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춤판을 깨지말아 주오
며칠전 저녁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람도 쏘일겸 진달래 광장에 산책을 나갔다. 시내
한끝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인지라 시내안 멀리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는지 광장주위에는 숱
한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오토바이며 자전거 같은것들은 더 말할나위도 없이
많았다. 광장에 가설되여 있는 각가지 등불들이 휘황찬란한데다가 밤시간을 리용하여 장사
를 하는 장사군들이 갖추어 놓은 알락달락한 등불, 광장주위 고층건물에 설치되여 있는 부
단히 명멸하는 광고네온등으로 하여 광장은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다.밤놀이를 나온 붐비는
사람들로 하여 광장은 일장 명절의 밤 기분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붐비는 사람들을 겨우 피하면서 광장을 돌다가 광장 남쪽에 이르렀을 때였다. 수백명
사람들이 원을 지어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다.도대체 뭘 구경하고 있을가고 의혹이 생겨 나
도 사람들 가까이에 가보았다.허허, 노래반주기를 틀어놓고 숱한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
고 있었던것이다. 아무렴 우리 조선족들이였던것만은 말할나위도 없다.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추어 늙은이도 젊은이도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은 우리 민족이 살아가면서 하루도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한부분인가 본다. 나는 거
의 60성상을 살아오면서 우리 민족들의 많은 춤놀이를 보았다. 내가 금방 세상물정을 알가
말가할 때니깐 아마 50년대 초기겠다.그 때는 농업합작화 시기였는데 우리 마을 합작사 사
원들은 농사절기에 따라 한해에도 몇번씩은 춤판을 벌리군 하였다. 설날이나 단오명절같은
때는 말할것도 없고 모내기를 끝내고는 사원들이 모여서 모내기총화를 하면서 막걸리를 마
시고 춤판을 벌리던 일, 논물을 뗄때면 논물을 떼는 좋은 기회에 생선을 잡아서 온마을 사
람들이 함께 앉아 생선국을 먹고는 춤판을 벌리던 일, 추석명절에 햇곡식밥을 해먹으며 멍
석을 펴놓고 춤판을 벌리던 일이 눈앞에 삼삼하다. 지금엔 그래도 기성음악이 담겨있는 록
음테프와 록음기가 있어서 춤판을 벌리는데 아주 편리하다.지내온 분들은 알다싶이 오락설
비가 없던 당년엔 곡을 잘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가락에 맞추어 저가락으로 절주를 치고 함
지에 물을 떠놓고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면서 물장고로 북을 대신하기가 보통이였다.아
직 경제가 락후하고 농촌문화사업이 활성화 되지 못했던 그시대에 농촌마을에 손풍금 하나
가 있었다면 대단한 일이였고 대퉁소나 피리를 불줄 아는 사람이 있었어도 괜찮은 셈이였다.
이렇듯 문화오락 시설이 없었던 나날에도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즐기면서 살아왔다.
우리민족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사처로 분산되고 있는 오늘날에,양걸이 북소리 높은
다른 한켠에서 흥겨운 우리 춤판이 벌어지고 있다는점이 너무도 대견스럽게 보이고 자랑
스럽게만 보인다. 우리 민족의 영광스러운 문화전통을 지켜가고 이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
들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고맙게만 보인다.
그 춤판이 영원히 깨여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더는 헤여지
지 말기를 바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다.
리 창 국
2007년 7월 21일 (연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