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壽命 은 하늘의 命 이므로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나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승에 있는 동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들라면 아마도 한정된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 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역시 적지 않았다.
우선 '사람을 만나는 것' 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둘째는 ' 인간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셋째는 ' 인간이 머물다 떠난 자리' 역시 지속적으로 인간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최초의 만남이었다. 부모로서 만나고, 현제로서 만나고, 이웃으로 만나고, 타인으로,
친인척으로 만났다.
만남은 인간으로서의 출발이며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또한 살아감은 인간으로서 닦여감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과정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선인이 되는가,
인간으로 남는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떠남,
즉 향천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온 것 전체에 대하여 평가받는 자리였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평가, 이 세가지 과정을 통항 인간은 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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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사는 이제 두 가지 과정을 마치고 세 번째 과정을 남겨두고 있었다.
자신이 이승에 들어 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을 끝낸 것이었다.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떤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무료한 시간이었으나 매듭을 지을 만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이진사는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마음을 덜어낼 준비를 하였다.
모든 것에서 집착을 벗어 내었으며 자신이 깊이 심어 놓은 모든 것들에게서 자신의 마음을 거두었다.
이러한 이진사의 시도는 자신의 마음의 무게를 상당 부분 줄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진사는 부담 없이 향천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향천할 시간이 다가오자 이진사의 마음속에는 지나간 날들의 많은 사건들이 지나갔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비움의 의미를 지닌채 이진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 비움'
그것은 진정 자유였다.
이진사는 이 비움의 의미를 진정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가벼운 것이라면 진즉 비웠어야 더 많이 깨달을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다녀간 자국을 남기기 위해 마음을 심었던 것마저도 욕심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진사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에의 집착을 끊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임을 알았다.
소설 仙 이진사의 향천 부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