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중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 왕청현 복흥농장 하니베리재배원은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태양을 피할 나무 한그루 없이 재배원 주변은 훤하고 전망이 좋았다. 2008년 4무 될가하는 밭에 심은 하니베리는 8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여 현재 33무 밭을 차지할만큼 재배에 성공했다.
이 재배원의 경영주 최유군을 만난건 그늘 한점없는 하니베리밭에서 였다. 그는 습관처럼 검게 그을린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쓸어내리며“지금은 이렇게 보여도 2014년까지 하여도 수없이 많은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였습니다”고 멋쩍게 말했다.
그때 나이 27세에 그는 청도를 떠나 다시 고향 왕청으로 돌아와 창업을 시작했다.“귀농 초반에는 다양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콩도 곡식도 모두 심어봤는데 일년내내의 로고와 수입이 맞먹지 않았던겁니다. 그렇게 한 3년쯤 흘렀을 때 마침 2008년 진정부와 림업소에서 하니베리묘목 재배를 널리 보급하는 시기를 맞춰 하니베리를 본격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작물재배를 하는 희열도 잠시 하늘에 맡겨 농사짓는 그에게는 그뒤로도 해마다 반복되는 실패가 현실로 이어졌다. 리상과 현실간의 괴리였다. 묘를 다듬고 키우고 흙 종류를 선택하고 시비, 제초 작업을 펼치고 해볕, 습도, 날씨변화를 가늠하는 작업은 상상보다 훨씬 고된 로동이였다.“원래 야생과일인 하니베리는 흙에 대한 요구가 민감했습니다. 첫해는 흑토, 이듬해는 늪지대토에, 또 그다음해는 동시에 재배하여 비교해보고… 함께 시작했던 다른 농가에서는 열매가 맺지 않는다고 묘목을 버리기도 했습니다.”그렇게 6년동안 주변의 권유에도 최유군은 인터넷으로 학습하고 부동한 조건하에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농사를 짓는다는것은 결과적으로 시간과 예측할 수없는 기대와의 겨룸인지 모른다. 2014년 하니베리 열매 몇상자를 수확한 그는 얼마안되는 수확에서 득도한것마냥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시장에 내놓았을때 정말로 뿌듯했습니다. 야생에서 자란 영양가가 높은 과일이라 판매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그때만 하여도 대중 수요는 있어도 재배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공급이 잘 안된 상황이였다.
거짓말같이 2014년이후부터 해마다 생산량이 온당해지고 재배면적이 확장되면서 드디여 수입이 생겼다. 그전까지 투자만 하고 보람이 없었다면 무엇보다 좋은 결과가 눈앞에 벌어진것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최유군은 귀농이후 창업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요즘 연변에 류행되는 딸기, 야채 채집에 맞춰 그는 자연에서 즐기면서 농장에서 농촌체험을 할수있는 하니베리채집을 막 구상중에 있다.
향후 계획에 관해 최유군은“ 하니베리를 재배할 의향이 있는 농호와 함께 가공공장을 세워 공동으로 하니베리의 부가가치를 높일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며 재배에만 그치지않고 재배와 관광, 가공 등 형식의 결합을 쭉 밀고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연변일보 글·사진 리명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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