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영향 대도시나 외국行
전성기 인구 25%만 남아
민족문화, 정체성 소멸 위기
남북 가교 역할 기대도 뚝
조선족의 대규모 한국행은 중국 내 거주 기반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맞물려 노동력 이동에 따른 조선족 사회의 공동화(空洞化)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의 터전인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 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 동북3성 거주 조선족은 한때 200만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불과 40만~60만명 정도로 급감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조선족 없는 조선족 마을
기자가 북ㆍ중 접경을 취재하기 위해 10월말 방문했던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거점도시인 옌지(延吉). 전통적으로 조선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보니 한민족의 기운이 깊이 스며든 도시다. 한글 간판이 즐비하고 한국말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옌지를 벗어나 시골마을로 진입하면 이 기운은 금세 사라져버린다. 조선족을 찾기도 힘들고 그나마 노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동북3성의 조선족 사회, 특히 농촌 공동체는 심각한 공동화 현상으로 문화적 색깔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옌볜대의 한 조선족 교수는 “1990년대와 비교해 조선족 마을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며 “조선족 없는 조선족 마을이 늘어나고 있으며 노인만 남아있다 보니 농사는 한족이 짓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멈추면서 조선족 학교까지 문을 닫고 있어 민족 문화의 맥도 끊기고 있다. 19세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정착한 조선족은 1945년 해방 당시 인구는 216만명. 지금 실제 거주 인구는 당시의 5분의 1로 떨어지고 민족적 정체성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농촌마저 노동력 이동에 따라 해체 위기를 맞고 있어 조선족 거주 기반의 소멸로 이어지리란 전망도 없지 않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만 해도 조선족의 76% 정도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지만 자치주 지위를 부여 받는 등 중국 정부로부터 나름의 대접을 받아왔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그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교류 가교 역할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는 동북3성 등 전세계에 널리 분포돼 있는 한민족이 향후 동북아시아의 갈등을 줄이고 미래를 견인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예견했었다. 그런 조선족 사회의 급속한 기반 붕괴는 가교의 소실에 비견될 만큼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조선족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데다 중국인 신분이라 북한과의 접촉에 있어서 한국인보다 훨씬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 동안 남북당국간 대화, 이산가족 상봉, 학술교류, 남한 시민단체의 대북사업 등에서 중재자 또는 도우미로 활약한 점만 봐도 이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수년째 한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해온 조선족 여행사 가이드는 “서울 부산 제주부터 평양 금강산 백두산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남북통일이 되면 나도 할 일이 많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ㆍ중수교 이후 빠른 속도로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조선족은 도움을 줬다.
중국 전문가들은 조선족의 가치는 북한과 접하고 있는 중국 동북3성의 지정학적 가치와 결합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창주 푸단대 박사는 “조선족이 한국으로 몰려들면 정작 조선족 마을의 정체성은 소멸돼 중국 내 지위가 떨어지고 남북간 가교 역할도 줄어들게 된다”며 “조선족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서 지원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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