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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안중근 기념관 건립은 일본의 군국주의 심장 겨눈 총탄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27일 13시21분    조회: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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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19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지점을 표시하는 이전의 바닥석으로 세모난 무늬가 안 의사가 총을 쏜 곳이며 나란히 선 세명중 가운데 사람의 발밑 네모난 무늬가 이토 히로부미가 총맞은 지점이다. ⓒ 하성봉
안중근 의사 부활로 중∙한∙북∙러 항일연합전선 구축…안 의사의 '동양 평화론' 창조적 계승필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賓)역에 2014년 1월 19일 안중근(1879-1910) 의사의 기념관이 건립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가 이끄는 일본이 노골적으로 군국주의 길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 105년전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일으킨 역사적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09년 10월 26일 조선과 중국 영토 침탈에 나섰던 일본 제국주의를 주도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격살했던 안중근 의사가 105년이 흐른 지금 기념관 건립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 것은 복잡한 동북아 정세에 놓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기념관은 아시아 제패라는 헛된 꿈을 안고 군국주의 길로 광란의 질주를 벌이고 있는 아베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해 맞서는 한국과 중국의 상징물이다.

이와 함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안중근 의사는 기념관을 통해 부활해 아베 총리가 벌이는 미치광이 침략성 놀음에 맞서 일본의 군국주의 심장에 새롭게 총탄을 겨누고 있다. 어렵사리 성사된 기념관 건립의 의미와 과제를 살펴본다.

안중근 의사 관련기사 : [하성봉의 중국이야기 7] 안중근, 거사 전 11일 동안 무슨 일을 했나

▲ 안중근 기념관 건립에는 하얼빈의 조선족 지식인들의 공이 컸다.재중동포로 중국 1급 화가인 취안우쑹(權伍松) 교수가 그린 작품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 장면으로 오른쪽에 안 의사가 '받들어 총'을 하고 있는 러시아 병대속에서 이토를 저격하고 있다. ⓒ 하성봉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457

일본 군국주의 시계 105년전 그대로 멈춘 채 고정…기념관 9시 30분 벽시계 역사적 상징물

2014년 1월 19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지점을 표시하는 이전의 바닥석으로 세모난 무늬가 안 의사가 총을 쏜 곳이며 나란히 선 세명중 가운데 사람의 발밑 네모난 무늬가 이토 히로부미가 총맞은 지점이다. ⓒ 하성봉 2014년 1월 19일 공개된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擊殺)한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 역에 세워졌다. 기념관은 의거 현장 앞에 있던 귀빈실 일부를 고쳐 약 200㎡ (60.5평)크기로 만들어졌다. 기념관 내부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족관계와 가정교육, 신앙 등 생애, 안중근 의사의 흉상을 비롯해 의거 당시 사진과 설명자료, 유묵 등 110여점이 전시됐다. 기념관은 중국 정부의 관리하에 무료로 개방된다.

특히 역사내부에 들어가지 않고도 기념관 안에서 대형 유리창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의거현장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1909년 당시 의거 현장이었던 1번 플랫홈의 천장에는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 (安重根擊毙伊藤博文事件發生地 1909.10.26)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게 걸려 있다.

또 기념관 입구 바깥외벽의 문양과 전등 등 장식품은 1909년 당시의 하얼빈 역사를 본떠 만들었고,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10월 26일 당시 거사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멈춘 대형 벽시계 모형이 역사적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다. 마치 105년전 폭압적인 대륙 침략에 날뛰었던 일본 제국주의 시계가 더 이상 행진을 멈추고 그대로 멈춰 오늘에 이른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기념관 영상 보기 <흑룡강신문> : http://kr.cntv.cn/home/index.shtml

아베의 군국주의 행보 좌시할 수 없다는 경고…중∙한∙북∙러 한꺼번에 묶는 항일 방어벽 구축

▲ 안중근 기념관 입구 바깥외벽의 문양과 전등 등 장식품은 1909년 당시의 하얼빈 역사를 본떠 만들었고,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10월 26일 당시 거사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멈춘 대형 벽시계 모형이 역사적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다. 출처=바이두

안중근 기념관 입구 바깥외벽의 문양과 전등 등 장식품은 1909년 당시의 하얼빈 역사를 본떠 만들었고,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10월 26일 당시 거사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멈춘 대형 벽시계 모형이 역사적 상징물로 만들어져 있다. 출처=바이두 중국은 왜 이 시점에 안중근 기념관을 건립했나? 기념관 건립의 이면에는 복잡한 국내외 정세가 얽혀있다. 애초 중국은 그간 안중근 의사의 거사 지역인 하얼빈역에 표지석을 세워달라는 한국쪽 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측에 안중근 의사 의거 표지석 설치를 요청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안중근 의사가 조선인이란 점에서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민족주의가 강화할 가능성과 일본과의 관계, 외국인 기념비를 세우는 데 대한 중국인의 반발을 의식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06년 1월에는 한국인 사업가가 하얼빈 중심가인 중앙다제(中央大街)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웠다가 11일만에 철거됐으며 이후 국내로 운반돼 현재 경기도 부천시 안중근 공원에 세워져 있다. 또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었던 지난 2009년에도 중국은 각종 기념행사를 불허했다.

그러다가 2012년 12월 일본의 아베 정권이 출범한 뒤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 문제로 갈등이 증폭되자 중국은 일본에 대항할 지원세력이 필요했고 이번에 한국과 공동전선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즉 최근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일본의 침략적 태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꺼낸 안 의사의 기념 표지석 설치 요청에 따라, 2013년 11월부터 표지석보다 한층 격상된 기념관 건립과 격살지점 표지판 설치라는 통근 화답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안중근 의사는 북한에서 김일성 전주석이 1928년 혁명연극을 직접 창작해 공연하고 김정일 전 위원장이 1979년 영화를 직접 제작할 정도로 중시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도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여서 기념관 건립은 중국∙한국∙북한∙러시아를 한꺼번에 묶는 항일 연합방어벽 구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중국은 껄끄로운 남북관계를 의식해 이번 개관식 행사에 남북인사의 초청없이 단독으로 간소하게 치뤘다.

이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들어선 자리는 1930년대 일제가 이토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던 곳이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수립뒤 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안중근 의사의 의거 개요만을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그러나 당시에 안중근 의사가 조선인이라는 내용은 없었다. 이 마저도 1990년대 후반 하얼빈역 보수공사를 하면서 없어졌고, 이후 역에는 의거 현장을 표시한 바닥석만 남겨놓았다. 물론 바닥석 주변에는 어떠한 표지판도 없었으며 최근까지 이곳을 답사하려면 기차표를 사서 들어가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중국인들, 안 의사 기념관 건립에 열렬히 환영…중국 외교부, 일본 항의에 적극적 반박과 해명

안중근 기념관은 의거 현장 앞에 있던 하얼빈 역사 귀빈실 일부를 고쳐 약 200㎡ 크기로 만들어졌다.내부에는 안 의사의 생애, 흉상을 비롯해 의거 당시 사진과 설명자료, 유묵 등 110여점이 전시됐다. 출처=신화왕 중국인들도 열렬히 반기는 분위기다. 2014년 1월 23일자에 중국 네티즌 장진양(張金陽)은 개관을 축하하는 시를 인터넷에 올렸다.

▲ 안중근 기념관은 의거 현장 앞에 있던 하얼빈 역사 귀빈실 일부를 고쳐 약 200㎡ 크기로 만들어졌다.내부에는 안 의사의 생애, 흉상을 비롯해 의거 당시 사진과 설명자료, 유묵 등 110여점이 전시됐다. 출처=신화왕

항일 의사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역사를 새로 썼네.(抗日義士安重根, 標榜史冊哈爾賓)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서 목숨을 잃었고, 민족 정의는 살아났네.(藤博文立毙命, 民族正義得以伸)

그 곳을 기념해 오늘 기념관을 여니, 당시 역사가 되살아나네.(紀念之地今開館, 當年歷史要重溫)

군국주의는 반드시 전멸되고, 불의를 거듭하면 반드시 망하나니.(軍國主義必覆滅, 多行不義必被焚)

한국이 중국을 높게 평가하는데,아베는 원한 품고 마음이 괴롭다.(韓國高度評價中, 安倍懷恨且郁悶)

중한은 우방의 의를 지속하고, 손잡고 소일본을 억제하세.(中韓再續友邦誼, 携手遏制小日本)

중국 외교부도 기념관 건립을 공식천명하고 일본의 항의를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 안중근 의사가 당긴 총구에서 불을 뿜게 만든 것은 ‘동양평화론’이라는 선각자로서의 사상과 이론이었다. 기념관에 걸린 자료에 '동양평화의 창의자'로 소개되고 있다. 출처=신화왕

스가 요시히데(菅義僞) 일본 관방장관은 2014년 1월 20일 안 의사 기념관 건립에 대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면서 중국의 안 의사 기념관 건립 조치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일본 TV 프로그램:

http://www.youtube.com/watch?v=9f48d6Mpb0g

이에대해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2014년 1월 22일 정례기자회견에서 "만약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라면 그럼 신사에 합사된 14명의 A급전범들은 뭐냐?"고 맞받았다. 그는 또 "기념관 건립이 테러리스트를 예찬하는 것이라면,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을 참배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라고 수위를 높였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도 1월 20일 "안중근은 유명한 항일의사이며 중국인민의 존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중국은 국내의 관련 규정에 따라 기념관을 건립했다"면서 "이는 완전히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일본의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중국 매체들도 대대적 보도로 항일 분위기 고취…저우언라이 총리부부,안중근 연극 계기로 결혼

안중근 기념관 건립에는 하얼빈의 조선족 지식인들의 공이 컸다.재중동포로 중국 1급 화가인 취안우쑹(權伍松) 교수가 그린 작품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 장면으로 오른쪽에 안 의사가 '받들어 총'을 하고 있는 러시아 병대속에서 이토를 저격하고 있다. ⓒ 하성봉 중국 매체들도 안 의사 기념관 건립의 배경설명과 의거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항일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 특히 안 의사의 의거 직후 당시 중국매체들의 보도내용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민위르바오>(民吁日報)는 안 의사의 거사뒤 사설에서 "조선의 원수는 우리의 원수이다. 비록 조선이 자신들의 원수를 갚았지만 우리가 원수를 갚은 것과 다를 게 뭐냐?"라고 썼다. 베이징의 <정쭝아이궈바오>(正宗愛國報)는 "조선에 인재가 없다고 다시 말하지 말라"고 했고, 톈진(天津) <다궁바오>(大公報)는 "조선이 나라는 망했지만 조선사람은 죽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개혁파 소설가인 황스중(黃世仲)은 광저우(廣州) <난웨바오>(南越報)에 연재한 <조선의 피>(朝鮮血)에서 안중근 등 한국애국지사들을 소개하면서 중국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중국 근대 사상가였던 양계초(梁啓超)는 96구절의 장시 <추풍단등곡>(秋風斷藤曲)을 지어 "붉은 피 다섯걸음으로 큰 일을 해냈고, 큰 웃음소리 산과 달처럼 높더라."(流血五步大事畢, 狂笑一聲山月高)라는 글을 남겼다.

▲ 조선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되지만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안중근 의사에 의해 1909년 격살됐다.출처=바이두
한 중국 매체는 이토 히로부미가 죽기직전인 1909년 10월 14일 일본을 떠날 때 기차에서 남긴 시 한편을 소개했다. "가을은 깊어 집을 떠나 먼길 떠나는데, 차창에 소리는 다하고 벌레 소리 들린다. 발해만 파도 밝게 천 척을 비추니, 충혼을 다바쳐 이번 길에 오르노라."(秋晩辭家上遠程, 車窓談盡聽蟲聲.明朝渤海波千尺,欲悼忠魂是此行) 이토는 이 시의 내용처럼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났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또 중국 항일 혁명가들의 당시 평가도 다채롭게 소개했다. 중국의 국부인 쑨원(孫文)은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쳤다.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드리운다"라고 칭송했다. 청말 민족주의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장타이옌(章太炎)은 안 의사를 "아시아 제일 의협(義俠)"이라고 불렀다.

조선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되지만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안중근 의사에 의해 1909년 격살됐다.출처=바이두 특히 안 의사를 계기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잉차오(鄧潁超)가 부부의 연을 맺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연이 알려져 흥미롭다. 덩잉차오는 15살 때인 1919년 여름 어느날, 21살로 모교인 난카이(南開)학교를 방문한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자신이 연습중이던 연극 <안중근>을 지도해달라고 했고 저우언라이가 이를 승낙하면서 둘의 사랑은 무르익어 결혼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저우언라이 총리는 1963년 6월 중조역사관련 담화에서 "갑오 중일전쟁후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중국과 조선인민의 공동 투쟁은 안중근의 하얼빈 저격에서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또 1910년 중국현대화극단인 '진화단'(進化團)이 창작극 <안중근이 이토를 쏘다>(安重根刺伊藤)를 수개월동안 공연했다. 또 1928년에는 상하이(上海)에서 안중근 의거를 다룬 영화가 제작, 상영됐다.

안중근 의사 정신 재중동포들이 지켜와…기념관 건립 이면에 동포 지식인들의 숨은 공로 커

이번 기념관 건립에는 하얼빈의 조선족 지식인들의 공이 컸다. 1909년 하얼빈에 조선인은 268명이었으나 현재 재중동포(조선족)는 10만명 정도로 늘어났다.

기념관 건립과 관리 총괄책임을 맡은 쉬허둥(54∙徐鶴東) 하얼빈시 문화출판국 부국장은 2014년 1월 2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 의사의 거사지점인 하얼빈 역 1번 플랫홈 위에 걸린 '안 의사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라는 설명표지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쉬 부국장은 "중앙에서도 '격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승인해 그대로 추진했다"면서 "단어에는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한 중국인과 한국인의 공통된 정서가 담겨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중국 정부는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 (安重根擊_伊藤博文事件發生地 1909.10.26)라고 새긴 표지판을 내거는 결단을 내렸다. 바닥석을 이전과 달리 밝은 색으로 눈에 띄게 표시했다. 출처=중신왕(中新網)

서 부국장은 재중동포들의 문화를 보급하는 공간인 '조선민족예술관'(朝鮮民族藝術館)을 2006년에 이전확대 설립한 하얼빈시 책임자로 그간 2층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보존해 왔다. 이번 기념관 관리를 담당하는 캉웨화(康月華) 여성관장도 재중동포다. 또한 기념관내 자료의 대부분은 재중동포 역사학자 쉬밍쉰(徐明勛)의 오랜 연구결과를 토대로 했으며 안 의사의 거사장면을 담은 대형 그림은 재중동포로 중국 1급 화가인 취안우쑹(權伍松) 교수가 그렸다.

안중근 기념관은 재중동포에게 큰 자부심으로 이후 하얼빈의 위상을 높일 새로운 역사유적지가 되길 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 (安重根擊_伊藤博文事件發生地 1909.10.26)라고 새긴 표지판을 내거는 결단을 내렸다. 바닥석을 이전과 달리 밝은 색으로 눈에 띄게 표시했다. 출처=중신왕(中新網)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씨앗 키워가야…동북아의 영구평화가 안 의사의 뜻 받드는 길

안 의사 기념관에는 '동양평화의 창의자'(東亞和平主義倡導者)라는 말이 있다.

안 의사는 법정 신문과정에서 "이번의 거사는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거사의 목적중 핵심이 '동양평화'라는 네 글자속에 응결돼 있다. 안 의사가 당긴 총구에서 불을 뿜게 만든 것은 '동양평화론'이라는 선각자로서의 사상과 이론이었다.

이론의 골자는 한∙중∙일 3국이 '상설 평화회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유럽연합(EU)같은 다자간 협의기구를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다. 그는 또 뤼순(旅順)항의 개방과 공동관리, 3국 공동은행의 설립과 공용 화폐 발행, 3국 군단의 편성과 2개 국어 교육을 통한 평화군 양성, 공동 경제발전 등 독창적인 평화안을 주창했다.

안중근 의사가 당긴 총구에서 불을 뿜게 만든 것은 '동양평화론'이라는 선각자로서의 사상과 이론이었다. 기념관에 걸린 자료에 '동양평화의 창의자'로 소개되고 있다. 출처=신화왕 이와 관련해 김영호 하버드대 초빙교수(한국사회 책임투자포럼 이사장)는 2014년 1월 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동양평화론'이 남북분단과 일본과의 갈등을 포괄하는 창조적 대안으로 적용가능하다고 제시해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유럽공동체가 밖으로 당시 소련의 도전에 공동대응하고 안으로 독일을 공동체의 틀 속에 묶어두었듯이, 동양평화론은 밖으로 서양 혹은 외부 제국주의의 도전에 공동대응하고 안으로 일본의 침략주의를 자신의 틀속에 묶어두려는 구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이 동북아 다자관계를 실현하는 전제조건이지만, 역으로 동북아 다자관계의 틀로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는 양면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단재 신채호는 동양평화의 상책은 '조선독립'으로 한국을 중간완충국으로 두는 것이었다"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신채호의 한국 역할론을 통합해 현재의 정세속에 창조적으로 적용할 때 한국의 동북아 건축학 개론의 서론은 이뤄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비록 미완으로 남았지만 이론의 핵심은 살아 있다. 앞으로 그 씨앗을 키우고 가꾸는 것이 우리 후손이 해야할 일이다.<계속>

미디어오늘 하성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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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2
  • (흑룡강신문=하얼빈)최근 중한문화콘텐츠연구소와 료녕 리플스영화제작사의 일행 6명이 대형 다큐멘터리 '조선족은 누구인가?'(가제명)의 촬영소재 수집과 동북3성내의 항일 유적지 현황 조사를 위하여, 현지 조선족 향토역사학자 전정혁 선생의 인솔하에 료녕성과 길림성 소재의 조선인 항일 투사들이 활동했던 지...
  • 2017-09-28
  • 회의 현장   (흑룡강신문=하얼빈)류설화 연변특파원 = 한락연연구회와 추기규화실이 주최하고 룡정시위와 룡정시인민정부가 협조한 “력사를 짚어보며 한락연을 회고하다”를 주제로 한 한락연기념활동좌담회가 27일 룡정시인민정부에서 펼쳐졌다.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며 한락연연구회 총고문인...
  • 2017-08-30
  • 中 선양 주재 총영사관에서 딸 등 유족 4명 참석해 받아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1920년대 간도에서 좌익계열 독립운동단체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김산해(金山海·1900~1970) 선생의 후손에게 건국포장이 전수됐다. 14일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주 선양(瀋陽) 대한민국...
  • 2017-08-15
  • 【진천=뉴시스】천영준 기자 = 충북 진천군은 6일 다큐멘터리 이상설의 길, 희망을 깨우다가 오는 14일 오후 11시40분 KBS 1TV에서 방영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상설 선생 동상. 2017.8.6.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진천=뉴시스】천영준 기자 = '헤이그 밀사' 사건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보재(溥齋) 이...
  • 2017-08-07
  • 위챗동아리 ‘우리동네 력사동네’ 화룡경내 력사유적지 답사  중국조선족력사를 관심하고 사랑하며 뜻을 같이 하려는 사람들로 모인 위챗동아리‘우리동네 력사동네’의 18명 회원들이 8월 3일, 제1차 답사활동으로 화룡시 경내의 반일, 항일유적들을 답사하였다. 연길시와 룡정시의 ...
  • 2017-08-07
  •   1. 중공만주성위옛터 현황   심양 중공만주성위옛터는 심양시 화평구 황사로 복안항 3호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터를 잡은 옛터는 남향으로, 탁 트인 방 여섯 칸과 한 칸의 세로 길이로 이뤄진 경산식(硬山式) 푸른 기와집이다. 옛터의 부지면적은 2,500평방메터, 건축면적은 740평방메터이다.  &nbs...
  • 2017-07-26
  • 홍기하 다리 우에서 7월 18일, 이른 아침 6시경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을 실은 뻐스는 연길예술극장 앞에서 출발하여 화룡시를 거쳐 선경대를 지나 두만강 강변길로 내처 3시간도 넘게 달려 홍기하와 두만강의 합수목에 이르렀다. 울창한 수림 사이를 빠져나와 거센 강물을 이루며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홍기하의 기세 찬...
  • 2017-07-25
  •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영국 왕실 사상 처음으로 흑인 시종 무관이 탄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 이민자인 나나 코피 툼마시 앙크라(38) 소령을 시종 무관에 임명했다. 시종 무관은 왕실 기마병을 지휘하고, 중요 행사 때 지근거리에서 여왕을 보좌하는 임기 3년짜리 요직이다. 부모를...
  • 2017-07-14
  •              7월 10일, 민족출판사, 중국조선민족사학회에서 주최한 《하북조선족사》출판좌담회가 민족출판사에서 개최되였다. 이날 행사에는 원 하북성민족종교사무청 청장, 《하북조선족사》편집소조 책임자, 주필 국지강, 《하북조선족사》 저자, 원 하북성 진황도시민족종교사무...
  • 2017-07-13
  • 료녕성 한락연 연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2017년 7월 10일 북경의 중앙민족대학캠퍼스에 위치한,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과 인류학연구소 1층회의실에서는  “2017 중국 조선민족 사학회 학술 심포지엄” 페회식에 앞서, 중국 조선민족 사학회 한락연 연구회(이하 한락연 연...
  • 2017-07-11
  • 우리 민족의 또다른 력사            (흑룡강신문=하얼빈)류설화 연변특파원 = 최근, 러시아고려인련합회 회장단 일행 10명이 연길시에 도착해 민족사유적지와 연변신흥공업구의 민족기업들을 위주로 며칠간의 연변지역탐방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른바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와 교류활성화를 ...
  •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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