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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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부탁이야
2017년 10월 18일 10시 16분  조회:997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제발 부탁이야
김영분
 
시간은 거슬러 10년전으로 올라간다. 그때 나는 여섯살과 세살짜리 아들 딸을 키우고 있는 새내기 엄마였다. 한창 육아에 갇혀 답답하기 그지없던 그 시기였다.

육아, 말만 들어도 얼마나 성스럽고 행복한 글귀인가. 하지만 정작 애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한결같이 힘들었다고 손사래를 칠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애들이 잡지에 박혀있는 사진에서처럼 귀엽기만 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부채살처럼 쫙 펴지는 따스한 해볕이 스며드는 아늑한  방에 애들은 얼굴이 빠알간 사과처럼 상기되여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다. 간혹 가다가 꿈에서 사탕을 줏었는지 입귀가 실룩실룩거리며 호르륵거리며 웃기도 한다. 너무 예쁘다. 애들이 자고 있을때 쳐다보고 있는 이런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이고 깨여나기 바쁘게 자지러지게 울어재끼지 않는가 하면 슬금슬금 기여다니면서 온 바닥을 휘젓고 다니기도 한다. 간혹 벽 모서리에 이마를 맞히기도 하고 뒤똑뒤똑 걸어다니다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온수기에 손이 데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하면서 도깨비들이 조금씩 커왔다. 엄마는 자면서까지 애들을 간수하는 꿈을 꾸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갑갑한 육아가 지속되는 어느 가을의 토요일날에  간만에 애 아빠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은적이 있었다. 저녁에 애들을 데리고 해운회사 사장님네 가족이랑 식사를 하자고 한다. 아이구 좋아라. 오랜만에 집에서 밖으로 나가서 외식하는지라 나는 너무 좋아서  마음이 흥분되였다.      
그런데 즐거운 외식 데이트가 나의 수난시대가 될 줄이야.
나는 오후부터 애들을 이쁘게 단장시키고 인사 잘하라고 연신 교육시켰다. 해운회사 사장님은 한국 사람인데 부인님이 세살난 딸아이를 데리고 간만에 중국에 서방님 보러 오셨던것이다. 그래서 애 아빠가 그 사장님네 가족을 초대하게 되였다.

그집 딸애 보영이는 예전에 한번 본 기억이 있는데 왜소한 몸매에 얌전한 공주 스타일이다. 인사도 무척 잘하고 아무 사람이나 보면 헤쭉헤쭉 잘도 웃어준다. 또릿또릿한 한국 발음으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할라치면 간이 다 녹아날 정도다. 근데 밥 먹을러 가는 아줌마가 괜스레 남집 애한테 신경쓰이는건 무슨 영문이지?
 
어기영차 해서 두집 식구 만나서 식당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어른들끼리 간단한 인사가 오가자 자연히 애들더러 인사하라고 두집 엄마들 다 부산하다.

보영이가 선수를 썼다. 허리를 약간 세련되게 구부리며 “안녕하세요.”하고 챙챙한 목소리로 실눈까지 예쁘게 웃으면서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한다. 근데 우리 애들 둘은 머람. 두눈만 휘둥그래 해가지고 잘하던 인사도 안하고 있다. 세살 딸애는 인사하라고 재촉하자 허리만 대수 구부리고 곧장 내뒤에 머리를 숨긴다. 허리 좀 이쁘게 구부리면 어디 덫이라도 나는것처럼 말이다. 여섯살 아들은 무뚝뚝하게 “안녕하세요.”를 재빨리 해치우고 말아버린다. 성의가 없이. 이것들이 오후내내 교육은 헛시켰어. 정말.

한국 애들 인사성은 정말 따라배워야 한다. 말씨도 얼마나 고운지 산들산들 봄바람마냥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였다.
보영이는 얌전히 앉아서 호박죽을 홀짝홀짝 먹고 있는데 얌전하다말고 우리 애들은 이것저것 숟가락 질이다. 인사하라 할때는 조용하더니 이것들이 먹기 시작하니 정신이 없이 설쳐제낀다. 숟가락을 안 떨어뜨리면 매운것을 집고 맵다고 투정이고 물을 먹여주면 컵을 넘어뜨리고 떡을 집어주니 젓가락 휘리릭 집어던지고 손으로 막 집어먹고 그야말로 관청에 들어온 촌닭처럼 천방지축 마음 가는대로 질러제낀다.
 
하긴 집에서도 떡을 손으로 집어 먹을때가 많았다. 손님 가족들이랑 외식할줄 알았으면 집에서도 교육을 잘 시켰어야 하는건데 하면서 슬슬 후회할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애들 습관이 곧장 엄마 생활습관으로 나타나니까. 정말 쑥스럽다.
평소에 얌전히 먹으라고 닥달을 할걸. 많이먹으라고 주구장창 잔소리는 왜 했을가. 많이 먹으라고만 배워줬지 얌전히 먹으라고 닥달 안한것이 잘못이지. 후회막급이다.

딸애는 이쁜 양말 신겨서 왔더니 거치장스럽다고 죽 잡아당긴다. 벗는건 괜찮은데 휘리릭 집어 던진것이다. 던진것도 괜찮은데 어쩜 밥상우에 상추광주리에 던져졌다. 아이구머니야. 폭탄이 터졌어도 내가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것이다. 노루가 제 방귀에 놀란다고 이젠 나는 놀란  노루마냥 애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칠가 노심초사하였다.

상추를 바꿔 왔지만 고기 싸먹는 내내 맘에 걸린다. 보영이 엄마가 뭐라고 할가. 아참. 쑥스러워 쥐구멍에라도 찾아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화가 났지만 손님앞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웃음을 발라가면서 딸애를 진정시킬려고  대화를 시도했다. 속으로 이제 집에 가서 보자 하고 별렀다. 밥을 먹고 있는데  맛이 영 아니다. 이넘들 맛있는거 사준다니까 좋아할때는 언제고 엄마 체면 깍을때는 의논 한마디 안하고 거침없이 해제낀다.
  
한참을 밥을 먹네 마네 하는데 우리 애들 둘이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런데 아들애가 딸애를 밀쳐놓더니 거창하게 딸애를 보고 한마디 하신다.
“야. 이 멀싸한기 .......니 까불래.”
딸애는 손해봤다고 에에 하고 울고 불고 난리다.
아~ 정말 못말려.
평소에 내가 화가 날때면 머절싸하다고 욕을 몇번 했다고 제대로 배워서 손님앞에서 망신을 주는거였다. 얼굴이 달아올라 안절부절 못했다. 나나 애아빠나 모두.

애 아빠도 영 못마땅한 눈치다. 씩씩거리면서 나한테 눈을 올리세우고 내리 세우면서 눈치를 주고있었다. 나인들 어떻게 하냐고요. 나도 애가 타 죽겠다고요. 
간만에 받은 데이트 신청 이렇게 치르고 나도 애아빠도 기진맥진하여 이젠 다시는 애들하고 밥 먹을러 안가겠다고 집 오는 길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엄마 체면 좀 봐주면 안되겠니. 애들아. 엄마도 우아하게 손님이랑 밥 좀 먹어보자. 제발 부탁이야.

속으로는 그렇게 두덜대면서도 어쩐지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애들이 건강하고 활발하게 자라는거 같아 한편으로는 안도의 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당당하게 커갈것도 제발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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