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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세상을 그리며 ―드라마 《인간세상》을 중심으로
2023년 12월 05일 14시 20분  조회:908  추천:0  작성자: 예술세계
인간다운 세상을 그리며
―드라마 《인간세상》을 중심으로
□ 마춘옥
 
 
리로(李路) 감독의 드라마 《인간세상(人世间)》(2022년)은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는 량효성(梁晓声)의 원작소설 《인간세상》(2017년)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원작소설은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모순문학상을 수여 받은 작품이다. 작품은 중국 동북의 한 평범한 근로자인 주씨네 삼대 가족사를 통해 지난 50년간 중국사회의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러한 긴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같은 세월을 걸어온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놀랍게도 아이치이(爱奇艺)의 데터에 따르면 관객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의 젊은 세대라고 한다. 본 문장은 드라마 《인간세상》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관객, 특히 젊은 관객들의 눈길까지 끌 수 있는 매력코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하여 분석하려고 한다.
 
 
1. 서사위기 시대의 ‘다른 이야기’
독일의 문예리론 평론가 왈터 벤야민은 미래에 인간은 서사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 그는 20세기의 새로운 서사형식인 ‘뉴스(news)’의 탄생은 인간력사에 오래 영향을 준 ‘이야기(story)’의 종말을 예고한다고 보았다. 부동한 두 서사형식의 주요한 차이는 뉴스는 명확하고 단일한 메쎄지를 전달하는 반면 이야기는 다중적인 의미를 전달한다고 보았다. 이야기형식은 인간 력사에서 집단이라는 구조가 형성되는 데 효과적이고 오래된 방식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뉴스라는 새로운 방식의 출현과 함께 이야기의 기능이 약화되고 뉴스의 전달로 이야기가 대치된다고 보면서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벤야민의 추측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긴 소설, 긴 드라마, 긴 영화보다도 짧은 영상, 짧은 이야기, 짧은 소식 혹은 정보에 길들여졌다. 간단히 말하면, 오늘날 우리는 이미 뉴스화된 짧은 메쎄지만 읽는 시대에 들어섰으며 더 이상 긴 이야기에 시간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서사위기 시대에 《인간세상》의 성공은 분명 어떠한 매력코드가 작동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난산(暖山)은 “이 드라마에는 중국식 현대화 문화코드를 여는 열쇠가 담겨져있다.”(인민넷)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이는 거시적인 면에서 중국력사의 가장 큰 변화인 개혁개방시기를 한 가족의 인생사에 녹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보는 평가이다. 본문의 관점은 난산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젊은 관객들의 립장에서 이 드라마에 끌린 것은 거대서사가 아닐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세상》의 매력코드는 오히려 작은 개인의 서사,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하나 또 하나의 작은 인물들의 모습이 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본다. 드라마에는 거대서사에서 늘 그려져왔던 신과 같은 존재의 영웅, 희생만 하는 좋은 사람 혹은 악마 같은 나쁜 인간들은 보기 힘들다. 대부분 인물들은 잘못도 저지르고 감정적인 부분도 있는 우리 주변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즉 거대서사에 익숙한 로년층에 비하여 젊은 세대는 력사지식을 전파하거나 도덕교육을 위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 보다도 관객 자신이 뭔가를 터득하는 그런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 젊은 관객들은 더 이상 이쁘고 선량하기만 한 신데렐라이야기나 신격화된 영웅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기존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다. 이 드라마는 분명 여기서 말하는 ‘다른 이야기’에 속한다.
 
2.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는 작은 인물들의 이야기
원작 작가 량효성은 한 인터뷰에서 “현시대의 중국사람들은 성공을 권리를 얻거나 재부를 가지는 두가지 경우에 한한다.”고 하면서 “인간은 꼭 이런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현시대 사람들의 이러한 ‘성공관’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상식적인 인생관이다. 리성적으로 생각하면 자본이 거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시대에 확실한 돈 혹은 돈을 가져오는 권리를 내놓고 추상적인 다른 무엇을 믿고 추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론리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한가지 ‘성공’을 향하여 열광적으로 달리며 남보다 조금이라도 뒤떨어질가 봐 불안이라는 마음의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드라마는 가끔 다른 사람보다 뒤져도, 또한 꼭 성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위의 메쎄지를 던진다. 드라마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은 부단히 변화한다. 례하면 주인공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지식인은 농민, 로동자보다 낮은 계급이며 많은 경우에 심사를 받고 타도를 받는 대상이다. 하지만 당시에 농민계급에 속한 주씨네 큰아들 주병의(周秉义)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여난 학동매(郝冬梅)와 연인관계를 맺으며 또한 동매와의 인연을 저버리지 않기 위하여 승진할 기회마저 포기한다. 이러한 병의의 결정에 리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동매가 대체 어떤 녀자인지를 보려고 산을 넘어 찾아오기도 한다. 이후 시대가 변하고 타도 받던 동매의 부모님들이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인물로 계급적 상승을 한다. 상황이 뒤집어진 셈이다. 병의와 동매의 가정배경 차이는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야기한다. 동매의 부모는 자꾸 일을 부탁하는 병의의 가족과 거리를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매와 병의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여주면서 그 차이를 미봉해간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해가며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인간의 삶은 항상 필연과 우연이 겹쳐지며 이어진다. 하기에 인간의 삶은 계획해온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주씨네 작은 아들 주병곤(周秉昆)과 정연(郑娟)의 삶은 많은 우연으로 엇갈려있다. 사랑은 우연과 필연으로 엮여진 운명이기도 하다. 병곤이 정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병곤의 사형 당한 친구 도자강(涂自强)의 안해이며 임신한 상태였다. 그들의 만남은 수상한 두 남자가 병곤을 찾아와서 정연에게 매달 돈을 가져가는 일을 위탁하면서 시작된다. 자주 만나게 되면서 병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좋아하는 교춘연(乔春燕)의 추구에는 무감각하게 대하지만 이미 임신했고 사형 당한 살인범의 안해로 알려진 정연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곤은 정연의 아이는 돈을 부탁한 두 남자중 로사빈(骆士宾)이라는 남자의 아이이고 이는 정연이 그에게 강간을 당하여 가진 아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후 병곤은 매부가 쓴 시가 문제 되면서 련루되여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재난을 겪게 된다. 그동안 정연은 병환에 든 병곤의 어머니 그리고 어린 조카까지 보살펴준다. 감옥에서 나온 후 그들의 사랑은 끝내 결실을 보게 되고 병곤은 정연의 아이를 친아들처럼 대한다. 세월이 지나 아들은 청화대학에 가게 되고 생물적인 ‘아버지’ 로사빈이 찾아온다. 그 다음해, 아들은 추천으로 미국 류학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사망한다. 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병곤과 로사빈은 다툼이 생긴다. 극도로 격동된 두 사람은 서로 밀치면서 다투다가 우연히 로사빈이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된다. 병곤은 이 사건 때문에 살인죄로 감옥에 가며 아들을 잃은 고통과 함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이 순간 관객들은 아마도 내가 만약 병곤이라면 어떻게 이 현실을 견뎌내겠는지 하는 상상을 잠시나마 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주인공은 좋은 결말을 얻기 바란다. 특히 드라마를 보면서는 더 그러하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주인공의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삶은 이 드라마처럼 좋은 사람에게 좋은 결과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좋은’은 형용사로서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감정이다. 드라마의 결말에 정연의 손을 잡고 걷는, 다음 생이 있으면 또 만나리라는 병곤의 모습도 좋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년을 감옥에서 살인의 죄명을 쓰고 살아야 하는 그의 하루하루를 누가 ‘좋은’ 과정이라고 보겠는가! 그럼에도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버리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불확실성이 가득찬 인간의 인생을, 성공과 발전을 위하여 타인도 저버리는 삶이 아닌 마음속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3. 욕망의 지배하에서의 인간다운 삶이란
상술한 아름다운 사랑도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부분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물들의 매 하나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행동들에 대한 인간다운 묘사들이다. 인간은 신이 아닌만큼 여러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약점은 악한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잠적해있음을 드라마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사랑도 주동적으로 추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화끈하게 대하며 열심히 돈도 벌어가는 춘연을 보자. 그녀는 병의의 광자구역(光字片) 파가이주방안이 본격적으로 실행단계에 들어가자 갖은 수단을 다 써가며 집을 두채 분여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병의가 원칙 대로 집 한채만 분여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앙심을 품고 병의에게 부정부패죄를 씌워 고소한다. 결국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병의는 아무런 문제 없이 풀려난다. 수십년간 서로 도와가며 살아왔던 춘연과 병곤 사이의 우정에도 금이 간다. 이처럼 돈과 리익 앞에서 인간의 감정은 유리처럼 취약하다. 그외에도 병곤의 친구 소국경(肖国庆)의 안해 오천(吴倩)도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병곤은 식당영업이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되자 큰집을 사고 부모가 살던 작은 집을 친구 부부에게 공짜로 제공한다. 그러다 후에 큰집의 소유권에 문제가 생겨 살 곳이 없게 되자 친구 부부에게 집을 내달라고 사정한다. 하지만 오천은 그동안 받은 도움에 감사해하기는커녕 되려 자신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며 자신의 상황만을 고려하며 악을 쓴다. 인간의 가증스러운 면을 너무도 잘 그려냈다.
이러한 욕망은 악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 누구나 상황에 닥치면 생길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 상태이다. 하지만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천과는 달리 남편 국경은 자신의 기준을 고집하는 인물이다. 국경은 성격이 괴벽한 편이라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보다 자신의 임무를 정직하게 수행하는 것을 더 고집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더 감동을 안겨준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회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사회’는 항상 이러저러한 리유 때문에 공정성을 파괴할 것이며 아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속하지 않는 례외적인 방식이 통한다. 사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사회’보다 모두가 규칙을 지키는 정상적인 사회를 더 바란다.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는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인간관계에 할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개인의 시간, 개인의 공간, 개인의 선택,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국경의 정직함은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태계 독일 출신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공개재판을 지켜보고 유명한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을 내놓았다. 이 저서에서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하였는데 즉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고 악은 명령에만 따르는 사고의 무능성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제기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나치범 아이히만 같은 자들을 악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식적인’ 주장과는 달리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은 사고의 무능에서 기원하였다고 해석하였다. 다시 말하면 기계사람처럼 명령에만 충실하게 따르고 행하는 일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이루는지를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 그 자체가 악의 평범성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실업을 한 국경에게 병곤은 병의가 있는 군용무기공장에서 문지기 림시직을 찾아주었다. 국경과 함께 문지기를 하는 다른 남자는 동료들이 무기회사의 부분품들을 가만히 숨겨서 판매하는 일을 눈을 감아주고 있다. 다같은 동료들인데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면서 인심을 잃을 필요 없고 또한 그 동료들도 일정하게 담배나 돈으로 보상을 준다는 점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회사는 점점 망해갈 것이고 결국 그들 모두 실업할 미래는 자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거의 모든 동료들은 회사가 망해가는 현실에 이는 상식적인 행위라고 묵인한다. 인간은 많은 경우에 상식적인 관념에 대하여 사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무사고와 묵인은 필연코 더 나쁜 사회를 만들 것이다.
드라마의 첫시작에서 병곤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 도자강이 사형을 당하는 현장에 참석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는다. 대부분 동료들은 사형장에서 사형 당하는 자강에 대해 적대적이다. 억지다짐으로 사형장에 갔던 병곤은 당시 친하게 지냈던 자강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결국 자강이 사형 당하자 병곤도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그는 분명 대부분 사형장에 갔던 사람들과는 다른 눈길로 자강의 마지막 길을 보내준 것이다. 오스트리아 윈에서 출생하고 제2차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유태인 정신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크(Victor Frankl)는 《죽음의 수용소에서》(1984)라는 자서전적 수기에서 “절망의 삶을 지켜온 것은 바로 그 어떠한 악렬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의지가 작동되였을 때 생존률이 더 높아지고 더 인간다운 선택들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고 하면서 인간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상식에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책임지려는 선택의 자유가 인간세상을 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는 현실에서 이처럼 인간다운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드라마가 우리에게 이러한 다른 이야기를 선 보이면서, 자본으로 모든 가치를 획일화하는 년대에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안이 되여주었다. 이는 모든 것을 유용성으로 판단하고 계산적인 도구적 리성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문학예술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예술세계》 2023년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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