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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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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편소설 황혼 제2권(37) 낡은 관념 쁠랙홀 김장혁 댓글:  조회:54  추천:0  2024-09-05
장편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7. 관념 쁠랙홀   대림의 랑만적인 밤거리에는 연분홍 네온등이 반짝이면서 진짜 황홀한 불야성을 이루었다. 무더운 삼복지간 열대야에 찜통 같은 집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는지 다방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 사람들로 붐빈다. 심지어 지하철에도 쓸어들어갔다. 이런 곳에서 무료로 에어콘의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열대야를 보내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나영은 아쉬운대로 종호와 지영과 갈라져 성림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녀는 종호와 려향을 둘러보면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냉면도 맛있게 먹고 얘기도 잘 들었습니다. 아주 즐거운 저녁 감사해요.” 종호는 나영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종종 이런 파티 가지기오.” 나영은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반겼다. “네. 좋아요. 다음엔 제가 파티 마련하죠. 답답하면 서로 한담도 하고 좋을 거 같아요.” 지영은 옆에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영을 바라보았다. 허나 나영의 얼굴이 자기 쪽으로 돌아서자 지영은 화기애애한 표정을 지으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아쉬우면 성림이를 재워놓고 나오던지.” “안돼!” 성림이 엄마를 손을 꽉 붙잡고 몸까지 탈면서 떼를 썼다. “엄마, 날 혼자 두고 어딜 나와? 안돼!” 나영은 성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성림을 두고 어디로 나와? 자, 리사장님, 전 가요.” 나영은 지영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분부했다. “오랜만에 리상님 만났을 때 전번에 내 하던 말도 좀 나누고 그래라.” 그녀는 지영이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손으로 입을 꽉 막고나서 종호 쪽을 찔끔 눈짓했다. 나영은 제자리에 돌아와 종호와 섭섭한 작별의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아쉬운대로 성림의 잡고 네온등불빛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지영은 나영한테서 눈길을 천천히 돌리더니 작별인사를 했다. “저도 돌아가야겠어요.” 종호는 못내 아쉬웠다.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려향까지 셋이 커피숍에 가서 한담 더 하면 어떻소? 금방 성림이 때문에 할 말을 다 한 거 같잖은데.” “글쎄요.” 지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좀 망설이다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갑시다. 2차는 제가 쏘지요.” “아니, 내 어찌 지하 아가씨들한테서 얻어먹겠소? 난 종래로 아가씨들의 돈지갑을 열게 하지 않았소. 가기오. 오늘은 내가 마련한 파티 아니고 뭐요.” 그들은 누가 쏘든간에 좌우간 보근의 근사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에어콘의 시원한 바람이 힐링이 될 정도로 열대야 무더위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확 해소해주었다. 연분홍네온등이 번쩍이는 어둑시그레한 음악커피숍에서는 심수봉의 쓸쓸한 노래소리가 은은히 흘렀다. 종호는 지영과 려향을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려향이 카운터에 가서 커피를 예약했다. 이윽고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가 쟁반에 커피 석잔을 들고 디똥디똥 다가왔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는 깎듯이 인사했다. “네- 맛있게 들겠어요.” 종호는 탄력 있는 몸을 돌려 나가는 아가씨 잔등에 대고 인사말을 했다. 종호는 이쁜 지영과 마주 앉아 커피를 드노나리 어쩐지 저도 몰래 혈액순환이 잘 되고 기분도 저으기 좋은 감이 들었다. 종호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몇장을 꺼냈다. “아까 성림이 때문에 다 말하지 못했는데. 이걸 읽어보오. 이건 낡은 관념을 고치자는 취지에서 쓴 글이오. 초고인데 수개의견이나 보충할게 있으면  좀 얘기해주오.” “네- 봅시다.” 지영은 속으로 리사장님은 진짜 관념 쁠랙홀에 빠졌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녀는 종호의 손에서 종이 몇장을 받아들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관념을 갱신하자   한 안로인은 딸이 차린 양고기산적점에서 청소를 하고 양고기점을 꿰주면서 딸을 도와주었다. 그 안로인은 손님들이 탔다고 남긴 양고기점을 아까워 주어뒀다가 먹군 하였다. 탄 양고기점에는 발암물질이 많았기에 안로인은 탄 양고기점을 아까워 장기간 먹다가 대장암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 한 안로인은 병원에 가서 별의별 환자들을 다 간병하였다. 그 안로인은 환자가 먹다가 남긴 밥과 채를 아까와 버리지 않고 먹었으며 림종환자들이 준 옷을 입고 다녔다. 옛날부터 어렵게 살아온 분이기에 옷값이나 밥값을 한푼이라도 남으려는 것이였다. 그러나 간병환자에게서 간염이 전염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그 안로인은 간암과 간복수, 당뇨병합병증에까지 걸려 생명까지 잃고 말았다. 지금 로인들에게 돈이 없어 이런 비극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주요하게 일부 로인들의 낡아빠진 소비관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로인들은 이런 색바래진 소비관념을 갱신해 눈앞에 돈이 나가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좀 돈을 팔더라도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면 좋지 않겠는가? 밀치락거리는 뻐스에 앉지 말고 택시에 척 앉아 가면 얼마나 어르신답고 신사답게 멋지고 편안하겠는가? 일본에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해변가에는 보험궤가 페허 속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보험궤는 일본 로인들이 생전에 쓰지 않고 한푼두푼 모은 돈을 넣은 유물이였다. 이 모든 것은 돈이 모자라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목숨이 모자라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이 세상을 총망히 떠나간 비극이 아니겠는가?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반디불 같은 짧은 한생에 아껴 먹고 쓰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서야 무슨 락이 있겠는가! 인생이 얼마라고 우리가 인생의 황혼에 이렇게 아글타글 하다가 락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양로관념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로인들은 전통양로관념을 벗어나 자식들과 한 집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있다. 또 대부분 자식들도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지만 한 집에서 살기는 서로 불편하다고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로인들은 아직도 전통양로관념을 벗어나지 못해 자손들과 한 집에서 살면서 천륜지락을 누리려고 한다. 한 늙은 량주는 전통관념으로 맏아들과 한 집에서 살 예산으로 젊을 때 한국에서 뼈빠지게 일해 번 돈으로 맏아들에게 매 평방메터에 2만원도 넘게 주고 3개 침실에 널직한 객방을 갖춘 120평방메터 되는 집과 고급승용차까지 사주었다. 그러나 항상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던 맏며느리가 늙은 시부모가 한국에서 돌아온지 한달도 안돼 한집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나누울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시아버지가 샤와욕을 하고 머리카락과 때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다는지, 창문옆에서 담배를 피워 갓난애에게 피해를 입힌다는지, 잘 때 코를 구들고래 꺼질 지경으로 곤다는지 별의별 허물을 다 트집잡으면서 나가서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놓고 떠들었다. 며느리는 시부모와 모든 관념이 맛지 않아 한시도 함께 살지 못하겠다면서 아예 반란이라도 일으킬 작정으로 갓난애를 싸업고 친정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훌쩍 떠나 가버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둘째아들며느리도 부모와 한 집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막아나섰다. 둘째아들과 며느리는 이전에 형과 보모의 돈을 빨아내는 경쟁을 벌린적이 있었다. 그들은 부모를 보고 “맏아들만 아들이고 둘째아들은 아들이 아닙니까? 늘그막에 두고봅시다.”라고 을러메면서 부모의 돈을 빨아내 100평방메터 되는 집을 샀다.  둘째아들은 부모를 보고 “부모의 돈을 더 많이 가진 맏아들이 모시지 않는데 둘째가 모실게 있는가?”라고 하면서 자기 집 근처에 세집을 맡고 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애나게 번 돈을 몽땅 두 불효자에게 주고나니, 아니, 떼우고나니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파인 량주는 늘그막에 어느 아들 집에도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눈물겨운 처지로 돼버렸다. 뒤늦게야 정신을 펄쩍 차린 늙은 량주는 전통양로방식을 벗어나 과단성있게 아들 둘이나 사는 도시를 떠나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가 살기로 마음먹었다. 한족며느리를 삶은 한 늙은 량주는 전통양로방식대로 자식들과 살기 더욱 어렵다. 한족과 조선족의 음식습관이 다른데다가 동북과 남방의 모든 관념상 차이는 조선족시부모와 한족며느리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아놓았다. 조선족시어머니는 조선족의 음식습관에 따라 항상 장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다. 그러나 한족며느리는 장국냄새를 맡기만 해도 상을 찡그리군 하였다. 한족며느리는 음식에 무슨 양념을 가득 넣고 기름에 볶아야 맛있어했다. 하지만 조선족시어머니는 양념냄새를 딱 싫어했고 아들이 살이 진다고 기름에 볶아 먹이지 않고 돼지고기도 물에 삶거나 고마이도 시루에 쪄서 먹였다. 늘 부동한 음식습관으로 해 고부 사이에는 날따라 깊은 금이 점점 실려갔다. 나중에 그 금은 서로 넘을 수 없는 깊고 깊은 협곡으로 되고 말았다. 며느리는 언제 시어머니가 주방을 떠나겠는가, 아니, 자기 집에서 언제 떠나가겠는가고 기다리는 눈치였다. 남방의 한족며느리들은 우리 조선족들과는 물론이고 동북의 한족들과도 관념과 습관이 달랐다. 남방의 한족들은 대대로 친정집어머니가 보모처럼 집안청소까지 날마다 다 해주면서 딸집의 가무를 거들어주는 전통관념이 있다. 그러나 조선족시아버지는 늘 틀을 차리고 앉아 술을 마시고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데다가 잔소리가 많았다. 남방의 한족며느리가 이런 대남자주의관념이 꽉 찬 시아버지를 좋아할리 있겠는가. 한집이란 졻은 공간에서 부모자식들이 함께 생활하면 천륜지락을 누리는 좋은 점 외에 불편한 점도 많은것 같다. 한 안로인은 한국에서 한푼이라도 남으려고 세집도 해빛이 잘 들지 않는, 반토굴이나 다름없는 손바닥만한 월세집에서 살았다. 쌀도 항상 시장에서 누렇게 변질이 간 눅거리쌀을 사다 먹거나 곰팡이가 낀 쌀이거나 벌레가 먹은 쌀도 아까와 버리지 않고 벌레를 골라버리고 해볕에 말리워 먹군 하였다. 아들며느리가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갔을 때에도 시어머니는 돈을 남느라고 누렇게 뜬 쌀을 씻어 말리워 밥을 지어 밥상에 올렸다. 그러자 며느리는 밥을 먹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왈 쏟아버리였다. 또 샘물병을 주어다가 수도물을 받아 마시는 시어머니를 보다못해 며느리는 시부모 몰래 샘물병을 내다 버렸다. 그 일로 하여 고부 사이에 말다툼이 생겼다. 며느리는 소비관념이 맞지 않아 째째한 시부모와 한 집에서 한시도 살지 못하겠다고 신랑을 끌고 모텔로 달아난 일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로인들은 잠이 적어서 신새벽이면 일어나 집안에서 서성거리거나 덜커덕리면서 늘 아침식사를 일찍이 했으면 하고 자식을 도와 밥을 지어놓고 지루하게 기다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젊은 자식들은 휴식일이면 늦잠을 자기 좋아하며 아침도 먹네마네한다. 부동환 관념으로 인해 부모자식간에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 아니며 심지어 말다툼이 생기기 일쑤이다. 반면에 조건이 허락되면 자식들과 한 시내에서 다른 집을 잡고 살면 편리하지 않겠는가는 생각이 든다. 부모와 자식이 멀리 떨어져있지 않고 지척에서 수시로 만나보고 로인들은 손자손녀들을 안아보면서 천륜지락을 누릴수 있어 좋다. 한 집이란 비좁은 공간에서 부모자식이 비비닥거리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두어서 말썽이 없어 좋다. 로인은 뭘 먹고싶은것이 있으면 내 손으로 사다가 끓여잡술수 있어 좋고 시장하면 아무 때나 식탁에서 훌훌 꺼내 잡술수 있어 좋다. 아무 때건 옷을 더 껴입지 않고서도 화장실에 갈수 있어 편리하다. 자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밥을 지어먹을수 있어 좋다. 총적으로 자식들과 한집에서 살지 않으면 서로 편리해 좋을것 같다. 자식들이 효성을 다해 한집에서 잘 모시면 천륜지락을 누리면서 살수 있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며느리들이나 사위가 효성을 하지 않을 때에는 믿던 정신기둥이 무너져 심지어 절망에 빠질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 로인들은 전통양로관념을 벗어나 자식들을 너무 믿거나 자식들에게 너무 기대여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 로인들은 년세가 들어서도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좀 젊어서부터 양로비를 푼푼히 마련해두는것이 선지선각적이며 명지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로인들은 예로부터 아글타글 벌어서 아껴쓰면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이 다 크면 행복하겠지.” 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그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애들이 다 시집장가를 간후에는 또 손자손녀들을 돌보면서 “손자손녀들이 다 크면 행복하겠지.” 하고 아직도 채바퀴처럼 맴도는 분들이 적지 않다. 자식들이 다 시집장가를 가고 손자손녀들이 다 컸지만 우리 로인들이 자식들의 덕분에 행복하게 보내고있는가? 로인들은 자녀들에게서 독립해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만년의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관념은 한 사람, 한 가정의 행복과 생사존망을 지배한다. 우리 로인들은 소비와 양로방식 등 여러 면에서 시대에 발맞춰 낡은 관념을 부단히 고쳐야 한다. 돈이란 거미줄에 너무 얽매우지 말고 쓸 일에는 푹푹 쓰면서 만년에 옥체  건강하게 살며 신사답게 살고 젊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와- 참 좋아요. 낡은 관념은 로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다 고쳐야지요. 이 문장이 나가면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해 낡은 관념 쁠랙홀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줄 거 같아요.” 지영은 커피잔을 들어 종호한테 내밀었다. “자, 축하해요. 히트칼럼이 세상에 태여난 걸. 이 칼럼을 잡지에 내면 좋을 거 같아요.” 려향이 말했다. “저도 그 초고를 봤는데. 저희들 젊은 계층도 눈이 밝아지는 감이 들던데요. 잡지에 낸 후 온라인에도 널리 올리지요.” 지영은 박수까지 쳐댔다. “참 좋아요. 꼭 온 사회 사람들 속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날 거예요.” 그녀는 뒷말을 이었다.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요. 참고해 보충하면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로인들과 자녀들은 가치관, 소비관, 자녀교양관 그리고 생활습관, 양로방식 등 여러 면에서 관념 차이가 있지요. 옛날 로인들은 몇십년 아글타글 돈을 벌어서 년세 들어서야 집을 사고나서 백발을 휘날리면서 “아, 나에게도 끝내는 자기 집이 있게 됐구나.”라고 감탄하지요.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손에 쥔 돈이 없으면서도 부모의 돈을 가져가거나 몇백만원 대부금을 맡아서라도 근사한 집을 먼저 사놓고 들지요. 젊은이들은 으리으리하게 꾸려놓은 인생의 락을 향수하면서 돈을 벌어 몇십년 후에 천천히 집값을 갚을 궁리를 합니다. 빚을 다 문 날이면 “난 끝내 집값을 다 물었구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옛날 로인들과 현시대 젊은이들의 소비관념이 다른 점이지요. 옛날 로인들은 낡은 소비관념에 의해 먼저 집값을 만드느라고 거의 반평생을 집 같은 집에서 살지 못하였습니다. 늙은이들이 자기 집을 마련했을 때는 좋은 세월이 다 흘러지나가고 황혼을 맞는 비극이 기수부지입니다. 때문에 로인들도 낡은 소비관념을 버리고 현시대 젊은이들에게서도 새로운 소비관념을 배울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일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돈이란 거미줄에 얽매워 향수하지 못하고 살겠습니까!” 려향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호호호. 그게 별로 아빠를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아요. 아빠는 손에 쥔 돈이 없다고 여직껏 벽에 곰팽이 끼는 반토굴 같은 셋집에서 살면서 이래요. 이전에 너네 엄마하구 아빠는 결혼초기에 이런 반토굴집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우린 남의 닭굴자리에 구들을 놓은 셋집에 첫날이불을 펴고  살았어. 이래요.” 종호는 머리를 점점 숙이었다. 한참 후 그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이 칼럼을 꼭 세상에 공개해야겠소. 숱한 사람들이 낡은 관념의 쁠랙홀에서 기여나오게 해야겠소.” 나영은 커피잔을 내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지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는 쟁그랑 세 커피잔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 귀맛좋게 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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