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를 꿈꾸는 아들에게(3)
□ 김광현
아들아, 네가 북경에 간 지도 벌써 반년이 다되여오는구나. 네가 일이 재미 있다고 하니 아버지도 한시름 놓인다. 그러나 네가 다큐멘터리 촬영이 재미 있다고 하는 것은 그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지 텔레비죤프로의 실질을 알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전번에 네가 다큐멘터리 관련 리론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런데 지금 촬영팀에서 조감독을 맡고 있으니 다큐멘터리에 대해 따로 체계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국내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공부하면서 짬짬이 필기해둔 것과 그동안의 실천경험들을 결부하여 정리해 보내주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네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전문도서를 읽는 것에 못지 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큐멘터리의 정의에 대해서는 한자 그대로 기록(纪录)으로 리해하면 쉬울 것이다. 기록이란 단어를 쓸 때에는 반드시 사실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되여있다. 문학쟝르에 비유한다면 실화문학에 가장 근접할 것이다. 누가 어떤 사실을 기록할 때 그것을 영상화하면 사진이 되고 영화로 기록하면 기록영화가 되며 여기에 이야기를 가미하면 다큐멘터리가 되는 것이다. 즉 다큐멘터리는 사물의 존재나 인간의 행위 그리고 인간의 형태를 꾸밈없이 기록하면서 PD가 말하고저 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적 행위인 것이다. 이런 기록은 책, 그림, 사진으로도 할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살아서 숨 쉬듯 움직이는 동영상이라고 본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실질이다. 내가 다큐멘터리 PD로 있으면서 사귄 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해주군 했다.
“어느 한 시대를 묘사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시사해주는 방향이자 기준인 것이다. 영화는 극작가나 감독의 예술수준에 따라 감동을 가미하거나 놀라움을 표출해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고유의 능력만으로 한 시대를 담아낸다.”
여기서 ‘고유’란 말에 주의를 돌리기 바란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특성이 될 수도 있다. 얼핏 보면 리해하기 힘든 말 같지만 한마디로 다큐멘터리는 어디까지나 실제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고유의 특성은 PD가 다루고저 하는 모종의 제재에 그 어떤 허구도 가미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전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면서도 초보자들이 해결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향촌》 촬영중
나는 다큐멘터리 《정률성》을 제작할 때 진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정률성이 태여나고 성장한 고향에 가서 생가의 진실성을 기하기 위해 당지의 로인들과 력사학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상해, 서안, 연안, 태항산, 북경 등지를 다니면서 당년에 정률성과 함께 항일전쟁에 투신했던 전우들과 음악가들을 찾아 취재하였다. 참으로 힘든 작업이였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여러 곳을 찾아다닌 것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사진에다 해설을 곁들이거나 인터뷰로 대체하면 그 진실성과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력사다큐멘터리일 경우 많은 사실들이 불확실하게 제기되기도 하는데 이는 PD의 연박한 지식과 세밀한 분석에 의해 처리되여야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특정된 상황과 특정방식에 따라 특정된 집단에 의해 제작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말이 내포한 의미도 아주 중요하다. 지금 너희들이 촬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중국원림》은 PD를 주축으로 한 특정된 전문가 멤버들이 팀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잘 파악해두는 게 좋을 거다. 전번에 너희들이 인터뷰한 사진들을 보니 중국의 이름난 학자들과 원예사들이 대거 등장하더구나.
내가 해방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영원한 기념비》의 PD를 맡았을 때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해나더구나. 오래동안 외국에서 다큐멘터리 공부를 했기에 잘해내고 싶은 욕망은 컸지만 그에 비해 해방전쟁시기 조선족들의 활동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기를 부리고 맡아나선 것은 내 주변에 그 시기의 력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았고 또 해방전쟁에 참가했던 로전사들이 생존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특수군체의 물심량면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방대한 력사다큐멘터리에 감히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 한결 쉬울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내용을 취급하면서 공부도 하게 되여 더욱 재미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 갈등도 많았지만 그런 갈등을 해결하고 통일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훌륭한 학습기회였고 다큐멘터리 PD로 성장하는 과정이였다고 생각한다. 근 3년간 연변에서부터 멀리 해남도에 이르는 기나긴 원정취재를 거쳐 제작된 10부작 다큐멘터리 《영원한 기념비》는 살아 숨 쉬는 력사다큐멘터리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였다.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사회자 동천과 함께 절강에서 취재중인 김천룡(오른쪽)
그외에도 다큐멘터리는 사실기록과 이야기 형식을 접목하는 데 많은 정력을 할애하게 된다. 이런 접목을 통해 현실의 다양한 모습들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것이 텔레비죤프로 특유의 중요한 형식이다. 다큐멘터리는 교양부문이 주요 축을 이루고 있으나 최근에는 그 분야가 차츰 확대되여 보도와 오락 부문에도 활용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그 쟝르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력사사실과 밀접하게 련관된다. 이런 연고로 너의 담당PD K도 력사제재의 다큐멘터리에 많이 치중하는 것 같다. 력사다큐멘터리는 한번 재미를 들이면 자꾸 빠져들게 되는 게 그 매력이다. 제작과정이 힘들어 다시는 력사제재에 대한 다큐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도 프로가 완성되여 방송되고 나면 성취감이 생기면서 또다시 달라붙게 되는 게 현실이다.
내가 미국 그린빌영상아카데미에서 공부할 때의 필기장을 펼쳐보니 이런 구절이 유표하게 눈에 들어오더구나.
“현대생활을 주도하는 매체로서의 텔레비죤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의 서로 다른 취향과 스타일에 맞게 의미 있는 정보와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도 그 의의를 둔다.”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시청자들은 천차만별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감상수준과 취미를 골고루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안고 가야 할 힘든 과제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적 재현과 허구적 창조라는 이중작업 사이에 위치해있다. 그러면서 텔레비죤 본연의 역할을 동시적으로 수행하는 데 어울리는 프로형식이라 할 수 있다.
네가 보낸 사진을 보니 너희들도 력사사실을 재현하는 것 같더구나. 력사사실에 기초한 재현은 어떻게 보면 허구인 것 같지만 또 진실한 것이기도 하다. 너도 재현에 참가해 군중역할을 맡아했다니 참 잘했구나 싶더라. 비록 재현이기는 하지만 그 시기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은 앞으로 PD로서의 감각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어쩔 수 없이 시대적인 분위기가 늘 동반되여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일정한 력사사실에 기초한 상상력에 의한 재현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특별히 재현과정을 중시하고 즐겨 조직했다.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 《시인은 동 트는 곳에서 왔다》는 조선족의 이름난 시인 김철의 일대기를 다루었는데 적지 않은 부분에 재현처리를 했고 좋은 효과를 보았다.
공적 매체로서의 텔레비죤다큐멘터리는 교육적 혹은 계몽적 기능과 오락적 역할이라는 다종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둘러싸고 론난이 끊이지 않는 원인 역시 이 두가지 속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있다.
《다큐멘터리와 력사》란 책에서는 “보수적 집단에 의해 교육적 의무가 지나치게 강조되여 대중성을 상실하는 문제와 반대로 대중성의 요청에 따라 지나치게 오락적이 되여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는 문제, 이는 제작자를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나도 이런 딜레마에 빠져 고민을 많이 했던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러한 이중적 역할을 수행하는 매우 적합한 프로형식으로서 앞으로 더욱 중시를 받게 될 것이다.
오래동안 텔레비죤방송 제작에 종사해온 선배PD들은 한결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근대적 성향이 가장 강한 텔레비죤프로들은 당분간 세계적 차원의 문화교류를 매개하는 채널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는 글로벌시대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전인류적인 문화소통역할을 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무한하게 성장하는 다큐멘터리프로는 대중들의 삶의 거울로 되여 새로운 인간관계의 바람직한 양식과 륜리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과거와 미래를 위한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력사적 작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많은 다큐멘터리 PD들이 오랜 실천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또 아래와 같은 정리도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제날의 력사를 집단적으로 기억해낼 수 있고 또한 오늘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래일의 그림을 창조적으로 그린다. 요컨대 다큐멘터리는 현재 우리 삶의 성찰과 과거의 흔적을 확인하고 미래의 방향탐색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미 깊은 사회소통적 실천이자 력사적 글쓰기 자체와 같은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복수적인 시간들을 이어주는 련결작업, 타임머신에 의한 시간려행의 의미 있는 작업이다.”
텔레비죤다큐멘터리가 력사 리해의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양한 다큐멘터리프로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겹쳐지는 력사적 현실을 구체화된 이미지로 인식할 수 있다. 그 이미지영상은 기존의 신문, 잡지들의 문자적, 구술적 정보에 비해 그 력사적 기억보존 효과가 훨씬 크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력사 또는 현실 그 자체라는 말은 아니다. 력사와 현실에 대한 특별한 재현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당시의 력사를 보는 시선, 현실을 재현하는 틀 그리고 사태를 느끼는 시대적 감수성 등을 알아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통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복잡한 시공간적인 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리론들을 당분간은 리해하기 어렵겠지만 네가 앞으로 직접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하다 보면 리해될 것이다.
나도 1990년대 중기에 처음 다큐멘터리프로의 PD를 맡았을 때는 지금의 너처럼 리론적인 지식도 경험도 없었다. 영화일을 하면서 많은 명작영화들을 본 것이, 한편의 영화를 수십번 반복해보면서 이야기줄거리부터 매 장절의 내용까지 숙지했던 것이 유일한 장점이였다. 그리고 후에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리론공부도 하고 경험도 모색하였다. 그러니 다큐멘터리 리론지식을 배우는 데 관해서는 급해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일하면서 배워도 충분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종류가 다양하다. 시사다큐멘터리, 의학다큐멘터리, 환경다큐멘터리, 인물다큐멘터리, 문화다큐멘터리, 력사다큐멘터리, 자연다큐멘터리 등이 있다. 지금 네가 조감독을 맡고 있는 《중국원림》은 력사와 자연이 결합된 다큐멘터리에 속한다.
이만하면 다큐멘터리에 대한 리론적인 정의와 력사, 현실적인 작용에 대해 웬만큼 적었다고 생각한다. 시간 날 때마다 요점을 찾아 자주 보기 바란다.
나는 요즘 우리 집 서재를 시골에 옮기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가끔 시골집에 가서 조용히 있노라면 힘들게 일하고 있을 네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러나 그것이 네가 선택한 길이고 가야 할 길이기에 이 아버지는 가슴 아프지 않고 되려 뿌듯해난다. 내 아들이 바야흐로 중국의 주류문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힘내라, 아들. 연변은 이제 완연한 봄이다.
2012년 5월 21일
《예술세계》 2022년 3호
김광현 프로필
화룡현 농촌이동영화방영대 해설원.
연변영화공사,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연변위성텔레비죤방송국 등에서 40여년간 프로 사회자, 편집, 번역,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약.
미국 남캐롤라이나주 그린빌영상아카데미에서 5년간 과외로 다큐멘터리를 공부함.
주요작품: 10부작 력사다큐멘터리 《영원한 기념비》, 12부작 력사다큐멘터리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4부작 휴먼다큐멘터리 《정률성》 등 수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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