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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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젊은 창업자들에게 해보는 제안 댓글:  조회:3924  추천:115  2007-03-22
옛날 녀자들은 신랑을 잘못 고를가봐 무척 겁을 냈다. 일단 시집을 가면 좋던 궂던 그집 귀신이 돼야 했으니까.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아이 둘을 낳고도 훌쩍 리혼해서 행복을 찾아 떠나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와중에 쓰라림과 손실이 기수부지다. 젊은이들의 창업도 결혼과 다를바 없다. 창업과 《결혼》했다가 한번 실패하면 기가 꺾여 재기의 꿈마저 접고 취직이란 《행복》을 찾아 떠난다. 향항, 상해와 북경의 창업조사에 따르면 20세좌우 젊은이들의 창업열이 40대나 50대를 초월했다 한다.길림성에는 아직 통계가 없지만 사회 일반보다 청년창업률이 높을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런 청년들은 개인봉사업, 상업봉사나 창조성 업종에 종사하고있는것이  통례이고 그중 성공사례도 적지 않아 다른 젊은이들을 시샘케 하고 들뜨게 한다.이와 때를 같이 하여 보도매체들은 한결같이 청년창업을 부채질하고있는것이 현실이다.  전반 시장경제가  성숙돼감에 따라 상업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마당에 멋도 모르고 창업에 몰입했다가 골탕을 먹는 사실에 대해서는 류의하는 이가 별반 없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열정은 하늘을 찌르지만 자본이 없고 경험도 없어 창업에서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종당에 성공하고야 마는 그런 정신은 창도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방식은 이런  경우에도 활성화하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이를테면 어느  괜찮은 기업에서 일하다가  날개를 어느 정도 굳힌 다음 창업의 길에 나서면 어떨가 하는 물음을 한번쯤 스스로 던져본다면? 경영의 달인,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질만큼 수많은 업적을 남긴 피터 드러커는 《가장 성공한 젊은 기업인은 큰 기업의 조직에서 한 5년 내지 8년 정도 일해본적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 기업에서 배운 경영관리방법으로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성공을 했다》고 말했다. 집계에 따르면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 71%에 달하는 기업의 핵심기술,핵심자원은 모두 기업창시자가 시초에 취직했던 기업에서 가져온것이라 한다. 놀랍긴 하지만 어찌 보면 그럴수밖에 없을것 같다. 그러고 보면 경력 역시 중요한 자원이다. 큰 회사에서 뛰쳐나와 창업을 한 사람들에게는 직업생애에서 쌓아올린  환경우세와 더불어 전문업종에 대한 추앙을 받을만한 지식이 있으며 업종내 사정에 밝은 자로서의 특수한 지위도 가지고있다. 물론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창업을 하면 좋은 점도 있다. 실패를 거듭해도 나이가  젊기에 재기할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으며 그렇게 어렵사리 쌓은 경험으로 큰 성공도 가능한것이다.하지만 치러야 하는 댓가가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클 경우 모든 꿈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음도 반드시 예견해야 한다. 이제 각도를 한번 바꾸어 생각해보자. 가령 실패가 피면키 어려운 일이라면 왜 하필 자기가 창설한 기업에서 실패를 거듭하겠느냐? 큰 기업에서 일할 때 실패를 미리  경험해서 그 경험으로 자기 창업을 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 이것이다. 큰 기업에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젊은 창업자들에게 리롭다 할 때 과감히 이런 제안도 해보는 바다. 창업준비가 잘 돼있고 자신에 차 있는 청년은 당연히 례외다.//길림신문
11    엄마의 계산서 댓글:  조회:4147  추천:136  2007-03-18
(음악이 시끄러우시면 Esc를 누르시고)어린 피터는 상인의 아들이였다. 아이가 아주 총명했으므로 아버지는 늘 돈을 받거나 지불하는 명세서를 그에게 맡겨 처리토록 했는데 그는 번번히 잘 해냈다. 피터는 자아감각이 점점 좋아져 자기가 이미 상인이 된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느날 그의 머리에는 갑자기 한가지《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계산서를 만들어 매일 엄마 심부름을 한 값을 받아 내야겠다고 생각한것이다.이날 엄마는 식탁우에 계산서 한장이 놓여있는것을 발견했다.거기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엄마가 피터에게 빚진 것:생활용품 사오기 20페니히(100페니히가 1마르크임), 우체국에 가 편지 부치기 10 페니히, 화원에서 일 돕기 20페니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장려 10 페니히, 루계 60페니히아들이 쓴 이 계산서를 보고 피터의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가?참, 피터엄마의 반응을 보기 전에 우선 이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적에 우리 아이들 엄마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표정을 짐작해보자--엄마들은 아들애에게 한 50원 정도 던져 주며《얘가 몹시 썰썰한 모양이구나? 엣다, 아무거나 네 먹고 싶은 걸 사먹어라》하거나 《이것봐라, 우리 아들이 인젠 다 컸네?》 혹은《이런? 우리 애가 진짜 대단하구나. 계산 속이 빠른걸 보니 장차 커서 부자 되겠다야?》 하면서 무척 기뻐하거나 《그래그래 엄마 빚졌다. 50원 주마. 잘만 하면야 까짓 돈 아끼겠니? 너 반에서 10등 안에만 들어라. 100원 장려다.》라고 하거나《뭐라고? 고까짓 심부름 좀 하고 돈 달라고? 엄마 뼈빠지게 일해 널 먹인 돈은 언제 갚을래? 》라면서 발끈하는 등 그 표정도 각각일 것이다.이런 식으로 교육한 결과는 구경 어떠할가? 아이들이 부모한테 손 내미는데 습관되거나 너무 개인 리속을 챙기거나 돈밖에 모르는 애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제 피터의 이야기를 계속하면—피터의 엄마는 계산서를 자세히 보고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에 피터는 식탁우에 자기가 요구한 60페니히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마치 개잡은 포수마냥 시뚝해지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곁에 또 한장의 계산서가 놓여있지 않은가.피터가 엄마에게 빚진 것:10년 동안 잘 키워준 것 0페니히, 그 사이에 먹이고 입힌 것 0페니히, 병이 났을 때 간호해 준 것 0페니히, 자애로운 어머니 장려 0페니히, 루계 0페니히자식을 위해 혼신을 다하면서도 일전한푼 보답도 바라지 않는 어머니! 어머니의 계산서를 읽은 어린 피터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콩콩 뛰는 가슴을 안고 살금살금 엄마한테로 다가가 부끄럼으로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엄마 품속에 깊숙히 묻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 60 페니히를 엄마의 행주치마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피터엄마의 계산서는 실로 천하의 부모들에게 떼여준 모범 《약방문》으로 되기에 손색없다.로동을 했으면 보수를 받아야지? 맞다. 어린 피터는 이렇게 생각했고 엄마는 두말없이 아들에게 60페니히를 주었다. 우선 이는 아들의 독립적인격에 대한 엄마의 인정이며 존중이다. 그럼 어린 피터가 엄마한테 로동보수를 달라고 요구한 것은? 당연히 맞지 않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아들더러 그 잘못을 깨닫게 하겠는가? 직설적으로 《너 그럼 못써!》하는 식으로? 만약 그런 식으로 했더면 어린 피터가 자기 잘못을 깊이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적어도 깊은 감동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피터의 엄마가 쓴 방법은 암시의 방법이였다. 그는 우리에게 자식을 교양함에 있어서 사랑과 책임성이 필수인 외 마음을 깊이 울려주는 암시적 방법으로 거룩하고 깨끗한 사랑을 표현하는 지혜도 갖추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길림신문
10    상인, 녕파사람, 연변 어머니, 그리고 집단집념 댓글:  조회:5045  추천:132  2007-03-12
죽는 순간에도 장사를 한 상인이 있다.그에게는 소학교시절에 벌써 주어온 완구차를 고쳐서 한반 동창에게 반센트(100센트가 한 딸라임)에 팔아먹은 기록이 있다. 중학교 졸업후의 어느날에는 일본사람들이 물감에 얼룩이 진 젖은 비단필을 처리못해 쩔쩔 맬 때 그걸 가져다 특이한 옷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 일로 해서 그는 대번에 부자가 됐다. 남이 버리는 땅을 아주 헐값에 사서 몇년 후 2400여만 딸라에 팔아넘기는 놀라운 장사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77세 때 림종을 앞두고 한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걸작이였다.비서를 시켜 《본인이 며칠내로 승천을 하겠는데 이미 승천한 분들에게 건재중인 친인들의 문안과 기별을 전해드릴 용의가 있으며 기별을 전하는 대가로 사람당 100딸라씩 받겠다》는 내용의 글을 신문에 게재토록 했다. 죽은 사람에게 기별을 전해달라는 사람들이 뜻밖에도 아주 많아 상인은 병상에 누운채로 10만딸라를 벌었다. 수전노로 점찍힌 인물이지만 《상업에 대한 집념》이란 점에서는 그에게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상업분야에서 일개인의 집념도 이토록 무서운데 이런 집념을 한개 지역, 한개 집단 지어 한개 민족이 가지고있다면 그 힘이 어느 정도겠는가? 저 남쪽의 녕파사람들이 이런 집념의 집단소유자들이라면 틀리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옷장사를 잘한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아편전쟁후 상해에서 항구를 개방하자 녕파사람들은 상해로 우르르 쓸어가 도구도 간단하고 원가도 별로 안 드는 재봉업을 해서 돈을 벌었는데 돈벌이가 잘되니까 친척, 친구 지어 마을사람들까지 불러다 옷을 만들어서는 서양사람들에게 팔아 국내외로 크게 소문놨었다. 개혁개방후 녕파사람들은 옛 조상들의 재간을 들춰내여 다시 복장업을 벌였다. 재창업 행정에 보여준 복장업에 대한 그들의 강한 집념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심각한 인상을 주었다. 한 복장기업의 사장은 할머니인데 애초에 농촌녀성 몇명을 데리고 창업할 때 상해에 있는 녕파적(籍) 복장디자이너의 기술을 얻기 위해 수십차례 그 스승을 찾아갔었다. 그 스승은 내내 머리 반쪽도 내밀지 않았었는데 그러던 중 그 스승의 어머니가 중병으로 앓아눕게 되자 그녀는 인제 기회가 왔구나 하고 로환자를 다시 없는 정성으로 살틀히 보살펴드려 마침내 스승을 감동시키고야 만다. 그녀가 핵심기술을 얻게 된건 두말할 것 없다. 이런 집념을 가진 사람이 그 할머니 한사람뿐이 아니라 녕파사람들 다수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한테도 이런 집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긴 하다.문제는 아직 집단집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힘이 미약하다는것이다.다행히 구심점을 찾아 고군작전체나 침체집단을 큰 활력체로 묶고자 하는 노력들이 보여 자못 고무를 받는다. 일전 연변에 갔다가 《세계연변된장축제》를 기획하고있는 친구를 만났다. 《연변민들레생태문화마을》을 창설한 이 친구에 따르면 전통장에 수백종의 미생물이 서식하는데 그 많은 미생물을 기계로는 생산해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근근히 몇가지 미생물만 기계화생산에 들어간 상황이며 생산에 한계가 있는 전통장은 그 가격이 기계로 만든 장의 5배이상으로 비싸다고 한다. 그런데 연변은 콩의 주요산지이고 또 우리 가정들은 모두가 장생산의 과학을 가지고있기에 농가를 기업으로, 어머니들을 경영인으로 해서 연변을 장류생산단지로 부상시킬수 있으며 가가호호에서 생산해낸 장을 총집합시켜 재숙성 과정을 거치면 통일된 맛과 가격으로 유명브랜드를 창출할수 있다는 계산이였다. 한국을 수십차례 드나들면서 한시도 된장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작년부터 북경에 차린 사업은 원격지휘로 하면서 아예 연변에 몸을 푹 담그고있는 그는 《전통된장의 현대화생산조건은 유일하게 연변만 가지고있다》는 설을 도도히 폈다.이 말을 나는 믿는다. 한마디 부언할 것은 워낙 외지인이라면 웬간해서는 잘 인정해주질 않는 연변의 특이한 《인정세태》에서 흑룡강출신인 이 친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수년간 현지실험을 거쳐 무공해알곡 증산에 효능이 특출함이 이미 밝혀진 기능성비료 《제타》(이 비료로 생산한 입쌀은 지난해 한 근에 5원씩 팔려나갔다)를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연변에 도입, 대량 생산을 꿈꾸었지만 종당에는 성사 못하고 그 항목(비료공장)을 부득이 흑룡강에 옮길 수밖에 없었던 그다.하지만 가지고 있던 꿈을 접지 않고 생태연변건설을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집스레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은 지켜보고 있다. 아무커나 이제 《민들레마을》 사람들의 집념을 연변의 어머니들과 어머니가 아닌 사람들의 집념으로 바꾸는 어려운 작업이 필히 행해져야 한다. 이 작업 또한 강한 집념이 없인 결코 해낼수 없는 일이다. //길림신문 【李东春相关文章】 http://www.zoglo.net/blog/read/piaowenxi/64059/0/80 http://www.zoglo.net/blog/read/piaowenxi/64106/0/40 http://www.zoglo.net/blog/read/piaowenxi/64127/0/0 http://www.zoglo.net/blog/read/piaowenxi/93635/0/0  http://www.zoglo.net/blog/read/piaowenxi/202732/0/0    
9    민영경제: 하지 말라는 말 안하면 하라 댓글:  조회:3902  추천:97  2007-03-10
민영경제: 하지 말라는 말 안하면 하라   최근 길림성 지도부에서 민영기업에 <비금즉입(非禁卽入)>정책을 실시한다고 선포했다. <금지하는 일만 아니면 다 할 수 있다>는 이 신 정책(길림성에서 <새것>이지 적잖은 타지방에서는 <새것>이 아닌지 오래다)의 선포와 아울러 시장에 신속히 진입할 수 있도록 차별시정책 및 걸림돌정책 페지 등을 망라한 열 가지 강력한 추진조치도 마련, 발표해 믿음 또한 주는 대목이다.   길림성의 발전이 여느 성들보다 많이 뒤처져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왜 뒤처졌는가? 길림성 자체로서 어쩔 수 없었던 력사적 원인도 있겠지만 주로 자체의 인위적 요인을 찾아 봐야 한다. 무엇이 자체의 원인인가? 측간 바닥의 돌멩이처럼 더럽고 딱딱한 집단 무의식, 특히 중층 이상 간부층의 집단 무의식 때문이라고 필자는 꼬집고 싶다. 문서주의(文牘主義)로 표현되는 이 집단 무의식은 기성 문건에 대한 맹종을 모든 분야에 종양처럼 확산시켜 모든 일을 문서로만 처리하려 들고 인간의 창조적 활동은 철저히 외면한다. 문서로만 일을 처리하려 하니 문서주의를 버린지 오랜 다른 성에 뒤처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공유경제에 속하지 않는 민영경제발전이 문서주의의 해를 많이 입었다. <하라는 것만 하라>는 풍토속에서 민영기업의 발전에는 장애가 첩첩했다. 왜냐 하면 정부에서 <하라는 일> 외에도 기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많은 일을 제쳐두고 문서에 지정한 일만 하라니 바로 수족 얽어매기 그 자체였다. 정부 관련 부처의 일부 일군들은 문건에 없는 항목을 비준했다가는 자기한테 불리익이 떨어 질가 봐 항목이야 좋건 말건 차라리 비준을 안 해 주는 형국이였다. 길림성 경제발전에 대한 그 항목들의 유용성 여부는 결코 자기 체신만을 돌보는 그 알량한 량반들의 관심사가 아니였다.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민영기업은 공유기업과의 차별화 정책(이를테면 세수정책)으로 인해 시장경쟁에서 늘 일방적으로 당하기가 일쑤였다. 공유제기업소의 회장님이나 사장님들은 휘파람을 슥슥 불면서도 비까번쩍하는 고급 자가용을 몰고 다닐 수 있었지만 민영기업의 사장들은 고심참담하게 경영을 해도 자칫 망해 자빠지기가 십상이였다.   물론 중앙의 시책에 의해 민영경제의 시장진입문턱이 하루 다르게 낮아짐으로서 민영기업의 발전이 큰 힘을 입은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와중에 민영기업의 생명력은 류달리 왕성해서 지난 해 전국적으로 비공유기업에 취직한 인원은 1.1억 명에 달했다. 이는 전반 중국 취업인수의 80%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수자이다(우리 성 비공유기업 취직인원은 295만으로 전 성 취직인수의 54%를 차지한다. 아직 전국수준에 많이 뒤처져있다).지난해 민영기업의 등록자금은 6만3000억 원으로 우리나라 GDP총량의 50%를 차지하였다. 공유제 우세확보 운운은 이미 말도 안 되는 과거사로 되여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림성의 민영기업은 현재 구태의연히 거부기 걸음을 하고 있다. 통계수치가 말해주다시피 우리 성 민영기업 호수는 강소성의 1/8, 광동성의 1/7, 절강성의 1/6이고 절강성은 규모이상 민영기업이 만인 당 4.27호인데 반해 길림성은 만인 당 고작 0.53호 밖에 안 되는 실정이며 강소성에 등록자본이 억 원 이상인 민영기업소가 370호나 되는데 반해 길림성은 겨우 9호 밖에 없다. 한 하늘 아래 같은 볕을 쪼이면서 이게 말이 되는가?   성 지도부에서 일찍 이 점을 간파하고 이미 고질이 된 간부들의 머리를 깨쳐 볼 요량으로 중국에서 경제발전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에 해마다 간부를 몇십 명씩 견학연수(기한은 1년)를 보내지만 돌아 올 때는 경제개혁에 대한 신심, 용기가 하늘을 찌르던 이들이 정작 돌아와서 일년만 지나면 기관에 쫙 깔린 보수통간부들의 수풀속에서 초지(初志)는 마모(磨耗)되고 마침내 원점으로 되돌아가기가 일쑤다.길림성의 간부가 한꺼번에 절반 정도 나갔다 오면 상황이 확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안 될 말이고, 내내 지금의 이런 방식으로 급변을 창도해 낸다는 것도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길림성의 고질은 책(기성 문건)대로 하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데 있다.남방에서 박살난지 오랜 이른 바의 <문서주의>가 아직도 우리 성 다수 간부들의 두뇌를 단단히 얽어 매고 있어서 앞으로 한 발 내디디기가 여간 힘드는게 아니다.   왕민 서기는 우리 성 경제발전이 굼뜬 것은 민영경제의 히스테레지스(滯後, Hysteresis)가 낳은 결과라고 못 박았는데, 옳은 말이다. 뜻인즉 길림성이 잘 되려면 민영기업이 잘 돼야 한다는 것이다.아무튼 정부는 <비금즉입>정책에 립각해서 올부터 민영기업의 창업문턱을 가능한 낮추고 <전인민적창업>의 짙은 분위기를 창출 하겠다는 확고한 방침이다. 각 현(시)에 창업부화기지 1~2개씩 앉히고 소기업주 만 명을 키워내게 된다고 하며 창업을 돕도록 민영기업에 간부 1000명을 파견하고 창업인재 양성에 거금도 퍼붓게 된다고 하며 초창기의 창업자들에게 대부금 지원도 하게 된다고 한다. 3년 내 민영기업은 10만 개로, 개체공상호는 100만 개로 늘이고 그 수입을 배로 신장시킬 계획이라 하며 올해 민영기업 100강을 평정, 표창하여 본보기를 수립할 것이라 한다.   <비금즉입>정책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 없다. 이 정책을 <할만한, 또는 해야 할 일이라면 다 하세요, 막지 않겠소이다>는 의미로, 또는 <우리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서 무엇무엇을 해도 된다 어쩌구 안할테니, 단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 몇가지만 확실하게 규정해 놓을테니 그외의 모든 일들은 국민 여러 분이 다 알아서, 혹은 창조적으로 만들어들 하시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조선족사회의 민영기업이나 창업에 뜻을 둔 이들, 특히 젊은이들이 생각을 잘 정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때가 아니냐 싶다. 우리의 사고방식도 변화된 현실에 따라 적시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무슨 기성 항목이 정책상 허용이 되냐 하고 전전긍긍 하지만 말고 정책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무한정한 신 항목을 발견, 발굴하는데 신경을 바짝 도사려야 할 것이다. <금지령>밖의 세상은 하도 넓고 할 일 또한 하도 많아서 창의력만 충분히 발휘한다면 자유롭게 활개 칠 공간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말이다.
8    '제미얀의 물고기탕'과 '과유불급' 댓글:  조회:4034  추천:121  2007-03-02
19세기 로씨야의 저명한 작가 그릴로브는 <제미얀의 물고기탕>이란 우화를 쓴적이 있다.이야기 줄거린즉 이렇다.주인공 제미얀이 맛있는 물고기탕으로 손님을 초대한다.손님은 구수한 고기탕을 맛갈스레 먹는다.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주인이 연신 대야들이로 쉴새 없이 고기탕을 강권하는 바람에 손님은 도시 받아 당할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좌석을 피해 달아나고 만다. 중국에 이 우화에 딱 들어 맞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속담이 있다.공자선생이 발명한 말인데 무슨 일을 하든 너무 지나치면 그 일을 안하니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로자선생도 이와 비슷한 리론을 편적이 있는데 <지지불패(知止不敗)>라는 낱말이 그것이다.일을 진척시킴에 있어서 적당한 부분에 와서 멈출줄 알면 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무슨 일을 하든 도를 장악할줄 알아야 하며  <도>를 넘는 모든 소행은 유해무익하다는 말이다.그러고 보면 이 두가지가 다 아주 유용한 철학인것 같다.아마 그래서 어느 큰 어른이 이 두마디 고전을 유가정신의 정수라고까지 치켜세웠는가보다.   사실 무슨 사물이나 다 일정한 질을 보장하는 량적 계선이 있다.  그 계선을 일컬어 <도>라고들 한다.  <도>를 넘으면 왕왕 사물의 원 <질>이 파괴를 입게 된다. 구수한 추어탕도 너무 먹으면 배가 세간나기 마련,물도 섭씨 령으로부터 100까지의 <도>를 벗어나면 얼음이나 수증기로 변해버리지 않는가.   가정교양에 과유불급 즉 <도>가 지나친 현상이 있는가?있다.   자식에 대한 영양보충이 지나치다.수요 이상의 영양가를 지나치리만큼 주입하면 랑비는 둘째치고 신체에 해롭다.지나친 단백질과 지방은 소화에 영향을 줄뿐더러 비만증을 초래하여 신체건강을 해친다.   지나친 관심,지나친 정감표시,익애도 문제다. 물론 부모와 어린이의 정감교류는 십분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도 년령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비교적 큰 아이에 대해서도 어린애 대하듯 지나치게 귀여워하면서 입에 넣으면 녹을가 머리에 이면 떨굴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아이 성별배역의 형성에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게 심리학가들의 견해다.례컨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戀母情結”)도 왕왕 그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이는 아이들이 커서 정감상의 부담으로 시달리게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어린이에 대한 돌봄도 나이가 커감에 따라 점차 줄여야지 모든걸 다 해주는 식이라면 스스로 자립능력을 키우는데 방해가 되고 아이의 건전한 심리발전에 불리하다는것이다.   교육내용이 지나치게 많아도 좋지 않다.아이의 능력범위를 넘어 지나치게 많은것을 머리속에 집어 넣어 주자고 하면 아이가 지친나머지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수 없게 된다.   과잉기대,기대치가 너무 높은것도 당연히 문제로 된다.알맞는 기대는 아이에게 진보의 동력으로 될수 있지만 아이의 년령특점이나 지력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과분한 기대를 한다면 아이가 애를 써도 안 될 때 신심을 잃게 되거나 심하면 절망할수도 있다. //길림신문
7    富者 자식과 貧者 자식의 삶바꾸기 댓글:  조회:4334  추천:147  2007-02-27
최근 호남위성TV에서 《변형계(變形計)》란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펴냈다.이 프로그램의 첫기 주인공은 인터넷게임에 중독되여 학교마저 중퇴한, 長沙市 어느 기업가의 아들 위정과 청해성 시골에서 온,집이 하도 가난하여 학교에도 못 다니고 있는 소년 고점희였다.짧디짧은 7일간 위정은 청해성 민화현의 타복촌에 내려가서 한 맹인아버지의 아들노릇을 하는데 거친 빵을 먹으며 밭에 나가 힘든 일을 한다.한편 맹인 아버지의 진짜 아들인 고점희는 거꾸로 장사에 있는 위정의 집에 와서 위정이 싫증 낸지도 오랜 귀족적 생활을 체험한다.일주일 후 그들 둘은 다시 각자 본연의 삶으로 복귀한다.              이처럼 신분과 삶이 완전히 뒤바뀐 체험을 통해 부자집 아들는 참된 삶의 의의와 목표를 찾도록,그리고 가난한 집 아이는 새로운 꿈을 갖고 그 꿈을 실현시킬 힘도 키우도록 하자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다.    메마른 토지, 교통이 꽉 막힌 서부지역에서 눈먼 아버지,그리고 병약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소년 고점희는 공부에 모든 희망을 다 걸어 보지만,가난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다.집에서 돼지를 먹이다가 우연히 장사시에 온 고점희는 《새 아버지》의 호화로운《BMW》표 승용차에 앉아 번화한 거리를 내다보던 중 갑자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리코더(錄像機)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가 쑥스러워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마음만으론 도무지 주체할 수 없다.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이 담겨 있는 이 장면을 보면서 시청자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준 충격은 상당히 컸다.한 시대에 사는 두 동년배 소년의 너무나도 공평하지 못한 삶과 그 심한 격차의 비참함을 직접 감수하고 있는 그들의 침울한 얼굴표정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을 깊이 감동시킨 것은 고점희소년의 예쁘고 착한 마음씨였다.프로의 마감을 하루 앞두고 시청자들은 고점희가 번화한 도시생활에 미련을 가져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지 않을가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그런데 고향 마을에서 눈먼 아버지가 물을 긷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는 기별이 온다.그 말을 들은 소년은 울면서 주동적으로 하루 앞당겨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요구한다.   아버지의 다친 다리가 걱정되여 하루 앞당겨 귀향길에 오른 소년, 자기를 감싸안으려는 부유한《새 어머니》를 밀치고 결연히 가난한 부모곁으로 떠나는 고점희의 뒤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성의 핵,인간정신을 보게 된다.자기를 낳아기른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식이 누구를 진정 사랑할 수 있으랴.   너무도 큰 운명의 콘트라스트(反差)가 소년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일각에서는 이 프로가 고점희에게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영원히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게 아니냐 하는 걱정도 내비쳤다.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는 공부를 잘해가지고 꼭 대학에 붙어서 새로운 삶을 반드시 개척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 많은 이들의 근심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아픈 마음으로 그냥 걱정스레 지켜보고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 믿는다.   한마디 부언하지만, 한 시대에 살고 있는 도시와 농촌의 소년들이 잘살고 못사는 차이 때문에 서로간 내내 담을 쌓고 지내며 만나지 말아야 할 리유는 없다.만나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게 되지 않을가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만나는 것이 만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만나지 않으면 차이를 알수 없을 것이요 차이를 모르면 동력도 없을 것이요 따라서 협력과 발전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길림신문
6    왜 승냥이를 양무리에 넣었는가? 댓글:  조회:4112  추천:87  2007-02-20
옛날 얘기다.양을 치는 사람 한분이 북방의 추운 곳에서 양 한무리를 방목하고 있었다.시초에는 그곳의 온도가 양의 생존에 비교적 알맞아서 양들은 유유히 풀을 뜯으며 아주 편하게 지냈다.그러다보니 점차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관이 생겨났다.겨울이 와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자 양들은 추위에 적응을 할수 없어 숱해 얼어죽었다. 양치는 사람은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어떻게 하면 양들을 살려낼것인가?뇌즙을 쥐여짜던 끝에 그는 아주 지독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양들이 살고 있는 곳에 승냥이 몇마리를 들여보냈던 것이다.천하에!왜 양무리에 하필이면 양들의 원쑤인 승냥이를  끌어들였을가?의문은 잠시 제쳐두고,아무튼 양들은 잡혀먹히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승냥이의 습격을 피해 뛰였다.그런데 그것이 신비한 효과를 냈다.재빨리 뛰여 다니는데 습관된 양들이 이 해 겨울의 혹한을 용케 이겨냈던 것이다.승냥이에게 더러 먹히긴 했지만 손실이 전보다 훨씬 적었다.   이 우화에서 승냥이는 위기의 상징물임에 틀림없다.위기의식수립의 중요성을 깨치는데 유조한 자료다.안일함에 안주하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위기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큰 피해를 입게 될것이라는 것,이에 반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처준비를 미리 해두면 위기를 역리용해 대승을 거둘수도 있으며 적어도 손실을 보지 않거나 최소치로 줄일수 있다는 리치를 일깨우는,기업경영에도 잘 들어맞는 이야긴것 같다.   일반적으로 위기라 하면 《9.11》사건이나 《사스》사태와 같이 경제, 사회 전반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중대 사건을 일컬을 때가 많다.그러나 이런 중대 사건만이 위기인 것은 아니다.위기발생의 현실성은 어느 한 기업에서도 표현될수 있다.한차례 조심성이 결여된 결책으로 생명력이 있던 기업을 하루 아침에 말아먹을수도 있다.TV드라마《류로근(劉老根)》에서 룡천산장이 한 차례 사기사건으로 하마트면 일조에 박살날번하지 않았는가?   본질적으로 보면 큰 기업소나 작은 기업소나 그 내부나 주위에는 언제나 위기가 잠재해 있거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이를테면 전략적 결책의 실수,맹목적인 규모확장,감성화한 투자충동,제품에 존재하는 중대한 기술성결함 혹은 질문제,저효률적인 조직구조,관리의 혼란,삼거웃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법놀음,매스컴의 폭로 등등이 그것이다.이런 문제들은 일단 조건만 성숙되면 순식간에 위기로 돌변하여 기업을 파탄속에 밀어넣는다.   위기의식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의식을 수립함에 있어서 기업주의 의식변화가 두말할것 없이 선차적이다.무슨 결정을 내릴 때 자기의 우세와 렬세,주어진 기회와 반드시 대처해야 할 위협적인 요인 등을 똑똑히 보아내고 명확한 대응책을 펴야 한다.   기업주가 보아내지 못하는 위협요인을 직원이 보아낼수도 있다.직원들이 문제를 대담히 제기하고 반영하도록 고무격려함이 필요하다.   일부 위기는 순전히 기업주가 자초한것이다.이를테면 원가를 낮추고 시장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질원료를 쓴다든지 하는 식인데 왕왕 념원과는 상반대로 기업이 치명타를 입고 이미 쌓아올린 공적마저 깡그리 탕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위기의식이 전무한데서 생기는 비극이다.   양 치는 이가 왜 승냥이를 양무리에 넣었는지 알수 있을것 같고 아울러 그분 참 고명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길림신문
5    중국 운반로케트 전문가 리상영 댓글:  조회:4153  추천:110  2007-02-18
(음악이 시끄러우시면 Esc를 누르시고) 《장4B》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7년 여에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정확히 발사,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하다   전국로력모범표창대회에서.   《하량하리기금상》 수상자 《며칠전 또 한방이라,그러니까 이번이 10발10중 맞지요?》 2006년 11월 15일 북경 인민 대회당에서 거행된 《하량하리기금》 제13차 시상식에서 진지립 국무위원은 상해우주비행국 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이자 《장정4호B 형운반로케트》의 총설계사,총지휘인 리상영의 손을 열정적으로 잡아 흔들었다. 진지립이 말하는 《며칠전》이란 2006년 10월 24일에 있은 《실천6호》 위성 2매 발사를 가리킨다. 《압력이 만만치 않을테죠?》리상영이 미소하며 그렇다고 하자 진지립은 《그래서 압력이 동력이라고들 하는거 아닐가요!》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진지립의 《십발십중》운운은 한점 과장도 없는 사실 그대로의 얘기다. 다른 위훈은 제쳐놓고 《장정4호B 형운반로케트(략칭〈장4B〉)》의 총설계사,총지휘를 맡은 후의 공적만 보자. 1999년 5월 10일 《장4B》는 처음으로 한방에 인공위성 두개(《풍운1호C》와 《실천 5호》)를 예정궤도에 성공적으로 쏘아올렸고 1999년 10월 14일에는 《자원1호》와 《브라질》을, 2000년 9월 1일에는 《자원2호》를, 2002년 5월 15일에는 인공위성 《풍운1호D》와 《해양1호》를, 2002년10월 27일에는 《자원2호》를, 2003년 10월 21일에는 《자원1호》와 《창신1호》를, 2004년 9월 9일에는 두개의 《실천6호》위성을, 2004년 11월 6일에는 《자원2호》위성을, 2006년 4월 27일에는 《원격탐지위성1호》를, 2006년 10월 24일에는 《실천6호》 02조의 공간탐측위성 2매를 성공적으로 발사, 정확히 우주궤도에 진입시켰다. 1999년 5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7년 남짓한 기간에 그는 도합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쏘아 올림으로써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해낸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리상영이 받아 안은 《하량하리기금상》은 1994년도 향항의 애국금융실업가 하선형, 량구거, 하첨, 리국위 등 4인이 향항페 4억원을 공동 기부하여 설립한 공익성 과기장려기금으로 중국과학계의 최고상, 중국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리상영은 지금까지 이 기금상을 받은 유일한 조선족과학자이다.   아름다운 꿈―준비된 과학자 리상영은 1941년 10월 19일 흑룡강성 오상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오상에서 조선족 소학교와 초중을 다닌 그는 늘 품행이 단정하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학생이였다. 조선족고중이 없어 한족학교에 붙은 그는 열심히 중어를 배웠는데 나중에는 《시경》까지 술술 외워 한족학생들까지 그에게 해석해달라고 도움을 청할 정도였다. 중국우주비행사업이 창건된 이듬해인 1957년,쏘련에서 《스푸트니크1호》로케트로 인류사상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세상을 놀래웠다. 영화뉴스에서 그 발사장면을 본 고중생 리상영은 《나도 로케트로 하늘에 위성을 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1959년 그의 꿈은 현실로 되였다. 북경공업학원에 붙어 뜻대로 로케트총체학과를 전공하게 된것이다.5년 학습기간 그는 말 그대로 머리를 동여매고 공부를 했다. 때는 바로 우리 나라 3년 자연재해시기라 생활고가 심각했지만 정신면의 수확은 풍성했다. 이 기간 로어를 학과목으로 배우면서 영어도 자습했다. 1964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아장걸음을 타기 시작한 중국의 우주비행사업에 투신했다. 상해우주비행연구원에 배치받은 리상영은 모든 정력을 기술연구사업에 몰붓기 시작했다.얼마 안 가 터진 《문화대혁명》에 일시 커다란 곤혹속에 빠졌지만 그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혼란속에서 일터도 자주 바뀌였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로케트의 동력설계, 원격측정제어, 구조배치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할수 있어 로케트기술 전반을 장악하는데 좋은 기회가 됐던것이다. 이 기간에 리상영은 쏘련의 《련맹호》, 미국의 《타이탄(大力神)》,유럽의 《아리안(Ariane)》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계렬운반로케트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짙은 흥취를 가지고 무릇 운반로케트와 관련이 있는 자료는 빠뜨리지 않고 찾아보면서 그것들의 성능, 기술방안, 디자인 등 모든 문제를 의문이 풀릴때까지 캐고들어 그 뒤 장장 수십년간의 연구에 튼실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자유의 왕국 우리 나라의 우주비행사업은 1956년에 시작됐다.저궤도운반로케트 연구는 지난 세기 60년대 중반부터 착수됐다. 리상영이 《3년 재해》와 《문화혁명》이란 어려운 이 두 시기에 시간을 랑비하지 않고 고심히 쌓은 연구토대가 얼마나 귀중한것인지가 이때 와서 충분히 증명되였다. 바로 중국에서 지대공미사일(SAM)연구가 시작된 해인 1970년,당시 불과 29살밖에 안된 리상영은 벌써 크기가 미국의 강유력한 《타이탄2호》와 거의 맞먹는 2단식 신형 로케트 《폭풍1호(FB―1)》 로케트연구팀의 총체성능설계사란 중대한 과업을 맡는다. 이 과업을 맡은지 불과 5년만인 1975년 리상영과 그의 연구팀은 《FB―1》로 과학위성을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이때로부터 그의 재능은 급속도로 발휘되기 시작,선후로 《장정4호A형》운반로케트(략칭 장4A) 부총설계사, 《장2D》 부총설계사, 유인우주선921―3 부총설계사를 력임하며 1999년부터는 《장4B》총설계사,총지휘를 떠메기에 이른다. 이 중대한 책임들을 맡아보면서 그는 각종 중대한 기술난제들을 거의 매년 두세가지씩 풀어나갔다. 80년대에 들어서서 대형의 3단식 운반로케트 《장정3호》를 연구 제조할 때 그는 3대 기술난제의 하나로 나선 수직방향결합발진문제,말하자면 로케트 몸체와 로케트 추진제 수송시스템 사이의 공진문제를 해결하는 저항법 진동수 계산물리모텔을 국내 처음으로 고안해 내여 통신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는데 크게 이바지한다. 《장4A》 부총설계사를 맡았을 때도 그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총체방안을 고안해내여 상규추진제 로케트의 운반능력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기술면에서 국외 동류 로케트의 성능을 릉가했으며 우리 나라 최초로 1톤 무게의 위성을 쏘아올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 로케트로 1988년과 1990년 두차례에 걸쳐 기상위성을 정확히 태공궤도에 진입시킨다. 《장2 D》 부총설계사를 맡았을 때에는 운반능력,궤도진입 정밀도와 신뢰도가 월등한 2단식 로케트를 연구제조해 내여 련 3차례의 위성발사를 훌륭히 수행하며 《신주호》 우주선 부총설계사를 맡은 후에는 상해우주비행국 유인우주선에 대한 론증과 부분적 연구제조과업을 맡아 예비모형을 실전모형으로 승격시키는데 관건적 역할을 논다. 《장4 B》의 최초 제조과정에는 무려 153가지 부분을 새롭게 연구, 개진하는데 성능이 뛰여난 이 로케트는 현재 간편한 조정만 거치면 각종 류형의 인공위성을 보다 높은 운행궤도에 쏘아올릴수 있다. 《장4B》는 매차례의 발사때마다 대폭적인 기술개진과 창신으로 성능을 간단없이 제고했다. 작년 4월에도 리상영은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4B》의 기술내포를 또 한차례 승격시켜 국내 최초로 3단식 발동기의 《2차 점화기술》을 적용, 원격탐측위성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이런 중대한 성과들로 하여 그는 선후로 국가과기진보 특등상 2차, 1등상 2차, 2등상 2차와 성, 부급의 1등공 3차, 우주비행상과 과기진보상 등을 수상했다. 숭고한 사명 소년 리상영의 로케트꿈이 그 어떤 호기심에 바탕을 둔것이라면 풍부한 경험을 갖고있는 우리 나라의 우수한 우주비행공정전문가로서의 리상영은 우주비행사업을 국가리익에 직결되는 최고사명으로 간주하고 혼신의 정감과 재질을 이 한 숭고한 사업에 깡그리 쏟아부었다. 1999년 5월초, 《장4B》 운반로케트 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은 기지에서 발사팀을 거느리고 한창 로케트발사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5월 8일 유고슬라비야 주재 중국대사관이 폭격을 당했다. 이 소식에 접한 리상영은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것 같았다. 로케트로 호된 반격을 가하고싶었다. 이때 향항《대공보》가 중국에서 이틀안으로 위성을 발사할것이라는 뉴스를 실었다. 어깨에 놓여진 짐의 무게를 느낀 리상영은 무언의 침착한 대응으로 발사현장의 모든 세부사항을 낱낱이 점검했다. 10일 오전 로케트는 리상영의 마음과 중국인민의 기개를 지니고 구중천을 힘있게 갈라 세계에 중국의 강대한 존재를 또 한차례 과시했다. 당의 16차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 리상영은 한차례의 위성발사준비를 끝마쳤다. 때는 바로 국가주석의 미국방문과 메히꼬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 참석 기간이여서 이때 위성발사를 한다면 그 성공여부가 커다란 파장을 몰아올것이 뻔했다. 그 압력은 엄청 큰것이였다.그에게 가해질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 상급에서는 확실한 성공을 파악하기 어려울것 같으면 발사시간을 연기하는것이 좋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번 발사에 확고한 신심을 갖고 있었던 리상영은 위성발사를 예정대로 실시키로 결정했다. 발사전 최후의 동원대회에서 리상영은 이렇게 말했다. 《발사의 성공을 갈망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꼭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행동이 조급해져서는 안되겠 습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래일의 발사에 림해야 합니다.》 《장4B》운반로케트는 리상영의 뜻대로 《자원2호》위성을 우주공간에 정확히 쏘아올렸다. 발사현장의 지하통제실에서 발사장면을 긴장히 주시하고있던 중앙군위 조강천 총장비부 부장은 격동된 나머지 리상영을 끌어안고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 그 어떤 위성을 쏘아올리든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의의와 경제적가치는 대단히 큰것이다. 때문에 매 한매의 위성을 반드시 정확한 궤도에 진입시켜야만 하는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성공은 오늘만 의미할뿐 결코 래일의 성공을 대표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로씨야 같이 익숙한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있는 그런 나라들도 발사에서 빈번히 실패하여 막대한 경제손실과 인명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성공 아니면 실패일수밖에 없는 이런 과업을 한어깨에 짊어진 리상영은 시종 고도의 사상압력을 감수하지 않을수 없다. 성공차수가 많을수록 그 압력은 줄어드는게 아니라 늘어만 갔고 일단 발사에 특별의미가 부여되면 그 압력은 또 무게가 더해졌다. 그러나 사명감은 그에게 가해진 모든 압력을 동력으로 전환시켰다. 고도의 압력은 그의 몸에 늘 생리반응을 일으키군 했다. 수십년 종사해온 사업이고 발사기록을 봐도 첫 발사가 성공해서부터 한번도 실수도 없이 번번이 성공하여 《백발백중의 명장》으로 불려온 그지만 매번 새로 발사하기 직전이면 심장이 매분 100차 이상 뛰군 했다. 위성발사를 앞두고 심장에 이상이 와서 구심환 수십알을 한꺼번에 입안에 털어넣었던 적이 있다. 그날 발사를 성공리에 매듭짓고 축하연을 가졌는데 맥주도 물맛이요 간장도 물맛이였다. 보건의사가 고개를 갸웃하고 무슨 약을 복용한게 아닌가고 물었지만 그는 도시 생각이 나질 않아 고개만 가로저었다. 후에 호주머니에서 나온 약병을 보고서야 약을 병채로 입에 털어넣었던 생각이 났다.   《대군》을 거느린 통솔자 상해우주비행국에서 실시하는 《장4B프로젝트》는 하나의 방대한 시스템이다. 산하에 통제, 발동기, 구조, 원격탐측,검측시험발사 등 10개의 계통이 주임설계사, 부주임 설계사 수십명의 지휘밑에 움직인다.  매 계통은 다 자체 연구소를 가지고있는데 통제계통처럼 전산연구소 등 여러 개의 연구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계통 산하에는 수백개의 단일계기연구단위가 있다.례컨대 단일계기단위가 원격탐측계통에는 180여개가 있으며 통제계통에는 48개가 있다. 이 수백개의 연구단위에서 10만개도 넘는 부품을 연구해내며 그 제품생산은 전국 각지에 있는 수천개 공장의 몫이다. 이 행정에 동원되는 인수는 수천수만으로 헤아린다. 이 방대한 기술시스템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있어서 핵심고리로 되는것은 1급지휘계통인데 이 지휘계통의 일선 총지휘가 바로 리상영이다. 《장4B》의 매 차례의 위성발사는 모두 리상영의 지휘밑에 최신기술을 적용한 측정, 설계, 실험과 주도면밀한 현장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전반 행정에 그 어느 부문이든 지휘나 기술면에서 일말의 경솔성도 허용될수 없다. 어느 한 계통의 조그마한 실수도 궁극적으로 발사의 실패를 초래할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사업의 특질로 하여 기술에 대한 내부심사는 극도의 엄격성을 기할수밖에 없다. 고로 리상영은 하부로부터 올라온 보고서를 그냥 1차적으로 통과시킨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의문점만 발견하면 가차 없이 재고(再考)를 요구했다. 각 계통의 연구항목에 대한 리상영의 심사는 극히 엄격했다. 그 어떤 분야에 가든 그 분야의 핵심문제를 포착, 관련된 구체 문제까지 제기하여 개진토록 요구했다. 주임설계사를 망라한 고급두뇌들이 지휘하는 각 계통의 전문연구는 국내 나아가 국제의 최고수준급이다. 그러나 심사때마다 보고를 세심히 청취한 뒤 리상영이 즉석에서 들이대는 일련의 질문은 왕왕 한다하는 전문가들로 하여금 《아뿔싸!》 하고 식은 땀을 빼게 했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질문들은 로케트 각 계통 심층기술에 대한 깊은 료해가 없이는 문제포착자체마저 어려운것이여서 관계 전문가들은 놀란 나머지 리상영을 우러러보지 않을수 없었다.그들은 모두 리상영을 본받아 산하 각 부처에 엄격한 관리를 실시했다. 이런 까닭에 리상영이 한번 돌아본 곳에서는 락자없이 새로운 기술공략전이 벌어지군 했다. 각 부문에 내려가 항목심사를 할 때마다 리상영을 따라다니는 항목계획관리원 채익비는 리상영에 대해 탄복한 나머지 한번은 리상영에게 조용히 이렇게 물어오기까지 했다. 《총지휘님은 그 많은 부문의 기술문제를 어쩜 다 그렇게 환히 뚫고 계십니까?》 작년 4월 《원격탐측위성1호》 발사 준비를 할 때였다. 이 위성은 무게나 체적 등 면에서 모두 《장4B》 가 이전에 발사했던 위성보다 무겁고 부피가 컸다. 《장4B》로케트 정류케스의 직경은 통상적으로 2.9메터와 3.35메터 두가지가 있는데 이 위성은 체구가 웅장해서 소요공간직경이 3.8메터에 달해 비행기동, 부하, 강도, 구조, 탄성, 통제 등 면에 모두 변화가 생겼다. 대규모의 기술조정은 불가피했다. 하여 리상영과 그의 연구팀은 《장4B》를 거의 새로 설계, 제조하다싶이 했다. 이때에도 리상영은 로케트와 위성의 세부까지 꿰뚫는 불가사의한 기술통찰력으로 각 부처의 기술문제를 분석하고 철저한 해결책을 대게 하였는데 결국 그것은 로케트 《2차점화》 새 기술의 도입 등 중대한 기술개혁으로 이어졌다. 그것과 관련된 기술개진 항목은 무려 161가지에 달한다. 《확대경》을 들고 《먼지》를 찾는 사람 리상영은 발사팀 성원들에게 매번 새로운 위성발사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장4B대오에는 과거의 성적에 만족할 자본이 없다. 항시 령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과업수행에 나서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문제를 찾으라,문제를 발견하는 자가 영웅이다.》고 고무격려했다.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거나 원유설비를 개조하여 검측시험을 할 때 그는 한시도 시험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털끝만치라도 의문스러운데가 있으면 절대 그대로 넘기는 법이 없었다. 로케트 내부의 각 부분을 이어주는 케이블은 생명선과도 같아서 어느 한오리라도 헛땜을 하거나 잘못 이으면 안된다.  한번은 삼거웃처럼 얼기설기 얽힌 케이블을 가리키며 리상영이 물었다. 《확대경으로 케이블검사를 했소?》 케이블팀 팀장이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리상영은 즉시 《안되오! 케이블이 플러그에 제대로 이어졌는지 확대경으로 한오리 한오리 100%로 검사하시오!》하고 엄령을 내렸다. 또 한번은 시험을 할 때 케이블단락현상이 나타났다.정황을 보고받은 리상영은 가차없이 책임추구를 결행했다. 책임부처에서 사고원인을 한창 작업교대중에 있던 설치반 로동자들의 탓으로 밀자 리상영은 책임부처의 일군을 호되게 비평했다. 그 일군은 억울해 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나 직원이 눈물을 보인다고 해서 록록히 처리할 리상영이 아니였다. 그는 《장4B는 눈물을 믿지 않습니다》고 하면서 그 반조더러 즉시 생산을 중지하고 정돈을 하게 했다. 나아가 작업관리, 기술조작, 교대절차와 수속 그리고 관련 세칙에서 원인을 찾게 하고 제반 제도를 철저히 수정,  보완토록 했다. 와중에 비평을 받은 그 책임일군은 리상영에게 완전히 감복이 되여 비평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겨났고 작업질보장에 철저한 책임성을 보였다. 얼마후 그는 상해우주비행국의 선진에 당선되여 경험을 소개하게 되였는데 강연제목은 《압력은 질보장의 촉진제》였다. 인간 리상영 리상영은 사업이 아주 몸에 밴 분이다.그러나 마음의 탕개를 조금 풀 때도 있으니 그것은 위성을 방금 예정궤도에 띄워놓고 승리를 경축할 때의 한순간이다. 이 때면 그는 잠시나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만사를 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통쾌히 즐긴다. 팀멤버들이 총설계사에게 프로를 요청해 오면 그는 《시경》에 나오는 옛시도 멋지게 읊조린다. 《사이좋게 우는 저 징경이 하수가에 있네.곱고 고운 아가씨는 님의 좋은 짝이로세(關關雎鳩,在河之洲,窈窕淑女,君子好逑).》하고 궁글진 목소리로 읊어내리면 다들 신이나서 박수를 치며 노래를 요청한다. 그러면 그는 어릴적 어머니에게서 배운, 평생 유일하게 부를 줄 아는 노래 《노들강변》을  한가락 불러넘기군 한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여나볼가...》 리상영은 《노들강변》노래를 부르는것은 어머니에 대한 가장 좋은 기념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외국출장을 하면서 흑룡강의 고향을 지나게 되였다. 어머니묘소에 내려 벌초라도 하고싶었지만 내릴수 없는 몸이였다. 당시 그는 《노들강변》을 입속으로 웅얼거렸다고 한다.   조선민요 《노들강변》을 열창중인 리상영.   백두산천지에서 부인 손광옥과 함께. 누구보다도 안해 손광옥과 두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리상영이다. 결혼해서 30여년간 내내 상해를 중심으로 북경과 태원 등 로케트발사기지 사이를 오가면서 장정호운반로케트 연구설계와 발사에 혼신의 정열을 쏟다보니 모든 가무일과 두 자식을 키우는 일은 전부 역시 과학연구일군인 안해가 전담할수밖에 없다. 리상영은 로케트와 인공위성에 대해 말하라면 노들강변 청산류수지만 자식의 신변사에 대해 물으면 세마디 안짝에 둬번 막히는 정도다. 그래도 남편의 사업을 자기 일 이상으로 지지하는 안해는 로케트 발사때마다 남편걱정으로 혈압이 뛰여오르군 했다.《안해가 불합격 남편을 리해해주고 아들딸들도 잘 커줘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딸은 지금 상해 서금병원 의사로 근무중이고 아들은 미국 하불대에서 MBA과정을 마치고 이미 귀국했다. 아들이 석사졸업식을 가진다는 소식을 알고 조직에서는 그에게 휴가를 주었다. 30여년간 번번이 휴가를 사절하고 일에만 전념해왔던 리상영은 이번에는 쾌히 접수했다. 안해와 함께 아들의 졸업식에 참가하여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싶었던것이다. 평생 처음 사랑하는 남편, 존경하는 아버지와 함께 유럽나라들을 구경하면서 안해와 아들은 너무 행복해했다. //  2007-02-12  
4    포레스트의 '바보정신' 례찬 댓글:  조회:4353  추천:123  2007-02-18
톰 행크스(湯姆·漢克斯) 가 주연한 미국영화 를 본 이라면 포레스트 검프란 청년주인공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포레스트는 지력상수가 75라 소학교에 들어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좀 모자라는 축이지만 의외로 그는 하는 일마다 성공한다. 어느 날 악동들의 장난을 피해 도망치던 포레스트는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소질을 보이며 급기야 대학에까지 미식축구선수로 가게 된다. 그는 어떤 상황이든 알맞게 대처하는 능력을 보이면서 나중에는 성공한 기업가로까지 성장한다. 그러나 포레스트를 바보취급하던 총명한 동창생들이나 전우들은 성공한 사람이 별로 없다.이른바의 에 대한 절묘한 조롱이다.이 영화를 보면 정상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거개가 자기들의 삶을 다시 반추하지 않을수 없다.   포레스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성공은 개인의 예비를 극한상황에까지 발휘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리념을 반영하고 있다.  모종 의미에서 포레스트의 성공은 그의 조금 모자라는 지력상수에 힘입은 결과일수도  있다.말하자면 승부나 득실을 계산할줄 모르고 바보처럼 진지하게 견지하고 집행하는 이 그를 성공하도록 만든 것이다. 굳이 그의 성공비결이 뭐냐를 따진다면  단순한 견지력과 매 한가지 일에 향한 강한 집념이 그것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개인의 자질에는 신체소질,심리소질,지력상수 이 세가지가 포함되여 있다고 한다. 현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일개인의 성공을 결정하는 여러가지 요소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심리소질이며 지력상수는 필요한 조건일 뿐이지 충분한 조건은 아니라고 한다.고로 우리는 일상생활속에서 학력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의 회장이나 사장이 되고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그 밑에서 일하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학력이 높다는 것은 성공할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할 뿐이지 그것이 반드시 성공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허다한 경우 기업에 결여되는 것은 총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포레스트와 같은 이다. 총명한 사람들은 일단 문제에 부딪치면 회사나 상급을 원망하기 십상이며 무슨 일이나 리익을 먼저 계산해보고는 딱 그만큼만 하려 하며 리익이 없으면 아예 하려 하지 않는다.그 어떤 결책이나 명령을 집행할 때에도 자기에게 리익은 얼마나 차례질 것이고 혹시 손실은 보지 않겠는지 하고 늘 먼저 곰곰히 따지기를 즐기는데 그러다 일단 수지가 맞지 않는다 싶으면 그 결책이나 명령에 대한 부터 마련하기에 드바쁘다.   많은 일들은 시작을 할 때엔 10점의 노력을 기울여야 3점의 결실을 맺는 경우가 푸술하다.그러나 득실을 따지지 않고 계속 해나가다 보면 3점의 노력을 들여도 10점의 결실을 볼 때가 반드시 오는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력상수의 높고 낮음으로 한 사람의 총명여부를 저울질해 왔다.그러나 암만 총명한 사람이라도 필시 단점이 있고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장점은 있게 마련이다. 포레스트가 그렇지 않은가?달리기에 특출한 재능이 있고 하모니카도 잘 불며 당구도 잘 치고 새우사양도 잘한다.자기의 부족점을 알고 누구보다 더 전념을 해서 열심히 하니 하는 일마다 성과를 낼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찌보면 모두가 포레스트보다 총명할지 모른다.하지만 우리는 매 한가지 일에 대한 집념이 몹시 결여되여 있기 때문에 일은 거창하게 벌리고들 있지만 잘 해내는 일이 별로 없고 왕왕 실패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해서 총명한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물론 아니고 그것이 죄로 된다는것은 더욱 아니다.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자기의 타고난 총명과 재질을 아름다운 보따리로 짊어질것이 아니라 거기에 포레스트의 까지 가첨해서 잘 리용해 보자는 것이다.창업청년으로서 타고난 총명 어쩌구를 우선 내세우지 않고 무슨 일을 하나 포레스트식 을 좀 가진다면 무슨 일을 하든 잘 해낼수 있겠다는것이다. //길림신문
3    너희들도《대충선생》과 작별할거냐? 댓글:  조회:4172  추천:98  2007-02-17
호적의《대충 (差不多) 선생》은 20세기 초 중국인의 《대충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이야기이다.대충(差不多)이란 이름을 풀이해 보면 그게 그게니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다. 《대충선생》의 행동은 이름을 닮았다. 어머니가 백설탕을 사오라고 하면 흑설탕을 사왔다.꾸중을 들어도 똑같은 설탕인데 무얼 그러느냐며 딴전을 피웠다. 커서는 회계사로 일하며 《십(十)》과 《천(千)》을 종종 바꿔 썼다. 주인이 화를 내면 《한 획 차이에 불과한데》라며 투덜거렸다. 그런 그가 병이 났다. 가족에게 《왕(汪)》씨 성의 의사를 모셔오게 했다. 한데 수의사인 《왕(王)》씨를 잘못 데려왔다. 결국 병든 소 취급을 받다 죽게 된 《대충선생》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산 자나 죽은 자나 별 차이 있겠는가.》   이런《대충선생》이 세상에 태여난지 80년 하고도 6년이 지난 해 6월 29일 산두대학 졸업식에서 세상이 다 아는 중국의 갑부 리가성이 《을 타도하자》란 제목으로 짧은 연설을 했다.   리가성선생은 이 명작을 재독하고 《대충선생》의 불쌍한 우매에 다시금 놀람과 아울러 《대충선생》의 수명이 너무 길어 오늘까지도 그 유령이 창궐하게 활동하고 있음에 대해,그 영향으로 오늘까지도 삶을 대충 사는 사람들이 지혜를 허무하게 랑비하고 있음을 통탄했다.   리가성의 동년은 전란과 가난으로 점철된 불행의 련속이였다.교장이였지만 가난한 지식인에 불과했던 아버지가 피난지 향항에서 페병으로 사망하자 15살때 학교마저 중퇴해야 했던 리가성은 한 플라스틱무역회사에 임직하여 매일 16시간씩 근무를 했었다.무슨 일을 하나 얼렁뚱땅 대강하는 법이 없는 그는 최고를 추구하는 정신으로 사업을 개척하여 오늘 54개 나라에 사원 22만명을 둔 장강그룹을 일떠세웠다.   부동산,전력,통신,소매,항구운수 등 업종을 경영하고 있는 리가성은 창업자들에게 한가지 일을 해도 혼신을 다해 진지하게 할것을 권도하며 무슨 일을 하나 얼렁뚱땅 대강대강 대충대충 해치우는 습관에 물젖게 되면 아무 일도 제대로 해낼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경고를 두 아들에게도 한적이 있다.아들들이 아버지 밑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 그 요구를 과단성 있게 거절했다.   《나의 회사엔 너희들이 필요 없다.다들 절로 나가 창업하거라.성실성과 근면성으로 일을 개척해라.성공못하면 돌아오지 말어라.》   하여 두 형제는 카나다에 가서 천신만고를 불사한 끝에 부동산투자 등 사업에 성공하며 드디여 카나다 상계에서 발군의 인물로 거듭난다.   《대충주의》사상은 인간의 령혼을 해치는 바이러스나 다름없다.목숨도 질기여서 호적선생이 당년에 그처럼 혹독하게 타매규탄하였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의 어린 세대와 젊은 세대를 령혼잠식의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화장실에서 분명 냄새가 나는데도 《이 정도의 냄새야 뭐 대순가》라고 하며 손수 만든 음식맛이 별로 탐탁치 않은데도 《내입에는 이만하면 괜찮은걸》라고 하며 상품포장디자인이 개진해야 할 틈이 다분히 보이는데도 《나의 작품이 왜 이렇게 멋지지?》하고 너무 일찍 만족해버리는 일들을 우리는 자주 볼수 있다.   오늘 젊은이들이 운명의 멍에를 짊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대충주의》의 위해성을 알고 일찌감치 《대충관념》과 모든 관계를 끊어버려야 한다.삶에 대한 끈질긴 추구와 참여,시련을 이겨내는 용기와 불타는 열성,인간과 사업에 대한 드높은 책임성과 뜨거운 사랑, 이것이 《대충관념》과 작별하는 최고의 약방문이다.   리가성은 모든 창업자들의 본보기임에 틀림없다.그의 끈질김도 더 비할데 없다.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졸업생들을 상대로 한 그의 짧은 연설의 마지막 한마디 말이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그 말은 이렇다--   《나는 평생을 다하여 추호의 드팀도 없는 정신적 목표와 뜨거운 마음으로 이어진 삶을 살것이며 절대로 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거냐?》  2006-08-17   
2    불치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댓글:  조회:5419  추천:112  2007-02-11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자기의 병에 감사할수 있을가? 있다. 루 게릭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언제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가는 영국의 천재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바로 자기가 걸린 불치병에 감사의 마음을 가진 그런 분이다.몇해 전 기자들과 가진 한차례의 인터뷰에서 호킹박사는 《장애가 과학을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면서 자기가 《남못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거듭 고백해 뭇사람을 크게 감동시켰었다. 겨우 20세가 되던 해 앞으로 1,2년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학적인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신체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두개의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작동시켜 강의도 하고 글을 받아쓰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상상키 어려운 역경속에서 그는 특이점 정리, 블랙홀의 증발, 작은 블랙홀 리론, 허수의 시간, 량자우주론 등 혁명적인 리론을 현대 물리학에 제시하여 세상을 놀래웠다.특히 그가 일반 대중들의 우주와 시공세계에 대한 보다 넓은 리해를 위해 저술한 학술저서《시간의 력사(時間簡史) 》는 지난 1988년 출간 이래 불과 4년만에 30개 나라에서 55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기자들이 삶에 대한 감수에 대해 물었을 때 아인슈타인 이래 가장 뛰여난 리론물리 학자로 불리는 호킹박사는 우주의 탄생,변천과 발전에 대해 절묘한 리론묘사를 했던 두 손가락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쳐냈다. 《나의 손은 아직 움직일수 있고 나의 두뇌는 아직 사유를 할수 있으며 나에게는 평생 추구하는 리상이 있고 나에게는 또한 내가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하는 친인과 벗들이 있습니다.맞아요,나에게는 또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치명적인 병마에 일신이 마비된 후 어찌 짧은 절망마저 없었으랴만 늘 생명에 감사하는 마음이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큰 힘을 실어주었던 덕분에 호킹박사는 1,2년밖에 못 산다는 사형선고도 뒤전으로 한채 20여년 꿋꿋이 진지한 삶을 이어오면서 우주의 신비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기적을 창조할수 있었던것이다. 호킹박사의 감사하는 마음을 리해하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것이 감사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올수 있으리라. 우리에게 생명을 준 어버이에 감사할것이요 우리에게 삶의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준 모든 스승과 장자(長者)들에 감사할 것이요 마음과 고락을 같이 하는 친구에 감사할것이요 우리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사회에 감사할것이요 우리를 감싸안아주고 있는 자연에 감사할것이다.지어는 삶의 경쟁에서의 라이벌(경쟁상대)에도 감사하게 될것이요 나아가 가난과 질병,역경과 좌절, 실패와 불행에도 감사하게 될것이다. 라이벌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을 키워줄것이요 가난과 질병은 생명의 귀중함을 알도록,변혁을 꿈꾸고 행하도록 우리를 밀어줄것이요 좌절과 실패는 우리의 스승으로 되여 성공에 입문하도록 필요한 모든것을 가르쳐 줄것이요 역경과 불행은 위기를 극복하고 운명을 개변하도록 우리에게 강한 의지와 의력을 불어넣어줄것이다. 호킹박사가 자기가 《남못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선언할수 있다면 우리는 자기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그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할 리유가 없으며 아울러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음에 감사하지 말아야 할 리유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세상에는 건강, 지위, 재산, 학벌, 건전한 가족구성원 등등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거의 모든 것을 한 몸에 독차지하고서도 매양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혀 찌들고 비틀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위기 상황에 부딪치면 절망과 저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일말의 빛도 보이지 않는 암흑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달픔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기가 일쑤다. 그러나 일단 불평,불만이나 절망과 저주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면 상황은 180도로 반전하여 구름은 걷히고 밝은 날은 시작될것이다. 2006-12-21 
1    《어린 왕자》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불쌍했다 댓글:  조회:4984  추천:89  2007-02-11
60여년 전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聖·德克旭貝里,1900~1944)의 소설《어린 왕자(小王子)》는 한 비행사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홀연히 나타 난 어느 별나라 어린 왕자와의 만남과 리별을 회상하는 일종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우주 속 어느 작은 별에 살던 어린 왕자는 어느날 혼자 우주 려행길에 나선다. 려행길에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서 고생하던 비행사《나》를 만나며 그 뒤 여우도 만나고 뱀도 만나고 어른들도 여럿 만난다.  어린 왕자의 눈에 어른들은 대부분 이상하기 짝이 없고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아주 불쌍한  존재로 비쳐진다.권세욕으로 가득찬 임금,허영심으로 들떠 있는 허풍쟁이,밤낮 고주망태가 돼 있는 술주정뱅이, 리속차리기에만 바쁜 상인,탐험은 하지 않고 집안에만 들어 박혀 이른바 학문을 연구하는 지리학자….  어른들은 웬일인지 수자를 별스레 좋아한다.새 친구에 대해 뭔가를 말할 때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건  물어보지도 않는다. 새 친구의 목소리가 어떤지,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나비를 수집하고 있는지, 이런 질문 대신 나이가 몇인지, 형제가 몇인지, 그의 아버지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이런 따위만 묻는다. 《오늘 창문가에 꽃이 만발하고 지붕우엔 비둘기가 노니는 빨간집을 봤는데 정말 예쁘더군요》라고 하면 어른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그러나《그 집이 10만 프랑짜리더라구요》라고 하면 대뜸《아니?그런 예쁜 집을 어디서 봤냐?!》하고 놀라 부르짖는다.이런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눈엔 괴상한 사람들로 비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우리 어른들이 원래부터 아이들이 보는것처럼 그렇게 리해하기 어렵고 이상한 사람들이였던 것은 아니다.모든 어른들에게도 례외 없이 찬란한 동년이 있었다.소시적 소망 역시 그때의 모든 아이들처럼 단순하고 소박했었다.얼음지치기를 할 때의 중요한 도구인 썰매가 아주 보잘것 없이 초라한 것이였을지라도 그것이 어렸던 우리에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소중한 것이였고 귀여운 토끼 한마리 생겨도 열심히 먹이풀을 뜯어다 배를 곯릴세라 신주 모시듯 모시는 즐거움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 눈에 비낀 모든 일은 언녕 소시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보여지지 않은지가 옛날이다.우리 어른들은 실상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쥐뿔만한 일을 가지고 시기질투를 해가며 옥신각신 하는가 하면 별로 보잘것도 없는 권세나 명예나 리익을 가지고 다툼질을 하고 암투를 벌리기마저 서슴치 않고 한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오늘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이 옛날과 달리 순진함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평들이 자주 들려 가슴이 불안해질 때가 있다.물론 시대가 크게 변한만큼 아이들이 옛날과 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그러나 그 어느 시대든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동심만은 확실하게 보전해야 할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샘물처럼 맑아야 할 동년의 마음에 어른들이 흙탕물을 튕기는 일이 있다.필자 자신도 심히 자책감을 느낀다.어린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있다면 이건 전적으로 어른들 탓이다.이 경우 아이들에게 맑은 동심을 잃지 말라고 훈계하기에 앞서 우리 어른들이 우선 반성을 해봐야 할것이다. 200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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