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소설과 그 내막
장춘식
여기서 《우파》소설은 반우파투쟁 당시 《우파》모자를 썼던 작가의 소설이라는 의미와 당시의 기준으로 《우파》적소설 혹은 독초라는 락인이 찍혔던 소설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다 아는바와 같이 1957년 중국에서는 반우파투쟁이라는 무서운 정치적선풍이 몰아쳤었다. 이는 건국후 당의 치명적인 오류의 하나로 지적되거니와 특히 문화분야에 대해서는 더구나 치명적이였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이 정치적선풍의 전말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있을까? 사실 지금껏 《우파》라든지, 《반우파투쟁》이라든지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도대체 그 내막이 어떤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글에서도 자세한 기술을 피하고있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당시 이 정치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은 문단 당사자들의 이러저러한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은듯하다. 이 운동자체와 전혀 무관한 국외인(局外人)의 립장에서 5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이 정치적풍운의 내막을 살펴보는것은 물론 상당히 모험적일지도 모르나 동시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기할수 있지 않을가 한다. 선배들의 아픈데를 직접 건드릴 념려를 슬그머니 자각하면서 그 연막에 가리운 실상을 파헤쳐보도록 한다.
1. 《백화제방, 백가쟁명》 반년
우선 1957년 2월호 《아리랑》에 게재된 최정연의 글 《개념화, 공식화에 대하여》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 글에는 《이 글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제2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회의에서 발언한것인데 그 요지를 이에 게재한다》는 편자의 말이 앞에 붙어있다. 여기에는 벌써 정치적인 운동과 관련을 맺을 어떤 암시가 내재되어있는듯하다. 최정연은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있다. 《…우리들이 창작해낸 작품들가운데는 인민들의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창조하기 위하여 각형각색의 주관주의, 명령주의, 자사자리, 출세주의, 아첨쟁이들과 싸워나가는 간고하고도 복잡다단한 사상활동과 심리적진상을 힘있게 고동하고 주대있게 반영하지 못하고 단순히 새제도가 우월하고 간부의 령도는 모조리 정확하다는 천편일률의 장대기식 만세만 부른것이 많다. 이 결과는 인간생활의 사실을 외곡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아무런 감동도 일으키지 못하고 근근히 정책문건을 매우 서툴게 해석하는 느낌밖에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문학예술창작상에 개념화, 공식화가 엄중하게 존재하고있다는 것이다.》 이어 최정연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가들의 《맑스레닌주의와 민간문학, 고전작품들을 참답게 학습하는 열조가 높지 못하고 인간생활을 깊이 연구하며 사색하는 태도가 심각하지 못한》것, 사회적압력 즉 령도자들로부터 오는 압력 등으로 분석하고 개념화, 공식화를 극복하고 대담하게 비판적인 시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폭로해야 함을 력설하고있다. 문인으로서 상당히 건설적이고 책임적인 분석이라 할수 있다.
다음, 《아리랑》 4월호에 발표된 허호일의 평론 《농촌현실과 우리 문학������������������〈아버지의 비밀〉과 〈처녀의 래방〉을 중심으로》는 이런 당시의 《백가쟁명》적인 문단성향을 단적으로 반영한 글이라 할수 있다. 그중에서도 평론대상이 된 마상욱의 단편 《처녀의 래방》(1957)은 최정연의 분석에서 비판된 개념화, 공식화의 탈피가 시도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농업집단화가 실현된 새로운 농촌현실을 취급한 작품으로 새로운 농촌현실에서 자라난 새로운 인물������������������〈아버지〉의 아름다운 정신면모를 보여준 작품》인 강철의 《아버지의 비밀》(1957)은 《우리당의 정확한 시책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여실히 말해주고있으며 애국주의적감정으로 독자를 교양함에 있어 의의있는 작품》으로서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분석하기 위해 전제된 작품인셈이다. 허호일의 다음 비판, 즉 《낡은것과 새로운것이 긴장한 투쟁환경에서 심각하고 격렬한 사상투쟁과정에서가 아니라 작가에 의하여 분식된 리상적환경가운데서 그의 주인공은 마치 귀공자처럼 아무런 투쟁도, 아무런 곤난도 없이 순간 사이에 선진적인 인물로 전변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의 형상은 우리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생기없는 인물로 되고있다.》는 관점은 다음의 소설, 마상욱의 《처녀의 래방》의 비판성을 긍정하기 위한 론리적인 전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농촌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주관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악덕현상을 폭로하고 비판한 작품》인 《처녀의 래방》은 어떤 소설이였던가? 이 작품에서는 비록 비판의 대상이 농촌 생산합작사 주임 정도로 낮은 직급이나마 해방후 소설로서는 최초로 주관주의, 관료주의, 교조주의, 명령주의를 문제삼고있다.
소설은 최감찰원을 찾아온 광명생산합작사 처녀 사원이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는 형태로 구성되여있는데 처녀의 말에 의하면 이 합작사의 주임은 주관주의적으로 신풀이한 논에 원자2호 벼종자를 세발모로 내기로 결정했는데 생산대장이고 갑농군인 오령감은 신풀이논에는 산종을 해야 된다고 수차나 주장하고 심지어 과격한 언어를 쓰면서까지 사주임의 주장을 반대하지만 주임은 세발모가 정부의 시책이라면서 끝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가을에는 벼가 채 여물기도 전에 서리를 맞아버린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주임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대신 오령감을 락후분자, 《보수통》이라 몰아대면서 마치 《위만때 관리들이 촌에 나와 우쭐대던 식》으로 을러멨으며 끝내는 생산대장 자리에서 떨궈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 지난해 초중을 졸업하고 농업사에서 일하고있는 처녀와 순애라는 동배 친구가 오령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벼가 상재를 입은다음에는 오령감의 주장이 옳았다고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니 오히려 락후분자를 따라간다며 호된 비평을 받았고 《령도를 신임하지 않는다느니, 개인주의가 농후하다느니, 당정의 지시를 위반한다느니》하는 큰 모자로써 압제한다. 심지어 순애의 애인인 길수에게 순애가 락후분자를 따라다니는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하여 둘 사이의 관계마저 금이 가도록 하였다. 비록 사건의 라렬이라는 비평을 들을만큼 갈등의 형성과 해소의 과정이 단순하기는 하나 이 정도로 관료주의를 소설의 주제로 설정했다는것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다시 말하면 우리 당이 정권을 잡은지 거의 십년이 가까워오는 사이 주관주의, 관료주의가 기층간부에게까지 만연되였다는것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는것이다.
허호일은 평론에서 《문학의 교양적의의는 오직 긍정적, 영웅인물의 묘사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가운데 의연히 존재하는 낡고 부패한것, 우리 인민의 지향과 배치되는 일체 부정적인것들에 대한 비판과 폭로에서도 교양적의의는 강조된다》고 지적하고있다. 그러니까 허호일 평론의 기본취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재현할 때 분식과 허위를 극복하고 진실을 말하여야 한다는것으로 개괄할수가 있겠다. 이것은 상당히 희망적이고 바람직한 문단성향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아리랑》 이해 6월호에는 《〈괴상한 휴가〉에 대한 독자의 반향》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래신 두편을 게재하고있다. 김학철의 단편소설 《괴상한 휴가》(1957)의 주인공 작가 차순기의 립장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된 이 두편의 글은 얼핏 보기에는 독자의 단순한 충동을 반영한듯하다. 왜냐하면 작품속의 내용이 일반 독자의 감정을 건드릴만한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차순기는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작가다. 그는 자기의 대작 《가락지》를 세상에 내놓고 수많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을 때 축하하러 간 《나》라는 사람(차순기를 존경하는 작가)을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으로 대한다. 그리고 중편소설 《서리》가 발표되자 일부 평론가들의 비난을 받았다. 새시대의 인물형상이 엄중히 외곡되였다는것이다. 이때 《나》는 의례 그가 괴로워할줄 알고 위로하러 가는데 뜻밖에도 희색이 만면한 차순기는 한가로이 쏘파에 기대여있다가 허리를 펴며 온화하고도 여유있는 눈길로 그를 맞았다. 차순기의 얼굴에서 고민과 우울의 기분을 찾아볼수 없었을 때 《나》는 그를 더욱 존경하고 그의 큰 인물다움에 감복하고 그 배장을 부러워하며 배우려고 한다. 바람에 휩쓸려다니는 독자와 평론가들의 행위를 통하여 주대가 무너진 사회의 병페를 지적한 이 작품에서 일반 독자라면 오해를 가질수도 있고 또 《독자인 나는 도모지 작가 차순기가 왜 인민군중의 참된 칭찬을 비웃는지 알수 없다. 아니 가소롭다.》1)고 비난할만도 하다. 그밖에 이 글의 편자가 독립적인 평론으로서가 아니라 독자의 반향이라는 형태를 취하고있음도 아직은 정상적인 문단현상이라는 신호를 던져주는것이라 하겠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직 오늘은 이 사람의 간에 가붙었다가 래일은 저 사람의 허파에 가 붙는������������자기의 립장이 없는 그러한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평론가들의 그릇된 평론은 작품의 진가를 말살해버릴 위험성이 있다는것도 나는 긍정한다.》2) 라는 상아리의 판단은 이 독자가 비록 괴상한 휴가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가진다고 밝히고있기는 하나 역시 문단현상의 일반적인 상태를 벗어나지는 않고있다. 심지어 같은 호 《아리랑》의 사설 《대담하게 개방하고 쟁명하자》를 읽고나면 오히려 이것은 아주 희망적인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문화풍토 형성을 기대하게까지 한다. 여기에 그 서두의 한단락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방침은 사회주의의 민족적 새문화사업에 새로운 번영과 무한한 창조성을 가져올수 있는 조건을 지어주었다. 이 방침이 제출된후 불과 9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있어서 연변문학예술사업중에는 많은 새 기상들이 나타났으며 커다란 성적을 걷우었다.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방침은 연변문학예술계의 창작적극성을 크게 제고시켰으며 문학예술일군들의 사업에 대한 신심과 대담성을 증강시켰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설명해준다.
과거 어떤 원인으로 하여 창작사업을 걷어치웠거나 자기의 어떤 문예작품을 감히 발표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마음놓고 창작하며 자기들의 과거 작품을 발표하였거나 발표할 준비를 하고있다. 오래동안 말이 없던 설인동무도 《부르하트강》과 《봄은 어데에》란 두편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김학철동무의 1955년도 작품인 소품문 《호박물뿌리》는 오래동안 편집부 《감옥》에 갇혀있다가 석방되였다.
그러나 역시 같은호 《아리랑》에 실린 김순기의 《〈차순기〉와 나와의 갈래》라는 글을 보면 문단의 흥분은 동시에 어떤 불안과 상서롭지 못한 예감을 동반하고있음을 암시해준다. 김순기는 《괴상한 휴가》의 주인공 차순기와 이름자가 비슷하고 작품에 나오는 《가락지》라는 작품표제가 자신의 《반지》(1957)와 비슷해 오해의 요인을 갖추고있음에 민감해져 자신이 《차순기》가 아님을 변명해둔것이다. 이제 뒤에 닥쳐오는 풍파와 관련시켜보면 김순기의 우려는 지나친 과민증세가 아님을 알수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김순기의 주되는 취지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회피하려는데 있은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김학철의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면서 문예편집자로서 《서리》(1957)라는 김학철의 극본을 깔아둔것을 반성하고있고 특히 《리준의 〈그길로는 갈수 없다〉가 중남에서 대호평을 받은다음 〈문예보〉에서 1954년 2호에 리종의 그것을 개념화, 공식화로 모는 글이 발표된다음 우리의 여기서도 참말로 문예는 우로 올라갈수록 안다고 하며 원래의 초인상을 지워버리는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동년 7호에 강탁동무가 리종의 론문을 반박하는 글이 발표된다음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나두 이상하다고 생각했소〉라고 하는 현상이 있지 않았던가싶다.》고 작품의 의미를 전반 중국문단상황과 관련시킴으로써 자신의 립장을 분명히 밝히고있다. 역시 《대담하게 개방하고 쟁명하자》는 당시의 문단적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다 하겠다.
이어서 발표된 박금숙의 《작자의 립장������������������김동구작 〈개고기〉를 읽고》(1957.9)도 역시 이같은 《백화제방, 백가쟁명》방침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개고기〉는 허무맹동하고 주견이 없는 물우의 갈대같은 비서를 예리하게 풍자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개고기〉가 가지는 풍자적의의는 있다고 본다.》고 론자는 우선 이 작품을 긍정하고나서 다시 《아양을 부리고 주견이 없는 비서의 열성적인 적발이 칠갑이와 같은 선량한 사람을 곤두박질시킬수 있다》는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생활에 대한 외곡》이라 비판하고있다. 그러니까 박금숙의 비판은 여전히 작품이나 문학의 리해에서 비롯된 관점차이를 말해주는것이지 아직 정치적인 몽둥이로까지는 의식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 문단, 나아가서는 중국문단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던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환경이였고 반년정도 유지되였던 이 환경에서 우리 문단에는 작가들의 야심작들이 우후죽순마냥 발표되기 시작했었다. 너무도 짧은 시간이라 수준급의 작품이 몇편 나오지 못한것은 유감이지만 어쨌든 해방후 우리 문학이 처음으로 찬란한 해빛을 보았던 시기임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2. 《반우파투쟁》이라는 정치적몽둥이
그러나 《아리랑》 1957년 10월호에 《반우파투쟁에 총궐기하여 연변문학의 장성발전을 담보하자》는 사설이 발표된후의 상황은 180도로 급변한다.
사설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연변에 있어서도 우파분자들이 당과 문학예술계에 대한 진공은 창궐하였다. 그들은 〈당이 문예를 령도한다는것이 의심스럽다〉고 하며 〈당의 지방조직은 문학을 령도할수 없다〉고 하며, 〈연변에는 쓸만한 작품이 없다. 만세만 부르며 문제를 진실하게 반영못한다〉고 떠벌려대고있다.》 사설은 최정연의 《개념화, 공식화에 대하여》를 직접 과녁으로 잡고있다. 사설은 이어 《우파분자들은 〈순수예술〉, 〈문학의 생명론〉을 부르짖고 〈만세만 부르지 말고 암흑을 쓰라〉고 떠버리면서 로농병을 위해 복무하는 방침을 반대하고있다.》《우파분자들은…개념화, 공식화를 반대한다는 구실로써 자라나는 연변문학의 성취를 말살하고 〈연변에는 정치만 말하는 작품이 많다〉, 〈네모반듯한데 정치만 따넣은 작품보다 문제꺼리가 있는 작품이 더 작용을 일으킨다〉, 〈작중인물가운데의 부정인물이 빛나듯이 사회에 존재하는 부정인물도 빛나는것이다〉고 떠벌리며, 〈과거에는 예술에서 정치를 말하는 때였지만 오늘은 예술을 말하는 때다〉, 〈이제부터는 주제를 말말고 형상을 말해야 한다〉라고 떠벌리면서 문예의 자산계급방향을 적극 내세우려고 미쳐날뛴다.》《우파분자들은 교조주의를 반대한다는 구실로서 문예에 대한 맑스주의 사상지도를 취소하려고 각종 음모활동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는 정치학습을 할 필요가 없다〉, 〈인간만 연구하면 된다〉고 고취한다.》 이렇게 우파들의 언론과 관점에 대해 렬거해놓고 마지막에는 《전체 문예일군들은 굳게 단결하여 이데올로기 전선에서 령도권을 탈취하며 자본주의사회를 복벽하려는 우파분자와의 생사존망의 투쟁에서 계속 심입하여 우파분자들의 진공을 철저히 분쇄함으로써 사회주의 연변문학을 보위하고 화원을 번영시켜야 할것이다.》고 호소하고있다. 반우파투쟁의 행동강령, 혹은 정치적강령인셈이다. 그리고 같은호 《아리랑》에는 《우파분자의 음모를 철저히 분쇄하자》는 표제밑에 허호일, 론자, 주무경, 최형동, 고철, 룡섭 등의 글을 게재하고있는데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사설의 취지를 따른것이다. 주요 비판대상은 이미 우파로 락인찍인 최정연과 그의 언론들이 되고있다. 그리고 동지 동호에는 또 박상일의 《〈개고기〉의 음모》, 리근전의 《〈귀환병〉의 독소를 론합》, 주홍성의 《김동구작 〈개고기〉의 인물������������〈비서〉의 형상과 관련한 몇개 문제에 대하여》, 박관우의 《〈괴상한 휴가〉를 다시 말함》 등 구체적인 작품비판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최정연, 김동구, 김학철은 이제 완전히 우파분자로 락인찍히게 되였다.
3. 《우파》소설의 이모저모
김학철의 《괴상한 휴가》는 앞에서 이미 분석했거니와 그렇다면 여기서 비판받은 소위 《우파소설》 김동구의 《개고기》(1957.7)는 어떤 작품인가? 3천자도 안되는 이 소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서》의 《열성적인》 적발로 하여 성(省)의 어떤 공사 20급 과원으로 곤두박질했던 리철갑은 다시 원래 공사의 주임으로 돌아오던중 길에서 우연히 비서 부부를 만난다. 이때 비서는 거만스레 씨토마저 《철갑이》에 《하게》로 하대하면서 턱을 쳐들고 인사하다가 다시 원직에 복직되어 돌아온다는 말에는 당장 씨토를 《동지》에 《하십시오》로 깎듯이 고치면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자기집에서 마침 개고기를 삶았으니 들어가 식사를 하자고 권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것이 거절당하니 멀리 사라져가는 철갑의 뒤모습에 대고 비서 내외는 또 깎듯이 인사를 한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남 물어먹기를 일삼고 또 상급앞에서 알랑거리는 카멜레온과도 같은 비서와 그 안해를 비꼬고있는데, 여기서 마지막에 개고기를 앉혀놓았으니 함께 식사하자는 비서 안해의 청에 한 철갑이의 대답 《아주머니, 아시다싶이 저는 난생 개고기란 먹어본 일도 없거니와 아예 속에서 받지 않습니다.》는 표현은 이 소설의 표제와 관련지어지면서 주임의 정직성과 비서의 물어먹기 일삼는 근성, 그리고 상급앞에서 알랑거리는 개와도 같은 성격을 잘 표현하고있다 하겠다. 짧은 작품이지만 이야기의 극적설정이 기발하여 성공한 작품이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무엇이 《우파》적이였던가? 박상일의 《〈개고기〉의 음모》의 한단락을 들어보면, 《그는 비서를 통하여 당원이며 당에 충실한 모든 적극분자를 아첨쟁이라고 풍자하였으며 그는 인민대중은 흑백을 가릴줄 모르는 멍텅구리이며 상급당위는 관료주의이며 지방당위는 아첨쟁이의 〈열성적 적발〉에 따르므로 결정적으로 오유를 범하게 된다는(동구식으로 말하면 〈암흑〉이라는) 유치한 론법을 안고 〈당을 대항〉 〈공격〉하려는 어리석은 〈꿈〉을 안고있었던것이다.》《그는 또 주인공 철갑이를 봉건왕조의 반항아였던 〈동방삭〉으로 비유하면서 자기 자신은 우리 시대의 〈동방삭〉으로 가장하고 자기의 정치적야심을 달성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것이다.》 여타 평자들의 비판도 비록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론리이다.
이어 우파로 점찍힌 작가가 김학철이다. 량환준은 《독소가 가득한 소설������������������〈해란강아, 말하라!〉》에서 문학작품의 비평과는 무관한 억지론리로써 《작자는 〈해란강아, 말하라!〉에서 정면인물들에 대하여는 그 약점과 암흑면만 그려놓고는 〈개고기〉, 〈당나귀〉, 〈승냥이〉, 〈개〉에다 비유하였고 반면인물들에 대하여는 그 암흑면을 감추고 비교적 위선적인 면을 내세움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겨놓도록 하려 꾀하였다.》《로동군중을 색정, 물욕, 도적질, 싸움질하는 비루한 추물이며 무사상성한 동물로 묘사하면서 계급대립과 적아모순을 모르고 개인의 리해만을 위하여 움직이는 인간으로 그려놓았다.》《작자의 예술적수법은 사실주의로 가장하면서 퇴페적 자연주의수법을 운용하여 로동인민을 되도록 비렬한것으로 묘사하는것이다.》《작자는 정면인물들을 미워하고 로동인민을 너절한것으로 본 반면에 반면인물에 동정을 기울이면서 자산계급립장에 서서 당을 미워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질시하였다.》고 타매하고있다. 같은호 《아리랑》지에 게재된 박일민의 《〈아리랑〉에 드리는 글》(1957.11)에서는 《아리랑》의 편집방침을 문제삼으면서 1957년도 《아리랑》1~10월호에 실린 작품중 무려 20여편의 소설, 시, 평론, 극본, 잡문을 우파작품, 혹은 독초로 꼽고있다. 거기에 포함된 소설작품은 김동구의 《개고기》(1957.7), 박정일의 《버림받은 생명》(1957.8), 김학철의 《싸움끝에 드는 정》(1957.9), 김순기의 《사주》(1957.9)와 《돼지장》(1957.10)등 5편이다.
이후부터 반우파투쟁은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되는데 《소위 〈령혼〉이 득실거리는 파지������������������최정연과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에 대하여》(《아리랑》1957년12월호)의 경우, 앞에서 이미 론의된 작품에 대해 개괄적으로 비판한후 《괴상한 휴가》와 《개고기》의 속편이라 단정하면서 김학철의 《92전짜리 파리》(1957.8)를 문제삼고있다. 단잠에 들었던 학동이는 파리 한마리를 잡으려고 파리채를 휘두르다가 92전짜리 어항을 깨뜨린다. 혼비백산한 파리는 온데간데 없고, 수리개가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고있었다는 내용의 이 작품에 대해 론자는 학동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김학철의 《학》자와 김동구의 《동》자로 이루어진 두 인물의 련합상이라고 보면서 《〈개고기〉가 나왔을 때, 김동구는 자기의 작품에는 많은 〈파리〉(즉 평론가를 가리킴)들이 달려들것이니 자기는 〈파리채〉를 준비하였다가 잡겠노라고 선언하였다. 김동구의 상전인 김학철은 이 기도를 자기의 〈92전짜리 파리〉로써 실현시켜보려고 꾀하였다》고 비판한다. 《평론가(작품에서는 파리로 형상화되였음)는 학동이의 모진 파리채에 맞아 혼비백산하여 날아났고, 새로운 통치자의 화신인 〈수리개〉가 창공에서 자유롭게 나래치는것으로 대체시켰다》는것이다. 김학철이 이 작품에서 김동구의 《파리》관을 념두에 두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작품평가에서 이런 태도는 문학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것임에 틀림없다.
론자는 이어 김순기의 단편소설 《사주》와 《돼지장》에 대해서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있다. 두 작품은 물론 박일민의 독초메뉴에 이미 포함된 작품들이다. 우선 《사주》에 대해 《명이 짜른 사람은 애당초 투쟁이고 로동이고 뭐고 끈이 자라는 때까지 퍼먹으면서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숙명론과 운명론의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김순기의 단편소설 《사주》는 어떤 소설이였던가?
일흔한살에 난 박령감은 사람이 워낙 총명하여 구학 1년반 공부로 제법 한문을 읽어내여 동네에서는 신제나 푸닥거리도 도맡아 하였다. 그리고 큰소리 잘치는만큼 일솜씨 또한 젊은이들을 찜쪄먹는데 이해 들어 모든것이 심드렁해진다. 사주팔자에 소한으로(최소한) 예순하나, 대한으로(최대한) 일흔하나가 제명인데 금년은 바로 그 일흔한살이라는것이 원인이 되여서이다. 하여 그는 바람 쏘일겸 먼저 현에서 과장노릇을 하는 둘째아들집에 찾아갔으나 그는 성깔이 직통배기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안있고 셋째아들집에 간다. 박령감은 셋째아들이 주에서 국장질을 하는것은 이름자가 31획이고 6으로 나누면 하나가 남기때문이라며 손자들의 이름자도 고쳐준다. 이러는판에 촌에서 맏이가 급병이라는 전보가 온다. 령감은 맏이는 사주에 소한으로 설흔아홉이요, 대한으로 일흔다섯인데 설흔아홉은 좀 앓기는 했으나 이미 넘겼으니 별일없을것이라며 가보라는 로친의 말에 코방귀를 뀐다. 그래도 걱정은 되여서 길을 떠나 먼저 둘째네집에 오는데 맏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에 박령감은 불매증에 걸려 앓다가 섣달그믐날밤 제가 사주에서 본대로 죽는다. 그것을 두고 마을에서는 사주가 틀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건 심리작용이라면서 기실 사주가 그의 목을 졸라죽인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보는바와 같이 이 소설의 주제는 미신타파이다. 이점은 아래의 몇가지점으로 확인된다. 그 하나는 셋째의 이름자가 31획으로 계산되여 6으로 나누면 1획이 남음으로 국장이 되였다고 한것, 다음으로 맏이의 소한이 39세인데 그 위험을 이미 넘긴뒤에 사주대로 75세가 아니라 올해에 급병으로 죽었다는것, 세번째로 신식책을 많이 읽은 김씨가 심리작용으로 삼년고개이야기를 례로 들면서 박령감이 사주자체때문에 심리작용으로 죽었다고 말한것 등. 그러니까 《봉건미신의 정확성, 관념론의 정당성을 선전했다》는 비판은 도무지 근거가 없는것이다. 그리고 농촌령감으로서 특히 글깨나 알고 신문깨나 읽은 령감이 모주석과 중앙에서는 잘하는데 촌에서는 잘못하며 《중앙에서 지시한대로 실시하는 놈이라군 우리 여기에선 한낱도 못보았다》고 하는 주인공의 내심의 말을 리유로 《〈사주〉는 미신사상을 반대한다는 허울을 쓰고 반당, 반사회주의적 사상을 발광적으로 선전했으며 숙명론을 극도로 고취시킨 반동작품》3)라 매도한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김순기의 다른 작품 《돼지장》(1957.10)은 옥녀라는 시골아낙네가 돼지장에 나와서 돼지새끼를 파는 전 과정에 대한 스케치식 묘사를 통해 돼지장의 풍속을 생동하게 그려보인 동시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간의 흥정심리를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여타의 농촌생활을 그린 소설들과는 달리 시골 농민들의 생활을 어두운 색조로 그리고있고 어딘가 근심과 걱정이 엿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어서 오히려 진실성을 획득하고있다 하겠다. 그런데 상기의 평론에서는 《오늘의 농촌현실과 농민을 지독하게 모욕하고있다》고 비판하고나서 《마대에 넣어 메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자루에 넣어서 업고 가는 사람도 있고, 함지나 바구니에 담아서 이고 가는 사람도 있다. 불 까는 사람, 밑을 치는 사람, 돼지의 울음소리, 옥신각신 실랭이질하는 사람 하여 장마당은 소란하고 게접스럽다》는 장마당의 현장묘사를 두고 《그래 오늘 합작화의 길에서 전도양양하게 내달리는 농촌현실이 이처럼 비참하고 농촌 자유시장이 이처럼 소란하며, 생산대 대원들의 생활이 이다지도 가련하단 말인가? 김순기는 이 작품에서 과거 사회 농민들의 가련한 생활환경을 공산당이 령도하는 오늘 현실에서 그대로 중복하고있다고 억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빚받이군으로 장마당에 따라간 사랑집 로친의 형상을 통해서는 공산당이 령도하는 오늘에도 농촌에서는 의연히 서로 뜯어먹으려 하고 아무런 인정도 없다고 비방하였다.》고 악평하고있다.
김학철의 《싸움끝에 드는 정》은 중편소설 《소나기》의 일부라는 설명과 함께 《아리랑》 1957년 9월호에 발표되였는데 김학철이 전공생활을 취재하면서 상당히 깊은 사고를 거쳐 집필한 력작이라 여겨진다.
우선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나기》라는 별명을 가진 우락부락한 성격의 전공 서증손은 승주(전주에 오르는 전공작업)작업을 하다가 발을 다쳐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운수용 마차가 말이 놀라 시내쪽으로 마구 내달아간다. 그는 한쪽 신발만을 신은채 낯모르는 사람의 말을 빼앗아 타고 마차를 쫓아간다. 그 뒤로는 말 주인이 말도적 잡아라 웨치면서 쫓고 사연을 짐작한 명숙이는 신문기자의 취재를 받다가 자전거를 타고 뒤를 쫓고 신문기자가 그 뒤를 쫓고 마차몰이 왕첨지와 림시공 또한 그 뒤를 쫓아 거리에는 쫓기경주가 벌어진다. 결국 놀란 말을 굴복시켜 사고를 피면하지만 마차에 늄선을 싣고가다가 당집(서낭당)앞에서 수렁에 빠지는데 널빤지가 수요되자 소나기는 당집의 널빤지를 뜯어쓰려 한다. 그것을 안 왕첨지는 당집의 호신(여우신)을 믿는 사람이지만 방법이 없어 기도를 드리면서 소나기가 널빤지를 가져오는것을 막지 못한다. 말이 놀라게 했다고, 일을 지체시켰다고 욕을 단단히 먹은 그였던것이다. 왜정때에는 어머니가 불공을 잘 드려도 패가망신을 면치 못했다며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 소나기이다. 그런데 소나기가 당집 널빤지를 뜯어내는것을 발견한 한족농민들이 쫓아와서 왕첨지는 바쁜김에 벽력이 내린 시늉을 하라 해서 소나기가 연극을 꾸밈으로써 화를 면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둘은 다시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소나기라는 인물의 성격을 개성화하면서 신구사회의 엄청난 차이를 대조시켜 보여주고있는 비교적 성공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특히 불공에 열심하던 어머니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간 경력을 가진 주인공이 미신을 믿는 왕첨지의 도움으로 민족간의 오해를 성공적으로 피한다는 발상은 상당히 소설적이다. 조한 두 민족간의 관계문제와 미신자와 무신론자간의 관계문제가 성공적으로 표현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싸움끝에 드는 정〉을 읽고》라는 글에서는 이 작품도 독초로 매도하고있다. 론자는 《〈열명도 더 되는 농민들이 먼지를 보얗게 일구며 추격해오는데 그중에는 삽, 몽치 따위로 무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작자는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있다. 〈…칼춤을 추게!……그렇잖았다간 뭇매질에 뼈다귀도 못건질테니〉 작자는 독자들에게 왕첨지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소나기는 마치 토비와도 같이 형상된 한족농민들의 몽둥이에 맞고 사실을 엄중히 외곡하여 묘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허무하게 소나기를 동정하게 하여 극히 악렬하게 민족간의 모순을 조장하고있다》4)고 악평하고있다.
김학철의 중편소설 《소나기》는 전문이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료해는 이제 불가능하게 되였다. 다행히도 최호의 《반동작품������������������〈소나기〉》(《아리랑》, 1958.1)라는 평문에서 론의되여 반면적으로 그 전모를 짐작해볼수밖에 없다. 론자는 이 작품은 10여만자에 달하는 중편소설이라 소개하고있고 연길시전업국, 승장부를 다니며 오래동안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중국에서 공식주의를 첫번째로 돌파한 걸작》이라 선전하면서 민족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려다 실패하여 《독자들속에 나가서 독소를 산포할수 없게 되였다》고 하였다. 편견이 많이 가첨된것임에 분명하나 소설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이 론자의 글속에 소개된 《소나기》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서증손������������<소나기> 등 전공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있을 때 설계원 현명숙이 나타난다. 그런데 서증손은 처가 죽어서 홀애비로 된 사람이고, 현명숙은 기술원 김균과 약혼한 처지지만 사랑이 그렇게 원만하지 못하였다.》《작자는 차중에서 현명숙을 얼핏 보고 홀딱 반해 쫓아다니는 신문기자와 적극분자 리세권의 담화를 통하여 그들의 래력과 관계를 소개한다. 소나기와 현명숙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업중에서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랑은 끝내 맺어지고만다. 작자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복선으로 하면서, 이 현장의 당,청,공의 책임자인 최승길과 소나기와의 갈등을 보여준다. 최는 보수주의자며 개인주의자인데 주로 아첨분자인 세권의 회보를 듣고, 소나기를 못살게 굴며, 결과에 가서 세권이는 입당시키고, 소나기는 입당시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나기의 분노를 야기시킨다. 작자는 마지막에 가서 최승길을 철직, 조동시키는것으로 하고, 소나기는 그를 환송하는것으로 끝을 맺았다.》
이 내용소개에서 조금만 시점을 바꾸고 거기에 앞에서 론의된 《싸움끝에 드는 정》의 내용을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김학철의 이 작품이 사회주의 기업내부에서 표현되는 보수주의,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아첨분자의 추태를 폭로하면서 성실하고 대바르며 인정에 넘치는 로동자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렸음을 알수 있다. 물론 이와 더불어 당대 젊은이들의 애정에 대한 태도와 조, 한 두 민족간의 관계문제도 표현되였음은 두말할것 없다.
형상의 진실성을 위해 작가는 주인공의 고약한 술버릇과 규정규칙에 대한 불만, 령도자에 대한 불공(不恭), 잘못을 저지른 동료에 대해 매질을 하는 등 흠집들도 감추지 않았고 그 조포하고 무례한 행동의 리면에 숨어있는 성실과 인정을 표현하고있다. 규정규칙에 대해 그토록 불만을 가지고있으나 방화지구로 들어갈 때 리세권이가 라이타를 감춘것을 빼앗아 감시원에게 주면서 《로동계급의 신용을 팔아가며까지야 어디 피울수 있니, 그놈의 담배?》라 동료를 타이르고있고, 소설의 마지막에서 미워하던 령도자 최승길이가 철직당해 자리를 옮겨갈 때 그에게 아첨하던 리세권이는 배웅을 안하지만 소나기는 오히려 호박물뿌리를 선사하며 배웅하는 등의 행위는 거칠면서도 뜨거운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최호의 평문에서는 이 작품을 《오늘의 우리 사회를 비방하며, 로동계급의 형상을 외곡하고, 당을 모욕중상하면서 자기의 반당, 반사회주의적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당화하고, 극구 선전하는 철저한 반동작품》이며 《소설의 주인공 〈소나기〉는 로동자의 외의를 쓴 작자 자신, 억지로 분칠해놓은, 그러나 흉악스러운 본질을 덮어감출수 없는 작자 자신》이라고 력설하고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이 판이한 판단히 나오게 된것일가? 소설에서는 소나기가 자신이 처한 환경의 불합리에 대해 원망할 때 소나기의 애인인 현명숙의 입을 빌어 《…말단의 령도가 글러먹었어요. 보수주의가 글러먹었어요! 구속을 느끼는건 그 까닭이예요!》《창문을 오래 봉해두면 방안의 공기가 탁해져요. 그럴 땐 창문을 활짝 열어제껴야 해요. 그래야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지거던요…》라고 그 원인을 밝혀놓는다. 다시 말하면 당, 단, 공회의 일을 도맡아 보는 현장책임자 최승길에게서 표현된 관료주의와 명령주의, 보수주의를 비판한것이 당을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한 죄명으로 된셈이다. 《사적관계로 공무를 처리하고, 로동자들이 소설을 보는것까지도 나무리》며 말끝마다 《〈공산당의 령도와 배려하에서…〉를 운운하》는 몰인정하고 《제도와 규률만을 강조하》며,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틀에다 박아넣으려 하며 자기면 곧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등 관료주의자의 형상은 당시 상당수의 령도자들의 아픈데를 찔러놓았음은 두말할것 없는것이다.
이렇게 김학철이 우파분자의 모자를 씀에 따라 그의 《괴상한 휴가》, 《해란강아, 말하라!》, 《소나기》, 《뿌리박은 터》, 《고민》, 《승리의 기록》, 《군공메달》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이 빠짐없이 독초로 몰려 집중공격을 받게 되였고 마침내는 창작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고만다.
우파소설의 딱지가 붙었으면서도 별로 론의가 되지 않은 작품은 박정일의 《버림받은 생명》(1957.8)이다. 이 소설은 이 시기 소설 치고는 보기 드물게 순수한 인간성문제를 다루고있다. 할머니, 손자, 며느리, 손자의 이붓아버지라는 특수한 가정관계를 설정하여 전통적인 이붓어미, 이붓아비의 모티프를 리용하였는데, 특히 손자가 불구라는 조건에서 발생한 인간관계의 변화는 어느 정도 새로움도 보인다 하겠다. 그러면서 친자식이 아니고 친부모가 아니라 하여 처의 병신아들과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사내, 그리고 그 사내에게서 아이가 생기자 변질되여가는 며느리를 비난하고있다. 생활적인 이야기로서 이 소설은 원래 이 시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주요 관심거리의 하나로 됨직한 이야기인데 정치운동때문에 너무도 늦게야, 그것도 겨우 한두편이 나왔음은 비극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점이, 즉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암흑면을 암울한 분위기속에 그려보였다는 점이 우파소설의 딱지를 달수 있는 여건이 되였던듯싶다. 그리고 소위 복원군인이 극악하게도 이붓자식을 구박주웠다는 표현도 온통 밝은 사회에 그림자를 던져주었음을 짐작할수 있는데 이상한것은 김순기의 《돼지장》과 비슷한 류형의 이 작품이 별로 특별한 비판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파소설로, 독초의 딱지를 붙인 작품들의 내용과 련관시켜보면 앞에서 이미 살펴본 마상욱의 《처녀의 래방》, 그리고 그후 발표된 정관석의 《뢰관》(1959.8)도 독초의 혐의가 있는 작품인데 론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였음도 당시의 문단환경으로서는 정상적이라 할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당시에는 작품보다는 작가에, 작가중에서도 기성작가, 혹은 전문작가들이 주로 비판의 대상이 되였다는 얘기가 된다. 소설가로서는 당시 가장 활약했던 김학철, 김순기, 김동구가 가장 호된 충격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다수 작품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였고 김용식은 겨우 《밤길》(1957.7)이라는 인간의 물욕을 비판한 단편력사소설을 발표하였음에도 그 작품과는 관계없이 우파분자들과의 관계가 밀접함이 눈에 나서 호된 비판을 받고5) 우파분자의 모자를 쓰게 되였다는 사실 또한 이점을 확인해준다.
4. 리홍규 소설의 경우
리홍규는 1957년도 반우파투쟁 당시만 하더라도 김동구, 김순기나 김학철의 작품을 비판하는 중요한 력량으로 리용되였는데(그밖의 문단인들중 반우파투쟁에서 적극적으로 평문을 발표하여 《독초》를 비판한것도 거개는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서였음을 밝혀두고싶다) 인젠 그 선풍도 다 지나간 1960년말, 1961년초에 다시 우파분자로 지명되여 비판받았다.
우파소설로 비판받은 그의 작품은 《개선》과 《동피사냥》, 《중국사람》 등 세편이다. 리홍규(李弘奎)는 해방초기 우리 조선족의 문화분야에서 중요한 령도직을 맡았던 사람인데 그 역시 김학철, 김순기, 김동구 등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점이 우파락인이 찍히게 하는 기본적인 여건이였던듯하다. 가장 먼저 된매를 맞은 작품은 단편 《개선》(1957)이다.
이 소설은 작가인 《나》가 송림촌에 취재를 나가면서 어떤 농민의 수레에 함께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되였는데 가는 도중 노루가 튀고 꿩이 날았다는 환경묘사와 소를 채질하는 행동, 농민의 표정, 그리고 마지막에 왕보림이라는 한족인이 전에는 박주임과 적대적이던것이 현재는 지지하는 패로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신은 개선하지 말것을 주장했는데 《현에서 온 간부》가 박주임에게 딴 책임을 맡긴다더라는 말을 전해주어 급해난 농민이 소를 채질하며 가는것으로 끝난다. 그외의 내용은 다 이 농민의 얘기로 이루어졌는데 농민은 박주임의 행위를 놓고 부동한 의견, 혹은 외곡된 관점들을 골고루 내놓으면서 그래도 박주임은 흠은 좀 있으나 그가 제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소설에서는 박주임이라는, 항미원조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빈고농단으로 지주를 청산했었고 작년에 주임이 된 농촌 사주임의 모습을 그리고있는데 특히 그 정면과 반면, 즉 오로지 촌민을 위하는 우수한 품성과 원만하지 못한 일처리방법 등의 흠집들을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살아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있어 당시로서는 소설 인물창조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있다. 그리고 《현에서 내려온 간부》의 부당한 작태를 통해서는 당시 이미 자라나기 시작한 관료주의를 표현하고있다 하겠는데 이점이 우파소설로서의 과녁이 된듯싶다. 그래서 박호의 《리홍규의 〈진실〉������������������단편소설 〈개선〉을 비판하여》에서는 작가가 《자기의 정치적음모와 야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산계급의 반동적 안광으로써 우리 사회의 〈암흑면〉, 소위 〈공개하지 못할 비밀〉을 〈대담〉하게 공개한 대표적 작품이다》고 전제하고나서 《변화발전하는 우리의 농촌현실을 악의로써 외곡날조하여 당과 당의 작용을 부인하였으며, 당의 령도밑에서 진행된 토지개혁 등 일련의 정치적운동과 당의 정책, 조치들을 백방으로 비방하였고 우리 시대의 주인공들인 로동인민을 한없이 모함 중상하였다.》6)고 악평하고있는것이다.
《동피사냥》(1959.7)은 리홍규가 반우파투쟁에서 요행 위기를 면하고나서 발표한 첫 작품인데 그때문에 작가는 비판성을 피하고 순수문학적인 시각에서 소설을 구사하고있다. 김덕구와 리팔남이는 청년농민이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항미원조전선에 비행기, 대포를 사보낼 생각이 태양같이 불타서》 동피사냥을 떠났으나 두번이나 눈속에서 길을 잃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결국 헛물만 켜고 돌아온다는 얘기가 전부인데 작가는 소설에서 두 주인공이 끈질기게 죽음과 싸우는 과정을 주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있다. 그리고 말미에 이 이야기가 주인공들에게서 들은것임을 밝히면서 그후 덕구는 또다시 팔남이를 꼬드겨가지고 장백산에 들어갔고 후에 덕구에게 편지로 궁금한점을 물어보았더니 물어본 내용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고 장백산 호랑이를 잡은데 대한 사연을 장황히 써보내면서 편지끝에 《무서운것은 사상》이라고 써놓았더라고 덧붙이고있다. 순수의식에 립각한 이 작품에도 물론 항미원조시기가 배경으로 나오고 거기에 비행기, 대포를 지원한다는 행위의 동기도 들어갔으며 위험과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항미원조전선 전사들의 영웅정신이며 항일련군들의 불굴의 의지를 떠올리는 등 정치적인 면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나 이야기의 전반 흐름은 거기에 문제의식을 둔것이 아니라 인간이 험악한 자연과의 싸움, 그속에서 위험과 허기와 그리고 인간 자신의 공포심을 이겨내는 모습을 문제삼고있다.
얼핏 보기에 정치와는 무관한 이 작품이 우파소설로 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게 아니였다. 이번에는 사회비판의식에서 문제를 찾을수 없으니 자산계급의 인성론의 고취라는 죄명을 들씌우고있다. 박일은 《〈동피사냥〉은 독초다》는 글에서 《자산계급의 인성론적 관점과 자연주의적 예술방법으로써 우리의 위대한 현실과 항미원조운동을 외곡하고 새시대 청년들의 형상을 지극히 추화하고 모욕한 작품》7)이라고 단정한다. 리홍규의 다른 한 력작인 《중국사람》(1959)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 작품이다. 《위만시기 어떤 한족이 한 일본놈의 집에서 머슴으로 있으면서 매우 심한 압박과 착취를 받았었다. 9.3해방이 되자 바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이 한족은 길가에서 그가 압박착취를 당하며 일하여주던 일본놈의 어린애를 만났다. 그는 이 어린애를 안았다가 지난때 당한 일을 생각하고 되버렸다. 그랬다가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그 어린애를 다시 안고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달리는 도중 길가에서 어린애 애비인 일본놈을 만났는데 그 일본놈은 이 한족을 보자 곧 총으로 쏘았다. 총탄은 그의 어깨를 뚫고나가 피를 흘리면서 집에 이르렀다. 집에 다달아보니 안해는 이미 굶어죽었고 다만 자기의 세 아해들만이 남아있었다. 그후 그의 세 아이는 배를 곯고 의복도 몹시 헐게 입었지만 이 일본놈 아이는 잘 먹였고 잘 입혔다. 이로 하여 동리사람들은 그를 욕하였다는것이 전부의 이야기인데 그는 바로 이 한족이 일본 어린애를 부양하는 이 정황을 통하여 소위 〈중국사람〉의 〈넓은 흉금〉을 보여주기 위한것이라고 하였다》8)라는 권철의 내용소개로 보아 현재 우리가 볼수 있는 리홍규의 단편 《중국사람》은 상당히 많은 수정을 거친듯싶다. J탄광에서 《기사후보》로 일하던 조선인 《나》(박씨)가 견증인으로 나오고 주인공은 며칠전에 죽은 조청림이라는 《특수쿠리》의 아버지 조원상으로서 《나》의 전갈에 의해 아들 보러 왔다가 쏘련군의 진공을 만나는것으로 되여있는데 피난도중의 이야기는 원작품과 같으나 수정후의 작품에는 그 구해낸 일본인의 아이를 어떻게 길렀다는 후일담은 없다. 그러나 기본적인 주제는 별로 변화가 없다. 중국인을 벌레 죽이듯 죽이고 심지어 자기를 위해서는 처자식마저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 왜놈십장 하세가와와, 아버지는 철천지 원쑤이지만 그 아이는 죄가 없다며 왜놈의 자식을 구해주고 길러주는 중국인의 행위를 대조시키면서 소박한 인간성을 표현한것이 이 소설의 기본적인 주제가 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의 론자는 《이것은 그가 소위 추상적이며 초계급적인 인도주의와 인간성을 고취하며 계급성과 당성을 부정하는것으로써 계급투쟁을 부인하고 날이 갈수록 소멸되여가는 자산계급의것을 춰세워보려 망상한데 불과하다》고 악평하고있다. 물론 주인공인 중국인의 형상묘사에서도 이런저런 죄명을 끄집어내고있으나 리홍규의 우파소설로서의 본질적인 죄명은 역시 계급투쟁 부정과 인성론 고취에 두고있다.
5. 마무리
이상 분석한 이른바 《우파》소설의 특징은 현실의 암흑면에 대한 비판과 인간성의 표현이라는 말로 요약할수 있을것 같다. 사회비판적인 기능과 인간성의 표현은 사실상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이른바 《우파》소설문학은 해방후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였다고 할수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가능성은 때아닌 된서리를 맞아 파산되고말았다. 우리 문학사 발전의 시각에서 보면 커다란 손실이 아닐수 없다.
리홍규의 작품에 대한 비판을 마지막으로 반우파투쟁도 한단락짓게 된다. 이 반우파투쟁을 거쳐 우리의 소설문단은 완전히 쑥밭이 되며 기성문인들 다수가 우파분자로 락인이 찍혀 문단을 떠나버리고만다. 《아리랑》지가 그나마 된서리속에서 살아남은 일부 기성작가와 신진작가들에 의해 《연변문학》으로 명맥을 잇다가 《응모작품》 등을 통해 신진발굴로도 힘에 겨워 겨우 《연변》이라는 종합지로 전락하고 결국 문화대혁명과 더불어 문예지는 물론 문학작품이 철저히 사라져갔던 사실이 그러한 문단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서 문학은 정치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그러나 순수 정치적인 자대로 문학을 재단하는것은 올바른 문학비평이라 볼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은 해방후 개혁개방이전까지 줄곧 정치적인 기준에 의해 좌지우지되여왔고 이른바 《우파》소설문제도 그런 의미에서 리해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혹 오늘의 신세대들이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울 때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력사이고 문단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력사를 거울로 삼아야만 우리는 좀더 현명해지고 좀더 성숙될수 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