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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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피여났다
2017년 10월 25일 10시 17분  조회:931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꽃으로 피여났다
김영분
 
평일에 채바퀴 돌듯 바삐 출근을 하고 일요일이 되면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산행팀을 따라서 청도해변과 맞닿은 “천하제일산”이라는 로산에 등산을 가곤 한다.

로산은 아름다운 경치가 변화무쌍한 구름처럼 서있는 위치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돌바위가 줄서있는 석림이 되기도 하고 푸른 숲에 잠겨있는 원시림이 되기도 하며 비취색 바다가 두 눈이 질리도록 파랗게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섬이 되기도 하고 뻐꾹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오는 새들의 락원이기도 하다. 로산의 푸근하면서도 웅장한 매력에 사로잡혀 지칠줄 모르고 갈때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새로운 길과 풍경을 찾으려고 도전하는 팀원들이 똘똘 뭉쳤다.

처음으로 어렵사리 톺아 올라갔던 정상에는 리본을 달아매놓고 여기 왔었노라고 무언의 지역표시를 해놓곤 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한뒤 경위도를 밝히면서 위치확인을 하는 마음을 천번만번 이해할것 같았다.

로산 곳곳을 다니면서 로산정상을 한번 가리라는 목표가 생겼다. 로산정상은 거봉이라고도 하는데 해발높이가 1130메터에 달하고 바다해안선과 불과 5키로 떨어져있으며 중국에서 해안선을 끼고 솟은 제일 높은 산봉우리이다.
로산정상은 높지만 작은 산등성이인데 양면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있고
로산의 크고 작은 버섯처럼 퍼져있는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절정의 곳이다.  

주위에 등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로산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취미로 하는 등산은 일정을 반나절로 잡지만 로산정상을 가려면 하루를 잡아야 하고 체력도 많이 소모해야 하기에 단단히 준비를 해서 가야했다.

로산정상에 가기로 결심한 뒤로부터 나름대로 번마다 산행의 거리를 좀씩 늘려 연습을 해가면서 겨우내내 등산을 견지했기에 봄이 되자 무더위가 오기전에 꼭 로산정상을 도전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회원들중 몇명은 로산정상을 갔었지만 그 외 열몇명의 회원들은  지레 겁을 먹고 시도를 안해봤기에 걱정이 태산같았다. 특히 여성멤버들이 뒤쳐질가봐 많이 걱정하였다.
하지만 신선놀음에 도끼 썪는줄 모른다고 어렵고 힘든 길일수록 도전의 짜릿한 맛을 느꼈기에 우리는 한사람도 물러서지 않았다.

산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다.
오직 포기하지 않고 톺아오르는 사람만 있을뿐이다.
드뎌 목 빼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3월말의 청도는 아직도 쌀쌀한 꽃샘추위가 맴돈다. 봄바람은 왔다가도 수줍게 밀려나고 비구름만 몰고 왔다. 아침 여덟시에 로산자락의 알룽산입구에 도착했다. 긴 산행인지라 먹을거리와 물 그리고 여벌의 옷 등등 준비물때문에 사람들의 배낭은 여느때보다 부풀어있었다. 스무명의 로산등반가들은 알룽산 입구를 통해 외딴 비탈길을 따라 호호탕탕하게 로산정상 탐험산행을 시작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꽃샘추위에 몰려왔던 비구름들이 부서졌는지 보슬비가 솔솔 내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큰 비가 내리지는 않겠는지 모두가 걱정이였다. 그러나 모두 방수쟈켓에 묻은 비물을 털어내면서 우리가 로산정상에 도착하게끔 산이 허락해주기를 바란다며 갈수 있는데까지 가는것도 한개 추억이 아니냐면서 서로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등산이란 참으로 의미가 다양하다. 어려움이 닥치면 편안하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일자체를 받아들이는 법도 터득할수 있으니 말이다.
첫 발자국이 어렵지 떼기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왜냐하면 지정한 산길이 아닌 임의로 개척한 가시길로 가기때문에 인솔자가 없으면 혼자서는 산중턱에서 산을 올바로 내려갈수 있다고 장담을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따라나섰으면 도망칠수도 없이 끝까지 가야하는 우리 팀의 철칙이 있다.
첫시작은 로산정상을 정복해야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다리에 힘이 넘쳐서 씽씽 톺아올랐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모두 땀벌창이 되고 말았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튀여나올것 같앗고 숨은 거칠어져 씩씩거렸으며  배낭은 천근만근으로 몸을 짓누르는것 같았다. 모두 비 맞은 장닭처럼 후줄근해졌다. 보슬비는 언제인지 자취를 감추고 싸락눈이 되여 휘날렸다.
침엽수가 푹씬하게 깔려있는 산길은 금새 흩날리는 흰 눈 때문에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처럼 희끗희끗해졌다.

청도는 눈이 잘 내리지 않아 산에서 눈을 보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였다. 우리는 눈이 내리는 산중턱에서 상대방의 모자를 뚫고 몰몰 새여나오는 아지랑이같은 김을 보면서 웃음을 금치 못했다. 추위도 찬 바람도 힘겹지만 도전을 향한 그 굳센 마음들 앞에서는 무색해졌다.

평소 산행처럼 단란히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시간을 가질수가 없었다. 3월의 로산은 해가 짧아 땅거미마 빨리 찾아올수 있어 네시가 되면 날이 어두워지기때문에 적어도 세시면 하산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로산자락 알룽산 입구에서 로산정상까지는 여러개 산등성이를 넘어야 하기에 걷는 거리만 해도 26키로에 달한다. 눈과 비가 엇갈려 오고 있고 해님이 비구름과 숨박꼭질을 하고 있는 날씨 상황을 봐서 인솔자는 안전을 위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우리는 긴 줄을 서서 그 자리에 선 채로 각자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요기를 했다.

각자 자리에 서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그 장면이 오래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긴박하고 비장하며 서로 격려하고 다독여주는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였다. 우리는 그 시간 만큼은 특수부대요원이 되여 임무수행을 위해서  기꺼이 눈이 내리는 산림속에서 서서 김밤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오후 한시쯤 우리는 거의 산 정상에 다달았다. 하지만 아직도 마지막 산등성이를 넘어야 한다. 몸은 솜처럼 나른해졌고 체력은 바닥이 났다. 발은 아파서 감각을 잃은것 같았고 두 어깨는 배낭에 눌리워 천근만근이 된듯 했다.  고요한 산속에는 우리 스무명의 터벅턱벅 발걸음 소리와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간간히 들릴뿐이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갑자기 푸실푸실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산밑에서는 보기 드문 폭설이였다. 산길은 삽시에 두툼한 눈으로 휩싸였고 산 전체가 은백색치마를 입은듯 하얗게 변했다. 나무가지며 바위며 산비탈이며 모두가 눈에 뒤덮혔다. 소나무가지는 묵직한 눈꽃에 눌리워 힘겹게 머리가 숙여졌고 사락사락 쌓인 눈은 밟아도 부서지지 않고 대굴대굴 굴러가는듯 하였다. 발밑에는 뽀드득 소리가 났고 눈이 두터워서 톺아오르기가 어려워져서 발에 힘을 한껏 주어야 헀다.

끝없이 펼쳐지는 흰눈의 산림속에 우리의 알록달록한 등산복은 떨기떨기의 채송화마냥 하얀 세상을 이쁘게 수놓았다. 즐거운 셔터소리에 눈꽃들은 더 환하게 피여났다.
세시경에 우리는 끝내 힘겨운 다리를 끌고 로산정상에 우뚝 섰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휘우붐하던 구름떼는 눈꽃을 무더기로 털어내더니 말끔이 가셔졌다. 해살이 부채살처럼 펴지자 흰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로산정상은 뾰족한 산등성이라 전망대주위를 야트막하게 울바자를 쳐놓은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가까운 산봉우리에는 작은 정자하나가 지어져 있었다.긴 세월동안 이 로산정상을 정복한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으리라. 눈바람 휘날리는 산 꼭대기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흰 눈의 세상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우리는 동화세계에 빠진 아이들마냥 기뻐했다. 아마도 우리가 힘겹게 로산정상을 도전한다고 3월에 큰 눈을 내려주신것 같다. 그날 봄비를 지나 봄눈을 흠뻑 맞았던 우리는 힘겨웠던 그 순간은 다 잊고 모든것을 다 가진것 같은 희열에 휩싸였다.

깊은 바위계곡도 우리 발밑에서 깊고도 기다랗게 눈단장을 하고 우리에게 깍듯이 경례를 하는것 같았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퍼져가는 산등성이들은 하얀 면사포를 곱게 쓰고 한껏 이쁨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무가지마다 묵직하게 매달린 눈꽃송이들은 뒤늦게 나타난 해님의 어루만짐에 반짝반짝 빛이 나서 눈이 부셨다.

우리는 그날 다섯개의 산등성이를 오르내렸고 4만보를 걸음으로서 26키로를 완주하였다.
어려운 일은 있지만 해내지 못할 일은 없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머리가 시키는 한 우리의 다리는 걸을수 있었다.
산은 우리에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수 있다는 도리를 알려주었다.

그날 우리는 로산정상에 우뚝 섰다.
우리는 눈내리는 로산위에서 울긋불긋한 꽃으로 피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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