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석의 장편소설 《압록강》의 의미와 가치
장춘식
《장백산》 2011년 1호부터 련재하기 시작하여 2015년 5호까지 총 29회에 걸쳐 련재된 박선석의 신작 장편소설 《압록강》은 박선석의 가족사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먼저 련재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편집자의 말에서도 이런 상황은 확인된다.
가슴속에 태산처럼 모이고 쌓인 울분을 토로하기 위하여 다시 펜을 든 작가! 증조할아버지는 왜놈들에게 맞아죽고… 독립군에 참가하여 일본놈과 싸우던 할아버지는 민생단사건으로 자기 동료들에게 총살당하고… 아버지는 민주련맹에 들어 공산당을 위해 일하다가 국민당의 사형장에까지 끌려나가고 죽음은 면했지만 한평생 부농모자를 쓰고 살아야 했고… 외삼촌은 국민당에 총살당하고… 작가는 나서부터 출생죄를 짓고 35세까지 전반생을 천대꾸러기로… 작가의 5대 수난사를 다룬 눈물 없이는 읽을수가 없는 또 하나의 대하소설— 《압록강》이 독자들앞에 펼쳐집니다. , 2011년 1기.(련재1)
이미 출간된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재해》와 《쓴웃음》도 그러하니 아마 이 작품으로 《재해》 이전까지의 가족사를 련결시키고자 한것인지도 모르겠다. 본고에서는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서 작품의 의미와 문학사적인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인간의 행과 불행의 서사
소설의 1장부터 3장까지는 리경식일가의 중국 정착과정이 주로 리경식의 어머니인 오확실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러다가 제4장인 “데릴사위”부터는 점차 주인공이 오확실에서 아들인 리경식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리경식의 시점에서 주로 리경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의 운명사가 제9장까지의 기본 스토리가 된다.
그런데 주인공이 조선인이주민이라는 사실을 떠나 이들 주인공 모자는 인간적으로 행과 불행이 교차되고 뒤바뀌는 운명을 살아간다.
먼저 소설 앞부분의 주인공인 오확실은 어려서는 선비가정에서 태여나 곱게 자라다가 18세에 안성에서 장사를 하는 리씨가문의 3대 외독자인 리정수에게 시집을 왔는데 “을사조약”이 체결되여 일제의 세력이 조선땅에 뻗치면서 시집의 가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그후 서울에 올라가 상점을 차렸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기미년 1월 21일 밤 고종황제의 급사를 계기로 일어난 “3.1”봉기에 원한이 쌓여있던 시아버지 리창대는 시위대에 앞장섰다가 왜놈에게 목숨을 잃었고 시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쓰러진것이 결국 그해 여름에 사망한다. 이것이 원인이 되여 리정수는 비밀독립운동단체에 가담했고 신변이 위태해지자 홍범도장군을 찾아 중국 동북땅에 들어가는데 가면서 안해인 오확실에게 겨울이 되여 압록강이 얼게 되면 먼저 중국에 건너간 장인을 찾아 중국의 대전자라는 곳에 가도록 했다.
이러한 오확실일가의 운명은 시작단계에서 뚜렷한 하강구조를 이룬다. 오확실의 친정도 그렇거니와 장사를 하는 시집은 더구나 부자로 살아왔지만 일제세력의 확장으로 인한 매국적인 “을사조약”을 계기로 대한제국은 반식민지가 되며 다시 한일합방으로 조선은 일제의 완전 식민지로 전락하는데 그 영향은 이들 행복하던 가정에 불행의 단초를 제공했던것이다. 물론 이는 이들 한 가정의 일만은 아니며 따라서 상당정도 전형성을 띤다 하겠다. 게다가 시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의 지하 항일투쟁 참여를 계기로 부득이 이민의 길에 나서는 운명에 처한다. 여기까지가 하강구조의 최저점이 되겠다.
물론 이 최저점을 금방 넘지는 못한다.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이민과정은 고난의 련속이였고 처음 도착한 대전자에서는 악패지주의 등살에 못이겨 다시 소전자에 옮겨가는 등 한동안의 실패를 거쳐서야 겨우 이민지에 안착하기에 이르는데 이때부터 다시 상승의 구조로 주인공의 운명은 바뀌여간다. 살림은 안정되고 아들 경식이는 글공부를 하며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결혼까지 하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그 상승의 구조는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경식이의 페병으로 위기를 맞으며 어머니의 극성스런 노력으로 완쾌되면서 다시 상승곡선을 이어간다. 착한 지주 왕보살의 도움과 또 같은 운명을 살아가는 조선이주민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운명의 전환이다. 그러한 상승의 구조는 아들 경식이의 노력으로 소지주가 되여 독립군에 군자금을 지원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수 있을 정도에 이른다. 성공한 이주민의 모델이라 할수 있을 인생 대전환을 이룬것이다.
그러나 장인과 마찬가지로 독립군을 지원하는 김경원에게 장사밑천으로 변돈을 꿔주면서 시작된 위기는 마을의 학교건설에 대한 지원과 마적들처럼 인질납치까지 동원한 악한 지주의 음모에 걸려 다시 일락천장하여 하강곡선을 긋는다. 빚때문에 땅과 소를 팔고 다시 소작농의 신세가 되여버리는것이다.
이러한 주인공 운명의 곡선은 일관되게 두가지 내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하나는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이고 다른 하나는 착한 인간성이다. 첫번째 요인으로 하여 주인공은 큰 고생 없이 평범한 삶을 살수 있었음에도, 심지어 부자가 될수 있었을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고생과 위험을 찾아하며 때로는 개인의 희생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하강운명의 불가피성이라 할수 있다. 여기에는 독립운동에 대한, 혹은 항일저항에 몸바친 투사들에 대한 작가의 경의의 감정이 작용하였을수도 있고 이를 후대에 전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수도 있을것이다. 더구나 항일투쟁에 이바지한 이주민들의 숨은 역할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주민의 후예로서 작가의 사명의식도 한몫 했을지 모른다. 두번째 요인은 비록 하강운명의 요인이기는 하나 동시에 거기에는 재기의 가능성이 동반된다. 착하게 살고 남을 도우면서 살기에 남의 도움을 받을수 있는 여건이 항상 주어져있기때문이다.
이러한 하강과 상승이 교차되고 엇바뀌는 주인공의 운명사는 인간운명의 보편적인 합법칙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사적으로는 작품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요컨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하강→상승→재하강→재상승(현재진형이기에 앞으로 이런 굴곡선은 더 많이 출현할 수도 있다)의 굴곡적인 인물의 운명구조와 작품의 서사구조는 이 소설에서 서사의 긴장감과 독자의 공명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2.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의 갈등 및 공생공존
조선이주민이 중국땅에 이민을 들어와 정착했던 곳은 대체로 동북의 신개간지이다. 청왕조가 만족의 성산으로 여겨 봉금했던 장백산지역 즉 력사적으로 우리에게 북간도, 서간도로 불려진 곳이다. 그래서 조선인이 이주해올 때는 그곳에 먼저 이주한 한족인들, 특히 산동반도쪽에서 이민을 온 한족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있었던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조선인이 이곳에 이주할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먼저 들어온 한족인들과 관련을 맺을수밖에 없었다. 비록 한족인들도 이주민들이지만 그들은 먼저 들어왔고 또 자국땅에서의 이주이지만 조선인들은 타국땅에로의 이주이기에 그 처지는 같을 수가 없는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일가의 이민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에서 살길이 없어 중국 압록강가의 대전자라는 곳에 이주하는데 압록강을 건너자 만난 첫 인가가 바로 중국인의 외딴 농가이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도 바로 중국인이였다. 비록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만난 중국인은 착한 농민들이였다. 벙어리 안해에 철모르는 아이들과 말할줄은 알지만 중국말이여서 역시 말이 통할수가 없었지만 이들은 다 굶어죽게 된 일가 세사람을 강낭떡에 장아찌나마 배불리 먹여주고도 돈 한푼 받지 않으려 하며 감사의 마음에서 억지로 밀어주는 은가락지를 골무인줄 알고 받았다가는 썩 나중에야 그것이 값나가는 은가락지인줄을 알자 일부러 먼곳까지 찾아와 되돌려주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길을 걸어 이국땅에 온 길손이 또 길을 잃을까봐 썰매로 목적지 근처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조선에 있을 때는 마적이 득실거리는 공포의 땅으로 알고있던 중국땅에 왜 위기를 맞은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해 정착할 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국인이라고 다 착하고 인정이 넘치는것은 아니다. 대전자의 지주 장청산, 그의 마름이자 처남인 강부귀 강몽둥이가 그렇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착한 중국인 농부(나중에야 나오지만 그는 산동 량산박의 영웅인 무송의 후예로 성은 무씨이고 어려서 무예를 익혀 무송의 후예답게 무예도 뛰어나다)외에는 이 장청산과 착한 지주 왕보살 두 지주가 중국인으로서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후 주인공 경식이를 파산케 하는 고전자 아래마을의 왕지주와 그의 망나니 처남도 악한 지주의 이미지로 등장하며 마지막 부분에서 경식이가 다 죽게 된 중국인 류랑자를 살려주는데 앞으로 그 또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먼저 악한 지주 장청산과 착한 지주 왕보살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두 지주는 아버지대에 모두 동냥으로 산동에서 동북에까지 전전하다가 이곳 대전자, 소전자에서 농사를 짓고 땅을 불려 지주가 되었는데 이들 세대의 두 중국인은 완전히 다른 지주가 되여있었다. 장청산은 악하기 그지가 없어 가난한 작인들의 피땀을 빨아내기에 혈안이 되어 처남인 강몽둥이를 내세워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은 다 한다. 주인공인 오확실이가 처음 대전자에 찾아왔을 때 원래 목적지로 삼고 찾아왔던 친정아버지가 그들이 도착하기 얼마전에 야반도주를 한것도 이 장청산의 억압과 착취에 견디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오확실일가 세식구가 마을의 좌장격인 김령감네 수양딸이 되면서 그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림을 차렸지만 결국 이 장청산과 강몽둥이의 등살에 견디지 못하여 소전자에 옮겨가게 된다. 이때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의 관계는 지주와 작인의 관계였고 이주민이 중국인에게 억압받고 무시당한것은 이민이기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였기때문이다.
아래마을 소전자의 왕보살 왕지주가 이들 세 식구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점은 다른 방식으로 확인된다. 먼저 오확실일가가 소전자에 이사를 오게 되자 왕보살은 왕선생이 혼자 살던 집을 비워주며 일거리도 마련해준다. 마침 왕보살의 안해가 해산하게 되여 도움이 필요하여 그 일을 시킨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들 경식이는 자기 딸 수란이와 함께 왕선생에게서 글공부를 하도록 해주며 여러가지로 도움을 준다. 한편, 대전자에 살던 김령감 등이 소전자의 습지를 논으로 개간하려는 의사를 비쳤을 때도 왕보살은 흔쾌히 응낙하고 우월한 소작조건으로 전격 지지해줌으로써 장청산의 등살에 어렵게 살아가던 대전자의 조선인들을 전부 받아들여 안착하게 해준다. 그는 소작인들이 빚을 져도 빚독촉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절이 되면 돼지를 잡아 고기를 나눠주기까지 한다.
경식이네에 대한 왕보살의 관심은 더구나 극진했다. 물론 왕보살의 안해가 해산했을 때 경식이 어머니가 극진히 도와준것과도 관련되고 또 왕보살이 “후즈(鬍子)” 즉 마적들에게 랍치되었을 때 경식이가 자신이 대신 “육표”로 있으면서 왕보살을 구해준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왕보살의 보살과 같은 인간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식이네를 믿어주고 경제적으로 번마다 도움을 주는것은 물론 수란이와의 혼사를 거절했을 때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아버지인 왕보살뿐만 아니라 딸인 수란이도 경식이네에 대해 극진히 보살피며 특히 그녀는 죽으면서까지 경식에게 소 살 돈을 남겨주기도 한다.
이들 두 지주의 조선인에 대한 대조적인 태도는 계급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차원에서 중국인과 조선인의 관계가 형성됐음을 알수 있게 해준다. 전날 장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한바 있는 올빼미눈의 “후즈”가 착한 마적이 되여 항일에 나서게 된다는 사실도 작가의 이러한 인간성의 인식에서 비롯되였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경식이가 다 얼어죽게 된 중국인 동냥군을 구원해주는 사실도 장인이 전날 올빼미눈의 중국인을 구해준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적으로 덕을 쌓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 즉 인간성 대 인간성의 관계일뿐 민족과 나라가 달랐던 두 인간 공동체의 대결관계는 아니였다 하겠다. 다만 왕보살의 딸 수란이와 경식이의 혼사 실패는 이민족간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기인된것이 분명하다. 경식이와 수란이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수란이의 림종을 페병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체온으로 지켜주며 그녀의 유언에 따라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땅에 묻지 않고 나중에 부모가 죽은후에야 매장하는 중국인들의 재래 풍속을 깨고 원하던 바위밑에 묻어주는 경식이의 행위로, 그리고 사랑하는 경식에게 소를 사서 농사를 지으라며 돈을 남겨주는 수란이의 행위를 통해 특별히 돋우어 묘사한 작가의 서사적 장치 또한 이러한 문화적차이가 빚어낸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것이다. 이런 문화적인 간격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있고 오늘날까지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생사를 넘나드는 애절한 사랑의 비극은 이어지고있다. 물론 도시화가 빨리 진전되면서 한족과 조선족의 통혼은 점차 보편화되는 추세를 보이지만 문화적인 정체성 측면에서는 아직도 그것이 무난히 인정되는 상황은 아닌것이다. 이는 또한 민족적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되기때문에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하는한 완전히 해결될 문제는 아닐것이라 보여지기도 한다.
요컨대 이 소설에서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은 적대적인 관계보다는 공생공존의 평화로운 관계이고 이는 사실 조선이주민이 현재까지 대를 이으며 중국땅에서 무난하게 생존해있을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의 이러한 관계설정은 합리적이라 하겠다.
3. 부자의 선과 악 그리고 그 운명
앞에서도 론의된바와 같이 이 소설에서 부자는 착한 부자와 악한 부자로 량분된다. 장청산과 그의 마름 강부귀 그리고 고전자 아래마을의 왕지주와 그의 망나니 처남은 악한 지주의 대표라 하겠고 왕보살 왕지주네 일가는 보기 드문 착한 부자에 속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주인공 경식이가 착한 부자에서 다시 소작농으로 되돌아가는 사실을 통해 왜 착한 부자가 존재하기 어려운지를 잘 드러낸다. 왕보살 왕지주 역시 땅은 적잖게 가지고 있으나 성품이 착하고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기에 재부를 모으지 못하며 그나마 땅을 계속 보유할 수 있은것도 왕청산의 아버지와 왕보살 아버지의 혈연적인 관계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장청산은 전형적인 악패지주이다. 오확실의 친정아버지인 오지수는 생활에 보태려고 옥노를 놓아 사냥을 하는데 거기에 강청산의 개가 걸려 죽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장청산과 그의 마름 강부귀는 벌금으로 50원을 내라 한다. 소 한마리 값에 해당되는, 소작농으로서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였고 그래서 오지수는 하는수 없이 야반도주를 해버린다. 장청산의 앞잡이격인 강몽둥이 강부귀는 더구나 “대호”라는 개를 추겨 경식의 녀동생인 경옥이를 물게 하며 자기네 개가 집에 오지 않자 무조건 꿩옥노를 놓는 경식에게 죄를 씌워 억지로 벌금을 안기려는 간악한 마름이다. 이들 간악한 지주들은 이처럼 여러가지로 악한 꾀를 내여 소작인들에게 빚을 지워 얽매여놓고는 이를 근거로 무상으로 일을 시키며 온갖 착취를 다한다. 심지어 아래마을 소전자에서 조선인들이 왕보살의 도움으로 진펄땅에 논을 풀어 논농사를 짓게 되자 더 이상 조선인들을 착취할 방법이 없게 된 장청산은 시내물 상류에 있다는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논에 반드시 필요한 물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아놓기까지 한다. 이때문에 논농사를 하던 조선인들은 아무리 우물을 파서 물을 대려고 애썼지만 수확에 큰 타격을 입게 되는것이다.
악한 지주로 또 고산자의 아래마을 왕지주와 그의 망나니 처남이 있는데 이들 또한 장청산이나 강몽둥이에 전혀 못지 않다. 우선 이들은 지주가 되기까지의 경력 자체가 악질적이다. 강도질로 돈을 모아 땅을 사고 그래서 지주가 되였던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경식이가 땅을 사서 자작농사를 하는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며 마적들의 방법인 인질 랍치를 통해 몸값을 받고 그 몸값을 내기 위해 변돈을 쓰게 함으로써 결국 땅을 탈취하는 목적을 이루기도 한다.
소전자의 지주 왕보살은 이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인간성의 소유자이다. 불교를 믿고 마음이 후덕하여 왕보살이라 불리기도 하였거니와 그는 자기집 머슴인 마씨에게 돈을 주어 장가를 들게 할뿐만아니라 혼자 사는 왕선생에게도 안해를 얻어주며 이들 모두에게 식구들처럼 살뜰하게 대해준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군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며 얼마 안되는 돈을 가난구제와 이웃을 도와주는데 서슴치 않고 쓴다. 경식이를 공부시키고 여러모로 도와주며 심지어 경식이가 땅을 사 지주가 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이런 선행은 조선이주민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인 작인들에 대해서도 똑 같다.
경식이의 장인인 정장군과 경식이 본인도 착한 부자라 할수 있다. 정장군은 자기땅이 없어 지주라고 할수는 없으나 장사를 잘 하여 항상 롱안에 돈뭉치가 있는 부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은 다른 소작인들이나 마찬가지로 어렵게 살아간다. 그 돈은 모두가 항일독립군의 군자금으로 사용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기때문이다. 경식이 또한 장인과 마찬가지로 군자금을 대고 이웃을 도와주지만 그는 한때나마 땅을 사서 지주가 된 경력을 가지고있다.
우리는 고대 중세소설들에서 권선징악, 고진감래의 스토리가 기본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소설들에서는 악한자는 반드시 악의 대가를 치르고 착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리치가 통한다. 그러나 박선석의 이 소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장청산이 조선인들의 농사를 망쳐놓기 위해 물을 막았다가 장마에 자기밭마저 날려보내고 그래서 소작농들이 다 도망친것이 어쩌면 악의 대가를 치른것이라 할수도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파산하지는 않는다. 고전자 아래마을의 왕지주는 더구나 강도질하여 사람을 죽여 치부했음에도 전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잘산다. 그에 비해 소전자의 지주 왕보살은 자신이 몸이 허약할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잘 성장하지 못하며 곱게 키운 딸마저 페병에 걸려 죽고만다. 경식의 파산은 더구나 그렇다. 나라를 위하는 일, 이웃을 돕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항상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지만 결국 파산의 경지에 이르는것이다.
이에서 우리는 진짜 부자가 되는 길은 악해지는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부를 끌어모으는것뿐이라는 작가의 재부에 대한 인식을 짐작해볼수 있다. 사실 근대사회의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간의 대결 혹은 갈등은 이런 원인에서 비롯된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왕보살이나 정장군, 리경식 등 착한 부자들의 재부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또한 재부란 꼭 필요한 량만 가지면 되며 그것이 인간이 행복해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작가의 삶의 지혜도 동시에 파악할수 있다. 재부에 대한 무한대 수요를 창출하는 현대사회에서 작가의 이와 같은 소박한 재부관은 오히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자연의 순리에 가깝다 하겠다. 재부를 창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부작용, 가령 환경오염이나 온실효과와 이상기후 현상 등과 인간의 온정이 상실되는 현대사회의 페단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4. 항왜복국(抗倭復國)의 념원과 그 실천
이 소설의 중요한 운명적인 서사구조속에는 항상 항왜복국의 념원과 그 실천이라는 주제의식이 깔려있다. 주인공 오확실이가 이민을 할수밖에 없게 된것도 남편의 항일투쟁 투신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거니와 이들 일가의 운명은 경식이가 정씨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항일투쟁에 군자금을 대주는 숨은 항일투사와도 관련을 맺는다. 이를 통해 홍범도나 김좌진의 대한독립군의 활동과 그 뒤를 이은 량세봉장군의 항일투쟁이 작품속에 등장하며 다시 주인공 아버지의 동지였던 김씨를 통해 동만지구의 공산당 항일투쟁도 곁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주인공 경식이마저 항일에 협조하게 된다.
항왜복국의 념원 혹은 의지는 우선 주인공일가의 3대에 걸친 항일의 투쟁경력으로 표현된다. 부자였던 할아버지는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반식민지화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져 서울에 올라오며 거기서 재기를 노리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자 그러한 파산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일제의 침략에 반항하여 3.1운동에 적극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것이 원인이 되여 주인공 일가의 제2세대인 아버지는 더구나 적극적으로 폭력항일에 나서며 결국 항일독립군을 찾아 중국땅에 들어가게 된다. 간신히 공산당항일군에 가담했으나 아버지는 결국 민생단사건에 련루되여 죽게 된다.
제3세대인 경식이대에 이르러서는 직접적인 항일투쟁에는 나서지 않지만 독립군을 지원하는 장인의 영향으로 돈을 벌어 군자금을 보내는 간접적인 항일에 적극 나서게 되는데 나중에야 부친의 항일투쟁경력을 알게 된 그는 더욱 항일투쟁에 나설것임을 예견하기 어렵지 않다. 비록 소설이 아직도 련재중이기에 단정할수는 없지만 파산을 감수하면서까지 군자금을 내고 학교설립을 지원하며 또 항일에 나섰던 김경원의 일가를 도와주는 경식의 행위는 이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암시해주고있는것이다. 특히 장인이 량세봉장군의 위패를 모셔 제를 올리며 량세봉장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에 사위인 경식이를 데리고가서 량세봉장군의 위인과 항일의지를 전해주는 행위는 주인공의 앞으로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암시에 다름아니다.
또한 조선인의 양자로 성장한 경력을 가진 마적의 두번째 두목이나 장인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바 있는 올빼미눈의 마적두목이 경식이의 권고로 항일투쟁에 나선다는 사실도 이주민의 항왜복국의 념원과 의지를 반영한것이라 하겠다. 당시 수많은 마적무리들중에서 실제로 항일에 나섰던 마적들이 적지 않았던것 또한 사실이지만 소설에 나오는 두 마적두목이 모두 조선인의 도움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경력을 가지고있고 특히 항일을 위해 돈을 벌던 장인의 구원을 받은것과 항일독립군의 자식이요 항일을 돕는 정장군의 사위인 경식이의 권고로 항일투쟁에 참여하게 되였다는 사실은 항일과 조선이주민의 관련성을 강조한것임을 알수 있다.
그외에도 소설에서는 대한독립군의 홍범도장군과 김좌진장군의 업적을 여러곳에서 언급하고있고 특히 정장군이라는 인물을 통해 량세봉장군이라는 실재했던 인물을 소설에 끌어들임으로써 조선인의 항일투쟁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국의 항일투쟁에 조선인들도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후세에 알리려는 작가의식의 결실이라 하겠다. 더 중요한것은 소설 전반을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항일투쟁과 밀접히 관련시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목적의식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 광복직후의 정치사회적혼란과 토지개혁의 문제점 제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함에 따라 이주민들이 고대하던 광복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반일투쟁에 나서면서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면 돌아온다던 주인공 경식의 아버지 항일투사 리정수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것도 일제와의 전투에서가 아니라 억울하게도 민생단사건에 련루되여 자기 사람들에 의해 처형되였던것이다. 이것은 물론 광복이전의 상황이다. 광복직후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가장 먼저 등장한것이 광복직후 고산자라는 동북의 변방지역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쟁탈전이다. 부자들(왕지주)은 국민당이 이긴다는 판단하에 고산자의 조선인농민들을 더 악랄하게 착취하고 가난한 농민들은 적극 민주련맹에 들어 활동하거나 직접 해방군에 들어가 국민당과 싸우는데 주인공인 경식은 민주련맹에 줄을 선 혐의로 국민당군의 사형장에까지 끌려나갔다가 민주련맹쪽에 줄을 선 류지주의 도움으로 요행 살아난다. 다음, 경식의 작은처남은 해방군에 들어가 싸우다가 위병때문에 치료 겸 모병공작을 나온 사이 국민당쪽에 줄을 선 자의 밀고로 붙잡혀 사형당한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쟁탈전으로 희생되였거나 수난을 겪은 수많은 조선이주민들의 운명을 축소판으로 보여준 경우가 되겠다. 실제로도 다수의 경우 조선인 이주민들은 공산당편에 섰던바 이는 광복후 중국에 남은 이주민들 다수가 가난한 농민들이고 공산당의 리념이나 주장이 이들의 생존리익에 부합하였기때문이다.
다행히도 동북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쟁탈전은 긴 시간을 끌지 않고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토지개혁과 이에 동반된 지주부농의 청산이다. 토지개혁의 핵심은 지주나 부농의 땅을 몰수하여 땅이 없는 빈하중농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위인데, 력사적으로 동북지역은 비교적 일찍 해방되였기에 토지개혁도 다른 지역에 비해 한발 앞섰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실시하는 제도이다보니 정책적으로나 구체적인 실시과정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소설에 제시된 토지개혁의 양상에서 우리는 이점을 확인할수 있다.
국민당군이 쫓겨가고 공산당군이 오면서 곧 토지개혁이 시작되는데 소전자에서는 토지개혁공작대가 와서 지주의 재산을 청산하고 투쟁하려 했으나 지주이기는 하지만 마음 좋은 왕보살이 가지고있던 전 재산을 내놓은데다 마을사람들에게도 쌓인 원한이 없어 투쟁은 대전자의 왕패왕과 강몽둥이에 집중되였다. 둘은 숨긴 재산을 가지고 도망치려다가 붙잡혀 오히려 더 민분을 샀고 결국 총살당하며 그 자식들과 가족 모두 분노한 군중에게 맞아죽는다. 고산자마을에서는 왕지주가 처남을 시켜 후즈 즉 비적노릇을 한 죄까지 불지 않을수 없었고 위만경찰을 했던 한청하도 잡혀나와 결국 처형되였다. 거기까지는 청산대상이 청산된것이 분명하고 비록 가족마저 마구 때려죽인 점은 재고의 여지가 있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후부터는 지주청산이 개인적인 보복으로 변질되여 마을에서 존경받던 김시영령감이 신재한에게 몽둥이로 맞아죽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한편, 고산자의 조선인마을에는 지주로 성분을 획분할만한 부자가 없으니 송공작원이 나타나 없는 지주부농을 억지로 만들어낸다. 겨우 들춰낸것이 10년전 변돈을 얻어 땅을 산 주인공 리경식(그는 독립군의 군자금을 낸바 있었다)인데 그래서 원래 지주로 정해진것을 송공작원이 선심을 쓴다며 부농으로 낮춰주고 대신 리기두라고 하는, 할아버지때 땅 대여섯쌍을 샀다가 아버지가 병치료에 쓰노라 다 팔아버리고 이제 겨우 움집에서 사는 빈털털이를 지주로 정했다. 토지개혁이 상당정도 정책적으로 빗나갔음을 확인할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작품에서는 “낡은 사회를 뒤엎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지개혁은 성적도 크지만 억울한 일도 없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이듬해(1948년)초에 성위에서 새로운 지시가 하달되여서야 근절되였다.”고 정책수행자의 개인적인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일시적인 문제점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립장에서는 그 일시적인 오류때문에 반평생의 불우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주인공 김경식일가의 운명이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네 말도 옳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선사람이 아니냐? 제 나라로 돌아가야지.”
“그게 무슨 관계예요? 아무데서나 정들면 고향이고 잘살면 그만이지요. 그새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땅을 개간하고 한전을 논으로 개답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았나요? 어디 그뿐인가요? 중국사람들과 함께 피를 흘리면서 왜놈들을 몰아냈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정든 땅과 정든 사람들을 버리고 가겠어요? 제발 돌아가지 말아요. 대신 공산당을 따라 혁명하자요.”(경식이와 처남 창수의 대화)
최영년이 눈물만 흘리는 경식이를 보고 재촉했다. 그제야 일어서는 경식이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처남이 동경하던 사회, 빈부의 차이고 없고 모두 일하고 모두 잘 먹고 잘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공산당을 따르리라고.
앞의 인용문은 주인공 경식이가 중국에 남아 나중에 조선족이 된 경위를 제시하고있다. 물론 광복이 되면서 조선에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남은 조선인들, 나중에 조선족이 된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에 나가봐야 집도 없고 땅도 없으며 의지할데도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고 다른 한가지 경우는 공산당의 제도에 대한 선망과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공산당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기대감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었다. 주인공 리경식은 비록 서울에 나가면 그나마 조금은 의지할데도 있었으나 결국 중국에 남게 되는데, 여기에는 공산당 사람인 처남의 설득때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산당의 제도에 대한 기대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겠다. 민주련맹에 들어 공산당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된것에서 이점을 확인할수 있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주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리경식은 공산당의 주의와 제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여 중국에 남았고 결국 나중에 조선족이 된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이 시작되면서 리경식은 억울하게도 청산대상이 되고만다. 당의 하급 공작원의 일시적인 오류 혹은 정책집행자의 지나친 “적극성” 내지는 좌편향 립장때문에 땅을 조금 가지고있다고 부농으로 분류되였던것이다.
지난 론문에서 리경식일가가 땅뙈기나마 가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거니와 아무리 땅의 유무에 따라 성분을 가른다고 하더라도 억울함은 여전하다. 앞의 두번째 인용문에서 확인할수 있듯이 주인공은 공산당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자 했었는데 오히려 청산의 대상이 되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부자 혹은 지주가 적었기때문에 억지로 청산대상에 집어넣었으니 이는 억울함을 넘어 당의 토지개혁정책의 문제점을 분명히 드러낸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억울함은 건국후 수차례의 정치운동중에 끊임없이 반복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압록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재해》와 《쓴웃음》에 등장하는 인물의 운명을 통해서이다.
물론 리경식일가가 해방후 장기간 당해온 억울함은 좌편향의 정책과 리념이 우리 사회에 미친 소모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에 의한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른바 “성분유일론”과 그 연장선상에서 빚어진 비극이라 할것인데 이는 당연히 시정하고 반성해야 할 오류이고 개혁개방초기 이른바 “상처문학”의 시대부터 우리의 수많은 작품들이 이를 다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여전히 새롭고 절실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는것은 아무래도 작품의 주인공과 비슷한 가족사의 경력을 가진 작가 자신의 체험적이요 절실한 인식에서 비롯된것은 아닐까싶다. 어쩌면 작가의 이런 가족사적인 경력이 본 작품을 포함한 3부작 장편시리즈의 창작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재해》와 《쓴웃음》에서 드러나는, 극“좌”적인 정책과 이로 인해 발생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력사적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은 이런 판단을 뒤받침해준다.
6. 선과 악에는 빈부의 구분이 없다
가난과 선, 부유와 악을 동일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절대적인 동일시는 아니지만 이런 원리로 우리는 새중국을 만들어냈다. 이를 가능케 한것은 가난인즉 무권리, 부유인즉 강권이라는 또 다른 등식이다. 당대 즉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이 된 시대 중국사회의 상황에서는 이런 원리가 기본적으로 정확했다. 그러나 이는 극단적인 상황이고 실제로 그 리면을 면밀히 따져보면 가난과 선, 부유와 악은 절대적인 등식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소설의 이야기에서 이점은 다시 한번 확인된다.
지난 론문에서 필자는 소설에 그려진 부자의 선과 악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장 전형적인것이 각각 대전자와 소전자에 살고있는 두 지주 즉 왕패왕과 왕보살의 악과 선의 대조적인 이미지라 할수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왕패왕의 행적은 지주청산시 온 가족이 총살당하거나 분노한 농민들에게 맞아죽었다는것 외에 특별히 전개되지는 않고있다. 왕보살의 행적은 조금 더 전개되여 묘사되였으나 여전히 일관된 선의의 행위들외에는 억울하게도 사위인 왕영귀에게 본인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살해되였다는것이 그 내용의 전부가 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대신 가난한 자의 악에 대한 묘사가 상당정도 선과 악의 주제라는 측면에서 그 연장선에 놓인다 하겠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왕영귀이다.
리경식의 집에 오기전까지 왕영귀라는 인물의 내력은 그리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다. 다만 그 본인의 입을 통해 가난때문에 사방팔방 떠돌아다니면서 안해본 일이 없다는 정도로 제시되여있다. 그외의것은 모두가 고산자마을에서 굶은데다 추위때문에 얼어죽게 된것을 주인공 경식이가 구해준 사건부터 시작하여 장인장모뿐만이 아니라 안해와 친자식마저 무참히 살해하고서도 지주를 청산한 적극분자가 된다는 토지개혁 후기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왕영귀는 처음부터 악한이였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경식이가 구해주어 원기를 회복하자 공밥을 먹고만 있을수는 없다며 일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점에서 보면 적어도 라태때문에 가난했던것은 아니라 할수 있는데 경식이와 더불어 사냥을 다니면서 가장 먼저 드러난것이 바로 일종의 살기이다. 옥노에 걸린 메돼지를 두려움도 없이 도끼로 찍어 잡은것이다. 본인의 말로는 전에 어느 소푸주간에서 일을 봐준적이 있다고는 했으나 그런 경력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비단 팔러 나섰다가 어느 객주집에서 옛날 경식이를 납치해서 륙표로 삼아 돈을 갈취해간적이 있는 코맹맹이를 만났을 때 왕영귀는 다음날 인적없는 길가에서 그 코맹맹이가 갖고있던 권총을 들춰내고 녀석을 돌로 까죽인다. 아무리 마적행세를 했던 코맹맹이를 죽였다 해도 왕영귀의 살인때문에 겁이 나서 어쩔줄을 모르는 경식이와는 달리 정작 살인을 저지른 왕영귀는 자신의 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권총을 얻은것을 행운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살인은 평범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 인물의 근면과 살기(殺氣), 그리고 주저없는 살인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유랑인의 생존원리로 해석하면 전부는 아니라 해도 기본적인 해석은 가능할것 같다. 전쟁과 재난이 빈번했던 험악한 그 시대에 떠돌이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적절한 방법으로 실용적인 삶의 태도만큼 효과적인것도 많지 않을것인데 그러한 실용성은 전통적인 도덕의 기준을 어느 정도 벗어날수밖에 없다. 실용적인 삶의 태도가 잘 반영된것이 마적들의 생활방식이다. 왕영귀의 경우 자기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경식의 은혜에 대해서는 깊이 감사하며 여러모로 은혜를 갚으려 한다. 이는 이른바 의(義)에 따른 행위이다. 그런데 극한적인 가난에서 탈출하여 지주집 사위가 됨으로써 흔히 말하는 “잘살수 있”게 되자 과거 일부 보였던 의협성은 사라지고 사냥과 같은 살생에 재미를 느낀다. 성격의 다른 한 측면 즉 살기가 살아난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되자, 즉 토지개혁이 시작되여 지주의 재산을 몰수하고 심지어 왕패왕과 같은 악패지주의 온 가족이 살해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맞아, 왕영귀는 자신 또한 지주인 왕보살의 사위라는 신분때문에 죽을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것이 바로 도주이다. 유랑인의 생존원리에 따라 의리는 차치하고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마저 상실하면서 자신만 살려고 한것이다. 장인을 비롯한 온 가족을 살해한것도 이런 원리에서 해석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왕영귀라는 인물의 본질이 완전히 해명되는것은 아니다. 소설에 나타난 그 엄청난 행위의 리면에는 소설에서 미처 해명되지 않은 이 인물의 과거 행적이 큰 역할을 했을것이 분명하다. 가령 마적단에 들어 로략질을 일삼았다던가 아니면 다른 강도노릇을 했다던가 하는것들이다. 코맹맹이를 죽이고 총을 탈취하는 등 그의 서슴없으면서 또 능수능란한 행위는 이러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설에는 이러한 설명이 빠져있다. 작품의 흠집에 속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왕영귀라는 인물을 통해 악한의 근면, 살기, 의리와 같은 서로 모순되는 성격을 그리고자 한 작가의 시도는 인정해야 할것 같다. 인간성격의 다면성에 대한 인식은 사실주의 문학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볼 때 그러하다. 이는 인간은 원래 내면에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있으며 이 선과 악의 힘겨루기에 의해 혹은 선이, 혹은 악이 외적으로 드러나게 되여있다는 원리에서이다.
7. 부와 근면의 상관성 그리고 합작화의 의미
주인공 경식의 경력은 전체적으로 보면 잘살기 위해 즉 부를 쌓기 위해 근면하게 살아온 력사라 할수 있다. 거기에 착한 심성이 더해지면서 소설은 우리의 서민사회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를 나타내주고있다.
경식의 어머니 확실이가 남편을 항일전선에 보내고 가산이 바닥나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수 없게 된 상황에서 서울의 생활을 접고 아직 철부지인 아들과 딸을 데리고 힘겹게 압록강을 건널 때는 그야말로 빈털털이 살림이였다. 그러던것이 나중에는 조선이주민 이웃들과 중국인들 특히 왕보살의 보살핌에 힘입어 부지런히 일하며 나중에는 땅까지 사서 재부를 모으게 되고 독립군에 군자금을 지원하기에까지 이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지개혁을 맞아 억울하게 부농으로 성분이 확정되면서 그동안 모았던 얼마 안되는 재산을 모두 상실한 후에도 그는 과거 그의 도움을 받았던 친구와 이웃들 특히 한족이웃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고 나중에는 또 타고난 근면으로 다시 부를 쌓아가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근면이 곧 부요 잘살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로동으로 부를 쌓아야만 한다는 작가의 소박한 인생관과 삶의 지혜가 반영된 경우이다.
한편, 소설에서는 근면의 힘을 라태에 의한 빈곤과 대조적으로 그려내고있다. 주인공 리경식은 부농성분때문에 재산을 청산당하고 빈털털이가 되여 가위골에 쫓겨가서 다 허물어져가는 김순태네 집에 이사짐을 풀어놓지만 돌밭농사를 지으면서도 근면의 힘으로 부를 모아 4년만에 다시 평야마을로 이사를 나오게 되고 자식들도 공부시키는 등 재기에 성공한다. 그와는 반대로 원래 자기가 거주하는 집마저 다 허물어지도록 수리를 하지 않을 정도의 라태때문에 빈곤에 빠져있다가 토지개혁에서 빈농성분이 확정된 덕에 좋은 땅과 소를 분여받은 김순태, 바로 경식에게 허물어져가는 집을 내주었던 그 김순태는 얼마 안되는 사이 고질적인 라태때문에 빚을 지고 집과 땅을 다 팔아야 했으며 다시 가위골에 되돌아가야 할 신세가 되였다. 경식이가 잘 가꾸어놓은 집과 땅을 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발생한것이다. 라태와 빈곤의 상관성을 통해 부와 근면의 상관성이 잘 반영된 경우이다.
그리고 합작화이다. 합작화란 무엇인가? 대답은 단순하다. 개인이 가지고있던 토지와 농쟁기, 역축을 포함한 생산자료를 한데 모아놓고 농민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제도가 합작화요 그후의 인민공사라 할수 있는데, 작가는 대과반(大鍋飯)이라고 불린 이 제도의 문제점을 농민의 근면과 라태의 관계를 통해 표현하고있다. 물론 소설에서는 농업합작사를 만들어 지은 첫해농사가 엉망이 되였다는 정도로만 묘사되고 끝나지만 그러한 암시는 충분히 감지할수 있다. 그 내용은 물론 이 작가가 먼저 발표한 장편 《재해》에서 다뤄지고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근면과 라태의 문제가 철저한 농민작가였던 박선석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이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수 있다.
이제 다시 《압록강》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작가의 다른 소설 《재해》와 《쓴웃음》을 련관시켜 보면, 인간이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근면이 최우선이고 라태는 부의 가장 큰 적인데 합작화나 인민공사화 즉 집단농사는 농민의 라태를 야기함으로써 가난할수밖에 없다는 인식, 따라서 농민의 근면을 최대한 발동할수 있는 개인영농을 회복시킨 개혁개방만이 농민을 잘살게 할수 있는 길이라는것이 이 작가의 부와 근면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한다. 지극히 소박하고 상식적인것 같지만 우리는 건국후 꽤 오랜 기간동안 이러한 상식적인 원리를 무시해왔고 그로 하여 전 사회적인 빈곤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소박한 인식은 가치가 있는것이다.
맺는 말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일가 3대에 걸친 인간의 운명사가 중심축에 놓여 이야기를 이룬다. 거기에 조선이주민 즉 우리 조상들의 이민과 중국에서의 정착의 고난사, 그 과정에 중국인들과 발생한 여러가지 관계들, 재부축적의 과정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희비극들, 부자와 빈자의 갈등, 이주민의 항일투쟁 참여 등이 겹쳐지면서 좀더 다양하고 두터운 력사적 풍속도를 이루고있다.
작품 발표순으로 보면 장편소설 《쓴웃음》이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이 장편 《재해》, 마지막이 《압록강》이지만 작품에 그려진 이야기의 력사적배경은 오히려 시간적으로 그 정 반대순이다. 즉 《압록강》에서 시작된 력사가 《재해》를 거쳐 《쓴웃음》에 이르는것이다. 결국 박선석은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 그리고 대를 이으며 중국의 조선족으로서 삶을 영위해가는 과정에 겪어온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 방대한 장편소설시리즈에 담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를 한마디로 개괄하면 복잡한 력사적,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인 담론속에 장기간 묻혀있던 혹은 가려져있던 이주민의 풀뿌리인생을 파내고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소설은 력사서나 신문기사와는 달리 력사의 주재자나 신문 사건의 주인공보다는 이러한 표면적인 력사 현상의 리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삶의 본질적인 양상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인간의 피부에 와닿는 삶의 문제가 되기때문이다. 박선석의 가족사소설의 력사적배경은 근대이후 중국 정치사회의 시대적 변혁과 변화의 과정이지만 소설의 내적인 흐름의 원리는 한 이주민가족의 운명사이다. 그러니까 박선석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조선족의 형성과 발전의 리면사를 제시해놓은셈이 되겠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이 소설은 하강→상승→재하강→재상승의 운명구조를 전통적인 사실주의 방식으로 전개하면서 소설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있고 거기에 조선이주민의 생활상, 마적의 행태, 중국인들의 이색적인 생활풍속과 당대 특유의 력사적 풍속 등을 적절히 가미함으로써 흥미성을 더해준다. 다만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인 《쓴웃음》에서 보여주었던 해학과 풍자, 유머 등의 개성적인 서사전략들이 사라져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작가 본인이 야심차개 계획해왔던, 이민으로부터 건국후의 상황과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의 력사적인 흐름과 그 내면에서 움직여온 풀뿌리 인생을 그려내려던 방대한 프로젝트를 마침내 완성했다는 측면에서 문학사의 중요한 사건이라 보지 않을수 없다.
끝으로 가족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주인공 경식의 넉두리 섞인 한탄의 말을 인용하는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인용이야말로 작가 박선석이 방대한 량의 장편소설시리즈를 창작하게 된 동기이자 원동력이 되였을지도 모른다는 리유에서이다.
“할아버지는 만세운동(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철천지원쑤 왜놈들에게 맞아죽고 아버지는 원쑤를 갚겠다고 중국으로 와서 왜놈들과 싸우다가 억울하게 민생단으로 몰려 죽고 나는 왜놈들과 싸우는 조선혁명군을 위해 군자금을 내려고 산을 사서 밭을 일구었다가 부농이 되여 경제청산을 당하고...내 팔자는 왜 이렇소? 국민당이 왔을 때는 민주련맹에 든 죄로 사형장에 끌려나가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전에 땅이 있었던 죄로 부농이 되여 산골로 쫓겨나고...”---경식의 말.
고희의 년세에 힘든 작업을 완성하여 우리에게 가치있는 작품을 선물해준 박선석작가에게 경의를 드린다. 이 소설은 비록 다분히 가족사적인 성격을 나타내지만 이는 우리 조선족의 이민사, 정착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있고 따라서 우리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에 속하며 그래서 더구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