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길
□ 손룡호
2015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퇴직하게 된 나는 새로운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깊이 고민하였다. 오랜 시간 공직에 몸 담으며 쌓아온 경험과 열정을 어디에 쏟아부을지 고민하던 중 문득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연변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를 세웠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거의 9년간 영화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그동안 미니영화 63부, 사회인물 기록영화 22부, 사회문화생활 기록영화 27부, 사회음악예술활동현장 기록영화 15부, 총 127부의 영상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중 6부는 성, 주, 시 인민정부 유관 부문으로부터 우수상을 수여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나는 원래 소설을 쓰던 사람이다. 그래서 퇴직한 뒤 장편소설 몇편을 완성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소설창작보다 더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였다. 이 욕망을 굳히게 된 데는 내나름의 몇가지 리유가 있었다.
첫째는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면서 성장하였고 세상을 읽고 꿈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영웅인물들의 본보기의 힘은 상당히 컸다. 어린시절에는 영웅이 되고 싶었고 영웅처럼 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둘째는 2000년초에 있었던 어느 한 만남 때문이였다. 내가 지인들을 조직하여 만든 ‘우리 가족 산악회’란 등산팀에서 젊은 촬영사 허영일을 알게 되였던 것이다. 허영일은 사진과 영상촬영에 아주 능숙하였고 음반도 제작했다.
안도 계관산으로 등산 갔을 때 나는 산꼭대기에서 쉬는 짬에 옆에 앉은 허영일에게 문득 이런 물음을 던졌다.
“영일이는 앞으로 무얼 하고 싶소?”
“영화촬영을 하고 싶습니다.”
당시 나는 영화촬영을 하자면 장춘영화촬영소나 북경 8.1영화촬영소에 들어가야만 가능하다고 여겼고 그런 촬영소 변두리에도 못 가보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꿈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불가능한 꿈을 접으라는 권유 같은 건 안했다.
그런데 그 날 나눈 대화가 저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았을 줄이야! 만약 그 때 허영일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나의 영화제작의 꿈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제작의 꿈은 마치 천메터 넘는 높은 산을 마주했을 때 꼭 올라가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같았다. 영화는 내게 올라가보지 못한 산이였다. 한번뿐인 인생, 그 산을 오르지 못한 채 바라만 보다가 떠난다면 얼마나 허탈할가? 못해본 일이기에 더 간절히 해보고 싶었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불장난 같았지만 이미 결심은 굳혀졌다.
당시 연변에는 영화협회가 없었다. 나는 이 분야에 뜻을 둔 사람들을 모아 영화협회를 설립하기로 결심하고 허영일에게 련락하여 함께 준비사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일정한 기량을 갖춘 애호가들과 함께 협력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저 협회이름을 ‘연변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라고 정하였다.
2016년 7월 8일에 사단법인 허가증을 받고 그해 10월 28일에 연길시 대주호텔 2층에서 설립대회를 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말은 안해도 속으로는 우리 협회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결심은 드팀없었다. 세상일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부족점을 메우고 조금씩 더 성숙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1. 10분짜리 무성미니영화 《발자취(足迹)》
2016년 6월에 장춘에서 동북아미니영화축제가 있었다. 국내외적으로 2,178부의 미니영화작품을 접수하고 90편의 후보작 가운데서 사회투표수로 우수작을 선정하기로 했다. 우리 협회에서 만든 10분짜리 무성미니영화 《발자취》가 사회투표 1위로 당당히 선정되였다.
당시 우리 협회는 금방 설립되여 인재, 기술, 자금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였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과감히 참가해야 했다. 나는 자기를 낮추어보고 남을 높이 보면서 뒤로 숨는 것을 제일 혐오한다. 잘났든 못났든 일단 나서보는 것이 자기를 키우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대조하고 비교해야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잖겠는가.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나는 특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영화를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무릎 아래 다리의 움직임으로 인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였다. 첫 장면은 태여난 지 한달도 안되는 갓난아이의 포동포동한 두 발이다. 이어 물가에 서있는 서너살 되는 아이의 두 발, 물속에서 장난치는 아이의 두 발, 모래밭에서 장난하는 소년의 두 발, 사랑을 속삭이는 처녀총각의 두 발이 화면에 나타난다.
영화 촬영중 가장 위험했던 두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첫번째는 삶은 위험과 함께 하는 려정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두 다리가 진흙구뎅이에 빠지는 장면이였다. 8월 중순, 여름 홍수가 지나간 뒤라 강가에 밀려온 진흙이 쌓인 곳이면 촬영이 가능하였다. 어디가 좋을가 궁리하던 중 오래전에 내가 집체호로 내려갔던 마반산의 강이 떠올랐다. 마반강은 부르하통하와 해란강이 합쳐서 흐르는 터라 강가에 진흙이 잘 쌓이였다. 촬영팀을 거느리고 강가에 도착해보니 과연 진흙층이 섬처럼 드러나있었다. 내가 먼저 바지를 높이 걷어올리고 발끝을 저겨디디며 걸었다. 발이 점점 깊이 빠지더니 잠간새에 무릎을 넘었다. 두 다리를 빼기 힘들 정도였다. 바로 여기다 싶었다. 촬영팀은 그 곳에서 먼저 녀자의 두 다리가 빠지는 장면과 남자가 다가와 녀자를 도와 함께 빠져나오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실로 고생이 막심했다.
두번째는 초겨울 살얼음이 낀 강에서의 장면이였다. 사랑하는 녀자가 살얼음이 낀 강을 건너지 못해 강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뒤에서 남자가 나타나더니 녀자를 등에 업고 살얼음이 둥둥 떠있는 강을 저벅저벅 걸어 강 건너에 이른다. 뼈속까지 시린 찬물 속을 걷는 두 다리가 얼마나 시릴지 보는 사람마저 몸서리칠 정도였다.
두 장면 모두 힘들고 위험한 역할인지라 남한테 맡길 수 없어 남자역을 내가 맡았었다.
간난신고 끝에 탄생한 작품이여서일가, 무성미니영화 《발자취》에 대해 어느 영화전문가는 이렇게 높이 평가하였다.
“목전까지 무릎 아래 두 다리로 영화를 제작한 단체는 연변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착상이 독특하다. 인물형상을 얼굴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갓난아이의 두 발로부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는 늙은이의 앙상한 두 다리로 끝내면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철학을 예술적으로 잘 구현하였다.”
2. 내 연기실력은 어느 정도일가?
극본에서 제시한 인물설정에 알맞는 배우를 선택하는 것은 영화의 진실성과 예술성을 보존하고 향상하는 데서 아주 중요한 환절이다. 가장 효과적인 연기는 감독과 배우의 협력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배우는 극본인물에 빠져들어갈 줄 안다. 극본을 읽으면서 이야기줄거리, 인물환경, 배우의 심리를 빨리 포착한다.
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 회장이라면 연기실력도 어느 정도 갖춰야지 않을가 싶은 마음에 나는 치매로인이 등장하는 영화극본을 쓰고 직접 치매로인역을 맡았다. 극본 속 치매로인은 퇴직교원으로 치매에 걸린 후 자식들을 알아 못 보고 밥을 손으로 집어 먹으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그리고 주방에서 밥 짓는 며느리를 ‘엄마’라고 부른다. 이 극에서 아들과 며느리 역은 실제로 나의 아들과 며느리가 맡았다.
내 연기가 리얼했는지 출국했던 친구가 그 영화를 보고 귀국하여 ‘병문안’을 온 우스운 일까지 있었다. 그렇게 꽤 좋은 평판에 나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내 연기실력이 어느 정도 인정 받았으니까. 그래서인지 배우들은 나의 연기지도에 곧잘 따라주었다.
3. 자금 없이 어떻게 영화를 제작할가?
우리한테는 영화제작 경비가 엄청 부족하다. 사람들은 경비도 없이 어찌 영화를 제작하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우리는 돈 없이도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하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가? 한마디로 회원들의 헌신정신이다. 촬영장소로부터 복장이며 교통수단이며 식사비용까지 촬영에 참가한 분들이 도맡는다. 필요한 배우가 부족할 때도 촬영에 참석한 배우와 제작일군들이 토의하여 적당한 배우를 채용한다.
그리고 나는 극본을 쓸 때면 자금투자가 수요되는 촬영장소들과 소품은 피한다. 국내의 큰 도시나 외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비행기에 앉아 가는 장면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가지, 가정집, 우리가 챙길 수 있는 음식 등등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로 국한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경비가 별로 안 든다.
그러나 한가지 부담만은 떨쳐버릴 수 없다. 촬영사들이 젊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은 촬영하여 돈을 벌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을 한두번만 채용하고 끝내야 한다. 고맙게도 그들은 우리 사정을 잘 알기에 수고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일년에 한두번씩 봉사하는 셈 친다며 웃어넘긴다.
초기에 나는 극본쓰기, 감독 같은 건 혼자 해낼 수 있었지만 촬영과 편집에 대해선 문외한이였다. 특히 편집은 촬영한 장면을 극본에 맞게 하나하나 련결하고 대사를 번역해 자막을 넣어야 하며 적절한 음악을 골라 배경에 깔아주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런 편집작업은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며 예술적 감각과 세심한 처리능력이 필수이다. 나는 게으름없이 하나하나 열심히 파고들었고 허심히 물어가면서 배움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나였기에 9년 동안 영상을 직접 찍고 직접 편집하였다. 극본, 감독, 촬영, 편집, 자막번역, 음악작업을 모두 내 손으로 해냈다. 이 작업은 본래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혼자서 모든 것을 배워가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투자 없이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직접 하다보니 이젠 이 방면에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한다.
올해 3.8국제부녀절 경축작품으로 다큐기록미니영화 《할 일이 있다》를 제작하여 시청자들에게 선물하였다. 촬영에 소요된 시간은 하루 반, 편집작업시간은 일주일, 투자비용은 고작 식비 206원이다. 206원으로 미니영화 한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누가 곧이 듣겠냐만은 사실 우리 협회는 그냥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4. 믿기지 않은 기적
지난해 8월 4일, 미니영화 《즐겁게 날리는 민들레꽃》을 찍기 위해 촬영팀과 연기자들은 연길시 남산 아래에 집합하였다. 그런데 약속시간인 오전 8시 30분이 지나도록 두 주역배우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련락도 안되고 모두들 실망에 찬 표정들이였다. 나는 그들의 로고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올라갑시다. 오늘 촬영은 변함없습니다.”
“주인공이 없는데 어떻게 촬영합니까?”
“다른 사람한테 맡기겠습니다.”
나는 먼 종친누나의 남편인 김광범에게 련락하여 사정을 설명하였다. 김광범은 마음씨가 착하고 동정심이 많아서 누가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언제든 도와 나서는지라 갑작스런 요청임에도 시간을 어기지 않고 촬영장소에 나타났다.
“매형, 영화촬영을 하는데 군중역을 맡아줘야 하겠소.”
나는 주역배우라고 하면 그가 부담을 가질가봐 군중역이라고 속이였다.
“매형이 나오는 장면은 오후에 촬영하겠소. 오전에는 촬영현장을 따라다니면서 남들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잘 관찰하면 되오.”
오후 한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두 주역배우가 빠진 상황에서 한 역은 내가 맡고 다른 한 역은 김광범에게 맡겼다. 나는 김광범에게 연기표현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김광범은 설명에 따라 인츰 촬영에 몰입하면서 맡은 역할을 하나하나 훌륭히 완성했다. 영화 상영식에서 김광범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손감독의 부름을 받고 남산으로 달려가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렇게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다니요.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영화는 이런 식으로 촬영해서는 안된다. 주역배우 없이 대역으로 하루 만에 촬영을 마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제작에 경험이 없는 아마츄어배우가 자기 역할을 출중하게 소화해내 촬영을 성공시켰다. 내막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영화를 잘 제작하였다고 칭찬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해냈다는 사실이다.
5. 끝없는 배움의 즐거움
퇴직하여 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를 세우고 업무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모르는 일들이 엄청 많았다. 극본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극중 대화는 어떻게 설정하는지, 심리연기는 어떻게 표정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촬영장비는 어떻게 설치하고 록음설비는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며 또 어떤 위치에 놓아야 록음효과가 좋은지, 주인공의 정서를 잘 살리려면 어떤 음악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들이 엄청 많았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한번 물어서 잘 터득이 안 가면 다시한번 물어보면 된다. 상대방이 짜증을 내면서 잘 알려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물어보면 된다.
나는 영화 제작에 관련해 박준희, 리창균 감독한테서 가르침을 받았고 영화촬영에 능란한 방호범, 영상제작에 능란한 허영일, 정춘길, 강성철 등에게 수없이 문의하면서 응당 장악해야 할 기술들을 하나하나 익혀냈다. 중문으로 자막번역을 하다가 막히면 주위의 슈퍼나 약방의 한족판매원한테 문의하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다 나의 스승이였다.
세월이 류수처럼 흘러 연변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를 세운 지 어느새 9년 철을 잡는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것을 문의하면서 걸어온 해수도 9년인 셈이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계속 문의할 것이다. 이제는 문의하는 데 미립이 텄다. 부끄러울 대신에 즐겁기까지 하다.
그렇게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 나는 올해로 70살에 접어들었다. 이제 계속 문의하면서 80살에 접어들 것이다. 숨이 멈추는 날까지 문의는 계속되고 영화는 계속 출품될 것이다. 5.1국제로동절을 맞으면서 내놓은 다큐기록미니영화 《할머니와 손자》를 저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다면서 영화제작 수준이 전보다 많이 향상되였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배움의 용기와 신심을 더 굳히게 된다. 모르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대담한 도전인가!
《예술세계》 2025년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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