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의 歸處
http://www.zoglo.net/blog/jinchsh77 블로그홈 | 로그인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120 ]

20    한국의 맛있는 콩국수들... 댓글:  조회:1867  추천:0  2013-07-25
  1 대구 ‘칠성동 할매콩국수’. 여느 콩국수집과 달리 호박, 김 등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esc] 커버스토리 전국 콩국수 맛집 기행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음식의 대표선수는? 냉면!이라고 대답한다면 섭섭해할 음식이 있다. 콩국수다. 시원하고 쫄깃한 면발을 씹고 난 뒤 고소하고 진한 국물을 쭉 들이켜면 여름철 이만한 보양식도 없다. 대구 칠성동 할매콩국수 견과류 들어간 국물 맛 일품 광주 대성콩물 달짝지근한 설탕맛 독특하네     한여름 냉면의 경쟁자는? 콩국수다. 냉면의 인기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찾는 이가 많다. 더위를 날려버리는 동시에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유명세를 탄 콩국수집은 하루 1000그릇 이상 팔아치운다. 일도 아니다. esc가 저자 박정배씨의 추천을 받아 전국 콩국수집 투어에 나섰다. 박씨는 전국을 돌면서 우리 음식의 소중한 맛을 여행한 이다. 콩을 삶아서 걸러 국물 내고, 소금 간을 한 뒤에 면을 담가 먹는 콩국수가 무에 그리 차이가 있겠냐 싶지만 집집마다 그 맛이 다르다.   2 전주 ‘금암소바’. 메밀면이 눈에 띈다.   “9번예, 10번예, 2층에 같이 있으세요.” 지난 18일 오후 1시30분께, 대구시 침산동. 밀려드는 차량 행렬로 골목은 터진 순대 같다. 일부러 점심때를 지나 찾았건만 번호표의 숫자는 16이다. ‘칠성동 할매콩국수’는 유명 맛집의 전형적인 꼴을 갖추고 있었다. 문밖의 긴 줄, 가게 안에 병풍처럼 앉아 있는, 창업자로 추정되는 팔십이 넘은 할머니, 소란스러운 종업원들의 절박한 외침들, 간판에 적힌 ‘신스(SINCE) 1970’. 너무 판에 박힌 풍경에 의구심이 생긴다. 진짜 맛있는 것일까? 할머니는 그저 장삿속, ‘장식’은 아닐까? 이윽고 식탁에 등장한 콩국수. 도도한 황허 물을 퍼와 담은 것 같은 누런 콩국물에 얇고 납작한 면이 바위처럼 푹 박혀 있다. 야들야들한 호박과 김가루가 고명이다. 젓가락을 담그는 순간 후루룩,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합석한 신종호(65)씨는 3년 전부터 단골인데 한결같은 맛에 또 찾는다고 한다. 국물 맛은 고소하다는 표현이 아쉬울 정도다. 면은 소면보다는 굵고 납작하다.   콩국수의 국물은 너무 걸쭉해도, 너무 묽어도 안 된다. 콩죽이 되거나 두유가 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콩 특유의 비린내가 나면 잘못 삶은 것이다. 면과 국물의 조화는 말할 것도 없다.   “옛날에 할 게 없으이, 뭐뭐 그랬지 뭐, 우리 엄마가 솜씨가 있어가 해가지고 잔뜩 주대요. 맛있어, 살다 보니 어려워버려, 그걸 해가지고 살아봐야겠다, 옛날에 배가 고파 나도 먹고 그냥도 주고.” 할머니의 창업 사연은 콩국수만큼 구수하다. 그는 지금도 저녁나절 콩국물 한사발 마시고 들어가 채소나 과일 몇 조각만 먹고 잔다. 새벽 5시면 나와 직접 만든다. 한사코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할머니를 보고 “옛날 어른들은 이름 말하면 하늘에서 빨리 데려간다 생각하세요”라고 아들이 이유를 알려준다. 대기업을 다녔던 아들은 5년 전부터 어머니를 도와 운영한다. 마흔아홉살인 그도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1968년인가, 69년인가 연 것 같은데 그냥 70년에 했다 정했어요.” 고소한 국물의 비법은 콩도 콩이지만 각종 견과류가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아삭한 고추가 김치 대신 나온다. 고명은 아마도 담백한 건진국수가 유명한 경상북도 국수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콩은 경북 영천시의 한 상회가 수매하는 것, 면은 30년 거래한 대구의 한 국수공장의 건면을 쓴다. 국산 콩이다.   3 광주 ‘대성콩물’의 서리태가 들어간 콩국수.   칠성동에서 현재 장소로 옮기면서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꾸준히 방송을 탄 것도 이유다. 50원이었던 콩국수는 이제 7000원이다. 종업원들의 “오(5)요, 마이너스 일(-1)이오” 하는 말이 재밌다. ‘5명 중 한명이 여자라서, 한그릇의 양은 조금 적게 해라’라는 소리다. 대구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콩국수집이다.   부산에는 ‘하가원’이 있다. 해운대구 좌동과 동래구 사직동, 두곳이다. 좌동은 2001년에 하용백씨가, 사직동은 2005년에 형님 하만호씨가 열었다.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동생 용백씨가 먼저 문을 열었다. 콩국물은 같지만 면의 색이 다르다. 좌동은 여느 콩국수집과 비슷한 흰색의 생면이고, 사직동은 찰보리·현미 등이 섞인 생면이다. 국물은 진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럽다. ‘칠성동 할매콩국수’와는 또다른 콩의 세계다. 하씨 형제와 시댁의 음식 맛을 이은 맏며느리 안행숙씨가 전국의 이름난 콩국수집을 다녀보고 개발했다. “닭 육수도 뽑아보고 계란도 풀어보고 깨나 호두도 넣어보고 별의별 실험을 다 해봤죠.” 안씨의 무용담이다.   맛의 고향, 전라도로 넘어가면 콩국수가 다르다. 소금만으로 간을 하는 경상도와 달리 전라도는 여기에 설탕도 들어간다. 이 연유에는 지역민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 있다. 여름철이면 맹물에 달짝지근한 설탕을 타 먹었다. 가난한 이들은 설탕 대신 사카린을 탔다. 달콤해야 맛난 것이었다.   4 ‘대성콩물’ 본점. 오후 4시께인데도 손님이 많다. 광주광역시의 콩국수 강자는 1974년 열고 1986년 현재 위치인 계림동에 자리잡은 ‘대성콩물’이다. ‘콩물’은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식탁에 등장한 콩국수, 색이 사뭇 다르다. 맛깔스러운 노란색이 아니라 검은빛이 돈다. 검은색은 식감을 해친다. 서양요리에 먹물파스타가 있긴 하지만, 이름난 셰프들은 검은색으로 자신의 요리를 뽐내지 않는다. 별 기대 없이 국물을 혀에 옮긴다. 닿는 순간 잇몸이 환호성을 지르고 미뢰(맛세포)가 호기심에 일어선다. 낮은 기대 때문인지 반전의 파고가 높다. 그리 묽지도 않지만 다른 지역의 콩국수처럼 걸쭉하지도 않다. “어린 갓난이가 먹어도 괜찮아야재.” 주인 고영희씨 생각이다. 검은색은 백태 3분의 2와 3분의 1 정도 들어가는 서리태 때문이다. 서리태는 검정콩 중에서 서리가 온 후에 수확하는 콩이다. 일반 콩보다 몇 배 비싸다. 면은 탱탱하다. 부산식 밀면에 메밀가루가 조금 들어간 면이라고 한다. 창업자 전광웅(72)씨의 아들 전재벌(42)씨가 말했다. “2년 전부터 서리태를 넣기 시작했어요. 요새는 건강이 트렌드잖아요.” 그는 이름 때문에 고생깨나 했다. “‘재벌’(財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아 개명할 생각도 했어요.” 대학 때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옛날 커피숍은 안에서 전화로 사람 찾죠. ‘○○씨 계세요’ 하고. 한번은 ‘손님 중에 주전자씨 계세요?’ 하는 거예요. 다음에 걸려온 전화가 저를 찾는데, ‘재벌 계세요?’ 하니 웃음바다가 됐어요.”   방송국 엔지니어였던 그는 7년 전부터 “부모님이 평생 하신 거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돕다가 올해 4월 계림동을 떠나 일곡지구에 2호점을 열었다. 계림동 본점은 초라하다고 말할 정도로 허름하지만 정겨운 풍경은 최고다. 오고 가는 이들이 다 “형님, 형수님”이다.   대성콩물을 처음 열 당시만 해도 광주에는 콩국수집이 없었다. 제과제빵 기술자였던 전광웅씨와 아내 고영희(68)씨는 당시 대중음식점 허가를 받으러 갔다가 담당 공무원에게서 “콩국수가 뭐다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연탄불에 면 삶던 그 시절, 60원에 하루 30~50그릇 팔리던 게 1975년부터 150~200그릇씩 팔렸다. “택시 기사분들 덕에 돈 벌었지.” 고씨의 말이다. 기사들 사이에서 “맛 좋고 싼 집”으로 소문났다. 택시 손님도 데리고 왔다. “날씨가 더우면 하루 500~600그릇, 흐린 날은 100그릇 나가요.” 날씨의 영향이 크다. 본점은 1년 중 4월26일부터 10월 초까지만 연다.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산다’는 말까지 있는 전북 전주에는 넉넉한 콩가루, 큼지막한 얼음까지 떠 있는 ‘진미집’이 유명하다. 관광객이 몰리는 탓에 지역민들은 ‘금암소바’를 더 찾는다. 전주 콩국수의 특징은 면이 일본식 메밀국수에 들어가는 메밀면이다. 이 두 집도 메밀면을 쓴다. 메밀국수집을 겸한 곳이 많아서다. 20여년 전 문 연 금암소바. 주인 황옥주(67)씨가 “설탕 빼드려요?”라고 묻는다. 이왕이면 그 지역 맛 그대로를 느껴보는 게 좋다. 달달한 콩국물 위에는 콩가루가 유쾌한 건달처럼 흐느적거린다.   남도 끝자락 전남 목포시에는 ‘유달콩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39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조성철(65)씨는 콩국수 한그릇에 80원으로 시작했다. 현재 상호만 같은 ‘유달콩물’이 목포에 네댓곳 있다. 충청도권에서는 대전시의 ‘대성콩국수’가 명성이 높다.   서울이라고 이름난 콩국수집이 없는 게 아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진주회관’의 주인 조걸(67)씨는 1962년 90원에 콩국수를 팔았다. “옆에 ‘강서면옥’이 있었는데 잘되는 거예요. 이북 사람들이 많이 왔죠. 이남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뭔가 생각하다가 콩국수를 하게 됐어요.” 당시 강서면옥의 냉면은 80원이었다. 조씨는 하루 3000그릇 이상 판 적도 있다. 면에 콩가루가 섞이는 게 독특한 점이다.   최근에는 벽에 걸린 역대 서울시장의 인사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진주회관의 무궁한 번영을 바랍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진주회관의 콩국수는 정말 명품입니다’, 현재 박원순 시장은 ‘진주회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라고 적은 글귀가 붙어 있다. 누리꾼들은 시장들의 성향이 글에도 나타난다고 화제로 삼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전국 콩국수 맛집 주소   서울   ● 진주회관: 서울 중구 서소문동 120-35   ☎ 02-753-5388, 9500원   충청도   ● 대성콩국수: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1동 67-5   ☎ 042-533-4586, 7000원   전라도   ● 대성콩물: 일곡점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 772-13   ☎ 062-576-5740, 6000원   계림본점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591-1   ☎ 062-227-3672   ● 금암소바: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1동 729-8   ☎ 063-278-0945, 6000원   ● 유달콩물: 전남 목포시 대안동 11-5   ☎ 061-244-5234, 8000~1만원   경상도   ● 칠성동 할매콩국수: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22-38   ☎ 053-422-8101, 7000원   ● 하가원: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891   ☎ 051-702-5511, 6000원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1동 93-39   ☎ 051-504-6468, 6000원
19    한국인과 조선족 왜 싸우나? 댓글:  조회:1742  추천:3  2013-07-22
가끔은 보면 기사가 뜨고나면 바로 한국인과 조선족은 열심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더라. 지금도 조글로 댓글을 보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열띤 싸움을 하고 있는데 왜 싸우지? 리유가 궁금하다.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소수의 언과 행으로 다수를 평가하지 말자는것! 그 소수의 본질이 다수의 본질을 대변할수 없다는것이다.   아웅다웅 싸우는게 정말 바보스럽다. 아니 머저리같다. 아니 같은데 아니라 머저리다. 솔직히 지금이 싸울 때인가?  또 지금껏 싸워왔으면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였다고 본다. 싸움에 열띤 우리들의 모습이 넘 식상해보이지 않는가? 허구한날 인터넷으로 옳거니 그르거니 콩이니 팥이니 하면서 싸울 때인가? 정녕?!   세상이 머라고 해도 한핏줄은 한핏줄이다. 속일것을 속이고 넘길것을 넘기자. 싸우다 죽은 처녀귀신이 찰거마리처럼 덜러붙었는지 눈만 뜨면 치열하고 강력하고 강도가 높은 말로 싸움이나 해대고 싸울 시간이면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할아버지 생각하고 효도하겠다.   조상이 웃는다. 아니 너무 슬퍼서 심장에 서리치는 비수를 꼽는다. 누가 먼저 싸움의 불씨를 던졌다고 변명하지 말라.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나는 법! 머 위안부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한 핏줄끼리 허구한 날 싸움이나 해대는 이 민족이 정녕 어떻게 조속히 해결하겠니? 나라가 강대하고 민족이 강성해야 억울한 위안부할머니들의 怨과 恨을 풀어줄거 아니야? 남들은 위기위식을 갖고 각성하여서 열심히 국력올리는데 민족을 강성하는데 심혈을 몰붇고 있는데 IT가 발달하여서 이렇게 나쁜 쪽으로 이용하라고 생긴것은 아닌것 같다.   바보짓 이제 그만하자. 아무리 감정을 상하게 하는 댓글들이 빗발쳐도 국부적인 소극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한쪽이라도 먼저 참고 넘어가자. 넘어가다 보면은 용서와 화해와 단결할 날이 올거다. 용서하고 지는게 이기는거다. 동네를 그만 웃기고 한핏줄끼리 아웅다웅 치악스럽게 서로 핥퀴는 일상은 그만하자! 현명하고 지혜롭고 따듯하고 선량한 민족이라 자부하면서 살아보자.
18    같은 여자로서 존경하게 되는 그녀 고민정 아나 댓글:  조회:1661  추천:0  2013-07-18
  7년이라는 오랜 연애 끝에 시인과 결혼한 고민정 아나운서는 부군이 강직성척수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초대 손님들이 삶의 지혜를 전하는 코너 '공감의 신'을 통해 털어 놓았는데 결혼 당시에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꿈을 이뤄준 시인 남편, 이젠 내가 그의 꿈이 되겠어요"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나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해주겠다는 선배의 말에 졸업을 마쳤고, 꿈을 이룬 후에 결혼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에 선배의 도움을 받아가며 언론고시에 온 힘을 쏟았다고. 그리고 KBS 아나운서에 합격하자마자 바로 부모님들께 인사를 올리고 결혼 허락을 받았다던 그녀. 그런데 그때 이미 시인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사람을 하루라도 즐겁게 해주자'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그녀가 참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가난한 시인과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고민정 아나운서의 부모님도 존경스럽고 자신의 증세를 잘 알고 있기에 가족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는 조기영 시인도 존경스럽다. 그리고 고민정 아나운서는 그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여서 좋았다고 했다. 잘생긴 남자, 돈 많은 남자, 여러 종류의 남자가 많았지만 존경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남자는 지금의 남편 하나뿐이라고 했다. 바로 '존경'이라는 단어는 이런 곳에 써야 하는 거다. 아울러 그날 같은 자리에서 선우용여 씨가 했던 말씀도 이참에 되새겨 보자. "인생은 머리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 잘못된 것을 봐도 그걸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된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TV에서도 부디 그런 사람들의 따뜻한 얘기를 많이 보고 들을 수 있기를.
17    이런게 사는 재미 (6) 댓글:  조회:1546  추천:1  2013-07-16
친구들끼리 만나서 즐겁게 수다를 떨곤 한다. 들은 아니지만 나름 분위기를 주님하고 즐기는 타입들이여서 곧잘 식당에서 먹군 한다. 그래서 하다하다 한마디 명언이 나오기도 했다. 롱으로 던진 말이지만 사실은 식당나들이를 자제하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만세를 부르는 몇명의 친구들은 늘 한결같다. 이런 거룩한 이유로 모임은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못쓸 습관이 하나 있다. 식당나들이를 하고는 현금영수증을 달라는 병. 쓸데 없다! 따로.. 그냥 모아두다 보면 그달 식당나들이에 얼마나 썼는가를 여실히 알수 있으니 말이다. 어제도 예외는 아니였다. 친구들하고 먹고 계산하고 또 똑같이 현금영수증 달라고 하고 어머나! 사실은 현금영수증 매 한장마다 복권기회가 한차례씩 차례진다. 식당주인한테서 10원을 받고 아까운 5원 몇십장이 황금색 소변으로 변할때 아까운줄 모르면서도 10원 한장이 나오니 좋다하고 다들 난리다. 깔깔깔. 호호호. 대~박하면서.. 가난한 무산계급에 속하는 분들이여서 우리 친구들은 승용차가 없다. 다들 모임하고 헤여질때면 택시를 애용하는데 어떻게 할까? 10원을? 가위바이보해서 진 사람이 쓰기... 이긴 사람이 돈까지 가지면 흥분해서 죽을까봐 진 사람이 돈까지 못가지면 분해서 죽을까봐 우리는 공평차원으로 가위바이보해서 진사람이 돈을 가지기로 했다. 으흐흐흐.... 누가 가지는가는 중요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10원에 깔깔깔 웃고 행복해 하는 우리 우리의 웃음은 아마도 우정에서 온것 같다. 또 작은 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함에서 온것 같다. 사는 재미 넘 있다.  
16    친환경 소재 아웃도어 제품 '땀·냄새·자외선 차단까지' 댓글:  조회:1275  추천:0  2013-07-12
친환경소재를 사용한 아웃도어 제품의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친환경소재는 땀을 빠르게 건조시키고 체취 발생을 억제하며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밀레는 버려진 코코넛 껍질을 탄화시켜 만든 친환경 섬유 ‘코코나(Cocona)’를 사용한 ‘엠블록 코코나 반팔 집업 티셔츠’(8만 5000원)를 출시했다. 코코나는 인체에서 발생한 땀이 미세한 구멍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배출 및 건조된다. 소취 기능 역시 폴리에스테르나 면 소재 대비 약 50배 가량 뛰어나다. 또한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아이더는 커피 원두 찌꺼기 ‘에스카페(S Cafe)’ 소재를 사용한 ‘미네르바 팬츠’(7만 8000원)를 선보였다. 커피 원두 찌꺼기에서 추출한 나노 입자를 원사에 주입하는 형식으로 생산된다. 땀과 같은 수분이 원단 표면에 닿으면 넓게 퍼지면서 흡수, 발산된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건조되고 커피 특유의 탈취 기능이 체취를 조절한다. UV차단 효과가 좋아 야외 활동에 안성 맞춤이다. 네파는 화산재를 갈아 원사를 뽑아낸 ‘미네랄레(Minerale)’ 소재로 만든 ‘시에로 미네랄레 집티’(9만 9000원)를 출시했다. 흡습 속건 능력이 탁월해 땀을 많이 흘려도 끈적한 기운 없이 빠르게 건조시킨다. 미네랄 함유량이 최대 50%에 달해 자외선 차단은 물론이고 포도상구균 살균 기능까지 갖췄다. 아웃도어 제품에 많이 쓰이는 기능성 폴리에스테르 소재 대비 소취 기능 역시 4~9배가량 뛰어나 냄새 걱정도 줄여준다. 트렉스타는 대나무를 원료로 한 천연섬유로 만들어진 ‘모스 팬츠’(12만원)를 선보였다. 청정 자연의 대나무를 원료로 한다. 피부에 닿는 촉감이 부드럽고 정전기 방지 및 흡습 속건 효과가 뛰어나다. 무더운 날씨에 아웃도어 활동을 지속해도 땀과 열감을 조절해준다. 연합뉴스  
15    싸고 시원하고 배부른, 격동기 한국 현대사의 산물 '밀면' 댓글:  조회:1442  추천:0  2013-07-09
↑ [조선닷컴]개금밀면 ↑ [조선닷컴]부산밀면, 가야할매밀면 ↑ [조선닷컴]개금밀면, 부산밀면 세상의 모든 음식은 그 지역 역사와 문화의 결과물이면서 사회를 반영한다. 음식을 보면 그걸 먹는 사람의 내력과 현 실태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밀면 만큼 우리 현대사를 충실히 반영한 음식도 드물다. 어쩌면 밀면은 우리 현대사 그 자체일지 모른다. 한편, 밀면은 저렴한 식재료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해 수익성 높은 외식업 아이템이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드문 외식 메뉴이자 여름철 별미이기도 하다. 냉면과 닮았지만 냉면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밀면은 어떤 음식일까? 밀면, 냉면과 같으면서도 또 다른... 밀면은 면발, 육수, 고명, 양념장(다대기)으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인 국수들처럼 물과 비빔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물과 비빔 중간의 형태도 일부 있음) 면의 주재료는 밀가루다. 면은 밀가루(중력분)에 소량의 감자나 옥수수 전분을 혼합하고 소금을 넣어 반죽한다. 이 때 좀 더 쫄깃한 식감을 내기 위해 알칼리를 첨가하기도 한다. 반죽은 익반죽이나 보통 반죽을 한다. 반죽한 뒤 하루 정도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킨다. 숙성시킨 반죽을 생면으로 뽑아 면으로 만들어서 삶는다. 그러나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는 저절로 숙성이 되는데다 성수기여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숙성을 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밀면 역시 다른 면식처럼 삶은 면을 육수에 말거나 비벼먹는다. 밀면 육수는 소나 돼지 닭의 사골이나 잡뼈로 육수를 낸다. 여기에 양지나 사태, 각종 채소를 넣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업소에 따라 각종 부재료를 더 넣어 개성 있는 맛을 낸다. 특히 소화를 돕고 고기의 잡내를 제거하면서 좋은 향을 내게 하기 위해 계피나 감초, 당귀 등 한약재를 첨가한다. 여름에는 이 육수를 차갑게 냉각시키거나 살짝 얼려서 시원한 맛을 극대화 시킨다. 냉면과 달리 밀면은 물밀면에도 매운 양념장을 고명처럼 넣는다. 밀면에 넣는 양념장(다대기)은 고춧가루, 마늘, 간장, 육수, 설탕이나 물엿, 다진 파, 생강즙, 깨소금, 참기름, 겨자, 후춧가루 등을 배합하여 숙성시킨 것이다. 최근에는 냉면처럼 물밀면에 양념장을 미리 올리지 않고 따로 제공, 기호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업소도 많다. 고명으로는 삶은 달걀이나 지단, 돼지고기, 배, 볶은 오이, 무채를 쓴다. 무채는 식초, 고춧가루, 마늘, 소금, 설탕 등으로 미리 양념을 해둔다. 업소에 따라 참깨를 뿌리거나 고급스럽게 소고기 편육을 얹기도 한다. 밀면은 겨자나 식초, 절인 무채, 오이채 등을 곁들여 먹는다. 신맛과 단맛에 매운 느낌, 이렇게 세 가지 맛이 밀면의 맛이다. 겨울에 먹는 온밀면도 있지만 역시 냉면처럼 차고 시원한 맛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아 여름철 음식 이미지가 강하다. 메밀로 만드는 냉면과는 재료에서 차이가 나지만 먹는 방법이나 시기, 목적이 유사하다. 그러나 밀면은 그 뿌리가 냉면에 닿아있고, 유사점이 많아 냉면의 한 갈래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북식 냉면'과 '미국 밀가루', '부산 입맛'의 만남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밀면도 없었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 부산에도 나름의 국수와 국수 문화가 존재했다. 원래 경상도 지방에는 바지락 육수로 만든 냉면의 일종인 밀국수냉면이 있었다. 또한 부산에는 1940년대부터 쫄깃한 면발과 약간 맛이 짠 구포국수도 있었다. 건면인 구포국수는 특히 장날장꾼들이 주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의 영향과 지리적 특성 탓에 일본의 멸치 국물과 우동도 다른 지역보다 빨리 자리 잡고 있었다. 강원도를 비롯해 기후와 경작 여건이 열악한 산간지역에서는 메밀을 심어 막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부산지역은 당시 메밀보다 고급 곡물이었던 밀을 재배했다. 밀 수확기인 여름이면 메밀막국수가 아닌, 밀막국수를 만들어먹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이전, 부산에는 신식 건면인 구포국수, 바지락 육수로 만든 밀국수냉면, 여름에 수확한 밀로 만든 밀막국수와 일부이긴 했지만 우동 등의 면식 문화가 존재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터지고 이북 피난민이 부산에 상륙했다. 피난민이 가지고 온 보따리 속에는 출신지역의 음식 문화도 들어있었다. 사람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음식 먹고 만드는 법도 들어왔던 것이다. 이때부터 부산 국수는 생소했던 이북 국수와 만나 새로운 면식 문화로 발전한다. 전 신라대 식품영양학과 김상애 교수에 따르면, 경상도 지방에서 이전부터 먹어왔던 밀국수냉면에 꿩고기 육수를 썼던 이북 냉면이 접목되었다고 한다. 원래 면을 말았던 바지락 육수에서 사골이나 기타 쇠뼈 등을 이용한 육수로 바뀌면서 밀국수냉면은 냉면에 흡수되어 밀면으로 명칭이 바뀌어 유래했다는 것이다. 변한 것은 바지락에서 사골이나 쇠뼈로 바뀐 육수뿐만이 아니었다. 면식의 근본인 면발도 바뀌었다. '원래 먹어왔던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은 피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피난민들은 고향에서 먹었던 냉면을 재현하려고 했다. 냉면집을 운영하는 피난민 출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부산에서 메밀을 구하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메밀을 대체할 밀가루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1954년 제정된 미국 공법 480호에 따라 구호물자로서 밀가루가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농산물 가격 안정과 저개발국의 환심을 사기 위한 외교 전략이었지만 배가 고팠던 사람들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특히 부산의 피난민들에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누가 언제 처음 밀면을 만들었다고 특정하기는 어렵다. 1950년대 중후반,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부산지역 면식업계 전체적인 조류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을 그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시기로 보나 지역으로 보나 업주의 출신지로 보나 과 창업자 고 정한금 할머니는 밀면 생성기 1세대의 대표성을 고루 갖추었다. 1953년 피난민이 모여 살았던 부산 우암동에 함북 흥남에서 '동춘면옥'을 운영했던 정한금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내호'는 흥남의 지명이다. 말하자면 고향의 이름을 걸고 냉면집을 연 것이다. 정 할머니는 '동춘면옥'에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국수)을 모두 취급했지만 정작 주 고객인 부산 사람들은 그 맛을 낯설어했다. 1959년부터 구하기 쉬운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함흥식 반죽을 하자 오히려 반응이 좋았다. 함흥냉면보다 덜 질기고 적당히 쫄깃했다. 이북음식도 아니고 부산 전통음식도 아닌 밀면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밀면은 '냉면집'에서 개발해 팔던 음식에서 '밀면집'의 주 메뉴로 자리잡고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 부산에서 밀면은 동네와 업소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 발전했다. 1966년 개점한 , 1970년대 초에 개점한 이 부산밀면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밀면 마니아들 사이에 부산의 3대 밀면집을 가끔 꼽는다. 꼽는 사람 취향에 따라 달라지긴 하나 이 두 집이 포함되는 사례가 많다. 지금은 부산에 수많은 밀면집이 다양하게 분포했다. 그중 연제구 연산9동의 은 3500원에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밀면 맛을 선보인다. 작고 깔끔한 점포에 수수한 차림새의 부부가 손님을 맞이한다. 서민 음식인 밀면의 이미지와 가격과 맛이 똑떨어지는 몇 안 되는 밀면집이다. 서울에서도 뿌리 내린 밀면 전문점 서울 석촌동 밀면은 보통 식당의 사이드메뉴나 고깃집의 후식으로 구성된다. 부산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밀면 만을 파는 밀면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밀면에 대한 인지도가 낮을 뿐 아니라 면식을 한 끼 식사로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식습관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드물게 2011년 4월, 부산 출신 박성륜 씨가 석촌동에 을 열었다. 올해로 개점 3년차에 접어들었다. 부산과는 외식소비 환경이 전혀 다른 점을 인식하고 개점 전에 충분히 밀면의 맛과 조리법을 연구했다. 면발은 계절에 따라 밀가루와 전분의 비율을 유연성 있게 조절한다. 육수는 돼지 사골을 우려낸 국물에 각종 한약재를 넣어 만들었다. 면을 씹을 때 풍기는 당귀 향이 청량한 느낌을 내준다. 비빔 밀면은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매운 비빔장에 겨자와 함께 비벼 먹으면 얼얼할 정도로 맵다. 매출 목표를 높게 잡지 않았지만 개점 첫날 14그릇밖에 못 팔 정도로 성적이 부진했다. 밀면은 계절을 많이 타 겨울철에 손님이 없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차츰 단골이 늘어 매출은 꾸준한 편이다. 찾아오는 고객은 부산 출신과 일반 고객의 비율이 5:5 정도. 이 집은 부산의 현지 밀면 맛을 대체로 충실히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밀면에 대한 고객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모든 고객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 박씨는 현재의 밀면 맛과 콘셉트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가격도 6000원이어서 업소나 고객이나 서로 큰 불만이 없다. 개점 이후 가격 그대로다. 이 집은 제대로 만들면 부산 이외 지역에서도 밀면이 틈새시장 아이템으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고깃집 후식 메뉴로 인기 높은 밀면 밀면은 냉면의 일종이어서 면발이 담백하고 국물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따라서 고기를 먹은 뒤 입가심용 음식으로는 최적의 메뉴다. 메밀에 비해 주재료인 밀가루 가격이 낮고 고깃집에서 나오는 자투리 고기나 뼈로 육수를 낼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깃집 후식 메뉴로 주목받는다. 서울 강남의 어느 중대형 등심 전문점에서는 후식 메뉴(4000원)로 밀면을 설정했다. 직접 뽑아낸 면발에 다섯 가지 한약재와 돼지고기로 뽑은 육수를 부어 만들었다. 편육과 삶은 달걀에 지단과 오이채 다진 양념 등 제법 고명도 푸짐하다. 고객으로부터 어설픈 고깃집 냉면보다 한결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는 평을 듣는다. 요즘같은 여름철에는 살얼음을 살짝 띄워 시원한 맛을 더욱 강조했다. 어느덧 이 집 밀면은 고기 메뉴 못지않은 인기와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간판에까지 밀면을 크게 표기, 업소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기도 수원의 역시 고기를 먹고 나면 입가심용으로 밀면을 제공한다. 이 집은 서비스용 냉면을 조금씩 제공했는데 돈을 받고 파는 식사용 냉면과의 차별화를 생각해서 밀가루 면(밀면)을 개발했다고 한다. 면은 밀가루에 고구마전분 10% 비율로 섞어 반죽했다. 면이 익는 시간도 짧고 면발의 식감도 좋다는 평을 듣는다. 서비스용 밀면의 양이 부족하거나 조금 더 먹고 싶으면 아예 작은 양(3000원)을 주문해 먹을 수도 있다. 고기와는 별도로 식사용 단품 메뉴(6000원)로도 마련했다. 부산시청, 밀면 등 향토음식 육성 꾸준히 지원 밀면의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광역시는 1999년부터 부산향토음식점 지정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동래파전, 돼지국밥 등 13가지 부산 향토음식을 취급하는 업소를 대상으로 부산향토음식점으로 지정, 부산의 관광명소로 육성하고 관광객 유치에 기여하고자 마련했다. 바로 13가지 부산 향토음식에 밀면도 들어있다. 부산향토음식점 선정기준은 향토성, 대표성, 역사성, 위생수준 등 네 가지. 2013년 7월 현재 부산진구의 과 연제구의 두 곳이 부산광역시 공식 밀면 지정 업소다. 부산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되면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우선 향토음식점이라는 표지판을 제작하여 부착해준다. 부산시 차원에서 부산의 대표 음식점으로 홍보물이나 각종 인터넷 등에 홍보할 수 있으며, 한국관광공사나 여행사 등에 추천하여 이용권장을 유도한다. 또한 시설개선자금 융자를 타 업소보다 우선 지원받을 수 있고, 옥내외 외국어 가격표나 위생향상용품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부산시에서도 밀면 육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부산시청 위생정책팀의 조상용 씨에 따르면 밀면을 비롯한 향토음식 지정점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업소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실질적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업소에서는 물품 지원보다 대개 홍보 지원을 원하지요. 그래서 저희도 아파트 홍보지 등 주민 노출빈도가 높은 매체를 선별해서 업소에 대한 홍보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밀면에 대한 인지도가 무척 높아진 것 같습니다." 개선여지 있지만 향후 면식 주류로 등극할 잠재력 보유 북한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졌다는 진주냉면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냉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진주냉면이 평양냉면보다 존재감이 훨씬 미약하다. 이것은 메뉴 자체가 대중화, 일반화, 업소화하기에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진주냉면은 평양냉면보다 식재료가 다양하고 고급스러우며 구하기 어렵다. 조리 과정도 복잡하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결과물인 냉면 자체도 고급스러워져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부담스럽다. 이쯤 되면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식당에서 파는 음식으로는 실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밀면의 미래가 보인다. 밀면은 평양냉면처럼 육수나 고명을 미리 만들어둔다. 여기에 더해 평양냉면보다 더 저렴한 밀가루가 주재료다. 신속하게 조리가 가능하고 고객이 싸게 먹을 수 있는 조건을 밀면은 완벽하게 갖췄다. 이것이 앞으로 면식의 대세를 이룰 지로 모를 밀면의 폭발적 잠재력이다. 그러나 밀면이 아직 부산 이외의 지역에서 맥을 못 추는 것이 현실이다. 저렴한 가격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격이 낮은 음식이라는 이미지도 겸한다. 너무 맵고 짠 맛이 강해 타 지역 사람 입맛에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다. 또 평양냉면 육수처럼 깊은 맛이 부족하고 대체로 단조로운 맛이다. 밀면의 이런 측면들은 밀면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기고= 글 이정훈
14    이런게 사는 재미 (5) 댓글:  조회:1853  추천:0  2013-07-02
한동안 나는 세상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었다. 누구한테 상처를 받은게 아니라 자신이 이기적인 모습에 스스로 놀라고 깨우친게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였다. 자신이 항상 1위였다는 숨겨진 사실에 자신이 상처를 받군 했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다수의 주변 지인들도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다 얼마전에 고민정 아나운서의 감동스토리를 듣고서 아~ 사랑이 있긴 하구나.. 아! 저런게 사랑이구나 하고 감탄하고 나보다 훨씬 어린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했었다. 어쨌거나 잘 나가는 직장 KBS아나운서임에도 불구하고 무수입에 몸에 질병까지 안고있는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 ~ 사랑이란게 있었네!!!있었구나~하고 이 엄청난 사실을 믿게 할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준 고민정 그런 아나운서가 있다는게 그것도 금전만능주의의 우리의 주변 삶에 있다는게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믿을수 있다는 사실도 사는 재미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랑이 없다고 믿는 삶이 훨씬 메마르고 아프고 추운 삶이라는 것을 나는 아니깐..  
13    이런게 사는 재미 (4) 댓글:  조회:1573  추천:2  2013-06-30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자신이 샤워한 후의 모습이 가장 이쁜것 같다. 어제도 샤워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왜 그리도 이쁜지... 참.. 혼자서 웃음주머니 흔들흔들 하더니 음흉한 웃음을 짓고는 혼자서 이쁜 모습으로 한때 짝사랑했었던 강이를 우연히 길에서라도 마주치면 좋겠다하고 발칙한 상상을 하는데 남편님이 물어왔다. 아! 깜작이야!! 속으로 유부녀라는 사실은 잠간 망각하고 제 좋은 생각에 사로잡혔던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어휴~ 남편 몰래 가망가망 힐끔힐끔 앙큼한 생각을 한 그 작은 죄가 두려워서 속에 없는 말을 뱉었다. 남편은 그래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킥킥킥!! 몰래 이런 위험한 상상하는게 꽤는 잼나다는 걸... 아 가끔은 이런것도 재미구나하고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 남편도 못생겼다고 늘 구박하다가도 가끔은 이쁘다고 처주는데 아마도 나처럼?일까??? ㅎㅎㅎ 넘어갈수 있다. 넘어가야 하구.. 생활의 맛내기 양념이니깐..  
12    이런게 사는 재미 (3) 댓글:  조회:1622  추천:4  2013-06-30
며칠전에  점검때문에 회사건물 엘리베터  사용불가한 시간이 잠간  있었다. 회사는 9층이고. 업무차 사람을 만나는 일때문에 한시간 먼저 회사문을 나서고 계단으로 향하는데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우리 회사 리더... 좀 잘 생긴 분.. 면서 나를 회사로 불렀다. 난 간단한 회의라도 있는가하고 어정어정 다시 회사에 들어왔다. 회의라도 하나하고 기다리는데 어머나! 시원한 음료수를 한캔씩 돌리는거였다. 아까 우리 회사 맨 윗분이 들고 왔던 것은 음료수였던것! 9층으로 올라오시는 모습이 머라고 할까? 퇴근하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다주는 그런 분위기라 할까? 작은 감동이 솔솔 불어오고 작은 것이라고 챙겨주려는 리더밑의 한 사람으로 순간 행복해졌다. 유능한 리더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따듯한 리더라는 느낌은 다가왔으니 이런 회사에서 일할수 있다는것 역시 행운이라 생각한다. 고마운 음료수 고마운 리더. 난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못난 사람인데.. 또 조직생활에서도 상처도 많은 사람인데 작은 치유가 된다는 고마움이 밀려왔다. 엄마 말을 빌어본다. 사는 재미..  
11    이런게 사는 재미 (2) 댓글:  조회:1572  추천:1  2013-06-27
아버지는 엄마 없이는 살수 있어도 담배 없이는 못산다는 분이시다. 성격이 강직하고 고집도 엄청 쎄서 누구 말도 듣지 않는 분인데 유일하게 딸들의 잔소리를 잘 들어주시는 분이다. 옷장에까지도 담배 냄새가 배여서 금방 세탁한 옷에서도 담배가 남새  아니 영감냄새가 다분하게 배여있다. 엄마는 지겹다 지겹다 하시더니 피할수 없다면 즐긴다는 셈으로 그 냄새가 있어야 남자 있는 집같다고 하신다. 우리 딸들은 딸들대로 어쩌다 집으로 가면 (엄마하고는 존결토 요를 쓰는데 아버지하고는 이랬슴둥 저랬슴둥을 쓴다) 어김없이 잔소리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허허허 웃으시면서 이놈이 딸들이 오면 시끄럽다하신다. 한번은 효자 아들 오빠가 우리한테 한마디 하였다. 들어보니 그 말도 맞는 말..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바로 한마디 하신다. 엄마도 한마디 하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버지한테 잔소리 안한지도 꽤 오래된것 같다. 오래 맡으라면 싫겠지만 지금은 그리운 담배 냄새.... 
10    이런게 사는 재미 (1) 댓글:  조회:1803  추천:2  2013-06-26
퇴근하면서 좀 먼발치에서 앞건물의 1층 아줌마를 만났다. 하면서 인사를 드렸다. 처음에는 우아하게 표준말로 인사하다가 어느새 나도 본성이 드러난 사투리를 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집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상추 한 묶음 가져온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의 일상이다. 참 작은 행복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더위에 지친 나를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지...  
9    불쌍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댓글:  조회:2460  추천:6  2013-06-14
연길이라는 이 곳에 있어보면 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슬픈 도시구나하는... 말 그대로 부모 손길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애들이 많고 오히려 량부모하고 지내는 아이들이 보면  더 희소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죽어가는 도시만은 아니였던 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부모 못지 않게 이뻐하고 사랑해주는 우리의 부모님들 즉 아이들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계시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나치게 헌신적인 우리의 부모들이 계시기에 이 곳을!  연길이라는 이곳을 또한 따듯한 도시라고 말하고도 싶다. 다만, 부모하고 떨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불쌍하다고 말하는 그런 일상은 이제는 그만할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태여난지 3달만에 부모하고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들, 이런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사회에 호소해온지도 십년은 더 되지 않는가? 아무리 애원하고 호소하고 달래봐도 달라진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무원 아니고 사업하는 사람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는 일은 비일비재 오늘도 연길 공항은 눈물의 이별드라마 재연되고 있지 않는가? 엄마곱니 아빠곱니 우리우리 같이 살자야  눈물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세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럴바에는 우리 이제 떠나가는 부모들을 질타 혹 만류하는 그런 길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함은 어떠할까? 자살이나 우울증은 전염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혼자 뛰다가 넘어진 아이에게 아프지 않니 하면서 가슴쓰리게 걱정해주면 아이는 울면서 아프다고 한다. 또 넘어진것을 보았지만 모르는척 넘어가면 아이는 아이대로 일어나서 다시 씩씩하게 뛰여가기도 하니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넌 불쌍한 아이다 라는 상념이나 기분을 심어주지 말고 차라리 용타 참 잘한다. 참 용감하다. 이런 말도 아이들에게 희망과 따듯함을 심어주는게 더 아이의 삶에 리롭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일찍 리혼하고 아빠하고 사는 소학교 5학년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너무나 밝은 모습이다. 아빠도 돈벌러 한국으로 가고 없는데도 말이다. 좋슴까? 무작정 물어보면 좋다고 생긋생긋 웃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단짝 친구 아무개는 5년동안 부모얼굴 한번도 못봤다는 것이였다. 자기는 그래도 2년전에 아빠를 봤다면서 단짝 친구에 비하면 자기는 행복하다면서 말이다. 듣는 내가 가슴이 아프지만 어쨌거나 가슴이 아플뿐 이상이하 해줄게 없다는것이다. 또  제3자인 내 마음이  아프도록 불쌍하다하여 부모심정만큼 하겠는가? 상처를 받아서 아플법도 한 그런 애가 너무 기특하고 긍정적이서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프고 더 불쌍하다고 말해줄수 있겠는가? 말하면 머가 달라지는가? 불쌍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어~우 대단하네..와 넌 참 행복하네..니 친구도 언제인가는 부모님을 만날수 있으니 힘내라고 해야지 그치?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면 으뜸중의 으뜸이지? 이 정도로만 말할수 있다는것. 아이들을 두고 리혼하거나 혹 멀리 외국으로 돈벌러 간 부모들의 자식사랑에 세상의 잣대를 대지 말자. 천륜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럽고 민감한 문제라 생각한다. 또 천평일률로 되는 그런 세상의 잣대는 실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라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이곳을 떠나겠는가? 삶의 어떤 선택이라 생각한다. 물론 허울좋은 변명일수도 있지만 부모만큼 자식사랑하는 이는 세상 그어디에도 없다 믿는다.  너 참 불쌍하다. 혹 애 불쌍하지 않슴까? 하고 애나 애부모한테 조언 아닌 조언을 던지는 사람들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불쌍하다는 사회분위기 심어주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몸과 심적으로 건강하게 자랄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심어주는게 더 적합하다 믿는다. 부모없는게 어떻게 공부 잘하겠니? 부모 리혼해서 쟤 저렇게 사람질 못하재? 이런 등등의 말은 삼가함이 좋을것 같다. 왜냐? 인생은 자기가 살아간다는 것을 심어줄 필요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리치라면 고아인 애들은? 또 성공한 입양된 아이들은? 클린톤이나 오바마나 다 리혼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리혼이나 떨어져 사는게 더 좋은 환경이라 말하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다만 아이의 인생은 자신의 주인공이니 보다 씩씩하게 보다 용감하게 자라거라 하는 그런 말이 오히려 아이를 위함이라 생각한다. 아이두고 멀리 떠난 부모들은 비웃거나 질타하거나 혹 못마땅하게 보는것보다는 먼저 사회의 일원인 우리가 돈이 전부인 세상이 아닌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여서 우리가 사는 이곳이 돈이 전부가 아닌 사회가 되면 아마도 돈이라는 핑계를 대지는 못할것이라 믿는다. 십년 넘게 웨쳐온 세상에서 엄마가 좋아를 애절히 불렀어도 엄마는 돈벌러 떠나간게 우리의 현실이다. 불쌍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용타 참 잘한다. 그래 그렇게 씩씩하게 가는거야 라는 칭찬함이 더 고마울듯 싶다.
8    긴급전화번호 12자리 말이 되나? 댓글:  조회:2167  추천:0  2013-06-09
단위의 엘리베터를 이용한다. 엘리베터 안의 긴급전화기가 있다. 사고 발생시...123-0002.......에 전화주세요 라는 의미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전화번호자리가 넘 길다. 12자리수.. 혹 로인들이 탔을때 사고 발생했다. 돋보기 없다.. 그 긴자리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하겠는가? 정상적인 젊은이라 해도 사고발생시에는 평상심을 잃기 쉬운 법.. 차분하게 꽁꽁꽁 그 번호대로 누르자면.. 글구... 키가 큰 사람이 사용하기 편한 높이에 전화기가 걸려있다. 애들하고 나처럼 키 작은 사람은... 에휴~~ 사진은 찍었지만 올리지는 못하겠다. 오래된 설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머 사고란 놈은 년세가 꽤 있는 오래된 설비여서 그 설비에서는 제가 안날게요하지는 않는다 생각한다. 사고란 놈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천방지축에 비정한 놈인데.... 일요일날 출근하니 아침부터 횡설수설... 노는 날에는 그냥 놀아야 함.. 일찍 퇴근하기를 바라는 행여나 하는 요행심리 버려야지..
7    치마만 입어야 여자인가? 댓글:  조회:1569  추천:0  2013-06-07
치마 입을줄 모른다고..날 구박하던 못난 당신! 바지만 고집하고 싶어서 바지만 입는가? 다리통이 무다리인데 어떻하냐고? 라인이 없는데 치마를 입으면 날 보는 당신은 쇼크할거 아닌가? 허참! 그래유~~ 난 이런 모자를 좋아합니다. 안되는가?
6    저 무거운 책가방 누가 들어야 하나? 댓글:  조회:2183  추천:1  2013-06-06
아침 출근 길에 할아버지와 손자인듯한 두분을 만났었다. 할아버지 어깨에는 묵직한 책가방이 지워져있었고.. 할아버지키보다 족히 한뽐은 더 커 보이고 건장한 사나이같은 남학생 손자님은 흔들흔들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택시! 할아버지가 앞장서서 택시를 잡더니 손자를 얼른 택시에 앉으라면서 부드럽게 손을 잡는다. 손자가 택시에 앉자 그제서야 책가방을 손자한테 넘겨주었다. 후~ 그 무거운 책가방을 왜 년로하신 할아버지가 들어야  할까?   할아버지는 당신 손자가 그냥 불쌍하다고 하셨다. 머가 불쌍하냐고 여쭸더니 지부모하고 지낸 시간은 3년도 안되는 놈이라면서 말은 안해도 얼마나 부모 그립겠느냐하는것이였다. 부모가 옆에 없다는 것만으로 할아버지는 손자가 한없이 가슴아프게 하는 존재였던것... 어르신님! 불쌍하지 않아요.. 머가 불쌍하나요? 그래도 손자는 부모가 다 살아계시지 않나요? 고아들은 어떻게 살겠어요? 게다가 할아버지처럼 손자를 이뻐하는 따듯한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홀로서기에 빨리 익숙해지고 남자의 자신의 삶을 하루빨리 찾는데 도움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런가? 떠나간 택시를 한참 바라보시고 그래도 안쓰러운 듯 아침은 제대로 못먹었는데... 옆에서 듣는 내가 코마루가 찡... 할아버지! 그 무거운 책가방은 그래도 손자가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불쌍하다는 그런 생각 마음의 짐 이젠 홀가분하게 버리시고 전쟁과도 같은 삶에 리얼하게 할아버지 보살핌속에서 적응해나가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5    시각의 차이 댓글:  조회:1665  추천:0  2013-06-04
한때 하루에 옷 5벌까지 바꿔입은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한벌의 옷으로 하루를 여유있게 보내지만.. 5벌까지 바꿔입는다해서 직업상 그런 것도 아니고 아침 출근에 한벌 오후 출근에 또 한벌 슈퍼 나갈 때 또 한벌 산책하러 갈 때 또 한벌 회식 나갈 때 또 한벌.. 이런 식으로... 한동안 그렇게 매일매일 지나치게 자주 옷을 바꿔입다보니 주변의 사람들의 나에게 던졌던 말이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은   하는 내 기분 억수로 더럽게 하는 말을 던졌고 (사실 그때 나는 남자친구한테 채워가지고 마음에 멍이 들다못해 맹해질 때 였다.) 또 어떤 사람은 라고 묻기도 했다. 아! 나 원~~~~참... 멋부리고 패션에 신경쓰면 연애하고픈건가? 연애에 상처 받은 생각같아서는 연애가 아니라 이성 곁에 가는것마저 귀찮아 죽겠는데.. 먼 생뚱맞은 연애는? 이런 저런 부질없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나는 나대로 줄기차게  미친듯이 패션에 신경섰다. 립스틱에도 아침 오후 저녁 칼라별로 발라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루... 친구가 맥주 한잔 하자고 하더니 조심스럽게 묻는것이였다. 그랬었다. 고향 떠난 삶에 내가 원하지 않았던 삶을 의도치않게  살게 된 날들 나는 나대로 지쳐있었고 자신의 삶에 희망을 잃어버린채 우울함에 젖어있었었다.  살아가려는 작은 소망에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는 아픈 간절함이 조용히 간들간들 숨쉬고 있었었다. 잘 사는 삶도 못 사는 삶도 정확한 구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사람인지라 보여지는 그 어떤 형식적인 행복한 삶에 미련을 못버리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던 것이였다. 변화는 해야 겠는데 할 길은 없고 일기도 써봤고 독후감도 써봤고 머 여러가지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갑갑한 마음에 나는 패션에 희망을 걸고 광적으로 즐기군 했었다. 보여지는 것과 본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보여지는 것에도 본다는 것에도 주체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 전달되는 메세지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그날들의 일상을 폰카메라에 담고 한동안 끙끙 앓으면서도 패션에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도전을 꿈꾸던 나는 어느날... 부질없는 장난에서 벗어났다. 그 어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그냥 시간치유법..세월의 흐르는 작은 시계바늘 소리에  원하지 않았던,  내가 바라지 않았던 삶을 사는데 적응이 필요한 에네지를 시간에서  얻었던 것이다. 원하는대로 산다면 삶은 삶이 아니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그냥 원이라고 ... 그렇게 자신을 세뇌하면서  
4    움직이는 거리의 계단들 댓글:  조회:1502  추천:0  2013-05-31
상쾌한 아침 요염한 해빛은 아침 일찍 내음을 뿡기고 있다. 오늘 섭씨 31도..장난 아닌 날씨임은 틀림이 없다. 출근 길에 보이는 거리의 풍경이 얼마나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지는 느껴본 사람만이 알터.. 일원이라고 아끼려고 부지런히 두발로 걷는 11번가, 건강챙겨서 운동삼아 역시 두발로 출근길을 채촉하는 11번가, 붐비는 인가가 넘치는 공공버스에서 삶의 치열함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는 공공버스를 즐겨타는 사람들 공버가.. 자가용을 끌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운전대를 잡고 간간히 정차된 순간에는 틈틈이 생기는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는 자가용가.. 기사님한테 운전대를 맡기고 아침길을 여유있게 질주하는 뫼신는몸가들... 거리의 다채로움에는 또 드문드문 보이는 천연썬팅의 모습과 더 부룩한 코수염 아니면 하늘에 대고 불만을 뿜는 머리카락님을 세운 노숙자들.. 삶의 계단에 나는 공버가에서 머물러있고 가끔은  체면의 깃을 살리고픈 애절한 마음에   능글맞게 건강챙기는 11번가라고 뻥도 치군 한다. 어느 계단에 있든 앞으로 어떤 계단을 선택하든 삶의 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은 자신한테 적합한 진실하게 어울리는 계단선택이야 말로 최선의 선택이고 최선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공버가면 어떻고 11번가면 어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뫼시는몸가들이나 자가용가들이 조금은 부러운 건 욕망이 꿈틀거림때문일까?
3    우리 조선족들의 직업관은? 댓글:  조회:1824  추천:0  2013-05-29
아침 일찍 우는 아들을 달래고 겨우 밖으로 빠져나왔다. 총총총...빠른 발걸음으로 회사를 향해 출근을 재촉하는데.. 우리집 사회구역에서 거동이 불편한 조선족 아주머니를 만났었다. 재활치료 차원으로 아침 일찍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하는 그 아주머니가 막연하게 존경스럽게 보여졌다. 싱겁다하면 세상에서 넘버원인 나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 아주머니도 나를 따듯하게 바라보더니 어눌한 중국말로 를 건넸다. 비? 허허허..안온다해도 될듯한데 나는 우산을 쓰고는 좀 민망한듯 우산을 접으면서 역시 어눌한 중국말로 하고 화답하고는 길을 다그쳤다. 그 아주머니는 한발 더 다가오더니 애절하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후~~ 출근길이 바쁜데 어떻게 거동이 불편한 분을 도아주지? 나는 그분을 모시고 머 계단이나 올라가야 한다든가 아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줘야 한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는 시원한 우리 사투리로 부랴부랴 말을 던졌다.  그 아주머니도 바로 시원한 연변 사투리로 받아쳤다. 뒤의 긴 이야기는 간략한다.. 말하자면 1원도 좋으니 돈 좀 달라는 것이였다..덕을 쌓으면 돈을 준 사람에게 그 덕이 갈거라면서... 사기가 하도 많은 세상이여서 불쌍하다는 동정표를 가지기보다는 머? 사기인가? 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다리야 날 살려라 하는 식으로 더 빠른 속도로 그 아주머니와 반대쪽으로 떨어져나갔다. 처음부터 시종일관 내 앞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계셨구.. 그 할아버지왈 아~ 그렇구나..예전에는 쭈욱 한족들이 앵벌이하는 모습을 보았구 우 리 조선족들은 앵벌이쪽까지 진출아닌 진출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나였다. 보이스피싱, 다단계, 이젠 앵벌이에도... 도대체 머지? 우리 조선족이라는 이 무리 이 집단 이 단체는.. 어떤 직업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험난해진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런 말로 이해를 해주어야 하는건지 아님 세상 탓만 하지 말고 자기의 인생관 직업관을 한번 되돌아보아라 라는 말로 반성해야 하는지 ... 오늘 날씨가 유난히 찜찜하다..내 마음도 별로 개운하지는 않지만...
2    나만 무서운 건가? 댓글:  조회:1553  추천:0  2013-05-27
친구들이 모여서 이말 저말 하다보면 아이들에 대한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소학교 5학년에 다니는 친구의 아들놈이 엄마보고 아디다스를 사달라했다는 이야기, 유치원에 다니는 7살난 어린 아이가 누구네 집 아빠 차는 벤츠요 했다는 이야기, 나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두려움이 앞서군 한다. 어떻게 살라는 건가? 이제 고작 두돌도 안되는 아들을 키우는 나는? 앞으로 어떤 공포의 명품선호병에 시달려야 하는가? 아이들의 본보기는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이 사회의 어른들임은 틀림없는 일인데 우리가 어떻게 되여서 이 지경까지 달려왔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브랜드에 쾌는 집착하는 여자이니 말이다. 유~후~~~ 이 무서운 병을 나도 걸린 이 무서운 병을 우리의 아들도 언제인가는 걸리게 될  이 무서운 명품브랜드선호병을 나만 무서워하는가? 치료할수 있는 처방은 없는 것일까? 있겠지. 분명...
1    첫사랑과의 재회 댓글:  조회:2277  추천:2  2013-05-27
아이러니한 일들이였다. 검찰원 앞에 위치한 상가판매중심에 들어가서 지금 한창 熱賣중인 상가들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첫사랑을 만났었다. 참! 눈 뜨면 이 엄마한테서 한시라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들 덕분에 나는 그날 고양이세수에 생얼로 밖을 나섰던 날... 말하자면 원래도 못생겼지만 그날만은 더 말이 아닌 얼굴로 나는 첫사랑을 1메터 안에서 만났고 악수까지 하고 말았다. 이말 저말 오고가고... 나는 웃음으로 그날 화장하지 않는 일상에 대하여 조금은 아주 깊은 후회를 했었다. 그렇게 만날줄 알았더라면 화장이라고 간단하게 할걸... 하나마나 거기서 거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 ... 아들 교육문제로 심히 고민하다 2004년도에 떠났던 연길을 2013년에 돌아온 나 다시 출근하게 되였다. 그것도 첫사랑직업과 거의 똑같은 일을 하면서 말이다. 첫사랑은 아무런 이유없이도  그냥 첫사랑이란 이유로 잊을수 없는 추억 과거 말로 표현 안되는 작은 미련 등등   복잡한 감정을 심어주는 미묘한 능력자임은 틀림없었다.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해서 첫직장인 그 곳도 나에게는 끝없는 세계와 거창한 꿈꾸는 미래를 주었었다. 물론 본인의 부족함과 본인의 부실함과 본인의 부적절한 선택으로  그곳을 떠났지만도 말이다. 돌고 돌아 다시 그런 비슷한 일을 하게 됨은 나에게 첫사랑의 알수없었던 거대한 매력과 거창한 마력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래일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어제도 누구에게나 다 있었듯이 말이다. 어떤 래일이 나를 기다릴지는 삶의 마스터키를 내가 갖고 있는 한 아마 아니 긍정코 내가 알고 있겠지. 룰루랄라~ 의미있는 삶 보다 진실된 삶 보다 따듯한 삶 평화로운 삶을 기대한다. 그리고 부풀어있다.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