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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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의 재구성
2021년 08월 24일 16시 47분  조회:397  추천:0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회식의 재구성
김영분
 
년말이 되니 회사업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고양이 손도 빌려 써야 할 판국이였다. 출고가 거의다 비슷한 날자에 맞추어져서 설 휴무전에 끝내려면 어느 건도 느슨히 손놓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오더 한 건이 시간이 지체돼 출고에 빨간등이 켜지자 바이어는 사장에게로 사장은 부장에게로 문책이 이어졌다. 그러자 불붙은 해변가의 불꽃놀이처럼 피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자재과에서는 생산을 왜 그따위로 했느냐며 생산부에 소리 지르고 생산부에서는 자재가 늦게 도착해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맞짱을 뜬다. 세관업무를 보는 직원은 콘테이너 예약을 할 터이니 생산완료 시간을 알려 달라고 아우성이고 이제 더 이상 지체하면 콘테이너를 배에 태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수없이 최후통첩이 아닌 통첩을 반복한다. 그러면 생산부에서는 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생산 스케쥴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한가하게 시간 타령이나 하고 있다고 그거 요령을 피워서 시간을 좀 벌어줄 수 없느냐고 투정이다. 현실이 그렇게 계산으로 됄 일이냐며 목청을 높여 따진다.

일이 바쁘면 마음이 급하고 마음이 급하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일이 매끄럽게 진행이 잘 될 때는 가족처럼 끈끈한 정을 보이다가도 삐꺼덕거리는 기어처럼 일이 비틀어 질 때는 직원들 사이에 옴니암니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는 시합이라도 벌이는 듯 목소리가 몇 옥타브를 뛰여 넘어 카랑카랑해진다.

어느 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마다 보이는 초기반응이 확연히 다르다. 그러면 당연히 그 사건을 대하는 말투도 천지차이가 난다.
업무확인차로 자재가 언제 입고하느냐고 묻는 말에도 자재가 늦게 도착해 생산에 책임을 묻는 말인가 하여 발끈하기도 한다.사람마다 자기 앞가림을 하기에 급급해서 책임지려는 사람보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

 말하는 투가 모든 갈등의 근원이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중요한 판국에 서로 책임전가하기에 급급하다.같은 말도 에둘러서 완만히 표현하면 문제거리가 되지도 않고 문제 해결이 더 빠를 터인데 서로가 자기 립장만 강하게 어필하다보니 받아들이는 쪽에서 약이 올라 또 반격을 가한다. 이런 상황이 다람쥐가 채바퀴 돌 듯 꾾임없이 반복된다.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가려내기가 칼로 물 베기처럼 어렵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회사일은 균형이 제일 중요한데 리더가 누구의 잘잘못을 가려주다가 훈계를 하기라도 하면 큰 코를 다친다. 이전 같으면 리더도 강한 말투나 제스츄어로 직원들을 기선제압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요즘은 개미도 개성이 있는 시대라 그 누구도 간섭이나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장의 위엄이 늦가을 나무가지에 매달린 나무잎처럼 위태롭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직원이 무단사퇴를 하고 인수인계가 어려워지기도 하다. 그래서 관리자도 그 관리요령을 잘 터득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이런 골치거리 문제들을 떠안고 년말 회식은 으르렁거리는 직원들의 기분과 상관없이 공식처럼 치러졌다. 년말 회식은 해마다 하는 것으로 일년 총결을 지을 겸 특별히 년말에 일을 많이 하므로 사장으로서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하는 자리이다. 이전에는 회식을 하면서 고리타분한 설교를 곁들이고 요즘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무마하고 싶어했다. 특히 사이가 살벌해진 직원들이 술 한잔 나누면서 누군가의 간섭이나 훈계가 없이 스스로 알아서 화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회식보다는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회식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직원사이의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회식은 간단한 인사말로 시작하고 맛나는 음식과 재미있는 게임, 정성어린 선물들로 순서가 이어졌다. 술이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간 탓인지 모두의 경계가 조금씩 풀리고 한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레 흥겨운 웃음꽃을 피우는 절묘한 타이밍이 왔다.
급기야 미션을 하나 던졌다. 재미있는 문답을 진행하겠는데 답을 한 사람은 모두 특별한 선물이 있다고 했다. 환성소리가 들려오고 기대를 머금은 눈길이 모아졌다.

“지금 행운의 신이 내려 갑자기 하와이 여행쿠폰이 하나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행복의 물결이 얼굴에 흔들거렸고 너도 나도 앞다투어 답을 했다.
“나는 당장 날아가겠습니다. ”
“나는 여권을 찾아내서 비자를 만들고 날씨를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
“나는 그 곳의 민속상황을 알아보고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가겠습니다. 해변이 아름답다는데 수영복도 챙겨가겠습니다.”
“나는 외국에 나가면 중국사람들의 매너향상을 위해 행실을 바로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기회가 생기면 하와이가 아니라 소주로 가겠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항주의 서호를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매사람마다 답이 달랐다. 열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묵묵히 들으면서 재미있으면 입을 가리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을 삐죽이 내밀고 그럴 수가 하는 표정도 있었다.
천인천면이라고 한가지 물음에 반응은 천차만별이였다. 술기운이 다분했지만 미션이 끝나자 뜻밖의 선물을 받아쥐고 싱글벙글하던 사람들이 간단한 모두발언을 들으면서 얼굴이 숙연해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마다 사건에 대한 초기 반응과 생각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줬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모두 참여를 한 사람들이다. 참여가 없으면 얻는 것도 적을 수 있다. 무작정 떠나겠다는 사람은 행동파이다. 이런 사람은 집행력이 뛰여나지만 뒤수습이 약하다. 날씨나 민속정보를 알아보고 떠나겠다는 사람은 세심하여 세부적인 일을 잘 처리하지만 신속한 결단력이 약하다. 국민의 마인드를 위해 행실을 바로 하겠다는 사람은 책임감이 뛰어나서 리더의 품격을 지녔지만 경직되여 있을 수 있다. 하와이도 싫고 오로지 항주만 고집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신과 느낌을 제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성격이 다르고 사건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대화하기 전 삼초 만 숨 고르고 얘기하라고 수백번을 회의 때 얘기를 했어도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듣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깊은 도리를 가르치는데 그 사람이 느끼게 해주는 것보다 더 큰 공부는 없었다. 지루한 설명도 필요 없었다.

이미 많은 직원들은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기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에 관해서 모두 최선을 다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비상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재가 늦었다느니 생산에서 차질을 빚었다느니 서로 책임묻기를 하고 훈계를 하면 담당자들은 자기를 합리화하기에 급급하고 문제 해결은 뒤전으로 하기 쉽다.
그렇다고 리더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멘트를 날리면 자기관리에 약한 직원들은 더이상 반성하려 하지 않고 물에 물 탄 듯 미지근하게 자기 자리만 지키려 한다.

엄마 배속에서부터 성격이 형성되고 말투가 만들어져 맡은 바 일이 대나무가 갈라지 듯 술술 진행이 될 때는 서로 다정다감한 동료이다. 하지만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던 자신이 튀여나와 주위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그래서 회사내에서 터지는 비상상황은 직원들 매 사람의 참모습을 보아내는 요술거울이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한가지 사건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 아닌 회식 현장에서 리얼하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시범을 보여줬다.
회식은 이로써 끝났다. 하지만 그 울림은 오래 가길 바란다. 회식의 약발이 오래오래 남아서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올해는 적어졌으면 좋겠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리성적으로 절제된 의사표현들로 현실을 써내려가면 좋겠다.

송화강 2021.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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