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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를 꿈꾸는 아들에게(1)
2022년 02월 28일 12시 45분  조회:443  추천:0  작성자: 예술세계
프로듀서를 꿈꾸는 아들에게(1)
□ 김광현
 
김천룡, PD의 꿈을 안고

    아들아, 너를 북경에 보낸 지 벌써 한달이 되여온다. 네가 간 후 아버지는 많은 걱정을 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 또 네가 꿈꾸는 다큐멘터리 PD란 직업이 진정으로 너의 적성에 맞을지 말이다. 시청자들은 평소 텔레비죤을 통해 재미 있는 프로그람을 보면서도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간고한지를 모른다. 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다큐멘터리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많은 고민을 했다. 네가 텔레비죤 프로제작 사업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영상매체와 거리가 먼 영문학과를 나왔고 취미생활도 스포츠였으니 말이다. 그런 네가 다큐멘터리에 도전하려고 하니 나부터 잘 달통되지 않았다. 그동안 너는 아버지가 하는 텔레비죤 쪽의 일에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흥취도 없어보였으니 말이다. 너의 일시적인 호기심일가 봐 걱정이 되였던 것이다. 남들이 하니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장난기 섞인 생각이라면 애당초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아까운 시간만 랑비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네가 마음을 굳혔다고 하니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네가 내 뒤를 이어가겠다고 하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부전자전이니 말이다. 텔레비죤방송 쪽의 일은 보기에는 멋지고 쉬운 것 같지만 남모르는 고생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하기에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이다. 사전 기획부터 자료수집, 기획서 작성, 촬영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단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종합예술로서의 텔레비죤방송사업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호기심에 접어들었다가 결국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힘들어 두 손 들고 물러났다. 무더위나 혹한에 무거운 장비를 옮기며 촬영하는 일도 힘들지만 그런 어려움은 근근히 시작에 불과하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화면정리를 해야 하고 거듭되는 편집과정은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분, 초를 계산하고 따져가며 방송시간을 맞추는 일은 최고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네가 중학교에 다닐 때가 바로 아버지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느라 정신 없이 바쁠 때였다. 너도 기억할 거다. 그 무렵, 아버지는 제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늦게 집에 와서도 프로그람을 구상하느라 량미간을 찡그리고 있었지.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괜히 너한테 화를 내군 했었다. 지금도 그 때 일들을 생각하면 너한테 미안하기 그지없구나. 사춘기였던 너에게 아버지로서 따뜻한 사랑을 주지 못했고 속심의 말도 못 나누었다.
    제작에서부터 방송까지 가는 험난한 길은 늘 시간이 부족하고 유감이 남았다. 시간적으로 늘 일에 쫓기다보니 가정적으로도 합격된 남편이나 아버지가 되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촬영을 나가게 되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고 작업현장에서 일에 집중하다보면 남들과 소통할 시간이 부족했다. 한마디로 텔레비죤 쪽의 일은 고생 자체이다. 어려움을 이겨낼 자신이 없으면 아예 일찌감치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좋을 거다. 다행히 너는 어릴 때부터 한가지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끈질긴 아이여서 그나마 시름이 놓인다. 이번에도 너는 인생을 걸고 도전을 시작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제 너의 책임PD인 K와 련락이 닿았는데 그동안의 너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더구나. 다행히 네가 제작팀에서 잘 적응하고 있고 생각 밖으로 팀원들과 잘 어울린다니 한시름 놓인다. 네가 성격이 내성적이라 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할가 봐 은근히 걱정했었다. 네가 촬영팀의 팀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 있다니 그 방면은 아버지가 너를 잘 리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너는 제작팀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이다. 내가 너를 추천했을 때 K는 그렇게 반기는 태도가 아니였다. 허나 전에 아버지와 한 약속이 있어 시험 삼아 몇달 두고보자고 했다. 그런데 네가 팀에서 벌써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팀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니 네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먼저 텔레비죤방송사업의 작업환경에 잘 적응해야 한다. 급급히 PD나 촬영 쪽에 붙어 배우겠다는 욕심을 가지지 말거라. 지금은 전반 다큐멘터리 촬영과정을 잘 료해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러자면 부지런해야 한다. K의 말로는 네가 촬영현장에 도착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사전 준비작업을 잘해놓고 있다니 아주 잘하는 일이다. 그리고 촬영사, 조명사, 록음사들의 일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어 모두들 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아무튼 먼저 사람과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너의 심정이 어떠할지 아버지는 잘 안다. 촬영팀에서 네가 하는 모든 궂은일, 힘든 일들은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다. 아버지도 처음 촬영팀을 따라 나갔을 때엔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허나 그런 것들은 내가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단다. 모든 일을 마음으로 하거라. 어디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그리고 너 자신의 발전에도 리로울 것이다. 아래의 몇가지를 명심하거라.
    첫째, 촬영팀의 온갖 자잘한 일들을 도맡아하게 되면 촬영팀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인차 파악할 수 있다.
    둘째, 각 부문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셋째, 솔직히 말해 부모자식간에도 일이 사랑이라고 네가 남을 잘 도와주면 싫어할 사람이 없다.

 
김천룡, 다큐멘터리 〈이화원〉 촬영현장에서
   
    아버지는 네가 찍어 보낸 〈이화원〉 촬영팀 작업현장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50여명이나 되는 스태프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촬영현장에서 너의 존재가 미약하게나마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뻤다. 아버지가 몸 담았던 지방 텔레비죤방송국에는 한팀에 스태프가 기껏해야 서너명이다. 너희들처럼 방대한 팀은 책임PD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스태프중 어느 누가 제 앞가림을 못하면 전반 촬영팀에 피해를 주게 된다. 하기에 PD는 자연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성질이 사나운 PD는 입에서 욕이 떠나지 않기도 한단다. 아버지도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젊은 촬영사나 제작일군들을 많이 다그치고 혼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일을 추진할 수가 없으니까. 저절로 다 알아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PD의 통합적인 조률이 없으면 일이 잘 안될 때가 많다. 물론 촬영이 끝나면 기분을 풀어주지만 비평 받은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너희들이 지금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이화원〉은 력사제재인 만큼 어려움이 더 클 것이다. 나라를 대표하고 세계적인 범위의 시청자를 대상하여 제작하는 방대한 작업인 만큼 어떤 실수도 용납 안되는 일이다. 이 또한 너를 단련시키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K는 성격이 급하고 일이 잘 안되면 제작팀을 닥달하기로 이름 나있다. 아마 너한테도 례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눈치를 봐가며 소신껏 알아서 하기 바란다. 어제 전화에서 다음달부터 너를 자기 곁에 두고 보조로 일을 시키겠다고 하더라. 네가 하도 열심히 배우려 하고 눈치껏 잘하니 점 찍고 양성하려나보다. 이것은 아버지가 생각지도 못했을 만큼 빠른 진전이다. 전번에 그가 너한테 한번 호통을 쳤다고 들었다. 그것은 네가 미워 그런 것이 아니라 일하다보면 때론 대신 욕을 먹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달도 안되는 네게 무슨 그렇게 큰 실수가 있어 욕을 했겠니. 말하자면 ‘일벌백계’인 셈이다. 그런 걸 감수해야 앞으로 네 발전에 더 유리할 수 있다. PD 곁에 바싹 붙어서 전반 팀을 어떻게 이끌어가는지를 배우고 일하는 방법도 어깨너머로 배워야 한다. 그렇게 방대한 력사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PD가 따로 너를 챙겨줄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은 너의 열정과 탐구하려는 노력에 달려있다.
    너의 팀 성원들 거개가 학교에서 영상매체를 전공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기 죽을 것까지는 없다. PD는 꼭 전업적으로 배운 사람만이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너처럼 영어를 전공한 사람이 PD가 되는 경우도 많고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PD가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것은 PD사업에 대한 애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너는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니 세가지 언어를 장악한 큰 우세를 갖고 있다. 앞으로 영문 관련 참고서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또 외국에 나갈 기회도 있을 수 있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니 영어 원판 다큐멘터리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여 참 잘된 일이다.  
    물론 방송 관련 전공이 PD의 일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꼭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버지의 경험에 비춰보면 전공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오히려 인간, 문화, 사회 등 자신을 둘러싼 주변세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인 것 같다. 덧붙여 PD라는 직업은 영상 콘텐츠라는 작품을 만들어 대중과 함께 나누는 일이므로 예술적인 감성과 소통능력을 갖고 있으면 그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잘 알다싶이 아버지도 사실 배운 전공이 따로 없다. 개인의 취미에 따라 영화사업에 종사하게 되였다. 17살부터 영화에 미쳐 날뛴 경력이 후에 다큐멘터리 PD로 되는 데 유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빠졌다. 영화극본을 달달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파악하였고 전쟁영화나 사랑영화 등 쟝르를 가리지 않고 보았다. 아버지가 본 영화만 해도 아마 수천편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고정하고 시간 날 때마다 세계의 유명한 다큐멘터리프로를 많이 보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여러가지 생활경력이 풍부했고 또 어려서부터 독서를 많이 해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쌓았다. 이는 PD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끈질긴 노력을 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PD로 거듭날 수 있었다. 너도 노력만 하면 아버지를 훨씬 초과할 수 있다. 너는 신세대의 산물을 많이 접수했고 또한 컴퓨터에 능하고 집에서 프로그람 제작도  일년정도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산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다. 북경이라는 이 문화중심에서 너도 생각이 커질 수 있고 멀리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림시스태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꼭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아들과 함께

    네가 전번에 나한테 한 질문이 생각난다.
    “PD가 되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선 참된 인격을 갖춰야 한다. 모든 분야의 전문일군들을 평가할 때 먼저 인격을 론하는 것도 바로 이런 원인이다. 그리고 PD가 되려는 리유를 스스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고민도 나중에 네가 훌륭한 PD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것은 첫걸음부터 착실히 시작해야 한다. 급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노력과 시간이 너를 훌륭한 PD로 만들어줄 것이다. 아버지도 오늘이 있기까지는 오랜 사회경험과 책임감 그리고 텔레비죤방송에 대한 애착과 뼈를 깎는 노력이 컸을 뿐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쌓은 경험이 오늘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자산’이 되였다. 네가 진정 텔레비죤방송 직업에 마음을 붙인 것 같아 아버지는 기쁘기 그지없다.
    식사를 거르지 말고 건강을 잘 챙기기 바란다. 촬영현장에서 버텨내려면 건강이 첫째다. 너는 신체가 건강하고 운동을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짬짬이 운동을 견지하거라. 어머니가 네 걱정이 크다. 나한테는 전화 안해도 되지만 어머니한테는 문자라도 자주 하거라. 사랑한다. 아들, 힘내라!
2011년 9월 1일
 
《예술세계》 2022년 1호
 
 
김광현 프로필
화룡현 농촌이동영화방영대 해설원.
연변영화공사,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연변위성텔레비죤방송국 등에서 40여년간 프로그람 사회자, 편집, 번역,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약.
미국 남캐롤라이나주 그린별 영상아카데미에서 5년간 과외로 다큐멘터리를 공부함.
주요작품: 10부작 력사 다큐멘터리 《영원한 기념비》, 12부작 력사다큐멘터리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4부작 휴먼다큐멘터리 《정률성》 등 수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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