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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와 렬사비
2013년 04월 09일 09시 12분  조회:1088  추천:2  작성자: 안수복
 진달래와 렬사비

안수복


4월중순의 아름다운 봄날이다.

등산도 할겸 약초도 채집할겸 나와 남편은 친구부부와 함께 화룡시 문화관광명승지인 서성진달래기지를 지나 와룡산 정상에 올랐다.

백번 듣는것이 한번 보는것만 못하다고 말로만 들었던 와룡산은 말그대로 그 기묘함과 아름다움으로 《갑》속에서 빠져나온 불청객들을 몇번이고 혼절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 멀리 멋진 산천경개 바라보니 눈에 비껴들어오는 한뙈기의 밭, 한줄기의 강물, 한그루의 나무, 한채의 집들이 그렇게도 정다울수가 없었다. 더우기 소나무, 가둑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개암나무와 이름모를 초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숲속에서 발목을 사로잡는 융단같은 락엽을 밟노라니 깎아찌른듯한 절벽틈서리마다 활짝 피여난 진달래가 이 가슴을 뭉클하게 할줄이야!

난 약초를 캐다말고 봄바람이 하느작거리는 연분홍빛 진달래꽃잎을 쓰다듬었다. 어쩐지 엄마의 모습같았다.

이 나라 강산을 지키기 위하여 참군한 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돌로가 아니라 바위돌로 변한 열여덟 청춘의 어머니, 그 애절함이 꽃이 되여 바위틈에 피여납니다. 송이송이 진달래꽃으로 말입니다.

산천초목 푸르렀다 누르렀다 10년 세월 흘렀어도 초소의 병사마냥 엄마의 님마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른 봄 꽃샘추위에도 꽃망울 터치며 벼랑가에 곱게 핍니다.

아,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하얀 렬사비가 보입니다. 이 나라 강산을 위하여 피흘려 싸운 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입니다. 10년을 기다렸건만 하얀 비석되여 마을에 돌아온 님, 야속하다 할가 진달래꽃은 바람에 흐느낍니다.

1946년, 열여덟살 되는 엄마는 범박골에서 화수촌에 살고있는 동갑내기한테 시집갔다. 그런데 군대모집이 나오는 바람에 결혼해 열흘만에 남편이 참군하게 되였다. 전쟁시기라 남편의 입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새색시인 엄마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차바곤마다 군인들을 가득 실은 렬차가 곧 떠나게 되였다. 시부모님들과 남편전송을 나온 엄마는 부끄럼으로 하여 고개를 살풋이 떨어뜨린채 《임자, 미안하오, 결혼하자마자 참군해서… 꼭 기다려주오.》하고 말하는 남편의 얼굴조차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단다. 남편이 차바곤에 오를 때는 올려다보아도 눈앞이 뿌옇게 흐리며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엄마는 끝내 떠나는 남편의 모습을 똑똑히 보시지 못했단다. 그때 엄마가 어찌 알았으랴. 그날에 본 남편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줄을…

그날, 떠나가는 남편한테 《무사히 돌아오세요.》라는 말 한마디만 남겼어도 살아생전에 그렇게 가슴을 잡아 뜯지는 않았으련만 그것이 가슴에 못으로 박혀 엄마에게 평생의 회한을 남겼단다.

《뿡뿡…》렬차가 달리기 시작해서야 엄마는 미친듯이 손을 저으며 철길을 따라 한정없이 내달렸단다.

《여보, 순이가 사랑합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눈물에 젖은 엄마의 웨침이였건만 요란스레 달리는 기차소리에 남편이 들을리 만무했다.

1948년 장춘전역이 시작되자 남편소속부대에서 가족면회를 오라는 통지가 왔다. 너무도 그립고 보고팠던 남편이지만 시어머니가 떠나는 바람에 엄마는 까딱 내색을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울기만 하셨단다.

장춘전역이 끝나고 전국이 해방되였지만 남편소식이 묘연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10년을 시어머니와 함께 한구들에서 먹고자고 일하면서도 엄마는 불평 한마디 안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간부차림한 사람들이 침통한 심정으로 엄마가 사는 집에 들어서더니 남편의 렬사증을 내놓더란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엄마는 당장에서 까무러치고 말았단다.

《여보, 살아서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한쪽 다리, 한쪽 팔, 한쪽 눈이 실명해도 좋으니 제발 살아서 돌아와주면 안되나요? 결혼해서 열흘만에 떠나간 당신이 이렇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무정하게 떠나가다니요?》

실로 너무나도 비참한 엄마의 모습이였단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허탈감에서 나날을 보내던 엄마는 자상하고 부지런한 아버지한테 재가하여 1남 4녀를 낳았다. 했으나 엄마의 속에는 재가 내려앉았다. 군인남편이 세상뜬것만 하여도 가슴이 찢기는데 1985년까지 엄마가 렬사안해대우를 받지 못했다. 당초에 남편렬사증은 시어머니가 챙겼는데 그들이 세상뜨면서 잃어졌던것이다. 군인남편생각에 엄마는 늘 가만가만 눈물을 흠쳤다. 자식들은 엄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상관부문에 사처로 뛰여다닌 끝에 끝내 엄마로 하여금 렬사 안해의 대우를 받게 하였다.

우리는 렬사증을 엄마의 눈길이 제일 잘 미치는 바람벽에 정중히 모셔놓았다. 생전에 엄마는 시간만 있으면 우리에게 군인남편 이야기를 해주었으며 쩍하면 눈물을 찔끔 쏟군 했다.

《엄만 왜 아버지를 따돌리고 하필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군인남편을 떠올려요?》

자식들의 말에 엄마는 《열흘밖에 함께 못살았어도 우린 부부였어. 하물며 우린 이팔청춘 꽃나이에 만나 서로 순정을 바쳤는데…》

엄마의 그 말씀을 우린 결혼해서야 비로소 리해하게 되였다. 사랑이란 진정 무엇인가를…

1982년 7월부터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것이 돌아가실 때까지 변변히 걷지도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해마다 《8.1》건군절이면 렬사남편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혁명렬사기념비를 한번도 빼놓지 않고 찾아갔다. 오래동안 서있을수 없는 엄마는 자식들의 부축임을 받아가며 번마다 택시에 앉아서 갔는데 차멀미를 하는 바람에 한번 렬사비에 갔다오시면 며칠씩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일년 365일중 엄마의 정서가 제일 좋은 날은 바로 《8.1》건군절이였다. 엄마 말을 빈다면 남편을 만나러 가는 날이였으니깐.

생전에 엄마는 텔레비죤에서 군인이 나오면 자기 남편같이 생겼다며 끄지 못하게 했으며 영화주인공과 함께 울고불고하시였다. 어느 날인가 문득 들어설 남편의 모습을 엄마는 늘 꿈속에서 본다고 하였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2000년 3월에 엄마는 겨우 걸음을 옮겼다. 아직 5월인데도 엄마는 《8.1》절 근심을 하신다.

《금년에 마지막 해가 되겠는지 상차림과 차를 준비하거라. 누워 가더라도 마지막인 셈치고 렬사비에 기어이 가야겠다.》

어느덧, 눈시울이 젖어든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러워 근심말라고 하였다. 엄마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2001년 5월에 병이 악화된 엄마는 사랑하는 우리 오남매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림종시 엄마는 남편의 렬사증을 좀체로 손에서 놓을 념을 하지 않고 군인남편과 만날수 있도록 골회함을 안장하지 말고 하늘로 날려보내라고 하셨다.

아마 58년동안이나 군인남편이 그리워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엄마의 골회가 바람에 실려 하얀 렬사비 바라보이는 이 벼랑, 이 바위틈마다에 그리움 안고 진달래꽃으로 피여났으리라.

주위가 진달래꽃으로 둘러싸인 하얀 렬사비, 다름아닌 엄마의 첫사랑이 살아숨쉬는 엄마의 군인남편이다. 산마다 질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는 연변의 풍경이고 이 강산을 찾아준 충혼들의 숨결이다.

생전에 늘 군인남편을 떠올려 아버지를 난감하게 하셨던 엄마, 산바람에 파르르 떠는 진달래 이파리를 보노라니 이제야 당신 마음 알것만 같습니다. 숨결도 없는 렬사비에 평생을 바쳤던 당신의 그 정성, 그 애착심을 그리고 늘 남몰래 가만히 훔치던 당신의 그 눈물까지…

유난히 좋은 이 봄날, 저 마을을 낀 산자락에 자리잡은 렬사비가 따사로운 해빛을 받아 눈을 부십니다. 아마, 세월이 가도 더 짙어가는 그리움 못잊어 여느 해보다 더 일찍, 더 화사하게 활짝 핀 진달래에게 보내는 따뜻한 미소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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