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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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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세상을 그리며 ―드라마 《인간세상》을 중심으로 □ 마춘옥     리로(李路) 감독의 드라마 《인간세상(人世间)》(2022년)은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는 량효성(梁晓声)의 원작소설 《인간세상》(2017년)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원작소설은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모순문학상을 수여 받은 작품이다. 작품은 중국 동북의 한 평범한 근로자인 주씨네 삼대 가족사를 통해 지난 50년간 중국사회의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러한 긴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같은 세월을 걸어온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놀랍게도 아이치이(爱奇艺)의 데터에 따르면 관객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의 젊은 세대라고 한다. 본 문장은 드라마 《인간세상》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관객, 특히 젊은 관객들의 눈길까지 끌 수 있는 매력코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하여 분석하려고 한다.     1. 서사위기 시대의 ‘다른 이야기’ 독일의 문예리론 평론가 왈터 벤야민은 미래에 인간은 서사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 그는 20세기의 새로운 서사형식인 ‘뉴스(news)’의 탄생은 인간력사에 오래 영향을 준 ‘이야기(story)’의 종말을 예고한다고 보았다. 부동한 두 서사형식의 주요한 차이는 뉴스는 명확하고 단일한 메쎄지를 전달하는 반면 이야기는 다중적인 의미를 전달한다고 보았다. 이야기형식은 인간 력사에서 집단이라는 구조가 형성되는 데 효과적이고 오래된 방식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뉴스라는 새로운 방식의 출현과 함께 이야기의 기능이 약화되고 뉴스의 전달로 이야기가 대치된다고 보면서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벤야민의 추측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긴 소설, 긴 드라마, 긴 영화보다도 짧은 영상, 짧은 이야기, 짧은 소식 혹은 정보에 길들여졌다. 간단히 말하면, 오늘날 우리는 이미 뉴스화된 짧은 메쎄지만 읽는 시대에 들어섰으며 더 이상 긴 이야기에 시간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서사위기 시대에 《인간세상》의 성공은 분명 어떠한 매력코드가 작동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난산(暖山)은 “이 드라마에는 중국식 현대화 문화코드를 여는 열쇠가 담겨져있다.”(인민넷)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이는 거시적인 면에서 중국력사의 가장 큰 변화인 개혁개방시기를 한 가족의 인생사에 녹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보는 평가이다. 본문의 관점은 난산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젊은 관객들의 립장에서 이 드라마에 끌린 것은 거대서사가 아닐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세상》의 매력코드는 오히려 작은 개인의 서사,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하나 또 하나의 작은 인물들의 모습이 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본다. 드라마에는 거대서사에서 늘 그려져왔던 신과 같은 존재의 영웅, 희생만 하는 좋은 사람 혹은 악마 같은 나쁜 인간들은 보기 힘들다. 대부분 인물들은 잘못도 저지르고 감정적인 부분도 있는 우리 주변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즉 거대서사에 익숙한 로년층에 비하여 젊은 세대는 력사지식을 전파하거나 도덕교육을 위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 보다도 관객 자신이 뭔가를 터득하는 그런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 젊은 관객들은 더 이상 이쁘고 선량하기만 한 신데렐라이야기나 신격화된 영웅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기존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다. 이 드라마는 분명 여기서 말하는 ‘다른 이야기’에 속한다.   2.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는 작은 인물들의 이야기 원작 작가 량효성은 한 인터뷰에서 “현시대의 중국사람들은 성공을 권리를 얻거나 재부를 가지는 두가지 경우에 한한다.”고 하면서 “인간은 꼭 이런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현시대 사람들의 이러한 ‘성공관’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상식적인 인생관이다. 리성적으로 생각하면 자본이 거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시대에 확실한 돈 혹은 돈을 가져오는 권리를 내놓고 추상적인 다른 무엇을 믿고 추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론리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한가지 ‘성공’을 향하여 열광적으로 달리며 남보다 조금이라도 뒤떨어질가 봐 불안이라는 마음의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드라마는 가끔 다른 사람보다 뒤져도, 또한 꼭 성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위의 메쎄지를 던진다. 드라마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은 부단히 변화한다. 례하면 주인공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지식인은 농민, 로동자보다 낮은 계급이며 많은 경우에 심사를 받고 타도를 받는 대상이다. 하지만 당시에 농민계급에 속한 주씨네 큰아들 주병의(周秉义)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여난 학동매(郝冬梅)와 연인관계를 맺으며 또한 동매와의 인연을 저버리지 않기 위하여 승진할 기회마저 포기한다. 이러한 병의의 결정에 리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동매가 대체 어떤 녀자인지를 보려고 산을 넘어 찾아오기도 한다. 이후 시대가 변하고 타도 받던 동매의 부모님들이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인물로 계급적 상승을 한다. 상황이 뒤집어진 셈이다. 병의와 동매의 가정배경 차이는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야기한다. 동매의 부모는 자꾸 일을 부탁하는 병의의 가족과 거리를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매와 병의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여주면서 그 차이를 미봉해간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해가며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인간의 삶은 항상 필연과 우연이 겹쳐지며 이어진다. 하기에 인간의 삶은 계획해온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주씨네 작은 아들 주병곤(周秉昆)과 정연(郑娟)의 삶은 많은 우연으로 엇갈려있다. 사랑은 우연과 필연으로 엮여진 운명이기도 하다. 병곤이 정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병곤의 사형 당한 친구 도자강(涂自强)의 안해이며 임신한 상태였다. 그들의 만남은 수상한 두 남자가 병곤을 찾아와서 정연에게 매달 돈을 가져가는 일을 위탁하면서 시작된다. 자주 만나게 되면서 병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좋아하는 교춘연(乔春燕)의 추구에는 무감각하게 대하지만 이미 임신했고 사형 당한 살인범의 안해로 알려진 정연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곤은 정연의 아이는 돈을 부탁한 두 남자중 로사빈(骆士宾)이라는 남자의 아이이고 이는 정연이 그에게 강간을 당하여 가진 아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후 병곤은 매부가 쓴 시가 문제 되면서 련루되여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재난을 겪게 된다. 그동안 정연은 병환에 든 병곤의 어머니 그리고 어린 조카까지 보살펴준다. 감옥에서 나온 후 그들의 사랑은 끝내 결실을 보게 되고 병곤은 정연의 아이를 친아들처럼 대한다. 세월이 지나 아들은 청화대학에 가게 되고 생물적인 ‘아버지’ 로사빈이 찾아온다. 그 다음해, 아들은 추천으로 미국 류학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사망한다. 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병곤과 로사빈은 다툼이 생긴다. 극도로 격동된 두 사람은 서로 밀치면서 다투다가 우연히 로사빈이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된다. 병곤은 이 사건 때문에 살인죄로 감옥에 가며 아들을 잃은 고통과 함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이 순간 관객들은 아마도 내가 만약 병곤이라면 어떻게 이 현실을 견뎌내겠는지 하는 상상을 잠시나마 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주인공은 좋은 결말을 얻기 바란다. 특히 드라마를 보면서는 더 그러하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주인공의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삶은 이 드라마처럼 좋은 사람에게 좋은 결과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좋은’은 형용사로서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감정이다. 드라마의 결말에 정연의 손을 잡고 걷는, 다음 생이 있으면 또 만나리라는 병곤의 모습도 좋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년을 감옥에서 살인의 죄명을 쓰고 살아야 하는 그의 하루하루를 누가 ‘좋은’ 과정이라고 보겠는가! 그럼에도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버리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불확실성이 가득찬 인간의 인생을, 성공과 발전을 위하여 타인도 저버리는 삶이 아닌 마음속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3. 욕망의 지배하에서의 인간다운 삶이란 상술한 아름다운 사랑도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부분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물들의 매 하나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행동들에 대한 인간다운 묘사들이다. 인간은 신이 아닌만큼 여러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약점은 악한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잠적해있음을 드라마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사랑도 주동적으로 추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화끈하게 대하며 열심히 돈도 벌어가는 춘연을 보자. 그녀는 병의의 광자구역(光字片) 파가이주방안이 본격적으로 실행단계에 들어가자 갖은 수단을 다 써가며 집을 두채 분여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병의가 원칙 대로 집 한채만 분여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앙심을 품고 병의에게 부정부패죄를 씌워 고소한다. 결국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병의는 아무런 문제 없이 풀려난다. 수십년간 서로 도와가며 살아왔던 춘연과 병곤 사이의 우정에도 금이 간다. 이처럼 돈과 리익 앞에서 인간의 감정은 유리처럼 취약하다. 그외에도 병곤의 친구 소국경(肖国庆)의 안해 오천(吴倩)도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병곤은 식당영업이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되자 큰집을 사고 부모가 살던 작은 집을 친구 부부에게 공짜로 제공한다. 그러다 후에 큰집의 소유권에 문제가 생겨 살 곳이 없게 되자 친구 부부에게 집을 내달라고 사정한다. 하지만 오천은 그동안 받은 도움에 감사해하기는커녕 되려 자신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며 자신의 상황만을 고려하며 악을 쓴다. 인간의 가증스러운 면을 너무도 잘 그려냈다. 이러한 욕망은 악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 누구나 상황에 닥치면 생길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 상태이다. 하지만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천과는 달리 남편 국경은 자신의 기준을 고집하는 인물이다. 국경은 성격이 괴벽한 편이라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보다 자신의 임무를 정직하게 수행하는 것을 더 고집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더 감동을 안겨준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회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사회’는 항상 이러저러한 리유 때문에 공정성을 파괴할 것이며 아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속하지 않는 례외적인 방식이 통한다. 사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사회’보다 모두가 규칙을 지키는 정상적인 사회를 더 바란다.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는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인간관계에 할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개인의 시간, 개인의 공간, 개인의 선택,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국경의 정직함은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태계 독일 출신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공개재판을 지켜보고 유명한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을 내놓았다. 이 저서에서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하였는데 즉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고 악은 명령에만 따르는 사고의 무능성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제기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나치범 아이히만 같은 자들을 악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식적인’ 주장과는 달리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은 사고의 무능에서 기원하였다고 해석하였다. 다시 말하면 기계사람처럼 명령에만 충실하게 따르고 행하는 일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이루는지를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 그 자체가 악의 평범성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실업을 한 국경에게 병곤은 병의가 있는 군용무기공장에서 문지기 림시직을 찾아주었다. 국경과 함께 문지기를 하는 다른 남자는 동료들이 무기회사의 부분품들을 가만히 숨겨서 판매하는 일을 눈을 감아주고 있다. 다같은 동료들인데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면서 인심을 잃을 필요 없고 또한 그 동료들도 일정하게 담배나 돈으로 보상을 준다는 점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회사는 점점 망해갈 것이고 결국 그들 모두 실업할 미래는 자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거의 모든 동료들은 회사가 망해가는 현실에 이는 상식적인 행위라고 묵인한다. 인간은 많은 경우에 상식적인 관념에 대하여 사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무사고와 묵인은 필연코 더 나쁜 사회를 만들 것이다. 드라마의 첫시작에서 병곤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 도자강이 사형을 당하는 현장에 참석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는다. 대부분 동료들은 사형장에서 사형 당하는 자강에 대해 적대적이다. 억지다짐으로 사형장에 갔던 병곤은 당시 친하게 지냈던 자강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결국 자강이 사형 당하자 병곤도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그는 분명 대부분 사형장에 갔던 사람들과는 다른 눈길로 자강의 마지막 길을 보내준 것이다. 오스트리아 윈에서 출생하고 제2차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유태인 정신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크(Victor Frankl)는 《죽음의 수용소에서》(1984)라는 자서전적 수기에서 “절망의 삶을 지켜온 것은 바로 그 어떠한 악렬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의지가 작동되였을 때 생존률이 더 높아지고 더 인간다운 선택들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고 하면서 인간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상식에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책임지려는 선택의 자유가 인간세상을 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는 현실에서 이처럼 인간다운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드라마가 우리에게 이러한 다른 이야기를 선 보이면서, 자본으로 모든 가치를 획일화하는 년대에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안이 되여주었다. 이는 모든 것을 유용성으로 판단하고 계산적인 도구적 리성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문학예술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예술세계》 2023년 제5호
7    청춘의 향연, 류행음악의 유망주 댓글:  조회:697  추천:0  2023-08-25
청춘의 향연, 류행음악의 유망주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현학과 김성박사 □ 신철국     음악회를 마치고 지난 6월 16일 저녁, 연변대학 예술학원 정률성예술극장에서 신선한 음악회가 펼쳐졌다. 중국조선족류행음악의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는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김성박사가 모교에 돌아와 가진 첫 음악회무대였다. 객석을 메운 관객들의 열기에 부응해 울려퍼진 쟈즈음악을 선두로 청중들의 호감을 자극하는 멜로디 10여곡이 련달아 심금을 울렸다. 여러 나라 언어로 된 부동한 풍격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로 화답했고 황홀한 류행음악의 세계로 초대해 기억 저편에 있는 청춘의 기록들을 소환해준 멋진 미남 보컬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거기에 전국 각지에서 온 음악인들과 함께 펼친 합동공연까지 더해져 공연장의 열기는 그야말로 빅뱅 직전이였다. 호소력 짙은 무대 주인공의 미묘한 음성은 어느새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부지불식간에 ‘김성’이란 이름이 화인(火印)처럼 뇌리에 각인됐다. 그리고 바로 그 공연이 끝나서 며칠 뒤 운 좋게도 단독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무대가 아닌 지척에서 마주한 김성박사는 어린 소년처럼 수줍은 인상에 시종 조용한 음성과 잔잔한 미소로 일관했다. 변호사 아버지와 교육자 어머니를 둔 김성박사는 부모님의 권유로 열살 때부터 피아노레슨을 받았는데 일찍 피아니스트 지망생들의 필수곡으로 알려진 쇼뺑의 련습곡들을 소화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무렵 그의 꿈은 예술가가 아닌 축구선수, 그래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학교가 연길시체육학교(축구전업)였다. 그러다 그의 꿈이 음악으로 방향을 튼 건 고중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예술인은 아니지만 음악에 뛰여난 소질을 갖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자식의 천부를 발견하고 연변예술학교 작곡전공에 추천했다. 약 1년간 다니다가 북경으로 향발하여 중국음악학원 작곡학부 주임을 력임했던 국내 저명한 작곡가 시만춘(施万春) 교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연변대학 예술학원 작곡전공에 진학했는데 이 때 운명적으로 그의 인생목표를 완전히 음악으로 정조준하게 되는 일생일대의 사건과 조우했다. 중국음악학원 시만춘 교수한테서 작곡수업을 받고 있는 김성 “아마 9월 중순 쯤이였을 겁니다. 학교에서 신입생맞이 축하문예야회를 가졌는데 그 때 학교 축구동아리에 있던 멤버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곡이였던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 날 오른 무대는 그한테 큰 울림과 감동을 선사했다. 축구만 하는 줄 알았는데 노래도 잘 부른다는 교우와 선생님들의 과분한 평가와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아안으며 난생처음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희열을 느꼈다. 그 때 환장할 만큼 눈부신 무언가가 뇌리를 휘저으며 바로 이것이 너의 꿈이자 목표라고 귀가에 소곤거렸다. 이름할 수 없는 청춘의 격동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고 2010년 4월, 노래와 춤에 장기가 있는 한호, 오성복, 안문천, 김군 등이 그의 주위에 뭉쳤다. ‘완벽한 음성(voice is perfect)’이란 뜻의 영어문구에서 첫 글자들을 뽑아내 ‘VIP’란 감성그룹을 내오고 하루 8~10시간씩 자체로 련습하면서 밤무대로 진출해 연변의 대표적인 류행음악그룹으로서의 내공을 쌓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능력은 가능성이요, 실력은 현실성, 준비된 자한테는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그룹 ‘VIP’는 2010년 7월, 제1회 두만강변가요제에서 일거에 대상을 거머쥔 데 이어 이듬해 6월에는 단독콘서트를 개최하여 관객 2천여명을 불러모으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제2회 두만강변가요제에는 초청게스트로 참여하며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했고 연변TV, 연변위성TV의 〈청춘스타트〉, 〈두만강〉, 〈문화광장〉, 〈파워뮤직〉, 〈뮤직비타민〉 등 프로들에 륙속 얼굴을 알리며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현지의 청춘들한테 젊음을 대표하는 그룹으로서의 최고 적임자임을 선언했다. VIP콘서트의 포스터(2011년 6월 11일 촬영) 이 와중에 김성은 연변 최초로 화려한 대형 무대가 아닌 길거리공연에도 나서며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불태웠다. 또한 그 무렵 연변의 유명한 알앤비(R&B)가수로 활약하고 있던 량국철과 함께 처음 듀엣무대에 오르며 그로부터 화음 처리와 선률, 볼륨 처리를 익히기도 했다. 허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룹 ‘VIP’는 실력이 아닌 모종의 원인으로 일보 지척이였던 한국 K팝계 진출에 좌절을 겪었고 리더였던 김성은 그 때 불쑥 그동안 열심히 해왔던 류행음악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된다. 자신들의 한계에서 오는 회의였다. 보컬과 댄스 실력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해보려고 해도 국내에선 배울 곳이 없었고 선생도 없었다. 공백이였다. 당시 국내의 많은 음악그룹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했다. 제1기 두만강변가요제에서 VIP그룹이 1등상을 수여 받는 장면 “고민하던 끝에 일단 저부터 나서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였거든요.” 2012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작곡전공에서 방권일 지도교수의 지도하에 학원 최초로 가진 졸업연주회에 관악자작곡 〈금(禁)〉을 발표해 작곡가로서의 실력도 인정 받은 김성은 류행음악을 확실하게 배워 국내 젊은이들한테 전수할 욕심으로 이듬해 단연히 류학길을 선택했다. 한국 백석대학교 음악대학원 실용음악보컬전공 석사연구생 공부였다. 자기가 그처럼 꿈꾸던 실용음악보컬전공에 학적을 올린 김성은 하늘의 별이라도 딴 기분이였다고 한다. 헌데 웬걸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을 떠나 일반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용음악은 7화음을 보유한 전통음악에 비해 13화음까지 거느린 쟈즈음악이 기초로서 국내에선 일명 ‘대중음악’ 또는 ‘통속음악’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정작 실용음악학과의 내부에 들어서보니 전혀 딴판이였다. 문맹이 따로 없었다. 외래어로 도배된 실용음악 명사와 일반 대화에도 꼬리 물고 다니는 생경한 외래어 교학환경이 첫밗에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보컬과 수업은 일 대 일이라 몸으로 때우면 되는데 공동과 수업은 강좌가 위주이기에 교수님의 강의에 귀를 강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강구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고 한다. “제가 ‘문맹’이란 단어를 그렇게 페부로 절감하기는 아마 그 때가 처음이였을 겁니다. 꼭 벙어리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송폼(歌曲形式), 인트로(前奏), 인털루드(间奏), 브릿지(桥梁音乐或桥段), 프리코러스(合唱前), 벌스(歌曲的段落), 아웃트로(结尾部分)… 공동과 수업 때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외래어로 된 전공용어 앞에 김성은 우울증에 걸렸고 그대로 나가다간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러한 그를 사지에서 구해낸 건 그의 인내와 오기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동안 무대에서 겪어왔던 다양한 경험들이 인내와 오기로 되살아났다. 모르는 외래어로 된 전공용어들을 전부 기록해 숙소에 돌아와 번역기로 돌려 부분적 내용을 소화했고 두툼한 외래어사전을 밤샘으로 뒤져가며 교수님과 학우들의 말을 알아듣기에 고심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기적같이 귀가 열렸다. 마치 득음(得音)의 경지에 들어선 것만 같았다. 신생(新生)이 따로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활기로 차넘쳤고 갈수록 학업에 재미가 붙었다. 밴드에도 합류하고 음악제작에도 참여하며 성공적으로 석사연구생공부를 마친 뒤에는 바로 한국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공연예술경영학과 박사연구생 공부에 뛰여들었다. 중년의 아저씨들과 함께 박사공부를 하면서 회식이나 모임 때면 구석을 차지하던 ‘꼬맹이’가 2020년 8월, 학위론문 《한국아이돌의 이미지가 중국청소년의 아이돌 관련 상품 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면서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공연예술경영학과 최초 외국인박사 졸업생’이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얻게 되였다. 예리한 시각과 넓은 안목으로 시시각각 국내 류행음악교육상황과 취업시장을 진단하며 학과의 전공건설에 은근히 왼심을 쏟고 있던 연변대학 예술학원 지도부에서는 그동안 김성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가 이룩한 학문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최근 국가 1급 본과 학과 건설에서 연변대학의 6개 학과가 전국 A급 학과로 선정됐는데 그중 예술학원의 총 5개 학과중 3개 학과가 국가 일류 본과 학과에 선발돼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다. 2020년 10월, 다년간 해외에서 류행음악의 리론과 실기를 체계적으로 배워온 김성박사는 모교에 돌아와 류행음악보컬 강사로 되여 류행음악분야의 후대양성에 정력을 쏟았다. 2021년 8월, 류행음악교연실(현재 현대음악교연실)이 설립되였고 류행음악보컬 본과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그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을 아낌없이 펼칠 수 있는 활무대로 되였다. 현재까지 류행음악교연실 강사로는 김성박사가 유일하다. 일주일에 약 24시간, 평균 14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일 대 일 수업을 하고 나면 목에 쥐가 날 지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때 자기가 배우지 못했던 아쉬움을 남한테 배워주는 것으로 치유한다는 것이 그처럼 즐거울 수가 없단다. 따라서 학생들한테 더 많은 가르침의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모교에서의 학창시절 전공이였던 작곡은 잠시 소외할 수밖에 없다는 김성박사, 언젠가는 좋은 곡을 써서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단다. “연변은 가무의 고향입니다. 그러니 물론 류행음악도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전국에 이름난 류행음악가수, 류행음악교육자로 양성시키는 게 저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발라드, 팝송, 쟈즈 등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 따로 있듯이 시대마다 전국을 들썽케 하는 류행곡(류행가)도 따로 있다며 총 24가지 색갈로 류행음악을 색칠해보고 싶다는 김성박사, 시들지 않는 청춘의 향연 속에 오늘날 우리들 류행음악교육의 전초선을 다져나가는 유망주—김성박사의 꿈은 마냥 눈부시기만 하다.   사진 제공 | 김성, 예카이엔터테인먼트 《예술세계》 2023년 제4호
6    젊은 무용수 강매화의 이야기 댓글:  조회:267  추천:0  2023-06-07
젊은 무용수 강매화의 이야기 □리아   어린시절, 한번 쯤은 자신의 미래모습에 대한 동경과 상상으로 꿈을 키워봤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겠다. 어릴 때의 꿈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고 마찬가지로 우연한 계기로 장래의 꿈을 결정 짓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에서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는 강매화의 무용인생 첫시작도 이렇게 시작되였다. 어려서부터 꿈을 키운다고 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그녀에겐 딱히 그렇다 할 만한 꿈이 없었다고 한다. 어린아이답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 전부였던 그녀의 인생에 느닷없이 변화가 찾아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로 학원생 모집을 온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직원의 눈에 들게 되면서 그 곳의 학원생으로 발탁된 것이다. 처음 접촉해보는 생소한 분야여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느끼면서 만감이 교차하였지만 어린 나이에 누군가에게 인정 받은 기쁨이 더 컸다. 그렇게 그녀는 불을 향해 뛰여드는 나방이 된듯 어린시절의 겁 없는 패기로 무용의 세계에 뛰여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무 준비 없이 들어선 무용의 세계는 참혹했다. 고된 훈련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게 만들었다. 생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일주일도 채 안되여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울며불며 고집을 부렸고 그런 딸을 보며 부모님은 한달만 버텨보고 그 때도 힘들면 그만두라고 달랬다. 훈련이 힘든 것은 여전했지만 기한을 정하고 보니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한달후면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그 고된 훈련도 마치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버킷 리스트를 하나하나 해보는 듯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느샌가 육체의 고통을 참아가며 훈련하는 데 익숙해졌다. 발톱이 빠지기도 하고 피부가 찢겨지기도 하였지만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훈련을 이어가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듣게 되였다. 그건 처음으로 들은 무용을 잘한다는 칭찬이였다. 너무나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니 스스로 자신은 무용을 잘해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였고 그 일을 계기로 무용수의 꿈을 키우게 되였다. 늦은 나이에 가진 꿈이였기에 욕망 또한 류달리 강렬했다. 2005년에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 입단한 이래 강매화는 무용수로 성장해가는 길을 고된 훈련으로 꾸준히 걸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용에 대한 학구열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무렵, 2010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 입학하여 좀더 전문적으로 무용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였다. 여러 스승들과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가르침하에 무용에 대한 전문리론지식과 더불어 다양한 무용쟝르를 배웠고 무용수로서의 마음가짐도 갖추게 되였다. 여직껏 스스로 좋아서 춤을 췄다면 그 때부터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춤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춤을 추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승들의 사심 없는 가르침을 받으며 무용의 참맛에 취하고 무용의 세계에서 헤여나올 수 없는 경지에 빠지게 되였다. 2014년, 학업을 원만히 마친 강매화는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서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으로 개칭된 직장에서 무용수로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꾸준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되였다.   군무 〈부채춤〉의 한 장면(가운데 강매화)   군무 〈장고춤〉의 한 장면(가운데 강매화)   사실 강매화는 학원생 때에도 연변대학 재학시절에도 훈련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틈틈이 공연무대에 서다보니 무대경험이 여느 선배 무용수 못지 않게 풍부하였다. 학원반에 들어온 이래 각고의 노력을 거쳐 이듬해부터 여러 공연활동과 콩쿠르에 참가하였고 몇년후에는 군무의 리더로 무대에 서면서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2010년, 제18회 길림성예술시리즈콩쿠르에서 〈한삼춤〉으로 청년조 1등상을; 2010년, ‘우리는 한가족’ 제2회 전국소수민족대련환활동에서 〈메아리〉로 1등상을; 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경축공연에서 〈연변찬가〉로 공헌상을; 2014년, 제22회 길림성예술시리즈콩쿠르에서 〈농악무〉로 1등상을; 2019년, 제11회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운동회 개막식 공연에서 〈봄의 꿈〉으로 2등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2017년, 제1회 중국 · 연변 조선족문화관광절 개막식 공연; 2018년, CCTV-15 ‘새시대를 노래하다(唱响新时代)’ 공연; 2019년, 내몽골에서 열린 제14회 홍산문화관광절 민족단결우호교류공연; 202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 경축공연 등 다양한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이러한 묵직한 성과와 경력들은 그녀로 하여금 2013년, 2016년, 2017년에 각각 연길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및관광국 선진사업자로 선정되고 2019년에 연길시인력자원 및 사회보장국 특수공헌상을 수여 받는 등 개인영예도 얻게 하였다.   군무 〈한삼춤〉의 한 장면(선두에 강매화)   현재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강매화는 17년에 달하는 문예사업종사경력을 갖고 있다. 상술한 활동경력들을 제외하더라도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계절의 노래〉 공연활동에도 현재까지 1,600여차 참가했고 하향공연에도 100여차 참가했지만 그녀에게 있어 가장 힘들었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65주년, 70주년 세차례 경축공연이였다고 한다. 제일 완벽한 무대를 선 보이고저 팀원들과 함께 며칠씩 훈련실에서 버텼고 점적주사를 맞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훈련에 몰입하군 했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는 희열에 벅차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운동회 개막식 공연에 참가하였을 때엔 우리 민족을 전국에 널리 자랑하였다는 생각에 무용수란 직업을 선택하기 참 잘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다양한 무용쟝르를 섭렵해온 강매화는 그중에서도 조선족장고춤에 류달리 애착심도 강하고 그 표현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고 한다. 장고를 메고 참가한 2018년, 장춘과 광주에서 열린 관광절설명회; 2021년, 태원, 성도, 란주에서 열린 연길투자유치설명회 등 다양한 무대경험으로 그녀의 장고춤 실력은 현저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였다. 그녀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장고춤 실력은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지도부의 인정을 받아 조선족장고춤 주급 전승인으로 추천되였다.   독무 〈장고춤〉을 표현하고 있는 강매화 우연한 계기로 무용수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고 다소 늦게 시작된 꿈이였지만 이젠 무용을 떠날 수 없는 강매화가 되였다.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훌륭히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모님과 여러 스승들,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지도부의 관심과 로고가 든든한 뒤받침이 되여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더 높은 단계의 무용수가 되여 중국이라는 이 커다란 땅에서 우리 민족의 춤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자손만대에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강매화의 또 다른 꿈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예술세계》 2023년 제2호
5    《예술세계》2023년 2호 목록 댓글:  조회:263  추천:0  2023-06-07
4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 최옥화를 만나다 댓글:  조회:360  추천:0  2023-03-07
민족가무극 〈정률성〉, 국가급 무대에 오르기까지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 최옥화를 만나다 □ 리은희       정률성은 걸출한 작곡자이자 인민음악가이고 무산계급혁명음악의 개척자의 한사람이며 ‘군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그는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중국 3대 음악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1999년에 광주시가무단에서 창작, 공연한 무용극 〈성해 · 황하〉(문정아 총연출), 2005년에 운남성 옥계시에서 창작, 공연한 〈섭이〉(전동범 총연출)에 이어 2022년 12월 18일, 19일에 중앙가극원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손 잡고 다듬은 민족가무극 〈정률성〉이 중앙가극원 극장에서 공연되였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3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 창작, 공연한 이 야심작은 연변대학 력사상 국가급 무대에 올린 첫 가무극이다. 가무극이 쾌거를 거두게 된 데는 창작팀과 배우들의 로고와 피타는 노력이 깃들어있다. 특히 연변대학 예술학원 최옥화 원장은 이 가무극의 총기획자로서 가무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혼신의 력투를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가무극으로 창작되기까지     정률성은 조선반도 남부 광주에서 출생하여 1933년 19살의 젊은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중국에 와서 항일구국의 길을 모색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혁명예술가로 성장하였다. 그가 창작한 〈연안송〉,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원명 〈팔로군행진곡〉)는 민족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용감히 싸우도록 광범한 군민들을 격려하였다.     2019년 봄, 항일가곡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최옥화 원장은 ‘군가의 아버지’ 정률성을 더 깊이 연구하고 선전할 몇가지 필요성을 느끼게 되였다.     첫째, 정률성의 이야기는 영화, 연극,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되였지만 모두 인물전기에 중점을 두었고 음악창작면에서 정률성이 열혈청년으로부터 혁명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각종 시련을 딛고 ‘군가의 아버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정리하지 못했다. 정률성은 일생을 음악창작에 바쳤고 음악은 초불마냥 그의 령혼을 비췄기에 음악창작을 주선률로 하면서 그의 혁명예술가의 형상을 그려야만이 정률성의 삶을 진정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다.     둘째, 당시 우리 나라에는 작곡가 섭이의 이름을 딴 섭이음악학원, 섭이광장, 섭이대극원, 섭이기념관이 있고 선성해의 이름을 딴 성해음악학원, 성해음악청, 성해극장, 선성해기념관, 선성해문화광장, 선성해문화예술창작중심 등이 있었지만 정률성에 관해서는 할빈의 정률성기념관이 전부였다.     셋째, 정률성은 비록 타국에서 태여났지만 중국공산당이 양성한 우수한 혁명예술가이고 항일전쟁을 통해 저명한 인민음악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섭이, 선성해에 이은 또 한명의 걸출한 작곡가이며 무산계급혁명음악의 개척자이다. 정률성은 중국에서 혁명의 길을 걷고 점차 중화를 사랑하는 혁명예술가로 거듭난 인물로서 국제적인 문화 전파가치가 있다. 또 중국문화의 포용성을 발양하고 중국공산당의 영명함과 위대함을 더 널리 선전하며 인류 운명공동체의식을 구축하는 데도 심원한 의의가 있다.     넷째, 정률성은 2009년에 중공중앙 선전부, 조직부,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등 11개 부문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특수기여 영웅모범인물 100명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였다. 하지만 빛나는 영예에 비해 그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였다. 하여 관련 예술작품을 창작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인민음악가를 알려야 했다.   중앙가극원 류운지 원장(오른쪽 세번째)과 연변대학 예술학원 지도부 성원들     마침 2019년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창작 80주년이 되는 해이자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2년 앞두고 있는 해였다.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작곡자인 정률성 관련 작품 창작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 최옥화 원장은 가무극 〈정률성〉에 대한 초보적인 창작계획을 세우고 연변대학 예술학원 동료들과 함께 정률성의 친우들을 방문, 취재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가무극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였다.     2019년 10월 19일, 최옥화 원장은 정률성의 경전작품을 토대로 한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최종 계획안을 연변대학 지도부에 제출하였다. 시대의 주선률을 고양하고 소재가 참신한 이 계획안은 학교 지도부의 주목과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해 10월,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는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창작에 착수하였고 12월에 주요 창작일군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 연변대학 예술학원 원장 최옥화가 총기획을, 중국음악학원 작곡학부 교수 우영일이 예술감독을, 무장경찰부대 정치부 문공단 전임 단장 장길의가 씨나리오를, 연변대학 예술학원 교수 향개명이 총감독을 맡기로 결정하였고 극의 주요사상, 창작류형, 창작내용, 예술형식, 실천기획 등을 기본적으로 확정하였다.       처음에는 가극, 음악극 혹은 무극 형식으로 작품을 표현하려고 계획하였으나 토론을 거쳐 최종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음악과 무용 등 방면의 장점을 내세워 가무극 형식으로 시대모범을 노래하고 인민음악가 정률성의 혁명이야기를 엮어가기로 하였다. 또한 조선족은 가무에 능하기에 정률성의 무대형상을 더욱 풍부하게 부각하는 데 가무극이 가장 적합하였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 최옥화의 인터뷰에서       그후 창작팀은 력사자료 수집, 관련 인물 취재, 현장 탐방 등 준비사업을 착실히 진행하였고 200여차의 창작토론회의와 6차례의 수정을 거쳐 2020년 6월에 최종 씨나리오를 완성하여 국가판권국에 등록하였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 최옥화와 총연출 심량(가운데, 중앙가극원), 향개명(오른쪽, 연변대학 예술학원)     2020년 8월 19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정률성음악연구중심을 설립하여 정률성의 혁명정신을 연구하고 선전하는 데 훌륭한 플랫폼을 갖추게 되였다. 2020년 9월 3일, 민족가무극 〈정률성〉소식공개회를 개최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모았으며 2020년 10월 25일, 정률성작품음악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생방송 형식으로 가무극의 선전활동을 펼쳤다.     2021년 4월 28일, 민족가무극 〈정률성〉이 연길아리랑극장에서 첫막을 열었다. 4막 11장으로 된 이 가무극은 음악창작면에서 일부 대표적인 원작 소재를 채택한 외 기타 음악은 새로운 형식으로 재창작을 거쳤는바 사실주의기법과 전통작곡기법이 결부된, 서로 다른 풍격의 창작가곡 21수를 전반 극에 관통시켰다. 또한 음악으로 인물형상을 부각하고 극의 전개에 알맞는 무용음악으로 작곡가 정률성의 인물성격을 생동하게 보여주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가무극은 2021년 5월에 중화인민공화국교육부 전국 ‘100부 홍색명작우수극종목’ 전시방영명단에 이름을 올려 온라인으로 전국에 전시되였고 그 해 7월에 국가문화및관광부 제2회 전국우수음악극전시공연 극종목으로 선정되였으며 2022년 1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교육부 대학교사상정치사업 육성건설프로젝트중의 대학교창작문화정품보급행동계획에 입선되였다.       중앙가극원 무대에서 빛을 발하기까지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시연을 마친 후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는 세차례나 되는 좌담회를 조직하여 여러 분야 전문인사들의 수정의견을 수집, 정리하였다. 그후 대본, 줄거리, 대사, 무대설계, 음악, 무용, 무대배치, 조명 등을 새롭게 고치면서 중앙가극원과 손 잡고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만단의 준비를 갖췄다.       2022년 8월초, 중국음악가협회 한신안 주석의 소개로 중앙가극원 류운지 원장과 련락이 닿았다. 8월 16일, 북경에서 중앙가극원 책임자들과 만나 북경에서의 공연에 대한 합의를 보았다. 10월 17일, 중앙가극원 창작팀과 연변대학 예술학원 창작팀이 온라인으로 공연협의회를 열어 초보적인 공연시간과 작품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연출팀을 결성하였다. 11월 5일, 중앙가극원 감독 심량, 주요 배우인 리상, 곽등등, 무대감독 리신희, 조감독 리환 등 다섯명이 십여일간 연변대학 예술학원 창작팀과 함께 수정방안을 토의하고 최종 방안을 결정했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 최옥화의 인터뷰에서       모두의 노력으로 민족가무극 〈정률성〉은 꼼꼼한 준비과정을 마치고 2022년 12월 9일과 10일에 북경 중앙가극원 극장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부득이한 사정으로 공연시간이 12월 18일과 19일로 미루어졌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공연을 둘러싸고 토론중인 중앙가극원 류운지 원장(왼쪽)과 총기획자 최옥화     12월 11일,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92명 배우들이 북경에 도착하였고 12일부터 중앙가극원 제작진, 배우들과 함께 본격적인 훈련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중앙가극원의 많은 배우들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고 연변대학 예술학원 배우들까지도 련이어 감염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중앙가극원 책임자들은 공연을 미루자는 제안도 했지만 100여명 배우들과 창작팀 성원들이 북경에까지 가서 공연도 못하고 되돌아온다는 것은 도저히 안될 일이였다. 나의 확고한 의지를 보아낸 중앙가극원 류운지 원장은 함께 곤난을 극복하고 일을 추진시키자면서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 두 협력단위의 배우 260명 가운데서 80%가 양성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정 대로 이틀간의 공연이 진행되였다. 그 때의 마음고생은 이루 다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 최옥화의 인터뷰에서       특수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12월 18일에는 600여명의 관객들이 현장을 찾아 직접 공연을 관람하였고 19일에는 온라인으로 전국에 생방송되였는데 그 시각 동시 접속인수가 210만명에 달했다. 중앙텔레비죤 제3채널, 북경시텔레비죤방송국에서 공연소식을 보도하였다. 중국문예평론가협회 고문인 우평은 “근래 보기 드문 가무극의 가작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창착팀과 배우들     민족가무극 〈정률성〉은 북경의 관객들 앞에서 질 높고 참신한 형식과 효과를 자랑하면서 최고의 무대를 선 보였다.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자인 연변대학 예술학원 최옥화 원장은 “이 가무극은 소재가 참신하고 드높은 사상성, 시대성이 충분히 반영되였다는 데서 계획단계부터 학교 지도부 나아가 주당위 선전부, 성당위 선전부와 기업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인민음악가 정률성의 삶의 려정을 선 보인 이 작품은 정률성을 기념하는 길에서의 첫걸음이다.”라고 표명하였다.     최옥화 원장은 “이번 공연은 사생들의 무대실천능력, 교수연구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창작형식으로 전교 사생들을 ‘산업교수 융합’ 실천의 길로 이끌었으며 국가일류본과생 전업인재양성의 새로운 모식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금후 이 작품이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재연레퍼토리로, 학생들에게는 특수한 사상정치수업과목으로 되기 바란다.”고 하였다.       향후의 사업에 대해 최옥화 원장은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성공적인 공연을 기반으로 굵직굵직한 계획들도 세웠다. “금후 정률성문화예술절을 개최하여 정률성음악 연구, 군가주제 회화, 서예 전시, 문화관광 창의상품 설계전람 등 활동을 조직할 것이며 국내외 고등학교, 예술단체, 과학연구기구와 함께 다양한 형식의 학술교류와 예술문화교류를 진행하여 정률성의 혁명정신과 음악사상을 널리 선전하고 전승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사진 제공 | 연변대학 예술학원 《예술세계》 2023년 제1호
3    《예술세계》2023년 1호 목록 댓글:  조회:346  추천:0  2023-03-03
2    《예술세계》2023년 주문통지 댓글:  조회:435  추천:0  2023-02-09
국내애니메이션제작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 □ 리은희       애니메이션 즉 그림영화 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대두아들과 소두아빠(大头儿子和小头爸爸)》가 떠오를 것이다. 방송시간을 기다려가면서 재밌게 본 그림영화이다. 하지만 CCTV-14채널에서 방송된 이 그림영화 제작에 한 연길기업이 참여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 기업이 바로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이다. 우리 나라에서 지명도가 있는 애니메이션제작회사중의 하나로서 창작 기획팀, 애니메이션제작팀, 후기운영팀 등으로 구성된 이 회사는 국내적으로 기술실력이 뛰여난 애니메이션 제작인원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재 과정에 알게 된 더욱 재미 있는 일은 회사 사장 한성호의 전공은 회계학과라는 것이다. ‘하다면 혹시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은 건 아닐가?’ 그런데 사장의 대답은 필자의 추측에서 한참이나 벗어났다. “전혀요. 그림 그릴 줄도 몰랐습니다. 소학교 때 도화성적이 낮아 3호학생이 못된 기억이 있는걸요.” 잇따라 필자의 머리속에 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어찌하여 미술, 애니메이션 분야에 뛰여들게 되였을가?’ 그리고 뒤이어 사장이 풀어헤친 이야기보따리에 곧 그 의문이 풀렸다. 2013년에 설립된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의 전신은 단동시 동명다매체스튜디오이다. 회사 운영방향을 애니메이션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 그 계기로 되였다. “2004년, 나의 친구가 애니메이션사업을 추진하던 중에 합작파트너의 갑작스러운 퇴출로 사업을 접게 되였습니다. 문제는 당시 친구한테 애니메이션기술자들을 알선해준 장본인이 나였는데 그 분들이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할수없이 내가 그 분들의 숙식을 도와주게 되였고 그 와중에 본의 아니게 그 쪽 분야에 개입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지요…” 그들은 중앙텔레비죤애니메이션제작기지의 관리를 받으면서 당시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기획한 2차원 애니메이션제작에 기본상 다 참여했다고 할 만큼 애니메이션업계에서 두각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신 대두아들과 소두아빠》는 유일한 가족교양극으로서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10여년째 제작, 방송되고 있다. 그외에도 《꼬마병사 장알(小兵张嘎)》(2005년), 《천개의 물음(千千问)》(2005년), 《천검(天剑)》(2006년), 《울란치치그(乌兰其其格)》(2007년) 등 작품들의 제작에 참여해 애니메이션업계에서 든든히 자리매김을 했다. 2011년 5월, 단동시 동명다매체스튜디오의 작품제작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성호멀티미디어제작유한회사(诚浩多媒体制作有限公司)로 승격하였다. 당시 대표작으로는 《아기범의 귀향(小虎还乡)》, 《미후왕(美猴王)》, 《수만금산(水漫金山)》, 《하늘에서 떨어진 저팔계(天上掉下个猪八戒)》 등이 있다. 2012년 7월, 민족문화를 발양하고 고향과 사회에 보답하려는 취지하에 회사를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에 옮겼다. 그 때 출품한 대표작들로는 《미래보전(未来宝典)》, 《옥기린(玉麒麟)》, 《철갑상어모험기(中华鲟历险记》 등이 있다. 연변의 애니메이션산업을 적극 추동하고 진일보 발전시키려는 취지하에 2013년 4월, 전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뒤이어 2014년에는 3D애니메이션업종을 늘여 기업의 자체 경쟁력과 종합적인 효익을 향상시킴으로써 기업발전의 발걸음을 크게 추진하였다. 주요 업무범위는 2차원, 3차원 애니메이션 제작, 그래픽 제작, 디지털미디어 제작 등이다. 현재 국내 일류의 애니메이션 창작자, 제작자, 시장개발일군들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창작멤버들로는 왕립인(베테랑감독, 애니메이션산업 종사경력 20년), 곽춘복(베테랑감독, 애니메이션산업 종사경력 30년), 리영(베테랑감독, 애니메이션산업 종사경력 16년, 애니메이션제작자 3급 자격증 획득), 산복건(애니메이션 전문 프로듀서, 애니메이션산업 종사경력 11년) 등이다. 연길에 있는 애니메이션종사자는 70여명이고 외국에 200여명이 있는데 그들과는 온라인으로 원고를 주고 받는다. CCTV-14채널 어린이방송프로 3분의 1 정도가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회사는 장대해졌다. 회사는 다년간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애니메이션그룹과 량호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부 또 한부의 다채로운 국산애니메이션을 출품하여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2018년, CCTV애니메이션유한회사로부터 ‘중기제작기지(中期制作基地)’로 명명되였는데 전국적으로 4개밖에 안된다. 《신 대두아들과 소두아빠》, 《미인어(美人鱼)》, 《천안의 귀환》시리즈, 《솜사탕과 구름엄마》시리즈를 포함한 고차원, 고품질 그리고 관객들의 평판이 높은 애니메이션걸작들을 합작 제작하면서 회사의 지명도가 나날이 상승해갔다. 2019년에 이르러 6,000여분(分) 길이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2,000여만원의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전국 애니메이션업종에서 그 제작량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때 출품한 대표작들로는 《치치핑핑(齐齐苹苹)》, 《이야기할머니》, 《동물친구들》 등이 있다. 그중 《치치핑핑》은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의 담당 애니메이션작품이다. 2019년에 ‘국가첨단기술기업’으로 지정되였다. 이는 회사가 국가중점지원을 받고 있는, 성장성이 높고 잠재적인 경제효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임을 말해준다. 2019년에 회화, 음악, 촬영 분야와 관광상품개발사업을 전개할 목적으로 연변감나무미디어유한회사(延边感之树传媒有限公司)를 설립하고 주로 회화 전시, 영상물, 음악작품 기획, 제작에 정진하고 있다. 그리고 멀티미디어비디오작품을 제작하는 등 작업을 펼쳐나갔으며 이미 국내의 브랜드영상물제작회사들과 합작의향협의서를 체결하였다. 최근년간 회사에서 제작에 참여한 굵직한 애니메이션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8년, 《천안의 귀환(天眼归来)》 시즌 2, 시즌 3, 《솜사탕과 구름엄마》를 출품하였다. 2019년, 《천안의 귀환》 시즌 4—시즌 6, 《신 대두아들과 소두아빠—영웅꿈(新大头儿子小头爸爸—英雄梦)》, 《동물친구들》 시즌 3을 출품하였다. 2020년, 《신 대두아들과 소두아빠—지능꼬마주인(新大头儿子小头爸爸-智能小当家)》, 《솜사탕—핑크베이비(棉花糖-粉红宝贝)》, 《동물친구들》 시즌 4를 출품하였다. 2021년, 《신 대두아들과 소두아빠—즐거운 가족캠프(新大头儿子小头爸爸-欢乐亲子营)》, 《나사못》, 《나타와 트랜스포머(哪吒与变形金刚)》를 출품하였다. 《신 대두아들과 소두아빠―영웅꿈》 포스터   《천안의 귀환》 포스터 장기간의 발전과정을 거쳐 회사는 뛰여난 애니메이션 제작능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 탄탄한 실력을 토대로 향후 지역적 특색과 풍부한 민족적 특색을 지닌 문화정수를 발굴, 정리하여 조선족민간이야기를 다룬 창작애니메이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혁신과 탐색을 이어가고 있다. 다년간 영상매체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둔 회사는 당과 정부로부터 선진단위, 인재유치혁신공헌상(引智创新贡献奖), 외주봉사스타기업, 아웃소싱스타기업상(服务外包明星企业奖), 소비자만족단위, ‘계약신용 중시’ AA급 기업, 성장형 스타기업, 로동보장준법성실단위 등 영예를 획득하였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필자는 한성호 사장과 회사의 미래와 비전을 두고 대담을 나누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업종에 몸 담글 생각인가요?” “그럼요. 재미 있습니다. 낚시질하는 재미라고 할가. 직원들이 밤을 패가며 제작한 작품이 방송에 나가는 것을 볼 때면 그 짜릿한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외에 또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요?” “애니메이션 제작에 종사하는 한편 그와 비슷한 분야로 가지를 뻗어가고 있어요. 회화, 음악, 틱톡 쪽으로 말입니다.” 현재 한성호 사장은 이중 신분이다. 하나는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 사장, 다른 하나는 장백산예술가협회 회장이다. 이중 신분으로서의 그 분의 사명감은 그 누구보다도 투철하다.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 사장으로서의 역할이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회사 사장으로서의 사명은 회사의 발전방향과 관리라고 봅니다. 아무리 전업성, 기술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회사라면 우선 정확한 발전방향을 잡고 그 방향에 따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관리는 회사내부 관리와 회사 고객에 대한 관리 두가지를 말합니다. 물론 회사의 업무, 특히 기술에 대해서 너무 모르면 방향의 제정과 그에 따르는 관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장백산예술가협회 회장으로서의 역할이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조선족화가들의 작품 전시플랫폼이 협소합니다. 다른 성, 시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장백산예술가협회를 꾸렸지요. 장백산예술가협회 회장으로서의 사명은 미술, 촬영, 음악 등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 교류할 수 있고 나름 대로 능력을 한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주류협회와 발 맞추어 가면서 ‘무대에 설’ 기회가 없는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또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서 그 분들이 제나름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게끔 하고 또 그런 활동을 통하여 시장을 형성하고 형성된 시장에서 경제적 효익이 나오게끔 하는 겁니다.” 역시 애니메이션이 천직인 걸가. 한성호 사장은 본업과 관련된 이야기로 취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에 아동영화 혹은 아동만화라는 딱지가 붙어있는데 실제 애니메이션은 어른이건 아이건 할것없이 볼 수 있는 영상물 표현방식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른 관람용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들도 많이 나오고 있고 또 실사영화에서도 특수효과는 실제 애니메이션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을 맞으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룡룡의 연변탐험〉이라는 홍보영상을 만들었는데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로부터 효과가 아주 좋았다는 평가도 받았고 앞으로 애니메이션방식으로 계속하여 진행해야 한다는 긍정도 받았습니다.”   사진 제공 | 연길 금성문화과학기술유한회사 《예술세계》 2022년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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