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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벨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인간은 정말 특별할까”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4월8일 22시41분    조회: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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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서면 인터뷰
“인공지능은 자유민주주의에 위협 초래할 수도 있어”
 

가즈오 이시구로. ⓒLorna Ishiguro.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최근 신작 소설 <클라라와 태양> 한국어판 발간에 맞추어 한국 언론과 합동 서면 인터뷰를 했다. 이시구로는 신작 <클라라와 태양>을 비롯해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같은 작가의 전작들, 신작의 소재가 된 인공 지능 등 과학기술 발전과 인류의 미래, 코로나19 사태, 자유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생각을 두루 밝혔다. 질문과 답변을 추려 싣는다.

 

 

1.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4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17년 12월에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3년하고 몇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두 아시다시피,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록다운을 겪었지요. 그리고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로는 <클라라와 태양>을 마무리하고, 올해 다음 달에 촬영이 시작될 영화 대본도 쓰고 있었습니다. 제가 작업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이렇게 두 개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아주 잘 대응했지만. 영국에서는 록다운이 거의 1년, 1년 이상 이어졌죠. 1년간 외출을 못했고요.

 

노벨상 수상이 저의 글쓰기 또는 생활 방식을 바꾸었냐고요? 별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저는 <클라라와 태양>을 3분의 1 정도 집필한 상황이었거든요. 소설에 대한 제 계획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스톡홀름에서 돌아왔을 때도 모든 문제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여전히 제 서재에 있었습니다. 제 서재는 제가 두고 간 상태 그대로 어수선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노벨상 수상은 환상적이었지만 뭔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일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터로 돌아오자 모든 게 그대로였죠. 어쩌면 제가 다음 책을 쓸 때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쓰기와 비교하면 수상이나 출판 등의 일은 마치 다른 행성,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서재에서 글을 쓰는 건 매우 사적인 세상이거든요. 그래서 별로 그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60대가 되었을 때 노벨상을 수상했는데요. 어렸을 때 그런 일을 겪었다면 물론 당연히 상황은 바뀌었을 겁니다. 많은 노인들이 그렇듯 저는 지금 제 습관과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2. 작품의 배경을 영국으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좀 재미있는 내용인데요. 하마터면 배경을 영국으로 설정할 뻔했거든요. 책 집필을 거의 끝냈을 쯤, 미국으로 배경을 설정해 놓은 상황이었는데요. 배경을 영국으로 설정하면 스토리가 더 효과적일까에 대해 아내와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클라라와 태양>의 세계가 별로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설정을 미국에서 영국으로 바꾼다 해도 그리 큰 노력이 들지는 않을 거란 점을 깨달았죠. 마치 상상의 세계와 같거든요. 그래서 아마 한 2~3주 정도만 작업하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묘사 장면들 몇 가지만 바꾸면 될 것 같았죠.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 배경을 이런 미국으로 설정했을 때와 판타지 버전의 영국으로 설정했을 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러다가 아무런 확실한 이유 없이 계속 미국으로 설정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제게 미국이 훨씬 젊은 나라로 느껴졌다는 겁니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늘 변화를 겪는 나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회 기반이 영국 같은 오래된 국가들만큼 굳건하지 않습니다. 저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그것을 직접 개조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사회를 보여 주고자 했는데요. 과학과 기술에서 모두 엄청난 혁신이 일어났지만, 사회 자체는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회요. 그리고 어떤 매우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사회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정비할 수 있고 다시 정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이 그런 점을 훨씬 더 잘 반영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기술과 유전자 편집 분야에서 많은 혁신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그게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꽤 감정적인데요. 순전히 제 개인적인 관점인데, 제 머릿속에는 다양한 미국적인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1930대 미국의 미술과 그림에서 나온 이미지들이죠. 어쩌면 한국 독자들도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랠스턴 크로포드(Ralston Crawford), 찰스 실러(Charles Sheeler)와 ​​같은 화가들을 아실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들의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들입니다. 황량한 빈 들판과 커다란 하늘, 넓은 거리. 저 멀리 농장이나 녹색 승강대 같은 것이 보이고요. 이런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 그림들이나 어두운 도시 아파트나 미국식 식당의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이미지들이 제 머릿속에 있었고, 그 이미지들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미국적 이미지들을 원했습니다. 저는 영국식 이미지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이런 특정 배경에 끌렸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제 소설 중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아마 세 편만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텐데요. 이 소설의 배경들도 어느 하나도 제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영국이 아닙니다. 수백 년 전 영국이거나 100년 전의 영국, 또는 일종의 SF 버전의 영국이죠. 그러니까, 제가 사는 현대 세계에 대해 써야 한다고 얽매인 적은 없습니다.

 

 

3.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영상에서 말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린다. 특히 이번 작품을 <나를 보내지 마>의 연장선상에서 읽게 되는 독자가 많은 듯하다. 비슷한 소재를 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그때와 이번 작품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보내는 영상에서 이 책이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라고 말한 것은 일부는 홍보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책이 가장 유명한 책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진지하게 말씀드린 면도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남아 있는 나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클라라와 태양>과 <남아 있는 나날> 사이에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아 있는 나날>에는 주인공이자 해설자로 영국 집사가 나옵니다. 그는 로봇은 아니지만 로봇과 거의 비슷해서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대상을 봅니다. 그리고 클라라의 경우, 진짜 로봇인 클라라와 같은 해설자가 갖는 장점 중 하나는, 매우 이상한 시각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공통점이 하나 있고,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은 당연히 <남아 있는 나날>의 집사는 서비스 제공이라는 개념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나리를 섬긴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상당 부분에서 그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게 그것입니다. 클라라는 십대 아이를 돌보고 그 아이가 외로워지지 않게 해주고 조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AI 로봇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집사와 같습니다. 클라라는 매우 헌신적인 하인처럼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명분에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클라라와 태양>을 쓸 때, <남아 있는 나날>을 쓰던 때가 종종 떠올랐습니다. 물론 <나를 보내지 마>의 연장선은 아닙니다. 그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주제도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좀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나를 보내지 마>를 다시 읽었을 때 그 책이 아주 슬픈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렇게 슬픈 책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나를 보내지 마>의 슬픔에 대한 응답 또는 답변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 것 같은데요. 저는 ‘선(goodness)’에 대한 더 많은 희망과 믿음이 있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결국 같은 영역에 있는 것 같다는 독자들의 말씀은 저도 알겠지만, <클라라와 태양>의 분위기가 더 희망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클라라에게 슬픈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결말이 너무 슬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클라라와 태양>은 희망, 그리고 세상에는 선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4. 당신의 작품 세계 속에서 이전 작품과 이번 <클라라와 태양>의 관계, 즉 연결성 등에 대해 전반적 설명 부탁드린다.

 

 

답변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네요. 저는 책을 쓸 때 인생에서 제가 존재하는 그 시점에서 씁니다. 어찌 보면, 제가 40년에 걸쳐 쓴 책들을 보면서 어떤 패턴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책을 쓰거나 기획할 때 무의식적으로 임합니다. 제가 쓴 다른 모든 책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다지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그 책, 제가 작업하고 있는 책을 쓰려고 노력할 뿐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렵습니다. 그 한 권을 작업해야 하는 거죠. 제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그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항상 제 책을 돌아볼 때마다 사진 앨범을 보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인생 여러 시점의 제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이요. 저는 그런 식으로 봅니다. 제 작품을 직접 보고 패턴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다른 사람의 몫이죠. 모든 게 어떻게 하나로 맞춰지는지 보는 거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5. 복귀작으로 왜 우화적인 내용의 SF 장르를 선택하게 됐는가.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유전자 복제 등 미래의 기술을 다룬 작품을 여러 차례 발표해 왔다. 이런 소재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인공 지능 같은 것들이 나오는 작품은 <나를 보내지 마>와 <클라라와 태양>뿐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를 보내지 마>에는 ‘복제’라는 소재는 있었지만 인공 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나를 보내지 마>의 경우, 제가 <나를 보내지 마>를 쓰고 있을 당시(아마 꽤 오래 전인 약 18~19년 전에), 저는 제가 장르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의식했습니다. 이 작품이 SF 장르로 분류되리라는 점을 의식했지요. 그리고 그 장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클라라와 태양>을 쓸 때는 제가 어떤 허구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현실 세계의 인공 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의 실제 개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관련 글을 읽고, 과학자들과 함께 이 주제를 다루는 콘퍼런스와 세미나에도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 인공 지능과 유전자 편집 분야의 발전은 <클라라와 태양>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두 분야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를 쓸 때는 장르를 의식하며 스토리를 장르에 맞추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사실주의자들이 활용하는 다른 많은 방식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그 안에 스토리를 넣었죠. 그리고 제가 보기에 영어권 사람들은 <클라라와 태양>이 SF 소설이라는 사실을 훨씬 덜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2005년에 <나를 보내지 마>가 출판되었을 때는 “이 작가가 SF를 썼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책 출판 주 지난 몇 주 동안, 영어권 사람들이 제 책이 SF 장르에 속한다는 걸 훨씬 덜 인식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이 이제는 인공 지능과 유전자 편집과 같은 문제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중대한 문제이자 이슈이며, 현재의 이 중요성이 어떤 하나의 소설 장르에서 부각된 게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영국과 미국에서 SF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보내지 마>가 출간되었을 때, SF는 여전히 아웃사이더 장르, 전문적인 장르이며, ​주류 문학과는 상당히 단절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난 15년~20년 동안 SF는 주류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책뿐 아니라 영화와 TV에서도요. SF가 훨씬 더 대중적인 장르로 느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내지 마>를 출판했을 때와 이번 책을 출판했을 때를 비교해 보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이번에는 SF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6. 무엇을 보고 ‘클라라’라는 존재를 창작하게 됐는가?

 

 

개인적으로 정말 끌렸던 점을 말해보자면 이렇습니다. 과거 제 작품의 주인공과 화자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대체로 그런 인물들이었죠. 그리고 스토리는 흔히 그들의 과거와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었죠. <나를 보내지 마>처럼 꽤 어린 주인공조차 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돌아보죠. 클라라와 같은 캐릭터에 끌리고 그 캐릭터가 신선했던 건 클라라가 거의 백지 상태에서 소설에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클라라는 최근에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에 그녀에겐 아무런 역사도 없습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인물과도 다르죠. 만일 화성 같은 데서 왔다면 그곳 사회의 많은 가치와 편견들을 갖고 와서 인간을 자신의 종족과 비교하겠죠. 하지만 저는 클라라가 마치 세상에 갓 도착한 아기처럼 처음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그녀는 지능을 가진 기계이기 때문에 아주아주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점도요. 하지만 아이들처럼 무언가를 어렵사리 배우게 되죠. 그래서 저는 클라라가 매우 제한된 자료를 가지고 있고, 이런저런 것들을 다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클라라는 뭔가를 보면 이상한 결론을 내리게 되겠죠. 이 점이 제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이전에 해본 과정과는 달랐고, 이런 관점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들을 관찰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편견과 가치관이 거의 없는 인물. 그래서 저는 클라라의 이런 어린애 같은 느낌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클라라가 인간에 대해 점점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해도요. 저는 클라라가 그런 단순함과 어린애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얼굴로 해를 바라보라고 하고 싶었죠. 태양이라는 어떤 훌륭하고 선한 존재가 있는데, 태양은 늘 그녀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지켜보고 있죠. 다른 종류의 화자였다면 이런 걸 해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제가 끌린 점은, 작가로서 기술적인 관점, 기계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 화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죠. 그러니까, 클라라의 시각이라는 점에서도 실험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사물을 인간과 같은 시각적 방식으로 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입체파 그림 같은 이미지들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걸 다른 방식으로 했다면 그냥 아방가르드 같거나 인위적으로 보였을 테지만, 저는 독자들이 실제로 저를 따라서 세상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차원에서, 마치 지능형 기계의 눈을 통해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7. 아무리 고도화된 인공지능이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성에 대한 당신의 정의, 혹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적 요소들은 무엇일까?

 

 

바로 소설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간단하게 답하고 싶지 않은데요. 소설 전체가 던지는 질문이죠. 클라라는 마지막까지 이 질문을 던집니다. 독자들은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 알게 될 겁니다. 클라라가 함께 살게 되는 가족의 중심에는 어떤 미스터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미스터리가 물어보신 바로 그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이 핵심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고 싶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죠. 이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은 우리의 특별함을 다소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할까?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각각의 인간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특별한 영혼과 같은 무언가를 몸 안에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치 안에 어떤 영혼 같은 게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동물이나 확실히 로봇과는 매우 다르다고 믿고 싶어 했죠. 이 때문에 우리가 다른 생물들보다 우월한 것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이런 특별한 영혼 속 무언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저자로서 이런 질문을 던진 것 같습니다. 만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각각의 사람 내면의 특별함을 관찰하는 데 도전하는 세상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그리고 다음 주에 무엇을 사고 싶은지,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은지,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 알고리즘만으로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 안에 있는 어떤 특별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바뀌게 될까요?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통해 인간의 고유함을 완전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저는 이런 일이 과학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묻는 건, 이것이 우리의 관계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 우리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다른 감정들의 본질이 바뀌게 될까요? 앞서 말했듯, 이 질문이 바로 제가 묻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기 때문에 답변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 전체가 이 질문을 다루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Lorna Ishiguro.
가즈오 이시구로. ⓒLorna Ishiguro.

 

8.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최근 저는 제가 몇 년 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어제까지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런 세계의 윤곽을 안개 속에서 더듬으려 애쓰는 60대의 남자”라고 표현했다. 이번 소설 <클라라의 태양>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소설이다. 이때의 깨달음은 소설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앞서 말했듯, 제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썼을 때는 이미 <클라라와 태양>을 3분의 1 정도 집필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상 연설문에 표현된 내용의 상당수, 즉 방금 언급하신 내용들이 <클라라와 태양>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연설에서 제가 언급하고 있는 주요 사건들은 제 나라, 즉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진행되던 당시의 일들입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를 무역협정에 관한 결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나라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매우 치열한 논쟁처럼 느껴졌습니다. 국가의 정체성과 영국이 국제화, 세계화된 국가가 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단절된 민족주의적이고 다소 앞서나가는 제국이었던 과거의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큰 국제 사회에서 영국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거대한 싸움으로 변했습니다. 영국인들의 대다수가 저처럼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듯 제게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건, 실제로 탈퇴 투표를 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탈퇴 투표를 한 사람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생각이 일종의 환상임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절반의 영국 시민들과 그들이 매일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차단해 버린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제가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하기 1년 전인 2016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어린 시절 자라면서 가졌던 여러 가지 가정들과, 성인이 되면서 ‘자유세계’에서 점점 더 강화되었던 저의 일종의 가치들이 어쩌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견해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특히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 두 진영 사이에 거대한 분열이 존재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잠시 제쳐두고, 오늘날 제가 우려하는 점은 책과 문화 같은 것들을 통해 이런 장벽들을 넘어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약 30년 동안 우리는 문화의 국제화라는 측면에서는 잘 노력해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나라나 사회보다 다른 나라와 사회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의 영화를 더 많이 봅니다.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최우수 작품상을 한국 영화가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례 없는 일입니다. 비영어권 영화가 수상한 건 처음입니다. 이미 진작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대중문화가 훨씬 더 국제화되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 내에서 이런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대화하는 점에서 우리는 그리 잘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내, 미국 내, 영국 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큰 격차를 다뤘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분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 점이 매우 우려됩니다. 최근 몇 년간 문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국경을 넘어 이런 문화적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이런 큰 충격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문득 나라의 절반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거죠.

 

 

9.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그동안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분투하는 개인들에 관해 써 왔고, 앞으로는 한 민족이나 공동체가 그런 질문들을 어떻게 직시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 무렵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쓸 방법을 찾아보고 싶지만 아직 그걸 해낼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도 답했다. 이러한 방향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것은 변함없는가. 그렇다면 그 방법이 지금은 어떤가. 찾았는지, 혹은 조금 보이는지.

 

 

2001년, 관객의 질문에 제가 처음 대답할 때였습니다. 그게 제 야망 중 하나임이 뚜렷해졌습니다. 저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의식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7년 노벨 수상 연설에서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다시 했을 때는 이미 2015년에 출간된 <파묻힌 거인>이라는 책을 쓴 시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정확히 이 주제를 다루죠. 이번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전작입니다. 책 한 권이 전부 그 주제에 관한 겁니다. 앞으로 제가 탐구하고 싶은 분야이기도 하고요. <클라라와 태양>은 국가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는 그리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를 관찰해 보면, 각 국가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문제들, 국가 내 갈등, 미국 내 인종 관련 갈등, 영국에서의 비슷한 갈등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국가가 최근의 역사를 잊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국가가 잊어버린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문제, 그리고 지난 300년 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미국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자유주의자들(liberal people)의 마음에도 공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남북 전쟁 말의 노예제 폐지와 1964년 민권법 도입 사이에 약 100년간의 공백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의 여러 문제들 중 상당수가 남북 전쟁 이후 사실 노예 제도가 끝나고 흑인들이 평등을 찾아야 했던 시기에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100년 동안 모든 문제의 토대가 된 일들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걸 다 잊어버린 겁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모르고서는 그것에 대한 견해를 갖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영국은 식민주의에 대한 많은 기억들을 묻어버렸습니다. 일본도 2차 세계 대전 전후에 한 일들에 관한 수많은 역사와 식민지 역사를 심하게 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바로 이 내용이 제가 관심 있는 주제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 우리나라를 위한 메모리 뱅크(memory bank 기억 저장소)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에게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경우, 기억은 국가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며, 누가 기억을 통제할까요? 그러니까,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잊을지를 누가 결정할까요? 이런 내용들은 저를 끊임없이 사로잡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는 이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을 썼습니다. 이는 제가 다시 다루고 싶은 내용입니다.

 

 

10. 10대 시절 매달 일본에서 오는 만화, 잡지, 교육 자료 등을 받아 읽었고,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마음속에 ‘일본’이라는 개인적인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기억과 상상과 추론에 의거해 만들어낸 그 ‘일본’은 어떤 형태였는지 궁금하다. 그것을 형성하는 가장 큰 이미지나, 핵심이 된 텍스트, 전환점을 만들어준 작가나 작품명 등이 기억나는지. 그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러니까 이시구로라는 작가의 세계를 만들어낸, 개인적인 일본 속엔 무엇이 있었나.

 

 

제 개인적인 일본의 많은 부분이 저의 실제 어린 시절 추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영국에서 사는 동안, 제가 6살, 7살 때 일본이 어땠을지 상상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조부모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일본에 있는 친구들이 무엇을 하는지 등을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상상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1960년대와 제가 그보다 훨씬 더 성장한 1970년대 사이의 10년을요. 저는 일본이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항상 들었습니다. 일본의 경제 기적이 이뤄지던 시기였죠. 그래서 저는 늘 궁금해 했습니다. 뭐가 바뀌었는지. 그리고 일본에서 온 잡지와 책들은 최신 기술 발전에 대한 뉴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속철 같은 여러 가지가 있었죠. 저희가 일본을 떠난 후에 고속철이 화젯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도쿄 올림픽도 있었고요. 상당히 흥미진진한 시기였지만 저는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알던 세상이 점점 미래의 SF의 배경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실현된 기술 등을 두고 전 세계가 대체로 들떠 있었죠. 그래서 제게는 현대 일본에 대한 그런 관점이 있었고, 그 다음으론 제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모든 변화가 나타나기 이전의 일본에 대해서만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저는 과거의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고, 그게 변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단편소설과 첫 두 편의 장편소설을 썼을 때 제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본을 배경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모든 현대적 변화들이 나타나기 전으로요. 특히 영화가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그 시절의 일본 소설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1950년대 영화들은 영국에서 성장하는 아이이던 저에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 추억에 나온 것 같은 그런 세상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특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가 그렇습니다. 그의 두세 작품은 영국에서 TV나 아트 하우스 극장에서 자주 상영되었는데요. 특히 <동경 이야기>가 자주 상영됐습니다. 그 영화와 오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보고 또 보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영화 속에서 가족이 일본식으로 앉아 있는 단순한 장면을 가만히 쳐다보곤 했습니다. 옛날 일본식 집에서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저의 네 살 때 환경을 떠올려주었기 때문이죠. 저는 그 화면을 쳐다보면서 화면 속 방의 모든 세부 내용을 보려 했습니다. 그 외 일본 영화들도 제 성장에 매우 중요했고, 특히 제 초기작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다른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와 같은 시기에 영화를 만든 나루세 미키오 감독입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를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특히 이 세 영화감독은 제게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의 일본 소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작가들이나 미시마 유키오 같은 작가들에게는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엔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일본 소설가들이 등장해 사람들이 이들의 작품을 매우 쉽게 읽을 수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이요.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같은 옛 세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서양에서 자란 사람으로서는 공감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씨의 경우는 현재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데요.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옛 세대 작가들에겐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11. 오늘날에는 혼합 문화유산을 지닌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뿌리’를 탐사하려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경우, 재미동포 작가인 이민진의 <파친코>, 스테프 차의 <유어 하우스 윌 페이>를 비롯해 한국계 작가들의 뿌리를 찾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고 또 각광받고 있다. 일본계 영국인이자 일본에 관한 소설을 쓴 작가로서, 오늘날의 이같은 다문화 문학, 다문화 콘텐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혹은 이런 한국 작가나 한국계 작가의 소설 중 읽어본 것이 있는가.

 

 

정말 아쉽지만 읽지 못했습니다. 영국에서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이 아주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저는 원래 현대 작품을 잘 읽지 못합니다. 유명한 영국 작가나 미국 작가들 중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굉장히 느리게 읽고, 주로 옛날 책들을 읽습니다. 최근에는 논픽션을 많이 읽었습니다. 어쨌든, 이 다문화적 글쓰기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 제가 글을 쓴 지난 40년간 정말 많이 변한 것 중 하나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인종 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독자들의 욕구 때문입니다. 영국인이란 무엇인지, 또는 미국인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인종 간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보면, 이웃을 더 잘 알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호기심이 더 단결된 사회를 만들 거라는 희망적인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일 국가에서도 다양한 전통들과 다른 가치 체계가 존재할 여지를 남기는 집단적 의식을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현상이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현상은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와는 매우 다릅니다. 확실히 제가 있는 영국에서는 보통 작가와 독자가 중년의 백인 남성이며, 독자의 언어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대한 가정은 제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매우 편협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현상에 적극 찬성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런 종류의 작품을 쓰지 않는 이유는 제가 한 개인으로서, 어릴 적 스스로를 소수 집단과 동일시하면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족은 혼자였고 저희가 아는 일본 가정은 저희뿐이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소수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에 관련해 공감할 수 있는 전형적인 경험이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사는 오랜 세월 동안 제가 아는 저 같은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데요. 한국에서 온 한 남자가 저희 집을 방문했는데, 그가 저희를 방문한 이유는 그가 한국에서 왔고 우리가 일본인 가족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저희 말고 다른 일본인을 본 적이 없고, 첫 5년은 그렇게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정말 이상한 일이었죠. 그러니까, 제 경험은 미국에서 커다란 공동체—예를 들어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에서 성장한 작가와는 굉장히 다릅니다.

 

특히 미국은 많은 수의 이민 2세대, 또는 3세대 인종들로 이뤄져 있어 이런 내용이 현대 문학의 일반적인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늘 그 바깥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제 개인적인 일본에 관한 책을 쓰면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마도 저에게 맞는 일일 겁니다. 저는 저의 과거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자란 한 사람, 한 아이일 뿐이었고, 다른 일본인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제가 있는 지역의 영국에는 일본계 영국인 커뮤니티가 없습니다. 일본 주재원으로 잠시 영국에 온 사람이나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래서 그런 한 세대의 이민자 경험을 다루는 문학을 쓸 권한은 제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Lorna Ishiguro.
가즈오 이시구로. ⓒLorna Ishiguro.

 

12.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두세 차례 언급했다. 그것이 사라져가고 있는 데 우려를 표하면서. 당신이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손상되고 있다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제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명확한 정의를 내리려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반박할 겁니다. 어쨌든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누구나 대개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강하게 떠오른, 사회 운영을 위한 가치관입니다. 이는 우리가 나치즘과 공산주의, 그 밖의 다른 독재 정권들이 얼마나 해로웠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가치 체계의 중심에 개인의 권리를 둔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중요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됩니다. 사실상 그 밖의 모든 것들이 그 주장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개인이 명분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높은 명분을 앞세워 수많은 개인을 희생해선 안 됩니다. 이런 발상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많은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자유선거라든가,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든가, 정부가 법과 사법부, 사법 제도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등이요. 그리고 우리가 정부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시위 등과 자유 토론이 실제로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물론, 경찰이 법을 집행하겠지만 개인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게 기본적인 것이며, 여기서부터 많은 것들이 파생됩니다.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맞서 싸우는 권익 증진 캠페인은 모두 그런 가치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저는 이런 가치관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특히 1989년 냉전의 막바지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는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러 문제들이 많은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그중 한 가지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해서 ‘자유세계’에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별로 정의로운 세상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불만이 엄청 커지면서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을 채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인공 지능은 분명 자유민주주의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시가 훨씬 더 쉽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경찰이 필요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과거에는 자유세계가 더 부유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흥미로운 상품들을 생산할 수 있었고 더 좋은 슈퍼마켓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서양이 대체로 냉전에서 승리했다고 느끼는 겁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는 공산국가 사람들이 생활수준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양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훌륭한 장난감들과 좋은 옷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점(advantage)을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집권적 정부, 중앙에서 계획한 경제는 마오쩌둥 시대나 스탈린 시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상품들이 부족했던 시절과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인공 지능이 그런 시스템을 유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우리가 그 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우리는 여러 불평등이 커지도록 내버려두었고, 우리가 예전에 누렸던 이점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엔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매우 강력한 모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국가들은 막강해졌고, 중국의 경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아주 부유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과 영국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나라들이 그런 점에 대해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가 잘 작동함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한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고, 전염병과의 싸움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13.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이 소설 집필을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덧 사람들이 코로나19 위기에 익숙해지고,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듯하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이 작품에 영향을 준 것이 있나? 작가로서 바라보는 우리의 앞날, 어떻게 될 것 같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 <클라라와 태양> 집필을 끝냈고, 팬데믹 발생 바로 직전에 에이전트와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꽤 심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냥 사스나 에볼라, 다른 전염병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 규모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즉, <클라라와 태양>에 팬데믹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황이 반영되었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앞에 놓인 상황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는 대해서는 많은 길이 있겠지만,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큰 교훈 중 하나는 국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국제기구들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받은 거대한 경고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같은 몇몇 국가들은 훌륭하게 대처했고, 그 밖의 영국이나 미국, 브라질 등의 국가들은 확실히 처음에는 대처를 아주 못했습니다. 현재 영국은 백신으로 대응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제 사회 측면에서 봤을 때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이렇게 국경을 넘는 문제들에는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다음 팬데믹을 겪기 전에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번과 비슷한 규모의 팬데믹이 미래에도 나타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국제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기후 변화처럼 앞으로도 국경을 넘고, 선진국과 빈국간의 차이에 상관없이 전 세계를 휩쓸 문제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날 겁니다. 강한 국제기구 없이는 이러한 문제들을 직면할 수 없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여러 강한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UN과 IMF, 세계은행 등의 기구들이요. 저는 오늘날의 세상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기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팬데믹이 우리가 받은 큰 경고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이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우리는 위에 있는 누군가가 상황이 이 정도로 나빠지는 걸 막아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어할 시스템이나 전문 기술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고, 그래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엄청나게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우리는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과학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상황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적어도 지금 우리는 백신 덕분에 출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단 12개월 만에 여러 가지 백신이 만들어졌다는 건 놀라운 기적입니다. 향후 5년 동안 백신이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었는데도요. 따라서 우리는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고, 개별 국가들이 과학에 자금을 지원해야겠지만, 국제적 차원에서도 과학에 대한 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이번 사태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개인들만 잘못 움직인 게 아니라, 정치인들도 누구나 자신만의 진실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팬데믹이 여러 면에서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사실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전염병이 존재하지 않거나 별로 해롭지 않다고 말하는 보우소나루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인들이라면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믿게 할 수 있겠지만요.

 

저는 이번 팬데믹이 이렇게 진실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선거에서 이겼지만 ‘도둑맞았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지지자들이 믿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널드 트럼프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믿게 만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이 바로 전염병이 가르쳐준 큰 교훈입니다.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고, 증거 기반의 과학적 일처리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긍정적인 교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매우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협력 및 강력한 국제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 과학에 대한 장려와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는 것.

 

 

14. <클라라와 태양>을 동화로 쓰려다 성인들을 위한 장편 소설로 바꿨다는데, 앞으로도 동화를 쓰실 계획은 있는가?

 

 

지금은 계획이 없습니다. 그런데 2014년 경, 전작 소설의 집필을 마친 후, 그림책에 넣을 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짧은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단 몇 분 만에 직접 들려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삽화와 그림이 매우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당시 제 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 줬는데요. 그 당시 제 딸은 아마 25살인가 23살 정도였던 것 같고, 서점에서 일하고 있어서 동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제 딸 이시구로 나오미는 현재 소설가로, 얼마 전에는 영국에서 책도 냈습니다. 딸은 제게 이 이야기가 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슬프다면서 이 이야기를 가지고는 아이들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가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지만 오히려 성인에게 적합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더 크고, 어떻게 보면 더 어두운 이야기로 만들었고, 그게 바로 <클라라와 태양>이 된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점이, 지난주에 제 딸 나오미가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전에 들려준 동화가 <클라라와 태양>보다 훨씬 더 슬프고 불안했다는 겁니다. <클라라와 태양>은 꽤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라면서요. 딸은 전의 그 동화가 훨씬 더 심했다고 했어요. 아마 맞는 말일 겁니다. 꽤 슬픈 이야기였거든요. 처음에 가진 아이디어가 좀 많았는데, 동화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이 성인용 책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동화에는 여러 특성들이 있는데요. 제가 말하는 동화는 제 눈에 매우 흥미롭고 매우 매력적인, 어린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잠들기 전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 책들에는 어른들의 상충되는 감정들이 담겨 있거든요. 한편으로 우리는 더 온화하고 친절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죠. 그래서 웃는 얼굴과 태양 등의 그림이 있고 이야기도 온화하죠. 하지만 동시에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세상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슬픈 일들에 슬슬 대비시키고 싶을 겁니다. 아마 삽화에서도 이런 걸 종종 볼 수 있을 거예요. 하늘에 어떤 슬픈 분위기가 서려 있을 때도 있고, 숲이나 나무에 어둠이 있다거나 동물 얼굴 표정에 나타나거나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주해야 할, 가혹하고 더욱 힘든 세상을 항상 암시하기 때문에 책에는 항상 그런 갈등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어린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려주죠. 또한, 아이들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싶은지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많이 말해줍니다. 결국 클라라라는 인물의 상당 부분에서 저는 그런 갈등을 담고 싶었고, 동시에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희망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태양은 아이들 그림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양과 비슷합니다. 들판과 하늘도 있고요. 클라라가 어린 아이 같은 희망을 가졌으면 했습니다. 클라라는 마치 동물 캐릭터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 어린아이들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같기도 하죠. 저는 클라라가 세상의 선함(something good)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기를 바랐습니다.

 

 

15.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클라라에 관해서는 이제 이야기를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한국 독자들에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제 책이 한국의 ‘문화적 현장(cultural scene)’의 일부를 이루게 되어 정말 기쁘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지난 10~15년 동안 한국이 문화의 근원지로서 국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거 우리는 한국을 삼성과 같은 기술이나 자동차의 생산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은 K-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입니다. 한편,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한국 영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15년간 전 세계가 최첨단의 흥미진진한 한국 문화의 등장을 잘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책이 매우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읽힐 수 있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입니다. 서양인들 대부분이 한국을 현대적이고 젊은 나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들은 젊지 않지만, 이들이 만드는 작품은 새롭고 신선하고 미래 지향적인 현대 국제 문화로 간주되거든요. 한국에서 읽히는 책들의 대열에 제가 함께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사람들은 한국을 흥미진진하고 현대적이고 새롭고 예술적인 작품들의 원천지로 여기니까요.

 

 

최재봉 선임기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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