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주소설의 이민성과 향토성
장춘식
1. 박계주의 생애와 연구사
박계주는 1913년 7월 26일 간도 룡정에서 태여났다. 룡정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7세에 구산(邱山)소학교에 입학하였고 5년제인 구산소학교를 졸업하고는 룡정의 영신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1930년 17세 되던해에 처녀작으로 단편소설 《赤貧》을 《間島日報》에 발표하며 이듬해인 1931년에 단편소설 《혁명전선에 나서는 소년형제》, 콩트 《월야》를 《民聲報》 한글판에 발표하고 이외에도 시 50여편을 당시 간행되던 여러 잡지에 게재했다고 한다. 간도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한셈이다. 그러나 박계주가 문명을 알리게 된것은 1938년 《殉愛譜》가 입선되고 다음해 간행되면서부터이다. 19세 나던 1932년에 고국에 나간후 6년만의 일이다. 같은해에 그는 《인간제물》을 비롯하여 《화성녀》, 《애광자》, 《실화》 등 여러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이때부터 박계주의 본격적인 작가활동이 시작된것으로 볼수 있다. 그후 그는 많은 작품을 창작하는데 그중 상당수는 이민체험에서 취재한것이다. 1966년 서울에서 병으로 별세하였다.
박계주(朴啓周)는 룡정에서 출생한 작가이다. 흔히 말하는 이민 2세에 속하는것이다. 그런데 룡정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으면서 정작 활발한 문단활동을 진행한것은 조선에 나간후부터였다. 따라서 그를 조선족이민작가로 보는데는 이의가 있을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 박계주를 이민작가로 보고 이민문학의 시각에서 그의 광복전문학을 살펴보게 된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이민자적 정체성인식때문이다. 첫 단편집인 에 수록된 8편의 작품 대부분이 이민지에서 취재하고있을뿐만아니라 주제의식에서도 이민자적 특성이 뚜렷이 드러나는것이다.
박계주에 대한 연구는 문단에서의 영향에 비하면 상당히 빈약한편이다. 작품량적으로 빈약하기때문은 절대 아니다. 장편소설도 있고 단편집도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장편 는 당대 독서계를 놀래운 큰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부진한것은 아무래도 박계주가 본격소설보다는 대중소설작가로 알려졌기때문으로 파악된다. 대중소설의 가치에 대한 시비는 잠시 접고 본격소설만 보더라도 지금처럼 소외될 작가는 아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특히 이민문학의 립장에서 볼 때 더구나 간과할 수 없는 작가인것이다.
박계주의 소설을 연구하면서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원본과 개작품의 관계문제이다. 박계주의 이민소설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발굴된 광복전 발표 소설 원본은 7편이다. 그리고 단편집 《처녀지》에 수록된 소설 8편을 포함하여, 개작품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전하는 박계주의 광복전 작품은 모두 10편인데 그렇다면 기타 3편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원본과 개작품의 차이를 비교하는것은 박계주 이민소설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지 않을수 없다.
사실 《딸따리족》을 《무명지사의 최후》로 개작한것, 《육표》를 중편소설 《지옥에도 꽃은 핀다》로 개작한것, 《오랑캐》를 《사형수》로 개작한것 그리고 그외 미발표원작들을 광복후 손보아 창작집 《처녀지》에 수록한것 등은 론의에 큰 어려움은 주지 않는다. 대개 반일저항적인 내용들을 가첨한 정도에 불과하기때문이다. 그러나 《유방》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친일부왜의 혐의가 있는 작품을 반일저항적인 작품으로 분식하였다는 비판이 가능하기때문이다. 먼저 원작과 개작 도입부분의 내용을 대조 인용해본다.
남원공략전(南苑攻略戰)을 비롯하여 태원성함낙(太原城陷落)에 이르기까지 혁혁한 무훈을 세운 김석원(金錫源) 부대장은 북지전선에서 첫번 돌아왔었을 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것을 여기에 옮겨 쓰기로 한다.
제정(帝政)일본 학정자의 채쭉에 못이겨 지원병이라는 미명밑에서 이를 갈며 화북(華北) 전투지구에 출정 했던 학도병(學徒兵) 정태호군은 이번 중국 연안(延安)에서 귀환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 준 것을 여기에 옮겨 쓰기로 한다.
나중에 전문적으로 론의하게 되겠지만 이 작품의 개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도입액자의 내용 즉 이야기 전달자의 신분이다. 원작에는 일제의 충견으로 중국전장에서 일제를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조선인 김석원 부대장이 전해준 이야기로 되여있지만 개작에서는 이야기 주인공의 친구인 학도병 정태호가 전해준것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일본인 부대장을 사살한다는 주인공 정태호의 몽중담을 가첨함으로써 뚜렷한 민족의식을 갖춘 반일저항소설이 되게 하였다. 얼핏 보면 다른 개작품과 비슷한 결과를 나타내지만 도입액자부분에서 친일적인 이야기의 전달자로 하여, 또 이 친일적인 이야기 전달자에 대한 칭송의 표현으로 하여, 개작품에 가첨된 종결액자부분의 내용을 통해 친일적인 작품의 혐의를 가지고있는 작품을 반일저항적인 작품으로 개작했다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박계주의 이민소설들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해보고자 한다.
2. 작품소재의 특이성과 렵기성
작품소재의 특이성과 렵기성은 박계주소설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이다. 당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적을 주인공으로 한다든지(《사형수》), 그런 마적에게 잡힌 “육표”의 이야기를 쓴다든지(《육표》), 현대의 문명과는 전혀 담을 쌓고 사는 산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것(《처녀지》), 간도와 강동, 러시아 지역을 전전하면서 특수한 경력을 가진 조선인을 그린다든지(《딸따리족》), 인간성을 상실한 마약중독자를 그린것, 심지어 눈과 귀가 먼 부상자가 어머니의 유방을 피부로 감촉하고 어머니를 알아본다는 이야기나(《유방》) 간도 조선인과 러시아처녀의 사랑이야기(《아라사처녀》) 등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혹자는 이런 박계주소설의 특징을 그의 통속소설창작과 관련시키면서 평가절하할지도 모르겠으나 통속적인 방식으로 본격적인 소설의 주제를 해명해나간다고 나쁠것은 없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속에 가치있는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성공적인 작품행위로 보아야 할것이다. 소설의 탄생은 흥미성에서 비롯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박계주는 이처럼 특이하고 심지어 렵기적이기까지 한 소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까?
3.1 문명비판과 그 의미
《처녀지》(1941)에서 박계주는 원시적인 이주민 “산ㅅ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산ㅅ사람” 일가족이 사는 자연환경 또한 지극히 원시적이다. 소설에서는 모두에서 먼저 그러한 환경의 원시성을 강조하여 묘사한다.
쟁영(崢嶸)한 장백산 연봉(長白山連峰)을 앞으로 쳐다보며 해란강(海蘭江)의 근원을 찾아 어질령(嶺)을 넘으면, 거기엔 원생림(原生林)으로 바다를 이룬 처녀지가 있다. 아직 문명의 유린을 당해보지 못한 이 처녀지엔 곰과 멧돼지와 이리와 여우와 노루 등, 산짐승들이 생존을 다투며 서로 제 살림을 경영하기에 온갖 지혜를 윤택(潤澤)ㅎ게 하여 원시의 세계인양 그 품이 매우 소박하지만, 이러한 고산벽지길래 봄이 와도 눈은 그대로 덮여있어서 봄을 모르고, 그때문에 눈이 녹기 시작하는 늦인 봄철로부터 다시 눈나리기 시작하는 중추(仲秋)의 그 기간을 걸쳐 이 끝없는 수해(樹海)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점점(漸漸)에 은신의 소굴을 조영하는 극히 소ㅅ수의 마적(馬賊)의 출입을 보는 외엔 별로 인간의 침약을 당해보지 못하던 이 무인경에 조선사람의 집 한채가 있다는것은 한개의 경의(驚異)가 아닐수 없다.
이러한 환경묘사는 당시 이주민문단에서 자주 언급되고 또 한국 본토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이른바 만주대륙의 모습 그자체라고 할수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주민의 눈에 비친 만주대륙의 모습이였을것이다. 지극히 원시적인, “아직 문명의 유린을 당해보지 못한 이 처녀지”였던것이다.
이 소설에서 박계주는 수십년간 해란강의 발원지, 장백산련봉속에서 사냥을 하고 함지나 파면서 그것을 가까운 동네에 내려가든지 물건 바꾸러 오는 사람과 바꾸든지 하면서 세상과 거의 동떨어져사는 산사람 일가족의 생활과 경력을 그리고있다. 이름도 분명하지 않고 다만 “산ㅅ사람”이라 불려지는 주인공은 마적들이나 혹 지나갈가 하는 원생림속에서 앙까이(안해)와 아들애 둘을 거느리고 살아간다. 물론 그들은 조선이주민의 가족이다.
이렇게 문명과 두절된 평범한 세월을 부친대에서부터 살아오는데 어느날 난데없이 삼림측량대가 나타나서 극히 제한적인 산사람의 나무 채벌을 제지시킨다. 그리고는 이곳에 철도가 부설될것이며 삼림 또한 국유림이라 한다. 일제의 삼림개발정책이 이 두메산골에까지 미쳐온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나무를 벤다고 하여 문명사회의 관리인들은 그가 문명사회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며 바보니 미쳤느니 하며 귀뺨을 마구 치는데 그 모든것이 산사람에게는 오히려 미친 행위로 비쳐진다. 류치장에 갇혔다가 그래도 삼림주의 호의로 생존수단을 개인적인 나무베기에서 채벌공사에 나가 일하는것으로 바꾸게 되고 그 일터에서 일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기 위해 꾀나 부리고 일이 끝나면 색주가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떠들고 싸우고 하는 문명사회의 미친듯한 행위를 보게 되며 문명의 예기인 불술기(기차)도 보게 된다. 이러던중 점차 그들과 같게 되는 자신에 놀란 그는 다시 더 깊은 산속으로 이사를 가려 작심하고 짐까지 쌌다가 그 행위가 자신의 패배를 의미하는것임을 깨닫고는 다시 문명사회에 적응해 살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근본적인 갈등구조는 원시성과 문명성의 대결이다. 현대의 문명은 원시적삶을 살아가는 산사람 일가족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게 사실이다. 산사람의 아이들은 무슨 나무에 열리는지 모르는 개누깔사탕이 너무도 신기하고 매력적이며 장사군녀인이 “닳을까봐 신지 못하고 머리에 이고왔”다는 고무신 또한 산사람의 안해에게는 “폭신하고 몽글몽글한게 참 좋다”. 그리고 삼림측량대원들의 “옷 채림채림이라던가, 신은 신이라던가, 쓴 모자라던가, 어느것 하나 처음 보지 않는것이 없고, 신기하지 않은것이 없다.”“의복도 의복이려니와 더욱 놀라운것은 뜰악에 천막을 치고 보지 않던 그릇에 보지 않던 요리를 만들어내는것은 참말 희한한 구경꺼리였다.” 그러한 경이를 산사람의 안해는 “웃티(옷이) 벨랐으꼬마.”로 표현하며 산사람은 “그 눔으 총으 한개만 가졌으문 그저 이 산속에 있는 짐생이란 짐생은 왼통 잡아낼거르!”라고 부러움까지 보인다. 나중에는 “무엇이 끌지도 않는데 끄는 이상의 속력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를 보고 더구나 “신통하다못해 놀랍다” 하고 “제에마 정게 저 내굴(연기)이 나오는 방속에 말이 들어가 닳고 잇음메?”라고 한 산사람 아들애의 의혹은 그들의 문명에 대한 경이를 잘 나타내주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호의적인 반응이다.
그러한 문명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데 대해서는 당연히 호의를 느낄수가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불청객인 삼림측량대원들이 나타나서 산속의 나무가 국유림이 되여 “허가없이 자르면 처벌받”는다는것이다. “처벌”이 무엇인지 “형벌”이 무엇인지를 알리없는 그들이지만 나무를 자르지 못한다고 하는것은 명백히 생존에 대한 위협이였다. 이제 여기에서 원시성과 문명성은 날카롭게 맞선다.
산사람은 조상때부터 마음대로 잘라도 아무 시비 없던 나무를 갑자기 자르지 못한다고 한것은 정신이 제 상태에 있는 사람의 소위일수 없다고 보며 특히 알아들을수도 없는 조선말을 늘어놓는것이라든가, 사람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갑자기 웃음을 탁 터뜨리는것, 갑자기 웃다가 갑자기 성을 내는것 등이 모두 정신이상의 한 징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무를 자르라고 하더라도 기차가 개통되면서 그렇게 수많은 나무를 매일 기차에 실어다가 함지를 만들고 숯을 구워내면 생계가 끊어질것이라는 불안이 심각해진다. “왜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실어가면서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릴까.” 이는 산사람이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에서 그냥 나무를 자르다가 벌목인부감독에게 잡혀갔을 때 그는 존대말 대신 “야, 자” 하며 나무를 자르면 콩밥을 준다 하고 “처음 말과 다음 말이 전혀 어긋나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만 하여 또다시 “정신병자”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그걸 확인하고자 했더니 앙천대소를 하며 그쪽에서 오히려 산사람을 “미친놈”, “불쌍한 인간”, “바보”라 하며 뺨까지 치니 마침내 “쌔시개(정신병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경관이라는 사람마저 자꾸 알아들을수도 없는―호적이니 국적이니 빠가야로니 고노야로니 하며 알아들을 소리만 해도 못다할 이 세상에서 필요이상의 말을 자꾸 만들어내는것이 역시 정신이상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직한 말을 했다고 하여 성냈다 때렸다 하며 필요이상의 흥분과 필요이상의 피대를 올리고 펄펄 뛰는것이 암만 생각해도 미친사람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참다못해 “무세레, 당신네들은 나르 붙잡아다놓고 시비만 걸려구 하오?” 하고 항의하는데 “나으리”로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 불렀다고 또 화를 낸다. 결국 그는 “세상엔 모두 정신병자만 사는것 같애서 세상이 우울해”지고만다.
산사람의 이와 같은 현실인식 혹은 세상인식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그러한 문명이 일제의 식민지경영에 의해 강요된것이므로 일제의 식민지략탈에 대한 비판이고 풍자로도 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산사람이 그러한 문명과의 대결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이 사람들과 섞여서 살다가는 나두 쌔시개(정신병자)가 되겠”다는 우려때문에 장백산 오지로 들어가려 결심했던것을 생각을 바꾸어 다시 “‘나’를 파괴하는 모든 거짓과 어둠과 싸워서 이기자. 그들속에 있으면서 그들을 닮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잃지 않는것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승리일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성공이기도 하리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것에서 이러한 판단은 더욱 힘을 얻는다. 사실 따지고보면 산사람의 이같은 각오는 산사람의 각오라기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각오이고 작가의 문명인식이며 현실인식이라고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 하겠다. “이 作品에서 내가 意圖한것은 쫓겨가는 處女地의 山사람을 朝鮮民族으로 代身했고, 機械文明을 背景한 特權階級을 侵略者 日本으로 代身하였을뿐아니라 ‘人間’을 벌거벗겨놓고 거기에서 ‘너’와 ‘나’를 보려 했던것이다.”고 한 작가자신의 진술 또한 이런 판단을 반증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비판의식은 요즘 학계의 중요한 관심사로 부상되고있는 환경문학 혹은 생태문학의 시각에서 볼 때도 가치가 있는것이다. 작품에서 “왜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실어가면서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릴까.”라는 표현이라든가, “알아들을 소리만 해도 못다할 이 세상에서 필요이상의 말을 자꾸 만들어내는것” 등은 공업문명의 파괴성에 대한 비판으로 볼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표현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네 국적이 조선에 있어서 황국신민(皇國臣民), 이를테면 일본사람이 됐느냐? 그렇쟎으면 만주국에 입적해서 만주국백성이 됐느냐 말이다.”
하고, 성을 펄쩍 내며 묻는다.
“나는 조선사람이오.”
“이놈아, 조선사람인줄 누가 모른대?”
그는 다시 깔깔 웃는다.
“그럼 왜 조선사람인줄 알면서 나보구 일본사람이냐 만주국사람이냐 하구 묻소?”
산ㅅ사람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선사람인줄 빠안히 보면서 일본사람이냐 만주국사람이냐 묻는 그 한가지만 보아도 분명히 정신상태가 온전한 사람의 말일수는 없쟎은가.
“그럼 너는 일본백성이 아니란 말이냐?”
“내가 왜 일본사람이란 말이오? 이렇게 조선웃티(옷)르 입구 조선말으 하는데…….”
“이놈아, 너는 비국민(非國民)이다!”
“비국민이라니오?”
“빠가야로!”
“……?……빠가야로라는 건 또 무시겜둥?”
비국민이니 빠가야로니 하고 점점 더 모를 소리만 연발하는데는 산ㅅ사람의 정신은 더욱 얼떨떨해진다.
이때 산사람의 “비국민”적인 행위는 그의 현실사회에 대한 무지를 전제로 했기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을지 모르나 “그는 그날밤에 匪賊(침약자 일본에게는 匪賊일지 몰라도 기실은 비적이 아니라 反滿軍의 게릴라部隊였던것이다.)을 잡으면 호송할 때까지 임시 가둬두는, 그러나 아직 한번도 가두어본 일이 없는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였다.”는 표현에서 괄호안의 부분은 해방후 가필한것이 분명하다. 1948년 박문출판사판 박계주창작집 《처녀지》에 처음 공개발표되였기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주제에는 큰 변화가 없어보인다. 이에 대한 박계주 본인의 진술을 들어보이면 다음과 같다.
檢閱말이 났으니 말이지, 《處女地》는 李泰俊氏가 主宰하던 《文章》誌의 一九四一年版인 三十四人集 特別欄에 揭載키로 되어 造版까지 했던것인데, 이 作品이 問題가 되어 檢閱官은 “왜 雜誌를 廢刊시키구싶어서 이러느냐” 하고 야단을 쳤을뿐더러 作者의 呼出까지 있어 톡톡히 說諭를 듣고 요행 原稿만을 찾아내어왔었다.
그뒤, 《文章》 終刊號에 다시 한篇 쓰라 하여 《處女地》의 下中을 改作해서 드렸더니 亦是 全文削除를 당하고 말았었다. 한해를 묵혀서 다시 이 作品을 全面的으로 改作하여 綜合雜誌 《春秋》에 發表하기로 했는데 또한 全文削除를 당하고말았으니, 解放뒤 文學家同盟機關紙 《文章》에 실리려고 仝同盟小說部委員長 安懷南兄이 가져갔었는데 同盟이 地下로 들어가다싶이 되고 또한 機關紙가 언제 나올지 몰라 單行本에 놓으려고 찾아내어왔었다. 그래서 이 作品은 끝끝내 發表되지 못하고말았던것이다. 그렇게 虐待받고 出世못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나는 내 作品中에서 이 작품을 몹시 좋아한다.
이상의 분석에서 우리는 박계주가 《처녀지》를 통하여 원시적순수성과 현대문명의 탐욕을 대결시킴으로써 현대문명의 파괴성을 밝히고 그러한 문명을 강요한 일제 식민지경영을 비판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거기에 만주대륙의 혹한과 울창한 숲, 거친 지리적, 지형적 이미지가 뒤받침되여 소위 “대륙문학”적인 미적효과를 창출하고있다. 이는 또한 일제말기 암담한 현실에서 검열제도를 통한 언론, 문화의 통제를 우회하여 현실에의 저항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상징적대안이였다는 사실도 간과할수 없을것 같다. 물론 그러한 작가의 시도는 수차 삭제되면서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실패했다고 볼수밖에 없는것이다.
3.2 마적의 내막에 대한 해명
박계주의 작품에서 이민지의 마적에 관련된 작품은 2편이다. 《육표》와 《사형수》가 그것이다. 《육표》는 마적과 마적에게 육표 즉 인질로 잡힌 이주민과의 갈등을 보여주고 《사형수》는 마적자체를, 정확하게는 王德이라는 마적단의 두목이 당시 관청격인 륙군에 잡혀 래일이면 사형당할 최후의 밤과 사형장으로 가는길에 길거리에서의 조리돌림, 그리고 사형장에서의 죽음과 거지들의 옷벗기기 경쟁을 그리고있다.
《사형수》에서 왕덕은 사생아라고, 진짜가 아닐지도 모를 부모에게서 자라 고학으로 공부를 했으나 오랑캐의 후예라고 벼슬을 할수가 없었다. 그는 마적이 되였고 인테리라 하여 두목까지 되여 갖은 살인, 방화, 략탈, 간음을 일삼다가 잡혔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래세가 있을지, 인간은 물질에서 왔다가 죽으면 다시 물질로 돌아가는것인지를 가지고 고민한다. 그러나 이튿날 사형장에 나가는 길에서는 용감히 죽기로 맹세하고 륙군을 마적보다 더한, 심지어 위선까지 덧붙여 더 많은 죄를 진 놈들이라 사형집행자들을 수백, 수천명의 군중앞에서 규탄한다. 그래도 속으로는 혹 구출을 올 마적들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총살하게 될 다른 두 마적중 하나는 사형전에 마음대로 먹을것을 먹게 하는 전통에 의해 죽을둥살둥 모르고 먹기만 한다. 또 다른 한 녀석은 이미 판결이 끝났음에도 자기는 살인도 방화도, 아무 나쁜짓도 하지 않고 잡혀가서 별수없이 마적들을 따라만 다녔노라고 비굴하게 변명한다.
그러니까 사형장에 나가는 세 인간의 세계, 아니 거기에 그것을 집행하는 륙군의 마적보다 더한 세계,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며 구경하는 군중들도 또 이 네개의 세계와 별 다를바없는 형형색색의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파하고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형이라는, 분명히 내다볼수 있는 죽음을, 극한적상황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로출시키고있다. 죽음의 공포를 깨달으면서도 떳떳이 죽으려는, 그러면서도 혹 이 위기를 면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왕덕과 그에 곁들여서 죽기전에 마음껏 먹으려는 죄수와 살려달라 애걸하는 죄수, 그리고 왕덕의 말처럼 마적보다 더한 마적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인민의 보호자라 자처하는 병정들의 모습을 그리고있다. 다음 례문은 이러한 상황 특히 인민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륙군의 마적보다도 더한 악덕의 진면모를 잘 보여준다.
세개의 세계가 행진한다. 아니, 병정의 세계까지 합하면 네개의 세계가 행진한다. 왕덕의 말과 같이 그들 병정과 관리는 마적과 다를것이 없었다. 도리여 위선이라는 죄를 하나 더 뒤집어쓴 마적과 다를것이 없었다. 도리여 위선이라는 죄를 하나 더 뒤집어 쓴 마적 이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강압, 착취, 학정, 공갈, 무법……그러나 그의 이름은 인민의 보호자였다. 평화의 사자(使者)였다. 위풍이 등등하다. 뻐젓하다. 죄인이 죄인을 심판한다. 죄인이 죄인을 사형한다. 어디서 온 진리냐.
이 작품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특이한 소재를 선택하여 결국 인간일반의 본질을 파헤쳐보이고있는셈이다. “세 세계가 움직이고있다. 죽음을 향해 지금 행진하고있다. 아니, 네 세계다. 아니, 수백수천의 세계가 움직이고있다.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엔 죽음에 부딪치고야 마는것이다. 군중―수백수천의 군중속에도 세 마적의 인간타입이 있고, 그리고 병정들의 인간타입이 있는것이다. 너도 나도 죽음을 향해 전진 또 전진.” 라는 표현에서 이점이 확인된다. 특히 백성을 지켜준다는 관청역을 하는 륙군이 마적보다 더한 마적일지도 모른다는 표현은 당대 간도사회의 력사적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였다 하겠다. 그리고 죽음과 래세, 령혼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고민은 박계주의 기독교적 사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육표》는 《사형수》에서 죽음을 앞두고 나약한 면을 보이고있는 마적들의 악마적인 측면과 그러한 악마에게 구속당해 시시각각 죽음을 맞아야 하는 두 이주민의 생존상태와 인간적인 본질을 문제삼고있다.
이 작품의 모두에는 당시 이민작가의 작품에서 가끔 볼수 있는 부언설명이 붙어있다. “―이 小說의 舞臺는 白頭山東北으로 뻗은 長白山支脈의 山谷. 때는 지금으로부터 二十年前 張作霖治政時代임을 미리 말해둔다.” 여기서 20년전 장작림정권시대라는 설명이 필요했던것은 일제의 검열때문이 아니였을까 짐작된다. “오족협화”요 “대동아공영권”이요 하여 만주국의 안정과 풍요를 구가하던 시대에 마적이 출몰하며 인명을 해치는 상황을 버젓이 그린다는것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있었을것이기때문이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강달귀(규)는 재피거우에서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명물이요 망나니다. “매일 술만 처먹고는 싸우는것이 그의 하루하루의 일과요 직업이요 락”이다. 그런 망나니지만 그에게도 번뇌는 있었으니 바로 영춘옥의 옥녀때문이다. 옥녀는 술집에서 일하지만 인물뿐만아니라 행실이 단정해서 뭇사내들의 가슴을 태웠다. 그리고 옥녀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한마을에서 자라난 성호라는 젊은이였다. 성호는 옥녀가 색주가에 팔려오게 되자 전차금을 내고 그녀를 빼내려고 이곳에 와서 광부가 되였다. 어느날 옥녀와 술상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강달귀가 나타나 싸움을 건다. 둘이 사투를 벌리는 사이에 밖에서 총소리가 나며 년례행사처럼 닥쳐오는 마적들의 습래가 발생했고 둘은 돈있는 사람으로 오인되여 그만 마적들에게 육표로 잡혀가게 된다.
적굴에 잡혀가서 둘은 마적들의 강박에 어쩔수 없이 편지를 썼고 강달귀는 광주에게, 성호는 옥녀에게 보냈다. 도망할 꾀를 생각하던중 어쩌다가 강달귀가 먼저 포승을 풀고 도망하면서도 성호는 그대로 두었다. 성호에게 복수하고 옥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강달귀는 되잡혀오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채 밖에 있는 나무에 매달렸다. 그 고통스런 모습을 보는 성호의 마음은 착잡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적들은 마약이 바닥이 나자 두명만 소굴에 남겨두고 습격을 나갔고 성호는 기회를 타서 마적 둘을 제압하고 도망치게 되였다. 그리고 강달귀에게 복수하고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자신은 악을 악으로 갚을수 없다며 그를 풀어준다. 그러나 총상을 입고 사흘이나 밖에서 시달린 강달귀는 성호에게 업히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산속을 탈출하던중 자신의 과거를 회오하며 죽어버린다. 성호는 무덤앞에 “조선인강달규지묘”라는 묘비를 세워준다. 무덤의 임자가 마적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인데 어쩌면 더러 렵기적인것 같은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 주제는 인간성의 발견이다. 천하의 망나니 강달귀는 성호의 무조건적인 사랑앞에서 악을 버리고 선으로 재생한다. 삶과 죽음사이에서 인간의 선과 악은 극한적인 대결을 벌리며 결국 선이 악을 이긴것이다. 또다시 작가의 기독교적인 박애사상을 표현한것임을 알수 있다. 다음 례문에서는 그런 작가의 사상이 극명하게 표현된다.
“여보게. 나는 살아서 마적굴을 탈출하게 되는것을 기뻐하는것이 아니라, 죄악덩어리였던 그 ‘나’를 탈출하여 새로운 ‘나’를 찾은것을 기뻐하는것일세. 이렇게 나를 옛사람에게서 탈출시켜 새사람으로 다시 살게 한것은 전혀 자네의 사랑일세. 나는 사랑이라는것이 무엇인것도 지금 처음 알았고, 맛보기도 지금이 처음일세.”
띠염띠염 간신히 말하는 그는 또다시 성호의 등에 눈물을 떨어뜨린다.
“여보게, 자네 재피거우에 돌아가거든 강달귀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의 속사람만은 죄악에서 살아났드라고 전해주게.”
한마디를 남겨놓고, 그 움푹 패인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채 숨을 걷우어 버리고말았다.
인식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에는 이주민들의 생활터전인 북간도지역 마적들의 행적과 삶의 양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중국어의 인용과 마적들의 노래 등 이국적인 정서와 더불어 주목을 끌었을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당연히 력사적 사실로서 가치가 있다 하겠다.
결국 박계주가 마적의 내막을 해명하고자 했던것은 이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사실주의의 기본원칙외에도 마적 및 마적과 관련된, 흔히 극한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읽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싶다. 이는 박계주의 기독교신도라는 신분과도 어울리기때문에 한층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3.3 오지(奧地)문화에 대한 관심
소재의 특이성이라는 박계주소설의 한 특징은 오지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연장된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처녀지》나 《육표》, 《사형수》 등에도 오지문화의 특징이 상당정도 포함되였다 할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작가의 주되는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그러나 《딸따리족》이나 《질라깨녀인》, 《개》 등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오지문화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먼저 《딸따리족》의 경우 러시아에 이민을 갔다가 현재는 북간도에 정착해 살고있는 강동령감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경험한 딸따리족의 삶과 그들과 련관되여 한때 거부가 되였던 강동령감의 이야기를 엮고있다.
강동령감은 러시아혁명때 구당과 함께 로만국경을 넘어 북간도땅에 들어와 이야기서술자인 “나”가 살던 얼두거우에 정착하였고 여기서 국수집 잡일을 보아주면서 호구하였으나 러시아에 있을 때는 해삼위에 훌륭한 양옥저택을 가지고 러시아미인을 안해로 맞아 한때는 호화롭게 살던 거부였었다. 그러던것이 혁명군에게 일조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안해마저 그들의 손에 잃은뒤에 알몸으로 뛰쳐나왔단다. 따라서 공산당은 그의 철천지원쑤였다.
이야기하기를 즐긴 강동령감은 가끔 “나”가 다니는 서당에 놀러와서 이국풍속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감자를 구워먹다가 감자와 관련된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러시아에 간 초기에는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보따리를 들고 시베리아 북쪽 삼림지대에 들어가서 우선 사냥부터 시작했다. 사냥으로 돈을 좀 벌다가 자신이 짐승이 된 느낌이 들어 짐승을 잡기 싫어졌다. 그에 총을 들고 산속을 다니기만 하다가 딸따리족이 사는 부락에 들어가게 되였는데 거기서 딸따리족들이 아이들 장난감으로 주어왔다는 금덩이를 발견하고는 이들을 구슬려 그 금덩이를 다 가지고 시가지에 나와서 진탕 먹고 놀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감자와 금덩이를 바꾸기도 하고 감자씨를 심도록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금과 바꾸었는데 딸따리족들이 감자 심을줄을 몰라서 가을에 수확하라고 한것을 사흘만에 파보고는 강동령감이 거짓말을 했다며 내쫓았다. 그래도 전에 감자와 바꿔온 금이 많아서 그 금으로 거부가 되였다는것이다.
지금이래도 사냥을 해서 팔자를 고치지 왜 국수집 망이나 봐주냐고 하니까 강동령감은 그런 생각이 없지 않으나 지금은 늙고 피가 식어서 안된다며 쓸쓸히 웃었다는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작품에는 상당정도 반공적인 의미가 드러나고있고 그래서인지 해방후 작가는 이 작품을 《무명지사의 최후》로 개작하여 저항적인 의미를 가미하고있으나 실상 이야기의 핵심은 한 이주민의 파란많은 류랑의 경력과 러시아 소수민족인 딸따리족의 원시적인 삶과 련관된 오지체험이다. 강동령감의 오지체험에서는 딸따리족의 소박하고 원시적인 삶과 욕심덩어리 현대인의 삶이 대조를 이룬다. 금이 생기니 산속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던 사람에게 끝없는 욕구가 생기고 그래서 금을 판 돈을 술과 계집으로 금방 탕진해버렸다는 강동령감의 경력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리고 러시아혁명과 자신의 재산을 몰수한 공산당을 원쑤로 보면서 이를 갈기도 하지만 국수집의 망이나 보아주면서 만년을 보내는것에 만족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부질없는 허욕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질라깨녀인》에서는 흑룡강류역에서 일생을 배타고 고기잡는것을 업으로 생활해가는 소수민족인 질라깨족과 조선인간의 특이한 관계를 그리고있다.
질라깨족은 흥룡강류역의 토착민으로서 그들의 주가(住家)는 고기잡는 목선이요 정주지(定住地)가 따로 없이 사는 그들에게는 흑룡강이 집터요 직장이요 고향이다. 이들은 생선을 생으로 먹는 야생적이요 원시적인 삶을 살아간다. 한번은 이들이 조선인이 사는 마을에 들어와 저녁 짓는 모습을 보게 된다. 쌀을 두번이나 씻어서 밥을 짓는것을 보고는 너무 깨끗한 민족이라고 감탄하며 밥을 물에 말아먹는것을 보고는 두번 씻어 지은 밥을 또 씻어먹는다고 끔찍한 민족이라고 딸을 이런 깨끗한 민족에게 시집보내겠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나서 그 밥 말았던 물로 양치질을 하고 꿀꺽 삼키는것을 보고는 “그들이 씻어낸 물을 도루 마시는거나, 우리가 씻지 않고 먹는거나 더러운것 먹기야 마찬가지지. 머 다를것 있나. 역시 내 딸은 내 족속에게 시집보내야겠는걸.”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
콩트 정도의 이 짧은 이야기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싶었던것은 아무래도 이들의 원시적인 평화와 소박함이였던것 같다. 다음 례문에서 작가는 이점을 확인시킨다.
그렇게 야만답고 원시인그대로이기때문에 이 족속의 생활에서 우리는 소박(素朴)함과 순진함과, 목가적(牧歌的)인 평화를 엿볼수 있는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마우재”(露西亞人)와 피를 달리한 동양인이라는데서 우리는 이웃사촌의 정도 갖게 되는것이다.
특별히 설정한 주제도 없고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국땅 오지 원시적인 민족의 삶과 이들의 민족성을 그대로 드러내고있는셈이다.
그렇다면 박계주는 이들 오지체험을 다룬 소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여기에는 적어도 두가지 의미가 있는것 같다. 첫째는 소재자체의 특이성이다. 독자에게 이국적인 풍속과 이민족의 삶의 양상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에 만족을 줄수 있었기때문이다. 둘째는 원시성과 현대문명의 대조이다. 물론 이러한 대조속에는 현대의 문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판성이 내포되여있다. 이것을 앞에서 이미 살펴본 《처녀지》에서의 문명비판과 련관시켜보면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리해된다.
3. 《유방》의 전복성과 해체적 의미
《유방》은 박계주의 소설에서 친일적인 혐의가 가장 뚜렷한 작품이라 할수 있다.
액자소설의 형태를 갖춘 이 소설에서 이야기의 전달자는 중원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김석원부대장이 전해준 이야기를 작가가 적은 형국으로 되여있는데 주인공은 조선인병정 ○○군이다. 실명을 숨긴것은 아마도 실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것이다. 이 조선인 병정은 이른바 “‘나’없는 투혼(鬪魂)에서 격렬히 싸우며 전화(戰火)속을 헤염”치다가 랑자관(娘子關)전투에서 부상하여 눈과 귀가 멀게 된다. 그는 그를 찾아간 김부대장을 보고도 누구인지를 모르고 어머니만을 찾는다. 자신이 눈과 귀외에도 어깨밑과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어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것임을 느낀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애통한것은 정작 어머니가 찾아왔어도 알아볼수가 없다는것이다. 어머니가 아무리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어머니임을 호소하지만 아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이때 어머니는 갑자기 유방을 꺼내 아들의 입에 물려준다. 그제야 아들은 어머니임을 알고 모자가 부둥켜안고 운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도입액자만 있고 종결액자는 없는 액자소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야기전달자의 신분이다.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에서 혁혁한 무훈을 세운 김석원부대장을 그 이야기의 전달자로 선택했던것이다. 김석원은 실존했던 인물로 당시 신문에 널리 보도되였다고 한다. 이때문에 이 작품을 친일적인 작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무심히 보면 그렇게 보는것도 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작품에서 군데군데 눈에 띄는 표현들 가령,
그 조선인 병정 역시 「나」없는 투혼(鬪魂)에서 격렬히 싸우며 전화(戰火)속을 헤염쳤던것이오. 사실, 물욕이라는것, 명예욕이라는것, 지위욕이라는것……등등의 사욕은, 위대한 「죽엄」속에 나를 바쳐서 제물이 되려는 자에게는 이미 작별된것이 아니겠소.
(낭자관 전선에서 악전고투하던 부상병들이 낭자관이 함낙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기뻐하랴.)
나는 ○○군의 어머니에게, 먼 길에 고생이 많았을것을 인사 드린 뒤에, 전선에서 당신의 아드님은 용감히 싸왔던것과, 그리고 명예의 부상을 입게 된것등을 이야기 하며 그의 마음을 위무(慰撫)해 주며, 군의와 간호부들과 함께 그를 인도해 가지고 ○○군의 병실로 들어갔었소.
등에서도 그렇고 주인공이 전장에서 “나”없는 투혼을 불태우며 격렬히 싸웠다고 한것, 김부대장이 눈과 귀가 멀고 몸에 관통상을 입어 생명이 곧 다하게 될 부하 병정이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것을 가엾게 여겨 어머니를 모셔다 만나게 하려 한것, 또 군에서 어머니를 오도록 전보를 쳤다는 점, 군의나 간호사들은 물론 사령관마저 그 병정이 어머니를 찾는 애통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점 등은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또 침략자들의 인간미를 칭송했다고 보아도 무방할것이다. 더 확대해석하면 조선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는 혐의도 없지 않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작가가 해방후 이 작품을 개작하면서 이야기의 서술자를 김부대장에서 학도병 정태호로, 주인공을 일제에 강제출정을 당한 농촌출신의 병정 김인철로 하고 정태호가 김군과 함께 일본인 부대장을 죽이고 달아나는 꿈을 꾼다는 내용을 삽입함으로써 반일저항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한것은 그러한 친일적인 혐의를 벗기 위해서였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이 작품을 읽어보면 이상에서 살펴본 친일적인 내용이나 반일저항적인 내용 모두가 작품의 핵심적인 서사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작품의 핵심적인 서사는 전선에서의 부상에 의한 아들의 시청각장애와 아들의 촉각을 발동시킨 어머니와의 관계 이야기이다. 즉 시각과 청각을 모두 상실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그러한 아들의 정상을 보고 촉각의 기억을 되살려모자가 알아보게 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것만 없으면 이 소설은 소설이 되지 못한다. 다음 례문을 보면 그러한 서사의 의미가 곧 드러난다.
(울대로 내여버려두어라. 세상에 눈물처럼 정직한것도 없으려니와 눈물처럼 진실된것도 없는것이니, 하물며 어머니의 눈물에 있어서랴. 어머니의 눈물이야말로 사랑의 극치(極致)요, 정화(精華)니라. 어서 울고싶은대로 실컨 울어라.)
이야기서술자인 김부대장의 심리묘사인데 결국 소설의 주제는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인간의 사모(思母)본능과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의 본능 표현이라 하겠다. 박계주소설에서 일관적으로 표현되는 본능적인 선(善) 혹은 인간성의 문제는 이 작품에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통해 독자가 느끼는것은 어떤 조선인병정이 중국전장에서 일제를 위해 투혼을 불살라 잘 싸웠다는 사실이 아니라 전쟁때문에 아들이 어머니를 알아볼수 없는 비극적상황이 아닐까 한다. 이것을 일제의 대륙침략전쟁 혹은 전쟁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 내지는 부정이라 보면 지나친 독단일까?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전쟁자체 나아가서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전복적인 표현이라 할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박계주가 의식적으로 이와 같은 전복적인 주제를 표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혼종성의 시각에서 보면 김부대장의 무훈에 관련된 칭송이나 주인공의 투혼에 대한 서술은 일제 침략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전복을 위한 계획적인 장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제의 대중국전쟁에 무고한 조선인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작가의 무의식속에서 달갑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전사가 눈물을 흘릴 때 그의 직접상관인 김부대장이 사내답지 못하다고, 전사로서 낯뜨거운 일이라고 생각할대신 오히려 실컷 울어라고, 그 눈물이야말로 사랑의 극치요 정화라고 생각했을까.
다시 박계주의 전반 이민소설을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처럼 직설적인 서술을 통해 일제를 칭송하거나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한 작품은 없다. 혹자는 《오리온성좌》에서 “국토방위(國土防衛)를 위해서, 그리고 조선의 아들과 딸들의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 밤낮의 분별도 없고, 여름과 겨울의 가림도 없이 적기(敵機)의 내습(來襲)을 감시하는 방공감시초(防空監視哨)의 생활” 운운한것을 친일적인 표현이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분명 아니다. 일제를 위해 전선에 나가 싸운다는것과 적군의 공습 피해를 막기 위해 방공감시를 한다는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이기때문이다. 물론 여러가지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지만 이 경우 일제의 구미에 맞지 않는, 어느 정도 반전의 의식이 표현된 이야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더러 친일적인 분장을 서사적장치로 리용했다고 해도 론리는 통한다.
4. 《향토》와 작가의 정체성인식
박계주는 많은 작품을 이민지체험에서 취재하고있으면서도 정작 이주민의 가장 큰 관심사라 할수 있는 이민과 정착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은것처럼 보인다. 이는 아무래도 작가가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에 림할 때쯤 고국땅에 정착해 살았던것과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최서해처럼 정체성인식이 간도이민자에서 점차 조선인으로 회귀하지는 않고있다. 이는 아마도 박계주가 이민지에서 출생한 이민의 2세라는 사정과도 관련될것이지만 초기작품에 속하는 《인간제물》과 후기작품에 속하는 《향토》를 통해 박계주는 이민자적 정체성인식을 충분히 드러내고있다.
초기작품에 속하는 《인간제물》은 출세작인 《순애보》와 같은해에 발표했다. 작품의 주인공 련희와 남편 철규는 중국에 이민온 지식인이면서 시골에서 농사를 하면서 이주농민들을 돕고자 한다.
그런데 련희가 일 나간 남편의 찬을 함지에 담아이고가는데 지팡주 팡개의 아들 팡룩싼이 불쑥 나타나서 그녀를 겁탈하려 한다. 다행히도 마을청년 김갑수가 나타나서 위기는 면한다. 사실 련희의 남편 임철규는 이태리에서 성악공부를 하고 귀국하여 대학교 교수인 동시에 개인교습까지 하는 인기가수였다. 그런데 누명을 쓰고 학교에 있을수 없게 되자 북간도행을 결심하는데 이때 그를 사모하던 성악교습생 련희가 그를 따라나섬으로써 둘은 북간도에서 살림을 차리게 되였다. 북간도에서도 북간도 문화중심인 룡정이 아니라 시골에 나가서 농사질을 하며 식자반과 문맹퇴치, 청년회조직 등을 운영하여 이주민의 문화사업에 힘쓴다. 그러다가 지난해 전염병이 유행하던 이 마을에 와서 병을 치료해주며 살게 되였던것이다.
갑수가 야욕을 파탄시켰다는 리유로 팡룩싼은 갑수네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공안국에 고소를 하여 갑수네 부자간이 다 구속된다. 그것도 만족되지 않아 팡룩싼은 공안경찰을 꼬여 련희의 남편 철규에게 있지도 않은 도박죄를 씌워 벌금 80원형을 내린다. 이는 사실 팡룩싼이 련희더러 자기돈을 꿔서 남편을 구출하도록 하려는 잔꾀였는데 련희는 오히려 이사오기 전에 살던 곳의 청년회에 편지를 띄워 지원을 요청한다.
한편 공안국에서 유일한 조선인인 송통사가 철규의 벌금을 빨리 내지 않으면 일년반 옥살이를 하게 된다고 련희에게 을러메면서 자기 말을 따라 육욕을 만족시키면 금방 풀려날수도 있다고 얼른다. 그것을 거절하자 며칠동안 나타나서 얼리고 닥치고 하다가 마침내는 술을 먹고 찾아와서 겁탈을 시도하는데 련희는 안간힘으로 항거하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칼로 송통사가 아니라 자기 가슴을 찌른다. 바로 이때 철규와 갑수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갑수는 다짜고짜로 송통사를 쓰러뜨리며 철규 또한 안해의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 송통사를 찔러죽이려는데 안해는 이국땅에까지 와서 동포끼리 싸워서야 되겠냐며 용서해주라고 하고는 곧 죽는다. 그렇게 송통사는 목숨을 살렸으나 련희의 용서때문인지 이튿날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는다. 장례를 치른 철규는 평생을 북간도에서 살며 동포들을 위해 일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다음의 례문은 작품의 취지를 잘 밝혀주고있다.
노래를 다 하고난 철규는
“죽는날까지 이곳에서 내 형제를 위하야 일하자. 제물이 되자. 그리고 이미 제물이 된 연히의 무덤곁에 내 백골을 파묻자!”
이렇게 마음에 맹약하고는 고요히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굳게 잡는다.
작품에서 주인공인 련희와 철규의 불행은 이민자 모두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중국인 지팡주의 행패나 송통사로 대표되는 관청과 지배계층의 압박은 이주민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였고 주인공들의 운명은 이주민이 정착을 위해 치를수밖에 없는 대가라 할수 있다.
이와 같은 기본주제외에도 이 작품에는 두개의 소주제가 뚜렷이 표현된다. 송통사를 용서해주는 주인공 련희의 행위와 이들이 식자반과 문맹퇴치, 청년회조직 등을 운영하여 이주민의 문화사업을 돕고자 했다는 내용이다. 전자의 경우 기독교신자였던 작가의 박애주의와 용서의 사상이 표현된것이라 하겠고 후자는 당대 문학의 한 흐름을 이루었던 농촌계몽운동의 영향을 드러낸것이라 할수 있다.
여하튼 상기의 례문에서 확인되는것처럼 작품에는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이민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는 이주민의 의지 즉 이민자의 정체성인식이 강하게 표현되였다 하겠다.
이 작품에서는 중국에 이민온지 십년 미만의 주인공을 그리면서 북간도에 백골을 묻기를 결심하고 동포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이주 지식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향토》에서는 그보다 썩 많은 세월동안 이민지에서 살던 이주민의 향토의식을 통해 이제 하나의 정체성을 굳혀가고있는 이주민의 삶을 다루었다 할수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어머니의 작은 아들의 시점에서 일인칭으로 씌어졌는데, “내가 출생한지 아홉달만에 아버지는 같은 그 집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었다.”“내가 간도에서 출생해서 간도에서 이십년간이나 성장”했다고 한것으로 보아, 그리고 이를 박계주의 경력에 대입해 보면 이 작품이 자서전적인 작품임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작품 인물의 시각이나 정체성은 상당 정도 작가의 분신이 될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가 태여난지 아홉달만에,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병때문에 잃고 내일 발인하게 될 바로 전날 밤에 화재를 당해 그나마 남았던 집마저 잃고 한지에 나앉은 어머니. 그녀는 그러나 고향에 가서 살라는 시형(“나”의 백부)의 권고도 마다하고 남편이 남긴 빚을 갚고야 고향에 나간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실은 남편이 묻힌 땅을 떠나고싶지 않아서이다.
그후 어머니는 갈보들의 삭빨래, 삭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며 심지어 간도에서도 저 오지의 “동내”라는 마을에 가보았으나 그것은 쌀이 아니라 좁쌀마저 구경해보지 못한, 감자나 심어먹는 화전민마을이였다. 그래서 “네 아비는 글두 알았는데……”라는 백부의 말이 가슴에 맺혀 다시 룡정에 나와 아글타글 일하여 마침내 자기집을 짓고 살게 되였다. 형이 어떻게 되였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나”가 내지(조선)의 모 잡지사에서 근무한다고 한것으로 보아 결국 아들을 공부시켰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런데 어머니 환갑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에 내다가 향토에 묻어주기를 아들에게 청한다. 조상을 잘 모셔야 자식들이 잘된다면서. 그런데 사실 “나”는 룡정에서 태여나서 그런지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의 고향에 내다 모시고싶지 않다. 그래서 고향이나 간도나 다 한지구위에 있다고 어머니를 설득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마음놓고 눈감게 하려면 아버지를 고향에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 자신도 이제 룡정보다는 고향이 더 친근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룡정에 들어서면서 무의식적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향수가 풀릴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고향에 모시려는 뜻을 밝혔을 때 어머니는 생각밖에 이를 반대한다. 이제 어머니도 간도땅에 정이 들었던것이다.
이것이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가 되는데, 아래의 예문은 작가의 정체성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어디까지나 조선의 고향에 대해서는 정을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그 곳에 아버지의 유골을 꼭 파묻어야할 아무 미련이나 애착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간도에서 출생했던 탓으로 내 잠재의식이 간도를 향토로 여기는 때문일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태도가 오늘까지 그렇게 아버지의 유골에 대하여 염려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무관심하게 지나게 했을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머니와 나와 고향을 달리한 무의식중의 암투이기도 하리라.
향수(鄕愁)끝에 맛보는 즐거움이라 할까, 무척 반가운 심회를 제어할 길이 없었다. 그 찰나, 내 감정은 또 분열되기 시작한다. 내 향토가 될수 없다던 용정을 무의식중에 고향으로 여기군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무의식중에 고향으로 느껴지는 곳이 진정한 내 고향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간도땅에 깊은 애착을 느끼셨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이곳은 당신의 땀과 눈물로 물 들여진 혈전장(血戰場)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의 피와 땀이 섞인 땅은 버리고싶지 않은것이다.
이민 2세인 “나”의 경우 출생하여 청소년시절을 보낸 관계로 항상 이민지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그런 생각은 무의식속에까지 배여있다. 게다가 그 고향에는 인간이 흔히 느끼는 “집”의 상징인 어머니가 살고있기때문에 몸은 고국에서 살면서도 항상 귀소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아마 이민 2세의 정체성이 고국에 귀환한 상태에서도 이민자의 그것을 탈출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민 1세인 어머니의 경우는 아들과는 반대인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찬가지 리치다. 례문에서처럼 “자기의 피와 땀이 섞인 땅”이기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에 남편의 유골이 묻혀있기때문에 어머니의 정체성은 이제 “간도인”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문화적인 신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구비할 때 인간의 정체성은 바뀌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수 있다.
박계주는 아마도 자서전적인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1944년이라는 시점에서 보면 박계주가 고국땅에 나간지 12년이 된다. 물론 중국 룡정에 어머니와 형이 있었으므로 그동안 가끔 들어와 만났을것이다. 소설에서도 이점은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인이 되여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민자의 정체성을 느끼는 자신의 고민이 담겨진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말이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박계주가 왜 《순애보》와 같은 통속물로 작가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중국체험의 소설에 보다 애착을 가졌는지, 왜 《처녀지》가 수차 전문 삭제되면서도 발표하고자 했었는지를 짐작할수 있을것 같다. 그는 모국땅에 정착해살면서도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이주민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있었던것이다. 본고에서 박계주를 조선족이민작가로 보고 이민문학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다룬것도 사실은 이점에 주목해서였다. 여기서 다시 《향토》의 한부분을 더 인용하여 이러한 분석과 판단을 재확인해보도록 한다.
그렇게 눈에 쓸쓸하고 마음에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간도지만,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잊을수 없는 곳이오, 그립고 반가운 곳임을 어쩔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 내가 간도에서 출생해서 간도에서 이십년간이나 성장했던 탓이겠지만, 아직도 간도에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고 형님이 계시다는 것도 한 원인이리라. 그보다도 간도는 내 적은 사상의 세계에 젖을 주던 모토(母土)였던 때문일지도 모른다.
5. 극한적인 상황설정과 사투리의 미학
박계주의 소설은 내용적측면에서뿐만아니라 형식적측면에서도 뚜렷한 개성과 특징을 보이고있다. 가장 전형적인것이 극한적인 상황설정과 북도사투리의 적절한 사용이다.
5.1 극한적인 상황설정
초기작품에 해당되는 《인간제물》에서부터 박계주는 소설구성에서 극한적인 상황설정을 중요한 서사적장치로 리용하고있다. 우선 지팡주의 아들 팡룩싼이 주인공인 련희를 간음하려 한다. 첫번째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그 위기상황이 잠시 풀리자 곧바로 두번째 위기가 닥쳐온다. 팡룩싼이 련희의 남편에게 있지도 않은 도박죄를 씌워 갚지도 못할 액수의 벌금을 부과시킨다. 련희더러 팡룩싼의 돈을 꿔서 남편을 구출하도록 함으로써 빚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두번째 위기상황이 해소되기도 전에 결국 극한적인 위기상황을 맞는다. 팡룩싼의 앞잡이요 공안국의 대표자인 송통사가 련희를 간음하려 한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련희가 칼로 자신을 찌름으로써 위기가 해결되지만 작품에서는 이처럼 서로 련결된 위기상황을 극한에까지 이끌어감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하여 독자를 끌고있다. 어찌 보면 이는 대중소설이 상용하는 서사전략이기도 한데 대중소설과는 달리 우연의 구조가 아닌 사실적구조를 유지함으로써 본격소설의 원리를 지키고있다. 즉 그러한 극한적인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악을 악으로써가 아니라 선으로 이긴다는 기독교적인 사상을 설득력있게 표현한것이다. 작가의 뛰여난 소설구성력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육표》에서는 좀더 강력한 극한적상황을 설정하고있다. 주인공이 사람 죽이기를 닭잡듯하는 마적에게 육표로 잡힌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위기상황이 점차 강화되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극한적인 위기상황을 평면적으로 끌고가면서 위기탈출의 가능성을 긴장감의 요소로 삼고있다. 누가 돈으로 육표를 빼내갈 사람도 없는 두사람이 양복을 입었다는 리유때문에 육표로 잡혔다는것 자체가 거의 탈출이 불가능한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어느 기회에 함께 육표로 잡혀온, 주인공 성호와는 원쑤간인 강달귀가 먼저 탈출하면서 성호를 구해주지 않는다. 강달귀의 립장에서는 합리적인 행위방식이다. 그런데 그는 도망치지 못하고 도로 잡혀온다. 이제 강달귀뿐만아니라 성호마저 도망할 희망이 묘망해졌다. 도망의 경력이 있으니 더욱 눈밝혀 직힐것은 당연한 일인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기회가 생긴다. 마적들이 필수로 하는 마약이 떨어진것이다. 마적들은 두명만 남겨두고 마약 탈취하러 나가게 된다. 이번에는 성호가 기회를 타서 자신들을 지키는 마적을 제압하고 도망한다. 물론 성호는 강달귀를 혼자 두지 않고 함께 탈주한다. 문제는 강달귀가 부상을 입은데다 밖에 매달아두어서 기력이 쇠진했다는 점이다. 탈출과정에 또다시 잡혀올 위험이 따르는 소지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동반하면서 결국 생각지 않던 결말이 나온다. 천하의 악한 강달귀가 성호의 구출에 감동하여 악을 버리고 선에로 돌아오면서 죽은것이다.
순수 대중소설의 립장에서 보면 이 작품의 위기상황과 그 해결의 과정은 조금 허술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악마같은 마적에게 육표로 잡힌 두사람이 각각 한번씩 탈출이 가능하다는것은 어느 정도 우연의 소지가 있는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이것을 흠잡지 않는것은 또다른 위기설정때문이다. 즉 선의 대표자인 성호와 악의 대표자인 강달귀가 작품 초반부터 갈등을 빚고 대결하면서 또다른 위기상황을 이어간것이다. 결국 두가지 위기가 겹쳐 전개되는 형국인데 진짜 위기의 해결은 이 두사람사이에서 발생한 선과 악의 대결에서 악이 선에 자리를 내준데서 이루어진것이다. 특히 강달귀가 죽음을 앞두고 악에서 탈출함으로써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를 해명해주고있다.
《사형수》의 극한적 대결상황도 《육표》와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있다. 등장인물과 사형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설정하여놓고 그 위기상황에서 인물들이 보여준 천태만상을 전개시킨것이다. 주인공들의 립장에서 보면 극형을 받고 실제 집행하기까지는 짧으나마 생의 시간이 존재하고 또 여전히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기때문에 긴장감은 끝까지 유지된다. 그 긴장감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준 심리와 행위는 결국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된것이여서 독자의 공명을 동반한다. 거기에 마적을 사형에 언도한 륙군의 마적보다 더한 악행, 사형수의 시체에서 뭔가 리익을 얻으려고 싸우는 거지들의 행위가 곁들여지면서 인간의 본질들이 적라라하게 표현됨으로써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있다.
상기 세 작품외에도 《유방》에서의 귀머거리, 눈봉사의 인물과 모자의 확인이라는 극한적인 상황, 《모토》에서의 마약중독으로 인한 죽음의 림박과 모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극한상황을 포함하여 “극한적인 상황설정”은 박계주소설의 중요한 서사적특징이 되고있다.
요컨대 박계주는 대중소설의 서사전략을 본격소설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작가라 하겠다. 이점은 소설미학적인 측면에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5.2 사투리의 미학
박계주는 함경도사투리를 소설미학적으로 적절히 리용한 최초의 작가라 할수 있다. 이점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른 사투리를 리용한 작가들은 더러 있었지만 박계주처럼 함경도사투리를 대량, 그리고 적절히 소설에 리용한 경우는 없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언어미학의 한부분으로서 사투리의 적절한 사용은 인물의 개성과 지역색을 살리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여름이 돼서 그렇지비, 동삼(겨울)만 돼두 될뻔이나 한 노릇이오?”
하여서, 곰이나 여우를 놓쳐버렸을 때마다 뇌이는 푸념이 돼버렸던것이다.
“제엔장, 눈만 오문야 내 그눔으 잡아놓쟁이능가 어디 두고보라안데, 그눔 두셋쯤만 잡는대두 괴긴 그저 먹구 능담(웅담)은 능담대루 팔아서 이눔의 짓(함지 만드는 일)으 하쟁이쿠두 벰베이 살아갈께 앙이오?”
함지를 깎으면서 그는 앞에 앉아 담배를 빠는 이대동이라는 곁집 령감더러 노상 장담이였다. 이럴 때마다 이대동령감은,
“그렇쟁이쿠, 굄이(곰)두 굄이지만 그눔으 여끼(여우)만 해두 어디메오. 이글년에는 여끄가쥑이두 값이 무섭게 올랐답더구만.”
하고, 맞받아 장단질이다.
“아즈망이, 그지간에 탈이 없이들 잘 지냈음둥?”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으나 가까이 이르는것을 보고서야,
“앙이, 난 뉘기라구. 오느라구 되우 욕으 봤겠으꼬마.”
산가의 아낙네는 사뭇 반가워하며, 가치 온 다른 두 손님(그중의 한 사람은 녀인이다)과도 인사를 건넨다. 두사람 다 전에 오지 않던분들이다.
“욕이다뿐이갰오? 알구 한번이지비 이눔으데루 뉘귀 오갰음둥? 그런데 쥔 령감두 패난하오?”
그는 히잉 두손가락으로 코를 풀어서 보기 좋게 땅위에 멧다때린다.
“야앙, 우린 별탈 없으꼬마.”
하고, 대답하는 산가의 녀인은, 발귀(썰매)에서 물건을 풀어내리려는 손님더러,
“건 내중에 풀기루 하구 날래 방으루 들어갑지.”
한다.
“야앙, 좋스꼬마.”
“앙이, 들어가쟌대두…….”
《처녀지》에서 임의로 따온 두단락이다. 함경도사투리의 기본적인 특징은 물론 산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이 살아난다. 작품에서는 또한 “시걱(끼니)”, “에미내(녀성, 안해”, “놀가지(노루)”, “아슴챙이꼬마(고맙습니다)”, “웃티(옷)”, “되비(도로)”, “불술기(기차)”, “쌔시개(정신병자)”, “동삼(겨울)”, “발귀(썰매)”, “쾌마우재(톱)” 등 함경도특유의 어휘나 표현들을 대량 리용하고있고 이를 표준어로 병기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뿐만아니라 《딸따리족》에서도 함경도사투리는 강동령감이라는 주인공의 개성적인 형상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리용되고있다.
언어적표현의 특징과 관련하여 함경도사투리의 적절한 리용외에 또 한가지 짚고넘어가야 할것이 있다. 바로 한어원음의 적절한 인용이다.
《육표》와 《사형수》에서 특히 많이 볼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하여 이민지의 언어환경을 생동감있게 제시해준 동시에 이민족인 한족에 대한 이주민의 느낌마저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형상성을 크게 향상시켜준다.
“어이, 비에차울라 렌쟈 쑤에이쟈오니 저거 투재즈!”(아 웨 이래? 남 잠 못자게시리, 응? 이 예병하다가 열뻔 고꾸라져도 씨원ㅎ쟎을 녀석 같으니란!)
“콰이 쉬죠바. 쩜마 저양 지지거야?”(어서들 자. 웨 이리 짖거리는 거야!)
“전 타마이나가비! 쎈재 나우란디 부쓰 저거 우즈마?”(제에길 할 자식들! 방금 떠버리던 방이 이 방이 안야?)
“니 쩐 부숴마? 왕바당 차우디!”(아 그래 안댈테야? 이 빌어 먹다 뒈질 자식들아!)
《사형수》에서 임의로 따온것인데 한어의 발음이나 우리말 번역 모두에 일부 정확하지 못한 부분도 있으나 그것마저도 이주민의 한어감각의 실상이여서 생동감이 넘친다. 《육표》에서는 한어대화의 리용은 물론 마적들이 부르는 노래마저 인용하여 작가의 중국문화에 대한 깊은 리해를 보여주기도 한다.
上等人們該找錢(特權階級에게선 돈이나 걷우자.)
中等人們莫管閒(中産階級에게는 상관 말자.)
下等人們快來吧(無産大衆은 어서 오라.)
跟我上山來過年(우리 함께 산에서 즐겨 지내자.)
함경도사투리와 한어원어의 적절한 리용은 박계주소설의 중요한 특징이여서 소설미학의 시각에서뿐만아니라 어학적인 측면에서도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6. 마무리
박계주는 룡정출신의 이민 2세 작가이다. 그는 대중소설작가였을뿐만아니라 본격소설분야에서도 뚜렷한 업적을 쌓은 조선족이민작가였다.
그는 중국적 특징이 뚜렷한 소재를 선택하여 식민지하 현대문명을 비판하였고 동시에 인간의 악과 선을 대결시켜 기독교적인 박애주의사상을 드러냈다. 《유방》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식민지지식인의 문화적혼종성을 로출하기도 하였으나 《인간제물》, 《향토》 등 작품에서는 이민자의 정체성인식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조선족이민작가임을 확인할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형식의 탐구에서도 박계주는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극한적인 상황설정을 통해 소설의 긴장감을 확보하면서 대중소설의 우연적 구조의 약점을 극복였으며 함경도사투리와 한어원어를 적절히 리용하여 작품의 표현력을 극대화하였다. 이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작가들의 귀감이 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