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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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다모노야
2021년 08월 24일 16시 44분  조회:278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쿠다모노야
김영분

한 여름이라 걷기 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폭팔적으로 늘어났다. 그 출렁이는 인파에 발폭을 맞춰 아파트를 한바퀴 돌고 나면 사흘이 멀다하게 개장하는 크고 작은 과일가게가 눈에 띈다. 아파트내의 1층 주차공간에 과일가게,야채가게가 밤하늘에 졸다가 깨여나는 별처럼 새록새록 생겨난다.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중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울 때 일이 생각났다. 쿠다모노야(果物屋-과일집)를 배우면서 갸우뚱한 적이 있다. 과일과 야채를 어지럽고 시끄러운 시장에서만 팔고 있던 시절이라 일본에서 정결한 가게안에 상전 모시 듯 과일구럭에 골고루 보기 좋게 배렬해 놓은 삽화들을 보면서 의혹을 금치 못했다.

배불리기가 무엇보다 우선이였던 세월에 땅에서 굴리면서 팔아도 비싸서 사먹지 못하는 과일을 왜 저리 가게안에서 정성스레 팔고 있을가 하는 생각을 자주했다. 일본의 정보를 전혀 접할 수 없었기에 교과서의 삽화로만 리해해야 했다. 과일가게를 갸우뚱하게 배우고나니 뒤이어 야채가게까지 등장을 하게 되여서 그야말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슨 생각으로 야채까지 저렇게 팔고 있을가 하며 어린 나이에 또 한번 놀랐었다.

실제로 갓 청도로 와서 출근을 하고 있을 때 한번은 한국상사를 모시고 시장을 갔는데 사과 매대를 지나다가 그 상사가 깜짝 놀라는 것이였다. 조용히 하는 말이 한국에서는 저런 어지러운 사과는 돼지를 먹인단다. 어린 나이에 자격지심이 생겨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여 토라진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사과를 볼 수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정말 살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싫은 매는 맞아도 싫은 음식은 못먹는다고 입맛도 많이 향상되였다.

그런데 요즘 곳곳의 아파트에는 정성들여 장식한 과일가게나 야채가게가 몇 집 건너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백성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고 상가환경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는 말이다. 거기에다 과일이나 야채를 사면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백성들의 보상심리가 홍수가 난 저수지 수위처럼 높아진 것 같다.

이제야 그때 일본어를 배울 때 쿠다모노야를 제대로 리해할 거 같았다. 저녁운동이 끝나고 땀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불이 밝게 켜진 과일가게 앞을 지나치면서  꼭 과일을 조금씩 곁들여 사곤 했다. 그러니 아파트 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상업로에 줄느런히 자리잡은 과일가게 사장들이 서로 손님을 유치하느라 길거리에 나서서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곤 한다. 심지어 앵두나 살구를 하나씩 건네주면서 한번 먹어 보라고 권하기 까지 한다.

가게안에 들어서면 눈부실 정도로 불빛이 환하다. 에어콘 까지 빵빵하게 켜서 시원하기 그지없다. 뭐니뭐니 해도 가게 사장이 털털하게 웃으면서 건네주는 봉지를 받고 나면 탐스러운 과일들을 하나하나씩 구경하기 시작한다. 빨갛고 노오란 체리로 부터 살이 잘 오늘 망고에 파랗게 꽃 처럼 피여난 파인애플, 털이 보시시한 동글동글한 홍모단, 여름에 빠질 수 없는 단물이 팍팍 들은 수박 등 눈앞에 쉴새없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침샘을 자극해 새큼한 군침이  도는 것 같았다.

바나나와 사과는 주눅이 들 정도로 소박해졌고 그 대신 비싼 과일들이 가게를 메우고 있다. 서너가지만 골라도 백원이 훌쩍 넘는 과일 값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과일은 명절 때나 맛을 볼수 있는 희귀한 음식이였다.
허나 지금은 눈을 가득 메우는 수십가지의 풍부하고 맛나는 과일을 버젓이 정결한 가게안에서 비싸게 팔고 있다. 개혁개방후 일취월장하는 급속도로 성장한 중국경제를 과일 가게가 대변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만 개혁개방을 겪는 것이 아니라 과일들은 먹히고 씹히면서 더 치렬하게 생존을 위해 가게안으로 몰려 든다는 생각을 해봤다. 광주리에 담겨 길가에서 팔리던 과일들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시장을 넘어 이젠 버젓이 고급주택 아파트 내에 입주했다. 반짝이는 조명을 한 몸에 받으며 몸 값을 자랑하고 있다.무한한 경쟁시대에 자신을 높이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은 과일들의 달고 시큼한 노력들이 너무 대견스럽다.

30년전, 일본어시간에 쿠다모노야를 배우면서 갸우뚱했던 시절을 온 몸으로 실감하는 오늘,과일들도 자기 입지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과일들도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가치를 실현하기에 올인하는데 하물며 팔다리 성성한 우리가 발벗고 나서지 않을 리유가 또 머가 있을가.
   
나날이 발전하는 과일가게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동지애를 느껴본다.

  2021.1기 도라지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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