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저무는 하루, 화창한 날씨에 초가을은 무르익어가고있었다. 나는 한국의 한중친선협회 이승래부회장과 금강사 묵개(墨介)주지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 자리잡은 중국인민지원군묘지에 갔다.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보가위국》의 호소를 받들고 《힘차고 기세높이…》를 부르며 조선전쟁에 참가했던 이들은 전장에서 희생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장장 60년이 지나도록 이국땅에서 잠들고있지 않는가…
한국의 중국인민지원군묘지
전쟁으로 말하면 한국인에게 있어서 중국인민지원군은 말그대로 적군이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이 묘지는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아 잘 가꾸어져있었다.
입구에는 표시판이 세워져있고 묘지는 잔디밭이고 길은 세멘트포장, 층대는 화강암으로 되였다. 그외에도 화장실, 가로등, 주차장 등 필요시설이 갖추어져있었다.
이 묘지의 정식 명칭은 《북한-중국군묘지》이다. 이승래부회장의 소개에 따르면 원래는 《적군묘지》라고 했는데 묵개스님을 비롯한 민간단체에서 사람이 죽어도 적군이라 하겠는가면서 정부에 적극 제안을 해서 오늘과 같은 명칭을 달게 되였다고 한다.
묘지의 총면적은 6000여평방메터로서 작은 축구장만하다. 동쪽 제1구역에는 조선인민군유해가 묻혀있고 서쪽 제2구역에는 중국인민지원군 유해와 조선인민군 유해가 묻혀있다. 이곳에 안장된 유해는 총 1107구인데 그중 중국인민지원군 유해는 367구이다.
묘지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왼쪽으로부터 이승래부회장,묵개스님,필자.
지원군묘지가 있는 제2구역에 들어서면 우선 잘 정비된 잔디밭과 줄지어 늘어선 대리석비석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지원군묘비는 모두 중한 두 문자로 되였는데 전사자들의 명함과 신분은 밝힐수 없어 그냥 《중국군》, 《무명인》으로만 표시했고 발굴지점, 안장날자, 비석번호를 새겨놓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2006년 이후에 안장된 전사자들의 묘비에는 발굴지가 표시되지 않았고 그중 많이는 전쟁당시에 이미 합장한 상태라 그대로 이장해서 단순히 《중국군 4구》, 《중국군 24구》라고만 새겨놓았다.
《원래 이 묘지는 1996년에 세워졌는데 작년 9~10월에 한국정부에서 제네바협정에 따라 5억을 출자하여 묘지 재단장을 했다. 전국적으로 발굴된 유골을 이곳에 집중하였고 볼품없는 봉분대신 평장으로 조성하였으며 묘비도 나무대신 대리석으로 하고 주위환경도 새롭게 단장했다.》고 이승래씨가 설명을 달았다.
그럼 유해는 어떻게 묻었는가 하는 물음에 묵개주지스님은 《유골을 발굴한후 유전자검사를 해서 전통토기항아리에 담았다. 여럿이 발굴되면 합장을 했는데 제일 많은것이 81구에 달한다.》고 했다.
중국인민지원군전사자에 대한 묵개주지스님의 정성은 각별했다. 묵개주지스님은 수년간 밤마다 령혼을 위로하여 불공을 드렸다.
똑 똑똑… 밤마다 들려오는 스님의 귀익은 목탁소리에 영령들은 마음의 안정을 다소 찾는것만 같았다.
수년간 불공을 드리고있다는 묵개스님.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성이 대단했다. 한국병사들이 묘지를 지키고있었고 지정된 군부대가 1년에 수차씩 벌초를 한다. 한국에는 《북, 중군묘지평화포럼》(상임대표 권현철)이란 민간단체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는데 70~80명 잘되게 온다. 와서는 벌초, 헌화하고 술을 따르고 음식을 차리는데 다 자비로 한단다.
금년 7월 21일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 “화해, 평화, 통일, 상생”을 주제로 한 임진평화제를 치렀는데 200명 실히 왔다.
행사 그날 한국의 국민가수 설운도씨가 작사작곡한 노래 《귀향》을 소프라노 임청화씨와 설운도씨가 불렀는데 특히 설운도씨가 불렀을 때 온 행사장을 감동의 울움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설운도, 귀향, 울음바다?)
음악이 몸에 밴 나로서는 귀맛 당기는 소리라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소개에 따르면 묘지 재단장은 쉽게만 이루어진게 아니다. 시초엔 반발이 컸다고 한다. 특히 6.25참전병사들의 항의가 거셌다. 그러나《 죽은 적에게 손을 내밀수 있어야 진정한 용사》라는 설득에 이들이 유골수습에 직적 참여하였고 나중에 유골을 안장하면서 《친구야, 잘 가!》라고 작별인사까지 하였다고 한다.
지원군묘지마다에 장미꽃송이가 놓여져있었다. 따사로운 해빛이 어머니손길마냥 고이 잠든 영령들을 쓰다듬는다. 화해와 정성이 묘지의 쓸쓸한 분위기를 다소 쓸어주었다.
임진평화제가 있은후 많은 중국인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임진평화제에 참가한 중국류학생 왕기는 묘지를 보고 너무 가슴 아팠고 화해, 평화적 분위기에 감동을 받고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 당시는 적군이였지만 잘 관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느낌을 터놓았다고 한다.
나는 중국에서 가져온 술병을 꺼냈다. 추모의 정을 담은 술이 봉분에 쓸쓸히 흘러내린다. 그것은 정녕 내 가슴속의 눈물이였다. 묵개스님, 이승래부회장 등도 나와 함께 묵념을 했다.
일행이 희생된 지원군전사들에게 묵념을 하고있다.
이곳에 와서 판가리 싸움에 뛰여든 전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서서히 떠오른다. 이들은 단순히 병사만은 아니리. 우리와 다를바 없이 어머니의 아들, 귀여운 자식의 아버지, 사랑하는 녀인의 남편이지 않았는가. 그런 그들이 그리운 어머니 품을 떠나, 그리운 자식과 안해를 떠나 장장 60년간이나 이국타향의 외딴 산비탈에 쓸쓸히 묻혀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났다.
오- 고이 잠드시라, 지원군영령들이여!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화해와 평화의 마음을 안고 이들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중히 모셔온 한국분들의 넓은 흉금과 지극정성에 위안을 받아 감격의 물결이 잔잔히 일었다.
오- 고마운 한국분들이여!
기획:남희철 구원 / 글:남희철
임진평화제 한장면(자료사진).
겨울에도 묘지를 찾은 권현철(왼쪽 두번째)상임대표와 회원들(자료사진).
새단장전 묘지에서 묵개스님(자료사진).
길림신문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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