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식의 조선족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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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박계주소설의 이민성과 향토성 댓글:  조회:521  추천:0  2020-05-27
박계주소설의 이민성과 향토성 장춘식   1. 박계주의 생애와 연구사   박계주는 1913년 7월 26일 간도 룡정에서 태여났다. 룡정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7세에 구산(邱山)소학교에 입학하였고 5년제인 구산소학교를 졸업하고는 룡정의 영신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1930년 17세 되던해에 처녀작으로 단편소설 《赤貧》을 《間島日報》에 발표하며 이듬해인 1931년에 단편소설 《혁명전선에 나서는 소년형제》, 콩트 《월야》를 《民聲報》 한글판에 발표하고 이외에도 시 50여편을 당시 간행되던 여러 잡지에 게재했다고 한다. 간도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한셈이다. 그러나 박계주가 문명을 알리게 된것은 1938년 《殉愛譜》가 입선되고 다음해 간행되면서부터이다. 19세 나던 1932년에 고국에 나간후 6년만의 일이다. 같은해에 그는 《인간제물》을 비롯하여 《화성녀》, 《애광자》, 《실화》 등 여러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이때부터 박계주의 본격적인 작가활동이 시작된것으로 볼수 있다. 그후 그는 많은 작품을 창작하는데 그중 상당수는 이민체험에서 취재한것이다. 1966년 서울에서 병으로 별세하였다. 박계주(朴啓周)는 룡정에서 출생한 작가이다. 흔히 말하는 이민 2세에 속하는것이다. 그런데 룡정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으면서 정작 활발한 문단활동을 진행한것은 조선에 나간후부터였다. 따라서 그를 조선족이민작가로 보는데는 이의가 있을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 박계주를 이민작가로 보고 이민문학의 시각에서 그의 광복전문학을 살펴보게 된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이민자적 정체성인식때문이다. 첫 단편집인 에 수록된 8편의 작품 대부분이 이민지에서 취재하고있을뿐만아니라 주제의식에서도 이민자적 특성이 뚜렷이 드러나는것이다. 박계주에 대한 연구는 문단에서의 영향에 비하면 상당히 빈약한편이다. 작품량적으로 빈약하기때문은 절대 아니다. 장편소설도 있고 단편집도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장편 는 당대 독서계를 놀래운 큰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부진한것은 아무래도 박계주가 본격소설보다는 대중소설작가로 알려졌기때문으로 파악된다. 대중소설의 가치에 대한 시비는 잠시 접고 본격소설만 보더라도 지금처럼 소외될 작가는 아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특히 이민문학의 립장에서 볼 때 더구나 간과할 수 없는 작가인것이다. 박계주의 소설을 연구하면서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원본과 개작품의 관계문제이다. 박계주의 이민소설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발굴된 광복전 발표 소설 원본은 7편이다. 그리고 단편집 《처녀지》에 수록된 소설 8편을 포함하여, 개작품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전하는 박계주의 광복전 작품은 모두 10편인데 그렇다면 기타 3편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원본과 개작품의 차이를 비교하는것은 박계주 이민소설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지 않을수 없다. 사실 《딸따리족》을 《무명지사의 최후》로 개작한것, 《육표》를 중편소설 《지옥에도 꽃은 핀다》로 개작한것, 《오랑캐》를 《사형수》로 개작한것 그리고 그외 미발표원작들을 광복후 손보아 창작집 《처녀지》에 수록한것 등은 론의에 큰 어려움은 주지 않는다. 대개 반일저항적인 내용들을 가첨한 정도에 불과하기때문이다. 그러나 《유방》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친일부왜의 혐의가 있는 작품을 반일저항적인 작품으로 분식하였다는 비판이 가능하기때문이다. 먼저 원작과 개작 도입부분의 내용을 대조 인용해본다.   남원공략전(南苑攻略戰)을 비롯하여 태원성함낙(太原城陷落)에 이르기까지 혁혁한 무훈을 세운 김석원(金錫源) 부대장은 북지전선에서 첫번 돌아왔었을 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것을 여기에 옮겨 쓰기로 한다.   제정(帝政)일본 학정자의 채쭉에 못이겨 지원병이라는 미명밑에서 이를 갈며 화북(華北) 전투지구에 출정 했던 학도병(學徒兵) 정태호군은 이번 중국 연안(延安)에서 귀환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 준 것을 여기에 옮겨 쓰기로 한다.   나중에 전문적으로 론의하게 되겠지만 이 작품의 개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도입액자의 내용 즉 이야기 전달자의 신분이다. 원작에는 일제의 충견으로 중국전장에서 일제를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조선인 김석원 부대장이 전해준 이야기로 되여있지만 개작에서는 이야기 주인공의 친구인 학도병 정태호가 전해준것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일본인 부대장을 사살한다는 주인공 정태호의 몽중담을 가첨함으로써 뚜렷한 민족의식을 갖춘 반일저항소설이 되게 하였다. 얼핏 보면 다른 개작품과 비슷한 결과를 나타내지만 도입액자부분에서 친일적인 이야기의 전달자로 하여, 또 이 친일적인 이야기 전달자에 대한 칭송의 표현으로 하여, 개작품에 가첨된 종결액자부분의 내용을 통해 친일적인 작품의 혐의를 가지고있는 작품을 반일저항적인 작품으로 개작했다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박계주의 이민소설들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해보고자 한다.   2. 작품소재의 특이성과 렵기성   작품소재의 특이성과 렵기성은 박계주소설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이다. 당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적을 주인공으로 한다든지(《사형수》), 그런 마적에게 잡힌 “육표”의 이야기를 쓴다든지(《육표》), 현대의 문명과는 전혀 담을 쌓고 사는 산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것(《처녀지》), 간도와 강동, 러시아 지역을 전전하면서 특수한 경력을 가진 조선인을 그린다든지(《딸따리족》), 인간성을 상실한 마약중독자를 그린것, 심지어 눈과 귀가 먼 부상자가 어머니의 유방을 피부로 감촉하고 어머니를 알아본다는 이야기나(《유방》) 간도 조선인과 러시아처녀의 사랑이야기(《아라사처녀》) 등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혹자는 이런 박계주소설의 특징을 그의 통속소설창작과 관련시키면서 평가절하할지도 모르겠으나 통속적인 방식으로 본격적인 소설의 주제를 해명해나간다고 나쁠것은 없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속에 가치있는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성공적인 작품행위로 보아야 할것이다. 소설의 탄생은 흥미성에서 비롯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박계주는 이처럼 특이하고 심지어 렵기적이기까지 한 소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까?   3.1 문명비판과 그 의미 《처녀지》(1941)에서 박계주는 원시적인 이주민 “산ㅅ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산ㅅ사람” 일가족이 사는 자연환경 또한 지극히 원시적이다. 소설에서는 모두에서 먼저 그러한 환경의 원시성을 강조하여 묘사한다. 쟁영(崢嶸)한 장백산 연봉(長白山連峰)을 앞으로 쳐다보며 해란강(海蘭江)의 근원을 찾아 어질령(嶺)을 넘으면, 거기엔 원생림(原生林)으로 바다를 이룬 처녀지가 있다. 아직 문명의 유린을 당해보지 못한 이 처녀지엔 곰과 멧돼지와 이리와 여우와 노루 등, 산짐승들이 생존을 다투며 서로 제 살림을 경영하기에 온갖 지혜를 윤택(潤澤)ㅎ게 하여 원시의 세계인양 그 품이 매우 소박하지만, 이러한 고산벽지길래 봄이 와도 눈은 그대로 덮여있어서 봄을 모르고, 그때문에 눈이 녹기 시작하는 늦인 봄철로부터 다시 눈나리기 시작하는 중추(仲秋)의 그 기간을 걸쳐 이 끝없는 수해(樹海)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점점(漸漸)에 은신의 소굴을 조영하는 극히 소ㅅ수의 마적(馬賊)의 출입을 보는 외엔 별로 인간의 침약을 당해보지 못하던 이 무인경에 조선사람의 집 한채가 있다는것은 한개의 경의(驚異)가 아닐수 없다.   이러한 환경묘사는 당시 이주민문단에서 자주 언급되고 또 한국 본토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이른바 만주대륙의 모습 그자체라고 할수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주민의 눈에 비친 만주대륙의 모습이였을것이다. 지극히 원시적인, “아직 문명의 유린을 당해보지 못한 이 처녀지”였던것이다. 이 소설에서 박계주는 수십년간 해란강의 발원지, 장백산련봉속에서 사냥을 하고 함지나 파면서 그것을 가까운 동네에 내려가든지 물건 바꾸러 오는 사람과 바꾸든지 하면서 세상과 거의 동떨어져사는 산사람 일가족의 생활과 경력을 그리고있다. 이름도 분명하지 않고 다만 “산ㅅ사람”이라 불려지는 주인공은 마적들이나 혹 지나갈가 하는 원생림속에서 앙까이(안해)와 아들애 둘을 거느리고 살아간다. 물론 그들은 조선이주민의 가족이다. 이렇게 문명과 두절된 평범한 세월을 부친대에서부터 살아오는데 어느날 난데없이 삼림측량대가 나타나서 극히 제한적인 산사람의 나무 채벌을 제지시킨다. 그리고는 이곳에 철도가 부설될것이며 삼림 또한 국유림이라 한다. 일제의 삼림개발정책이 이 두메산골에까지 미쳐온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나무를 벤다고 하여 문명사회의 관리인들은 그가 문명사회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며 바보니 미쳤느니 하며 귀뺨을 마구 치는데 그 모든것이 산사람에게는 오히려 미친 행위로 비쳐진다. 류치장에 갇혔다가 그래도 삼림주의 호의로 생존수단을 개인적인 나무베기에서 채벌공사에 나가 일하는것으로 바꾸게 되고 그 일터에서 일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기 위해 꾀나 부리고 일이 끝나면 색주가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떠들고 싸우고 하는 문명사회의 미친듯한 행위를 보게 되며 문명의 예기인 불술기(기차)도 보게 된다. 이러던중 점차 그들과 같게 되는 자신에 놀란 그는 다시 더 깊은 산속으로 이사를 가려 작심하고 짐까지 쌌다가 그 행위가 자신의 패배를 의미하는것임을 깨닫고는 다시 문명사회에 적응해 살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근본적인 갈등구조는 원시성과 문명성의 대결이다. 현대의 문명은 원시적삶을 살아가는 산사람 일가족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게 사실이다. 산사람의 아이들은 무슨 나무에 열리는지 모르는 개누깔사탕이 너무도 신기하고 매력적이며 장사군녀인이 “닳을까봐 신지 못하고 머리에 이고왔”다는 고무신 또한 산사람의 안해에게는 “폭신하고 몽글몽글한게 참 좋다”. 그리고 삼림측량대원들의 “옷 채림채림이라던가, 신은 신이라던가, 쓴 모자라던가, 어느것 하나 처음 보지 않는것이 없고, 신기하지 않은것이 없다.”“의복도 의복이려니와 더욱 놀라운것은 뜰악에 천막을 치고 보지 않던 그릇에 보지 않던 요리를 만들어내는것은 참말 희한한 구경꺼리였다.” 그러한 경이를 산사람의 안해는 “웃티(옷이) 벨랐으꼬마.”로 표현하며 산사람은 “그 눔으 총으 한개만 가졌으문 그저 이 산속에 있는 짐생이란 짐생은 왼통 잡아낼거르!”라고 부러움까지 보인다. 나중에는 “무엇이 끌지도 않는데 끄는 이상의 속력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를 보고 더구나 “신통하다못해 놀랍다” 하고 “제에마 정게 저 내굴(연기)이 나오는 방속에 말이 들어가 닳고 잇음메?”라고 한 산사람 아들애의 의혹은 그들의 문명에 대한 경이를 잘 나타내주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호의적인 반응이다. 그러한 문명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데 대해서는 당연히 호의를 느낄수가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불청객인 삼림측량대원들이 나타나서 산속의 나무가 국유림이 되여 “허가없이 자르면 처벌받”는다는것이다. “처벌”이 무엇인지 “형벌”이 무엇인지를 알리없는 그들이지만 나무를 자르지 못한다고 하는것은 명백히 생존에 대한 위협이였다. 이제 여기에서 원시성과 문명성은 날카롭게 맞선다. 산사람은 조상때부터 마음대로 잘라도 아무 시비 없던 나무를 갑자기 자르지 못한다고 한것은 정신이 제 상태에 있는 사람의 소위일수 없다고 보며 특히 알아들을수도 없는 조선말을 늘어놓는것이라든가, 사람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갑자기 웃음을 탁 터뜨리는것, 갑자기 웃다가 갑자기 성을 내는것 등이 모두 정신이상의 한 징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무를 자르라고 하더라도 기차가 개통되면서 그렇게 수많은 나무를 매일 기차에 실어다가 함지를 만들고 숯을 구워내면 생계가 끊어질것이라는 불안이 심각해진다. “왜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실어가면서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릴까.” 이는 산사람이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에서 그냥 나무를 자르다가 벌목인부감독에게 잡혀갔을 때 그는 존대말 대신 “야, 자” 하며 나무를 자르면 콩밥을 준다 하고 “처음 말과 다음 말이 전혀 어긋나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만 하여 또다시 “정신병자”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그걸 확인하고자 했더니 앙천대소를 하며 그쪽에서 오히려 산사람을 “미친놈”, “불쌍한 인간”, “바보”라 하며 뺨까지 치니 마침내 “쌔시개(정신병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경관이라는 사람마저 자꾸 알아들을수도 없는―호적이니 국적이니 빠가야로니 고노야로니 하며 알아들을 소리만 해도 못다할 이 세상에서 필요이상의 말을 자꾸 만들어내는것이 역시 정신이상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직한 말을 했다고 하여 성냈다 때렸다 하며 필요이상의 흥분과 필요이상의 피대를 올리고 펄펄 뛰는것이 암만 생각해도 미친사람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참다못해 “무세레, 당신네들은 나르 붙잡아다놓고 시비만 걸려구 하오?” 하고 항의하는데 “나으리”로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 불렀다고 또 화를 낸다. 결국 그는 “세상엔 모두 정신병자만 사는것 같애서 세상이 우울해”지고만다. 산사람의 이와 같은 현실인식 혹은 세상인식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그러한 문명이 일제의 식민지경영에 의해 강요된것이므로 일제의 식민지략탈에 대한 비판이고 풍자로도 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산사람이 그러한 문명과의 대결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이 사람들과 섞여서 살다가는 나두 쌔시개(정신병자)가 되겠”다는 우려때문에 장백산 오지로 들어가려 결심했던것을 생각을 바꾸어 다시 “‘나’를 파괴하는 모든 거짓과 어둠과 싸워서 이기자. 그들속에 있으면서 그들을 닮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잃지 않는것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승리일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성공이기도 하리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것에서 이러한 판단은 더욱 힘을 얻는다. 사실 따지고보면 산사람의 이같은 각오는 산사람의 각오라기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각오이고 작가의 문명인식이며 현실인식이라고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 하겠다. “이 作品에서 내가 意圖한것은 쫓겨가는 處女地의 山사람을 朝鮮民族으로 代身했고, 機械文明을 背景한 特權階級을 侵略者 日本으로 代身하였을뿐아니라 ‘人間’을 벌거벗겨놓고 거기에서 ‘너’와 ‘나’를 보려 했던것이다.”고 한 작가자신의 진술 또한 이런 판단을 반증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비판의식은 요즘 학계의 중요한 관심사로 부상되고있는 환경문학 혹은 생태문학의 시각에서 볼 때도 가치가 있는것이다. 작품에서 “왜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실어가면서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릴까.”라는 표현이라든가, “알아들을 소리만 해도 못다할 이 세상에서 필요이상의 말을 자꾸 만들어내는것” 등은 공업문명의 파괴성에 대한 비판으로 볼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표현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네 국적이 조선에 있어서 황국신민(皇國臣民), 이를테면 일본사람이 됐느냐? 그렇쟎으면 만주국에 입적해서 만주국백성이 됐느냐 말이다.” 하고, 성을 펄쩍 내며 묻는다. “나는 조선사람이오.” “이놈아, 조선사람인줄 누가 모른대?” 그는 다시 깔깔 웃는다. “그럼 왜 조선사람인줄 알면서 나보구 일본사람이냐 만주국사람이냐 하구 묻소?” 산ㅅ사람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선사람인줄 빠안히 보면서 일본사람이냐 만주국사람이냐 묻는 그 한가지만 보아도 분명히 정신상태가 온전한 사람의 말일수는 없쟎은가. “그럼 너는 일본백성이 아니란 말이냐?” “내가 왜 일본사람이란 말이오? 이렇게 조선웃티(옷)르 입구 조선말으 하는데…….” “이놈아, 너는 비국민(非國民)이다!” “비국민이라니오?” “빠가야로!” “……?……빠가야로라는 건 또 무시겜둥?” 비국민이니 빠가야로니 하고 점점 더 모를 소리만 연발하는데는 산ㅅ사람의 정신은 더욱 얼떨떨해진다.   이때 산사람의 “비국민”적인 행위는 그의 현실사회에 대한 무지를 전제로 했기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을지 모르나 “그는 그날밤에 匪賊(침약자 일본에게는 匪賊일지 몰라도 기실은 비적이 아니라 反滿軍의 게릴라部隊였던것이다.)을 잡으면 호송할 때까지 임시 가둬두는, 그러나 아직 한번도 가두어본 일이 없는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였다.”는 표현에서 괄호안의 부분은 해방후 가필한것이 분명하다. 1948년 박문출판사판 박계주창작집 《처녀지》에 처음 공개발표되였기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주제에는 큰 변화가 없어보인다. 이에 대한 박계주 본인의 진술을 들어보이면 다음과 같다.   檢閱말이 났으니 말이지, 《處女地》는 李泰俊氏가 主宰하던 《文章》誌의 一九四一年版인 三十四人集 特別欄에 揭載키로 되어 造版까지 했던것인데, 이 作品이 問題가 되어 檢閱官은 “왜 雜誌를 廢刊시키구싶어서 이러느냐” 하고 야단을 쳤을뿐더러 作者의 呼出까지 있어 톡톡히 說諭를 듣고 요행 原稿만을 찾아내어왔었다. 그뒤, 《文章》 終刊號에 다시 한篇 쓰라 하여 《處女地》의 下中을 改作해서 드렸더니 亦是 全文削除를 당하고 말았었다. 한해를 묵혀서 다시 이 作品을 全面的으로 改作하여 綜合雜誌 《春秋》에 發表하기로 했는데 또한 全文削除를 당하고말았으니, 解放뒤 文學家同盟機關紙 《文章》에 실리려고 仝同盟小說部委員長 安懷南兄이 가져갔었는데 同盟이 地下로 들어가다싶이 되고 또한 機關紙가 언제 나올지 몰라 單行本에 놓으려고 찾아내어왔었다. 그래서 이 作品은 끝끝내 發表되지 못하고말았던것이다. 그렇게 虐待받고 出世못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나는 내 作品中에서 이 작품을 몹시 좋아한다.   이상의 분석에서 우리는 박계주가 《처녀지》를 통하여 원시적순수성과 현대문명의 탐욕을 대결시킴으로써 현대문명의 파괴성을 밝히고 그러한 문명을 강요한 일제 식민지경영을 비판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거기에 만주대륙의 혹한과 울창한 숲, 거친 지리적, 지형적 이미지가 뒤받침되여 소위 “대륙문학”적인 미적효과를 창출하고있다. 이는 또한 일제말기 암담한 현실에서 검열제도를 통한 언론, 문화의 통제를 우회하여 현실에의 저항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상징적대안이였다는 사실도 간과할수 없을것 같다. 물론 그러한 작가의 시도는 수차 삭제되면서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실패했다고 볼수밖에 없는것이다.   3.2 마적의 내막에 대한 해명 박계주의 작품에서 이민지의 마적에 관련된 작품은 2편이다. 《육표》와 《사형수》가 그것이다. 《육표》는 마적과 마적에게 육표 즉 인질로 잡힌 이주민과의 갈등을 보여주고 《사형수》는 마적자체를, 정확하게는 王德이라는 마적단의 두목이 당시 관청격인 륙군에 잡혀 래일이면 사형당할 최후의 밤과 사형장으로 가는길에 길거리에서의 조리돌림, 그리고 사형장에서의 죽음과 거지들의 옷벗기기 경쟁을 그리고있다. 《사형수》에서 왕덕은 사생아라고, 진짜가 아닐지도 모를 부모에게서 자라 고학으로 공부를 했으나 오랑캐의 후예라고 벼슬을 할수가 없었다. 그는 마적이 되였고 인테리라 하여 두목까지 되여 갖은 살인, 방화, 략탈, 간음을 일삼다가 잡혔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래세가 있을지, 인간은 물질에서 왔다가 죽으면 다시 물질로 돌아가는것인지를 가지고 고민한다. 그러나 이튿날 사형장에 나가는 길에서는 용감히 죽기로 맹세하고 륙군을 마적보다 더한, 심지어 위선까지 덧붙여 더 많은 죄를 진 놈들이라 사형집행자들을 수백, 수천명의 군중앞에서 규탄한다. 그래도 속으로는 혹 구출을 올 마적들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총살하게 될 다른 두 마적중 하나는 사형전에 마음대로 먹을것을 먹게 하는 전통에 의해 죽을둥살둥 모르고 먹기만 한다. 또 다른 한 녀석은 이미 판결이 끝났음에도 자기는 살인도 방화도, 아무 나쁜짓도 하지 않고 잡혀가서 별수없이 마적들을 따라만 다녔노라고 비굴하게 변명한다. 그러니까 사형장에 나가는 세 인간의 세계, 아니 거기에 그것을 집행하는 륙군의 마적보다 더한 세계,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며 구경하는 군중들도 또 이 네개의 세계와 별 다를바없는 형형색색의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파하고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형이라는, 분명히 내다볼수 있는 죽음을, 극한적상황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로출시키고있다. 죽음의 공포를 깨달으면서도 떳떳이 죽으려는, 그러면서도 혹 이 위기를 면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왕덕과 그에 곁들여서 죽기전에 마음껏 먹으려는 죄수와 살려달라 애걸하는 죄수, 그리고 왕덕의 말처럼 마적보다 더한 마적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인민의 보호자라 자처하는 병정들의 모습을 그리고있다. 다음 례문은 이러한 상황 특히 인민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륙군의 마적보다도 더한 악덕의 진면모를 잘 보여준다.   세개의 세계가 행진한다. 아니, 병정의 세계까지 합하면 네개의 세계가 행진한다. 왕덕의 말과 같이 그들 병정과 관리는 마적과 다를것이 없었다. 도리여 위선이라는 죄를 하나 더 뒤집어쓴 마적과 다를것이 없었다. 도리여 위선이라는 죄를 하나 더 뒤집어 쓴 마적 이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강압, 착취, 학정, 공갈, 무법……그러나 그의 이름은 인민의 보호자였다. 평화의 사자(使者)였다. 위풍이 등등하다. 뻐젓하다. 죄인이 죄인을 심판한다. 죄인이 죄인을 사형한다. 어디서 온 진리냐.   이 작품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특이한 소재를 선택하여 결국 인간일반의 본질을 파헤쳐보이고있는셈이다. “세 세계가 움직이고있다. 죽음을 향해 지금 행진하고있다. 아니, 네 세계다. 아니, 수백수천의 세계가 움직이고있다.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엔 죽음에 부딪치고야 마는것이다. 군중―수백수천의 군중속에도 세 마적의 인간타입이 있고, 그리고 병정들의 인간타입이 있는것이다. 너도 나도 죽음을 향해 전진 또 전진.” 라는 표현에서 이점이 확인된다. 특히 백성을 지켜준다는 관청역을 하는 륙군이 마적보다 더한 마적일지도 모른다는 표현은 당대 간도사회의 력사적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였다 하겠다. 그리고 죽음과 래세, 령혼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고민은 박계주의 기독교적 사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육표》는 《사형수》에서 죽음을 앞두고 나약한 면을 보이고있는 마적들의 악마적인 측면과 그러한 악마에게 구속당해 시시각각 죽음을 맞아야 하는 두 이주민의 생존상태와 인간적인 본질을 문제삼고있다. 이 작품의 모두에는 당시 이민작가의 작품에서 가끔 볼수 있는 부언설명이 붙어있다. “―이 小說의 舞臺는 白頭山東北으로 뻗은 長白山支脈의 山谷. 때는 지금으로부터 二十年前 張作霖治政時代임을 미리 말해둔다.” 여기서 20년전 장작림정권시대라는 설명이 필요했던것은 일제의 검열때문이 아니였을까 짐작된다. “오족협화”요 “대동아공영권”이요 하여 만주국의 안정과 풍요를 구가하던 시대에 마적이 출몰하며 인명을 해치는 상황을 버젓이 그린다는것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있었을것이기때문이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강달귀(규)는 재피거우에서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명물이요 망나니다. “매일 술만 처먹고는 싸우는것이 그의 하루하루의 일과요 직업이요 락”이다. 그런 망나니지만 그에게도 번뇌는 있었으니 바로 영춘옥의 옥녀때문이다. 옥녀는 술집에서 일하지만 인물뿐만아니라 행실이 단정해서 뭇사내들의 가슴을 태웠다. 그리고 옥녀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한마을에서 자라난 성호라는 젊은이였다. 성호는 옥녀가 색주가에 팔려오게 되자 전차금을 내고 그녀를 빼내려고 이곳에 와서 광부가 되였다. 어느날 옥녀와 술상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강달귀가 나타나 싸움을 건다. 둘이 사투를 벌리는 사이에 밖에서 총소리가 나며 년례행사처럼 닥쳐오는 마적들의 습래가 발생했고 둘은 돈있는 사람으로 오인되여 그만 마적들에게 육표로 잡혀가게 된다. 적굴에 잡혀가서 둘은 마적들의 강박에 어쩔수 없이 편지를 썼고 강달귀는 광주에게, 성호는 옥녀에게 보냈다. 도망할 꾀를 생각하던중 어쩌다가 강달귀가 먼저 포승을 풀고 도망하면서도 성호는 그대로 두었다. 성호에게 복수하고 옥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강달귀는 되잡혀오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채 밖에 있는 나무에 매달렸다. 그 고통스런 모습을 보는 성호의 마음은 착잡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적들은 마약이 바닥이 나자 두명만 소굴에 남겨두고 습격을 나갔고 성호는 기회를 타서 마적 둘을 제압하고 도망치게 되였다. 그리고 강달귀에게 복수하고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자신은 악을 악으로 갚을수 없다며 그를 풀어준다. 그러나 총상을 입고 사흘이나 밖에서 시달린 강달귀는 성호에게 업히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산속을 탈출하던중 자신의 과거를 회오하며 죽어버린다. 성호는 무덤앞에 “조선인강달규지묘”라는 묘비를 세워준다. 무덤의 임자가 마적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인데 어쩌면 더러 렵기적인것 같은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 주제는 인간성의 발견이다. 천하의 망나니 강달귀는 성호의 무조건적인 사랑앞에서 악을 버리고 선으로 재생한다. 삶과 죽음사이에서 인간의 선과 악은 극한적인 대결을 벌리며 결국 선이 악을 이긴것이다. 또다시 작가의 기독교적인 박애사상을 표현한것임을 알수 있다. 다음 례문에서는 그런 작가의 사상이 극명하게 표현된다.   “여보게. 나는 살아서 마적굴을 탈출하게 되는것을 기뻐하는것이 아니라, 죄악덩어리였던 그 ‘나’를 탈출하여 새로운 ‘나’를 찾은것을 기뻐하는것일세. 이렇게 나를 옛사람에게서 탈출시켜 새사람으로 다시 살게 한것은 전혀 자네의 사랑일세. 나는 사랑이라는것이 무엇인것도 지금 처음 알았고, 맛보기도 지금이 처음일세.” 띠염띠염 간신히 말하는 그는 또다시 성호의 등에 눈물을 떨어뜨린다.   “여보게, 자네 재피거우에 돌아가거든 강달귀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의 속사람만은 죄악에서 살아났드라고 전해주게.” 한마디를 남겨놓고, 그 움푹 패인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채 숨을 걷우어 버리고말았다.   인식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에는 이주민들의 생활터전인 북간도지역 마적들의 행적과 삶의 양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중국어의 인용과 마적들의 노래 등 이국적인 정서와 더불어 주목을 끌었을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당연히 력사적 사실로서 가치가 있다 하겠다. 결국 박계주가 마적의 내막을 해명하고자 했던것은 이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사실주의의 기본원칙외에도 마적 및 마적과 관련된, 흔히 극한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읽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싶다. 이는 박계주의 기독교신도라는 신분과도 어울리기때문에 한층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3.3 오지(奧地)문화에 대한 관심 소재의 특이성이라는 박계주소설의 한 특징은 오지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연장된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처녀지》나 《육표》, 《사형수》 등에도 오지문화의 특징이 상당정도 포함되였다 할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작가의 주되는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그러나 《딸따리족》이나 《질라깨녀인》, 《개》 등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오지문화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먼저 《딸따리족》의 경우 러시아에 이민을 갔다가 현재는 북간도에 정착해 살고있는 강동령감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경험한 딸따리족의 삶과 그들과 련관되여 한때 거부가 되였던 강동령감의 이야기를 엮고있다. 강동령감은 러시아혁명때 구당과 함께 로만국경을 넘어 북간도땅에 들어와 이야기서술자인 “나”가 살던 얼두거우에 정착하였고 여기서 국수집 잡일을 보아주면서 호구하였으나 러시아에 있을 때는 해삼위에 훌륭한 양옥저택을 가지고 러시아미인을 안해로 맞아 한때는 호화롭게 살던 거부였었다. 그러던것이 혁명군에게 일조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안해마저 그들의 손에 잃은뒤에 알몸으로 뛰쳐나왔단다. 따라서 공산당은 그의 철천지원쑤였다. 이야기하기를 즐긴 강동령감은 가끔 “나”가 다니는 서당에 놀러와서 이국풍속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감자를 구워먹다가 감자와 관련된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러시아에 간 초기에는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보따리를 들고 시베리아 북쪽 삼림지대에 들어가서 우선 사냥부터 시작했다. 사냥으로 돈을 좀 벌다가 자신이 짐승이 된 느낌이 들어 짐승을 잡기 싫어졌다. 그에 총을 들고 산속을 다니기만 하다가 딸따리족이 사는 부락에 들어가게 되였는데 거기서 딸따리족들이 아이들 장난감으로 주어왔다는 금덩이를 발견하고는 이들을 구슬려 그 금덩이를 다 가지고 시가지에 나와서 진탕 먹고 놀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감자와 금덩이를 바꾸기도 하고 감자씨를 심도록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금과 바꾸었는데 딸따리족들이 감자 심을줄을 몰라서 가을에 수확하라고 한것을 사흘만에 파보고는 강동령감이 거짓말을 했다며 내쫓았다. 그래도 전에 감자와 바꿔온 금이 많아서 그 금으로 거부가 되였다는것이다. 지금이래도 사냥을 해서 팔자를 고치지 왜 국수집 망이나 봐주냐고 하니까 강동령감은 그런 생각이 없지 않으나 지금은 늙고 피가 식어서 안된다며 쓸쓸히 웃었다는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작품에는 상당정도 반공적인 의미가 드러나고있고 그래서인지 해방후 작가는 이 작품을 《무명지사의 최후》로 개작하여 저항적인 의미를 가미하고있으나 실상 이야기의 핵심은 한 이주민의 파란많은 류랑의 경력과 러시아 소수민족인 딸따리족의 원시적인 삶과 련관된 오지체험이다. 강동령감의 오지체험에서는 딸따리족의 소박하고 원시적인 삶과 욕심덩어리 현대인의 삶이 대조를 이룬다. 금이 생기니 산속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던 사람에게 끝없는 욕구가 생기고 그래서 금을 판 돈을 술과 계집으로 금방 탕진해버렸다는 강동령감의 경력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리고 러시아혁명과 자신의 재산을 몰수한 공산당을 원쑤로 보면서 이를 갈기도 하지만 국수집의 망이나 보아주면서 만년을 보내는것에 만족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부질없는 허욕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질라깨녀인》에서는 흑룡강류역에서 일생을 배타고 고기잡는것을 업으로 생활해가는 소수민족인 질라깨족과 조선인간의 특이한 관계를 그리고있다. 질라깨족은 흥룡강류역의 토착민으로서 그들의 주가(住家)는 고기잡는 목선이요 정주지(定住地)가 따로 없이 사는 그들에게는 흑룡강이 집터요 직장이요 고향이다. 이들은 생선을 생으로 먹는 야생적이요 원시적인 삶을 살아간다. 한번은 이들이 조선인이 사는 마을에 들어와 저녁 짓는 모습을 보게 된다. 쌀을 두번이나 씻어서 밥을 짓는것을 보고는 너무 깨끗한 민족이라고 감탄하며 밥을 물에 말아먹는것을 보고는 두번 씻어 지은 밥을 또 씻어먹는다고 끔찍한 민족이라고 딸을 이런 깨끗한 민족에게 시집보내겠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나서 그 밥 말았던 물로 양치질을 하고 꿀꺽 삼키는것을 보고는 “그들이 씻어낸 물을 도루 마시는거나, 우리가 씻지 않고 먹는거나 더러운것 먹기야 마찬가지지. 머 다를것 있나. 역시 내 딸은 내 족속에게 시집보내야겠는걸.”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 콩트 정도의 이 짧은 이야기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싶었던것은 아무래도 이들의 원시적인 평화와 소박함이였던것 같다. 다음 례문에서 작가는 이점을 확인시킨다.   그렇게 야만답고 원시인그대로이기때문에 이 족속의 생활에서 우리는 소박(素朴)함과 순진함과, 목가적(牧歌的)인 평화를 엿볼수 있는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마우재”(露西亞人)와 피를 달리한 동양인이라는데서 우리는 이웃사촌의 정도 갖게 되는것이다.   특별히 설정한 주제도 없고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국땅 오지 원시적인 민족의 삶과 이들의 민족성을 그대로 드러내고있는셈이다. 그렇다면 박계주는 이들 오지체험을 다룬 소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여기에는 적어도 두가지 의미가 있는것 같다. 첫째는 소재자체의 특이성이다. 독자에게 이국적인 풍속과 이민족의 삶의 양상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에 만족을 줄수 있었기때문이다. 둘째는 원시성과 현대문명의 대조이다. 물론 이러한 대조속에는 현대의 문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판성이 내포되여있다. 이것을 앞에서 이미 살펴본 《처녀지》에서의 문명비판과 련관시켜보면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리해된다.   3. 《유방》의 전복성과 해체적 의미   《유방》은 박계주의 소설에서 친일적인 혐의가 가장 뚜렷한 작품이라 할수 있다. 액자소설의 형태를 갖춘 이 소설에서 이야기의 전달자는 중원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김석원부대장이 전해준 이야기를 작가가 적은 형국으로 되여있는데 주인공은 조선인병정 ○○군이다. 실명을 숨긴것은 아마도 실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것이다. 이 조선인 병정은 이른바 “‘나’없는 투혼(鬪魂)에서 격렬히 싸우며 전화(戰火)속을 헤염”치다가 랑자관(娘子關)전투에서 부상하여 눈과 귀가 멀게 된다. 그는 그를 찾아간 김부대장을 보고도 누구인지를 모르고 어머니만을 찾는다. 자신이 눈과 귀외에도 어깨밑과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어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것임을 느낀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애통한것은 정작 어머니가 찾아왔어도 알아볼수가 없다는것이다. 어머니가 아무리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어머니임을 호소하지만 아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이때 어머니는 갑자기 유방을 꺼내 아들의 입에 물려준다. 그제야 아들은 어머니임을 알고 모자가 부둥켜안고 운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도입액자만 있고 종결액자는 없는 액자소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야기전달자의 신분이다.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에서 혁혁한 무훈을 세운 김석원부대장을 그 이야기의 전달자로 선택했던것이다. 김석원은 실존했던 인물로 당시 신문에 널리 보도되였다고 한다. 이때문에 이 작품을 친일적인 작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무심히 보면 그렇게 보는것도 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작품에서 군데군데 눈에 띄는 표현들 가령,   그 조선인 병정 역시 「나」없는 투혼(鬪魂)에서 격렬히 싸우며 전화(戰火)속을 헤염쳤던것이오. 사실, 물욕이라는것, 명예욕이라는것, 지위욕이라는것……등등의 사욕은, 위대한 「죽엄」속에 나를 바쳐서 제물이 되려는 자에게는 이미 작별된것이 아니겠소.   (낭자관 전선에서 악전고투하던 부상병들이 낭자관이 함낙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기뻐하랴.)   나는 ○○군의 어머니에게, 먼 길에 고생이 많았을것을 인사 드린 뒤에, 전선에서 당신의 아드님은 용감히 싸왔던것과, 그리고 명예의 부상을 입게 된것등을 이야기 하며 그의 마음을 위무(慰撫)해 주며, 군의와 간호부들과 함께 그를 인도해 가지고 ○○군의 병실로 들어갔었소.   등에서도 그렇고 주인공이 전장에서 “나”없는 투혼을 불태우며 격렬히 싸웠다고 한것, 김부대장이 눈과 귀가 멀고 몸에 관통상을 입어 생명이 곧 다하게 될 부하 병정이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것을 가엾게 여겨 어머니를 모셔다 만나게 하려 한것, 또 군에서 어머니를 오도록 전보를 쳤다는 점, 군의나 간호사들은 물론 사령관마저 그 병정이 어머니를 찾는 애통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점 등은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또 침략자들의 인간미를 칭송했다고 보아도 무방할것이다. 더 확대해석하면 조선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는 혐의도 없지 않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작가가 해방후 이 작품을 개작하면서 이야기의 서술자를 김부대장에서 학도병 정태호로, 주인공을 일제에 강제출정을 당한 농촌출신의 병정 김인철로 하고 정태호가 김군과 함께 일본인 부대장을 죽이고 달아나는 꿈을 꾼다는 내용을 삽입함으로써 반일저항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한것은 그러한 친일적인 혐의를 벗기 위해서였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이 작품을 읽어보면 이상에서 살펴본 친일적인 내용이나 반일저항적인 내용 모두가 작품의 핵심적인 서사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작품의 핵심적인 서사는 전선에서의 부상에 의한 아들의 시청각장애와 아들의 촉각을 발동시킨 어머니와의 관계 이야기이다. 즉 시각과 청각을 모두 상실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그러한 아들의 정상을 보고 촉각의 기억을 되살려모자가 알아보게 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것만 없으면 이 소설은 소설이 되지 못한다. 다음 례문을 보면 그러한 서사의 의미가 곧 드러난다.   (울대로 내여버려두어라. 세상에 눈물처럼 정직한것도 없으려니와 눈물처럼 진실된것도 없는것이니, 하물며 어머니의 눈물에 있어서랴. 어머니의 눈물이야말로 사랑의 극치(極致)요, 정화(精華)니라. 어서 울고싶은대로 실컨 울어라.)   이야기서술자인 김부대장의 심리묘사인데 결국 소설의 주제는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인간의 사모(思母)본능과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의 본능 표현이라 하겠다. 박계주소설에서 일관적으로 표현되는 본능적인 선(善) 혹은 인간성의 문제는 이 작품에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통해 독자가 느끼는것은 어떤 조선인병정이 중국전장에서 일제를 위해 투혼을 불살라 잘 싸웠다는 사실이 아니라 전쟁때문에 아들이 어머니를 알아볼수 없는 비극적상황이 아닐까 한다. 이것을 일제의 대륙침략전쟁 혹은 전쟁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 내지는 부정이라 보면 지나친 독단일까?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전쟁자체 나아가서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전복적인 표현이라 할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박계주가 의식적으로 이와 같은 전복적인 주제를 표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혼종성의 시각에서 보면 김부대장의 무훈에 관련된 칭송이나 주인공의 투혼에 대한 서술은 일제 침략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전복을 위한 계획적인 장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제의 대중국전쟁에 무고한 조선인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작가의 무의식속에서 달갑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전사가 눈물을 흘릴 때 그의 직접상관인 김부대장이 사내답지 못하다고, 전사로서 낯뜨거운 일이라고 생각할대신 오히려 실컷 울어라고, 그 눈물이야말로 사랑의 극치요 정화라고 생각했을까. 다시 박계주의 전반 이민소설을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처럼 직설적인 서술을 통해 일제를 칭송하거나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한 작품은 없다. 혹자는 《오리온성좌》에서 “국토방위(國土防衛)를 위해서, 그리고 조선의 아들과 딸들의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 밤낮의 분별도 없고, 여름과 겨울의 가림도 없이 적기(敵機)의 내습(來襲)을 감시하는 방공감시초(防空監視哨)의 생활” 운운한것을 친일적인 표현이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분명 아니다. 일제를 위해 전선에 나가 싸운다는것과 적군의 공습 피해를 막기 위해 방공감시를 한다는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이기때문이다. 물론 여러가지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지만 이 경우 일제의 구미에 맞지 않는, 어느 정도 반전의 의식이 표현된 이야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더러 친일적인 분장을 서사적장치로 리용했다고 해도 론리는 통한다.   4. 《향토》와 작가의 정체성인식   박계주는 많은 작품을 이민지체험에서 취재하고있으면서도 정작 이주민의 가장 큰 관심사라 할수 있는 이민과 정착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은것처럼 보인다. 이는 아무래도 작가가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에 림할 때쯤 고국땅에 정착해 살았던것과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최서해처럼 정체성인식이 간도이민자에서 점차 조선인으로 회귀하지는 않고있다. 이는 아마도 박계주가 이민지에서 출생한 이민의 2세라는 사정과도 관련될것이지만 초기작품에 속하는 《인간제물》과 후기작품에 속하는 《향토》를 통해 박계주는 이민자적 정체성인식을 충분히 드러내고있다. 초기작품에 속하는 《인간제물》은 출세작인 《순애보》와 같은해에 발표했다. 작품의 주인공 련희와 남편 철규는 중국에 이민온 지식인이면서 시골에서 농사를 하면서 이주농민들을 돕고자 한다. 그런데 련희가 일 나간 남편의 찬을 함지에 담아이고가는데 지팡주 팡개의 아들 팡룩싼이 불쑥 나타나서 그녀를 겁탈하려 한다. 다행히도 마을청년 김갑수가 나타나서 위기는 면한다. 사실 련희의 남편 임철규는 이태리에서 성악공부를 하고 귀국하여 대학교 교수인 동시에 개인교습까지 하는 인기가수였다. 그런데 누명을 쓰고 학교에 있을수 없게 되자 북간도행을 결심하는데 이때 그를 사모하던 성악교습생 련희가 그를 따라나섬으로써 둘은 북간도에서 살림을 차리게 되였다. 북간도에서도 북간도 문화중심인 룡정이 아니라 시골에 나가서 농사질을 하며 식자반과 문맹퇴치, 청년회조직 등을 운영하여 이주민의 문화사업에 힘쓴다. 그러다가 지난해 전염병이 유행하던 이 마을에 와서 병을 치료해주며 살게 되였던것이다. 갑수가 야욕을 파탄시켰다는 리유로 팡룩싼은 갑수네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공안국에 고소를 하여 갑수네 부자간이 다 구속된다. 그것도 만족되지 않아 팡룩싼은 공안경찰을 꼬여 련희의 남편 철규에게 있지도 않은 도박죄를 씌워 벌금 80원형을 내린다. 이는 사실 팡룩싼이 련희더러 자기돈을 꿔서 남편을 구출하도록 하려는 잔꾀였는데 련희는 오히려 이사오기 전에 살던 곳의 청년회에 편지를 띄워 지원을 요청한다. 한편 공안국에서 유일한 조선인인 송통사가 철규의 벌금을 빨리 내지 않으면 일년반 옥살이를 하게 된다고 련희에게 을러메면서 자기 말을 따라 육욕을 만족시키면 금방 풀려날수도 있다고 얼른다. 그것을 거절하자 며칠동안 나타나서 얼리고 닥치고 하다가 마침내는 술을 먹고 찾아와서 겁탈을 시도하는데 련희는 안간힘으로 항거하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칼로 송통사가 아니라 자기 가슴을 찌른다. 바로 이때 철규와 갑수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갑수는 다짜고짜로 송통사를 쓰러뜨리며 철규 또한 안해의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 송통사를 찔러죽이려는데 안해는 이국땅에까지 와서 동포끼리 싸워서야 되겠냐며 용서해주라고 하고는 곧 죽는다. 그렇게 송통사는 목숨을 살렸으나 련희의 용서때문인지 이튿날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는다. 장례를 치른 철규는 평생을 북간도에서 살며 동포들을 위해 일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다음의 례문은 작품의 취지를 잘 밝혀주고있다.   노래를 다 하고난 철규는 “죽는날까지 이곳에서 내 형제를 위하야 일하자. 제물이 되자. 그리고 이미 제물이 된 연히의 무덤곁에 내 백골을 파묻자!” 이렇게 마음에 맹약하고는 고요히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굳게 잡는다.   작품에서 주인공인 련희와 철규의 불행은 이민자 모두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중국인 지팡주의 행패나 송통사로 대표되는 관청과 지배계층의 압박은 이주민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였고 주인공들의 운명은 이주민이 정착을 위해 치를수밖에 없는 대가라 할수 있다. 이와 같은 기본주제외에도 이 작품에는 두개의 소주제가 뚜렷이 표현된다. 송통사를 용서해주는 주인공 련희의 행위와 이들이 식자반과 문맹퇴치, 청년회조직 등을 운영하여 이주민의 문화사업을 돕고자 했다는 내용이다. 전자의 경우 기독교신자였던 작가의 박애주의와 용서의 사상이 표현된것이라 하겠고 후자는 당대 문학의 한 흐름을 이루었던 농촌계몽운동의 영향을 드러낸것이라 할수 있다. 여하튼 상기의 례문에서 확인되는것처럼 작품에는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이민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는 이주민의 의지 즉 이민자의 정체성인식이 강하게 표현되였다 하겠다. 이 작품에서는 중국에 이민온지 십년 미만의 주인공을 그리면서 북간도에 백골을 묻기를 결심하고 동포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이주 지식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향토》에서는 그보다 썩 많은 세월동안 이민지에서 살던 이주민의 향토의식을 통해 이제 하나의 정체성을 굳혀가고있는 이주민의 삶을 다루었다 할수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어머니의 작은 아들의 시점에서 일인칭으로 씌어졌는데, “내가 출생한지 아홉달만에 아버지는 같은 그 집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었다.”“내가 간도에서 출생해서 간도에서 이십년간이나 성장”했다고 한것으로 보아, 그리고 이를 박계주의 경력에 대입해 보면 이 작품이 자서전적인 작품임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작품 인물의 시각이나 정체성은 상당 정도 작가의 분신이 될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가 태여난지 아홉달만에,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병때문에 잃고 내일 발인하게 될 바로 전날 밤에 화재를 당해 그나마 남았던 집마저 잃고 한지에 나앉은 어머니. 그녀는 그러나 고향에 가서 살라는 시형(“나”의 백부)의 권고도 마다하고 남편이 남긴 빚을 갚고야 고향에 나간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실은 남편이 묻힌 땅을 떠나고싶지 않아서이다. 그후 어머니는 갈보들의 삭빨래, 삭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며 심지어 간도에서도 저 오지의 “동내”라는 마을에 가보았으나 그것은 쌀이 아니라 좁쌀마저 구경해보지 못한, 감자나 심어먹는 화전민마을이였다. 그래서 “네 아비는 글두 알았는데……”라는 백부의 말이 가슴에 맺혀 다시 룡정에 나와 아글타글 일하여 마침내 자기집을 짓고 살게 되였다. 형이 어떻게 되였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나”가 내지(조선)의 모 잡지사에서 근무한다고 한것으로 보아 결국 아들을 공부시켰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런데 어머니 환갑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에 내다가 향토에 묻어주기를 아들에게 청한다. 조상을 잘 모셔야 자식들이 잘된다면서. 그런데 사실 “나”는 룡정에서 태여나서 그런지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의 고향에 내다 모시고싶지 않다. 그래서 고향이나 간도나 다 한지구위에 있다고 어머니를 설득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마음놓고 눈감게 하려면 아버지를 고향에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 자신도 이제 룡정보다는 고향이 더 친근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룡정에 들어서면서 무의식적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향수가 풀릴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고향에 모시려는 뜻을 밝혔을 때 어머니는 생각밖에 이를 반대한다. 이제 어머니도 간도땅에 정이 들었던것이다. 이것이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가 되는데, 아래의 예문은 작가의 정체성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어디까지나 조선의 고향에 대해서는 정을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그 곳에 아버지의 유골을 꼭 파묻어야할 아무 미련이나 애착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간도에서 출생했던 탓으로 내 잠재의식이 간도를 향토로 여기는 때문일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태도가 오늘까지 그렇게 아버지의 유골에 대하여 염려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무관심하게 지나게 했을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머니와 나와 고향을 달리한 무의식중의 암투이기도 하리라.   향수(鄕愁)끝에 맛보는 즐거움이라 할까, 무척 반가운 심회를 제어할 길이 없었다. 그 찰나, 내 감정은 또 분열되기 시작한다. 내 향토가 될수 없다던 용정을 무의식중에 고향으로 여기군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무의식중에 고향으로 느껴지는 곳이 진정한 내 고향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간도땅에 깊은 애착을 느끼셨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이곳은 당신의 땀과 눈물로 물 들여진 혈전장(血戰場)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의 피와 땀이 섞인 땅은 버리고싶지 않은것이다.   이민 2세인 “나”의 경우 출생하여 청소년시절을 보낸 관계로 항상 이민지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그런 생각은 무의식속에까지 배여있다. 게다가 그 고향에는 인간이 흔히 느끼는 “집”의 상징인 어머니가 살고있기때문에 몸은 고국에서 살면서도 항상 귀소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아마 이민 2세의 정체성이 고국에 귀환한 상태에서도 이민자의 그것을 탈출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민 1세인 어머니의 경우는 아들과는 반대인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찬가지 리치다. 례문에서처럼 “자기의 피와 땀이 섞인 땅”이기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에 남편의 유골이 묻혀있기때문에 어머니의 정체성은 이제 “간도인”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문화적인 신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구비할 때 인간의 정체성은 바뀌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수 있다. 박계주는 아마도 자서전적인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1944년이라는 시점에서 보면 박계주가 고국땅에 나간지 12년이 된다. 물론 중국 룡정에 어머니와 형이 있었으므로 그동안 가끔 들어와 만났을것이다. 소설에서도 이점은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인이 되여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민자의 정체성을 느끼는 자신의 고민이 담겨진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말이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박계주가 왜 《순애보》와 같은 통속물로 작가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중국체험의 소설에 보다 애착을 가졌는지, 왜 《처녀지》가 수차 전문 삭제되면서도 발표하고자 했었는지를 짐작할수 있을것 같다. 그는 모국땅에 정착해살면서도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이주민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있었던것이다. 본고에서 박계주를 조선족이민작가로 보고 이민문학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다룬것도 사실은 이점에 주목해서였다. 여기서 다시 《향토》의 한부분을 더 인용하여 이러한 분석과 판단을 재확인해보도록 한다.   그렇게 눈에 쓸쓸하고 마음에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간도지만,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잊을수 없는 곳이오, 그립고 반가운 곳임을 어쩔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 내가 간도에서 출생해서 간도에서 이십년간이나 성장했던 탓이겠지만, 아직도 간도에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고 형님이 계시다는 것도 한 원인이리라. 그보다도 간도는 내 적은 사상의 세계에 젖을 주던 모토(母土)였던 때문일지도 모른다.   5. 극한적인 상황설정과 사투리의 미학   박계주의 소설은 내용적측면에서뿐만아니라 형식적측면에서도 뚜렷한 개성과 특징을 보이고있다. 가장 전형적인것이 극한적인 상황설정과 북도사투리의 적절한 사용이다.   5.1 극한적인 상황설정 초기작품에 해당되는 《인간제물》에서부터 박계주는 소설구성에서 극한적인 상황설정을 중요한 서사적장치로 리용하고있다. 우선 지팡주의 아들 팡룩싼이 주인공인 련희를 간음하려 한다. 첫번째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그 위기상황이 잠시 풀리자 곧바로 두번째 위기가 닥쳐온다. 팡룩싼이 련희의 남편에게 있지도 않은 도박죄를 씌워 갚지도 못할 액수의 벌금을 부과시킨다. 련희더러 팡룩싼의 돈을 꿔서 남편을 구출하도록 함으로써 빚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두번째 위기상황이 해소되기도 전에 결국 극한적인 위기상황을 맞는다. 팡룩싼의 앞잡이요 공안국의 대표자인 송통사가 련희를 간음하려 한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련희가 칼로 자신을 찌름으로써 위기가 해결되지만 작품에서는 이처럼 서로 련결된 위기상황을 극한에까지 이끌어감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하여 독자를 끌고있다. 어찌 보면 이는 대중소설이 상용하는 서사전략이기도 한데 대중소설과는 달리 우연의 구조가 아닌 사실적구조를 유지함으로써 본격소설의 원리를 지키고있다. 즉 그러한 극한적인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악을 악으로써가 아니라 선으로 이긴다는 기독교적인 사상을 설득력있게 표현한것이다. 작가의 뛰여난 소설구성력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육표》에서는 좀더 강력한 극한적상황을 설정하고있다. 주인공이 사람 죽이기를 닭잡듯하는 마적에게 육표로 잡힌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위기상황이 점차 강화되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극한적인 위기상황을 평면적으로 끌고가면서 위기탈출의 가능성을 긴장감의 요소로 삼고있다. 누가 돈으로 육표를 빼내갈 사람도 없는 두사람이 양복을 입었다는 리유때문에 육표로 잡혔다는것 자체가 거의 탈출이 불가능한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어느 기회에 함께 육표로 잡혀온, 주인공 성호와는 원쑤간인 강달귀가 먼저 탈출하면서 성호를 구해주지 않는다. 강달귀의 립장에서는 합리적인 행위방식이다. 그런데 그는 도망치지 못하고 도로 잡혀온다. 이제 강달귀뿐만아니라 성호마저 도망할 희망이 묘망해졌다. 도망의 경력이 있으니 더욱 눈밝혀 직힐것은 당연한 일인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기회가 생긴다. 마적들이 필수로 하는 마약이 떨어진것이다. 마적들은 두명만 남겨두고 마약 탈취하러 나가게 된다. 이번에는 성호가 기회를 타서 자신들을 지키는 마적을 제압하고 도망한다. 물론 성호는 강달귀를 혼자 두지 않고 함께 탈주한다. 문제는 강달귀가 부상을 입은데다 밖에 매달아두어서 기력이 쇠진했다는 점이다. 탈출과정에 또다시 잡혀올 위험이 따르는 소지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동반하면서 결국 생각지 않던 결말이 나온다. 천하의 악한 강달귀가 성호의 구출에 감동하여 악을 버리고 선에로 돌아오면서 죽은것이다. 순수 대중소설의 립장에서 보면 이 작품의 위기상황과 그 해결의 과정은 조금 허술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악마같은 마적에게 육표로 잡힌 두사람이 각각 한번씩 탈출이 가능하다는것은 어느 정도 우연의 소지가 있는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이것을 흠잡지 않는것은 또다른 위기설정때문이다. 즉 선의 대표자인 성호와 악의 대표자인 강달귀가 작품 초반부터 갈등을 빚고 대결하면서 또다른 위기상황을 이어간것이다. 결국 두가지 위기가 겹쳐 전개되는 형국인데 진짜 위기의 해결은 이 두사람사이에서 발생한 선과 악의 대결에서 악이 선에 자리를 내준데서 이루어진것이다. 특히 강달귀가 죽음을 앞두고 악에서 탈출함으로써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를 해명해주고있다. 《사형수》의 극한적 대결상황도 《육표》와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있다. 등장인물과 사형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설정하여놓고 그 위기상황에서 인물들이 보여준 천태만상을 전개시킨것이다. 주인공들의 립장에서 보면 극형을 받고 실제 집행하기까지는 짧으나마 생의 시간이 존재하고 또 여전히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기때문에 긴장감은 끝까지 유지된다. 그 긴장감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준 심리와 행위는 결국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된것이여서 독자의 공명을 동반한다. 거기에 마적을 사형에 언도한 륙군의 마적보다 더한 악행, 사형수의 시체에서 뭔가 리익을 얻으려고 싸우는 거지들의 행위가 곁들여지면서 인간의 본질들이 적라라하게 표현됨으로써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있다. 상기 세 작품외에도 《유방》에서의 귀머거리, 눈봉사의 인물과 모자의 확인이라는 극한적인 상황, 《모토》에서의 마약중독으로 인한 죽음의 림박과 모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극한상황을 포함하여 “극한적인 상황설정”은 박계주소설의 중요한 서사적특징이 되고있다. 요컨대 박계주는 대중소설의 서사전략을 본격소설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작가라 하겠다. 이점은 소설미학적인 측면에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5.2 사투리의 미학 박계주는 함경도사투리를 소설미학적으로 적절히 리용한 최초의 작가라 할수 있다. 이점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른 사투리를 리용한 작가들은 더러 있었지만 박계주처럼 함경도사투리를 대량, 그리고 적절히 소설에 리용한 경우는 없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언어미학의 한부분으로서 사투리의 적절한 사용은 인물의 개성과 지역색을 살리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여름이 돼서 그렇지비, 동삼(겨울)만 돼두 될뻔이나 한 노릇이오?” 하여서, 곰이나 여우를 놓쳐버렸을 때마다 뇌이는 푸념이 돼버렸던것이다. “제엔장, 눈만 오문야 내 그눔으 잡아놓쟁이능가 어디 두고보라안데, 그눔 두셋쯤만 잡는대두 괴긴 그저 먹구 능담(웅담)은 능담대루 팔아서 이눔의 짓(함지 만드는 일)으 하쟁이쿠두 벰베이 살아갈께 앙이오?” 함지를 깎으면서 그는 앞에 앉아 담배를 빠는 이대동이라는 곁집 령감더러 노상 장담이였다. 이럴 때마다 이대동령감은, “그렇쟁이쿠, 굄이(곰)두 굄이지만 그눔으 여끼(여우)만 해두 어디메오. 이글년에는 여끄가쥑이두 값이 무섭게 올랐답더구만.” 하고, 맞받아 장단질이다.   “아즈망이, 그지간에 탈이 없이들 잘 지냈음둥?”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으나 가까이 이르는것을 보고서야, “앙이, 난 뉘기라구. 오느라구 되우 욕으 봤겠으꼬마.” 산가의 아낙네는 사뭇 반가워하며, 가치 온 다른 두 손님(그중의 한 사람은 녀인이다)과도 인사를 건넨다. 두사람 다 전에 오지 않던분들이다. “욕이다뿐이갰오? 알구 한번이지비 이눔으데루 뉘귀 오갰음둥? 그런데 쥔 령감두 패난하오?” 그는 히잉 두손가락으로 코를 풀어서 보기 좋게 땅위에 멧다때린다. “야앙, 우린 별탈 없으꼬마.” 하고, 대답하는 산가의 녀인은, 발귀(썰매)에서 물건을 풀어내리려는 손님더러, “건 내중에 풀기루 하구 날래 방으루 들어갑지.” 한다. “야앙, 좋스꼬마.” “앙이, 들어가쟌대두…….”   《처녀지》에서 임의로 따온 두단락이다. 함경도사투리의 기본적인 특징은 물론 산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이 살아난다. 작품에서는 또한 “시걱(끼니)”, “에미내(녀성, 안해”, “놀가지(노루)”, “아슴챙이꼬마(고맙습니다)”, “웃티(옷)”, “되비(도로)”, “불술기(기차)”, “쌔시개(정신병자)”, “동삼(겨울)”, “발귀(썰매)”, “쾌마우재(톱)” 등 함경도특유의 어휘나 표현들을 대량 리용하고있고 이를 표준어로 병기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뿐만아니라 《딸따리족》에서도 함경도사투리는 강동령감이라는 주인공의 개성적인 형상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리용되고있다. 언어적표현의 특징과 관련하여 함경도사투리의 적절한 리용외에 또 한가지 짚고넘어가야 할것이 있다. 바로 한어원음의 적절한 인용이다. 《육표》와 《사형수》에서 특히 많이 볼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하여 이민지의 언어환경을 생동감있게 제시해준 동시에 이민족인 한족에 대한 이주민의 느낌마저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형상성을 크게 향상시켜준다.   “어이, 비에차울라 렌쟈 쑤에이쟈오니 저거 투재즈!”(아 웨 이래? 남 잠 못자게시리, 응? 이 예병하다가 열뻔 고꾸라져도 씨원ㅎ쟎을 녀석 같으니란!)   “콰이 쉬죠바. 쩜마 저양 지지거야?”(어서들 자. 웨 이리 짖거리는 거야!)   “전 타마이나가비! 쎈재 나우란디 부쓰 저거 우즈마?”(제에길 할 자식들! 방금 떠버리던 방이 이 방이 안야?)   “니 쩐 부숴마? 왕바당 차우디!”(아 그래 안댈테야? 이 빌어 먹다 뒈질 자식들아!)   《사형수》에서 임의로 따온것인데 한어의 발음이나 우리말 번역 모두에 일부 정확하지 못한 부분도 있으나 그것마저도 이주민의 한어감각의 실상이여서 생동감이 넘친다. 《육표》에서는 한어대화의 리용은 물론 마적들이 부르는 노래마저 인용하여 작가의 중국문화에 대한 깊은 리해를 보여주기도 한다.   上等人們該找錢(特權階級에게선 돈이나 걷우자.) 中等人們莫管閒(中産階級에게는 상관 말자.) 下等人們快來吧(無産大衆은 어서 오라.) 跟我上山來過年(우리 함께 산에서 즐겨 지내자.)   함경도사투리와 한어원어의 적절한 리용은 박계주소설의 중요한 특징이여서 소설미학의 시각에서뿐만아니라 어학적인 측면에서도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6. 마무리   박계주는 룡정출신의 이민 2세 작가이다. 그는 대중소설작가였을뿐만아니라 본격소설분야에서도 뚜렷한 업적을 쌓은 조선족이민작가였다. 그는 중국적 특징이 뚜렷한 소재를 선택하여 식민지하 현대문명을 비판하였고 동시에 인간의 악과 선을 대결시켜 기독교적인 박애주의사상을 드러냈다. 《유방》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식민지지식인의 문화적혼종성을 로출하기도 하였으나 《인간제물》, 《향토》 등 작품에서는 이민자의 정체성인식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조선족이민작가임을 확인할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형식의 탐구에서도 박계주는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극한적인 상황설정을 통해 소설의 긴장감을 확보하면서 대중소설의 우연적 구조의 약점을 극복였으며 함경도사투리와 한어원어를 적절히 리용하여 작품의 표현력을 극대화하였다. 이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작가들의 귀감이 될만하다.
10    박선석의 장편소설 <압록강>의 의미와 가치 댓글:  조회:556  추천:0  2020-05-27
박선석의 장편소설 《압록강》의 의미와 가치  장춘식 《장백산》 2011년 1호부터 련재하기 시작하여 2015년 5호까지 총 29회에 걸쳐 련재된 박선석의 신작 장편소설 《압록강》은 박선석의 가족사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먼저 련재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편집자의 말에서도 이런 상황은 확인된다.   가슴속에 태산처럼 모이고 쌓인 울분을 토로하기 위하여 다시 펜을 든 작가! 증조할아버지는 왜놈들에게 맞아죽고… 독립군에 참가하여 일본놈과 싸우던 할아버지는 민생단사건으로 자기 동료들에게 총살당하고… 아버지는 민주련맹에 들어 공산당을 위해 일하다가 국민당의 사형장에까지 끌려나가고 죽음은 면했지만 한평생 부농모자를 쓰고 살아야 했고… 외삼촌은 국민당에 총살당하고… 작가는 나서부터 출생죄를 짓고 35세까지 전반생을 천대꾸러기로… 작가의 5대 수난사를 다룬 눈물 없이는 읽을수가 없는 또 하나의 대하소설— 《압록강》이 독자들앞에 펼쳐집니다. , 2011년 1기.(련재1)   이미 출간된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재해》와 《쓴웃음》도 그러하니 아마 이 작품으로 《재해》 이전까지의 가족사를 련결시키고자 한것인지도 모르겠다. 본고에서는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서 작품의 의미와 문학사적인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인간의 행과 불행의 서사   소설의 1장부터 3장까지는 리경식일가의 중국 정착과정이 주로 리경식의 어머니인 오확실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러다가 제4장인 “데릴사위”부터는 점차 주인공이 오확실에서 아들인 리경식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리경식의 시점에서 주로 리경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의 운명사가 제9장까지의 기본 스토리가 된다. 그런데 주인공이 조선인이주민이라는 사실을 떠나 이들 주인공 모자는 인간적으로 행과 불행이 교차되고 뒤바뀌는 운명을 살아간다. 먼저 소설 앞부분의 주인공인 오확실은 어려서는 선비가정에서 태여나 곱게 자라다가 18세에 안성에서 장사를 하는 리씨가문의 3대 외독자인 리정수에게 시집을 왔는데 “을사조약”이 체결되여 일제의 세력이 조선땅에 뻗치면서 시집의 가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그후 서울에 올라가 상점을 차렸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기미년 1월 21일 밤 고종황제의 급사를 계기로 일어난 “3.1”봉기에 원한이 쌓여있던 시아버지 리창대는 시위대에 앞장섰다가 왜놈에게 목숨을 잃었고 시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쓰러진것이 결국 그해 여름에 사망한다. 이것이 원인이 되여 리정수는 비밀독립운동단체에 가담했고 신변이 위태해지자 홍범도장군을 찾아 중국 동북땅에 들어가는데 가면서 안해인 오확실에게 겨울이 되여 압록강이 얼게 되면 먼저 중국에 건너간 장인을 찾아 중국의 대전자라는 곳에 가도록 했다. 이러한 오확실일가의 운명은 시작단계에서 뚜렷한 하강구조를 이룬다. 오확실의 친정도 그렇거니와 장사를 하는 시집은 더구나 부자로 살아왔지만 일제세력의 확장으로 인한 매국적인 “을사조약”을 계기로 대한제국은 반식민지가 되며 다시 한일합방으로 조선은 일제의 완전 식민지로 전락하는데 그 영향은 이들 행복하던 가정에 불행의 단초를 제공했던것이다. 물론 이는 이들 한 가정의 일만은 아니며 따라서 상당정도 전형성을 띤다 하겠다. 게다가 시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의 지하 항일투쟁 참여를 계기로 부득이 이민의 길에 나서는 운명에 처한다. 여기까지가 하강구조의 최저점이 되겠다. 물론 이 최저점을 금방 넘지는 못한다.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이민과정은 고난의 련속이였고 처음 도착한 대전자에서는 악패지주의 등살에 못이겨 다시 소전자에 옮겨가는 등 한동안의 실패를 거쳐서야 겨우 이민지에 안착하기에 이르는데 이때부터 다시 상승의 구조로 주인공의 운명은 바뀌여간다. 살림은 안정되고 아들 경식이는 글공부를 하며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결혼까지 하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그 상승의 구조는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경식이의 페병으로 위기를 맞으며 어머니의 극성스런 노력으로 완쾌되면서 다시 상승곡선을 이어간다. 착한 지주 왕보살의 도움과 또 같은 운명을 살아가는 조선이주민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운명의 전환이다. 그러한 상승의 구조는 아들 경식이의 노력으로 소지주가 되여 독립군에 군자금을 지원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수 있을 정도에 이른다. 성공한 이주민의 모델이라 할수 있을 인생 대전환을 이룬것이다. 그러나 장인과 마찬가지로 독립군을 지원하는 김경원에게 장사밑천으로 변돈을 꿔주면서 시작된 위기는 마을의 학교건설에 대한 지원과 마적들처럼 인질납치까지 동원한 악한 지주의 음모에 걸려 다시 일락천장하여 하강곡선을 긋는다. 빚때문에 땅과 소를 팔고 다시 소작농의 신세가 되여버리는것이다. 이러한 주인공 운명의 곡선은 일관되게 두가지 내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하나는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이고 다른 하나는 착한 인간성이다. 첫번째 요인으로 하여 주인공은 큰 고생 없이 평범한 삶을 살수 있었음에도, 심지어 부자가 될수 있었을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고생과 위험을 찾아하며 때로는 개인의 희생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하강운명의 불가피성이라 할수 있다. 여기에는 독립운동에 대한, 혹은 항일저항에 몸바친 투사들에 대한 작가의 경의의 감정이 작용하였을수도 있고 이를 후대에 전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수도 있을것이다. 더구나 항일투쟁에 이바지한 이주민들의 숨은 역할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주민의 후예로서 작가의 사명의식도 한몫 했을지 모른다. 두번째 요인은 비록 하강운명의 요인이기는 하나 동시에 거기에는 재기의 가능성이 동반된다. 착하게 살고 남을 도우면서 살기에 남의 도움을 받을수 있는 여건이 항상 주어져있기때문이다. 이러한 하강과 상승이 교차되고 엇바뀌는 주인공의 운명사는 인간운명의 보편적인 합법칙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사적으로는 작품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요컨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하강→상승→재하강→재상승(현재진형이기에 앞으로 이런 굴곡선은 더 많이 출현할 수도 있다)의 굴곡적인 인물의 운명구조와 작품의 서사구조는 이 소설에서 서사의 긴장감과 독자의 공명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2.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의 갈등 및 공생공존   조선이주민이 중국땅에 이민을 들어와 정착했던 곳은 대체로 동북의 신개간지이다. 청왕조가 만족의 성산으로 여겨 봉금했던 장백산지역 즉 력사적으로 우리에게 북간도, 서간도로 불려진 곳이다. 그래서 조선인이 이주해올 때는 그곳에 먼저 이주한 한족인들, 특히 산동반도쪽에서 이민을 온 한족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있었던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조선인이 이곳에 이주할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먼저 들어온 한족인들과 관련을 맺을수밖에 없었다. 비록 한족인들도 이주민들이지만 그들은 먼저 들어왔고 또 자국땅에서의 이주이지만 조선인들은 타국땅에로의 이주이기에 그 처지는 같을 수가 없는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일가의 이민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에서 살길이 없어 중국 압록강가의 대전자라는 곳에 이주하는데 압록강을 건너자 만난 첫 인가가 바로 중국인의 외딴 농가이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도 바로 중국인이였다. 비록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만난 중국인은 착한 농민들이였다. 벙어리 안해에 철모르는 아이들과 말할줄은 알지만 중국말이여서 역시 말이 통할수가 없었지만 이들은 다 굶어죽게 된 일가 세사람을 강낭떡에 장아찌나마 배불리 먹여주고도 돈 한푼 받지 않으려 하며 감사의 마음에서 억지로 밀어주는 은가락지를 골무인줄 알고 받았다가는 썩 나중에야 그것이 값나가는 은가락지인줄을 알자 일부러 먼곳까지 찾아와 되돌려주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길을 걸어 이국땅에 온 길손이 또 길을 잃을까봐 썰매로 목적지 근처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조선에 있을 때는 마적이 득실거리는 공포의 땅으로 알고있던 중국땅에 왜 위기를 맞은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해 정착할 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국인이라고 다 착하고 인정이 넘치는것은 아니다. 대전자의 지주 장청산, 그의 마름이자 처남인 강부귀 강몽둥이가 그렇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착한 중국인 농부(나중에야 나오지만 그는 산동 량산박의 영웅인 무송의 후예로 성은 무씨이고 어려서 무예를 익혀 무송의 후예답게 무예도 뛰어나다)외에는 이 장청산과 착한 지주 왕보살 두 지주가 중국인으로서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후 주인공 경식이를 파산케 하는 고전자 아래마을의 왕지주와 그의 망나니 처남도 악한 지주의 이미지로 등장하며 마지막 부분에서 경식이가 다 죽게 된 중국인 류랑자를 살려주는데 앞으로 그 또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먼저 악한 지주 장청산과 착한 지주 왕보살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두 지주는 아버지대에 모두 동냥으로 산동에서 동북에까지 전전하다가 이곳 대전자, 소전자에서 농사를 짓고 땅을 불려 지주가 되었는데 이들 세대의 두 중국인은 완전히 다른 지주가 되여있었다. 장청산은 악하기 그지가 없어 가난한 작인들의 피땀을 빨아내기에 혈안이 되어 처남인 강몽둥이를 내세워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은 다 한다. 주인공인 오확실이가 처음 대전자에 찾아왔을 때 원래 목적지로 삼고 찾아왔던 친정아버지가 그들이 도착하기 얼마전에 야반도주를 한것도 이 장청산의 억압과 착취에 견디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오확실일가 세식구가 마을의 좌장격인 김령감네 수양딸이 되면서 그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림을 차렸지만 결국 이 장청산과 강몽둥이의 등살에 견디지 못하여 소전자에 옮겨가게 된다. 이때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의 관계는 지주와 작인의 관계였고 이주민이 중국인에게 억압받고 무시당한것은 이민이기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였기때문이다. 아래마을 소전자의 왕보살 왕지주가 이들 세 식구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점은 다른 방식으로 확인된다. 먼저 오확실일가가 소전자에 이사를 오게 되자 왕보살은 왕선생이 혼자 살던 집을 비워주며 일거리도 마련해준다. 마침 왕보살의 안해가 해산하게 되여 도움이 필요하여 그 일을 시킨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들 경식이는 자기 딸 수란이와 함께 왕선생에게서 글공부를 하도록 해주며 여러가지로 도움을 준다. 한편, 대전자에 살던 김령감 등이 소전자의 습지를 논으로 개간하려는 의사를 비쳤을 때도 왕보살은 흔쾌히 응낙하고 우월한 소작조건으로 전격 지지해줌으로써 장청산의 등살에 어렵게 살아가던 대전자의 조선인들을 전부 받아들여 안착하게 해준다. 그는 소작인들이 빚을 져도 빚독촉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절이 되면 돼지를 잡아 고기를 나눠주기까지 한다. 경식이네에 대한 왕보살의 관심은 더구나 극진했다. 물론 왕보살의 안해가 해산했을 때 경식이 어머니가 극진히 도와준것과도 관련되고 또 왕보살이 “후즈(鬍子)” 즉 마적들에게 랍치되었을 때 경식이가 자신이 대신 “육표”로 있으면서 왕보살을 구해준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왕보살의 보살과 같은 인간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식이네를 믿어주고 경제적으로 번마다 도움을 주는것은 물론 수란이와의 혼사를 거절했을 때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아버지인 왕보살뿐만 아니라 딸인 수란이도 경식이네에 대해 극진히 보살피며 특히 그녀는 죽으면서까지 경식에게 소 살 돈을 남겨주기도 한다. 이들 두 지주의 조선인에 대한 대조적인 태도는 계급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차원에서 중국인과 조선인의 관계가 형성됐음을 알수 있게 해준다. 전날 장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한바 있는 올빼미눈의 “후즈”가 착한 마적이 되여 항일에 나서게 된다는 사실도 작가의 이러한 인간성의 인식에서 비롯되였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경식이가 다 얼어죽게 된 중국인 동냥군을 구원해주는 사실도 장인이 전날 올빼미눈의 중국인을 구해준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적으로 덕을 쌓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 즉 인간성 대 인간성의 관계일뿐 민족과 나라가 달랐던 두 인간 공동체의 대결관계는 아니였다 하겠다. 다만 왕보살의 딸 수란이와 경식이의 혼사 실패는 이민족간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기인된것이 분명하다. 경식이와 수란이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수란이의 림종을 페병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체온으로 지켜주며 그녀의 유언에 따라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땅에 묻지 않고 나중에 부모가 죽은후에야 매장하는 중국인들의 재래 풍속을 깨고 원하던 바위밑에 묻어주는 경식이의 행위로, 그리고 사랑하는 경식에게 소를 사서 농사를 지으라며 돈을 남겨주는 수란이의 행위를 통해 특별히 돋우어 묘사한 작가의 서사적 장치 또한 이러한 문화적차이가 빚어낸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것이다. 이런 문화적인 간격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있고 오늘날까지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생사를 넘나드는 애절한 사랑의 비극은 이어지고있다. 물론 도시화가 빨리 진전되면서 한족과 조선족의 통혼은 점차 보편화되는 추세를 보이지만 문화적인 정체성 측면에서는 아직도 그것이 무난히 인정되는 상황은 아닌것이다. 이는 또한 민족적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되기때문에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하는한 완전히 해결될 문제는 아닐것이라 보여지기도 한다. 요컨대 이 소설에서 중국인과 조선이주민은 적대적인 관계보다는 공생공존의 평화로운 관계이고 이는 사실 조선이주민이 현재까지 대를 이으며 중국땅에서 무난하게 생존해있을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의 이러한 관계설정은 합리적이라 하겠다.   3. 부자의 선과 악 그리고 그 운명   앞에서도 론의된바와 같이 이 소설에서 부자는 착한 부자와 악한 부자로 량분된다. 장청산과 그의 마름 강부귀 그리고 고전자 아래마을의 왕지주와 그의 망나니 처남은 악한 지주의 대표라 하겠고 왕보살 왕지주네 일가는 보기 드문 착한 부자에 속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주인공 경식이가 착한 부자에서 다시 소작농으로 되돌아가는 사실을 통해 왜 착한 부자가 존재하기 어려운지를 잘 드러낸다. 왕보살 왕지주 역시 땅은 적잖게 가지고 있으나 성품이 착하고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기에 재부를 모으지 못하며 그나마 땅을 계속 보유할 수 있은것도 왕청산의 아버지와 왕보살 아버지의 혈연적인 관계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장청산은 전형적인 악패지주이다. 오확실의 친정아버지인 오지수는 생활에 보태려고 옥노를 놓아 사냥을 하는데 거기에 강청산의 개가 걸려 죽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장청산과 그의 마름 강부귀는 벌금으로 50원을 내라 한다. 소 한마리 값에 해당되는, 소작농으로서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였고 그래서 오지수는 하는수 없이 야반도주를 해버린다. 장청산의 앞잡이격인 강몽둥이 강부귀는 더구나 “대호”라는 개를 추겨 경식의 녀동생인 경옥이를 물게 하며 자기네 개가 집에 오지 않자 무조건 꿩옥노를 놓는 경식에게 죄를 씌워 억지로 벌금을 안기려는 간악한 마름이다. 이들 간악한 지주들은 이처럼 여러가지로 악한 꾀를 내여 소작인들에게 빚을 지워 얽매여놓고는 이를 근거로 무상으로 일을 시키며 온갖 착취를 다한다. 심지어 아래마을 소전자에서 조선인들이 왕보살의 도움으로 진펄땅에 논을 풀어 논농사를 짓게 되자 더 이상 조선인들을 착취할 방법이 없게 된 장청산은 시내물 상류에 있다는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논에 반드시 필요한 물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아놓기까지 한다. 이때문에 논농사를 하던 조선인들은 아무리 우물을 파서 물을 대려고 애썼지만 수확에 큰 타격을 입게 되는것이다. 악한 지주로 또 고산자의 아래마을 왕지주와 그의 망나니 처남이 있는데 이들 또한 장청산이나 강몽둥이에 전혀 못지 않다. 우선 이들은 지주가 되기까지의 경력 자체가 악질적이다. 강도질로 돈을 모아 땅을 사고 그래서 지주가 되였던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경식이가 땅을 사서 자작농사를 하는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며 마적들의 방법인 인질 랍치를 통해 몸값을 받고 그 몸값을 내기 위해 변돈을 쓰게 함으로써 결국 땅을 탈취하는 목적을 이루기도 한다. 소전자의 지주 왕보살은 이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인간성의 소유자이다. 불교를 믿고 마음이 후덕하여 왕보살이라 불리기도 하였거니와 그는 자기집 머슴인 마씨에게 돈을 주어 장가를 들게 할뿐만아니라 혼자 사는 왕선생에게도 안해를 얻어주며 이들 모두에게 식구들처럼 살뜰하게 대해준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군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며 얼마 안되는 돈을 가난구제와 이웃을 도와주는데 서슴치 않고 쓴다. 경식이를 공부시키고 여러모로 도와주며 심지어 경식이가 땅을 사 지주가 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이런 선행은 조선이주민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인 작인들에 대해서도 똑 같다. 경식이의 장인인 정장군과 경식이 본인도 착한 부자라 할수 있다. 정장군은 자기땅이 없어 지주라고 할수는 없으나 장사를 잘 하여 항상 롱안에 돈뭉치가 있는 부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은 다른 소작인들이나 마찬가지로 어렵게 살아간다. 그 돈은 모두가 항일독립군의 군자금으로 사용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기때문이다. 경식이 또한 장인과 마찬가지로 군자금을 대고 이웃을 도와주지만 그는 한때나마 땅을 사서 지주가 된 경력을 가지고있다. 우리는 고대 중세소설들에서 권선징악, 고진감래의 스토리가 기본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소설들에서는 악한자는 반드시 악의 대가를 치르고 착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리치가 통한다. 그러나 박선석의 이 소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장청산이 조선인들의 농사를 망쳐놓기 위해 물을 막았다가 장마에 자기밭마저 날려보내고 그래서 소작농들이 다 도망친것이 어쩌면 악의 대가를 치른것이라 할수도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파산하지는 않는다. 고전자 아래마을의 왕지주는 더구나 강도질하여 사람을 죽여 치부했음에도 전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잘산다. 그에 비해 소전자의 지주 왕보살은 자신이 몸이 허약할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잘 성장하지 못하며 곱게 키운 딸마저 페병에 걸려 죽고만다. 경식의 파산은 더구나 그렇다. 나라를 위하는 일, 이웃을 돕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항상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지만 결국 파산의 경지에 이르는것이다. 이에서 우리는 진짜 부자가 되는 길은 악해지는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부를 끌어모으는것뿐이라는 작가의 재부에 대한 인식을 짐작해볼수 있다. 사실 근대사회의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간의 대결 혹은 갈등은 이런 원인에서 비롯된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왕보살이나 정장군, 리경식 등 착한 부자들의 재부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또한 재부란 꼭 필요한 량만 가지면 되며 그것이 인간이 행복해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작가의 삶의 지혜도 동시에 파악할수 있다. 재부에 대한 무한대 수요를 창출하는 현대사회에서 작가의 이와 같은 소박한 재부관은 오히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자연의 순리에 가깝다 하겠다. 재부를 창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부작용, 가령 환경오염이나 온실효과와 이상기후 현상 등과 인간의 온정이 상실되는 현대사회의 페단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4. 항왜복국(抗倭復國)의 념원과 그 실천   이 소설의 중요한 운명적인 서사구조속에는 항상 항왜복국의 념원과 그 실천이라는 주제의식이 깔려있다. 주인공 오확실이가 이민을 할수밖에 없게 된것도 남편의 항일투쟁 투신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거니와 이들 일가의 운명은 경식이가 정씨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항일투쟁에 군자금을 대주는 숨은 항일투사와도 관련을 맺는다. 이를 통해 홍범도나 김좌진의 대한독립군의 활동과 그 뒤를 이은 량세봉장군의 항일투쟁이 작품속에 등장하며 다시 주인공 아버지의 동지였던 김씨를 통해 동만지구의 공산당 항일투쟁도 곁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주인공 경식이마저 항일에 협조하게 된다. 항왜복국의 념원 혹은 의지는 우선 주인공일가의 3대에 걸친 항일의 투쟁경력으로 표현된다. 부자였던 할아버지는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반식민지화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져 서울에 올라오며 거기서 재기를 노리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자 그러한 파산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일제의 침략에 반항하여 3.1운동에 적극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것이 원인이 되여 주인공 일가의 제2세대인 아버지는 더구나 적극적으로 폭력항일에 나서며 결국 항일독립군을 찾아 중국땅에 들어가게 된다. 간신히 공산당항일군에 가담했으나 아버지는 결국 민생단사건에 련루되여 죽게 된다. 제3세대인 경식이대에 이르러서는 직접적인 항일투쟁에는 나서지 않지만 독립군을 지원하는 장인의 영향으로 돈을 벌어 군자금을 보내는 간접적인 항일에 적극 나서게 되는데 나중에야 부친의 항일투쟁경력을 알게 된 그는 더욱 항일투쟁에 나설것임을 예견하기 어렵지 않다. 비록 소설이 아직도 련재중이기에 단정할수는 없지만 파산을 감수하면서까지 군자금을 내고 학교설립을 지원하며 또 항일에 나섰던 김경원의 일가를 도와주는 경식의 행위는 이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암시해주고있는것이다. 특히 장인이 량세봉장군의 위패를 모셔 제를 올리며 량세봉장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에 사위인 경식이를 데리고가서 량세봉장군의 위인과 항일의지를 전해주는 행위는 주인공의 앞으로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암시에 다름아니다. 또한 조선인의 양자로 성장한 경력을 가진 마적의 두번째 두목이나 장인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바 있는 올빼미눈의 마적두목이 경식이의 권고로 항일투쟁에 나선다는 사실도 이주민의 항왜복국의 념원과 의지를 반영한것이라 하겠다. 당시 수많은 마적무리들중에서 실제로 항일에 나섰던 마적들이 적지 않았던것 또한 사실이지만 소설에 나오는 두 마적두목이 모두 조선인의 도움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경력을 가지고있고 특히 항일을 위해 돈을 벌던 장인의 구원을 받은것과 항일독립군의 자식이요 항일을 돕는 정장군의 사위인 경식이의 권고로 항일투쟁에 참여하게 되였다는 사실은 항일과 조선이주민의 관련성을 강조한것임을 알수 있다. 그외에도 소설에서는 대한독립군의 홍범도장군과 김좌진장군의 업적을 여러곳에서 언급하고있고 특히 정장군이라는 인물을 통해 량세봉장군이라는 실재했던 인물을 소설에 끌어들임으로써 조선인의 항일투쟁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국의 항일투쟁에 조선인들도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후세에 알리려는 작가의식의 결실이라 하겠다. 더 중요한것은 소설 전반을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항일투쟁과 밀접히 관련시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목적의식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 광복직후의 정치사회적혼란과 토지개혁의 문제점 제시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함에 따라 이주민들이 고대하던 광복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반일투쟁에 나서면서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면 돌아온다던 주인공 경식의 아버지 항일투사 리정수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것도 일제와의 전투에서가 아니라 억울하게도 민생단사건에 련루되여 자기 사람들에 의해 처형되였던것이다. 이것은 물론 광복이전의 상황이다. 광복직후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가장 먼저 등장한것이 광복직후 고산자라는 동북의 변방지역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쟁탈전이다. 부자들(왕지주)은 국민당이 이긴다는 판단하에 고산자의 조선인농민들을 더 악랄하게 착취하고 가난한 농민들은 적극 민주련맹에 들어 활동하거나 직접 해방군에 들어가 국민당과 싸우는데 주인공인 경식은 민주련맹에 줄을 선 혐의로 국민당군의 사형장에까지 끌려나갔다가 민주련맹쪽에 줄을 선 류지주의 도움으로 요행 살아난다. 다음, 경식의 작은처남은 해방군에 들어가 싸우다가 위병때문에 치료 겸 모병공작을 나온 사이 국민당쪽에 줄을 선 자의 밀고로 붙잡혀 사형당한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쟁탈전으로 희생되였거나 수난을 겪은 수많은 조선이주민들의 운명을 축소판으로 보여준 경우가 되겠다. 실제로도 다수의 경우 조선인 이주민들은 공산당편에 섰던바 이는 광복후 중국에 남은 이주민들 다수가 가난한 농민들이고 공산당의 리념이나 주장이 이들의 생존리익에 부합하였기때문이다. 다행히도 동북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쟁탈전은 긴 시간을 끌지 않고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토지개혁과 이에 동반된 지주부농의 청산이다. 토지개혁의 핵심은 지주나 부농의 땅을 몰수하여 땅이 없는 빈하중농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위인데, 력사적으로 동북지역은 비교적 일찍 해방되였기에 토지개혁도 다른 지역에 비해 한발 앞섰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실시하는 제도이다보니 정책적으로나 구체적인 실시과정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소설에 제시된 토지개혁의 양상에서 우리는 이점을 확인할수 있다. 국민당군이 쫓겨가고 공산당군이 오면서 곧 토지개혁이 시작되는데 소전자에서는 토지개혁공작대가 와서 지주의 재산을 청산하고 투쟁하려 했으나 지주이기는 하지만 마음 좋은 왕보살이 가지고있던 전 재산을 내놓은데다 마을사람들에게도 쌓인 원한이 없어 투쟁은 대전자의 왕패왕과 강몽둥이에 집중되였다. 둘은 숨긴 재산을 가지고 도망치려다가 붙잡혀 오히려 더 민분을 샀고 결국 총살당하며 그 자식들과 가족 모두 분노한 군중에게 맞아죽는다. 고산자마을에서는 왕지주가 처남을 시켜 후즈 즉 비적노릇을 한 죄까지 불지 않을수 없었고 위만경찰을 했던 한청하도 잡혀나와 결국 처형되였다. 거기까지는 청산대상이 청산된것이 분명하고 비록 가족마저 마구 때려죽인 점은 재고의 여지가 있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후부터는 지주청산이 개인적인 보복으로 변질되여 마을에서 존경받던 김시영령감이 신재한에게 몽둥이로 맞아죽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한편, 고산자의 조선인마을에는 지주로 성분을 획분할만한 부자가 없으니 송공작원이 나타나 없는 지주부농을 억지로 만들어낸다. 겨우 들춰낸것이 10년전 변돈을 얻어 땅을 산 주인공 리경식(그는 독립군의 군자금을 낸바 있었다)인데 그래서 원래 지주로 정해진것을 송공작원이 선심을 쓴다며 부농으로 낮춰주고 대신 리기두라고 하는, 할아버지때 땅 대여섯쌍을 샀다가 아버지가 병치료에 쓰노라 다 팔아버리고 이제 겨우 움집에서 사는 빈털털이를 지주로 정했다. 토지개혁이 상당정도 정책적으로 빗나갔음을 확인할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작품에서는 “낡은 사회를 뒤엎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지개혁은 성적도 크지만 억울한 일도 없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이듬해(1948년)초에 성위에서 새로운 지시가 하달되여서야 근절되였다.”고 정책수행자의 개인적인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일시적인 문제점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립장에서는 그 일시적인 오류때문에 반평생의 불우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주인공 김경식일가의 운명이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네 말도 옳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선사람이 아니냐? 제 나라로 돌아가야지.” “그게 무슨 관계예요? 아무데서나 정들면 고향이고 잘살면 그만이지요. 그새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땅을 개간하고 한전을 논으로 개답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았나요? 어디 그뿐인가요? 중국사람들과 함께 피를 흘리면서 왜놈들을 몰아냈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정든 땅과 정든 사람들을 버리고 가겠어요? 제발 돌아가지 말아요. 대신 공산당을 따라 혁명하자요.”(경식이와 처남 창수의 대화)   최영년이 눈물만 흘리는 경식이를 보고 재촉했다. 그제야 일어서는 경식이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처남이 동경하던 사회, 빈부의 차이고 없고 모두 일하고 모두 잘 먹고 잘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공산당을 따르리라고.   앞의 인용문은 주인공 경식이가 중국에 남아 나중에 조선족이 된 경위를 제시하고있다. 물론 광복이 되면서 조선에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남은 조선인들, 나중에 조선족이 된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에 나가봐야 집도 없고 땅도 없으며 의지할데도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고 다른 한가지 경우는 공산당의 제도에 대한 선망과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공산당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기대감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었다. 주인공 리경식은 비록 서울에 나가면 그나마 조금은 의지할데도 있었으나 결국 중국에 남게 되는데, 여기에는 공산당 사람인 처남의 설득때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산당의 제도에 대한 기대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겠다. 민주련맹에 들어 공산당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된것에서 이점을 확인할수 있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주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리경식은 공산당의 주의와 제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여 중국에 남았고 결국 나중에 조선족이 된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이 시작되면서 리경식은 억울하게도 청산대상이 되고만다. 당의 하급 공작원의 일시적인 오류 혹은 정책집행자의 지나친 “적극성” 내지는 좌편향 립장때문에 땅을 조금 가지고있다고 부농으로 분류되였던것이다. 지난 론문에서 리경식일가가 땅뙈기나마 가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거니와 아무리 땅의 유무에 따라 성분을 가른다고 하더라도 억울함은 여전하다. 앞의 두번째 인용문에서 확인할수 있듯이 주인공은 공산당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자 했었는데 오히려 청산의 대상이 되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부자 혹은 지주가 적었기때문에 억지로 청산대상에 집어넣었으니 이는 억울함을 넘어 당의 토지개혁정책의 문제점을 분명히 드러낸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억울함은 건국후 수차례의 정치운동중에 끊임없이 반복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압록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재해》와 《쓴웃음》에 등장하는 인물의 운명을 통해서이다. 물론 리경식일가가 해방후 장기간 당해온 억울함은 좌편향의 정책과 리념이 우리 사회에 미친 소모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에 의한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른바 “성분유일론”과 그 연장선상에서 빚어진 비극이라 할것인데 이는 당연히 시정하고 반성해야 할 오류이고 개혁개방초기 이른바 “상처문학”의 시대부터 우리의 수많은 작품들이 이를 다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여전히 새롭고 절실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는것은 아무래도 작품의 주인공과 비슷한 가족사의 경력을 가진 작가 자신의 체험적이요 절실한 인식에서 비롯된것은 아닐까싶다. 어쩌면 작가의 이런 가족사적인 경력이 본 작품을 포함한 3부작 장편시리즈의 창작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재해》와 《쓴웃음》에서 드러나는, 극“좌”적인 정책과 이로 인해 발생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력사적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은 이런 판단을 뒤받침해준다.   6. 선과 악에는 빈부의 구분이 없다   가난과 선, 부유와 악을 동일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절대적인 동일시는 아니지만 이런 원리로 우리는 새중국을 만들어냈다. 이를 가능케 한것은 가난인즉 무권리, 부유인즉 강권이라는 또 다른 등식이다. 당대 즉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이 된 시대 중국사회의 상황에서는 이런 원리가 기본적으로 정확했다. 그러나 이는 극단적인 상황이고 실제로 그 리면을 면밀히 따져보면 가난과 선, 부유와 악은 절대적인 등식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소설의 이야기에서 이점은 다시 한번 확인된다. 지난 론문에서 필자는 소설에 그려진 부자의 선과 악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장 전형적인것이 각각 대전자와 소전자에 살고있는 두 지주 즉 왕패왕과 왕보살의 악과 선의 대조적인 이미지라 할수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왕패왕의 행적은 지주청산시 온 가족이 총살당하거나 분노한 농민들에게 맞아죽었다는것 외에 특별히 전개되지는 않고있다. 왕보살의 행적은 조금 더 전개되여 묘사되였으나 여전히 일관된 선의의 행위들외에는 억울하게도 사위인 왕영귀에게 본인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살해되였다는것이 그 내용의 전부가 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대신 가난한 자의 악에 대한 묘사가 상당정도 선과 악의 주제라는 측면에서 그 연장선에 놓인다 하겠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왕영귀이다. 리경식의 집에 오기전까지 왕영귀라는 인물의 내력은 그리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다. 다만 그 본인의 입을 통해 가난때문에 사방팔방 떠돌아다니면서 안해본 일이 없다는 정도로 제시되여있다. 그외의것은 모두가 고산자마을에서 굶은데다 추위때문에 얼어죽게 된것을 주인공 경식이가 구해준 사건부터 시작하여 장인장모뿐만이 아니라 안해와 친자식마저 무참히 살해하고서도 지주를 청산한 적극분자가 된다는 토지개혁 후기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왕영귀는 처음부터 악한이였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경식이가 구해주어 원기를 회복하자 공밥을 먹고만 있을수는 없다며 일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점에서 보면 적어도 라태때문에 가난했던것은 아니라 할수 있는데 경식이와 더불어 사냥을 다니면서 가장 먼저 드러난것이 바로 일종의 살기이다. 옥노에 걸린 메돼지를 두려움도 없이 도끼로 찍어 잡은것이다. 본인의 말로는 전에 어느 소푸주간에서 일을 봐준적이 있다고는 했으나 그런 경력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비단 팔러 나섰다가 어느 객주집에서 옛날 경식이를 납치해서 륙표로 삼아 돈을 갈취해간적이 있는 코맹맹이를 만났을 때 왕영귀는 다음날 인적없는 길가에서 그 코맹맹이가 갖고있던 권총을 들춰내고 녀석을 돌로 까죽인다. 아무리 마적행세를 했던 코맹맹이를 죽였다 해도 왕영귀의 살인때문에 겁이 나서 어쩔줄을 모르는 경식이와는 달리 정작 살인을 저지른 왕영귀는 자신의 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권총을 얻은것을 행운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살인은 평범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 인물의 근면과 살기(殺氣), 그리고 주저없는 살인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유랑인의 생존원리로 해석하면 전부는 아니라 해도 기본적인 해석은 가능할것 같다. 전쟁과 재난이 빈번했던 험악한 그 시대에 떠돌이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적절한 방법으로 실용적인 삶의 태도만큼 효과적인것도 많지 않을것인데 그러한 실용성은 전통적인 도덕의 기준을 어느 정도 벗어날수밖에 없다. 실용적인 삶의 태도가 잘 반영된것이 마적들의 생활방식이다. 왕영귀의 경우 자기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경식의 은혜에 대해서는 깊이 감사하며 여러모로 은혜를 갚으려 한다. 이는 이른바 의(義)에 따른 행위이다. 그런데 극한적인 가난에서 탈출하여 지주집 사위가 됨으로써 흔히 말하는 “잘살수 있”게 되자 과거 일부 보였던 의협성은 사라지고 사냥과 같은 살생에 재미를 느낀다. 성격의 다른 한 측면 즉 살기가 살아난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되자, 즉 토지개혁이 시작되여 지주의 재산을 몰수하고 심지어 왕패왕과 같은 악패지주의 온 가족이 살해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맞아, 왕영귀는 자신 또한 지주인 왕보살의 사위라는 신분때문에 죽을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것이 바로 도주이다. 유랑인의 생존원리에 따라 의리는 차치하고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마저 상실하면서 자신만 살려고 한것이다. 장인을 비롯한 온 가족을 살해한것도 이런 원리에서 해석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왕영귀라는 인물의 본질이 완전히 해명되는것은 아니다. 소설에 나타난 그 엄청난 행위의 리면에는 소설에서 미처 해명되지 않은 이 인물의 과거 행적이 큰 역할을 했을것이 분명하다. 가령 마적단에 들어 로략질을 일삼았다던가 아니면 다른 강도노릇을 했다던가 하는것들이다. 코맹맹이를 죽이고 총을 탈취하는 등 그의 서슴없으면서 또 능수능란한 행위는 이러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설에는 이러한 설명이 빠져있다. 작품의 흠집에 속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왕영귀라는 인물을 통해 악한의 근면, 살기, 의리와 같은 서로 모순되는 성격을 그리고자 한 작가의 시도는 인정해야 할것 같다. 인간성격의 다면성에 대한 인식은 사실주의 문학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볼 때 그러하다. 이는 인간은 원래 내면에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있으며 이 선과 악의 힘겨루기에 의해 혹은 선이, 혹은 악이 외적으로 드러나게 되여있다는 원리에서이다.   7. 부와 근면의 상관성 그리고 합작화의 의미   주인공 경식의 경력은 전체적으로 보면 잘살기 위해 즉 부를 쌓기 위해 근면하게 살아온 력사라 할수 있다. 거기에 착한 심성이 더해지면서 소설은 우리의 서민사회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를 나타내주고있다. 경식의 어머니 확실이가 남편을 항일전선에 보내고 가산이 바닥나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수 없게 된 상황에서 서울의 생활을 접고 아직 철부지인 아들과 딸을 데리고 힘겹게 압록강을 건널 때는 그야말로 빈털털이 살림이였다. 그러던것이 나중에는 조선이주민 이웃들과 중국인들 특히 왕보살의 보살핌에 힘입어 부지런히 일하며 나중에는 땅까지 사서 재부를 모으게 되고 독립군에 군자금을 지원하기에까지 이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지개혁을 맞아 억울하게 부농으로 성분이 확정되면서 그동안 모았던 얼마 안되는 재산을 모두 상실한 후에도 그는 과거 그의 도움을 받았던 친구와 이웃들 특히 한족이웃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고 나중에는 또 타고난 근면으로 다시 부를 쌓아가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근면이 곧 부요 잘살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로동으로 부를 쌓아야만 한다는 작가의 소박한 인생관과 삶의 지혜가 반영된 경우이다. 한편, 소설에서는 근면의 힘을 라태에 의한 빈곤과 대조적으로 그려내고있다. 주인공 리경식은 부농성분때문에 재산을 청산당하고 빈털털이가 되여 가위골에 쫓겨가서 다 허물어져가는 김순태네 집에 이사짐을 풀어놓지만 돌밭농사를 지으면서도 근면의 힘으로 부를 모아 4년만에 다시 평야마을로 이사를 나오게 되고 자식들도 공부시키는 등 재기에 성공한다. 그와는 반대로 원래 자기가 거주하는 집마저 다 허물어지도록 수리를 하지 않을 정도의 라태때문에 빈곤에 빠져있다가 토지개혁에서 빈농성분이 확정된 덕에 좋은 땅과 소를 분여받은 김순태, 바로 경식에게 허물어져가는 집을 내주었던 그 김순태는 얼마 안되는 사이 고질적인 라태때문에 빚을 지고 집과 땅을 다 팔아야 했으며 다시 가위골에 되돌아가야 할 신세가 되였다. 경식이가 잘 가꾸어놓은 집과 땅을 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발생한것이다. 라태와 빈곤의 상관성을 통해 부와 근면의 상관성이 잘 반영된 경우이다. 그리고 합작화이다. 합작화란 무엇인가? 대답은 단순하다. 개인이 가지고있던 토지와 농쟁기, 역축을 포함한 생산자료를 한데 모아놓고 농민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제도가 합작화요 그후의 인민공사라 할수 있는데, 작가는 대과반(大鍋飯)이라고 불린 이 제도의 문제점을 농민의 근면과 라태의 관계를 통해 표현하고있다. 물론 소설에서는 농업합작사를 만들어 지은 첫해농사가 엉망이 되였다는 정도로만 묘사되고 끝나지만 그러한 암시는 충분히 감지할수 있다. 그 내용은 물론 이 작가가 먼저 발표한 장편 《재해》에서 다뤄지고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근면과 라태의 문제가 철저한 농민작가였던 박선석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이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수 있다. 이제 다시 《압록강》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작가의 다른 소설 《재해》와 《쓴웃음》을 련관시켜 보면, 인간이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근면이 최우선이고 라태는 부의 가장 큰 적인데 합작화나 인민공사화 즉 집단농사는 농민의 라태를 야기함으로써 가난할수밖에 없다는 인식, 따라서 농민의 근면을 최대한 발동할수 있는 개인영농을 회복시킨 개혁개방만이 농민을 잘살게 할수 있는 길이라는것이 이 작가의 부와 근면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한다. 지극히 소박하고 상식적인것 같지만 우리는 건국후 꽤 오랜 기간동안 이러한 상식적인 원리를 무시해왔고 그로 하여 전 사회적인 빈곤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소박한 인식은 가치가 있는것이다.   맺는 말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일가 3대에 걸친 인간의 운명사가 중심축에 놓여 이야기를 이룬다. 거기에 조선이주민 즉 우리 조상들의 이민과 중국에서의 정착의 고난사, 그 과정에 중국인들과 발생한 여러가지 관계들, 재부축적의 과정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희비극들, 부자와 빈자의 갈등, 이주민의 항일투쟁 참여 등이 겹쳐지면서 좀더 다양하고 두터운 력사적 풍속도를 이루고있다. 작품 발표순으로 보면 장편소설 《쓴웃음》이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이 장편 《재해》, 마지막이 《압록강》이지만 작품에 그려진 이야기의 력사적배경은 오히려 시간적으로 그 정 반대순이다. 즉 《압록강》에서 시작된 력사가 《재해》를 거쳐 《쓴웃음》에 이르는것이다. 결국 박선석은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 그리고 대를 이으며 중국의 조선족으로서 삶을 영위해가는 과정에 겪어온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 방대한 장편소설시리즈에 담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를 한마디로 개괄하면 복잡한 력사적,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인 담론속에 장기간 묻혀있던 혹은 가려져있던 이주민의 풀뿌리인생을 파내고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소설은 력사서나 신문기사와는 달리 력사의 주재자나 신문 사건의 주인공보다는 이러한 표면적인 력사 현상의 리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삶의 본질적인 양상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인간의 피부에 와닿는 삶의 문제가 되기때문이다. 박선석의 가족사소설의 력사적배경은 근대이후 중국 정치사회의 시대적 변혁과 변화의 과정이지만 소설의 내적인 흐름의 원리는 한 이주민가족의 운명사이다. 그러니까 박선석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조선족의 형성과 발전의 리면사를 제시해놓은셈이 되겠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이 소설은 하강→상승→재하강→재상승의 운명구조를 전통적인 사실주의 방식으로 전개하면서 소설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있고 거기에 조선이주민의 생활상, 마적의 행태, 중국인들의 이색적인 생활풍속과 당대 특유의 력사적 풍속 등을 적절히 가미함으로써 흥미성을 더해준다. 다만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인 《쓴웃음》에서 보여주었던 해학과 풍자, 유머 등의 개성적인 서사전략들이 사라져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작가 본인이 야심차개 계획해왔던, 이민으로부터 건국후의 상황과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의 력사적인 흐름과 그 내면에서 움직여온 풀뿌리 인생을 그려내려던 방대한 프로젝트를 마침내 완성했다는 측면에서 문학사의 중요한 사건이라 보지 않을수 없다. 끝으로 가족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주인공 경식의 넉두리 섞인 한탄의 말을 인용하는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인용이야말로 작가 박선석이 방대한 량의 장편소설시리즈를 창작하게 된 동기이자 원동력이 되였을지도 모른다는 리유에서이다.   “할아버지는 만세운동(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철천지원쑤 왜놈들에게 맞아죽고 아버지는 원쑤를 갚겠다고 중국으로 와서 왜놈들과 싸우다가 억울하게 민생단으로 몰려 죽고 나는 왜놈들과 싸우는 조선혁명군을 위해 군자금을 내려고 산을 사서 밭을 일구었다가 부농이 되여 경제청산을 당하고...내 팔자는 왜 이렇소? 국민당이 왔을 때는 민주련맹에 든 죄로 사형장에 끌려나가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전에 땅이 있었던 죄로 부농이 되여 산골로 쫓겨나고...”---경식의 말.   고희의 년세에 힘든 작업을 완성하여 우리에게 가치있는 작품을 선물해준 박선석작가에게 경의를 드린다. 이 소설은 비록 다분히 가족사적인 성격을 나타내지만 이는 우리 조선족의 이민사, 정착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있고 따라서 우리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에 속하며 그래서 더구나 가치가 있다.  
9    金勋文学的互文性研究 댓글:  조회:692  추천:0  2020-05-27
金勋文学的互文性研究 ——小说、戏剧、电影电视剧本的关联性 张春植   内容提要:   金勋是建国后朝鲜族第四代作家群的代表人物之一,活跃于整个八十年代,九十年代沉寂一段时间之后,新世纪前后又开始新的一个创作周期,成果颇丰。他的作品以时代感强烈的中短篇小说为主,但是其戏剧和电影、电视叙事也极富特点。讨论金勋的创作,其最突出的特点是,以小说创作为主,同时参与戏剧、电影电视剧本创作,而在小说、戏剧、电影电视剧本之间呈现叙事上的相关性,不少作品在题材和主题上还呈现出几个关系非常紧密的作品群,从而文学创作的互文性便成为可能。 金勋文学的互文性,通过对同一题材的不同体裁创作,达到将文学效率最大化的目的。这种效果不仅是通过体裁转换最大限度地体现体裁的特点来实现,同时也通过文学修养的进步深化其主题来实现,而这是只有通过互文性才能实现的文学现象。     关键词:金勋;互文性;朝鲜族;知青;新时期         前言   “互文性”(Intertextuality,又称为“文本间性”或“互文本性”)概念最早由法国人朱丽娅·克里斯蒂娃于1966年在关于巴赫金的论文中提出,其中包括巴赫金关于对话理论与复调理论的概念。此后,“‘互文性’就被结构主义、符号学、解构主义、后殖民主义、女性主义、精神分析、‘文化研究’等诸多的理论流派所挪用。如今,‘互文性’业已成为文学理论和文化研究领域最为常用而使用又最为混乱的关键词之一。”[1]从广义上这一概念认为,文学话语不是归属于某一作家的独创性或者特殊性,而以既有的个别文本及一般的文学规约和习惯的方式存在。[2]克里斯蒂娃在《符号学》一书中指出:“任何作品的本文都像许多行文的镶嵌品那样构成的,任何本文都是其它本文的吸收和转化。”[3] “互文性”概念主要有两个方面的基本含义。一是“一个确定的文本与它所引用、改写、吸收、扩展、或在总体上加以改造的其他文本之间的关系”;二是“任何文本都是一种互文,在一个文本之中,不同程度地以各种多少能辨认的形式存在着其他的文本;譬如,先时文化的文本和周围文化的文本,任何文本都是对过去的引文的重新组织”。“互文性”概念强调的是把写作置于一个坐标体系中予以关照:从横向上看,它将一个文本与其他文本进行对比研究,让文本在一个文本的系统中确定其特性;从纵向上看,它注重前文本的影响研究,从而获得对文学和文化传统的系统认识。应当说,用“互文性”来描述文本间涉的问题,不仅显示出了写作活动内部多元文化、多元话语相互交织的事实,而且也呈示出了写作的深广性及其丰富而又复杂的文化内蕴和社会历史内涵。[4] 就如李玉平所指出,互文性概念及理论已扩散到文学与文化研究的广泛领域,尤其在文学研究中给我们提供阐释文学文本丰富内涵的有力而科学的工具与手段。 金勋是建国后朝鲜族第四代作家群的代表人物之一,活跃于整个八十年代,九十年代沉寂一段实践之后,新世纪前后又开始了新的一个创作周期,成果颇丰。他的作品以时代感强烈的中短篇小说为主,但是其戏剧和电影、电视叙事也极富特点。轻松诙谐,延边方言运用自如,幽默中带些悲苦,却不乏积极向上的热情,这些都是八十年代朝鲜族戏剧的特点,而形成这些特点,金勋的戏剧作品所做出的贡献是不可或缺的。 伴随着改革开放的发展跨入文坛的金勋,至今已创作发表了40多篇中短篇小说,40多篇戏剧作品和电影、电视剧本,另外还发表了散文、报告文学等作品50多篇,诗歌80多篇,评论、创作谈30多篇,共计250多篇作品,出版了8部作品集和6部个人文集。不少作品翻译成中文发表,有些作品还在海外介绍。获得包括全国少数民族文学“骏马奖”在内的多种奖项,可见其文学创作在国内、国外都获得承认。 从作品的主题倾向看,金勋的文学可归纳为以下四个类型:一是积极应对时代的变化;二是再现文化大革命的体验及知识青年情结;三是生命价值的阐释;四是对民族意识的再认识。这其中,前三个类型以文革及其延长线上的知青问题作为主要母题。它们有时是作为背景,有时是作为主要矛盾出现,有时是间接的、有时又是直接的方式再现出来,这和金勋本人的个人经历有着密不可分的关联。第四个类型看似与作家的经历没有直接的关系,但实际上却和作家的民族身份认同有着不可分割的关系,这一点作为朝鲜族社会的价值认同之一,具有重要的意义。 讨论金勋的创作,其最突出的特点是,以小说创作为主,同时参与戏剧、电影电视剧本创作,而在小说、戏剧、电影电视剧本之间呈现叙事上的相关性,不少作品在题材和主题上还呈现出几个关系非常紧密的作品群。其中《操心之事》作品群和《哭着笑的人们》作品群,以及《“精神病理学”研究》作品群就是属于这一类型。 《哭着笑的人们》作品群和《“精神病理学”研究》作品群主要以小说和戏剧之间形成互文性,而《操心之事》作品群则小说与戏剧、电视剧本之间形成互文性。另外独幕剧《卖豆腐》虽人物的名字和故事背景不同,但是在叙事结构上却与《操心之事》作品群形成互文性。 基于此,本文主要从横向坐标体系中对金勋文学的互文性加以关照,从作家本人各个文本之间的关联中探索其写作特性,探索其意义和价值。   1.《操心之事》作品群——小说、戏剧、电视剧本的相互关联性   《操心之事》作品群名称取自短篇小说《操心之事》(1981),此作品群除了这篇小说之外,还包括电视剧本《妈妈您放心》(1982)和戏剧《操心之事,会心之事》(1982)、《卖豆腐》(1981)等四部(篇)叙事作品。这四部(篇)都是在1981年至1982年的两年间发表或者公演,显然作者是几乎同时创作这群作品,那么,其相互关联性或者互文性是如何体现的呢? 先以短篇小说《操心之事》作为基本型,分析其结构特点。 小说是以记者与主要人物的访谈形式叙述的。 对崔氏的访谈内容: 崔氏的二儿子明浩没有“正当”职业,在个体企业“新街照相美术服务部”以给人照相、画广告为生,年轻时没了丈夫的崔氏对此十分操心,更让她烦心的是儿子没有“正当”职业该如何娶媳妇呢。可就在这时,她偶然在家里的录音机里听到女儿美顺的同学玉任跟儿子谈情说爱的录音,心里突然豁然开朗。但同时,偶然碰见同样没有“正当”职业的亨吉跟女儿没顺一起看电影,心又感到郁闷起来了。亨吉和明浩是在同一个个体企业里工作的。 对美顺的访谈内容: 那天晚上,看完电影回家后被母亲臭骂一顿,而且第二天起被“软禁”在家里,不能到照相美术服务部上班,母亲就是不让她再见到亨吉。另一方面,崔氏把一个在国营单位工作的小伙子介绍给女儿,当时,对刚从农村返城的知青来说,国营单位是最为理想的工作岗位。祸不单行,就在这时亨吉给美顺送来了一张写有一个大大问号的纸条。 对亨吉的访谈内容:明浩、亨吉、美顺、玉任这四位青年是从同一个村“集体户”里返城的知识青年,他们的恋情是在“集体户”时期,美顺喜欢爱好摄影的亨吉,玉任看上热爱美术的明浩开始的。亨吉给美顺送一张写大问号的纸条,是美顺母亲带来美顺的“未婚夫”照片让亨吉放大引起的一个疑惑。可回信同样也是一个大问号。于是亨吉大概猜到了个中的原因,找明浩商量,为了改变崔氏看不起个体企业的思想,一起想出妙计。 对明浩的访谈内容:妙计是从两方面实施的,即亨吉参加摄影比赛,同时主动去找要介绍给美顺的那位小伙子说明情况,并跟他说好,说因为职业不好,他不愿意和美顺见面,从而使这桩婚事告吹。可是没想到,崔氏反应强烈,这回干脆闹着要给女儿找一个大学生小伙子。于是他们又改变战术,让玉任假装与明浩分手,刺激崔氏。 对玉任、亨吉、明浩、美顺、崔氏的共同访谈内容:事与愿违,当知道明浩与玉任遭到玉任母亲的反对要分手后,崔氏找玉任母亲求情,不要破坏孩子们的婚姻时,才知道与明浩的相好玉任的母亲强烈反对他们的婚姻,这一下弄巧成拙,假戏要成真了,因为玉任的母亲跟崔氏一样,同样把个体经营当做无职业者。就在这时,崔氏反倒改变了想法,开始学习有关个体经营的政策,想方设法说服玉任母亲,可是玉任母亲却反问崔氏,如果是这样,为什么您不愿意把女儿嫁给个体经营职业的青年时,崔氏无言以对了。于是亨吉不失时机地准备一大包点心,去找未来的丈母娘磕头敬酒,崔氏终于举手投降,同意他们的婚姻。然而,年轻人还有一个更大的难题,就是如何说服玉任母亲。 从叙事结构看,在这篇小说里,面对事件(恋爱)的主体明浩和玉任、亨吉与美顺两对恋人,作为妨碍者的崔氏支持明浩与玉任这一对恋人,却反对亨吉与美顺的恋情。为了解决这一矛盾,事件的主体们利用妨碍者的双重态度,使出了妙计,结果妨碍者变成支持者,同时又出现新的妨碍者而产生新的矛盾,加上报社记者访谈这一外在结构将其内在结构串起来,形成一个完整的叙事作品。 这也是这篇小说的结构原理。加上事件本身,即恋爱故事与非国营企业或者个体营业这一职业相关,而这一职业却是解决1970年代末80年代初因大量下乡知青回城出现的就业难的当代焦点问题,自然而然地导出了作品的主题,即非国营企业或者个体经营也是国家允许甚至鼓励的有前途的工作,和国营单位一样也是正当职业的社会认识。 多幕话剧《操心之事,会心之事》的主题与此类似,但叙事结构却出现不少变化。首先,出场人物有所变化,明浩、亨吉、美顺和崔氏的名字和角色基本一致,但小说原作里玉任的名字改成贞琴,再有就是原作里玉任的母亲角色消失,新增加一个贞琴的父亲以街道办事处主任身份出现。而且这个人物的叙事角色与小说原作里贞琴的母亲正好相反,即事件主体的协助者的角色。此外还增加了足球运动员一洙,亨吉的妹妹亨玉也以足球运动员的身份出现,也是一个新增加的人物,另外还增加一个哑巴,这就说明作品的叙事范围有较大的扩展。 那么,叙事上的这种变化在戏剧里意味着什么呢? 贞琴母亲(原玉任母亲)的隐去和贞琴父亲的登场使得戏剧在主题的深刻性方面与原作小说相比有所弱化。贞琴母亲的出现在小说《操心之事》里意味着问题的未解,说明社会对知青个体创业现象尚未接受,需较长时间的适应过程。而在戏剧里,贞琴父亲不仅身份上属于地方官员,在实际立场上也积极支持年轻人的个体创业,甚至亲自参与说服妨碍者崔氏的过程。第二,新增加的人物亨玉和一洙同贞琴的父亲一起,给为说服崔氏编排的“戏”赋予更大的“真实性”,同时因此其“戏剧”的故事也更加紧张惊险。可见,叙事人物的变化虽然弱化了主题的深刻性,但同时明显提高了作品的戏剧效果(主要是喜剧效果)。这是作家为了适应戏剧的特点所作出的叙事结构上的调整,其效果也证明这一点。 再看一看电视剧本《妈妈您放心》。这部作品的人物与喜剧《操心之事,会心之事》完全相同,这也说明,相比之下,电视剧本在叙事结构上更接近戏剧,而不是小说。有一个小小的变化是戏剧里的“贞琴爸爸”变成“朴主任”,虽然仍然带有“贞琴爸爸”的身份,但是改叫“朴主任”后,更被强调政府官员的身份,而这“朴主任”对知识青年创业的态度比戏剧里的“贞琴爸爸”显得更加积极主动。 在叙事上,电视剧本的场面比戏剧更加扩大和开放,这当然是体裁或者艺术形式上的不同而带来的变化,然而,稍加细致阅读就会发现,电视剧本里的场面也就是把戏剧舞台的场面稍加扩大而已。比如原戏剧里的照相馆、公园门前、崔氏的家等主要舞台在电视剧本里都出现,也是主要场面,只是在其基础上多增加一些场面而已。这就意味着,戏剧和电视剧本有着诸多相似之处,但同时也表明,作家没有完全超越戏剧舞台的限制,仍拘泥于某种看不见的局限里,暴露出,此时的金勋对电视或电影的特点尚未完全掌握并运用自如。 现在我们再看一看轻喜剧《卖豆腐》和上述三个作品的关系或者互文性。 首先是人物的业态不同。上述三篇(部)作品里人物的职业是摄影和美术方面的创业者,而在这部作品的主人公却是在社会上更加被歧视的豆腐生意。作品中出现的另一种业态是豆腐厂,是国营企业,所以从职业贵贱的角度上看,这两个相似的职业结合起来就和上述作品的职业条件差不多少。人物的名字也不同,职业环境变了,人物的名字也相应的发生变化,但是人物的叙事角色有着很多相同之处。叙事事件的主要人物熙洙和海玉相当于上述作品中的亨吉和美顺,而海玉的母亲金氏相当于崔氏。还有,机械厂的工人文洙相当于电视剧本里的足球运动员一洙。当然,上述三篇(部)作品里亨吉和美顺都是相同的职业,但是在这部戏里,海玉的职业是国营丝绸厂的工人,其差异明显。此外,在这部作品里,从叙事角色方面增加了在上述作品里未出现的几个人物,比如海玉的表姐,清洁工金玉,海玉的舅舅万洙,熙洙的父亲老崔和海玉的父亲老朴等。 解决矛盾的方式也不同。在这部戏里,由于拿错写有约会内容的纸条,使得要破坏主人公们恋爱的妨碍者的诡计失败,反而起到相反的效果,成就了另一对恋人,结果,妨碍者反倒被说服。也就是说,新增加的几个人物就是起到通过纸条的错传造成约会错误的角色。还有一点,在这部戏里,主人公熙洙做豆腐买卖,是主动推辞豆腐厂的采购员工作后做出来的。这一点跟前三篇(部)作品区别明显。 这种差异使得矛盾的性质有所弱化。所以,从主题的深刻性说,这部作品的主题意识比前三篇(部)作品有所弱化,但是从叙事的侧面说,各人物造成的误会和把误会顺水推舟改换成现实的巧妙叙事设置与卖豆腐这一职业行为特点结合起来,营造出更加强烈的喜剧效果。这种“误会的处理”方式成为八十年代朝鲜族话剧,尤其是喜剧或者轻喜剧的重要叙事特点。当然,无可否认的是,金勋的戏剧叙事是形成朝鲜族喜剧特点的重要组成部分。 从互文性的角度看,除了戏剧《卖豆腐》之外,其他三部(篇)都是同一题材和主题,相同的人物,甚至基本故事梗概也相同或者相似,只有戏剧《卖豆腐》,从题材到人物都同上述三部(篇)作品区别较大。然而,在主题和叙事结构上却具有较大的相似性。虽然,人物的名称不同,但是主要人物的角色也比较相似。由此可以确认,四部(篇)作品明显处于互文关系。 从某种角度上说,以上四部(篇)作品,尤其是前三部(篇)作品貌似将相似的主题和叙事结构接连改编成小说、戏剧和电视剧本,但是,这三种体裁的作品涉及的都是不同的媒体,考虑到体裁或媒体变化所营造的波及效果,毫无疑问,其社会影响和审美效果却大于四部(篇)作品的相加。   2.《哭着笑的人们》作品群——两篇小说改编成一部戏   《哭着笑的人们》作品群包括短篇小说《喜怒哀乐》(1983)、《不加粉饰的生活记录》(1983)和多幕话剧《哭着笑的人们》(1984)等三篇(部)叙事作品。根据发表时间来判断,创作顺序应该是两篇小说在前,戏剧作品在后,也就是说,与《操心之事》作品群不同,这一作品群呈现出两篇小说的叙事内容合并融合到一部多幕剧《哭着笑的人们》里。具体而言,就是将两个短篇小说的内容在多幕剧的舞台1层和2层交叉呈现,甚至出场人物表也是分“楼上(第一表演区)”和“楼下(第二表演区)”两部分。当然,和小说一样,两个故事虽然都发生在同一家医院里,在话剧的同一个舞台上发生,两个故事之间却没有直接的关系,至少是不太明显。那么,就会产生这样一个疑问,即两个互不相干的故事在同一个舞台上演会产生何种效果呢? 首先,短篇小说《喜怒哀乐》讲的是因患肿瘤病住在同一个病房里的四位患者之间发生的故事,通过这四位患者各自经历过的让人高兴的、愤怒的、悲伤的、快乐的事情,刻画出人物各自不同的性格及其命运。矮个子承大替别人写了很多情书,却没有机会为自己写情书,说起最高兴的事情,就是有一次在街道排球赛上,他坐在高高的裁判席上当裁判。尽管如此,他总是乐观人生,主动安慰别人。艺术团的歌手允洙曾获得过歌唱比赛优秀奖,深受人们欢迎,但突然发现喉咙里长出了肿瘤,不得不做切除手术,当然也不得不要放弃歌手生涯。在这一过程中,女朋友也背叛了他,与他分手。铁三是在粮库里背粮食麻袋的壮汉子,还天天练习拳击,说他最高兴的事情也是一拳打倒对手,最气愤的事情也是打架时有人先逃跑,然而,真正需要他用拳头帮忙时却自己怯懦逃跑,是外凶内虚之人。尚日总觉得因为文革中耽误学业而遗憾,经常拿出中学教材学习。有一天几个流氓欺负医院的护士,外凶内虚的铁三不敢与他们斗时,尚日挺身而出教训那几个流氓。最终,在四个患者当中只有尚日被确诊为癌症,其他人都是良性肿瘤。于是三人极力劝慰尚日,要战胜疾病,他自己也振作起来,下定决心要与病魔作斗争。 以上小说的内容基本上以四个人物的对话叙述,因此虽然是小说,却比较接近戏剧的叙事特点,除了铁三遇到流氓想逃跑时,尚日挺身而出教训那几个流氓的场景在室外发生外,其他场景都发生在病房内。当然,人物们讲述的故事都是在不同的生活空间里发生。 短篇小说《不加粉饰的生活记录》,以观察者的角度叙述产房前,产房内外各种人物之间发生的种种事件和故事。 起初,产房前有几个男人和一位老奶奶在等待产房内的消息。这大概是人们在产房前能看到的最普遍的风景,但这里有一点比较特殊,即名叫崔英爱的,绰号“连衣裙”(作者把小说里的人物一一起了个绰号,下同)的姑娘来产房做人工流产,原因是男方家里反对两人的婚姻,逼着怀孕的女方做人流手术。另一方面,有个绰号“平头”的男子扶着一个孕妇急匆匆过来,说是差点在市场分娩,看似不像是她的丈夫,却把她照顾得细致入微,格外周到。人们有些诧异,用异样的目光注视他们,果然,那位平头男子遇到来看望朋友的梳单辫子头的姑娘聊得热乎,看此情景,大家都默认为他们是在搞三角恋爱。这时,绰号“啤酒肚”的男人妻子大出血,急需输血,那位平头男人第一个自愿献血。不久,产房里传来婴儿的啼哭声,有个梳双辫子头的姑娘出来要借用录音机,带着录音机的绰号“眼镜儿”的男人和“啤酒肚”有些犹豫,可一听到双辫子姑娘的哥哥因得肝硬化腹水而生命垂危却拒绝治疗,只想听到自己新生孩子的啼哭声时,他们毫不犹豫地借给录音机。过了一会儿,绰号“中山装”的男人终于站起身来,跟大婶儿说要叫出英爱,还说他下定决心,即使父母反对,也要跟英爱结婚,要办理结婚登记手续。 “双辫子”提着录音机回来,说她哥哥听到孩子啼哭声和录音机里 “眼镜儿”事先录下的自作诗后,重新开始接受治疗。此外,绰号“前进帽”的男人表白说,啤酒肚的老婆需要输血时,因为自己是罪犯,不敢站出来主动献血。与此同时,老奶奶说“前进帽”的老婆生下一个男孩儿,还说女儿把离婚申请书还给他,要他给儿子起个名字,于是“前进帽”也下决心要重新做人。后来,前面人们议论的所谓“三角关系”终于真相大白,实际上“平头”带来的孕妇是从农村来逛市场的陌生女人,在市场里突然要临产才由他这个热心肠的陌生人人带到医院里来的。 以上介绍的就是成为话剧《哭着笑的人们》的两篇原作短篇小说的故事梗概。当然,这两篇短篇小说之间没有直接的关联性,只有一点可能有关系,即两篇小说的事件都发生在医院里。那么,作者是如何把毫不相干的两个故事在戏剧里联系在一起的呢? 首先,两篇小说的故事在话剧里改做楼上和楼下的故事,同时发生在同一个舞台上。当然,小说的故事不是原封不动地搬到舞台,而是经过适应舞台的变化之后再现出来的。在短篇小说《不加粉饰的生活记录》里,除了崔英爱之外,所有人物都是以其外貌特征起的绰号出现,比如连衣裙、啤酒肚、平头等,而在话剧里,却以各自的名字出现,因为话剧主要是以对话来叙述故事,而对话中不可能随便叫别人的绰号。 首先,话剧开头,立体展示了楼上楼下的情景。楼下走廊长椅上躺着姓许的老太太和叫一男的男子,而在楼上病房里,允洙和铁三、尚日在各自的床上或读书(尚日),或玩儿扑克游戏(铁三),或躺着不动(允洙)。在楼下响起婴儿的啼哭声后,年轻人和老太太交谈,说是生了个带棒儿的。楼上的人们往下看时,孩子的啼哭声和急救车的鸣笛声重叠,于是楼上病房的铁三叹口气,允洙按下合式录音机的按钮,贝多芬的交响曲《命运》响起。这就是话剧的开幕情景。而这一情景显然是把两个毫不相干的事件连成一个故事的关键叙事处理。当然,此外在话剧的发展过程里,间断地出现一些连接结构,但是如果没有这一开头部分的处理,就很难把观众的视线捆绑在两个故事里。 此后的剧情是在楼上和楼下交替展开,多数内容和两篇小说的故事差不太多,只有少部分内容有所区别。比如,在小说《喜怒哀乐》的开始部分由四个患者进行交谈,但在话剧里,主要人物承大最后住进来,而且,来的时候不是自己一个人,是与徐主任一起进来住院,而在小说里是不出现这么一个人物的。不仅如此,还增加一个换床的内容和别的病房患者朴大爷经常到他们的病房来和他们下棋,在下棋的过程中突然晕倒后随即死亡的内容在小说里也不出现。此外,在话剧里,将贝多芬的音乐贯穿全剧,以增强对生命的庄严感受。这些增加的内容,显然是为了加强紧张感和剧情氛围采取的叙事处理。在小说里,铁三遇到流氓因害怕而逃避时,尚日挺身而出去揍流氓的场景是在医院外发生,而在话剧里却是在病房里发生,这也是根据体裁和媒体的变化而做出的调整。 虽然两篇小说的内容组合在一部话剧《哭着笑的人们》里,但其剧情发展基本上是分开的,那么,作者是如何把这两个性质相异的内容组合到一部戏里的呢?除了前面提到的引子部分之外,还有一点很重要,即在话剧中间出现的如下旁白将两个貌似毫不相干的故事在舞台上编织在一起:   旁白:我的主人公们身盖黑色帷幕进入了梦乡。面对新生命的诞生,产房前,我的主人公理应要梦到自己当爸爸的甜蜜,但是肿瘤病房里,我的主人公们却是要做恶梦还是做美梦?过了这一夜,给他们带来的是幸运还是不幸?……大家一起等待天亮吧。(退场)   不管是死亡还是新生命的诞生,都与生命有关。除了两个故事都发生在医院里的事实之外,这是这部戏之所以能够成为一部完整的戏的关键所在。当然,除此之外,为了使两个故事编织成更紧密的整体,作家还动员了更多的叙事设置,比如楼上急性质的承大从外面回病房时,与从楼下产房前走廊走出来的南洙装个满怀引起的小插曲就是其中一例。南洙把矮个子的承大当做小孩儿,与他发生口角。更加明确的关联性发生在话剧的尾声部分,楼上楼下的主要人物们直接见面。   尚日慢慢地走近一男旁边,低头端详新生的婴儿,他突然抬起头向护士露出微笑。护士和承大、铁三、允洙转身抹泪。 婴儿大哭起来,在婴儿的啼哭声中,一男、崔氏、南洙、学究、英爱、助产员微笑,而护士、承大、铁三和允洙却抹眼泪。 尚日走近护士前伸出手,护士将自己手里的百日红递给尚日。尚日一只手扶着护士的肩,靠近抱着婴儿的一男跟前,向护士微笑,把手里的百日红放在婴儿的襁褓上。   例文既把两个故事里的人物们关联起来,也把死亡和新生命的诞生这一生命的两个极端联系起来,从而不仅在叙事上,而且在主题的阐释上也起到非常重要的作用。同时与话剧引子部分遥相呼应,将话剧成为一部完整的叙事作品。 在这部戏里,为了将两个互不相干的故事在同一个舞台上形成关联,作家动员了各种叙事设置,舞台的上下层结构就是其中最重要的因素。在客观上,两个故事都发生在医院这一特定的环境是这一叙事设置成为可能的条件。作为加强两个故事关联性的方法之一,作家还将使两个故事交叉展开。另外,在舞台布景上,让楼上故事的人物们能够观察和感受在楼下发生的事件,使得两个故事获得更多的关联性。还有,在话剧的尾声部分,让两个故事里的人物们直接见面,从而不仅成就了叙事的完整性,同时将生命主题最大化,三部(篇)作品的互文性蕴含的意义和价值也就在这里。   3. 《“精神病理学”研究》作品群——小说与戏剧的差异   属于这一作品群的作品包括中篇小说《“精神病理学”研究》(1986)和戏剧《被遗忘的人们》(1987)两部(篇)。从发表时间看,和上述两个作品群一样,是小说在先戏剧在后,也就是说,作家把自己的小说改编成或者说改写成戏剧。 从互文性的角度看,这一作品群比上述两个作品群相对比较单纯,但其意义并非简单。先看一看中篇小说《“精神病理学”研究》的叙事结构。 精神病院女子住院楼护士长顺今值夜班查房时,发现女患者徐香玉不见了。原为话剧团演员的患者徐香玉虽然连父母都认不出来,但是对莎士比亚的戏剧台词却倒背如流。顺今感到有些不安,认真查看医院的院子,因为过去她也曾经受过害,与那个患者经历相似。当时,顺今被“工人宣传队”队员诱奸,却在当时的环境里,只好和加害者结了婚,他就是现在的丈夫。 正当此时,当日值班的正植到了值班室,突然,顺今打来电话说有一个患者在锅炉房里。跑过去一看,是锅炉工和徐香玉患者正对着莎士比亚的戏剧《罗密欧与朱丽叶》的台词。锅炉工一会儿对台词,一会儿又向徐香玉哀叫自己就是学铁。然而,看到徐香玉仍然认不出他来,他便精神时空,猛冲过去掐住她的脖子,就在这危急时刻,正植和顺今冲进去制止他的鲁莽行径,并平息了突发事件。 事后,顺今回到了家。可是在家里,丈夫正抱着一个年轻的姑娘寻欢,一气之下,顺今向那对男女泼了一碗冷水,回到娘家跟母亲哭诉再也不能跟丈夫过日子。有过离婚经历的母亲虽然不太情愿,但是最终还是同意女儿离婚。 正植因妻子的疑夫症和与顺今的毫无根据的传闻而苦恼,甚至把自己正在写的论文题目也叫做《社会与精神病理学》。几天前,新住院的女患者原为省劳模,却因有人妒忌她而受到诬陷,结果得了精神病。同样,锅炉工要掐死的徐香玉当时也是由于被强奸而要自杀未成,却得了精神病至今未愈。 昔日的锅炉工学铁找顺今交出录像带,说是录制三部莎士比亚戏剧的,并告诉顺今事情的来龙去脉。因革命委员会主任强奸徐香玉,她要自杀未成而得了精神病,他自己则想杀死她了事,却行动未遂被判二十年徒刑,被监禁九年后放出来,回家乡修养一段时间后再回来当锅炉工的。还讲述他与徐香玉的爱情故事。 正植辞职后到私立医院神经科开设了“精神卫生咨询处”,在那里,他接触到了各种各样的精神病患者,连顺今的母亲崔氏都来向他咨询,甚至市长都特意来访,咨询有关精神卫生的知识。 小说以1980年代后期改革开放时期为背景,试图将因大跃进、文革受到精神创伤的社会问题同新产生的精神病理现象结合揭示出来。也就是说,从精神病理学的角度,揭示当代社会各种不和谐现象、人们的意识问题和心理问题,其主题意识明确而深刻。 那么,从互文性的角度看,中篇小说《“精神病理学”研究》与多幕剧《被遗忘的人们》是处于何等关系呢? 首先,其基本叙事没有太大的差异,所变化的部分都是为了适应戏剧这一体裁特点而改动,也就是为了加强戏剧性而做出调整。与上述《哭着笑的人们》作品群不同,在这一作品群的小说里,明示主要人物的名字。在戏剧里也维持其名字,只是在小说里无名的角色在戏剧里获得了名字,而且还增加了一些人物(主要是精神病患者),并且有名有姓。这是戏剧的体裁特点上不得已而为之。从叙事内容来看,小说里有关顺今母亲崔氏的内容在戏剧里完全消失,而在小说里没有提到的,在医院停尸房里发生的青年男女恋爱的故事,还有想在尸体里找出存折的一对夫妇的有些黑色幽默的故事,却在戏剧里占有重要的叙事内容。小说里的心理描写部分多数在戏剧里省略掉,取而代之的就是类似上述黑色幽默的故事,这显然是为了加强戏剧性而为之。另外,在戏剧尾声部分出现的精神病患者们举行春节假面聚会的场景,也是为了加强戏剧性而为之,这部分在小说里是看不到的。 戏剧里还增加了一些既加强戏剧性,同时也加深作品历史性的内容。比如戏剧开头部分出现的,关于在抗美援朝战争中得了精神病的患者“志愿军”,批林批孔时得了精神病的患者“孔老二”,文革时得病的“平头”,还有最近因为恋爱失败而得病的“阿里巴巴”等个性鲜明的人物就属于这一类。这些人在精神上仍存在于他们得病的那个特殊的年代,且以当时的方法对待社会和人。作家是站在创作这些作品时的改革开放初期的立场上,用戏剧化的方式,揭示或者阐释人们深陷精神病泥潭的那个时代的社会问题。 当然,在戏剧里这种叙事变化不仅仅是为了加强戏剧性。这些戏剧性的插曲,将“精神健康”的问题不仅在现实层面,而且从历史性的角度刻画出来,使得作品的主题更加丰满深刻。这就意味着,作家不仅是在互文性方面,从二次创作的角度上说,也是更加深入挖掘出其主题思想。说明当时作家金勋仍处于创作上的成长期,而且其成长也不是小幅度,从某种意义上讲,是一种飞跃。   结语   互文性概念包括两层基本含义,一是一个确定的文本与它所引用、改写、吸收、扩展、或在总体上加以改造的其他文本之间的关系;二是任何文本都是一种互文,在一个文本之中,不同程度地以各种多少能辨认的形式存在着其他的文本。本文是从第一个最基本的互文性侧面分析了金勋文学多种体裁之间的关系。 《操心之事》作品群的主题意识对准了时代性,而历史性或者人性的问题较少涉及到。所以从现在的角度看,甚至当时是因为什么,这一作品群引起读者或观众那么热烈的欢迎而感到疑惑。然而,不要忘了,在这一作品群所揭示的主题,即返城知青的就业问题是当时社会最为引人关注的焦点问题。与时代主题过于密切,随着时代的流逝而容易褪色,但是在相应的历史环境里,这些主题却容易被人们所响应或引起共鸣,这是不可否认的事实。相比之下,《哭着笑的人们》作品群更关注的是人性的问题,外加一些历史性的主题,所以从现在的审美观来看,也仍然具有较强的艺术生命力。而《“精神病理学”研究》作品群,则把焦点对准历史性的问题。在小说《“精神病理学”研究》里,作家把“精神健康”的问题同过去的历史事件联系起来,而到了戏剧《被遗忘的人们》,更是把这些与历史的相关性凸显出来,明显加强或者深化其意义。 从互文性的角度看,金勋文学的叙事变化主要目的似乎就在适应体裁特点上,然而,这不是全部。作为正处于成长期的作家在文学水平的提升也体现在同一题材的多体裁创作上。尤其在《“精神病理学”研究》作品群里,这一现象最为明显,比起先期创作的小说,一年后创作的戏剧在主题挖掘上呈现出长足的进步和深化。 总之,金勋文学的互文性,通过对同一题材的不同体裁创作,达到将文学效率最大化的目的。这种效果不仅是通过体裁转换最大限度地体现体裁的特点来实现,同时也通过文学修养的进步深化其主题来实现,而这是只有通过互文性才能实现的文学现象。 从另一个角度看,运用延边特有话术的现场性,还有,被称为“轻喜剧”的戏剧性是朝鲜族话剧或者延边话剧的重要特点,而形成这一特点中,金勋的戏剧为之所做出的贡献是不可低估的。目前在朝鲜族文学创作中,戏剧是比较薄弱的体裁,毋庸讳言,为了这一体裁的振兴,分析和总结这种现象和经验无疑是一个有益的尝试。                     [1] 李玉平著,《互文性——文学理论研究的新视野》,商务印书馆,2014。 [2] 韩龙焕著,《小说学辞典》,(韩)文艺出版社,1999。 [3] 《360百科》,http://baike.so.com/doc/6960134-7182645.html。(2016年6月11日) [4] 以上内容请参照《360百科》,http://baike.so.com/doc/6960134-7182645.html。(2016年6月11日)。关于“互文性”理论的更多详细内容请参照李玉平著《互文性——文学理论研究的新视野》(商务印书馆,2014)。
8    장춘식 연구업적목록 댓글:  조회:1289  추천:0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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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소설과 그 내막, , 2009.4. 93. "대약진"운동과 우리 소설의 대응, , 2009.5 94. 와 청년작가, , 2009.2 95. "두번째 이민"과 우리 작가들의 대응, , 2009.3. 96. 전원목가와 디아스포라적 애수, , 민족출판사, 2009.6. 97. 由身份认同的不同而引起的文学表现之不同,《朝鲜-韩国文学与东亚》,延边大学出版社,2009.6. 98. 계급투쟁과 추리소설의 만남-문화대혁명 그 전후시기 우리 소설 고찰, , 2009.7-8호. 99. 고슴도치와 족제비의 대결-2009년 4호를 읽고, , 2009년 5호. 100. "두번째 이민"과 소수자의 생존전략, , 2009년 11호. 101. 소설의 재미와 시의 운률, , 2009년 6호. 102. 유치환의 시와 만주체험, (제13호), 국제고려학회, 2009.12 103. 정체성의 혼란에 대응한 문화적신분의 자각, , 2010년 2호. 104. 박계주의 단편소설 의 혼종성과 전복성, , 2010.2호. 105. 독서와 창작, , 2010년 3호. * 106. 일제강점기 조선족 이민작가 연구(저서), 민족출판사, 2010.7 107. 실험정신과 구조의 미, 그리고 달관의 경지, , 2010.3호. 108. 계급투쟁 담론 해체의 미학, , 2010.5 109. 공동체의 위기와 그 탈출의 의지, , 2010.11-12 110. 與星對話--朝鮮族現代詩人尹東柱與他的詩, , 2010.4. 111. 추억과 사랑, 그리고 허무의 미, , 2010.6. 112. 탈식민주의와 주변에서 글쓰기, , 2011.3 113. 朝鮮族第六代小說家的崛起, , 2011.5 114. 광복이전 우리 시의 력사적 흐름, , 2011.8-9 115.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 김창영시집 , 료녕민족출판사, 2011.8 *116. 일제강점기 중국의 한인 이주문학, (한국)산과글, 2011 117. 용서와 관용의 미학-남흥범수필집 , , 2011/6 118. 반전의 미학, 그리고 풍성한 수필잔치, , 2011/6 119. 류은종의 시조와 시, , 2012.3 120. 격변기 시대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관조-고신일소설론, , 2012/4 121. 항일부대에서의 연극창작과 그 의미, , 2012/7 122. 방룡남의 , , 2012/2(한국학술정보[주]) 123. 시대성과 민족성의 통일, 그리고 서사전략-박초란단편소설집 해설, 박초란단편소설집 , 료녕민족출판사, 2012.8 124. 지상토론 "만주 조선문학 건설 신제의"의 가치와 의미, (한국), 제8집, 2012.12. 125. 장르적인 경계 깨기--조광명특집평, , 2013/3. 126. 신세기 중국조선족문학비평의 현황과 전망, 제53집, 2014/2 127. 时代话语、民族话语以及个人定位》,刊于《民族文学研究》    2014.5 128. 새중국 창건이전 중국조선족문학의 형성과 조선반도문학의 관계, 김춘선주필, , 2015. 129. 로익장의 풍성한 연구업적, 문화시대(문학과예술), 2015/3 130. 려로형소설의 시간과 공간, 장백산, 2015/4 131. 조선족, 우리는 누구인가?, 도라지, 2015/5 132.  2000년대 문학, 위기와 그 극복의 의지(저서), 연변인민출판사, 2015.8 133.  金勋文学的互文性研究,民族文学研究,2016/5 134.  식민주의와 재중조선인문학(저서), (한국)살과글, 2017.  
7    장춘식 략력 댓글:  조회:969  추천:0  2020-05-27
장춘식(張春植) 약력 zhangcz@cass.org.cn   1959년 2월 28일, 중국 길림성 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에서 간도 이민3세로 출생.   1983년 중앙민족대학 조문과(국문과)를 졸업.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조선족 문학 전공. 한국 전북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2001년, 석사, 2003년, 박사).   1983년부터 문학창작과 연구 정진. 소설, 비평, 시 등 장르를 두루 시도. 중단편소설 30여 편, 문학연구 및 평론 150여 편, 시 50여 편을 발표. 저서로 (1993, 문학평론집,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96, 소설집, 민족출판사), (1998, 소설집,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4, 논저, 민족출판사), (2005, 논저, 민족출판사), (공저, 2006, 한국 푸른사상), (공저, 2007, 민족출판사), (2010.7, 민족출판사), (산과글, 2011), (연변인민출판사, 2015), (산과 글, 2011) 등 간행.   광선컵문학상 평론상, 시문학상, 소설상, 연변작가협회 문학평론상, 윤동주문학상 평론상, 전국제9회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이론-평론상, 중국조선족문학비평상, 제1회 단군문학상 등 수상.
6    [작품평]도시화 시대 소외자의 삶에 대한 관조 댓글:  조회:694  추천:0  2019-07-17
도시화 시대 소외자의 삶에 대한 관조 장춘식   요즘 소설가 리승국이 잘 나간단다. 작품집도 나오고 수상소식도 자주 들린다. 그만큼 성숙되여가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언제부터인지 필자 또한 리승국의 소설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품의 스타일에 공감해서이다. 리승국의 소설서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문체이다. 화려함보다는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투박하지만 잘 삭은 된장 같은 토속적 문장 혹은 문체는 인물들의 성격은 물론 인물들이 처한 사회환경과 삶의 방식 그리고 그들의 소박한 가치관마저 진솔하게 드러내준다. 도시화 시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여가는 서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 나름의 담론방식으로 표현된 삶이기에 좀더 신빙성을 획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중편소설 역시 그렇다. 아니 좀더 전형적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인물의 눈높이에 맞춘 문체와 서사, 담론방식으로 하여 작품의 문제성은 좀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미장이 기술 하나로 가족을 먹여살리며 도시 변두리 서민주택인 단층집에 세 들어 팍팍하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쟁이가 있다. 어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시화로 인해 수입은 점점 줄어들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빠트를 사서 하나 뿐인 아들을 장가보내고 오손도손 살아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던 어씨는 학교를 나와서 일자리가 없이 빈둥거리는 아들에게 미쟁이 일을 가르친다.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안해가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 한가지 걱정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만다. 안해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다. 그때껏 모았던 돈을 다 써버려서야 겨우 안해의 목숨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어씨 본인이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내용이다. 도시화 시대 어느 도시 변두리의 단층집 동네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서민의 이야기라 하겠는데 이런 서민의 삶이 공감을 자아내는 원인은 이들의 삶이나 운명이 나날이 윤택해지는 도시 중심지 중산층의 삶과는 너무나 뚜렷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대조적 상황을 극대화한 것이 바로 리승국의 ‘눈높이 서사’이다. 우선 인물의 성격에 걸맞는 담론방식이 그렇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주인공은 성이 어(고기 魚)씨이지만 물고기를 즐겨 먹었고 특히 조상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위라 해도 개의치않을 정도로 세치네국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여기서 ‘세치네국”은 연변 특유의 생선국을 이르는 말인데 이런 담론방식 때문에 연변이라는 지방적인 특징이 가미되면서 일부 자조적이지만 여러가지 속박에서 탈출하고저 하는 서민의 소박하고 털털한 삶의 태도가 두드러진다. 또 다른 례로, 어느 날 지금 막 미장일을 배운 아들과 함께 담장 쌓는 일을 했는데 주인은 약속한 돈 300원 대신 그 절반만 내놓는다. 이틀 해야 할 일을 하루에 다 했으니 반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해서 주인장에게 따지고 드는데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주인장이 물통에 넘어졌고 이때 주인장의 아들이 나타나서 어씨와 어씨 아들의 뺨을 친다. 화가 난 어씨는 쌓아놓은 담장에 피가래를 뱉으며 어느 땐가는 이 담장에 사람 죽을 것이라 으름장을 놓고 돌아간다. 이때 어씨의 행위는 주인공의 소외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 동시에 서민 나름대로의 분풀이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풀이방식에는 소외된 서민들의 자존심이 반영되여있기도 하다. 이른바 정신승리법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손해를 최소화하면서 소외계층의 자존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인공의 성격은 투박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무지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행위에는 나름대로의 가치기준이 작용한다. 더구나 소박하지만 바른 심성, 따뜻한 인정은 작가가 지극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녀자였지만 급성맹장염 위기에서 구해주고 나서 일시적인 충동으로 임신시켜놓고는 그 책임을 끝까지 지는 자세가 그렇다. 또 그렇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안해가 고혈압 때문에 고생하는 것에 항상 불안해하면서 치료를 제안한 것, 안해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집도 사고 아들을 장가보내고저 그때껏 안해 몰래 모아왔던 저금 전부를 병치료에 내놓는 행위 또한 그렇다. 아들에 대한 겉으로 보기에 덤덤하지만 실제로는 더없이 애틋한 감정이나 왕스푸에 대한 동료의 정 또한 그런 의미에서 리해된다. 인물의 성격에 맞춘 담론방식과 그에 걸맞는 소박한 문체가 리승국의 소설서사 혹은 인물성격의 부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의식의 제시는 인물성격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물들의 삶에 걸맞는 환경도 중요한 몫을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거주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환경은 도시화 시대 중산층을 비롯해 일반인이 살고 있는 주요 환경과는 큰 차이가 난다. 앞에서 이미 언급된 작업장의 환경은 현재 건설이 한창인 도시 중심지대와는 멀리 떨어진 도시 변두리나 시골이다. 그리고 때로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담장을 쌓고도 뺨을 맞고 삯돈을 반 밖에 받지 못하는 등 억울함을 당하기가 일쑤이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면서도 변두리에 밀려난 고물시장에 가서 중고품을 사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소외계층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요 생활방식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인상 깊은 것이 주거환경이다. 주인공 어씨네가 살고 있는 변두리 단층집 동네는 도시 중심의 아빠트와는 십분 대조적이며 어씨네는 그런 단층집마저 세 들어 살고 있다. 단층집 동네 중요한 징표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공중변소에 관련된 다음 례문은 그러한 어씨네 가족의 삶의 양상을 잘 나타내준다. 공공변소는 대개 모양새가 똑같았는데 특점이라면 화장실문이 없고 쭈크리고 앉으면 옆사람하고 대화도 할 수 있고 담배도 빌려 피울 수 있는 어찌 보면 대중적인 공공장소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별의별 대화를 다 나누는데 처음에는 아침날씨부터 시작해서 언거번거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가을배추값이 얼마 올랐고 감자값이 얼마 내렸으며 겨울나이 석탄값이 배로 껑충 뛰여오른 것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정서가 고조되면 지금 아빠트는 개발상들이 돈을 아끼느라 아빠트 사이를 가깝게 지어 건너편 아빠트에서 녀자가 목욕하는 것까지 창문 너머로 다 건너다 보인다는둥, 시가지안의 인력거군들은 거의 모두가 애인을 두고 있다는둥 시시껄렁한 잡담을 늘여놓기도 했다. 이런 풍문들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변소 안에서 듣는 사람들은 그 악취가 풍기는 공기 속에서도 입을 벌리고 소리내여 킬킬거리군 했다. 리승국의 친서민적 혹은 서민눈높이 문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례문이다. 그리고 이 례문은 여러가지로 서민사회 삶의 환경과 양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내준다. 례문을 통해 우리는 서민사회 또한 인간적인 삶의 공간임을 알 수가 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들의 삶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즉 소외되여가고 있다. 그러나 비록 렬악하고 소외된 환경이지만 서민들은 그 속에서도 삶을 영위하고 애환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처럼 불결하지만 일부 여론장의 역할을 하는 장소에서 이웃에 사는 강동무가 뇌출혈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주인공 어씨는 역시 고혈압을 앓고 있는 안해의 건강상태를 다시 한번 걱정하게 되며 결국 걱정이 현실화하여 안해도 뇌출혈로 쓰러지고 만다. 여기서 다시 도출되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의 신분과 삶의 방식이다. 개혁개방 40여년, 도시화가 한창인 중국의 경제적인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시다는 말로 형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미쟁이라는 직업이 과거에는 그리 천한 직업이 아니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완성되여가면서 서서히 변두리로 밀려났고 어씨와 같은 미쟁이들은 이제 사회적으로 소외되여가고 있고 따라서 이들의 삶은 산업화, 도시화의 혜택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세치네국에 소주 한잔을 마시는 것이 사치스런 회식이 되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누라가 고혈압병을 고질로 앓고 있어 늘 아슬아슬한 살얼음우를 매일매일 건느는 일상을 되풀이하”면서도 모아놓은 돈을 감히 다치지 못하고 아글타글 살아가다가 결국 그렇게 모은 돈을 아빠트를 사거나 아들 장가갈 때 쓰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마누라의 생명을 구해내는데 써버리고 마는 것이나 주인공 어씨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는 등 삶의 양상은 오늘날 소외된 삶을 영위해가는 서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러한 서민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작가의 친서민적인 문체 혹은 묘사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도시 변두리에서 나름대로의 희로애락을 가지고 희망과 자부심 그리고 성실한 장인정신을 지켜가면서 소외된 삶을 영위해가는 한 인간과 그 가족의 애환이 담긴 이 소설의 이야기에는 소외되고 밑바닥에서 영위해가는 삶의 소유자들도 인간적인 미덕과 도덕적인 기준을 뚜렷이 갖추고 있으며 나날이 비대해져가는 도시화 사회에서도 이들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는 작가의식이 반영되였다 하겠다. 문학은 약자를 위한 예술이냐 하면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상당부분 그렇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강자는 그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있지만 약자는 그렇지 않으며 꼭 약자라 하기 어려운 문학인으로서는 약자를 위한 대변인이 되는 것이 사회적 혹은 력사적 사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는 소외자 혹은 약자의 립장에서 그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약하지만, 그래서 일부 불우한 측면도 있지만 성실과 따뜻한 인정으로 나름 대로의 삶을 영위해가는 소외자의 운명에 대한 관조는 당연히 작가의 중요한 사명이라 해야 옳다. 리승국은 이 사명에 충실하고저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작품에서 말하는 는 어씨를 지칭할 것인데 실제로는 그 아들도 미쟁이 기술을 익혀 아버지 못지 않은 능력을 과시한다. 해제가 조금 모순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이미지가 이미 부각되였음에도 소설의 결말에서는 그 뒤이야기가 생략되였다. 아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소설의 주제의식을 해명하는데도 도움이 되였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 작품에서 좀더 정교한 서사를 기대한다. 출처:2017 제2호
5    [칼럼] 아름다운 글과 현대적 감각 댓글:  조회:478  추천:0  2019-07-14
아름다운 글과 현대적 감각 장춘식(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평론가)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것이 문학작품이다. 우리의 문학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모 위챗그룹에서 리기영의 《두만강》을 읽고 싶다는 글을 읽고 갑자기 ‘과연 어떤 글이 아름다운 글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리기영의 《고향》이나 《땅》, 《두만강》과 같은 소설의 문장을 아름다운 글의 전범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선배작가들, 가령 김학철이나 김철, 림원춘, 리원길 등의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학전통을 전승받았으며 그래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조선의 현대작가들, 그들의 글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문이 열리면서 우리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 문학작품의 잘 갈고 닦여진 언어에 매료되여 한동안은 우리의 전통문학어에 대한 애착이 시들해지고 심지어 어딘가 촌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기에 이르렀다. 이런 차원에서 2000년대 초반 우리의 신진작가들 특히 녀성작가들의 매끄러운 언어, 분명히 한국문학에서 섭취했을 그들의 언어능력을 평론가로서 높이 사주게 되였다. 실제로도 이는 우리 작가들의 진보요, 우리 문학의 환골탈태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우리의 촌스런 언어에 대한 향수가 생기고 문학어 즉 글이 아름답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라는 의문이 들게 되였다. 그리고 박경리의 대하장편 《토지》를 읽게 되였다. 령남사투리와 호남사투리에 대한 박작가의 거침없는 사용과 이를 다루는 능수능란함은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였다. 그 이전에 읽었던, 매끄러운 문장의 극치라 할 만한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에서 느꼈던 1% 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얼마간의 답을 얻게 되였다. 문장은, 혹은 글이란 매끄럽기만 하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시대 민중의 생존과 언어의 실질 즉 민중의 참모습을 재생시킬 수 있는 말, 글이라야 진정 아름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문학어가 과거 시골문화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리기영 시대의 언어는 농경문화의 산물이며 인구의 다수가 농민이였던 시대에 적절한 언어로서 그 시대의 독자들에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어는 항상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제6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2000년대 세대 즉 이른바 ‘70후’ 세대로부터 그 이후의 우리 문학어는 도시문명 시대의 언어적 특징을 반영한다. 이들의 언어가 한국문학의 언어특징을 닮았다는 것이 중론인데 이는 한국의 문학어가 도시문명의 시대 우리 문학어를 대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산업화를 실현한 한국이 우리에 한발 앞서 도시문명의 문학어를 이루었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나 한국의 문학어는 도시문명의 특징을 대표하는 매끄러운 언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서구화하여 농경사회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아름다운 고유어가 어려운 외래어, 우리에게는 더구나 생경한 외국어에 밀려난다는 안타까움을 동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가? 일단 도시적인 감각이 담긴 한국의 문학어를 꾸준히 습득해야 한다. 도시화 시대에 ‘촌스런’ 시골언어를 가감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발 앞서 도시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하여 한국의 문학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가령 지나친 외래어 람용이나 신조어를 걸러내지 않은 채 그대로 문학작품에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문학어를 오염시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리기영 시대의 문학어 또한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이를 이어받은 우리 문학선배들의 언어와 더불어 도시화 시대 우리의 새로운 문학어를 확립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현대 삶의 환경에 어울리는 현장언어를 이러한 전통과 결부시켜 정화시키고 재창조함으로써 한국이나 조선의 문학어와는 색다른 우리만의 문학어를 확립하는 것이 우리의 진로가 아닐가 한다. 이것이 변두리에서, 틈새에서 생존해가는 우리 문학의 전략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처:2018 제4호
4    장춘식: 인간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정체성 댓글:  조회:509  추천:0  2019-07-08
인간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정체성 -허무궁의 신작수필 3편 장춘식     허무궁의 수필은 솔직담백함과 ‘점잖은’ 유머 혹은 해학으로 독자를 끈다. 때로는 무거운 인생체험을 해학으로 풀어내기도 하며 거기에 환경의식과 같은 현대를 반성하는 소박한 ‘현대의식’이 가미되여 감동과 심사숙고를 동시에 이끌어낸다. 이번의 신작 3편에서도 그런 특징은 여전하다. 그러나 변화도 있다. 삶과 세상의 본질을 좀더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고저 하는 작가의식이 그것이다.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분량도 여느 수필작품들보다 훨씬 더 많고 서술 스타일 또한 대부분 서사로 되여있다. 어쩌면 한편의 소설작품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거의 완결된 스토리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항상 해학으로 이어지는 여타의 수필작품과는 달리 상당히 무겁고 우울한 빛갈을 던져주고 있다. 주제적 측면에서는 한마디로 ‘아버지’라는 이름 혹은 역할에 대한 반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구조적으로는 , , 라는 세개의 이야기 토막을 하나의 의미 구조에 엮어놓고 있다. 첫토막은 라는 제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작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란의 세월에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토막을 엮어놓은 것인데 그 이야기 자체는 사실 비극적이고 눈물겨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야기 자체의 비극성이나 10년 동란이 우리 사회와 가족에게 남겨준 아픔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런 아버지의 운명이 아들인 ‘나’에게 미친 영향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것이 두번째 토막인 ‘남의 아버지’의 이야기, 아니 정확하게는 아버지 때문에 발생한 한 아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을 버리고 가출을 한 까닭에 어머니는 그 보복으로 아들로 하여금 항상 최고가 되도록 ‘강요’했고 그것이 나중에는 아들의 심리적인 장애를 야기하고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이다. 앞의 이야기와는 여러 측면에서 사뭇 대조적이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어서도 당당한 모범이 되여 아버지의 역할을 했지만 뒤의 이야기에서는 살아있을지도 모를 아버지이지만 가정을 버림으로써 엄마의 복수심을 자극하였고 그것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비뚤어진 기대감을 유발하였으며 아들은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간성을 갖추지 못하게 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토막이다. 작가 자신이 여느 아버지나 다름없는 아버지로서 경험한 인생체험을 아버지가 되였을 때의 책임감과 딸을 출가시키는 이른바 ‘끝나는 아버지’의 심경으로 제시한 것인데 “아버지의 등은 아버지의 마음을 비추는 도광판이며 아버지의 인생을 적어놓은 노트이며 아버지의 책임을 업은 파넬이다.” 라는 작가의 깨달음은 곧 이 세토막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생의 원리요,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아버지로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해야만 자신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작품의 구조적으로 조금 절제되였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삶의 체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동시에 수필전략의 차원에서 체험의 솔직담백한 고백으로 하여 충분히 감동과 공감을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제 다시 이라는 작품을 보자. 요즘 중로년들의 위챗그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생이나 건강 관련 이런저런 ‘비결’들과 비견되는 이 ‘건강비결’은 결국 환경의식에서 비롯된 ‘자연주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볍지만은 않은 화제를 작가는 해학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그럴듯한 건강관리사나 양생의 체험자로 자처하지는 않고 오히려 저 멀리 《동의보감》이라는 조선의 고대 의학서의 저자 허준을 할아버지로 모신 것이다. 자신의 성씨도 허준과 같은 허씨라는 것. 이 정도가 되면 아무리 무거운 화제라 해도 일단 웃음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허무궁의 해학은 여기까지가 아니다. 작품의 곳곳에서 작가는 해학이나 유머를 곁들이며 문제를 풀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허무궁 수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력작이다. 산업화 혹은 후기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현대인이 안고 있는 환경문제를 해학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건강의 비결을 세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에 인체의 질서를 맞추고 자연스럽게 살기, 벌레가 먹는 음식을 달게 먹기, 화초 가꾸듯이 자기 몸을 가꾸기가 그것인데 한마디로 지나치게 인간의 능력 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의 능력만 믿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야 건강하다는 것이다. 십분 정확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리해가 되는 원리를 잊고 살아야 했던가? 과학이라는, 현대라는 허상에 오래동안 습관되여 자연의 섭리라는 근본을 잊은 건 아닐가? 오늘날 우리의 삶을 근본으로부터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라는 작품을 잠간 주목해보자. 본적은 명천군 아감면, 고향은 중국 연변 룡정이고 집은 일본의 동경 그리고 사업터는 중국의 소주나 필리핀인 작가에게 있어 ‘돌아간다’고 할 때는 어디서 어디를 가든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혈통으로서는 단군의 후예이고 중국의 조선족으로 살다가 이제 일본사위를 둔, 일본에 가족이 있는 한 남자! 그리고 사업마저 중국의 소주 한곳이 아닌 필리핀에까지 가서 하고 있는 처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단 하나 “나는 인간이다”라는 정체만 분명할 뿐이니까. 아버지의 의무나 책임감, 환경의식마저도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어디에 살든,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지구땅에 사는 고등동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바로 이 행복을 위해서라도 지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곧 환경의식이요,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허무궁은 유독 환경의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무궁의 이번 수필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여기에 있다.  
3    우파소설과 그 내막 댓글:  조회:1054  추천:0  2009-11-16
  《우파》소설과 그 내막 장춘식   여기서 《우파》소설은 반우파투쟁 당시 《우파》모자를 썼던 작가의 소설이라는 의미와 당시의 기준으로 《우파》적소설 혹은 독초라는 락인이 찍혔던 소설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다 아는바와 같이 1957년 중국에서는 반우파투쟁이라는 무서운 정치적선풍이 몰아쳤었다. 이는 건국후 당의 치명적인 오류의 하나로 지적되거니와 특히 문화분야에 대해서는 더구나 치명적이였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이 정치적선풍의 전말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있을까? 사실 지금껏 《우파》라든지, 《반우파투쟁》이라든지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도대체 그 내막이 어떤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글에서도 자세한 기술을 피하고있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당시 이 정치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은 문단 당사자들의 이러저러한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은듯하다. 이 운동자체와 전혀 무관한 국외인(局外人)의 립장에서 5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이 정치적풍운의 내막을 살펴보는것은 물론 상당히 모험적일지도 모르나 동시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기할수 있지 않을가 한다. 선배들의 아픈데를 직접 건드릴 념려를 슬그머니 자각하면서 그 연막에 가리운 실상을 파헤쳐보도록 한다.                       1. 《백화제방, 백가쟁명》 반년   우선 1957년 2월호 《아리랑》에 게재된 최정연의 글 《개념화, 공식화에 대하여》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 글에는 《이 글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제2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회의에서 발언한것인데 그 요지를 이에 게재한다》는 편자의 말이 앞에 붙어있다. 여기에는 벌써 정치적인 운동과 관련을 맺을 어떤 암시가 내재되어있는듯하다. 최정연은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있다. 《…우리들이 창작해낸 작품들가운데는 인민들의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창조하기 위하여 각형각색의 주관주의, 명령주의, 자사자리, 출세주의, 아첨쟁이들과 싸워나가는 간고하고도 복잡다단한 사상활동과 심리적진상을 힘있게 고동하고 주대있게 반영하지 못하고 단순히 새제도가 우월하고 간부의 령도는 모조리 정확하다는 천편일률의 장대기식 만세만 부른것이 많다. 이 결과는 인간생활의 사실을 외곡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아무런 감동도 일으키지 못하고 근근히 정책문건을 매우 서툴게 해석하는 느낌밖에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문학예술창작상에 개념화, 공식화가 엄중하게 존재하고있다는 것이다.》 이어 최정연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가들의 《맑스레닌주의와 민간문학, 고전작품들을 참답게 학습하는 열조가 높지 못하고 인간생활을 깊이 연구하며 사색하는 태도가 심각하지 못한》것, 사회적압력 즉 령도자들로부터 오는 압력 등으로 분석하고 개념화, 공식화를 극복하고 대담하게 비판적인 시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폭로해야 함을 력설하고있다. 문인으로서 상당히 건설적이고 책임적인 분석이라 할수 있다.   다음,  《아리랑》 4월호에 발표된 허호일의 평론 《농촌현실과 우리 문학������������������〈아버지의 비밀〉과 〈처녀의 래방〉을 중심으로》는 이런 당시의 《백가쟁명》적인 문단성향을 단적으로 반영한 글이라 할수 있다. 그중에서도 평론대상이 된 마상욱의 단편 《처녀의 래방》(1957)은 최정연의 분석에서 비판된 개념화, 공식화의 탈피가 시도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농업집단화가 실현된 새로운 농촌현실을 취급한 작품으로 새로운 농촌현실에서 자라난 새로운 인물������������������〈아버지〉의 아름다운 정신면모를 보여준 작품》인 강철의 《아버지의 비밀》(1957)은 《우리당의 정확한 시책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여실히 말해주고있으며 애국주의적감정으로 독자를 교양함에 있어 의의있는 작품》으로서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분석하기 위해 전제된 작품인셈이다. 허호일의 다음 비판, 즉 《낡은것과 새로운것이 긴장한 투쟁환경에서 심각하고 격렬한 사상투쟁과정에서가 아니라 작가에 의하여 분식된 리상적환경가운데서 그의 주인공은 마치 귀공자처럼 아무런 투쟁도, 아무런 곤난도 없이 순간 사이에 선진적인 인물로 전변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의 형상은 우리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생기없는 인물로 되고있다.》는 관점은 다음의 소설, 마상욱의 《처녀의 래방》의 비판성을 긍정하기 위한 론리적인 전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농촌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주관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악덕현상을 폭로하고 비판한 작품》인 《처녀의 래방》은 어떤 소설이였던가? 이 작품에서는 비록 비판의 대상이 농촌 생산합작사 주임 정도로 낮은 직급이나마 해방후 소설로서는 최초로 주관주의, 관료주의, 교조주의, 명령주의를 문제삼고있다.   소설은 최감찰원을 찾아온 광명생산합작사 처녀 사원이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는 형태로 구성되여있는데 처녀의 말에 의하면 이 합작사의 주임은 주관주의적으로 신풀이한 논에 원자2호 벼종자를 세발모로 내기로 결정했는데 생산대장이고 갑농군인 오령감은 신풀이논에는 산종을 해야 된다고 수차나 주장하고 심지어 과격한 언어를 쓰면서까지 사주임의 주장을 반대하지만 주임은 세발모가 정부의 시책이라면서 끝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가을에는 벼가 채 여물기도 전에 서리를 맞아버린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주임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대신 오령감을 락후분자, 《보수통》이라 몰아대면서 마치 《위만때 관리들이 촌에 나와 우쭐대던 식》으로 을러멨으며 끝내는 생산대장 자리에서 떨궈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 지난해 초중을 졸업하고 농업사에서 일하고있는 처녀와 순애라는 동배 친구가 오령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벼가 상재를 입은다음에는 오령감의 주장이 옳았다고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니 오히려 락후분자를 따라간다며 호된 비평을 받았고 《령도를 신임하지 않는다느니, 개인주의가 농후하다느니, 당정의 지시를 위반한다느니》하는 큰 모자로써 압제한다. 심지어 순애의 애인인 길수에게 순애가 락후분자를 따라다니는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하여 둘 사이의 관계마저 금이 가도록 하였다. 비록 사건의 라렬이라는 비평을 들을만큼 갈등의 형성과 해소의 과정이 단순하기는 하나 이 정도로 관료주의를 소설의 주제로 설정했다는것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다시 말하면 우리 당이 정권을 잡은지 거의 십년이 가까워오는 사이 주관주의, 관료주의가 기층간부에게까지 만연되였다는것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는것이다.   허호일은 평론에서 《문학의 교양적의의는 오직 긍정적, 영웅인물의 묘사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가운데 의연히 존재하는 낡고 부패한것, 우리 인민의 지향과 배치되는 일체 부정적인것들에 대한 비판과 폭로에서도 교양적의의는 강조된다》고 지적하고있다. 그러니까 허호일 평론의 기본취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재현할 때 분식과 허위를 극복하고 진실을 말하여야 한다는것으로 개괄할수가 있겠다. 이것은 상당히 희망적이고 바람직한 문단성향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아리랑》 이해 6월호에는 《〈괴상한 휴가〉에 대한 독자의 반향》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래신 두편을 게재하고있다. 김학철의 단편소설 《괴상한 휴가》(1957)의 주인공 작가 차순기의 립장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된 이 두편의 글은 얼핏 보기에는 독자의 단순한 충동을 반영한듯하다. 왜냐하면 작품속의 내용이 일반 독자의 감정을 건드릴만한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차순기는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작가다. 그는 자기의 대작 《가락지》를 세상에 내놓고 수많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을 때 축하하러 간 《나》라는 사람(차순기를 존경하는 작가)을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으로 대한다. 그리고 중편소설 《서리》가 발표되자 일부 평론가들의 비난을 받았다. 새시대의 인물형상이 엄중히 외곡되였다는것이다. 이때 《나》는 의례 그가 괴로워할줄 알고 위로하러 가는데 뜻밖에도 희색이 만면한 차순기는 한가로이 쏘파에 기대여있다가 허리를 펴며 온화하고도 여유있는 눈길로 그를 맞았다. 차순기의 얼굴에서 고민과 우울의 기분을 찾아볼수 없었을 때 《나》는 그를 더욱 존경하고 그의 큰 인물다움에 감복하고 그 배장을 부러워하며 배우려고 한다. 바람에 휩쓸려다니는 독자와 평론가들의 행위를 통하여 주대가 무너진 사회의 병페를 지적한 이 작품에서 일반 독자라면 오해를 가질수도 있고 또 《독자인 나는 도모지 작가 차순기가 왜 인민군중의 참된 칭찬을 비웃는지 알수 없다. 아니 가소롭다.》1)고 비난할만도 하다. 그밖에 이 글의 편자가 독립적인 평론으로서가 아니라 독자의 반향이라는 형태를 취하고있음도 아직은 정상적인 문단현상이라는 신호를 던져주는것이라 하겠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직 오늘은 이 사람의 간에 가붙었다가 래일은 저 사람의 허파에 가 붙는������������자기의 립장이 없는 그러한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평론가들의 그릇된 평론은 작품의 진가를 말살해버릴 위험성이 있다는것도 나는 긍정한다.》2) 라는 상아리의 판단은 이 독자가 비록 괴상한 휴가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가진다고 밝히고있기는 하나 역시 문단현상의 일반적인 상태를 벗어나지는 않고있다. 심지어 같은 호 《아리랑》의 사설 《대담하게 개방하고 쟁명하자》를 읽고나면 오히려 이것은 아주 희망적인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문화풍토 형성을 기대하게까지 한다. 여기에 그 서두의 한단락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방침은 사회주의의 민족적 새문화사업에 새로운 번영과 무한한 창조성을 가져올수 있는 조건을 지어주었다. 이 방침이 제출된후 불과 9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있어서 연변문학예술사업중에는 많은 새 기상들이 나타났으며 커다란 성적을 걷우었다.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방침은 연변문학예술계의 창작적극성을 크게 제고시켰으며 문학예술일군들의 사업에 대한 신심과 대담성을 증강시켰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설명해준다.   과거 어떤 원인으로 하여 창작사업을 걷어치웠거나 자기의 어떤 문예작품을 감히 발표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마음놓고 창작하며 자기들의 과거 작품을 발표하였거나 발표할 준비를 하고있다. 오래동안 말이 없던 설인동무도 《부르하트강》과 《봄은 어데에》란 두편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김학철동무의 1955년도 작품인 소품문 《호박물뿌리》는 오래동안 편집부 《감옥》에 갇혀있다가 석방되였다.   그러나 역시 같은호 《아리랑》에 실린 김순기의 《〈차순기〉와 나와의 갈래》라는 글을 보면 문단의 흥분은 동시에 어떤 불안과 상서롭지 못한 예감을 동반하고있음을 암시해준다. 김순기는 《괴상한 휴가》의 주인공 차순기와 이름자가 비슷하고 작품에 나오는 《가락지》라는 작품표제가 자신의 《반지》(1957)와 비슷해 오해의 요인을 갖추고있음에 민감해져 자신이 《차순기》가 아님을 변명해둔것이다. 이제 뒤에 닥쳐오는 풍파와 관련시켜보면 김순기의 우려는 지나친 과민증세가 아님을 알수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김순기의 주되는 취지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회피하려는데 있은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김학철의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면서 문예편집자로서 《서리》(1957)라는 김학철의 극본을 깔아둔것을 반성하고있고 특히 《리준의 〈그길로는 갈수 없다〉가 중남에서 대호평을 받은다음 〈문예보〉에서 1954년 2호에 리종의 그것을 개념화, 공식화로 모는 글이 발표된다음 우리의 여기서도 참말로 문예는 우로 올라갈수록 안다고 하며 원래의 초인상을 지워버리는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동년 7호에 강탁동무가 리종의 론문을 반박하는 글이 발표된다음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나두 이상하다고 생각했소〉라고 하는 현상이 있지 않았던가싶다.》고 작품의 의미를 전반 중국문단상황과 관련시킴으로써 자신의 립장을 분명히 밝히고있다. 역시 《대담하게 개방하고 쟁명하자》는 당시의 문단적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다 하겠다.   이어서 발표된 박금숙의 《작자의 립장������������������김동구작 〈개고기〉를 읽고》(1957.9)도 역시 이같은 《백화제방, 백가쟁명》방침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개고기〉는 허무맹동하고 주견이 없는 물우의 갈대같은 비서를 예리하게 풍자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개고기〉가 가지는 풍자적의의는 있다고 본다.》고 론자는 우선 이 작품을 긍정하고나서 다시 《아양을 부리고 주견이 없는 비서의 열성적인 적발이 칠갑이와 같은 선량한 사람을 곤두박질시킬수 있다》는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생활에 대한 외곡》이라 비판하고있다. 그러니까 박금숙의 비판은 여전히 작품이나 문학의 리해에서 비롯된 관점차이를 말해주는것이지 아직 정치적인 몽둥이로까지는 의식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 문단, 나아가서는 중국문단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던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환경이였고 반년정도 유지되였던 이 환경에서 우리 문단에는 작가들의 야심작들이 우후죽순마냥 발표되기 시작했었다. 너무도 짧은 시간이라 수준급의 작품이 몇편 나오지 못한것은 유감이지만 어쨌든 해방후 우리 문학이 처음으로 찬란한 해빛을 보았던 시기임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2. 《반우파투쟁》이라는 정치적몽둥이   그러나 《아리랑》 1957년 10월호에 《반우파투쟁에 총궐기하여 연변문학의 장성발전을 담보하자》는 사설이 발표된후의 상황은 180도로 급변한다.   사설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연변에 있어서도 우파분자들이 당과 문학예술계에 대한 진공은 창궐하였다. 그들은 〈당이 문예를 령도한다는것이 의심스럽다〉고 하며 〈당의 지방조직은 문학을 령도할수 없다〉고 하며, 〈연변에는 쓸만한 작품이 없다. 만세만 부르며 문제를 진실하게 반영못한다〉고 떠벌려대고있다.》 사설은 최정연의 《개념화, 공식화에 대하여》를 직접 과녁으로 잡고있다. 사설은 이어 《우파분자들은 〈순수예술〉, 〈문학의 생명론〉을 부르짖고 〈만세만 부르지 말고 암흑을 쓰라〉고 떠버리면서 로농병을 위해 복무하는 방침을 반대하고있다.》《우파분자들은…개념화, 공식화를 반대한다는 구실로써 자라나는 연변문학의 성취를 말살하고 〈연변에는 정치만 말하는 작품이 많다〉, 〈네모반듯한데 정치만 따넣은 작품보다 문제꺼리가 있는 작품이 더 작용을 일으킨다〉, 〈작중인물가운데의 부정인물이 빛나듯이 사회에 존재하는 부정인물도 빛나는것이다〉고 떠벌리며, 〈과거에는 예술에서 정치를 말하는 때였지만 오늘은 예술을 말하는 때다〉, 〈이제부터는 주제를 말말고 형상을 말해야 한다〉라고 떠벌리면서 문예의 자산계급방향을 적극 내세우려고 미쳐날뛴다.》《우파분자들은 교조주의를 반대한다는 구실로서 문예에 대한 맑스주의 사상지도를 취소하려고 각종 음모활동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는 정치학습을 할 필요가 없다〉, 〈인간만 연구하면 된다〉고 고취한다.》 이렇게 우파들의 언론과 관점에 대해 렬거해놓고 마지막에는 《전체 문예일군들은 굳게 단결하여 이데올로기 전선에서 령도권을 탈취하며 자본주의사회를 복벽하려는 우파분자와의 생사존망의 투쟁에서 계속 심입하여 우파분자들의 진공을 철저히 분쇄함으로써 사회주의 연변문학을 보위하고 화원을 번영시켜야 할것이다.》고 호소하고있다. 반우파투쟁의 행동강령, 혹은 정치적강령인셈이다. 그리고 같은호 《아리랑》에는 《우파분자의 음모를 철저히 분쇄하자》는 표제밑에 허호일, 론자, 주무경, 최형동, 고철, 룡섭 등의 글을 게재하고있는데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사설의 취지를 따른것이다. 주요 비판대상은 이미 우파로 락인찍인 최정연과 그의 언론들이 되고있다. 그리고 동지 동호에는 또 박상일의 《〈개고기〉의 음모》, 리근전의 《〈귀환병〉의 독소를 론합》, 주홍성의 《김동구작 〈개고기〉의 인물������������〈비서〉의 형상과 관련한 몇개 문제에 대하여》, 박관우의 《〈괴상한 휴가〉를 다시 말함》 등 구체적인 작품비판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최정연, 김동구, 김학철은 이제 완전히 우파분자로 락인찍히게 되였다. 3. 《우파》소설의 이모저모   김학철의 《괴상한 휴가》는 앞에서 이미 분석했거니와 그렇다면 여기서 비판받은 소위 《우파소설》 김동구의 《개고기》(1957.7)는 어떤 작품인가? 3천자도 안되는 이 소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서》의 《열성적인》 적발로 하여 성(省)의 어떤 공사 20급 과원으로 곤두박질했던 리철갑은 다시 원래 공사의 주임으로 돌아오던중 길에서 우연히 비서 부부를 만난다. 이때 비서는 거만스레 씨토마저 《철갑이》에 《하게》로 하대하면서 턱을 쳐들고 인사하다가 다시 원직에 복직되어 돌아온다는 말에는 당장 씨토를 《동지》에 《하십시오》로 깎듯이 고치면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자기집에서 마침 개고기를 삶았으니 들어가 식사를 하자고 권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것이 거절당하니 멀리 사라져가는 철갑의 뒤모습에 대고 비서 내외는 또 깎듯이 인사를 한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남 물어먹기를 일삼고 또 상급앞에서 알랑거리는 카멜레온과도 같은 비서와 그 안해를 비꼬고있는데, 여기서 마지막에 개고기를 앉혀놓았으니 함께 식사하자는 비서 안해의 청에 한 철갑이의 대답 《아주머니, 아시다싶이 저는 난생 개고기란 먹어본 일도 없거니와 아예 속에서 받지 않습니다.》는 표현은 이 소설의 표제와 관련지어지면서 주임의 정직성과 비서의 물어먹기 일삼는 근성, 그리고 상급앞에서 알랑거리는 개와도 같은 성격을 잘 표현하고있다 하겠다. 짧은 작품이지만 이야기의 극적설정이 기발하여 성공한 작품이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무엇이 《우파》적이였던가? 박상일의 《〈개고기〉의 음모》의 한단락을 들어보면, 《그는 비서를 통하여 당원이며 당에 충실한 모든 적극분자를 아첨쟁이라고 풍자하였으며 그는 인민대중은 흑백을 가릴줄 모르는 멍텅구리이며 상급당위는 관료주의이며 지방당위는 아첨쟁이의 〈열성적 적발〉에 따르므로 결정적으로 오유를 범하게 된다는(동구식으로 말하면 〈암흑〉이라는) 유치한 론법을 안고 〈당을 대항〉 〈공격〉하려는 어리석은 〈꿈〉을 안고있었던것이다.》《그는 또 주인공 철갑이를 봉건왕조의 반항아였던 〈동방삭〉으로 비유하면서 자기 자신은 우리 시대의 〈동방삭〉으로 가장하고 자기의 정치적야심을 달성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것이다.》 여타 평자들의 비판도 비록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론리이다.   이어 우파로 점찍힌 작가가 김학철이다. 량환준은 《독소가 가득한 소설������������������〈해란강아, 말하라!〉》에서 문학작품의 비평과는 무관한 억지론리로써 《작자는 〈해란강아, 말하라!〉에서 정면인물들에 대하여는 그 약점과 암흑면만 그려놓고는 〈개고기〉, 〈당나귀〉, 〈승냥이〉, 〈개〉에다 비유하였고 반면인물들에 대하여는 그 암흑면을 감추고 비교적 위선적인 면을 내세움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겨놓도록 하려 꾀하였다.》《로동군중을 색정, 물욕, 도적질, 싸움질하는 비루한 추물이며 무사상성한 동물로 묘사하면서 계급대립과 적아모순을 모르고 개인의 리해만을 위하여 움직이는 인간으로 그려놓았다.》《작자의 예술적수법은 사실주의로 가장하면서 퇴페적 자연주의수법을 운용하여 로동인민을 되도록 비렬한것으로 묘사하는것이다.》《작자는 정면인물들을 미워하고 로동인민을 너절한것으로 본 반면에 반면인물에 동정을 기울이면서 자산계급립장에 서서 당을 미워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질시하였다.》고 타매하고있다. 같은호 《아리랑》지에 게재된 박일민의 《〈아리랑〉에 드리는 글》(1957.11)에서는 《아리랑》의 편집방침을 문제삼으면서 1957년도 《아리랑》1~10월호에 실린 작품중 무려 20여편의 소설, 시, 평론, 극본, 잡문을 우파작품, 혹은 독초로 꼽고있다. 거기에 포함된 소설작품은 김동구의 《개고기》(1957.7), 박정일의 《버림받은 생명》(1957.8), 김학철의 《싸움끝에 드는 정》(1957.9), 김순기의 《사주》(1957.9)와 《돼지장》(1957.10)등 5편이다.   이후부터 반우파투쟁은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되는데 《소위 〈령혼〉이 득실거리는 파지������������������최정연과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에 대하여》(《아리랑》1957년12월호)의 경우, 앞에서 이미 론의된 작품에 대해 개괄적으로 비판한후 《괴상한 휴가》와 《개고기》의 속편이라 단정하면서 김학철의 《92전짜리 파리》(1957.8)를 문제삼고있다. 단잠에 들었던 학동이는 파리 한마리를 잡으려고 파리채를 휘두르다가 92전짜리 어항을 깨뜨린다. 혼비백산한 파리는 온데간데 없고, 수리개가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고있었다는 내용의 이 작품에 대해 론자는 학동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김학철의 《학》자와 김동구의 《동》자로 이루어진 두 인물의 련합상이라고 보면서 《〈개고기〉가 나왔을 때, 김동구는 자기의 작품에는 많은 〈파리〉(즉 평론가를 가리킴)들이 달려들것이니 자기는 〈파리채〉를 준비하였다가 잡겠노라고 선언하였다. 김동구의 상전인 김학철은 이 기도를 자기의 〈92전짜리 파리〉로써 실현시켜보려고 꾀하였다》고 비판한다. 《평론가(작품에서는 파리로 형상화되였음)는 학동이의 모진 파리채에 맞아 혼비백산하여 날아났고, 새로운 통치자의 화신인 〈수리개〉가 창공에서 자유롭게 나래치는것으로 대체시켰다》는것이다. 김학철이 이 작품에서 김동구의 《파리》관을 념두에 두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작품평가에서 이런 태도는 문학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것임에 틀림없다.   론자는 이어 김순기의 단편소설 《사주》와 《돼지장》에 대해서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있다. 두 작품은 물론 박일민의 독초메뉴에 이미 포함된 작품들이다. 우선 《사주》에 대해 《명이 짜른 사람은 애당초 투쟁이고 로동이고 뭐고 끈이 자라는 때까지 퍼먹으면서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숙명론과 운명론의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김순기의 단편소설 《사주》는 어떤 소설이였던가?   일흔한살에 난 박령감은 사람이 워낙 총명하여 구학 1년반 공부로 제법 한문을 읽어내여 동네에서는 신제나 푸닥거리도 도맡아 하였다. 그리고 큰소리 잘치는만큼 일솜씨 또한 젊은이들을 찜쪄먹는데 이해 들어 모든것이 심드렁해진다. 사주팔자에 소한으로(최소한) 예순하나, 대한으로(최대한) 일흔하나가 제명인데 금년은 바로 그 일흔한살이라는것이 원인이 되여서이다. 하여 그는 바람 쏘일겸 먼저 현에서 과장노릇을 하는 둘째아들집에 찾아갔으나 그는 성깔이 직통배기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안있고 셋째아들집에 간다. 박령감은 셋째아들이 주에서 국장질을 하는것은 이름자가 31획이고 6으로 나누면 하나가 남기때문이라며 손자들의 이름자도 고쳐준다. 이러는판에 촌에서 맏이가 급병이라는 전보가 온다. 령감은 맏이는 사주에 소한으로 설흔아홉이요, 대한으로 일흔다섯인데 설흔아홉은 좀 앓기는 했으나 이미 넘겼으니 별일없을것이라며 가보라는 로친의 말에 코방귀를 뀐다. 그래도 걱정은 되여서 길을 떠나 먼저 둘째네집에 오는데 맏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에 박령감은 불매증에 걸려 앓다가 섣달그믐날밤 제가 사주에서 본대로 죽는다. 그것을 두고 마을에서는 사주가 틀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건 심리작용이라면서 기실 사주가 그의 목을 졸라죽인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보는바와 같이 이 소설의 주제는 미신타파이다. 이점은 아래의 몇가지점으로 확인된다. 그 하나는 셋째의 이름자가 31획으로 계산되여 6으로 나누면 1획이 남음으로 국장이 되였다고 한것, 다음으로 맏이의 소한이 39세인데 그 위험을 이미 넘긴뒤에 사주대로 75세가 아니라 올해에 급병으로 죽었다는것, 세번째로 신식책을 많이 읽은 김씨가 심리작용으로 삼년고개이야기를 례로 들면서 박령감이 사주자체때문에 심리작용으로 죽었다고 말한것 등. 그러니까 《봉건미신의 정확성, 관념론의 정당성을 선전했다》는 비판은 도무지 근거가 없는것이다. 그리고 농촌령감으로서 특히 글깨나 알고 신문깨나 읽은 령감이 모주석과 중앙에서는 잘하는데 촌에서는 잘못하며 《중앙에서 지시한대로 실시하는 놈이라군 우리 여기에선 한낱도 못보았다》고 하는 주인공의 내심의 말을 리유로 《〈사주〉는 미신사상을 반대한다는 허울을 쓰고 반당, 반사회주의적 사상을 발광적으로 선전했으며 숙명론을 극도로 고취시킨 반동작품》3)라 매도한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김순기의 다른 작품 《돼지장》(1957.10)은 옥녀라는 시골아낙네가 돼지장에 나와서 돼지새끼를 파는 전 과정에 대한 스케치식 묘사를 통해 돼지장의 풍속을 생동하게 그려보인 동시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간의 흥정심리를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여타의 농촌생활을 그린 소설들과는 달리 시골 농민들의 생활을 어두운 색조로 그리고있고 어딘가 근심과 걱정이 엿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어서 오히려 진실성을 획득하고있다 하겠다. 그런데 상기의 평론에서는 《오늘의 농촌현실과 농민을 지독하게 모욕하고있다》고 비판하고나서 《마대에 넣어 메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자루에 넣어서 업고 가는 사람도 있고, 함지나 바구니에 담아서 이고 가는 사람도 있다. 불 까는 사람, 밑을 치는 사람, 돼지의 울음소리, 옥신각신 실랭이질하는 사람 하여 장마당은 소란하고 게접스럽다》는 장마당의 현장묘사를 두고 《그래 오늘 합작화의 길에서 전도양양하게 내달리는 농촌현실이 이처럼 비참하고 농촌 자유시장이 이처럼 소란하며, 생산대 대원들의 생활이 이다지도 가련하단 말인가? 김순기는 이 작품에서 과거 사회 농민들의 가련한 생활환경을 공산당이 령도하는 오늘 현실에서 그대로 중복하고있다고 억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빚받이군으로 장마당에 따라간 사랑집 로친의 형상을 통해서는 공산당이 령도하는 오늘에도 농촌에서는 의연히 서로 뜯어먹으려 하고 아무런 인정도 없다고 비방하였다.》고 악평하고있다.   김학철의 《싸움끝에 드는 정》은 중편소설 《소나기》의 일부라는 설명과 함께 《아리랑》 1957년 9월호에 발표되였는데 김학철이 전공생활을 취재하면서 상당히 깊은 사고를 거쳐 집필한 력작이라 여겨진다.   우선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나기》라는 별명을 가진 우락부락한 성격의 전공 서증손은 승주(전주에 오르는 전공작업)작업을 하다가 발을 다쳐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운수용 마차가 말이 놀라 시내쪽으로 마구 내달아간다. 그는 한쪽 신발만을 신은채 낯모르는 사람의 말을 빼앗아 타고 마차를 쫓아간다. 그 뒤로는 말 주인이 말도적 잡아라 웨치면서 쫓고 사연을 짐작한 명숙이는 신문기자의 취재를 받다가 자전거를 타고 뒤를 쫓고 신문기자가 그 뒤를 쫓고 마차몰이 왕첨지와 림시공 또한 그 뒤를 쫓아 거리에는 쫓기경주가 벌어진다. 결국 놀란 말을 굴복시켜 사고를 피면하지만 마차에 늄선을 싣고가다가 당집(서낭당)앞에서 수렁에 빠지는데 널빤지가 수요되자 소나기는 당집의 널빤지를 뜯어쓰려 한다. 그것을 안 왕첨지는 당집의 호신(여우신)을 믿는 사람이지만 방법이 없어 기도를 드리면서 소나기가 널빤지를 가져오는것을 막지 못한다. 말이 놀라게 했다고, 일을 지체시켰다고 욕을 단단히 먹은 그였던것이다. 왜정때에는 어머니가 불공을 잘 드려도 패가망신을 면치 못했다며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 소나기이다. 그런데 소나기가 당집 널빤지를 뜯어내는것을 발견한 한족농민들이 쫓아와서 왕첨지는 바쁜김에 벽력이 내린 시늉을 하라 해서 소나기가 연극을 꾸밈으로써 화를 면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둘은 다시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소나기라는 인물의 성격을 개성화하면서 신구사회의 엄청난 차이를 대조시켜 보여주고있는 비교적 성공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특히 불공에 열심하던 어머니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간 경력을 가진 주인공이 미신을 믿는 왕첨지의 도움으로 민족간의 오해를 성공적으로 피한다는 발상은 상당히 소설적이다. 조한 두 민족간의 관계문제와 미신자와 무신론자간의 관계문제가 성공적으로 표현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싸움끝에 드는 정〉을 읽고》라는 글에서는 이 작품도 독초로 매도하고있다. 론자는 《〈열명도 더 되는 농민들이 먼지를 보얗게 일구며 추격해오는데 그중에는 삽, 몽치 따위로 무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작자는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있다. 〈…칼춤을 추게!……그렇잖았다간 뭇매질에 뼈다귀도 못건질테니〉 작자는 독자들에게 왕첨지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소나기는 마치 토비와도 같이 형상된 한족농민들의 몽둥이에 맞고 사실을 엄중히 외곡하여 묘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허무하게 소나기를 동정하게 하여 극히 악렬하게 민족간의 모순을 조장하고있다》4)고 악평하고있다.   김학철의 중편소설 《소나기》는 전문이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료해는 이제 불가능하게 되였다. 다행히도 최호의 《반동작품������������������〈소나기〉》(《아리랑》, 1958.1)라는 평문에서 론의되여 반면적으로 그 전모를 짐작해볼수밖에 없다. 론자는 이 작품은 10여만자에 달하는 중편소설이라 소개하고있고 연길시전업국, 승장부를 다니며 오래동안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중국에서 공식주의를 첫번째로 돌파한 걸작》이라 선전하면서 민족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려다 실패하여 《독자들속에 나가서 독소를 산포할수 없게 되였다》고 하였다. 편견이 많이 가첨된것임에 분명하나 소설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이 론자의 글속에 소개된 《소나기》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서증손������������<소나기> 등 전공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있을 때 설계원 현명숙이 나타난다. 그런데 서증손은 처가 죽어서 홀애비로 된 사람이고, 현명숙은 기술원 김균과 약혼한 처지지만 사랑이 그렇게 원만하지 못하였다.》《작자는 차중에서 현명숙을 얼핏 보고 홀딱 반해 쫓아다니는 신문기자와 적극분자 리세권의 담화를 통하여 그들의 래력과 관계를 소개한다. 소나기와 현명숙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업중에서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랑은 끝내 맺어지고만다. 작자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복선으로 하면서, 이 현장의 당,청,공의 책임자인 최승길과 소나기와의 갈등을 보여준다. 최는 보수주의자며 개인주의자인데 주로 아첨분자인 세권의 회보를 듣고, 소나기를 못살게 굴며, 결과에 가서 세권이는 입당시키고, 소나기는 입당시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나기의 분노를 야기시킨다. 작자는 마지막에 가서 최승길을 철직, 조동시키는것으로 하고, 소나기는 그를 환송하는것으로 끝을 맺았다.》   이 내용소개에서 조금만 시점을 바꾸고 거기에 앞에서 론의된 《싸움끝에 드는 정》의 내용을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김학철의 이 작품이 사회주의 기업내부에서 표현되는 보수주의,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아첨분자의 추태를 폭로하면서 성실하고 대바르며 인정에 넘치는 로동자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렸음을 알수 있다. 물론 이와 더불어 당대 젊은이들의 애정에 대한 태도와 조, 한 두 민족간의 관계문제도 표현되였음은 두말할것 없다.   형상의 진실성을 위해 작가는 주인공의 고약한 술버릇과 규정규칙에 대한 불만, 령도자에 대한 불공(不恭), 잘못을 저지른 동료에 대해 매질을 하는 등 흠집들도 감추지 않았고 그 조포하고 무례한 행동의 리면에 숨어있는 성실과 인정을 표현하고있다. 규정규칙에 대해 그토록 불만을 가지고있으나 방화지구로 들어갈 때 리세권이가 라이타를 감춘것을 빼앗아 감시원에게 주면서 《로동계급의 신용을 팔아가며까지야 어디 피울수 있니, 그놈의 담배?》라 동료를 타이르고있고, 소설의 마지막에서 미워하던 령도자 최승길이가 철직당해 자리를 옮겨갈 때 그에게 아첨하던 리세권이는 배웅을 안하지만 소나기는 오히려 호박물뿌리를 선사하며 배웅하는 등의 행위는 거칠면서도 뜨거운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최호의 평문에서는 이 작품을 《오늘의 우리 사회를 비방하며, 로동계급의 형상을 외곡하고, 당을 모욕중상하면서 자기의 반당, 반사회주의적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당화하고, 극구 선전하는 철저한 반동작품》이며 《소설의 주인공 〈소나기〉는 로동자의 외의를 쓴 작자 자신, 억지로 분칠해놓은, 그러나 흉악스러운 본질을 덮어감출수 없는 작자 자신》이라고 력설하고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이 판이한 판단히 나오게 된것일가? 소설에서는 소나기가 자신이 처한 환경의 불합리에 대해 원망할 때 소나기의 애인인 현명숙의 입을 빌어 《…말단의 령도가 글러먹었어요. 보수주의가 글러먹었어요! 구속을 느끼는건 그 까닭이예요!》《창문을 오래 봉해두면 방안의 공기가 탁해져요. 그럴 땐 창문을 활짝 열어제껴야 해요. 그래야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지거던요…》라고 그 원인을 밝혀놓는다. 다시 말하면 당, 단, 공회의 일을 도맡아 보는 현장책임자 최승길에게서 표현된 관료주의와 명령주의, 보수주의를 비판한것이 당을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한 죄명으로 된셈이다. 《사적관계로 공무를 처리하고, 로동자들이 소설을 보는것까지도 나무리》며 말끝마다 《〈공산당의 령도와 배려하에서…〉를 운운하》는 몰인정하고 《제도와 규률만을 강조하》며,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틀에다 박아넣으려 하며 자기면 곧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등 관료주의자의 형상은 당시 상당수의 령도자들의 아픈데를 찔러놓았음은 두말할것 없는것이다.   이렇게 김학철이 우파분자의 모자를 씀에 따라 그의 《괴상한 휴가》, 《해란강아, 말하라!》, 《소나기》, 《뿌리박은 터》, 《고민》, 《승리의 기록》, 《군공메달》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이 빠짐없이 독초로 몰려 집중공격을 받게 되였고 마침내는 창작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고만다.   우파소설의 딱지가 붙었으면서도 별로 론의가 되지 않은 작품은 박정일의 《버림받은 생명》(1957.8)이다. 이 소설은 이 시기 소설 치고는 보기 드물게 순수한 인간성문제를 다루고있다. 할머니, 손자, 며느리, 손자의 이붓아버지라는 특수한 가정관계를 설정하여 전통적인 이붓어미, 이붓아비의 모티프를 리용하였는데, 특히 손자가 불구라는 조건에서 발생한 인간관계의 변화는 어느 정도 새로움도 보인다 하겠다. 그러면서 친자식이 아니고 친부모가 아니라 하여 처의 병신아들과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사내, 그리고 그 사내에게서 아이가 생기자 변질되여가는 며느리를 비난하고있다. 생활적인 이야기로서 이 소설은 원래 이 시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주요 관심거리의 하나로 됨직한 이야기인데 정치운동때문에 너무도 늦게야, 그것도 겨우 한두편이 나왔음은 비극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점이, 즉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암흑면을 암울한 분위기속에 그려보였다는 점이 우파소설의 딱지를 달수 있는 여건이 되였던듯싶다. 그리고 소위 복원군인이 극악하게도 이붓자식을 구박주웠다는 표현도 온통 밝은 사회에 그림자를 던져주었음을 짐작할수 있는데 이상한것은 김순기의 《돼지장》과 비슷한 류형의 이 작품이 별로 특별한 비판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파소설로, 독초의 딱지를 붙인 작품들의 내용과 련관시켜보면 앞에서 이미 살펴본 마상욱의 《처녀의 래방》, 그리고 그후 발표된 정관석의 《뢰관》(1959.8)도 독초의 혐의가 있는 작품인데 론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였음도 당시의 문단환경으로서는 정상적이라 할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당시에는 작품보다는 작가에, 작가중에서도 기성작가, 혹은 전문작가들이 주로 비판의 대상이 되였다는 얘기가 된다. 소설가로서는 당시 가장 활약했던 김학철, 김순기, 김동구가 가장 호된 충격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다수 작품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였고 김용식은 겨우 《밤길》(1957.7)이라는 인간의 물욕을 비판한 단편력사소설을 발표하였음에도 그 작품과는 관계없이 우파분자들과의 관계가 밀접함이 눈에 나서 호된 비판을 받고5) 우파분자의 모자를 쓰게 되였다는 사실 또한 이점을 확인해준다. 4. 리홍규 소설의 경우   리홍규는 1957년도 반우파투쟁 당시만 하더라도 김동구, 김순기나 김학철의 작품을 비판하는 중요한 력량으로 리용되였는데(그밖의 문단인들중 반우파투쟁에서 적극적으로 평문을 발표하여 《독초》를 비판한것도 거개는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서였음을 밝혀두고싶다) 인젠 그 선풍도 다 지나간 1960년말, 1961년초에 다시 우파분자로 지명되여 비판받았다.   우파소설로 비판받은 그의 작품은 《개선》과 《동피사냥》, 《중국사람》 등 세편이다. 리홍규(李弘奎)는 해방초기 우리 조선족의 문화분야에서 중요한 령도직을 맡았던 사람인데 그 역시 김학철, 김순기, 김동구 등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점이 우파락인이 찍히게 하는 기본적인 여건이였던듯하다. 가장 먼저 된매를 맞은 작품은 단편 《개선》(1957)이다.   이 소설은 작가인 《나》가 송림촌에 취재를 나가면서 어떤 농민의 수레에 함께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되였는데 가는 도중 노루가 튀고 꿩이 날았다는 환경묘사와 소를 채질하는 행동, 농민의 표정, 그리고 마지막에 왕보림이라는 한족인이 전에는 박주임과 적대적이던것이 현재는 지지하는 패로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신은 개선하지 말것을 주장했는데 《현에서 온 간부》가 박주임에게 딴 책임을 맡긴다더라는 말을 전해주어 급해난 농민이 소를 채질하며 가는것으로 끝난다. 그외의 내용은 다 이 농민의 얘기로 이루어졌는데 농민은 박주임의 행위를 놓고 부동한 의견, 혹은 외곡된 관점들을 골고루 내놓으면서 그래도 박주임은 흠은 좀 있으나 그가 제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소설에서는 박주임이라는, 항미원조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빈고농단으로 지주를 청산했었고 작년에 주임이 된 농촌 사주임의 모습을 그리고있는데 특히 그 정면과 반면, 즉 오로지 촌민을 위하는 우수한 품성과 원만하지 못한 일처리방법 등의 흠집들을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살아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있어 당시로서는 소설 인물창조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있다. 그리고 《현에서 내려온 간부》의 부당한 작태를 통해서는 당시 이미 자라나기 시작한 관료주의를 표현하고있다 하겠는데 이점이 우파소설로서의 과녁이 된듯싶다. 그래서 박호의 《리홍규의 〈진실〉������������������단편소설 〈개선〉을 비판하여》에서는 작가가 《자기의 정치적음모와 야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산계급의 반동적 안광으로써 우리 사회의 〈암흑면〉, 소위 〈공개하지 못할 비밀〉을 〈대담〉하게 공개한 대표적 작품이다》고 전제하고나서 《변화발전하는 우리의 농촌현실을 악의로써 외곡날조하여 당과 당의 작용을 부인하였으며, 당의 령도밑에서 진행된 토지개혁 등 일련의 정치적운동과 당의 정책, 조치들을 백방으로 비방하였고 우리 시대의 주인공들인 로동인민을 한없이 모함 중상하였다.》6)고 악평하고있는것이다.   《동피사냥》(1959.7)은 리홍규가 반우파투쟁에서 요행 위기를 면하고나서 발표한 첫 작품인데 그때문에 작가는 비판성을 피하고 순수문학적인 시각에서 소설을 구사하고있다. 김덕구와 리팔남이는 청년농민이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항미원조전선에 비행기, 대포를 사보낼 생각이 태양같이 불타서》 동피사냥을 떠났으나 두번이나 눈속에서 길을 잃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결국 헛물만 켜고 돌아온다는 얘기가 전부인데 작가는 소설에서 두 주인공이 끈질기게 죽음과 싸우는 과정을 주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있다. 그리고 말미에 이 이야기가 주인공들에게서 들은것임을 밝히면서 그후 덕구는 또다시 팔남이를 꼬드겨가지고 장백산에 들어갔고 후에 덕구에게 편지로 궁금한점을 물어보았더니 물어본 내용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고 장백산 호랑이를 잡은데 대한 사연을 장황히 써보내면서 편지끝에 《무서운것은 사상》이라고 써놓았더라고 덧붙이고있다. 순수의식에 립각한 이 작품에도 물론 항미원조시기가 배경으로 나오고 거기에 비행기, 대포를 지원한다는 행위의 동기도 들어갔으며 위험과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항미원조전선 전사들의 영웅정신이며 항일련군들의 불굴의 의지를 떠올리는 등 정치적인 면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나 이야기의 전반 흐름은 거기에 문제의식을 둔것이 아니라 인간이 험악한 자연과의 싸움, 그속에서 위험과 허기와 그리고 인간 자신의 공포심을 이겨내는 모습을 문제삼고있다.   얼핏 보기에 정치와는 무관한 이 작품이 우파소설로 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게 아니였다. 이번에는 사회비판의식에서 문제를 찾을수 없으니 자산계급의 인성론의 고취라는 죄명을 들씌우고있다. 박일은 《〈동피사냥〉은 독초다》는 글에서 《자산계급의 인성론적 관점과 자연주의적 예술방법으로써 우리의 위대한 현실과 항미원조운동을 외곡하고 새시대 청년들의 형상을 지극히 추화하고 모욕한 작품》7)이라고 단정한다. 리홍규의 다른 한 력작인 《중국사람》(1959)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 작품이다. 《위만시기 어떤 한족이 한 일본놈의 집에서 머슴으로 있으면서 매우 심한 압박과 착취를 받았었다. 9.3해방이 되자 바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이 한족은 길가에서 그가 압박착취를 당하며 일하여주던 일본놈의 어린애를 만났다. 그는 이 어린애를 안았다가 지난때 당한 일을 생각하고 되버렸다. 그랬다가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그 어린애를 다시 안고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달리는 도중 길가에서 어린애 애비인 일본놈을 만났는데 그 일본놈은 이 한족을 보자 곧 총으로 쏘았다. 총탄은 그의 어깨를 뚫고나가 피를 흘리면서 집에 이르렀다. 집에 다달아보니 안해는 이미 굶어죽었고 다만 자기의 세 아해들만이 남아있었다. 그후 그의 세 아이는 배를 곯고 의복도 몹시 헐게 입었지만 이 일본놈 아이는 잘 먹였고 잘 입혔다. 이로 하여 동리사람들은 그를 욕하였다는것이 전부의 이야기인데 그는 바로 이 한족이 일본 어린애를 부양하는 이 정황을 통하여 소위 〈중국사람〉의 〈넓은 흉금〉을 보여주기 위한것이라고 하였다》8)라는 권철의 내용소개로 보아 현재 우리가 볼수 있는 리홍규의 단편 《중국사람》은 상당히 많은 수정을 거친듯싶다. J탄광에서 《기사후보》로 일하던 조선인 《나》(박씨)가 견증인으로 나오고 주인공은 며칠전에 죽은 조청림이라는 《특수쿠리》의 아버지 조원상으로서 《나》의 전갈에 의해 아들 보러 왔다가 쏘련군의 진공을 만나는것으로 되여있는데 피난도중의 이야기는 원작품과 같으나 수정후의 작품에는 그 구해낸 일본인의 아이를 어떻게 길렀다는 후일담은 없다. 그러나 기본적인 주제는 별로 변화가 없다. 중국인을 벌레 죽이듯 죽이고 심지어 자기를 위해서는 처자식마저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 왜놈십장 하세가와와, 아버지는 철천지 원쑤이지만 그 아이는 죄가 없다며 왜놈의 자식을 구해주고 길러주는 중국인의 행위를 대조시키면서 소박한 인간성을 표현한것이 이 소설의 기본적인 주제가 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의 론자는 《이것은 그가 소위 추상적이며 초계급적인 인도주의와 인간성을 고취하며 계급성과 당성을 부정하는것으로써 계급투쟁을 부인하고 날이 갈수록 소멸되여가는 자산계급의것을 춰세워보려 망상한데 불과하다》고 악평하고있다. 물론 주인공인 중국인의 형상묘사에서도 이런저런 죄명을 끄집어내고있으나 리홍규의 우파소설로서의 본질적인 죄명은 역시 계급투쟁 부정과 인성론 고취에 두고있다. 5. 마무리   이상 분석한 이른바 《우파》소설의 특징은 현실의 암흑면에 대한 비판과 인간성의 표현이라는 말로 요약할수 있을것 같다. 사회비판적인 기능과 인간성의 표현은 사실상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이른바 《우파》소설문학은 해방후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였다고 할수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가능성은 때아닌 된서리를 맞아 파산되고말았다. 우리 문학사 발전의 시각에서 보면 커다란 손실이 아닐수 없다.   리홍규의 작품에 대한 비판을 마지막으로 반우파투쟁도 한단락짓게 된다. 이 반우파투쟁을 거쳐 우리의 소설문단은 완전히 쑥밭이 되며 기성문인들 다수가 우파분자로 락인이 찍혀 문단을 떠나버리고만다. 《아리랑》지가 그나마 된서리속에서 살아남은 일부 기성작가와 신진작가들에 의해 《연변문학》으로 명맥을 잇다가 《응모작품》 등을 통해 신진발굴로도 힘에 겨워 겨우 《연변》이라는 종합지로 전락하고 결국 문화대혁명과 더불어 문예지는 물론 문학작품이 철저히 사라져갔던 사실이 그러한 문단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서 문학은 정치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그러나 순수 정치적인 자대로 문학을 재단하는것은 올바른 문학비평이라 볼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은 해방후 개혁개방이전까지 줄곧 정치적인 기준에 의해 좌지우지되여왔고 이른바 《우파》소설문제도 그런 의미에서 리해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혹 오늘의 신세대들이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울 때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력사이고 문단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력사를 거울로 삼아야만 우리는 좀더 현명해지고 좀더 성숙될수 있기때문이다.
2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 재고 댓글:  조회:1267  추천:0  2009-11-16
  김창걸1)의 소설사적 위치 재고 장춘식 1.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해방 전의 작품을 논의할 때 그 대상 작품은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즉 당시 창작되어 당시의 지면에 발표된 경우(이 경우가 다수임) 당시에 창작되었으나 발표가 되지 않았다가 해방 후에 발표된 경우(윤동주의 시가 이에 해당됨)와 당시 발표되었으나 인멸되었거나 당시 창작했으나 발표되지 못했다가 인멸되어 해방 후에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새로 쓴 경우(김창걸의 작품이 이에 해당됨), 그리고 당시 발표되었다가 해방 후에 다시 수정하여 발표한 경우 등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원칙적으로는 첫 번째 경우의 것이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 통례이고 두 번째, 즉 윤동주의 작품처럼 당대에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당대의 창작품이 확실한 경우에도 어느 정도 연구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세 번째와 네 번째의 경우는 사실상 별로 연구가치가 없고 간혹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과거 우리는 김창걸을 해방 전 우리 소설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로 여겨 찬미의 미사려구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조선족문학사������(연변인민출판사, 1990)에서는 그를 해방 전 소설가로서는 유일하게 다루고 있고 김호웅은 더구나 “‘간도땅’을 토양으로 ‘문화부대’의 영향 밑에 자라난 첫 향토작가이며 평생을 이 땅의 인민들과 운명을 같이 한 우리 문학의 개척자이며 선구자이다.”(김호웅: ������在滿朝鮮人文學硏究������, 국학자료원, 1998) 라고 하여 최고의 평가를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오늘까지도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과거 최서해, 강경애, 안수길, 현경준, 박계주 등 나중에 조선 땅에 나갔거나 일찍 작고한 작가들의 작품을 조선문학의 범주에 귀속시켜 우리 현대소설연구에서는 제외시킨 상태에서 내려진 것이어서 현재의 시점에서는 재고의 여지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한다. 2.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에 대하여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에는 13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지새는 밤」과 「낙제」는 현재 발표 당시의 원문을 찾아볼 수 있으므로 현재 발굴된 작품 7편(원시 텍스트)을 그 11편에 더하면 모두 18편으로서 우리가 김창걸을 소설가로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는 결국 이 18편의 단편소설인 셈이다. 그런데 「暗夜」(즉 「지새는 밤」)와 「靑空」을 제외하면 작품선집 외의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콩트 수준이고, 앞에서 든 김창걸에 대한 평가의 근거로 된 작품은 대부분 1982년에 출판된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의 수록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선집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관건으로 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창걸은 이 작품선집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작품집을 내면서������에서 “그때의 작품 중에서 자서전적 제재의 것은 회상이 되어 스토리를 되살려 정리할 수 있었다. …시대배경도 그렇거니와 사상성도 원래의 것으로 복자(伏字)를 고쳐놓는 정도로 하려 했으나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와 더러는 어색하게 되었다.” 고 적고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원래의 것으로 복자(伏字)를 고쳐놓”은 것이고 어느 정도가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와” “어색하게” 된 것일까가 문제이다.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선집에 수록된 것과 현재 발굴된 원시텍스트 가운데서 상응되는 작품을 찾아야 할 것인데, 현재까지 조사된 데 의하면 이에 속하는 작품은 「暗夜」(작품선집에서는 「지새는 밤」)와 「락제」 두 편뿐이다. 그 중에서 「暗夜」는 “복자를 고쳐놓는 정도”의 수정을 한 듯 거의 원문과 일치한데2), 「락제」는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 아마도 “현재의 것이 섞여들어”온 경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작품선집에 수록된 「락제」와 ������만선일보������에 발표된 「落第」를 비교해보는 것은 작품집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두 작품은 기본적인 줄거리는 큰 차이가 없다. 주인공(사이상)이 벼락같이 용원으로 승급한 용선이의 “거저 먹이면 다 된다”는 말을 듣고 뇌물을 사들고 구미쪼를 찾아가다가 차마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되돌아와 친구들과 그걸 먹으며 “나야말로 천생 락제야. 락제한 덕으로 오늘 저녁은 잘먹는다”고 했다는 것이 「落第」의 줄거리이고; 장호라는 주인공이 일본인 청년들이 쉽게 용원이 된 것을 보고 박이라는 사람의 제안을 따라 뇌물을 사들고 조장을 찾아가다가 되돌아와 그것을 “락제”한 턱이라며 친구들과 먹었다는 것이 「락제」의 줄거리다. 그런데 여기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용원이 된 사람이 「落第」에서는 용선이라는 조선인인 반면 「락제」에서는 일본인 청년이라는 점이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락제」에서는 「落第」에 없는 일본인 청년 둘이 어떻게 장호를 “선생님”으로 부르던 것이 금방 “해라” 계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에피소드를 덧붙이고 있다. 「落第」에서는 그냥 “구미쪼”에게 귤 두 궤와 술 세 병을 사들고 간다고 되어 있으나 「락제」에서는 일본인 조장에게 “코밑에 진상”을 하고자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落第」에서는 불만, 혹은 비난의 대상이 비정상적인 절차로 용원이 된 용선이라는 조선인이고 부패한 조장도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데 비해 「락제」에서는 그것이 일본인으로 확실히 밝혀져 있고 그 일본인 청년들 또한 「락제」에서는 며칠 사이에 “선생님”에게 “해라” 계칭을 쓸 정도로 간사하고 무례하다는 에피소드, 그리고 뇌물을 받아먹는 조장 또한 일본인으로 분명히 밝혀져 있음이 크게 구별된다. 이런 차이에 의해 감지되는 작품의 의미는 물론 반일적 정서이다. 다시 말하면 「落第」의 주제가 “「야마시」판”인 현실에 대한 비판인데 반해 「락제」의 주제는 그런 부패한 세상에 대한 비판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락제」는 그 주제의식에서 「落第」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 된다. 사실상 「락제」의 주제의식은 당대 사회에서는 전혀 공개적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히려 「지새는 밤」(원명 「暗夜」)의 경우가 당대 사회에서는 가능한 소설적 표현이 된다 하겠다.   그 밖의 작품들도 이 「락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당 정도 “현재의 것이 섞여들어”와서 어디까지가 당대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현재의 것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렵다. 가령 “김약천선생이란, …‘독립운동’에 몸바쳐 애써온 애국지사이다.”3)라든가, “이제라도 홍대장부대로 가야 할텐데…”4), 그리고 「전형」(원명 「개아들」) 등 작품에 나오는 일제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 그리고 「강교장」에서의 직접적인 항일의식 표현 등은 모두가 “현재의 것”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무빈골전설」이나 「두번째 고향」, 「어머니의 반생」(원제 「밀수」) 등의 경우는 “현재의 것”이 상당 정도 섞여들어 있으나 당대의 것이 보다 우세한 듯하다. 참고로 분석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빈골전설」에서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약 오륙십년전, 그러니 간도 개척초기의 일”이라고 하여 간도 개척 모티프임을 우선 시사해주고 있다. 김서방이 아내 박성녀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룡정촌에 이주를 가다가 무빈골에 사는 천서방을 만난다. 천서방의 만류로 무빈골에 자리를 잡는데 꾸어먹은 양식과 콩알만한 까만 약을 얻어먹은 것이 화근이 되어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해 반항하다가 총에 맞아 죽고 아내는 자살하여 아들만 남게 된다. 그러나 김서방은 한이 맺혀 혼백으로 나타나 간악한 중국인 지주 무빈 일가에게 복수한다는 것이 단편 「무빈골전설」의 기본 줄거리다. 이주민들이 겪는 고난과 불행의 현장을 생생히 그려 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결말 부분에서 김서방의 혼백이 나타나 복수한다는 모티프는 경향파 작가들의 그것에 맥이 닿아있다. 지주와 소작농의 대결이라는 갈등구조에서 보면 뒤에 살펴볼 「暗夜」와도 맥이 닿는다.   이 작품은 서두 부분에 이야기의 출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이야기는 김약천교장이 하고 박선생이 전하는것이니 나로서는 믿음성있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실지의 목격담인지 전해들은 이야기인지 오늘날 김교장마저 세상뜬 뒤여서 알길 없으나, 이제 원 이야기에 별로 붙이지도 않고 그대로 적는다.” 소위 액자소설의 구도를 갖추어준 것이라 하겠는데, 이는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혼백이 되어 나타난다는 장면을 합리화하려는 구조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야기가 김약천교장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모두의 설명을 감안하면 반일적 혹은 계급적 의식을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김약천선생이란, 간도에서 너무나 이름있는 M학교창립자로서 ‘3.13’이전에 중학교졸업생 8회나 길러낸 교육가이고, 일찍 ‘××회’회장으로 있을 때 쏘련연해주지방에도 드나들면서 ‘독립운동’에 몸바쳐 애써온 애국지사이다.” 라는 설명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복수했다는 이야기의 대목에 가서는, 자기자신은 그런 미신을 믿지 않으므로 꼭 그랬다고 말하기는 점직하나 그대로 말한다고 부언하더라는것이였다.”고 한 것은 앞에서 언급된 허탄한 이야기를 합리화하려는 구조적 수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출처와 관련된 모두의 설명은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총체적으로 보아 「무빈골전설」에서는 이주민의 정착이라는 모티프가 등장하기는 하나 액자 속 이야기의 모두에 “간도 개척초기의 일”라고 제시한 것과는 달리 초점은 오히려 부자와 빈자의 대결에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두번째 고향」에서는 이주민들의 정착과정에 무게가 실려있다 하겠다.   소설은 모두에에서 조선 회령에서 중국 간도에 들어오는 길에 있는 “스물네댓 되는 경철이란 젊은이가 에누리없이 열이나 되는 식구를 데리고 간도땅에 들어와 처음 자리잡은 수남촌이란 마을”을 지리적 위치로부터 주위 환경, 마을의 기본 상황, 거기서도 “간도의 첫학교라고 하는 M학교”가 있어 “간도일대는 말할것도 없고 조선이나 로씨야 연해주에서도 류학생들이 모여들어 매우 성황을 이루고있었다”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개척 초기의 이주민생활은 아니지만 새로 이주해온 주인공, “아직 북상투를 쫓은데다 갓망건을 쓴 젊은 경철이”에 대해 말하면 이주민으로서의 정착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씨그러지다가 괴운 말장에 의하여 채 넘어지지 못한 초가 륙간집”에 경철이까지 열한 조손 “삼대가 옳이거꾸로 누워자는 형편”이다. “참말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사람이 되는가? 그렇다면 타향살이가 몇해일가, 몇십년일가, 아니 몇백년일가―몇백년 산다치고―”5) 이것이 일가를 간도 땅에 이주시키고 나서 주인공 경철이가 느낀 심경이다. 그렇게 간도 땅에 이주를 오게 된 것은 “간도땅은 미운놈 기장밥 주는 곳, 홍두깨같은 강냉이이삭과 베개만한 감자를 먹”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는 이제 더 이상 배를 불릴 수 없는 상황에서다. 그러기에 “왜 강산이 이렇게 다른가? 이쪽에는 송림이 울창하고 양지바르고 한데, 저쪽이 마도강이라고 하지, 왜 저쪽은 저리도 펀하고 뿌옇고 자욱하고 어두운가?” 라는 아버지의 말에 경철이는 “아무려나 우리는 북으로 가게마련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서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얍지우!” “고향이야 어디 살아나기나름입지요. 살면 다 고향이 되는 법이 아닙니까?”6) 경철이의 이 말은 작품의 제2 고향의 주제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간도 땅의 정착은 바로 이 제2의 고향 건설이라는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된다. 원래의 고향을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국 땅에 이주했다면 이국 땅도 역시 제2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2의 고향은 고국 땅에서의 제2의 고향과는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산천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법과 정치도 다르다. 그리고 상대해야 할 이웃도 민족이 다른 이국민이다. 이주한지 얼마 안 되어 뒷따라 이주해온 먼 일가를 유숙시킨 것이 법을 어겼단다. 객주허가를 내지 않고 손님을 유숙시켰다 하여 순경국에 끌려가 벌금 3원에 관청문턱을 넘었다고 하여 “문턱세” 2원 하여 5원이나 물어라고 한다. 겨우 사정하여 3원으로 낮추기는 하였으나 억울함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서 작품의 흐름은 크게 바뀐다. 주인공 경철이가 상투머리를 자르고 M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3.13운동에 참가하며 나중에는 의병에 들어갔다고 한다. 작가가 “현재의 것”이 섞여들어갔다고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작품의 전반부는 개척민의 이민 모티프를 전개해 나가다가 중반부터는 저항의 주제로 전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하면 「어머니의 반생」은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자서전적 제재의 것”이여서인지 주로 당대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인다. 아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하여 계란 장사, 옹기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소금 밀수, 면포 밀수까지 하며 고생하고 수모를 당하던 이야기로 된 이 작품은 당대 사회의 비리와 불합리를 비판했다는 저항적 성격 외에도 이주민으로서, 특히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모진 고난과 불행을 일인칭 기법으로 친근감있게 기술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당대 사회의 비리와 불합리를 비판함에 있어서도 여타의 작품에서처럼 당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표현이 아니라 어머니의 경력과 운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정신사적 가치가 인정된다.   그러나 아무리 “현재의 것”이 적게 섞여 들어온 경우라고 하여도 어느 정도의 정신사적인 가치는 인정할 수 있으나 그것을 당대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왈가왈부하며 작가의 소설사적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김창걸의 해방 전 소설을 논의할 때 현재 확실하게 발굴된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정확한 학문적 자세라 할 것이다. 3. 단편 「暗夜」에 대하여   지금까지 김창걸의 작품을 논의할 때 거의 모든 논자들이 「暗夜」를 김창걸의 대표작으로 꼽고있고 또 해방 전 조선족 소설창작의 가장 큰 성과작으로 평가하고 있다.7) 여기에는 이 작품의 가치 자체 외에도 다른 작품은 당대의 작품이 아니라는 상황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작품구조의 엄밀성이나 표현의 생동성, 주제의식의 전형성 등 면에서 볼 때 ������김창걸단편소설선집������에는 「暗夜」를 능가하는 작품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여도 「暗夜」의 가치는 여전히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여진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선 갈등을 이룬 양대 세력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점, 즉 계급적 대립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나갔다는데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양복쟁이신사보다도 보리마당질에 보리거스러미를 잔뜩 뒤집어쓴 내 얼굴이 고분이에게 더 좋은 것은 회박을 뒤집어쓴 거리계집보다도 보리방아 찧고 보리겨를 담뿍 쓰고 나온 고분이 얼굴이 나에게 더 어여쁘고 더 좋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뾰죽구두 짜리에게 장가 못 갈 것이나 고분이가 양복쟁이한테 시집 못 갈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이긴 하다. 그러니 촌사람은 촌사람끼리,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가 늘 좋은 법이다.”8) 이는 이 작품의 주제를 분석할 때 흔히 인용되는 예문이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형상적으로 잘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다. 특히 작품에서는 그러한 갈등을 주인공인 명손이라는 시골 젊은이의 시점에서 고분이라는 처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관련시켜 전개시킴으로써 보다 리얼리티를 획득하고있다. 이러한 분석은 다수의 평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매매혼인이라는 사건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고 싶다. 즉 고분이는 빚 때문에 외통눈이 남가가 아니면 나이 오십에 아들이 없어 소실로 고분이를 사려는 윤주사에게 팔려가야 할 운명이다. 최령감네 빚을 변리까지 일백오십 원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령감은 딸을 팔아 부자가 되였기 때문에 그에게서 얻은 빚은 도무지 미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응, 네놈의 딸은 궁녀더냐, 선녀더냐, 대감집 규수더냐? 이놈아, 내 돈도 딸을 팔아 모은 돈이다. 네 자식만 딸이더냐? 나두 다리 저는 놈에게 후실루 딸을 줄 때에는 생각이 좋지 못했다. 내 딸은 썩은 호박새낀 줄 아느냐?” 이것이 최령감의 빚을 갚지 않으면 안된 이유가 되는 셈이다. 우리 민족 이주민들이 간도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얼마나 가슴아픈 대가를 치렀는지를 보여준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최령감은 자신의 지난날의 아픔을 또 다른 가난한 사람에게 전가(轉嫁)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갈등이 다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어두운 밤이 밝으면 빛나는 대낮이 되듯이 나와 고분이와의 앞길에도 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밝은 해발이 비쳐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는 어두운 이 밤길을 빨리하였다.” 이는 「지새는 밤」의 결구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성호는 “특히 소설의 주인공 청년 남녀의 야간도주는 비록 그것이 소극적이고 자연발생적이기는 하지만, 그 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부정(否定)하고 현실극복의 자세와 저항적 의지를 표명함에 있어서는 커다란 문학적 의의를 산생시킨다. 그리하여 작자는 야간도주를 하고 있는 그들의 앞길에 밝은 미래를 제시하였던 것이다.”9)고 평가하고있다. 대체적으로 정확한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자세히 따져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연애위기의 해소라는 시각에서 보면 주인공의 행위는 적극적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제기한 가난의 문제, 즉 부자와 빈자의 갈등의 문제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소설은 끝났다. 돈주고 고분이를 사려던 윤주사에게 분풀이를 했다고 하여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반항은 반항이지만 계급적 반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분이가 아니면 그는 또 다른 처녀를 사면 될 것이다. 그러나 고분이가 야밤도주를 하면 고분이네 집에서는 고분이를 팔 수가 없다. 그러면 빚은 여전히 남아있게 되고 계속 갚지 못하면 끊임없이 변리가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최령감은 또다시 딸 팔아 모은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을 칠 것이며 고분이의 아버지는 그것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간단히 야밤도주의 길을 택하고 만다. 야밤도주는 주인공의 단순한 분풀이나 연애위기의 해소에 지나지 않으며 빈자와 부자와의 갈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각한 모순을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 혐의가 보이기 때문이다. 4. 단편 「靑空」에서의 현식인식의 자세 문제   전성호는 김창걸의 「靑空」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소설 「靑空」은 우리 민족 ‘간도’ 이주민들의 극도의 궁핍에 의한 타락의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물론 이 소설은 뒷부분에 가서 당시 ‘만선일보’에서 권장하던 이른바 ‘금연운동’에 야합하여 주인공이 금연을 맹세하고 새 인간이 되려는 정신면모를 보이고 있다.”10) 어떻게 보면 이런 평가가 가능한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원래 “한달에 이십원도 못되는” 월급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골 학교 교사였는데 “돈을 만이 모여서 사회를 위하야 더 조흔 일을 하”고자 “올치 못한 길을 것는 친구를 최후지 채직하는 경춘이”이의 간곡한 만류도 마다하고 교사 노릇을 그만두고 아편장사를 하는 관식이라는 한 마을 친구를 찾아간다.   돈벌이를 떠나는 “나”의 목적은 꼭 금전에 양심을 빼앗긴 것 같지는 않게 보인다. “첫재로 먹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지만은 가정생활에 잇서서 물질적 구속을 밧고서는 사회를 위하야 쥐리만큼도 할 수 업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으로는 몃만 원 돈을 감이 쥐기만 한다면 세상이  놀래인 훌륭한 일을 하리라 생각햇다.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이삼 층 벽돌집에서 술 먹고 게집에 지고 하는 생활을 동경하야 돈을 모흐련다면 차라리 굼고래도 나지 안켓다. 나는 이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는 고사하고 늘 경멸햇든 것이다.” “나는 올흔 길을 위하야는 수단(手段)을 가리지 안는다고 미덧든 것과 가티 돈 모흐는 길을 위하야는 그 수단을 가릴 수 업다고 미덧다. 그것은 모흔 다음에 갑잇게 쓸려는 욕망에서라고 변명햇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하겠다고 하는 “세상이  놀래인 훌륭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돈벌이에 나서서 처음에는 아편장사는 아편쟁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관식의 충고대로 아편을 팔기만 하였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편에 탐닉하여 아편중독자로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내에게마저도 아편을 강요하여 중독자로 되게 한다.   그러던 “나”는 “나”를 아편장사에 입문시켜준 관식이가 아편중독자가 되어 아내를 팔고 자신마저 기차에 치워죽자 재생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집에 돌아왔으나 금연이 여의치가 않자 아내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때의 “나”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다시 살어난다면 첫재 아편금단운동을 하고 십어 어 방법으로 할가는 아즉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업스니---어면 중독자들 맨들가 하는 것은 만이 생각햇으나---알 수 업으나 무조건하고 그것부터 하고 십다.”“천행으로 다시 살어나기를 바랄런지도 모르겟스나 그 한 가닥의 희망은 든든이 부고 잇다. 그러면 이 사회는 나를 다시 용납하여 줄가. 내가 좀먹게 한 이 나라가 나를 바더 용납하여 줄가.”   물론 아편, 즉 마약 흡입 혹은 중독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당시 만주국 전역에 걸쳐 아편중독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였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중독자와 관련된 작품이 상당수 보이는 것은 이를 입증한다 하겠다. 그러나 “내가 좀먹게 한 이 나라가 나를 바더 용납하여 줄가”라는 표현은 당시 만주국의 국책의 하나로 되었던 금연운동에 동조한 흔적이 너무도 뚜렷하다. 특히 「靑空」이 당시 ������만선일보������의 신춘문예에 3등으로 당선된 작품임을 감안할 때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당시 ������만선일보������에서 실시했던 禁煙文藝作品大懸賞募集의 광고문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阿片의 斷禁은 我國 建國以來의 重要 國策으로서 이래 그 完遂에 官民 全力을 傾注하야온 結果 建國第十年을 맞이한 今日 그 成果는 顯著한 것이 있고 國內의 民生은 이로 말미암아 面目을 一新하였습니다. (中略) 建國十周年 紀念事業으로서 排煙拒毒의 警鐘을 울리며 다시 各種의 事業을 計劃하야 最後의 完璧을 期하랴함에 伴하야 本社에서는 本國策에 協力하고자 禁煙文藝作品의 一大懸賞募集을 하기로 되었아오니…(後略)11)   비록 「靑空」이 발표되던 1940년보다는 한 해 뒤인 1941년의 것이어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겠으나 여기서 “阿片의 斷禁은 我國 建國以來의 重要 國策”이라고 한 걸 보면 신춘문예작품현상모집에도 상당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김창걸 자신도 「붓을 꺾으며」에서 언급하고 있다.   원체 나의 작품이 당선된 데는 약간의 곡절이 있었다. 당시 어떤 작품이 당선되는가를 미리부터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현재 당국의 정치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불만을 보여서는 안되고 될 수 있는 대로 썩 좋다고 하면 그럴수록 “합격”된다는 것이다. 이 “진리”를 나는 알고있었으나 그 정도를 딱히는 몰랐다.   아무래도 당선은 돼야 하리라고 생각한 나는 그 “비위”에 맞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표준”으로 원고를 올리 훑고 내리 훑고 하면서 마치 현 사회가 “태평성대”인 듯이 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그런데 한번은 목단강에서, 한 아편중독자-그도 사회운동을 하노라던 사람이 중독자로 되어 헌 마대를 걸치고 다니다가 목숨을 끝맺는 것을 보고 「그의 끝장」이란 작품을 써 신문사에 보내었다. 그런데 신문사의 학예면 사람들에게서 “필봉을 낮추어 쓰라. 발표될 가능성여부를 생각해서 쓰라.”는 편지가 왔다.12)   그리고 작품에 “수일 전에 관식이가 마대양복을 입고 구두를 두 켜레나 훔처가지고 어 모히 파는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혹 「그의 끝장」이란 작품과 소재상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사실상 만주국의 국책에 동조했거나 적어도 “‘비위’에 맞춰” 쓴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겠다. “공립학교로 개편된 후 교장으로 건실히 교육가의 참된 길을 것는 경춘이” 등 여기 저기서 볼 수 있는 체제 협력적인 문구들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된다.13) 5. 기타 소설 작품   이제 남은 작품은 「거울」(������만선일보������, 1940.7.14-16), 「天使와 妖術」(������만선일보������, 1940. 7.19-20), 「소고기」(������만선일보������, 1940.7.21-23), 「“마리아”」(������만선일보������, 1940.8.6-7) 등 네 편인데, 그 중에서 「거울」이 단편소설이고 나머지는 콩트 수준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 중에서도 적어도 「거울」 한 편은 「暗夜」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나긴 여름 여물기전부터 감자알갱이를 파다가 겨우 연명한 최첨지는 가을철을 잡어들어 배고픈 고생만은 그래도 얼마 눅처젓다.” 그러나 세월 덕분에 그만큼 농사가 된 것도 최첨지에게 있어서는 간도 들어와 삼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밧은 말할 것도 업지만 소도 업시 남의 밧을 좀 어더 지은 농사”여서 “일시 먹을 것은 생겻스나 당장 치위는 닥처오는데 헐벗은 몸이 문제다. 아이들지 다섯 씩구 솜옷을 하여입을려면 올 가튼 물건갑으로는 일년농사를 다 팔어도 어림도 업다.”   최첨지 일가가 얼마나 째지게 가난한 살림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 서두의 장면이다. 물론 여기에는 부자와 빈자의 절대적 대결의 국면은 전개되지 않는다. 가난 자체만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어 최첨지는 “소곰과 석냥이 러진 것도 큰문제지만 그 보담도 넉마 견지나 사기 위하야 나무 한 짐을 잔 질머지고 장으로 갓다.” 그러나 소금과 석냥을 사고나니 넝마 견지도 살 여지가 없다. 그는 출출한 김에 호주 한 잔을 걸치고는 세상이 미워져서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망할놈들 가트니라구, 네놈들은 머시게(무엇이) 잘나서 거들거리구 응 돈푼이나 잇스문 다 되는줄 아나? 원 세상이 곤두루 설나니 어 취한다, 취해”   최첨지는 누구에게라고 지정도 업시 장판을 흘겨보고 잇섯다. 세상 사람을 모다 욕하고 리고 물어고도 십헛다.14)   자신의 가난이 사회의 불합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급적 대립은 분명히 제시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만인게”(萬人契)라고 불리는 유민채표를 꺼내놓는다. “웃마울 박주사네두 만인게 썻다가 마저나서 만원을” 탔다는 데 욕심이 생겨 산 것이다. “맑은 하늘에 이 잇지비. 우리네가튼 가난뱅이를 마처 안주문 그래 돈잇는 놈만 마처날텐가” 하는 것이 최첨지의 주장이다. 그러나 복권은 꼴등에도 당첨이 되지 않는다.   “괜히 청에나 싸다 여먹을 걸 일년내 고기리 한 번 못 어더먹는 신세에”   하고 안해는 두덜거리면서 뒷방 아랫목 문지속에 파뭇친 어진 거울을 차자 몽당치마로 한 번 문지른 다음에 최첨지 안해는 불숙 내밀엇다.   “엣수 쎅경(거울)이나 보우. 만원이 꿈으루 굴러들어올 신순가”   “원 이웃말 박주사는 별루 낫든가 흥, 하기는 아래두 이 아랫수염에 어 재물 붓기는 틀렷서”   “벌서 섹경으 밧드문 일원도 안 일헛지비”   결국 가난의 원인은 신수 팔자에 있었던 것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요컨대 가난의 제시라는 점에서는 경향파 문학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으나 그 가난의 원인이 사회적 불합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팔자 탓이라고 한 데서는 계급문학의 흔적을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최첨지가 세계와의 대결에서 취한 태도는 겨우 “(안해와) 서로 처다보면서  모를 웃음을 웃”는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체념, 즉 숙명론적인 현실순응의 태도라 할 수 있다. 「暗夜」의 주제의식에서 한 걸음 퇴보한 것임에 분명하다.   「“마리아”」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는 카페 여급인 마리아와 시골 신사의 엇갈린 인생 태도를 통하여 시골과 도시의 삶을 대결시켜놓고 있다. 물론 마리아의 불행한 운명을 제시함으로써 작가의 지향은 시골의 삶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두 문명의 대결을 주제 해결의 중심에 놓고 있음은 분명하다.   거리의 전등, 자동차, 라디오, 네온, 아스팔트, 고루거각, 파마네트의 물결, 그리고 돈, 돈… 그것들 문에 거리로만 모여드는 이 사나이와 가튼 촌사람들이나 거리의 퇴폐적 생활에 실증은 극도로 늣기면서도 인생의 본향(本鄕)으로 돌아갈 수 업는 자긔나 무엇이 다르랴.15)   두 문명의 대결은 바로 이런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마리아는 여학교 졸업반 시절 최라는 사내와 죽자살자 했고 그와 관계를 가지면서 학교에서도 퇴학을 맞고 집에서도 쫓겨나 그 사내와 살림을 시작했으나 둬달 후에 나타난 사내의 본처에게 쫓겨나 카페의 여급이 되었었다. 그녀는 이제 도시 문명에는 진저리를 느끼며 보리밥을 먹어도, 베치마 입어도, 김을 매면서도, 나무를 베면서도, 파마네트를 못하면서도, 뾰족구두를 못 신어도, “오도꼬”와 연애를 못해도, 즉 도시 문명의 모든 즐거움을 버리고서라도 시골에 가고싶어 하나 갈 수가 없다. “농촌으로 갓섯자 닭의 무리에 병아리가치 되고 말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카페에 온 시골 신사는 마리아 같은 “네에쌍”이 있어서, 즉 인용문에 제시된 도시의 찬란한 유혹이 있어서 “남을 잡지 못해 배만 알는데두”, “모든 죄악만이 넘치는 곳이래두”, “매독균이 우글우글 하는 곳이래두” 도시가 좋다고 한다. 인생은 짧은 것이므로 촌구석에서 썩을 수 없으며 순간이라도 극락이나 천당에서 살겠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 도시 문명을 “모든 죄악만이 넘치는 곳”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비판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농촌에 돌아갈 수 없다고 한 점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승급시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록 “촌사람덜은 거리루 못 와서 병나구 지랄”한다고 한 점에서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도시 문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주인공 “마리아”의 타락의 원인이 사회적인 원인에서가 아닌, 개인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되어있으므로 그것을 사회 비판적인 작가적 태도에 연관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정 세태적인 의미가 더 짙다 하겠다.   「天使와 妖術」과 「소고기」의 경우는 더구나 거의 시정 세태소설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소고기」에서는 추석 전날, 전에 이름을 알다가 누구의 소개로 만난 K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자게 되고 다음날, 즉 추석날 아침에 들어온 아침상에 K의 국그릇에는 소고기가 많이 담긴 반면 “나”의 국그릇에는 “소고기 기름 이지 고기점은 겨우 하나 둘 하고 아모리 헤어보아야 에누리 업시  석 점”이 놓여있어서 K가 얼굴이 붉어지고 그 아내의 행위를 “배곱파 울어도 젓을 주고 배불러 울어도 젓을 주는 조선 어머니들의 전통을 그대로 받”은 것이라고 변명하였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남편 사랑 때문에 손님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사회적 의미는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시정 세태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天使와 妖術」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이 둘을 가진 명환이라는 사내가 아내와는 이혼하기로 약속하고 금자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나중에 보니 명환이가 나가고 있는 회사 사장의 맏아들과 함께 활동사진 구경을 갔다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금자는 나의천사가 아니”라 “돈만 잇스면 누구나 안흘 수 잇는 뭇사람의 천사엿”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다시 조강지처에게 돌아간다는 결말에서는 역시 사랑의 윤리를 확인한 것 외의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상의 네 편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전기 작품의 사회 비판적 문제의식이 약화 내지는 사라지고 시정 세태에 빠져버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6.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 규명   이상에서 우리는 김창걸의 해방 전 소설작품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번째 유형에서는 ������김창걸단편소설선집������(해방전편)의 소설사적 가치에 대해 재고해보았는데, 비록 더러 “당대의 것”이 주류를 이루는 작품이 있기는 했으나 다수 작품에 “현재의 것”이 섞여 들어와 1982년 간행 당시 작품으로 가치를 가지는 외에 일부 정신사적인 의미에서 참고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방전 김창걸의 소설사적 위치를 확인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음 김창걸을 논의한 거의 모든 논자들이 중요한 자리에 놓고 분석하고 있는 「暗夜」를 살펴보았는데, 작품 구조의 치밀성과 묘사의 형상성 등 면에서, 그리고 주제적 성향에서의 저항성에서 충분히 인정이 되지만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흠집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별로 논의가 되지 않은 단편소설 「靑空」을 분석해보았는데, 만주국이라는 일제 괴뢰정부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체제 순응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滿鮮日報������에 발표된 기타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 일부는 「暗夜」의 연장선상에서 현실 비판적 성격이 더러 인정되기도 하나 다수 경우 시정 세태적인 성향이 짙게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중국 조선족 소설문학이 형성 발전한 시기는 1930년대 중반인데, 이 시기는 일제 통치의 말기에 해당되며, 따라서 이때의 작가로서 철저한 반일적, 반체제적 성향을 지니고 활동한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의 체제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성향을 지닌 작가라 해도 그러한 작품을 발표할 수가 없었다. 문학사, 특히 발표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소설사의 경우 연구 대상은 자연히 지면이나 다른 형태로 공개 발표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당시 발표되지 않은 작품으로 작가의 소설사적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올바른 학문적 태도가 아닐 것이다.   김창걸도 안수길이나 현경준 등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저항적인 작품도 있지만 체제 협력적 혹은 현실 순응적 작품도 있고 순수 시정 세태적인 작품도 창작 발표하였다. 그러니까 김창걸을 해방 전 우리 조선족 소설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로 지나치게 과대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최서해나 강경애, 안수길, 현경준과 더불어 김창걸도 해방 전 우리 조선족 소설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역사적인 기여를 한 작가임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김창걸과 그의 소설작품에 대한 정확한 자리 매김이 되지 아닐까 한다.
1    어두운 시대 생명 존재의 의미-함형수의 시세계 댓글:  조회:2090  추천:0  2009-11-16
  어두운 시대 생명 존재의 의미 ― 咸亨洙의 시세계                                                                                            장춘식   1. 서  론   함형수(1914~1946)가 시작활동을 했던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까지의 10여년간을 우리는 문학사적으로 흔히 일제말 암흑기라고 부른다. 1935년의 카프 강제 해산을 전후하여 민족문학의 사회적 환경은 일제말기라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었고, 따라서 민족주의의 신장이나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족문학의 생존 자체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때 우리 시문학의 전통은 상징주의, 낭만주의, 프로시, 민요시 등 운동을 거쳐 점차 성숙의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모더니즘과 생명파, 청록파, 등 여러 가지 유파와 역량 있는 시인들이 대거 출현하여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문학 전통의 성숙과 일제말기 사회환경에서의 표현의 부자유라는 모순된 상황에서 시인들의 고민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함형수라는 한 시인과 그의 시작품을 이러한 역사적 환경 속에 놓고 가늠하여보면 비록 양적으로 얼마 안 되는 시작품1)을 남기긴 하였으나 현실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고민한 모습은 다른 어떤 시인에 못지 않게 값진 것이라 여겨진다.   함형수는 1914년 함북 鏡城에서 출생하였다. 1935년 함흥고보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가담, 그로 하여 퇴학당한 그는 같은 해 4월, 中央佛敎專門學校 文科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徐廷柱, 金東里 등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생활이 어려워 불교전문학교를 그만두고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 훈도시험에 합격하여 圖們公立白鳳優級學校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3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마음」이 당선되어 정식 등단의 절차를 거치기도 하였다. 만주에서도 교원생활을 하면서 시작활동을 계속하여 ������滿洲詩人集������, ������在滿朝鮮詩人集������2) 등에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해방 후 북한에서 정신 착란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여타의 재만시인에 비해 함형수는 비교적 여러 사람들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3)   김광림은 함형수를 少年趣味의 典型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대부분의 시들이 5행 내외의 짧은 것들뿐이며 「해바라기의 碑銘」을 능가할만한 작품이 없다고 하면서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적 수준을 낮게 평가하였다. 그의 시작품에서 닫힌 세계의 이미지나 囚人意識을 읽어낸 김시태는 함형수가 인간적으로 보나 문학적으로 보나 시대의 압력에 의해 붕괴되어버린 역사의 한 상처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에게는 출발의 의미가 있을 뿐 그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 조규익의 논의가 보다 본격적으로 개진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앞에 든 두 논자들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김시태의 관점에 편중하여 시인의 문학관을 자세히 검토한 동시에 이미지 분석을 통하여 주제적 의미를 이끌어내고 그러한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표현기법까지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함형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생명의 이미지에 담긴 보다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선행연구들을 참고로 하면서 선행연구에서 파악하지 못한 함형수 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좀더 세밀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2. 현실에 대한 공포와 감상주의   현재까지 함형수의 시를 논의하면서 사실상 그의 첫 작품이 되는 「오늘 생긴 일」(1932)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치한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16세 약관의 나이로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는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프로시의 영향이 엿보여 의미를 더해준다. 어느 봄날 한 시골 마을의 진실된 생활 모습을 전경화의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첫 연은 그냥 소년의 눈에 비친 봄날의 시골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데, 2연과 3연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삶의 진솔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三吉이네 아버지 집이 빚 때문에 차압당했다든가, 煙草工場에 다니는 宋아저씨가 “스트라익 密謀” 때문에 ××에 들어간 모양이라 한 것이라든가, 李君이 월사금 6개월 분이 밀려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것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시인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송아저씨가 “스트라익 密謀” 때문에 ××에 들어간 모양이라고 한 것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조직적인 투쟁 모습도 암시되고 있다. 시적인 압축이나 승화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전경화의 표현기법은 오히려 한 마을의 피폐상을 현장감 있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비판적이면서도 감상적인 면은 보이지 않는다.   3년 후에 발표된 「마음의 斷片」(1935)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작품에는 하강적, 퇴영적인 이미지로 꽉 차있다. 화자는 “山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즉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도피하지는 않고 “水晶처럼 차게 되”겠다고 한다. 그러나 “꽃 꺾으러” 갔다가는 “한줌의 샛(芒)대를 꺾어”온다. 항상 패배로 이어지는 삶이다. 그리고 뭔가를 자꾸만 잃어간다. 기러기떼는 울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배도 수평선 멀리 사라진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어디든지 헤매”는 일 뿐이다. 그래서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일생을 “울도 웃도 못하고” 이 세상을 걸어간 사람으로 규정한다. “울도 웃도 못”하는 삶이라는 이미지는 함형수의 시에서 중요한 주제의식으로 표현된다. 「詩」(1935)라는 작품에서 이러한 주제의식은 비뚜로 붙인 “세잔느 한 폭”, “신경과민된 詩人”이 시를 그렇게 비뚜로 본다고 했으나 사실 그것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시각임을 읽어내기 어렵지 않다. 「마음의 촛불」(1935)에서 화자는 “밤 되어야 눈뜨는/가련한 이내 몸이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밤에만 자기 자신이 된다. 낮은 이때 부정의 존재다. “눈부신 아침 태양”을 화자는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화자에게 있어서 낮과 밤은 거꾸로 받아들여진다. 낮을 부정적인 현실로, 밤을 이상적인 현실로 본 것이다. “黎明을 무서워 떠는/새까만 이 내 눈동자여”에서는 현실에 대응할 수 없는 공포가 표현된다. 「손구락」, 「담뇨」 등에서도 작중의 화자는 현실에 대응할 수가 없어 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리고 “납덩지처럼 무거운 침묵의 세계”를 살고 있다.   1935년을 전후하여 발표한 시들은 상당수가 습작품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위에서 분석해본 작품들도 작품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성숙을 보이지만 주제의식은 센티멘탈적인 면을 많이 노출하고 있다. 암담한 현실에 직면하여 공포에 떨면서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20년대 초반의 낭만주의 시풍을 연상케 하지만 그러한 현실에 대하여 체념하거나 절망적으로 새로운 삶의 추구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직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울도 웃도 못”한다는 화자의 태도와 세상을 비뚜로 본다는 표현은 어느 정도의 비판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3. 생명의 예찬   흔히 시인 함형수 하면 「해바라기의 碑銘」을 떠올릴 정도로 함형수의 대표작으로 「해바라기의 碑銘」을 꼽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 한 편으로 함형수의 시사적인 위치를 규정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유가 빈약하다. 그와 같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들과 또 상당수의 유사 수준의 작품들이 씌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車中快走스켓치」(1935.8)의 경우 처녀작인 「오늘 생긴 일」과 비슷한 전경화의 기법을 이용하면서도 1935년 전반기의 작품들과는 크게 구별되는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말미에 “一九三五, 七七, 午後 一時 南陽到着”이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남양은 당시 조선땅의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였다. 그러니까 화자는 咸鏡線 열차를 타고 南陽 즉 당시 조선과 만주 사이의 국경 도시에 이르기까지의 구간 눈으로 보며 체험한 에피소드를 스케치 식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1   자리를 내여주니 저춤거리다가 안즌 村각시는   될수잇는 대로 나의 視線을 피하러고 애썻다.     4   크다란 村색시 하나 부끄러워도 한하고 국다란 두다리를   잔디우에 뻐더버린채 泰然히 汽車를 처본다.   (이 亂暴하고도 無禮한 過客한테는 禮義가 必要업다고 생각한 게지)     5   논(田)두던에 쉬면서 理由모를 빙글우슴을 車窓에 던지든 얼골 싯거믄村내외.     6   넓다란 新作路를 列을 지어가는 거러지의 一群이 잇다.     7   거츠른 長崎辯의 온나는 늘나의 얼골을 도적질하여 보면서 必要以上으로 어린아이와 짓거렷다.     8   都市와는 퍽 떠러저 잇는가 보아서 바닷가에서 작난치는 계집아히나 사내아히나 샤쓰를 입은 애는 하나도 업다.     9   나어린 보통학교생이 門을 열어주어서 겨우 老人은 便所로 들어갓다.     18   오랜 절도사碑들이 쓸쓸하게 서잇는 고향山이 보인다.   차창 안팎의 전경은 곧 당시 조선 사회의 진실한 모습이다. 윗통을 홀딱 벗은 남녀 아이들, 다리를 퍼더버린 촌색시, 다정한 촌부부 등 차창 밖의 풍경은 자유롭고 고단하나마 생명력을 지닌 조선적 모습이다. “나”의 시선을 피하려고 하는 부끄럼 잘 타는 村각시, 보통학교생의 도움으로 변소에 가는 노인도 조금은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조선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넓다란 新作路를 列을 지어가는 거러지의 一群은 조선 사회의 피폐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차창밖의 세계와 차 속의 세계가 상당히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문명사회와 비문명사회의 대조로 볼 수 있다고 하면 기차 속의 촌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두려워하고 부자연스러운 반면 차창밖의 촌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보다 자연 친화적이다. 그리고 이때 문명사회가 일제 통치하의 식민지 사회라는 사실이 밑바탕에 깔려있어 보다 부정적인 것이 된다. 거기에 어딘가 경박해 보이는 온나(일본 여인?)의 거동이 반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의 총체적인 이미지는 자연 친화적인, 혹은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생명력이다. 거기에 조선적인 분위기가 가미되면서 민족의 생명력이라는 주제의식이 감지되는 것이다.   1) 소년의 천진무구한 이미지   이 「車中快走스켓치」를 시작으로, 혹은 이 작품을 전후하여 시인은 유사 작품을 많이 창작하고 있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소년의 천진무구한 이미지이다.   내만 집에 있으면 그애는 배재밖 電信ㅅ대에 기댄채 종시 드러오질 몯하였다. 바삐 바삐 쌔하얀 운동복을 가라닙고 내가 웃방문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야 그애는 우리집에 드러갔다. 인제는 그애가 갔을쯤 할때 내가 가만히 집으로 드러가 얼골을 붉히고 어머니에게 무르면 그애는 어머니가 권하는 고기도 안넣은 시라지 장물에 풋콩 조밥을 마러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 오랫 만에 한번 식 저의 어머니의 신부럼으로 우리 집에 오든 그애는 우리집에 오는 것이 조왔나? 나뻤나? 퉁퉁한 얼골에 말이 없든 애--- 그애의 일흠은 무에라고 불렀더라?(「그 애--少年行抄」(������시인부락������ 1집, 1936.11.)   「그애: 少年行抄」(������시인부락������ 1집, 1936.11)의 전문이다. 사춘기 소년의 아리송한 연정이 차분히 그려진 산문시이다. 여기서 특히 가난하지만 천진무구한 소녀의 모습이 밝게 그려져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명이 숨쉬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간난이는어머니의잔등에업혀찬란한星座를향하여단풍잎같은양손을내어저었고어두운后園에서늙은할머니가경건히合掌하고來生을믿었다. (「星座」)   어머니의 잔등에 업힌 간난이와 星座, 後園에서 경건히 合掌하고 來生의 평안을 비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다분히 조선 서민의 삶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꿈을 안고 길을 떠나는 소년들의 이미지(「求花行」), 사춘기 소년의 눈에 비친 소녀의 이미지(「橋上의 少女」), 활기차게 자전거를 타는 소년의 이미지(「自轉車上의 少年」), 반딧불을 쫓아다니는 소년의 이미지(「螢火」), 빨간 복숭아의 속살을 먹는 소년의 이미지(「紅桃」) 등은 모두 같은 유형에 속한다. 아직 때묻지 않은 소년 소녀들의 천진무구한 이미지는 어쩌면 암울했던 당시 사회의 현실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서민적인 삶이 있기 때문에 한민족의 정체성은 지켜질 수 있다고 할 때, “少年行抄” 계열의 작품을 시인의 자폐적 혹은 퇴행적 의식의 반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2) 해바라기의 碑銘   제목으로만 보면 이 작품은 죽음을 주제로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무덤 앞”이나 “나의 무덤 주위”라는 이미지가 “碑ㅅ돌”이라는 이미지와 연관되면 당연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죽음은 현재의 죽음이 아니라 미래의 죽음이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죽음은 오히려 보다 강한 생명력의 반어적 표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래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래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 없난 보리 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래기는 늘 太陽 같이 太陽같이 하던 華麗한 나의 사랑 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 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나러 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해바라기의 碑銘: 靑年畵家L을爲하야」(������시인부락������ 1집, 1936.11)   “차거운 碑ㅅ돌”을 거절하고 선택한 “노오란 해바래기”와 “해바래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 없난 보리 밭”, “푸른 보리 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 등 모두 밝고 싱싱한 생명의 존재들이다. 해바라기는 이름 그대로 태양과 직접 닿아있는 생명의 이미지이고, 보리밭은 다분히 한국적인 생명 상징이다. 푸른 작물이라는 일반적인 식물로서의 생명력 외에도 “보릿고개”라는 말도 있듯이 직접적으로 한국인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특수한 존재가 바로 보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는 화자 개인의 꿈, 즉 擴張力을 가진 생명의 상징이다. 거기에 앞에서도 언급했던 “차거운 碑ㅅ돌”로 상징되는 죽음(생명의 다른 형태)의 이미지가 곁들여지면서 생명의 존재가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신시 75년사상 한 편의 시 때문에(그것도 고작 5행짜리에 불과한 것으로) 영원히 시인이라 불리고 또 시인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으로서 咸亨洙를 들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시로 상기 「해바래기의 碑銘」을 들고 있다.4) 그러나 작품이 알려지고 그 작품의 저자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저자에 대한 연구가 행해지지 않았다는 얘기일 뿐이다. 다음, 시만 알려지고 시인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 말의 이면에는 그 시인에게 그 작품 외에 이렇다 할만한 작품이 별로 없다는 의미도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함형수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앞 절의 분석에서 이미 생명력을 지닌 소년의 이미지에 대해 살펴보았거니와 그러한 소년의 이미지에는 원시 상태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다음 항에서 살펴볼 현실과의 대결을 통하여 어려운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확인된다.  3) 탈출을 시도하는 소년의 이미지   찢어진문풍지로쏘아들어오는차디찬바람에남폿불은몇번이고으스러졌다가는다시살아나고.어두운불빛아래소년은몇번이고눈을감고는창백한과거를그리고암담한미래를낮고부수려애썼다.어지로운四壁은괴롭다괴로운침묵속에잠기고.반이나열려진채힘없는숨을쉬는어머니의입술.소년의얼굴은고통으로가득찼었고.소년의두눈은殺氣를띠고빛났다.아아하룻동안의고달픈노동의피로는그래도어머니에게不自然한熟睡를가져왔으며.가엾은어머니의간난이는지금은시들어버린어머니의젖꼭지도잊어버리고귀여운꿈가운데서천진한그얼굴에기뻤던일슬펐던일두나절光景을쫓고있었다.(「回想의 房」 전문)   이 작품의 이미지는 “어지러운四壁은괴롭디괴로운침묵속에잠기고”를 경계로 하여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즉 앞부분에서는 “창백한과거”와 “암담한미래” 그리고 “차디찬바람에” “몇번이고으스러졌다가는다시살아나”는 현실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그 다음은 그런 암담한 현실과 미래 속을 살면서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견디며 절망하지 않는 민초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현실이 암담하고 부정적이지만 서민은 살아있고, 따라서 민족도 살아있다는, 그래서 절망할 수는 없다는 시인의 처절한 믿음이 표현되었다고나 할까.   「무서운 밤」에서는 그러한 시인의 믿음이 현실 부정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사나운몸부림치며밤내하누바람은연약한바람벽을뒤흔들고.미친듣우름치며긴긴밤을눈보라는가난한볏짚이영에모라쳤으나.굳게굳게다치운憎惡의窓에밤은깊어도깊어도한그루의붉은純情의燈불이꺼질줄을모르고.무서웁게어두운밖앝을노려보는날카로운적---은눈동자들이빛났다. (「무서운 밤」)   보다시피 이 작품에서는 띄어쓰기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시작품은 대체로 시인이 <少年行>을 쓰던 1936-1937년경에 보여준 창작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발표연대가 밝혀진 이 유형의 작품은 1937년 1월의 「父親後日譚」이 최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대를 잡아보면 이 시기 시인은 소년시절의 추억을 통하여 어두운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서운 밤」에서 화자는 닫힌 공간에 갇혀있다. 그러나 “하누바람”, “눈보라”, “어두운밖앝” 등 화자를 위협하는 이미지들이 아무리 무시무시하더라도 “한그루의붉은純情의燈불”은 꺼지지 않고 “날카로운적-은눈동자”들을 빛내며 “무서웁게어두운밖앝을노려보”고 있다. 화자는 “굳게굳게” “憎惡의窓”을 닫고 있기는 하지만 체념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으며, 더구나 절망하지는 않는다. 부정적인 현실을 직시하며 증오하며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父親後日譚」에서는 그러한 현실 부정이 보다 적극적인 탈출의 시도를 암시하고 있다.   조-그만房안에가친채시껌은눈섭밑으로눈시울을異常하게번뜩이시며아버지는每日몬테크리스트라는길다-- 란小說을읽으셨다.먼-- 放浪의路程에서받은것은무서운疲勞와깨여진神經과그리고어두운追憶.갈곧도맞날사람도인제는없었다.(父親後日譚」, ������시인부락������ 2집, 1937.1)   이 작품에 관련하여 徐廷柱의 회고는 큰 참고가 된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스무살짜리로 그도 나처럼 소년시절에 咸北 鏡城의 고향에서 學生事件에 主謀하여 감옥 구경을 한 뒤였으며, 그는 또 그와 한 감옥에 갇혀 있다가 獄死했다는 그 아버지의 遺書를 그 洋服 저고리 한쪽 안 포켙에 실로 密封해 지니고 있다고 내게 告白해 주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에게도 보일 수는 없다고 해 내게도 그건 끝까지 보이지 않았다.”5)   아버지는 “눈시울을異常하게번뜩이시며” “몬테크리스트”를 읽는다. 이 소설은 외딴 섬에 갇혔던 억울한 “수인”의 탈출 이야기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방랑으로 피로해지고 깨여진 신경, 어두운 추억만을 가진 “아버지”의 탈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위의 서정주의 회고 내용과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탈출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라는 현실에 대한 부정임을 알기 어렵지 않다. 여기서 화자는 아버지의 모습을 수용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곧 화자와 아버지의 탈출 시도가 일치한다는 말이 된다. 단순한 현실 부정이 아니라 탈출을 염두에 둔, 탈출을 꿈꾸는 현실 부정이어서 적극적이다.   앞에서도 띄어쓰기가 무시된 작품을 살펴보았지만 발표 년대가 분명한 작품으로서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띄어쓰기와 행, 연, 단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대체로 산문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문체적 의미에서 보면 띄어쓰기의 포기는 시에서의 분명한 표현을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희미한, 몽롱한 표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독자의 측면에서 1937년이라는 시점에서 일제의 강력한 문화통제 하에서 보다 강한 현실부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몽롱한 표현을 의식적으로 이용했으리라는 점과 시인의 몽롱한 현실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요컨대 함형수는 「해바래기의 碑銘」을 전후하여 인간의 생명의식을 시의 주제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한 생명의식은 이른바 조선정조라고 하는 민족적 생명력과 연관되면서 암울한 시대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민족의 생존 확인은 현실 부정과 현실에서의 탈출이라는 적극적인 현실 인식으로 이어지면서 이 시인의 시사적 가치를 인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4. 암울한 현실과 민족 생존   함형수가 정확히 어느 해에 만주에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家族」이라는 시를 ������滿鮮日報������ 1940년 3월 1일부에 발표한 것을 보면 이때에는 이미 만주에 정착한 뒤인 것 같다. 같은 해에 발표한 「正午의 모랄」(������滿鮮日報������, 1940.6.30)은 그 이전의 작품들과는 뚜렷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이전의 작품에서도 당시 유행하던 여러 가지 유파의 영향이 감지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실주의적인 창작방법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자동기술법과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작품의 화자에게 있어 모랄은 이제 도덕이 아니다. 어디에도 있고 그래서 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파편같은 이미지들이 난무하며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있다. “모-랄은 웃는다 모-든 눈물뒤에서/모-랄은 운다 모-든 웃음뒤에서” 했을 때 모랄은 역설적으로 존재한다. 행동의 기준으로서의 모랄이 아니다. 자동기술법에 의해 기술된 무질서 속에서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설과 풍자와 불만의 정서다. “모-랄은 계란속의 都市計劃/―계란을 삼킨 D孃의 주동아리” 했을 때 모랄은 풍자의 대상이다. “어디에서도/무수히 무수히/ 지절거리고/不平하고/싸히고/밀려드는/모-랄 모-랄……”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불만과 비판의 정서이다. 거기에 나의 “그라쓰컵속에서” 우는 “시름꼿”과 떠도는 “구름”이 어울리면 시인이 늘 가지고 있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세계에 대한 인식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아미와 같이」(������人文評論������, 1940.10)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다분히 느낄 수 있다. 연결된 의식이나 개념의 파악이 아닌, 이미지의 파편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총체적인 이미지의 느낌은 불만이고 역설이다. 「개아미와 같이」라는 표제는 아스팔트에 넘쳐나는 사람이라는 비유로 쓰인 외에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 다음 나열된 이미지들은 그 개아미와 같이 많은 인간 속의 사연들이다. 「나의 神은」(������만주시인집������, 1942.9)도 같은 유형의 작품으로 역설과 풍자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나는 하나의 손바닥 우에」 오면 왜서 시인이 현실을 역설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지를 확인시켜준다.   나는 하나의 피투성이된 손바닥밋테 숨은 天使를보앗다   時間의 魔術이여 物質이여 몬지 갓튼 感傷이여   天使가 깨여나면 찟어진 空間을 내음새가 돈다   아름다운 皮膚의 湖水여 노래의 忘却者여 깨라   眞理의 빗(光)치여 어두운 寢床이여 돌(石)이여 눈물이여   나는 하나의피투성이된 손바닥우에 異常스러운 天使를 보앗다.           (「나는 하나의 손바닥 우에」 전문, ������만주시인집������, 1942.9)   여기서 天使는 眞理의 상징이다. 현실세계가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이라고 할 때, 부조리에 파묻혔던 진리가 깨어나면 “찢어진 空間”에는 냄새가 돈다. “노래의 忘却者”라고 할 때 진리는 그런 난투장 같은 현실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고 화자는 비분강개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현실세계 속에서 진리는 이상스러워 보인다. 현실이 너무도 참혹함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인은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白衣詞」와 「高麗磁器頌」이 그 증거이다. “白衣”가 백의동포 즉 한민족의 상징임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현실세계의 모든 것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백의는 그저 “고요한 관념 속에서/침착한 思慮를 돌이킬 뿐”이다. 그리고 늘 반성하고 淨潔을 고집한다. 그것이 민족정신일 것이다. 무서운 혼란과 어둠 속에서도 홀로 빛나는 고귀한 정신, 거기에 정숙한 예절과 차디찬 觀照가 잠겨 있다고 했으니 현실이 아무리 비관적이라고 하더라도 민족정신만은 아직도 정히 살아 있음을 시인이 믿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高麗磁器頌」도 마찬가지다. 곡선과 색채를 통해 감지해낸 고려자기에 대한 시인의 극찬은 바로 한민족의 생명력에 대한 확인임에 다름 아니다. “고귀한 思念”이요, “不死의 靈氣”라고 한데서 우리는 그러한 민족적 정기에 대한 암시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민족의 역사와 예술혼에 대한 경도는 곧 민족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놀란 듯 쫓긴 듯 黃昏의 江畔에   옹송그리는 우아한 무리   오오 높다라히 울지도 못하고   검은 땅만 파헤치며   구슬피 코울음 운다.   노을진 핏빛 하늘에   貴로운 뿔 고추들어 사슴아   저무는 아리나리 江畔에   눈 내리감고 초조를 눌러라.   아아 江畔에 해는 깜박 저물었다.   연약한 네 다리   자꾸만 구르지 말고 사슴아   아득한 역사의 흐름에 귀 기울여라.               (「黃昏의 아리나리曲」 전문, 권철교수의 기록에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사슴이다. 황혼의 아리나리라는 강반에서 사슴은 “높다라히 울지도 못하고/검은 땅만 파헤치며/구슬피 코울음 운다” 그래서 화자는 “저무는 아리나리 江畔에/눈 내리감고 초조를 눌러라”고 위안하고는 이제 깜박 저문 후에 “아득한 역사의 흐름에 귀 기울여라”고 한다. 역사는 길며 그 역사에 귀 기울이면, 즉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사회는 섭리에 따라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시인의 믿음일 것이다. 이것을 시인이 살았던(작품의 창작 연도가 밝혀지지 않아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식민지 시대 말기의 현실과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시인이 민족의 미래에 대해 역사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5. 결  론   함형수는 일제말 암흑기에 시단에 나타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체험하며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시인이다. 당시의 시인들이 대개가 그러하지만 그는 너무도 짧은 삶을 살았고 남겨놓은 작품 또한 매우 적다. 그러나 작품이 적다고 「해바래기의 碑銘」 한 편만을 남긴 시인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해바래기의 碑銘」을 전후하여 그는 적잖은 유사 작품을 창작 발표하고 있다. 천진무구한 소년의 이미지를 통해 생명의 원시적 상태를 보여주었고 「회상의 방」, 「부친후일담」 등 작품을 통해서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그 부정적인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현실은 언제나 울지도 웃지도 못할 현실이었고 비뚜로 혹은 거꾸로 된 현실이었다. 그래서 「정오의 모랄」이나 「개아미와 같이」 등을 통해서는 역설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였으나 민족에 대한 그의 인식은 적극적이었고 역사 속에 민족은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은 잃지 않았다.   요컨대 함형수는 어두운 시대 생명 존재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면서 생명에 대한 예찬으로 민족의 생존을 확인하였고 그것을 통해 역사의 공정성을 믿었던 시인으로 우리 시사에 의미있는 자취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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