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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배우 김문혁
2024년 04월 30일 10시 00분  조회:743  추천:0  작성자: 예술세계
내가 아는 배우 김문혁
□ 방미선


 
 
2024년 3월 8일,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김문혁배우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먼길을 떠났다는 애달픈 소식을 접했다.
연기력이 한창 물오른 40대 중반에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던 김문혁이 14년간의 힘든 투병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토록 사랑했던 무대와 관객들의 곁을 떠났다. 이젠 모든 아픔과 힘들었던 세월을 훌훌 털어버렸으니 먼길을 떠나는 걸음이 가벼우리라 생각되면서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고 김문혁배우 

1. 김문혁배우와 나
1992년에 김문혁배우를 알게 되였다. 당시 최인호 연출가와 함께 신진배우 모집차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 연기전공 졸업생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중 퍽 나이 들어보이는 학생이 바로 김문혁이였다. 선생님을 통해 그가 네번이나 시험을 보고서야 음악학부에 입학했고 후에 전공을 연기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은근히 그한테 관심히 쏠렸다.
그후 연길시조선족구연단 공연에서 그가 펼치는 소품연기를 보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 과정에 순간순간 보여주는 톡톡 튀는 생동감과 그 생동감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특징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연기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보귀한 재부이고 쟝르의 구분 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우수한 ‘종자’임에 틀림없었다. 그 때 나는 그런 보귀한 ‘종자’를 품은 그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꼭 훌륭한 배우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출가는 흔히 중요한 드라마나 연극 혹은 소품을 만들 때면 자연히 극중 주인공이거나 주요 배역 적임자로 먼저 생각나는 배우가 있다. 내가 텔레비죤드라마 《백설화》와 《샘》의 연출을 맡았을 때 주인공 역으로 제일 먼저 떠올린 배우가 바로 김문혁이였다. 1994년에 촬영한 드라마 《백설화》에 출연하기 전에 그는 주로 희극소품연기로 관객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 드라마 연기를 펼친 적 없었지만 나는 고민 없이 정극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그를 선정하였고 1996년에 촬영한 드라마 《샘》의 주인공으로도 역시 그를 택했다. 이 두편의 드라마에서 그는 주인공 형상을 기대 이상으로 출중하게 창조했다.
이렇게 우리는 직장 동료로 지낸 적도 없고 사적으로 막역지우도 아니지만 각자 자신의 예술생애에서 각별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죤드라마 《백설화》와 《샘》에서 연출가와 주인공 역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으로 오랜 시간 특별한 우정을 이어왔다.

 
 텔레비죤드라마 《샘》의 주인공 일가족(오른쪽 두번째 김문혁)
 

2. 김문혁배우가 들려준 이야기
드라마를 함께 만들면서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이는 내가 의도적으로 화두를 던지군 했는데 그것은 연출가로서 효률적인 연출 진행을 위해 배우를 잘 알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였다.
유전 때문인지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작곡가이지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해서 집에 여러가지 책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그는 언제든지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예술학교 근처에 집이 있다보니 매일 보고 듣는 게 노래와 악기 소리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책 읽기는 물론 음악에도 마음이 쏠려 한때 예술학원의 기량 높은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클라리네트와 색소폰을 배우고 손풍금도 쳤고 또 미술공부도 좀 했는데 크면서 흥취가 점차 독서에만 집중되였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책 속의 많고많은 이야기와 각양각색의 주인공들의 형상에 깊이 감동하고 감탄하면서 멋진 글을 써내는 작가에 대해 존경과 숭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였다.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가? 좋은 책을 써내는 훌륭한 작가로 될 수 있을가?’ 작가의 꿈이 서서히 가슴 속 깊은 곳에 싹이 트면서부터 고중생이였던 그는 리과공부를 뒤전으로 하고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문학서적 읽기에만 전념했다.
청춘의 혈액은 마술사란 말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당찬 꿈이 마술처럼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책 속 인물들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던 데로부터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연극이나 드라마에 관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꿈은 신명나게 연기를 펼치는 배우로 바뀌였다.
배우로 되고픈 욕망은 돌연 쓰나미의 기세로 김문혁을 덮쳤다. 강렬한 욕망의 충동하에 문과에만 열중하고 그외 모든 학업을 포기했다. 자리에 누워도 배우꿈, 수업시간에도 배우꿈에 빠지다보니 리과 성적이 바닥을 쳤고 나중엔 아예 고중을 중퇴해버렸다. 그리고 배우꿈을 향한 첫걸음으로 예술학교 응시를 준비했다.
아버지 혼자 월급으로 온 집식구가 살아가는 형편이라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에 아무 것도 안하면서 공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밥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벽돌공장에서 운반공으로도 뛰였고 석탄을 차에 싣고 부리우는 막일도 했고 삼륜차로 작은 식당이나 편리점에 물건을 날라다 주기도 했다. 아무튼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다 했다. 아무리 어지럽고 힘들어도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고 아무리 괴롭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넘기 힘든 언덕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고중시기에 놓쳐버린 수리화(数理化)과목이였다.
그는 련속 3년 예술학원에 응시했다. 전공시험에는 쉽게 합격되였는데 수학, 물리, 화학 시험에 통과되지 못해 세번 다 미역국을 먹었다. 세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는 시험을 보느라 훌쩍 지나버린 3년이 너무 아깝고 여기저기 고된 막일에 부대낀 3년 세월이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여서 아무데라도 화풀이를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 어느 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예술학원 청사를 빙빙 돌다가 음악학부 주임 사무실의 유리창을 묘준해 힘껏 돌팔매를 날렸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박살났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캄캄한 예술학원 마당의 한복판에 두 다리를 떡 뻗치고 서서 “예술학원인데 전공이 합격되면 입학시킬 게지, 수리화는 무슨 수리화!” 하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그제야 숨통이 좀 열리는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더럭 겁이 났다.
물론 곧 사실이 탄로 나서 예술학원 보위과(保卫科)에 불리워갔다. 이미 엎지른 물이라 다시 퍼 담지도 못하고 퍼담을 생각도 없는지라 어떤 처분이 떨어질지 운명을 그냥 하늘에 맡겨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 한바탕 호된 꾸지람만 듣고 무사히 풀려났다. 알고보니 예술학원 지도부에서 그가 저지른 사건이 중대하고 영향이 안 좋지만 얼마나 예술을 사랑했으면 세번이나 시험을 봤겠는가, 얼마나 예술학교에 붙고 싶었으면 이런 일까지 저질렀겠는가고 하면서 선처했던 것이다. 눈물이 찔끔 났다. 물론 교수 아버지의 덕을 많이 입은 건 두말할 것 없지만. 그런데 그 뒤 예술학원에 김교수가 ‘괴물’아들을 두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그는 ‘뿔난’ 아버지를 꽤 오래동안 슬슬 피해다녀야 하는 곤혹을 치렀다.
이듬해 그는 또다시 시험장에 들어섰다.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야 할지, 얼굴이 두껍다고 해야 할지. 네번째 시험은 그에게 있어서 리상이나 꿈을 떠나서 사활을 건 전투였을지도 모른다. 그번에는 요행 문화과 시험을 통과하여 끝내 음악교육학부에 입학했고 한달후 운 좋게 그 해 마침 새로 설립된 연극학부로 적을 옮겼다.
배우로 가는 길이 마침내 열렸다. 그 길을 걸으면서 그는 속으로 몇십번, 몇백번을 윽벼르며 천번 만번 자기와 굳게 약속했다고 한다. 시험으로 흘려보낸 4년을 꼭 되찾고 앞으로 맞이하는 세월을 더 의미 있고 알차게 살겠다고…
그는 해냈다. 자기와의 약속을 굳건히 지켰다. 다년간 70여부의 소품을 무대와 텔레비죤 화면에 선보였는데 그중 자체로 창작, 연출, 출연한 소품이 40여부나 되고 3부의 텔레비죤드라마에서 주인공 형상을 멋지게 창조했다. 그는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연기창조로 조선족의 ‘웃음의 별’ 영예와 함께 수많은 팬을 가진 진정한 배우로 성장했다.
사실 ‘아깝고 억울하게’ 흘려보낸 그 4년은 되려 그가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된 시간들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읽은 수많은 책들이 그의 기억 창고에 빼곡이, 두텁게 축적되여 예술창조의 자양분으로 발효되였고 그가 비지땀을 휘뿌렸던 벽돌공장 운반공일, 석탄 부리우는 막일 그리고 삼륜차로 물건 나르는 일은 그야말로 그를 ‘웃음의 별’로 탄생시킨 기름진 밑거름이였다.
책에 매달려 책과 씨름했던 세월이 있었기에 극본을 마주하면 곧바로 기억 창고에서 생생한 인물형상을 찾아낼 수 있었고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눈물로 적셔진 젊은 시절의 다양한 생활체험은 인물형상창조에 단비로 되여 그로 하여금 소품세계의 ‘웃음의 꽃’으로 활짝 필 수 있게 했던 것이다.
텔레비죤드라마 《샘》을 찍을 때 내가 “주인공이 삼륜차를 몰 줄 알아야 하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삼륜차 모는 걸 잘 배워야겠소.”라고 했더니 그는 대뜸 “삼륜차 말입니까? 삼륜차 몰기라면 내가 선수지요.”라고 하면서 허허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텔레비죤드라마 《샘》의 한 장면

 
3. 소품 〈딱꿍〉과 두꺼운 혀
나는 김문혁과 단 한번 소품을 함께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2002년에 공연된 〈딱꿍〉이다. 원래는 예술학원 연기전공 학생들의 련습용이였는데 배우를 잘 선택하면 뭔가 좀 될 것 같아서 김문혁을 불렀다. 전화를 받고 곧 달려온 그는 당시 예술학원 학생이였던 애 엄마 역을 맡은 배우와 대사를 맞췄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발음이 좀 이상했다.
소품 제목이 〈딱꿍〉이고 대사 전반에 ‘딱꿍’이란 대사가 쫙 깔려서 처음부터 ‘딱꿍’ 소리를 챙챙하게 내야 되는데 그의 발음에서 ‘딱꿍’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귀를 강구어 자세히 들어도 잘 들리지 않자 대사맞춤을 중지하고 그더러 ‘딱꿍’ 소리를 크게 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챙챙한 ‘딱꿍’ 소리는커녕 목소리가 점점 더 흐려지더니 나중에는 헛기침 같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안되겠어요. 딱꿍 소리가 전혀 안 들리네. 웬 일이지?”
그가 허구픈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방연출, 내 원래 혀가 이렇게 두껍습니다. 보세요.”
그러면서 나를 향해 혀를 쑥 내밀어보였다.
“어이구, 쓸데없이 무슨 혀타령이지?”
내가 덩달아 허구픈 웃음을 짓자 그가 정색해서 말했다.
“사실 내 혀가 정말 기뚝차게 두껍습니다. 혀가 두꺼운 바람에 발음이 똑똑하지 않아 여태껏 얼마나 고생했는지 압니까? 예술학교 때 연기공부를 하면서 내절로 터득한 건데요, 혀를 구부려야 하는 대사는 내절로 다른 대사로 살짝 수정하군 했습니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오늘 요놈 ‘딱꿍’ 탓에 그만 탄로났네.”
그 말에 그의 혀를 다시 자세히 보니 확실히 좀 두꺼워보였다. 그래서 그더러 혀를 입천장에 대보라고 했더니 혀가 너무 두꺼운 탓에 혀가 입천장에 닿지 않고 겨우 앞이 안쪽에 닿았다. 나는 하도 어이 없어 박장대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품대왕의 혀가 이 모양일 줄은 몰랐네. 비밀은 꼭 지키겠으니 문혁이 이번 소품은 그만둡시다. 다른 배우를 찾겠어요.”
그랬더니 그가 생억지를 부렸다.
“안됩니다. 비밀도 지켜야 되고 소품도 내가 해야 됩니다.”
〈딱꿍〉이 별로 대단한 작품이 아닌지라 나는 그런대로 연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수수한 작품일지라도 배우 이름에 걸맞게 성의를 다해야 하고 관객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딱꿍’ 소리가 들리지 않는 〈딱꿍〉을 정성 다해 열심히 련습했다.
요즘 위챗계정에 올라온 〈김문혁선생님이 출연한 재미 있는 소품 10편 모음〉에 있는 〈딱꿍〉을 다시 보았더니 그 때 그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딱꿍’ 소리를 방연출의 요구 대로 챙챙하게 내지 못하지만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서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라고 정색해서 말하던 그의 모습도 눈앞에 삼삼하다.
 
4. 택시 료금에 깃든 우정
2019년 겨울의 어느 하루,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려고 길에 나섰는데 그 날 따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배우들과 련습약속을 한 터라 속이 바질바질 탔다. 문득 택시 한대가 속력을 줄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찬찬히 보니 조수석에 손님이 앉아있기에 나는 또 락심하고 큰길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택시 안에서 “방연출! 방연출!” 하는 어눌한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머리를 돌려 보니 김문혁이였다. 그가 나 보고 빨리 뒤쪽에 앉으라고 손시늉을 하자 나는 오랜만에 만나 반갑기도 하고 또 시간 때문에 안달이 났던 터라 제꺽 뒤자리에 앉으면서 어디로 가는가고 물었다. 그도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침 맞으러 간다고 하면서 나 보고 어디로 가는가고 물었다. 음력설야회프로 련습하러 텔레비죤방송국에 간다는 말에 그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애처로운 마음에 내가 얼른 “문혁이가 많이 나아져서 참 보기 좋네. 택시를 잡지 못해 애 탔는데 이렇게 만나서 너무 반갑고 고마워.”라고 위로해줬다. 그사이 택시가 연변병원 동문 부근에 다달았다. 택시가 멈춰서자 그는 꼬깃꼬깃 접은 돈 20원을 운전수에게 건넸다. 내가 급히 허리를 굽혀 운전수 손에 놓인 돈을 받아서 그의 손에 쥐여주었더니 돈을 받고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운전수에게 빨리 떠나라고 손짓하는 한편 그 돈을 다시 택시 안에 던졌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터져나오려는 흐느낌을 애써 참으면서 차창 밖으로 머리를 한껏 내밀어 휘우뚱거리며 저만치 걸어가는 그의 뒤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배우는 인기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하늘나라에서도 김문혁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 또다시 작품도 만들고 무대에도 서고 드라마에도 얼굴을 내비치고… 그리고 그의 곁에 또다시 열정적인 팬들이 모일 것 같다. 이게 바로 내가 아는 배우 김문혁이다.
 
 
방미선 │ 연출가
《예술세계》 2024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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