혼부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뜻밖에도 어떻게 소식을 알게 되였는지 두 가족이 더 늘어났다. 부럽고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오늘 하루는 나만 믿고 다니겠다고 철썩 같이 따라붙었다. 한국말도 자유자재로 하더니 일본말도 할 줄 아냐고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타국에서 나를 의지하고 믿어주는 팬이 생겨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으쓱하기까지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두 다리는 지칠 줄 모르는 듯 열심히 안내를 했다. 길을 묻고 지하철 승차권을 사고 편의점을 리용하는 등 가벼운 일본말을 구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와 합류한 팀원들은 입을 하 벌리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덕분에 일본어 안내를 받아 헤매지 않고 잘 놀 수 있었다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중학교 때 배워둔 일본어를 직장생활을 하면서 쥐꼬리만큼 더 보완을 한 것이 크게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였다. 나한테는 그냥 자기손을 잡는 것처럼 쉬운 일인데 다른 사람한테는 갑작스레 벼랑을 마주한 것만큼 당황하고 두렵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나의 작은 재주가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이틀 동안의 거침없고 친절한 통역으로 팀원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이미 스타가 되였다. 로출을 꺼려했던 초심과 달리 도리여 더 거창하게 드러난 것이다. 거대한 중국에서 살면서 숲 속의 작은 풀처럼 조용히 묻혀 살아왔지만 일본이라는 외국 땅에서 어여쁜 꽃으로 피여나 주위에 향기를 퍼뜨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의 언어우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려행 3일째가 되자 일행은 교토에 있는 청수사(清水寺)를 둘러보게 되였다. 깍아지른 절벽을 따라 주홍색 의포단장을 한 사찰들이 뉘엿뉘엿 포개져 서있는 모습이 멀리 떠난 아이를 굽어보고 있는 말수 적은 아버지를 방불케 했다. 사찰 주위 올리막 길을 따라 선물가게들이 줄느런히 늘어져 려행객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우리 식구는 알락달락한 색감을 머금고 빙그레 웃고 있는 눈섭처럼 펼쳐진 화려한 부채가게 앞에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 때, 우리가 주고 받는 말을 듣고 있던 파뿌리 처럼 흰 머리를 하고 있는 일본  할아버지가 안경을 추스르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한국말을 할 줄 아냐고 눈을 껌뻑이며 연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공손히 부탁을 하나 해야겠다고 했다. 좀전에 가게에서 물건을 산 한국사람이 려권을 놔두고 갔으니 스피커로 한국어 방송을 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삽시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한국어를 하는 일은 쉬웠으나 세계 각지의 려행객들이 붐비는 관광지의 가게 앞에서 안내방송을 해야 한다니 가슴이 세차게 방망이질을 했다. 우리 아이들과 주위 팀원들의 기대와 관심 쏠린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스피커를 들었다.

그리고 티비에 나오는 아나운서처럼 또밖또박 려권에 적혀있는 이름의 주인공을 부채가게에서 찾고 있다고 여러번을 반복해서 방송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학생 네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안타깝게 찾고 있던 려권을 찾았다고 좋아라 퐁당퐁당 뛰였다. 방학을 맞이해 넷이서 배낭려행을 왔는데 하마트면 려권분실로 귀국에 어려움을 겪을 번 했다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머나먼 외국 땅에서 내가 한국학생들을 크게 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중일한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나를 보고 한국학생 넷은 정말 멋지다고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여태 이토록 나를 흠모하는 눈빛은 처음이였다.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 땅에서 나를 기대 이상으로 반겨주고 고마워하는 사람들로 인해 가슴은 긍지감으로 흠씬 물들었다.
평범한 일개의 조선족 아주머니가 며칠 동안 해외려행에서 받은 찬사와 부러움은 천년 묵은 나무의 둘레만큼이나 손이 닿지 않을 정도였다.

오래 동안 시큰둥하게 항구에서 미적거리던 보잘것 없던 배가  바다를 가로 지르는  무적함대가 된 느낌이였다.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면서 항상 약자라고 생각하였다. 마음 열고 한족들에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혼자 선을 긋고 보이지 않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줄세우고 편 가르기에 급급했다.

근년에 한국으로 밀물처럼 흘러들어간 조선족들과 한국인들의 첨예한 모순이 빈번히 이슈로 부상하면서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무언의 거리감을 피부로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가시들을 내세웠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름 원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해외려행에서 받았던 감사한 눈빛들은 어느새 나의 가시들을 모두 녹여버렸다. 비록 소수에 속하는 약자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한 우세를 움켜쥐고 있었다. 조선족이였기에 가능했던 쉬운 일들이 다른 사람에겐 그토록 넘기 힘든 산이였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작은 재주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큰 재부였고 또 상상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였다니 참말로 아이러니 하였다.

작은 새지만 높이 날았다.

작은 풀이였지만 나름 향기가 그윽하게 주위를 메웠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멋진 엄마로 자리매김하게에 손색이 없었다.
큰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을 활용하고 열심히 자신의 힘을 키워야 대우를 받는다.
사막에서 피는 꽃은 더워도 말이 없다.

그래도 차분히 모래밑으로 부지런히 뿌리를 뻗어가며 꽃을 피워 사막을 지킨다.
종당에는 지구를 지키는 일에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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